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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사무치는 방울 소리와 서글픈 이야기
작가 : 에피쿠스
작품등록일 : 2016.7.24

옛 주인을 찾기 위해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어린 나무 정령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연작으로 크게 3파트로 나뉠수 있겠네요. 과거파트와 현재파트, 그리고 마지막 미래파트입니다.

프롤로그 - 서낭나무의 어린 정령 이야기

AP1. 과거편 - 너를 기다리며

AP2. 과거편 - 하제의 아리

AP3. 현재편 – 기억 속에서

AP4. 현재편 - Gosters

AP5. 미래편 - 초여름의 기억

AP6. 미래편 - 예그리나의 벨

해답편 – 그들의 진정한 이야기

에필로그 - 사무치는 방울 소리와 서글픈 이야기

=> 과거-현재-미래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일종의 옴니버스식 스토리.

 
AP1- 너를기다리며 -(Intro End)
작성일 : 16-07-24 14:29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13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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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어느 ‘한 마을’에서 시작된 서툴렀던 두 남녀 간의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다.

 솔직하지 못했던 그들은 서로의 대한 안타까움이 후회로 남아 지금까지도 이루어 지지 못했다고 ‘무녀’는 전했다.

 

 ---때는 조선 세종 1438년.

 

  초라한 양반집 댁 아들인 ‘천우(天旴)’는 비록 지금은 잘 살지 못하지만 언젠가 조선 최고의 도시, ‘한양’으로 가서 반드시 출세하고 말리라는 뜻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천우는 덕수(德水) 이씨의 8 대 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변변찮은 양반인데, 은근히 사람들한테 무시를 당하곤 했다.

 

 그의 집안은 다른 양반들과 재산차이도 많이 났다. 보통이라면 광대한 '땅문서'를 가졌을 양반들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내일 먹고 살기가 힘들만큼 생계만 간간히 유지해 오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돈도 권력도 없는 무능한 그의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천우의 나이 8세가 되자마자 가족을 버리고 한양으로 떠나버렸다. 후에, 들려오는 이야기론 출세를 해서 다른 여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천우와 그의 어머니를 잊은 채 말이다.

 

  한편, 천우의 어머니는 천우를 혼자서 힘들게 키웠지만, 천우의 나이 열둘이 되자 결국 숨을 거두었다. 바로 평소에 앓고 있던 지병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 천우의 얼굴을 보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이제는 혼자 남겨진 열두 살의 천우는 이런 악독한 상황에서도 울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독기를 품으며 글공부와 무예를 익히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역시 아버지처럼 과거(科擧)시험을 보기 위해서.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며 글공부와 무예를 동시에 익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 이 고을은 예로부터 '샛별 마을'이라 불리며 평민 촌장이 다스려온 마을이다. 당연히 양반인 천우에 대해선 아주 배타적이었다.

 

  처음에 천우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보니 며칠 동안 굶게 되었고 나중엔 양반으로서 최대의 굴욕인 '아사(餓死)'를 경험할 뻔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갔다.

 

 언젠가 천우는 여러 번 굶게 되자 굶주림을 못 참고 산에 올라가 주변에 있는 나뭇잎을 먹게 되었는데, 다행이도사람이 먹을 수 있는 나물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조금씩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에 완전히 적응이 되자, 천우는 '아사'의 대한 걱정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더 나아가 우연히 토끼 같은 초식동물들이 좋아하는 나물이나 풀을 알게 되었는데, 교묘하게 함정을 이용하여 사냥에 성공하기도 했다.

 

 첫 사냥에 성공했었을 때, 생전 처음으로 웃다가 눈물까지 흘렀을 정도 천우는 기뻐했다.

 

 양반에 배타적인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적고 폐쇄적인 마을이라서 항상 식량이 부족했다. 사냥과 나물에 익숙해진 천우는 그 부분을 노려 마을사람들과 거래를 시도해 본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첫 반응은 천우를 기피하는 것이었다. 천우는 마을에선 '이단'과 같은 존재였기에 천우랑 말 섞는 것조차도 꺼려했기 때문이다.

 

  천우는 그런 냉혹한 상황에도 포기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여러 번 식량 거래를 시도해보고, 가까스로 돈으로 바꿔보도록 노력했다.

 

 그런 천우의 눈물겨운 노력이 통한 것일까? 아니면 내일 먹을 식량을 옆 마을까지 사러가기 귀찮아하는 마을사람들의 게으름 덕분이었을까? 어쨌든 천우는 끈질긴 시도를 통해 일부 주민들과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드디어 천우는 돈을 벌며 생계를 살아 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천우가 제일 처음 번 돈으로 한 일은 저축이었다. 어린 마음에 다른 아이들이 맛있는 군것질을 할 때도,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모아갔다. 그야, 사실은 군것질을 하며 놀고 싶었겠지만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참고 견뎌냈다. 아마 산에서 많은 경험들이 천우의 인내력을 높여 줬던 게 분명했다.

 

 천우가 악착같이 저금한 돈으로 산 것은 바로 '소학'이란 책이었다.

 

 그가 소학을 선택한 이유는 학문에 있어서 제일 기초가 되는 책이라서 이었다. 다행히도 글자는 아버지한테 어렸을 적에 배운 적이 있기에 그는 소학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었다.

 

  글공부는 몸을 쓰는 사냥이나 채집에 비해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천우는 날이 새도록 읽어댔다. 중간에, 뜻이 이해되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되풀이 했다. 그러다가 채집해야 될 나물이나 동물을 사냥하는 일도 잊어버려 여러 번 굶은 적도 있었다.

 

  소학을 모두 정독하자, 천우는 자신이 악착같이 번 돈으로 다른 책을 사는 것에 투자했다. 그에게는 달려가야 될 꿈이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한순간의 달콤함보단 밝은 미래를 그는 더 원했으니까.

 

  필사적으로 꿈을 좇는 천우의 나이는 어느 새 열여덟이 되어 가고 있었다…….

 

 - 1. 이야기의 시작

 

 

 "후우… 내 나이 벌써 열여덟이건만, 학문의 깊이는 끝이 없고 무예의 길은 멀어 만 보이니 어찌 우리나라의 최고의 도시, 한양으로 가서 ‘과거’를 치를 수 있단 말인가……?"

 

 아침 연습을 꾸준히 하며 이제는 어엿 단단한 몸을 갖춘 ‘천우’는 자신의 분신이 된 목검을 멈추며 이야기했다. 그 해에 많은 일들이 있어 천우는 무술훈련까지 시도한 것이다. 이제는 순진하고 약해보일 것 같던 옛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의 그는 건장하고 튼튼해 보였다. 머리 또한 길어져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나 깔끔하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킥킥킥. 거기서 왜 똥 폼을 잡고 있냐? 그런다고 벌써 어른이라도 된 줄 아는 거 아냐?"

 

 천우가 아침 연습을 끝내며 한숨을 쉬고 있었을 때, 그의 뒤쪽에서 맑고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늘고 맑은 목소리로 보아 아무래도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분명했지만, 천우와 인연이 있는 소녀가 과연 있었던가?

 

  한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청아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말투는 천박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다.

 

  "으흠…? 그대는 누구 길래 나를 찾아온 건가? 또한 본인은 이미 어른이니 그 말의 의미는 맞지 않네."

 

 "엥? 뭐야!? 틀리긴 뭐가 틀려!? 그리고 닭살 돋는 그 말투 좀 집어치워! 게다가 우리 마을에선 열아홉을 넘기지 못하면 모두 다 미성년자인거 몰라? "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천우’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우윳빛의 하얗고 아름다운 눈망울이 특징인 그녀는 천우의 초가집 마당에 들어와 두리번거리곤, 아침훈련을 끝낸 천우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 진짜-! 그건 이 고을이 이상한 거라니까?! 그리고 양반의 말투는 원래 느글거려야 돼!!! ……아니 점잖아야 돼. "

 

  "꼴값을 떫어요! 정말. 그런데 아직도 하는 거야? 그럴 시간에 밖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뛰어 노는 게 좋지 않아? 이해 할 수가 없네."

 

 그 ‘소녀’는 양반말투가 느글거린다는 본심을 이야기해버린 천우의 말에 황당해하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천우와 그 소녀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로 보인다. 도대체 그 소녀와 천우는 어떤 관계일까?

 

  "무슨 소릴? 나는‘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해서 오랜 꿈을 이룰 거야. 지금 현왕이신 세종께선 얼마나 멋진 분이신데?! 멋진 왕과 똑똑한 신하라니! 그걸 위해선 모든 걸 감수할 수 있어. "

 

 "하!? 겨우 그따위 쓰레기 같은 꿈을 위해 '지금'을 포기한다는 이야기야? 믿어지지가 않네. 그리고 네가 실력이 있다고 '관직'에 임명될 수 있는 줄 알아? ……이루어 지지 못한 꿈을 꾸는 것보다 멍청한 건 없어. 그러니까 어서 포기하도록 해."

 

 천우는 자신의 꿈을 쓰레기 같다고 이야기 하는 하정의 말투에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저 소녀는 자신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면서 초를 쳐 놓는다. 그때마다 천우는 그 소녀가 너무나도 얄미웠다.

 

 "네가 뭘 안다는 건대?! 굶어 본적도 없으면서, 시시 건건 말싸움이나 하러 오고. 도대체 목적이 뭐야, 하정(河定)!?"

 

 "흥! 너가 한심하니까야. 천우!"

 

  천우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의 이름은 주하정(朱河定)이라는 소녀다. 그 아이는 이 마을, 서낭당의 무녀라고도 불리는 아이인데, 천우가 어렸을 적 어머니를 잃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아사당하기 직전에, 음식을 몰래 가져다주면서 알게 된 소녀였다.

 

  이성을 처음 접해본 천우로선 같은 또래의 그녀가 내미는 친절에 그만 반하고 말았었다. 그녀 또한 천우가 마음에 들었는지 천우가 위험할 때면 우연인척 항상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일 뿐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현재 하정과 천우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

 

  "……조선이 세워지기 전, 고려시대 때부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안이 자기의 자식들에게 관리를 독점하는 ‘음서’ 제도가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을 보면 몰라?…… 그러니까."

 

 "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현 왕이신 세종께선 ‘장영실’이란 천민을 높은 고위 관직에 올려 주셨다고!"

 

  "바보야!! 어째서 그렇게 까지 나라의 관리가 되고 싶은 거야?! 지금처럼 우리 마을에서 조용히 살면 되잖아?! 혹시 너를 버린 아버지 때문인 거야? 아니면 입신양명, 그것만을 바라오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진 않겠지?"

 

  그러나 천우는 화를 내며 소리치는 하정에게 단순히 침묵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뒤이어 계속되는 하정의 외침에도 그는 단순히 짓궂은 입술만 깨물었다.

 

  "……목적이 뭐냐고? 좋아, 알려줄게! 난 네가 우리 마을에서 예쁜 처자랑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래. 어째서 우리가 이런 일로 싸워야 하냐고? 과거는 잊고 새로 시작하자? 응? ……그러니까 제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마! "

 

  옛날 천우는 과거의 급제를 해서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버지랑 화해를 해서 둘이 같이 잘 살 것이라는 게 목표라는 그 이야기에 하정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야기를 얼핏 들어보니 천우는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모르는 듯 했고, 설사 급제를 해서 아버지를 찾아간 다해도 또다시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또한 무엇보다 그녀는 천우랑 헤어지기 싫었다.

 

 옛날엔 다행히도 자신의 마음이 천우에게 통했는지, 한동안 자신의 꿈을 포기한 듯싶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아버지를 찾으러 가겠다고?

 

 "…… "

 

 "이 바보 천치 같은 자식아! ……정말! "

 

 계속되는 묵묵부답에 하정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남겨진 천우는 단순히 쓸쓸한 눈빛으로 이미 가버린 하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안해…… 하정아. 난 그럴 수밖에 없어. "

 

 혼자 남겨진 천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

 

 

  다음 날이 되자, 천우는 집에서 과거시험과 연관되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대략적으로 소학, 대학, 중용 등등 그 외에도 유교경전, 불교법전, 도교경전, 무술서, 역사책이 있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쯤, 어디선가 밖에서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우! 이번엔 책 읽는 거야?! 도대체 그런 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 건대? 혹시 관리가 되고서도 책상에 앉아 탁상공론만 하려는 거야? 차라리 실용적인 것이나 배우지 그래? 정말로 한심해 죽겠다니까!!!"

 

 …목소리는 청아하지만 말투는 천박하다고 천우는 생각하며 문설주의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예상대로 문밖에선 마당 밖에서 떠드는 하정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그녀가 입은 옷은 화려한 빨간 저고리와 단아한 치마로 이루어진 무녀 옷이었는데, 그런 그녀를 보며 정말로 옷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녀 옷이라면 설마?

 

  복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평소 하정이 무녀행사를 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 그녀의 표정엔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새하얀 얼굴에 맺혀져 있는 땀방울이 무녀 행사가 끝나고 힘껏 달려왔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천우는 모르는 척 하며 그녀에게 귀찮은 듯 말했다.

 

  "하정!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역시 오늘도 방해하러 온 거야?"

 

  "역시 하던 그 역시가 맞지롱-?! 어때, 일부러 옷도 안 갈아입고 여기까지 왔다고! 그래서, 아직도 포기 안할 거야??"

 

  하정은 천우가 보기에 이상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천우한테 포기 권유를 하러왔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천우를 바라보는 하정의 모습에 천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 도대체 뭐하는 거야? 그리고 이젠 소용없어. 이제 며칠 뒤, 나는 마을을 떠나서 한양에 가지 않으면 안 되거든."

 

 "뭐?!! 하… 하지만 세 달이나 남았잖아?!‘식년시(式年試)’는 올해로 3 년째 되는 9 월이니까 좀 더 느긋하게…… "

 

  천우가 며칠 뒤에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하정은 온몸이 굳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 이었다.

 

  "3년 만에 보는 시험이잖아. 물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식년시였으니 9 월이 맞아. 그렇지만 가는 여정과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지금쯤이 맞지. 그런데 아까부터 어쩌자고 그런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야?"

 

  "?! 미인계(美人計)가 실패한 건가?! 이런…상대의 연령을 생각하지 못한 게 실수였어! "

 

 그녀가 취하고 있던 자세는 아마 미인계의 일종이었나 보다. 그야 물론 매혹적이냐고 물어본다면야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그녀와는 하루에 한번정도 얼굴을 보기 때문에 소용없을 거다. ……아마도 말이다.

 

  " …언제 갈 건데? 언제부터, 몇 시쯤에? "

 

 심한 반대를 이야기할거란 천우의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몇 가지 질문만 물어볼 뿐이었다.

 

 "이틀 뒤, 정오쯤 출발할 생각이야. 마중이라면 오지 않아도 되니까 집에 편하게 있어. …준비 같은 건 철저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정말로 갈 거야?"

 

 "응"

 

 힘없어 보이는 하정의 질문에 천우는 매몰차게 이야기 했다. 그런데도 하정은 계속해서 천우에게 질문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그래…. 정말로 가는 거구나. 이제는 더 이상 말려도 소용없겠지? "

 

 "그래. 이미 ‘결심’했으니까."

 

 "혹…혹시 말야. '그 날' 내가했던 말 기억해?"

 

 어지간히도 충격 먹었던 걸까? 하정은 다급하게 말까지 더듬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날' 이라면 천우가 처음 고백했던 날을 말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둘의 관계가 악화된 계기 역시 '그 날'과도 관계가 있었다. 하정은 한번 천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 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었지만, 나 역시도 네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어. 그 날 거절 했던 건-!"

 

  그녀는 조금이라도 천우를 붙잡기 위해 있는 힘껏 짜내어 말해보았지만, 천우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아 그래, 정말로 떠나버리는 거구나.

 

 마음 한 구석 가운데 생각했던 그 말이 그녀의 가슴에 박히는 순간, 지금까지 감쳐왔던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 …제발. 가지마! 마을에 그러니까…… 으흑…… 있어달란 말이야… 흐윽…."

 

 "……."

 

 "…… 싫어! …흐으 으윽… 끄윽… 헤어지기… 싫단… 말이야……. "

 

 "……."

 

 마지막 외침과 함께 그녀의 '표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두 팔로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며 하정은 어린애같이 계속 울어버렸다.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천우 앞에서 운적이 없었던 그녀가 천우가 떠난다는 말에 울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실, 그녀는 항상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화가나 보이는 표정역시 사실은 울음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 그랬으니까.

 

  그녀는 천우를 만날 때 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화난 표정'으로 속였을 뿐.

 

 천우는 잠시 주춤거리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빨로 입술을 지그시 누른 채 말없이 있었다.

 

  "끄윽…… 바보… 멍청아…… 가지 말란…… 말이야…… "

 

  "……이미 가기로 결정했어. 미안해 하정아."

 

  "이!! 바보 멍청아!!! 나가서 확 죽어버려!!"

 

  매몰찬 천우의 반응에 하정은 결국, 원망스럽게 쳐다보곤 화를 내어 뛰쳐나갔다.

 

 ※ ※ ※ ※

 

 

 천우가 떠나는 당일 날, 그는 예정보다도 더 일찍 길을 떠났다. 떠나는 날 하정이 울면서 붙잡는다면 천우로서는 뿌리치고 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길을 나서는 천우의 모습은 시원해보였다.

 

  입가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길을 걷는다. 앞으로 볼 ‘식년시’에서 합격하고 자신이 쓴 ‘편지’를 보고 감동 먹었을 그녀를 생각하며…….

 

  하정이에게…….

 

  네가 이 글을 보고 있을 쯤 이면 나는 이미 이 마을을 떠나고 있을 거야. 그 동안 너에게 다정히 대해주지 못하고, 매일 다투기만 해서 미안해. 그 동안 너는 갑자기 달라져버린 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말투도 많이 삐뚤어졌었잖아?

 

  사실은 말이야. 나, 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었어. 어머님께서 처음 돌아가시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헤맸던 나를 너는 곁에 있어주면서 보살펴 주었었지. 항상 내 주변을 따라다니며 우연히 지나가는 척 했던 네 모습이 아직도 떠올라. 그러다 우린 그날 서로 좋아하게 되었던 거구. 그렇지?

 

 하지만, '그 날' 기억나? 네가 3년 전에 내게 한말 말이야.

 

 『 그렇다면 그 마음은 지금 받기 싫어요. 하지만 그 사랑이 커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주세요. 』

 

 그 때부터 나는 생각했어. 반드시 나라에 출세 해 너와 행복하게 살겠다고.

 

 한번 포기했던 공부라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려웠지만, 나는 목표를 위해 최대한 전념하기 시작했어. 그러나 그 결심은 네가 옆에 있을 때마다 무너지고 말았지. '지금'을 즐겨버리자고. 그렇지만 옛날 그때와 같이 참고 또 참았어.

 

 그리고……. 약속대로 지금 와서 다시 한 번 이야기 할 거야. 그 마음은 어른이 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6개월 뒤에 우리가 처음 만났었던 '그 나무' 앞에서 만나기로 하자.

 

 원래는 완전히 성공한 다음 이야기할 생각 이였지만, 어제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주저했어. 그렇지만 반드시 장원 급제해서 너랑 결혼하고 지금까지 못 해주었던 사랑을 가득 주고말거야.

 

 

 

 ※ ※ ※ ※

 

 

  오늘 하정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천우의 집에 찾아왔다. 그런데 평소처럼 큰 소리로 천우를 불렀는데도 그가 대답을 하지 않자, 하정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든 것이다. 급하게 문설주의 문고리를 열어 방문 안을 확인했지만, 방안의 모습을 본 그녀는 제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천우가 자신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아무 말 없이….

 

 울고 또 울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도.

 목소리가 잠기고 울음이 더 이상 나오지 않더라도.

 

 그녀는 계속 울었다.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걸까?

 

 그가 떠난다는 것을 몰랐었나?

 

 하정은 스스로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자신은 분명 그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에게 말없이 떠난 천우가 밉고 원망스러워서 우는 걸까?

 

 이번에도 하정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단지… 그가 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으니까….

 

 하정은 ‘그 날’을 기점으로 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버린 천우의 관심을 다시 끌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해왔었다. 말투도 바꿔보고 성격도 바꿔 보고 가끔 예쁘게 될 수 있다는 비싼 화장도 해보고 말이다.

 

 그러던 중 어떠한 반응을 보여줘도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천우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천박한 말투에, 처음으로 반응해 주었다. 물론 유치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도 했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다. 그가 어디론가 멀리 가 버릴까봐 무서웠으니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하정은 지금까지 천우의 관심을 끌기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언제나 결과는 항상 똑같다.

 

 하정이 그를 찾아가도 마을을 떠나겠다고 이야기하는 천우. 급기야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싸움만 한다.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 자책하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가지만 역시나 솔직하지 못하게 말싸움을 하는 하정.

 

 사실은 천우와 단순히 즐겁게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

 

 그와 이어질 순 없어도 멀리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그를 본다면 자신 역시 행복해 질 테니까.

 

  "이!!…… 바보 멍청아!!! 윽…… 으흐흑…… 크흐윽… 정말…… 나도… 바보잖아? 으흐흑."

 

 그런데 천우는 자신도 모르는 속마음을 알고 있었나 보다.

 

 "기다릴 거야…… 흐윽…… 이 바보야! 빨리 와야 되는 거다?!!"

 

 이미 천우는 떠나가고 없지만 그녀는 그제야 희미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 ※ ※ ※

 

 -2. 너를 기다리며.

 

 

 푸른 하늘. 원망스럽게 도 구름하나 없는 평화롭고 맑은 하늘이 보였다.

 

 다음으로 느껴지는 건 여기가 자신의 도착점이라는 생각. 이만큼 버텨왔으니,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대견스럽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린다면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을 '그녀'다.

 

 처음 아버지로부터 가족이 버림을 받았을 때, 그리고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그때부터 천우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남은 거라곤 아무런 희망도 없는 미래뿐이니까. 그래서인지 천우는 헛되다는 걸 알고 있어도 성공을 위한 발버둥을 쳤다.

 

 【천우! 이번엔 책 읽는 거야?! 도대체 그런 걸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 건대? 】

 

 " 후후후... "

 

 매번 자신의 꿈을 비웃던 그녀. 솔직하지 못한 그녀는 바쁜 몸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천우를 만나러 와주었다.

 

 【킥킥킥. 거기서 왜 똥 폼을 잡고 있냐? 그런다고 벌써 어른이라도 된 줄 아는 거 아냐? 】

 

 그의 성공을 향한 무의미한 여정은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끝이 보이는 듯 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이 점점 바뀌고 있었으니까.

 

 "아…!"

 

 어라? 혹시 솔직하지 못했던 건 혹시 '하정'이 아니라 자신이 아니었을까?

 

 

 【끄윽…… 바보… 멍청아…… 가지 말란…… 말이야…… 】

 

 자신은 마을에서 미움 받는 양반집의 무능력한 고아.

 그리고 그녀는 그 마을에서 제일 사랑을 받는 결혼할 수 없는 무녀.

 

 나를 좋아해 주는 그녀를 받아들이기가 너무 부끄러웠기에…… 다시 한 번 여정을 결심했다. 이번엔 그녀에게 당당해지기 위해서!

 

 「퍽」

 

  말을 타고 어디를 급히 가는 어떤 사람이 미처 천우를 보지 못하고 정지하다가 천우의 머리를 쳐 버렸다….

 

 "에이! 어떤 시정잡배 평민 녀석이 이 어르신이 바삐 행차하는 길을 막고 있는 게냐! 재수가 없어서 원!"

 

  점잖은 말투와 머리에 갓을 쓴 그 사람은 평소 천우가 되고 싶어 했던 양반. 그는 천우를 평민이라고 생각했었는지 그대로 가버렸다. 동시에 몇몇 사람들이 비명과 소리를 질렀지만 익숙한 광경인지 곧 신경을 끄고 각자 가던 길을 갔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무술 훈련을 하고, 학문을 공부해도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녀가 자신에게 이야기해 왔던 것처럼. 그렇게 천우는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갔다….

 

 

 ※ ※ ※ ※

 

 

 

  6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하정은 약속의 장소인 마을 뒷산의 느티나무에서 항상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보야……! 빨리 돌아오란 말이야…… 혹시 과거 시험에 떨어졌어도 너랑 같이 마을을 떠나서 행복하게 살 거니까…… 제발 몸만이라도 무사히 오란 말이야……!"

 

 약속의 장소인 느티나무에서 6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하정은 이제 그를 의심하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분명 그가 아직 안 돌아오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바빠서 행정을 처리하는 거라든지, 아니면 자신과 살 집을 준비하느라고 오지 않는 거라든지, 자기 멋대로 이유를 생각하자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계속해서 기다렸다.

 

 하정은 매일 같이 자신의 서낭신에게 천우의 안전을 기도하며 느티나무 밑에서 기다렸다.

 

 다시 3개월이 지났다.

 

 하정은 천우를 생각 할 때 마다 눈물이 나왔지만 앞으로 보답 받게 될 날을 생각하며 계속 기다렸다.

 

 또 다시 3개월이 지났다.

 

 이미 천우를 못 본지 1년지 다 되어 간다. 하정은 하루가 지나 갈수록 눈물을 흘리는 날 역시 많아졌다. 이제는 어떤 보답도 필요 없이 그를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변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녀 앞으로 한 작은 상자가 보내진 것이다.

 

  〔샛별마을의 이천우〕

 

 그 작은 상자는…… 바로 유골함이었다.

 

 "아…… 아아아…… "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떨린다. 그렇지만 그녀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으려 노력한다. 마치 여기서 눈물을 흘린다면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처럼.

 

 "으으…… 으아아-아…… 으흐흑…… "

 

 그러나 잔혹한 현실 앞에 그녀는 흐느껴 울고 말았다. 죽어서라도 자신의 약속을 지키러 왔던 '그 녀석' 앞에서 힘없이…….

 

 【끄윽…… 바보… 멍청이…… 가지 말란… 말이야…… 】

 

 【난…… 내일 가기로 결정했어! 미안해 하정아.】

 

 【이!! 바보 멍청아!!! 나가서 확 죽어버려!!】

 

 애통한 느낌과 함께 그 유골함을 껴안자, 갑자기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우아아아…… 흐으윽… 아냐… 아니라고… 천우…… 천우야…! 으흑…끄흑."

 

 【이!! 바보 멍청아!!! 나가서 확 죽어버려!!】

 

 "으흑…흑…… "

 

 만약에…….

 

 우리 죽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자.

 

 우리가 다시 만날 때 까지, 너를 기다리며.

 

 

 『딸랑- 딸랑- 딸랑-』

 

 그날, 사무치도록 서글픈 목소리와 방울소리가 어디선가에 하루 종일 울려 퍼졌다고 한다.

 

 

 

 --------------------------------------------------------------Intro End-

 

 이후 스토리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너를 기다리며의 본편이 시작되는 것이죠!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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