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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상이몽 로맨스
작가 : 초아
작품등록일 : 2017.6.2

"날 짝사랑했다고? 박 비서가? 삼 년 동안?"
지욱이 악마처럼 웃었다. 언제나처럼 다연의 등에 소름이 돋아났다.
물론 너무 싫어서. 나는 저 남자가 너무너무 싫어!
"기회를 주지. 날 유혹해봐. 단 백일 안에."

유혹당할 준비가 된 남자와 반드시 차여야만 하는 여자.
100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2. 잡아 와. 당장
작성일 : 17-06-10 19:15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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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홀 안의 정적은 히스테릭한 지혜의 비명으로 깨졌다.

 곁에 있던 어머니가 미처 붙잡기도 전에 물잔을 낚아챈 지혜가 아직 주저앉아 있는 지욱의 곁으로 달려간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쫙!

 지욱의 잘생긴 얼굴에 사정없이 물이 뿌려졌다. 질끈 감은 눈을 지나 깎아놓은 듯한 콧날을 타고 뚝뚝 물이 흘러내렸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한 번에 사라졌다. 나름대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하객들에게 눈앞에서 벌어지는 막장 같은 상황은 눈쌀 찌푸려지는 저급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몹시도 흥미진진한 사건이기도 했으니까.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문 그들이 숨을 죽였다.

 

 "이게 당신 말한 내가 안 된다는 이유였나요? 그래요?"

 

 아, 맞다. 지금 내 약혼식 중이었지.

 지욱은 그제야 정신이 들며 숨이 끊어지기 전 팔딱거리는 물고기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여자를 올려보았다.

 

 동그란 어깨를 드러낸 튜브형 미니 드레스와 화사한 화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지혜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얌전하던 얼굴도, 사려 깊고 준비된 신부의 모습도 사라지고 없었다. 자존심에 금이 간 그녀는 지욱이 예상했던 대로 표독스럽고 욕심 많은 본연의 얼굴로 돌아갔다.

 

 다만, 이런 꼴로 저 얼굴을 구경할 생각이 없었던 게 문제지.

 지욱은 손을 올려 얼굴에 묻은 물기를 쓸어내렸다. 이미 냉정함을 되찾은 그가 일어서며 지혜를 응시했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한 지혜 씨. 이미 나는 이 약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찰싹!

 지혜의 손이 사정없이 지욱의 뺨을 갈긴 건 그가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한 그 순간이었다. 유달리 하얀 지욱의 얼굴에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네까짓 게 뭐가 잘났다고…. 고작 사채업자 손자인 주제에…. 감히 나를…. 나를…."

 

 그녀의 부모님이 달려와 파르르 떨고 있는 지혜를 부축하자, 그녀는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분한 듯 이를 꽉 물고 있는 지혜의 어머님에게 지욱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 하!”

 

 말문이 막혀서 지욱을 노려보기만 하는 아내를 대신해 우림 식품 한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약혼은 없던 일로 하겠네. 어디까지나 우리 쪽에서 파혼한 거야. 강 회장님의 얼굴을 봐서 이걸로 마무리하지…. 하지만.”

 

 다른 관중처럼 흥미 있게 그들을 주시하는 강회장의 능글맞은 눈빛을 의식한 한회장은 말을 얼버무렸다.

 

 재계의 검은돈을 주무르는 강회장이었다. 딸아이의 입에서 나간 사채업자라는 소리에 이미 아차 싶었다. 하나뿐인 딸의 앞날에 오점을 새긴 이 녀석을 잘근잘근 씹어뱉어도 후련하지 않겠지만, 한회장은 냉철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일이 어떻게 되든 강회장의 눈 밖에 난다면 손해를 보는것은 자신이었다.

 

 비정한 사업세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는 법. 오늘의 수모는 차후로 미뤄도 될 일. 지금은 모양좋게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란 걸 깨달은 한회장은 꼬리를 내릴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 일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걸세. 지혜가 흥분한 건 내가 대신 사죄하지."

 

 한 회장의 말은 이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와도 같은 거였다. 빠르게 상황을 이해한 하객들은 그야말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을 바라보는 지욱의 눈에 경멸이 스쳤다.

 지저분한 인간들. 자식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부를 우선시하는 똑같은 행태.

 

 그런 그의 앞으로 똑똑 독특한 소리를 내며 지팡이를 짚은 하얀 구두가 다가왔다.

 강회장이었다.

 

 "잘 봤다. 식상하긴 해도 보는 재미는 있더구나. 애썼다."

 

 히죽 웃는 할아버지였다.

 꼴사납게 넘어지고, 물세례에 뺨까지 얻어맞은 손자의 흐트러진 모습이 아주 흡족한 듯 그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좀 실망이야. 너라면 창의적으로 날 놀라게 할 줄 알았거든. 여자라니…. 신선한 방법은 아니지 않니?"

 "하지만 제일 잘 먹히는 방법이기도 하죠. 보세요. 제 의견 따위 무시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던 약혼식이 깔끔하게 정리됐잖아요."

 "음…. 기어이 나와 해보자는 거구나?"

 "재미있으셨다니까요, 할아버지를 위해 손자가 좀 더 애를 써봐야겠죠. 기대하세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점점 더 흥미로워질 겁니다."

 

 팽팽한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할아버지를 노려보는 그의 사나운 눈빛 못지않게 강회장의 노련하고 명석한 눈빛도 번쩍 빛났다.

 

 "그래. 어떻게 날 즐겁게 해줄지 들어나 보자. 옷 갈아입고 회사로 들어오거라. 기다리마."

 

 여유롭게 웃으며 등을 돌린 강회장의 뒤로 수행비서들이 붙었다. 머쓱하게 서 있는 승호를 본 척도 안 하고 지나가던 강회장이 느닷없이 손에 쥔 지팡이를 들어 매섭게 그의 등을 후려쳤다.

 

 "악! 할아버지는 왜 나만 때려요! 형이 잘못했는데 왜 날 때려요!"

 "잔말 말고 너도 따라 들어와. 고얀 놈들."

 

 강회장을 뒤따르던 수행비서가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눈치 있게 홀의 문을 닫았다. 아무리 강지욱이라고 하지만, 약혼식 날 일어난 이 말도 안 되는 소동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닫히는 문 사이로 넥타이를 고쳐매는 지욱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오지랖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지욱의 표정은 냉정함을 떠나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수많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벌벌 떠는 강회장의 은근한 협박에도 동요하지 않는 그를 보며, 역시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 법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문을 닫았다.

 

 능구렁이 같은 노친네.

 이번에 확실히 못박지 않으면 다음번 그가 망쳐야 하는 것은 결혼식이 될지도 몰랐다.

 그것도 자신의 의사따위는 존중하지 않고 실리만을 따져 최상의 상품을 골라내는 것처럼 뽑아낸 여자와.

 

 할아버지가 원하는건 너무도 분명했다. 지욱이 질색하는 강회장의 회사를 물려받든지, 아니면 그가 골라주는 여자와 결혼을 하던지.

 

 지욱은 가늘게 눈을 뜨며 강회장이 사라진 문을 노려보았다.

 절대 할아버지 뜻대로 안될겁니다. 냄새나는 돈놀이 회사도, 꼭두각시처럼 팔려오는 신부도 제인생에선 없을겁니다.

 

 "헐! 대박!"

 

 그런 그의 곁으로 호들갑스럽게 승호가 달려왔다.

 

 "대박! 형, 박 비서랑 그런 사이였어?"

 

 넋이 나간 승호의 입이 가까스로 열렸다. 새삼 놀라움이 올라와 그는 손가락으로 지욱을 가리키며 벙긋벙긋 뻐금거리기 시작했다.

 

 "지, 지금 그, 그 여자 맞지? 박 비서. 형 박 비서랑 그런 사이였어? 나에게도 비밀로 하고?"

 

 물에 젖어버린 넥타이를 풀며 지욱이 날카롭게 승호를 바라보았다.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조용히 해라. 아직 할아버지 엘리베이터 타지 않으셨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희미한 엘리베이터 음이 들리며 소란스럽던 복도가 잠잠해졌다.

 나른할 정도로 느긋하게 와이셔츠의 소매 버튼을 풀던 지욱은 태연함을 가장한 표정을 한순간 벗어버렸다. 냉정함은커녕 지금 그도 정신이 없기는 승호 못지 않았다.

 

 "맞지? 그 여자? 바, 박, 박 비서!"

 

 승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 그가 곧 승호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날벼락을 맞은 승호가 캑캑거리기 시작했다.

 

 "대답해! 맞냐고!"

 "...그, 그런 거 같던데…."

 "뭐야? 그 여자! 박, 박 비서 돌았어? 말해봐! 아까 그게 무슨 짓이냐고? 엉?"

 

 코가 닿을 듯 가까이 들이댄 지욱이 으르렁거릴 때마다 눈동자가 사납게 번득였다. 그의 힘에 밀려 뒤로 한발 물러난 승호가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뿌리쳤다.

 

 "아, 나한테 그걸 왜 물어!"

 "네 비서잖아!"

 

 그랬다.

 지욱이 알기에 박 비서는 승호의 비서였다. 임원실 앞 안내대처럼 마련된 비서실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네, 다섯 명의 비서 중 한 명이었을 뿐 지욱과 업무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다.

 

 지욱의 비서는 강 회장님 때부터 일하신 할머니라고 해도 될 만큼 나이가 지긋하신 이 비서님이었다. 무릎이 삐걱대는 그녀를 위해 지욱의 넓은 사무실을 개조해 개인비서실을 마련해줄 만큼 지욱에게는 비서 이상의 의미가 있는 분이었다.

 

 이비서님이 자리를 비웠을 때 박비서가 두세 번 지욱의 임시비서를 한 적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워낙 평범하고 특별할 것이 없었기에 지욱은 박비서의 이름조차 몰랐다.

 

 똑같은 옷을 여러 벌 사다 놓고 번갈아 입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함없는 까만 정장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 165cm 정도 되는 키에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유독 웃음기 없는 표정. 언제 어느 때 회사에 들이닥쳐도 젖은 낙엽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던 모습.

 

 생각나는 건 그게 다였다.

 그런데, 날 사랑한다고? 기어이 내가 그 말을 꺼내고 만들었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야?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승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내 비서는 강 비서지. 박다연씨는 다른 비서들을 도와주는 역할만 했으니까. 나도 잘 몰라. 나는 형이 일부러 데려왔는지 알았지. 좀 더 극적인 파혼을 위해서……."

 "아니야!"

 "그럼 혹시, 형. 박비서에게 추파를 던졌다던가 뭔가 희망을 준…."

 "없어! 없다고! 그 여자 이름이 다연인 것도 지금 네 말 듣고 알았다고!"

 

 승호마저 모르는 눈치자 지욱은 자리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황당함을 지나 이제는 화가 치밀어오르고 있었다.

 

 깔끔하면서 우아하게 끝낼 수 있었다.

 재수가 없어 봐야 물 한 컵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단 말이다.

 

 품위라고는 전혀 없이 나동그라져 입을 벌리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지욱은 멈춰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물세례에 따귀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하객들의 시선이 지욱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내가. 천하의 강지욱이. 단정하고 깔끔하며 냉철하기로 소문 자자한 내가!

 날 짝사랑해서 고백했나보다고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다른 곳도 아닌 약혼식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릴 만큼 자신은 그녀에게 빌미를 준 것도 맹세코 없었다.

 

 이마를 짚은 그의 팔목에 도드라진 힘줄이 위험하게 꿈틀거렸다.

 황당하기만 한 승호는 계속 바보스러운 질문을 쏟아냈다.

 

 "진짜 형이 데려온 게 아니라고? 별 사이도 아니고? 그럼 박 비서가 진짜 형을……. 왜?"

 "뭐가? 나 좋다고 하는 여자가 한둘이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멀쩡한 나를 놔두고 왜 형을? 도대체 왜?"

 

 화풀이할 상대를 못 찾은 지욱의 눈이 승호에게 날아 박혔다.

 

 "와. 이거 진짜 눈치 못 챘네. 그럼 박비서가 혼자 형을 좋아해서 작정하고 왔단 소리지? 약혼식을 망치려고. 우와. 박 비서가 그렇게 뜨거운 여자였단 말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승호를 향해 지욱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시끄럽고! 그 여자 어딨어? 데려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들어봐야겠어!"

 "박 비서, 관뒀는데……."

 "뭐?"

 "일주일 전에 퇴사했어. 곧 미국으로 간다고…."

 

 지욱이 위험하게 승호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그가 예사롭지 않게 눈을 번득였다.

 

 "...잡아 와! 당장."

 .

 .

 

 우엣취!

 요란하게 재채기를 한 다연이 코를 씰룩였다. 가방을 열어 휴지를 꺼낸 그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코를 흥 풀었다. 한기가 쭈뼛 들면서 몸이 오슬오슬 떨려왔다.

 

 감기가 오려나.

 맹맹해진 코를 훌쩍이며 그녀가 가던 길을 재촉했다.

 

 오늘만 지나면 그녀의 평생을 옭아맸던 지긋지긋한 구속도 사라진다. 그 끝을 향해 그녀는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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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송합니다. 사장님 2017 / 6 / 2 2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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