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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는 내가 아니다
작가 : 사이드김
작품등록일 : 2017.6.9

인류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까...고민해 봤습니다..

 
프롤로그
작성일 : 17-06-09 14:30     조회 : 353     추천 : 0     분량 : 5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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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아래로."

  "아래로?"

  “그래 아래로.”

 

 라스까는 지나온 자리마다 남아있을 자신의 흔적을 찾고자 어두운 숲 속에서 뒤를 돌아봤다.

 어둠속으로 흩어질 것 같은 자신의 의식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아 본 풍광들도 대부분 어둠에 묻혔고, 다만 그가 두 달 동안 기어온 들이, 검은 숲의 저편에서 희읍스름하게 빛났다.

 생명이 사라진 들이었다. 폐허의 들이었다. 그가 검은 숲으로 들어오자 절망의 들이 희읍스름한 희망으로 다시 피어났다. 계속 어두워지는 풍광. 계속 깊어지는 절망. 문득, 절망의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의 끝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요?"

  "걱정마라. 있다."

  가네샤의 대답은 평소와 다르게 명확했다.

 

 '복제, 성장 그리고 확장 하여라!'

  "진성이 왜 이렇게 된 것이지요?"

  "흉하냐?"

  "네."

 “정의롭게 행할 바를 행했을 따름이다. 그 뿐이다.”

 

  "후회하세요?"

  "무엇을?"

  "찬다의 신이 된 것을, 그리고 그들로부터 버림받은 것을."

  "아니,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멀리그넌트는 당신을 버렸습니다."

  "찬다와 멀리그넌트는 다르다. 멀리그넌트도 신이 된 것이다. 신은 신을 섬기지 않는다."

  "멀리그넌트는 신이 아닙니다. 그 흉악한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까. 신의 형상이 아닙니다."

  "신이 맞다. 귀신."

 

  메마른 모세혈관 숲은 안전했다. 모세혈관 숲으로 흐르는 가는 동맥도 숲에서 흘러나오는 가는 정맥도 말랐기에, 혈관을 따라 수시로 침범해 오는 면역연합군단도 없었다.

 생이 없기에 안전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안전에 안주하면 그의 생도 죽음의 숲 속에 스며들 것이다. 생(生)이 있고 사(死)가 있는 것이다. 생과 사가 물처럼 흐르는 곳이 세상이다.

  이곳은 사(死)만 있다. 세상이라 할 수 없다.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생이 있는 곳으로.

 

  어느덧 숲의 끝에 다다랐다. 숲의 끝은 다시 넓은 들로 이어졌다. 물론, 들의 끝도 거무스름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기에 다행인지도 모른다. 진성을 다 볼 수 있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멈추고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그 무엇을 빤히 보면서.

 

 오래전, 그러니까 라스까가 가네샤를 처음 보았을 때, 이곳엔 선홍빛 융모가 가득했었다. 핑크빛 아라자가 아치형으로 가지런히 쌓아 만들어진 융모였다.

 융모의 중앙에서는 노란 림프관이 각종 신호전달 물질을 아라자에 전해줬다. 그를 둘러싼 담황색 모세동맥 속에서는 납작한 적혈구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면서 아라자에게 싱싱한 산소를 공급하고, 그들로부터 노폐물을 받아 다시 흑적색 모세정맥으로 들어갔다.

 촘촘한 아라자에 산소를 공급하고자 모세혈관이 얽히고설킨 사이사이에는 보라색 뉴런 가지돌기들이 모세혈관 못지않게 퍼져있었다. 가지돌기에서는 뉴런에서 전달되는 전기신호를 상피세포에 전달하느라 연신 연보랏빛 전류가 파닥거렸었다.

  보랏빛으로 파닥거리던 가지돌기, 담황색과 흑적색이 흐르던 모세혈관과 노란 림프관, 융모를 지탱하는 아라자에서 발하던 선홍빛과 분홍빛들로 가득했던 곳.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색만 있다.

 애초부터 진성에 없었기에 이름이 없던 색. 검정과 흰색의 중간을 회색이라 한다면, 회색과 검은색의 중간 색에 붉은 기운이 여리게 스며든 색을 가네샤는 찬다색이라고 했다. 그가 지금 볼 수 있는 유일한 색은 찬다색이다.

 

  "저 끝은 어디일까요?"

  "저 끝은 없다. 다만, 돌고 돌 뿐이지."

  "돌고 돈다고요?"

  "스텀구역은 폐쇄형공간이다. 저 끝이 이곳이라는 뜻이다."

 

  라스까는 움직임을 몰랐었다. 위액을 만들라 하면 위액을 만들고, 위산에 죽은 아라자의 자리를 채우고자 복제하라면 복제하다가 내부의 아토포시스 프로그램에 의해 사라질 운명으로 태어났었다.

 물론, 누구의 지시인지 궁금증도 없었다. 그때는 아라자가 진성인 줄 미처 몰랐었고, 그가 아라자인지도 인식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가네샤는 불멸의 텔로머라아제를 주었다.

 

 그는 불멸과 함께 자아를 인식하게 되었다. 자아를 인식하자 신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쩌면 자아를 느끼자 그가 신을 찾아 갔을 수도 있다. 하여튼 그때 이후부터 그의 주변엔 항상 신이 얼쩡거렸다.

 60조의 아라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진성이란 세계 속에서 초라하고 왜소한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당연히 두려움을 잉태했고,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면 누군가 의지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지의 대상은 초라하건, 나약하건, 괴팍하건, 비열하건 중요하지 않았다.

 존재를 인식하면서부터 두려움만 생긴 건 물론 아니다. 그에게 희열도 주었다.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희열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느꼈던 포만감의 기쁨과는 다른, 싱싱한 위산을 많이 만들어낸 후의 만족감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죽음도 초월하는 희열이었다.

  몸을 꽉 조이면 몸속 원형질이 전단(前端)에 있는 위족으로 모여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고, 빈 껍질만 남은 몸체는 무게중심을 따라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전진 했다.

 전단의 위족을 팽창 시킬 때 온몸을 휘감던 희열. 그 희열이 그에게 움직임을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상대의 몸을 뚫고 지나가도, 상대가 자신의 몸을 뚫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 희열이었다. 다스릴 수 없는 희열이었다.

  가네샤가 그의 몸속에 텔로머라아제를 주입했을 때, 진성은 싱싱한 생명들로 가득했었다. 영양분의 충분한 섭취로 그의 몸 속 원형질은 풍부했었다. 그때 가네샤에게 안기면 포근했었다.

 가네샤에 안길 때마다 그의 꼬리에서 머리 쪽으로 흐르며 꿈틀거리는 원형질의 야릇한 느낌에, 그도 전단으로 원형질을 모아 위족을 부풀렸다. 매끈하게 통통해진 위족을 서로 감으며 더듬었다. 터질 듯이 아찔하게 부풀린 위족은 팽팽한 희열을 주었다.

 그는 위족에 원형질을 채우고자 진성의 에너지를 거침없이 섭취해서 성장했고, 극한의 희열을 느끼고자 무차별적으로 몸을 팽창하다가, 희열의 절정에 다다른 어느 순간, 의식이 무의식에 완전히 잠식된 순간,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 부풀대로 부푼 위족이 절단되었다.

 그때 가네샤는 그에게 축복의 신호를 흩뿌리며 기뻐했다. 복제의 첫 경험이었다. 그때부터 극한의 희열을 느끼고자 무차별 적인 복제가 이루어졌고, 복제하려면 충분한 원형질이 필요했다. 원형질을 섭취하고자 진성을 지탱하는 아라자의 에너지를 강탈해야만 했으며, 무차별적으로 복제된 찬다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라자들의 터전을 침범해야만 했다.

 

 그들은 기어갔다. 아래로. 연분홍, 선홍빛, 보랏빛을 찾아서.

 

  라스까는 제2찬다요새가 있던 곳을 둘러보았다. 찬다들이 겹겹이 외호했던 요새는 골격만 남아 흉했고, 요새로 끌어들인 혈관줄기는 요새의 허물어진 골격 이곳저곳에 거무스름하게 메말라 있었다.

 부서진 요새 중앙에는 호중구 사체가 굳어 만들어진 거대한 봉우리가 조붓이 앉았다. 죽음이 쌓여 형성된 봉우리다. 봉우리의 정상은 희읍스름한 위산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넘을 수 있겠어요?"

  "여기에 그냥 있을 순 없잖아."

 

 그들은 봉우리를 기어올랐다. 멀리그넌트는 한 마리도 없다. 모두 진성의 조직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다만, 면연연합군단과 TS-1의 공격 때 멀리그넌트로 변하지 못하고 죽은 찬다들의 시체만 너부러져 있었다.

 촉촉하게 미끌미끌하던 그들의 위족은 꺼칠꺼칠하게 말랐다.

  위산의 연기 속으로 들어갔다. 흐렸지만 독했다. 가네샤의 몸이 굳어지는 듯 느려졌다. 그는 가네샤에게 위족을 내밀었다. 가네샤는 그의 위족을 살며시 감았다. 가벼워진 가네샤의 몸은 쉽게 끌려 올라왔다.

  위산 연기 층은 두텁지 않았다. 그곳을 빠져나오자 가네샤가 위족을 풀었다. 아직 썩지 않은 웅덩이가 있었다. 라스까는 웅덩이에 위족을 대어봤다.

 맛이 전혀 없는 물이다. 몸에 이로울 것도 그렇다고 해로울 것도 없는 그냥 물이었다. 섭취해도 무방할 듯했다. 지금 가네샤의 몸엔 무엇이든 집어넣어야 한다.

 몸의 껍질끼리 붙은 지 한참이 지났다. 가네샤의 위족을 끌어 물에 대어 주었다. 가네샤는 오랫동안 물을 섭취했다. 가네샤는 기존 형태로 찾아갔다. 가네샤가 물을 섭취하자 밀착되었던 돌기와 몸체의 경계가 오목하게 다시 드러났다.

 

  그들은 허물어진 제2찬다요새 봉우리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스텀구역에 가득한 찬다색 봉우리들이 겹쳐지면서 거무스름하게 사라졌다. 봉우리 위에서 검은 물줄기를 굽어보았다.

  멀지만 선명한 검은 물줄기다. 군데군데 막히지 않은 위피트에서는 끝없이 검은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조직 깊숙이에서 솟아오른 죽은 물줄기일 것이다. 진성은 깊숙이 죽어가고 있었다.

 

  거대한 스텀구역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직도 그 순간을 라스까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텀구역을 사라지게 한 밝은 빛 알갱이들.

 

  그때 그가 맨 먼저 느낀 것은 뉴런의 행동이었다. 갑자기 뉴런의 가지돌기에서 끊임없이 반짝거리던 보랏빛이 흐릿해지더니, 주기적으로 꿈틀거리던 스텀구역이 멈췄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라스까가 멍하니 있자, 가네샤는 라스까의 위족을 휘감고, 동맥 모세혈관으로 들어갔었다. 혈류를 따라 모동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은 모세혈관을 나왔다.

 위피트의 점막층을 뚫고 나온 것이다. 스텀구역의 표피는 무엇이든지 녹일 수 있는 위산이 고여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위피트의 아라자들도 모두 멈추어 위산을 뿜어내지 않았기에 위산이 없었다.

  그때 가네샤는 라스까에서 진성이 열릴 것이고, 스텀구역이 사라진다고 했었다. 라스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진성이 열리다니, 세상이 열리다니, 세상이 닫혀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 거대한 스텀구역은 또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아니 누가 이 거대한 스텀구역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 라스까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지켜보는 것이었다.

  가네샤의 갑작스런 행동에 혼란한 의식을 채 가누지도 못하고 있는데, 거대한 빛살이 스며들었다. 진성을 수놓았던 알록달록한 색이 아닌 하얀 반투명 빛살이었다.

 선명한 빛살에서 흩어진 빛 알갱이들이 라스까의 곁으로 다가오자 그는 가네샤의 뒤로 숨었었다. 하얀 빛 알갱이들이 그의 돌기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의 모든 위족이 오므라들었다. 그는 빛에 취해 의식이 점차 희미해졌다.

  빛은 그의 의식을 빨아들였다. 그는 빛이 시키는 대로 그의 의식을 빛에게 맡겼었다. 황홀함이 그의 무의식속에서 일렁였다. 빛 속엔 아무것도 흐르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다만 빛만 있었다. 빛은 그의 의식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빛의 폭포를 지나자 빛의 우주가 펼쳐진 곳에 도달했다. 그는 빛의 중심을 향해 위족을 펼쳤다. 하얗게 흩어지는 듯하다가, 갑자기 모든 빛이 사라졌다.

  그때만 해도 그 빛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물론 지금도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네샤가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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