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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태백이 밝은 달아
작가 : 은은한
작품등록일 : 2017.6.8

지방도시 대전, 27살 백수청년 ‘정버들’이 산다. 그는 여태껏 5번의 사랑을 했지만, 가난한 흙수저의 삶 때문에 번번이 이별한다. 그리고 오늘, 여섯 번째 사랑을 떠나보내고 노점의 노인에게서 안경 하나를 구매한다. 언뜻 보아도 매우 오래된 촌스러운 안경, 그리고 그 안경을 쓴 자에게만 보이는 중년의 신사(귀신), 그 신사는 다름 아닌 한국이 섬기는 글로벌 대기업의 창업주 ‘이태백(1947년 실종)’이다. ‘이태백’은 ‘정버들’에게 슬기로운 지혜와 충분한 자산을 건네며 자신이 못다 이룬 꿈과 사랑을 해보라고 제안하는데... / (매주 토요일 연재)

 
3화. 만남과 이별
작성일 : 17-06-08 17:20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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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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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궁의 정원.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에 월령과 일령이 서 있다.

 

 그들의 이마 위로, 그러니까 천궁 위엔 달과 태양이 두둥실 떠 있어 그로부터 영엄한 빛깔이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세상을 주관하는 정령의 기운.

 

 그 둘이 내려다보는 세상은 낮빛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낮이 드리워진 풍경을 보는 것일 텐데,

 

 몇몇 사람들의 바쁜 일상이 펼쳐지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월령과 일령. 마치 감시하는 듯 지켜보는 듯 요리조리 뜯어본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과 말을 빛의 속도로 보고서에 담아내는데, 일령은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장문의 글을 남기고 있지만, 월령은 이상 없음, 이라고 간략히 적고 마무리 짓는다.

 

 “깐깐해, 깐깐해, 참 징글맞게 깐깐하다.”

 

 “깐깐한 게 아니라 꼼꼼한 거겠죠. 월령 오빠가 대충 살펴보니까, 자꾸만 문제가 발생하는 거 아니에요?”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게 상식이거늘, 일령의 두 눈은 보고서에 파묻혀 있다. 그게 못마땅한 월령.

 

 “쯧쯧, 그럼 인간이 다 문제적이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인가? 어떻게 맨날 반듯하게 일만 하며 살아. 밤 풍경 보며 드라이브도 하고, 야경 보며 데이트도 하고, 술도 한잔 마시고, 그러다가 뭐 잠도 자고 하는 거지. 가끔 못된 짓도 하게 되고!”

 

 기분 나쁜지 툭 펜을 내려놓는 일령. 그리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려고 입술을 떼는데.

 

 그 틈을 놓칠세라, 월령은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하늘을 왼쪽으로 쓱 밀어낸다. 순식간에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하늘.

 

 “쫌!!!!”

 

 “그만 화내고 일하자. 이제 밤 풍경도 살펴봐야지.”

 

 그들이 바라보는 이승의 풍경에서 보이는 것은 정버들의 누추한 방. 화면엔 정버들이 나타나더니 이승의 모든 공포와 소름을 온 얼굴에 담아낸 듯 두 눈과 입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른다.

 

 화들짝 놀라고 마는 월령과 일령.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정버들의 표정이 너무나 괴기스럽다.

 

 “일령아, 쟤 왜 저러는 거냐?!”

 

 “밤 풍경을 왜 나한테 물어요, 오빠가 살펴봤어야지.”

 

 괴기한 표정이 보기 싫은지, 월령은 손가락을 내밀어 화면을 왼쪽으로 튼다.

 

 침대에 앉아 있는 이태백이 보인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정버들을 태연하게 무시하며 뭔가 골똘히 만지고 있다. 자세히 보니 티브이 리모컨.

 

 신기한 듯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는, 이태백 또한 이승의 모든 공포와 소름을 온 얼굴에 담아내며 소리를 지른다.

 

 덩달아 놀라는 월령과 일령. 가만 보니, 티브이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아마도 동물 다큐를 보다가 정말 호랑이가 나타난 줄 알고 놀란 것이리라.

 

 체통 없이 서로 부둥켜안은 게 머쓱했는지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월령과 일령.

 

 월령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꺼낸다.

 

 “놀랄 수밖에. 한 놈은 70년이 흘러버린 이승의 풍경 땜에, 한 녀석은 70년 전 죽어버린 사람을 보았으니 어찌 제정신일꼬.”

 

 “그나저나, 저 백수녀석에게 안경을 내려준 거 천령님 맞죠?”

 

 일령의 질문에 월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타이르듯 얘기한다.

 

 “그러니 작작 저주를 내리지 그랬냐?……. 나는 정령들도 가로막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고 본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국 사랑을 배신했던 놈입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면서까지. 나는 원칙대로 할 테니, 오빠가 은혜로 준 밤 이레 후엔 꼭 거둬가요.”

 

 “내가 아무리 밤을 거둬가도 우리조차 거둘 수 없는 저 안경이 있는 한, 이태백은 귀신으로라도 이승에 머물게 될 거야. 안경 너머 저를 봐주는 저 백수녀석이 있으니까.”

 

 일령은 생각한다. 이태백 네가 아주 어릴 적, 해의 정령인 나를 선택해줄 때 참 기특했다고.

 

 그런데 왜 운명을 거슬러 달빛으로 걸어 들어가다 죽임을 당했느냐고. 아니, 그 죽음은 네가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령아, 밤 풍경을 보니 춥다. 어서 들어가자.”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오랜만에 밤 풍경 좀 보다 들어갈게요.”

 

 일부러 피해주듯 월령이 들어가자, 일령은 물끄러미 이태백을 바라본다.

 

 

 

 ***

 

 

 

 이태백, 티브이 화면 속에 내리는 함박눈을 보고 있다. 호랑이에 놀라 이것저것 버튼을 눌렀더니, 눈꽃을 반기는 아이의 순박한 웃음이 펼쳐진다.

 

 절로 미소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에 이태백의 얼굴에도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가슴속에 묻어둔 자신의 과거가 떠오르는데.

 

 지금도 똑똑히 기억납니다. 1905년 11월 16일, 을사늑약이 이뤄지기 하루 전. 아버지께서는 급히 조정에 가야 한다며 갓을 쓰더니, 나를 안아주셨지요. 내 나이 여섯이었습니다.

 

 그날 아침은 햇살이 어찌나 눈 부시던지, 밤새 쌓인 눈이 수없이 빛나더군요.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낮에도 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순간 다짐했습니다. 낮처럼 밝고 환하게 살겠노라고.

 

 동구 밖으로 아버지를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너의 말을 들었다. 네 가슴이 낮이 좋다는구나, 맞느냐?”

 

 예, 맞사옵니다, 하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말을 건 신비한 정령은 어른들도 잊고말았던 숨겨진 세상의 비밀을 들려주었습니다.

 

 “잘 들어라, 세상에는 세 분의 정령이 있단다. 하늘의 정령이신 천령. 달의 정령이신 월령, 그리고 지금 네게 말하는 나는 해의 정령 일령이란다. 그리고 모든 이가 너처럼 아주 작고 여릴 때, 월령의 자식이 될 것인지 일령의 자식이 될 것인지 사람은 선택하게 된다. 너는 오늘, 나 일령을 선택했다. 그러니 나는 너의 걸음걸음 따뜻한 해를 비추며 보살필 것이다.”

 

 “일령님, 정말이십니까? 그럼 저는 낮처럼 밝고 환하게 살게 되는 것이옵니까?”

 

 “그래, 너는 낮처럼 환한 사람이 될 거고, 그렇게 살게 될 거다. 나 일령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훗날 죽음이 찾아왔을 때도 해의 기운 아래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명심하거라, 너의 삶과 죽음은 나의 것이니 밤을 찾지 말아라. 밤의 자식도 사랑하면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알겠사옵니다…….”

 

 “그런데 왜 얼굴이 어두운 게냐?”

 

 “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낮과 밤은 따로 있지 않고 한 몸이라고 했사옵니다. 그래서 구별은 하되,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의미가 아직은 뭔지 모르겠지만, 왠지 슬픈 생각이 드옵니다.”

 

 나는 고개를 떨궜습니다. 일령을 선택했고 그의 자식으로 허락됐으나 외로운 맘이 드는 게 어찌할 줄 모르겠더군요.

 

 그런 나에게 일령님은 환한 햇빛을 내려주었습니다. 쌓인 눈이 찬란하게 빛나더니 낮별이 더욱 무수히 찾아와 나의 온몸을 따뜻이 감싸주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아비를 두었구나, 내 너에게 한 말은 밤을 미워하라는 게 아니다. 그저 순리대로 살면 일령의 자식으로 살게 되고, 죽게 되는 것. 그리고 너와 같은 일령의 자식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것. 애쓰지 않아도 절로 그리 되는 게 너의 운명이다. 그리고 이승을 사는 모든 이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외람되오나, 한 가지 질문이 있사옵니다. 만약 제가 밤의 자식을 사랑한다면 어찌 돼 옵니까?”

 

 “어차피 때 묻은 나이가 되면 나 일령과의 대화를 모두 잊게 될 것. 그러니 답하노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두 사람은 낮의 자식들의 모든 업보와 밤의 자식들의 모든 업보를 각각 짊어지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니라. 허나 걱정하지 마라. 사람은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존재. 네 영혼은 낮의 자식을 찾게 될 것이다.”

 

 그 후로 일령님은 나를 찾지 않았습니다. 아니, 찾지 않아도 낮이나 밤이나 항상 곁에 있는 듯 보살핌을 받는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엔 시린 마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일령님을 만난 그 날, 쌓였던 눈 위로 낮별이 따뜻하게 반짝였으나 결국 내가 딛고 있는 자리는 차가운 눈이었다는 사실처럼요.

 

 그 불안감이, 일령님을 만난 기억을 지워내지 못하게 하더군요. 때 묻은 나이가 되어 가는데도 말이죠.

 

 그렇습니다, 나 이태백은 18살에 처음 사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일년 전 연순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18살의 첫사랑 역시 불행한 죽음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밤의 자식을 사랑했다는 것을요. 그리고 낮과 밤의 업보 중 밤의 업보가 더 커서 그녀가 먼저 죽었다는 것을요. 정말 그녀는 밤의 자식이었을까요.

 

 나도 곧 죽겠구나, 죽음을 기다렸지만 나의 생은 참으로 길고 질겼습니다. 아마도 독립운동을 하며 낮의 자식들이 짊어진 업보를 조금씩 덜어냈기에 그리됐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일본 사람들도 정령의 자식들인 만큼 그들을 죽인 것이 또 다들 업보가 되어 더 잔인한 죽음을 주려고 살려뒀던 것도 같습니다.

 

 어찌됐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밤의 자식일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인으로서 독립운동을 그만두고,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업보를 덜어내는 것도 쌓는 것도 멈춘다면 죽음이 가까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더는 밤의 자식을 사랑하는 순간도 맞이하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꾹 참고 참았건만,

 차마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녀를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이름만 불러도 사랑하고 싶고

 그리워지고 또 외로워지는 사람,

 이.연.순.

 

 그녀의 조부께서는 이을 ‘연’에 순할 ‘순’을 더하여,

 끊임없이 순리에 맞게 살아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밤의 자식이니 밤의 자식을 만나고

 낮의 자식인 이태백을 만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1947년 3월 5일 밤,

 경복궁 경회루에서 연순이의 오빠, 그의 총을 맞기 직전, 저는 그녀가 준 안경을 차마 내려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선의 안경사였고,

 기막힌 손재주에 사랑까지 더하여

 그 안경 너머로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봐달라고 입맞춤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안경엔,

 그녀의 웃음이 아닌 나의 눈물이 맺혔습니다.

 이슬처럼 영롱하게, 태양이 뜨고 달이 떠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그녀를 향한 그리움의 눈물이…….

 

 

 

 ***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태백과 정버들.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이태백은, 너 뭐 하는 거냐?

 정버들은, 귀신이라며? 너랑 어떻게 자? 그런 마음으로.

 

 서서히 태양이 뜨고 창문으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자, 정버들, 잽싸게 안경을 벗는다.

 

 그리고 또다시 오 마이 갓! 지저스 크라이스트!

 

 정말 낮귀신이 맞네!

 

 결국 정신을 잃고 마는데.

 

 “일어나, 정신 멀쩡한 거 다 알아~”

 

 이태백, 발가락으로 까닥까닥 정버들의 배를 찌른다. 그런데도 일어나지 않자 명치를 지나 목젖을 지나 코에 갖다 대는데.

 

 “아씨, 뭔 귀신이 발 냄새가 나!”

 

 벌떡 일어나 안경을 쓰고 투정을 부리는 정버들. 그러나 아직 무서운지 베개를 한 손에 들고 있다. 언제든 다가오면 돌격할 태세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는 이태백.

 

 두 사람, 햇볕 쬐는 아침 길을 나선다. 뒤에서 걷는 정버들은 여전히 베개를 들고 있다. 오른손은 가로로 포개어 십자가를 만들면서.

 

 “어딜 가는 거예요? 낮귀신…님……”

 

 “지금부터 잘 들어, 나는 앞으로 이레 동안만 낮엔 귀신으로 밤엔 사람으로 살 수 있어. 선행을 쌓지 않으면 낮밤 모두 귀신을 살다가 다시 돌아가게 될 거야.”

 

 “뭐로요? 지옥으로?”

 

 “그래, 지옥 같은 곳으로.”

 

 대답하면서 스쳤던 것은, 너무나도 어두웠던 밤이다. 잠을 자듯 70년을 살아있었으나 계속된 악몽만 되풀이되던 꿈과 꿈속의 지옥.

 

 정령들의 대화 소리로 짐작해보건대,

 이태백 자신은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빛나는 정령의 이불을 덮고 있었고, 전생의 고통을 영(靈)에서 떨치지 못한 채 70년을 보내야 했다.

 

 그 긴 시간에서 알게 된 사실은,

 연순이는 월령이 보살피는 밤의 자식이라는 것.

 

 일령이 보살피는 낮은 자식인 이태백과 사랑하게 되어, 모든 낮과 밤의 자식이 짊어진 업보를 각각 받게 되어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것.

 

 그러나 연순이는 밤 아래 달빛에서 죽었기에 순리대로 다시 태어났고, 이태백은 연순이를 따라 밤 아래 달빛에서 죽었기에 일령의 보살핌을 벗어났다는 죄로 화를 사게 됐다는 것.

 

 천령과 월령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남은 생을 누릴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거고 오로지 귀신으로 지내야 했을 터.

 

 밤만이라도 인간으로 지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

 

 “경자년(庚子年 1900) 출(出), 정해년(丁亥年 1947) 사(死) 이태백! 죄가 엄중하나 살(殺)을 당하여 명(命)을 다 누리지 못했나니, 월령의 의견대로 70년 뒤 남은 생(生)을 누릴 기회를 주노라! 다만, 일령의 의견에 따라 너를 보는 자로 인해 이레 동안은 낮엔 귀(鬼)로, 밤에는 인(人)으로 살게 될 것이니 선을 베풀어 남은 생(生)을 누릴 기회를 스스로 찾을지어다!”

 

 하지만, 이태백은 여전히 궁금하다.

 

 70년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연순이가 준 안경이 남아있고, 왜 하필 이 백수녀석이 갖게 되었는지. 왜 나는 저 안경을 갖지 못하는지.

 

 우리의 빛나던 반지는 어디로 갔고,

 사랑하는 그녀는 어디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가.

 

 선을 베풀어 남을 생(生)을 누릴 기회를 잡는다면

 과연,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정버들, 너 소원이 뭐냐?”

 

 “왜요? 아침부터 사람이라도 죽여주게요? 귀신이 할 수 있는 게 해코지밖에 더 있어요?”

 

 “들어줄 때 말해, 아주 착하고 따뜻해서 시린 겨울도 사그러들만한 거로.”

 

 소원을 들어주는 귀신이라. 정버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는 어릴 적 저 구름에 숨겨뒀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오래가지 않아 금세 떠오른 말은 가난, 이라는 두 글자.

 

 “떨치고 싶은 것부터 말하면 가난이에요. 우리 집 정말로 가난했거든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더 가난해졌고, 가난해서 이렇게 살고 있고.”

 

 태연하듯 말하지만 눈물이 배어있는 고백에, 이태백은 걸음을 멈추고 정버들을 돌아본다. 쭉 훑어보는데.

 

 그리고 지나가는 또래의 청년들을 본다. 요즘 유행하는 패션은 잘 모르지만, 대강 보아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얼굴이 잘생기지 않았다면 이놈 정말 불쌍해질 뻔 했다.

 

 “그래서? 떨치고 싶은 건 가난이고, 갖고 싶은 건?”

 

 “당연히 부자의 삶이죠. 그런데 나만 배부른 거 말고 남들도 배불러지는 따뜻한 부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지 하늘을 바라보며 베개를 꼭 껴안고 해맑게 웃는 정버들. 그래, 내가 그런 꿈을 꿨었지,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저 하나 건사하지 못해 취준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진심이냐?”

 

 “귀신이니까 진심인지 아닌지 알 거 아니에요?”

 

 “그래, 눈빛을 보니까 진심인 것 같다. 내가 그 꿈 이뤄주리?”

 

 “어떻게요? 뭐 돈이라도 주게요?”

 

 “그럼 너무 쉽지, 네가 하는 것 봐서 조금씩 조금씩 나눠줄게.”

 

 “아, 이 양반, 날 놀리네!”

 

 “놀리는 거 아닌데.”

 

 “그럼 집에서 재워주고 간호해주고 라면 준 정성은 얼마예요?”

 

 “그건 나중에 계산하고, 네가 내 안경을 찾아준 덕분에 돌아왔으니까 그 값 먼저 치르지. 좋은 집 하나 구해주면 적당할 것 같은데.”

 

 순간 베개를 떨어뜨리는 정버들. 감격에 겨워, 놀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 거짓말이 너무 웃겨서다.

 

 베개에 누워서 신나게 웃고 마는데.

 

 그때 지나가던 람보르기니가 멈추더니 차창으로 정버들의 여섯 번째 전 여친이 비웃는다. 옆자리에 앉은 근육이 부리부리한 새 남친도 함께 씨익.

 

 “오빠, 아주 미쳤구나. 길바닥에서 혼자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리고 취직 공부해야지. 그래, 그래, 아무리 노력한들 우리 허니 발끝이나 따라가겠어?”

 

 어쩔 줄 모르고 쭈뼛쭈뼛 일어서는 정버들이 참 보기 안쓰럽다. 그래서 이태백, 낮귀신답게 와이퍼라도 막 움직이고 부러뜨려서 놀래주려 할 참인데,

 

 저편에서 새의 날갯짓처럼 촉촉한 액체가 날아든다. 까뭇하고 알알이 얼음이 섞였는데, 이게 뭐였더라.

 

 아뿔싸! 전 여친의 얼굴을 적시고 마는데.

 

 “어머, 정말 미안해요. 발끝만 보고 걷다가 모르고 쏟았네요. 괜찮으세요?”

 

 봄꽃을 담은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나타난 한 여자.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누가 보아도 거짓이다.

 

 여자를 바라보는 이태백, 이 여자 뭐지?

 

 그러나 정버들의 마음은, 정말 예쁘다…….

 

 아직은 쌀쌀한 이른 봄 3월,

 어디선가 아름다운 꽃씨가 날아들어 거리를 환하게 수놓는다.

 

 정버들은 생각한다.

 

 찬란하다, 찬란하다, 당신을 만난 이 아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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