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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실.
장례식장은 아직 한산했다.
출입구에 환히 켜진 불빛 때문에 안이 더 휘휘했다.
차라리 불이라도 꺼졌으면…
수의 어머니는 영정사진을 부둥켜안은 채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고.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떡해. 아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애써 뒤돌아 눈물을 감추시는 아버지.
“이렇게 가면 어떡하라고. 나 죽이고 가라. 나 죽이고 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던 김도는 그런 자신이 죄스러워 숨고만 싶었다.
미리 알지 못한 죄…
붙잡지 못한 죄…
‘미안하다. 수야…’
허탈한 마음은 눈물로도 감출 수 없었다.
상주로 서있는 수의 남동생.
‘신이시여. 저 아이가 벌써 죽음을 알아야 하나요.’
김도는 그런 남동생을 위로하며 가지런히 놓인 향을 피웠다.
영정사진 속의 수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도.”
이미 온 동기들은 멀리서 조용히 김도를 불렀다.
다들 피로한 얼굴이었다.
“……”
서로 한참 동안 아무 말없이 바닥만 바라봤다.
분위기 메이커였던 수가 없어서 더 쓸쓸한 자리였다.
“상 치를 때까지 출근하지 말라고 연락 왔어.”
막내 기수지만 회사에서 특별히 해준 배려였다.
“잠깐 나 좀 보자.”
김도는 평소 수와 친했던 여자 동기를 밖으로 불러냈다.
“사인이 뭐래?”
“……”
동기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뭔데.”
“수면제를 먹었나 봐. 좀 많이…”
“왜?”
“……”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아니 그게…”
동기는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말해봐. 뭔데.”
“근데 그게 맞는지는 모르는데…”
동기는 곤란한 표정으로 자꾸 뜸을 들였다.
“말해봐. 뭔데.”
“사실 전부터 수한테 집적대던 놈이 있었거든…”
“누구?”
“사장 아들…”
“그 미친놈?”
경영 수업을 받는 사장 아들은 이미 부서들마다 망나니로 소문이 나 있었다.
“매일 치근덕댔나 봐.”
“그런다고 죽어?”
“그게 좀 심했나 봐. 나도 속 사정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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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오던 김도는 영정사진 속의 수를 넌지시 바라봤다.
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동기들은 슬픔을 달래려 서로 눈치만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소한 이야기 하나하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야. 야. 왔다 왔어.”
여자 동기는 도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사장 아들이었다.
같이 일은 안 했지만 몇 번 식당에서 본 탓에 낯설지 않았다.
‘재수 없는 놈.’
사장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향을 피우고 상주와 인사를 했다.
같이 온 사람들과 턱하니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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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동기들은 이런저런 추억들을 꺼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중심엔 수가 있었다.
“나 화장실 좀.”
이야기를 듣던 김도는 화장실을 가려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 안에는 낯익은 뒷모습이 소변기 앞에 선 채 볼일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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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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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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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서있었다.
‘수!’
김도는 살아 있는 수의 모습에 속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사장 아들은 그런 수를 못 봤는지 아무렇지 않게 계속 볼 일을 봤다.
화장실 입구에서 발을 떼지 못하던 찰나.
사장 아들은 볼 일을 마치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곧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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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입에서도…
눈에서도…
수는 그런 그의 뒤에 서서 거울만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는 곧 피를 콸콸 쏟아내며 자리에 쓰러졌다.
“저기요!”
놀란 김도는 쓰러진 사장 아들에게 황급히 달려갔다.
수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계속 거울만 보고 있었다.
김도는 서둘러 사람을 불렀다.
“저기요!”
사장 아들은 곧 앰뷸런스로 옮겨졌고.
김도는 서둘러 화장실로 다시 뛰어왔다.
화장실에서 봤던 수의 모습이 눈앞에 너무나 선명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검은 물체들도…
다시 화장실에 갔을 땐 얼룩진 핏자국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헛것을 봤다고 하기엔 너무 선명한 것이었다.
‘하아. 내가 점점 미쳐가는구나.’
김도에게 요 며칠은 영문 모를 일들의 연속이었다.
‘도야. 집에 가서 좀 쉬다 와.’
동기들은 돌아가며 자리를 지키기로 했고 도는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장례식장에서의 한바탕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21층.
김도는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현관문을 열었다.
안에선 TV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끄고 나왔나.’
문을 열고 들어간 김도는 그 자리에 서서 얼은 채 미동도 할 수 없었다.
TV 앞 소파에는 수가 TV를 보고 있었다.
“너…”
“왔어?”
수는 싱긋 웃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놀라 말문이 막힌 김도를 향해 수가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갈 수 없어.”
“뭐?”
“나는 갈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김도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널 도와야 되거든.”
수의 말에 흠칫 놀란 김도는 겨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너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 주변엔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워졌다.
“넌 누구냐!”
김도는 수에게 호통 치 듯 이야기했다.
“난 사령관 유려다.”
“유려?”
어느덧 수 뒤로는 부하로 보이는 악령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무저갱을 더 이상 못 본 척할 수 없지.”
수는 결의에 찬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저갱!?”
“전사들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그것은 전에 여왕에게 들은 말과 같은 것이었다.
딩동.
이야기 중에 현관 벨이 울렸다.
딩동.
벨 소리가 나자 수는 서둘러 모습을 감췄다.
“누구세요?!”
김도는 인터폰을 들었다.
인터폰 화면엔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김도는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인터폰을 내려놨다.
딩동.
김도는 막 바로 인터폰을 들어 화면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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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소스라친 김도는 들고 있던 인터폰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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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엔 수가.
아니.
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유려가 웃으며 서있었다.
놀란 김도는 급히 고개를 돌려 소파를 봤다.
역시 유려가 앉아 있었다.
다시 인터폰 화면을 봤다.
여전히 유려가 밖에 서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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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 너넨 대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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