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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0화. Prologue
작성일 : 17-06-06 09:34     조회 : 570     추천 : 4     분량 :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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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그 날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소리가 어둠과 함께 섞여진 것만 같은 밤, 그 어느 것도 귓가를 간지럽히지 않아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나의 뒤척임은 적막을 찢기 위한 몸부림과 같았고, 힘껏 눈을 감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눈에 힘을 풀고, 깊은숨을 쉬어보지만, 심장은 반항하듯 더욱 크게 꿈틀거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밤을 쓸모없이 보내버릴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대신 '아무 상상의 공간'을 활짝 펼쳤다. 그곳에 들어가자 괴상한 형태의 친구들이 와르르 나타났다. 모두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쓰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아! 또 놀러 왔구나! 넌 늘 이 시간에 놀러 오더라?"

 닭 볏이 달린 펭귄친구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응, 오늘도 잠이 안 와. 그래서 또 놀러 왔어."

 펭귄친구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나를 보았다.

 "그래, 잘 왔어, 지금아!"

 펭귄친구는 손으로 모자를 톡톡 치더니 자연스레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가?"

 펭귄친구는 말없이 총총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타박타박 따라갔다. 다른 친구들은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꺼림칙하여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앞을 보니 펭귄친구는 가만히 멈춰 서있었다. 그리고 펭귄친구 앞에 커다란 장난감 열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펭귄친구는 고개를 돌리더니 열차를 팔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이걸 타고 놀자."

 펭귄친구는 망설임 없이 열차에 탔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펭귄친구 옆에 앉았다. 우리는 마치 나무 상자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 인형이 된 듯했다. 하얀 바닥 위에 놓여있던 열차는 레일도 없이 혼자 '포~포~' 소리를 내며 하얀 증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서서히 열차가 빨라지니 내가 입은 잠옷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소리를 냈다. 소리가 모여 내 마음을 더 들뜨게 했고, 펭귄친구도 신이 났는지 양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나! 이걸...탔지만 늘....신나!"

 "뭐라고?"

 열차는 점점 더 빨라지면서 즐거운 소리들은 점점 무서운 굉음으로 변해갔다. 즐거움은 점점 공포로 변해서, 나는 바지에 오줌을 쌀 것만 같았다. 펭귄친구 역시 열차가 너무 빨라서 그런 건지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펭귄친구에게 크게 소리쳤다.

 "나 무서워! 그만 멈춰줘!"

 "...렸어."

 "뭐라고? 크게 말해줘! 안 들려!"

 펭귄친구는 갑자기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펭귄친구의 얼굴이 소용돌이처럼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변기 물에 쓸려 내리듯 주홍빛의 눈, 검은 코, 날카로운 부리가 소용돌이 중심에 삼켜지려 했다. 고깔모자는 흐물흐물 녹아 펭귄친구의 머리에 흘러 내렸고, 부리는 중심에 삼켜지는 와중에도 까딱까딱 움직였다.

 "오...칠년,..다..음...언..."

 그 순간 열차는 경적을 크게 울렸고 나는 다시 앞을 보니 커다란 벽에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

 

 눈이 떠지면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급한 발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엄마가 황급히 내 방문을 열었다.

 "지금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 엄마? 엄마... 아."

 나는 울먹이며 엄마를 부르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듯 감정을 제어했다. 그리고 기억을 정리했다.

 나는 이 사람으로부터 태어났다.

 "지금아, 왜 그래? 악몽이라도 꾼 거야? 말 좀 해봐."

 나는 혼혈아다.

 "응, 좀 무서운 꿈을 꿨어. 이제 괜찮아."

 나는 한국 지구에서 다문화 가정에서 살고 있다.

 "우리 아가,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펭귄친구를 8번 만났고, 엄마를 6번, 아빠를 2번 불렀다.

 "미안해, 다시 잘게."

 그리고 나는 오늘 만으로 4살이 되는 날이다.

 "그래, 우리 아가. 혹여나 잠이 안 오면 안방으로 와."

 엄마는, 엄마라는 사람은 나를 가볍게 안아주고 이마에 입술을 댔다.

 그 날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내 존재가 기억 속에 삼켜진 것만 같은 지금, 그 어느 것도 익숙지 않아 나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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