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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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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전수하
작품등록일 : 20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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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작성일 : 17-06-06 04:16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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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공기는 추운데 날은 꽤 맑았다. 그래도 기분은 썩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를 다시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학년으로 따지면 3학년……하고도 반. 지금까지는 어떻게 학점 관리를 무난하게 잘 했지만 앞으로 취업 준비까지 병행하면서 할 생각을 하니까 아득하기만 했다. 미뤄 왔던 한국사도 봐야 하고, 토익도 만료되기 전에 또 봐야 하는데. 봉사활동 시간도 채워야 하고. 하고 싶은 건 없는데 할 건 산더미였다.

 

 유댕: 너네 개총 와?

 정민이: 아 가기 싫은데

 보람이: 난 아마 갈듯?

 

 새내기 기운을 좀 받아야겠다며 지난주에 신입생 OT에 다녀온 유정이 덕에 신입생들 이야기로 한창 꽃을 피우던 채팅방이 개강총회 소리가 나오자 권태롭게 가라앉았다. 새로울 것도 없고, 기대되는 것도 없고, 술자리마저 시시해진 마당에 개총 갈 의욕이 날 리가. 워낙에 사교적인 유정이야 당연히 가겠지만……나는 개강총회가 싫다. 원래 사람 많은 자리를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처음 살을 빼고 총회에 갔을 때의 기억 때문에 마냥 꺼려지는 감이 있다.

 

 ‘너 설마 연수야? 강연수?’

 ‘헐…….’

 ‘나 진짜 못 알아봤어.’

 

 아는 얼굴 많은 자리에 가서 앉으니 누구세요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던 동기, 선후배들. 그 얼떨떨한 낯이 경악으로 물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충격으로 멍해진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희열이 뱃속을 뜨겁게 달궜었지. 살 빼기 잘했다는 생각과 살이 빠지긴 했구나 하는 확신을 했다. 매일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몸은 늘 보잘 것 없었으니까.

 

 ‘살 대체 어떻게 뺀 거야?’

 ‘인간 승리다, 진짜.’

 ‘너무 예뻐졌다.’

 ‘몇 키로 뺐어?’

 

 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술자리가 나로 인해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무척 낯선 일이었다. 사석, 그것도 술자리에서 그 많은 관심과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리는 그런 순간은 밤에 꿈조차 꾼 적이 없었다. 오묘한 기분이었다. 한없이 부담스럽고 숨고 싶으면서도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에 점점 고양되어 갔다. 뱃속 저 아래에서부터 목젖까지 근질근질한 감각을 견뎌내고 있는데

 

 ‘강연수 드디어 사람 됐네!’

 ‘그러게, 사람 됐어, 아니 여신 됐어.’

 

 선배 하나가 내 등을 두드리며 외친 소리에 머릿속이 일순 하얗게 비워졌다. 온몸의 피가 싹 식는 듯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좋은 반응에 한껏 고무되어 있던 기분이 삽시간에 땅바닥에 처박혔다.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사람이 돼? 드디어?

 드디어 사람이 된 거면, 이전의 나는 뭐였던 거지?

 

 나를 사람으로 안 봤구나. 사람 취급도 안 했었던 거였어. 그래서……. 꽤나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애매하게 불성실하고 불친절했던 선배의 모습들이 눈앞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원래 성격이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동기에게 하는 걸 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이유를 몰랐었는데 그제야 알았다.

 

 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럼 뭐였을까. 짐승? 가축? 뒤통수를 세게 후려맞은 것 같은 것 같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연신 칭찬을 하고 감탄을 했다. 비결을 물었다.

 

 남 앞에 서는 것을 안 좋아하고 워낙 시선 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어디를 가도 나서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조용하게 살아서 존재감이 없는 줄 알았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외모 하나 바뀐 건데, 껍데기 하나 갈아치웠을 뿐인데 겪어보지 못한 관심이 쏟아졌다.

 

 스포트라이트의 한가운데에 선 나는

 

 타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을 어떻게 뺐냐는 둥, 그동안 잘 지냈냐는 둥 친한 사이인 것처럼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며 종내에는 번호까지 따가는 모습이 무섭기까지 했다. 모르던 사이가 아니었다. 몇 년을 알던 사이였다.

 

 승리한 투우사에게 장미를 던지듯 앞다투어 관심을 던지는 그들을 보며 샘처럼 솟아나는 환희와 끝없는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도, 그럼에도……그게 전부였다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을 뿐이었다면 나는 패잔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 난 모르겠어 그때 가봐야 알 거 같아

 

 채팅창에 답장을 쓰고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코트 깃에 얼굴을 묻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

 

 쿵. 문 앞에 양손 가득 들린 걸 내려 놓으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 잠깐 들고 왔다고 어깨며 등이며 욱신욱신하다. 예전에는 뭔가를 드는 게 이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근력 운동 열심히 했는데도 체급이 달라진 탓인지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응?”

 

 팔을 툭툭 두드리다가 문득 문앞 광경이 아침에 나왔을 때와 사뭇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큼지막한 캐리어들, 열려 있는 현관문,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박스들. 옆집 사람이 이사 들어온 모양이었다.

 

 인사를 해야 하나 망설여져서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짐만 있고 사람은 없는 건지 집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헛짓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장 본 것들 정리나 하자고 등을 돌리려는데 인기척이 들려와 걸음을 멈추었다. 집에 있었구나.

 

 “계세요?”

 

 반쯤 열려 있는 문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집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잘 안 들렸나?

 

 “저기…….”

 

 안녕하세요, 하고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문이 쾅 닫혔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 뭐 잘못했나, 혹시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한 건가. 순간 습관처럼 내 자신을 돌아보다가 어쩐지 맥이 빠져 어깨가 축 늘어졌다. 닫힌 대문 앞에서 한참을 못 박인 듯 서 있다가 집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거부 당하는 순간은 언제나 섬뜩하다.

 

 침실로 들어와 이불 속으로 구물구물 기어 들어갔다. 친하게는 아니어도 그냥 잘 지내고 싶었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듯한 기분에 몸이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속이 쓰렸다. 장 봐온 거 정리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눈을 감았다. 시계 초침 소리가 시끄러웠다.

 

 눈을 뜬 건 이튿날이었다. 벨소리에 깼다. 평소에 늘 무음 모드로 해 두는데 폰으로 뭐 인증할 일이 있어서 잠깐 바꿔 놨다가 깜빡했다.

 

 “……여보세요?”

 “어, 연수야. 자고 있었어?”

 

 낯선 목소리에 귀에서 폰을 떼고 액정을 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골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모르는 번호는 원래 안 받는데 잠결에 받았다가 아차 싶었다.

 

 “…….”

 “여보세요? 연수야?”

 “누구세요?”

 “뭐?”

 

 누구냐는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허, 하고 헛웃음을 짓는 소리가 넘어온다. 면식만 있는 애가 아닌가 보다. 골치가 지끈지끈해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너 내 번호 지웠어?”

 “아, 제가 저번에 전화번호부가 날아가가지고…….”

 

 통화 목록에 모르는 전화 번호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변명거리도 다채로워졌다. 사탕 한 개 훔쳐 먹은 것도 차마 거짓말을 못하던 나였다. 이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잘도 한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다. 내 양심이 무뎌진 게 아니라 너네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나 민재잖아. 김민재.”

 “아, 어.”

 

 걔구나. 교양 한 번……아니 두어 번 같이 들었던 동기. 맨날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따라 붙어서 사람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게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와, 너무하네. 어떻게 번호를 지울 수가 있냐.”

 

 애초에 저장한 적도 없는데. 남자애들 이렇게 별 거 아닌 걸로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거 짜증 난다. 어떻게든 대화 이어나가려고. 친구나 동기들한테 하는 걸 볼 때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직접 당해 보니까 알겠다. 처음 당하기 시작했던 무렵이 정확히 내가 22kg을 덜어냈던 시점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웬일이야.”

 “그냥. 너 이번에 복학한다며.”

 “어.”

 “수업 뭐 들어?”

 “그냥 이것저것.”

 

 오전 아홉 시. 몇 시간을 잔 거야, 대체. 언제는 불면증으로 그 고생을 했었는데 이제는 과면증인가. 젖은 수건처럼 눅눅한 몸을 일으켰다. 수화기 너머에서 뭐라뭐라 하는 소리는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 지금 나갈 준비해야 돼서. 나중에 연락 할게.”

 “어? 너 이래 놓고 연락 안 할 거지?”

 “아냐. 끊을게.”

 “번호 꼭 저장해라?”

 

 대답 대신 전화를 끊었다. 예전에는 늘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게 예의라고 배웠고 배려라고 생각했다.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래도 되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똑같이 행동해도 사람에 따라 예의가 있고 없고가 결정 된다는 걸 참 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는 되는대로 굴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선배한테 인사 대충 했다고 한 소리 들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들이 현실이 됐다. 말을 중간에 잘라도, 전화를 멋대로 끊어도, 카톡을 읽고 씹어도 다들 그냥 웃어넘겼다. 그때 느꼈던 절망감은 쉽게 잊어지지 않는다. 그간 믿어 왔던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던 순간. 나는 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한 점 의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믿는 어떤 것도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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