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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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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전수하
작품등록일 : 20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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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작성일 : 17-06-06 04:14     조회 : 341     추천 : 0     분량 : 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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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504호에 입주할 무렵 나는 패잔병이었다.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 스물세 살의 봄, 무작정 서울에 상경해 부동산 업자가 두 번째로 보여준 집을 계약했다. 사실 처음 본 집이랑 그게 그거였지만 생각 없어 보이기 싫어서 수압이 조금 더 셌던 두 번째 집으로 했다. 나는 그만큼이나 무기력했다. 어떤 것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던 2월, 나는 대로변에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피스텔 건물 중 하나에 입주했다. 사실은 계약한 집의 옆집이 좀 더 괜찮아 보였지만 그 집은 이미 계약이 되어 입주자가 곧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동안 옆집 이웃과 꼭 친분을 쌓아 두라는 부모님 잔소리가 머리를 쟁쟁 울렸다. 혼자 두면 뭔 짓을 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러셨겠지만 암만 막역해져도 생면부지의 남인데 내가 뭘 하든 참견이나 하겠나 싶어 진한 회의감을 느꼈다. 하지만 반박할 이유도 없고 그럴 힘도 없어 그러겠다고 했다.

 

 집에 나와 사는 건 이번이 두, 아니 세 번째였다. 처음은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에서, 그 다음 해는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즐거웠다. 지금보다 훨씬 더 철딱서니 없었으니까. 고등학교를 벗어나 생전 처음 맛보는 자유에 정신 없이 들떠 있던 시기에 뭔들 재밌지 않았을까. 자유와 방종의 차이가 뭔지도 몰랐던 때였으니까. 그리고 딱 즐거웠던 만큼 상처 받았다.

 

 “아줌마, 떡 하나만 더 넣어 주시면 안 돼요? 여기 앞으로 자주 올게요.”

 

 톤이 높은 목소리와 눅진한 기름 냄새가 동시에 발목을 잡았다. 탁상 거울을 사러 나왔던 길이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여자애 하나가 홍조 띤 얼굴로 웃으면서 닭강정 봉지를 받아들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어디서 나나 했더니. 닭강정. 매콤한 맛, 달콤한 맛, 반반. 눈이 메뉴판을 훑었다. 양념이 번드르르하게 묻은 강정 사진이 입간판으로 떡하니 서 있다. 물엿 엄청 많이 들어갔겠지. 혓바닥 아래에 고인 침을 삼켰다. 여기 근처에 닭강정 집이 있었구나. 언제 한번 와서 먹어 봐야지. 지켜질 리 없는 다짐을 하고서 걸음을 옮겼다.

 

 튀김 먹어본 지가 얼마나 됐더라.

 

 원형 거울과 사각 거울 사이에서 방황하던 손길이 멎었다. 사실 아까부터 눈 앞에 뭐가 있든 안중에도 없었다. 불과 몇 분 전에 봤던 닭강정 사진이 머릿속에 전단지처럼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목이 타고 뱃속의 내장이 구물구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놀랄 일은 아니다. 살을 빼고난 이후 흔히 겪는 증상이다.

 

 나는 살을 뺐다.

 25kg을 덜어냈다.

 딱 일 년이 걸렸다.

 

 흔한 다이어트 성공자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다이어트 수기에 숱하게 나온 것처럼 안 해 본 게 없었다.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다는 어떤 연예인의 말처럼 안 먹고 무작정 뛰었다. 일 년을 그렇게 살았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면 차라리 죽겠다고 할 정도로 지옥 같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안 들어 본 말이 없어서였다. 뚱뚱하다는 이유 하나로 살면서 참 많은 소리를 들어 봤다. 일일이 나열하다간 지면 하나가 모자란 수준이다. 돼지는 그중 귀엽고 순한 말이었다. 선풍기 아줌마 소리를 들었을 땐 사흘을 제대로 못 먹었다.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학교 선생님께 털어 놓았다가 그런 소리를 듣고도 독하게 맘 못 먹고 살 못 빼는 네 잘못이라는 말을 들었다.

 

 멍청한 건 죄가 아니라는데 뚱뚱한 건 죄였다.

 

 학창시절 내내 공부만 해서 명문대에 보란 듯이 붙어도, 방 청소를 하루도 빼먹지 않아도, 여름이면 목욕을 아침 저녁으로 해도, 반에서 가장 먼저 등교를 해도 나는 언제나 게으르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생물체였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나는 늘 비난 받아 마땅했고 상황과 장소 불문하고 욕을 먹어도 싼 사람이었다. 심심하면 비웃고 걷어차도 되는 존재였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도, 험한 말을 한 적도 없는데……그저 뚱뚱한 채로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턱이 두 개라는 이유로, 눈이 살에 파묻혀서 안 보인다는 이유로, 다리가 무 다리라는 이유로.

 

 “야, 다리 봐.”

 “엉? 어디?.”

 “저기 앞에.”

 

 떨걱! 떨어진 거울이 바닥 위를 굴렀다.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가 순식간에 텅 비워졌다.

 아, 나 뭐하고 있었지. 거울 고르고 있었는데. 안 깨졌나?

 

 “어우, 다리 존나 코끼리네.”

 “무 다리, 무 다리.”

 “와씨, 저 다리를 어떻게 드러내고 다니지.”

 

 분명 저들끼리 쑥덕거린 소리일 텐데도 누군가 귓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너무 잘 들렸다. 귓구멍을 바늘로 쑤시는 것 같았다. 거울을 집으려는데 잘 안 잡혔다. 오한이 들린 것처럼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한테 하는 소린가? 요새 좀 많이 먹었나? 아닌데. 나 오늘 바지 입고 나왔는데.

 

 “저 다리로 돌아다니고 싶나.”

 

 여름이면 빼놓지 않고 들었던 말이라 익숙할 법 한데도 들을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시울이 뜨거워지는 눈을 꼭 감았다 뜨니 몸집이 좀 큰 여자가 내 곁을 지나갔다. 땅바닥에 처박혀 있던 눈길을 돌리자 남자 고등학생 무리가 뒤쪽에서 여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키득대고 있는 게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검은색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살갗을 드러낸 건 얼굴과 손과 목 뿐이었다.

 

 잘못, 누르셨습니다.

 

 무미건조한 안내음이 신경을 긁었다. 쾅! 도어락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이사온 지 이틀이나 됐는데 비밀번호가 손에 익질 않는다. 살을 뺀 지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그딴 소리에 내 얘긴가 하고 있어, 병신 같이. 기껏 살 빼놓고 왜 툭하면 주눅이 들어.

 

 텅, 텅, 텅.

 

 몸에 둘렀던 것들과 손에 들린 것들 전부 내던지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개같은 새끼들. 무 다리? 그러는 지들은 강판에 간 무 같이 생겨가지고, 멸치 같이 삐쩍 골아가지고, 지나가는 사람한테 그딴 소리를 해. 다리가, 시팔, 돌아다니라고 있는 거지. 지네들 보라고 있는 줄 알아? 변태새끼들이 남의 다리나 보고 지랄이야! 악에 받친 숨을 몰아쉬면서 방 안을 둘러 보았다. 이삿짐 박스만 휑하게 널려 있는 방에는 던질 만한 게 딱히 없었다.

 

 넌 왜 거기서 걔네한테 한마디도 못 했어. 화장을 안 해서? 옷을 대충 입어서? 정의의 사도도 외모 신경 써가면서 해야 해? 머리를 환청처럼 울리는 소리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악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가 지나가자마자 수군거림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부터 했던 스스로가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 자리에서 굳어가지고 입 뻥긋도 못하고, 등신 같이.

 

 “아악!!”

 

 목구멍이 까끌해지도록 소리 지르고 탈진한 것처럼 몸을 늘어뜨리고 나서야 정작 사려던 거울은 못 사왔다는 걸 떠올렸다. 집안에 화장실 말고는 거울이 없어서 꼭 필요한데. 지금이라도 다시 나가서 사올까 했지만 아까 그 고등학생들이 아직도 있을까 봐 단념했다. 설령 걔네는 가고 없다 하더라도 똑같은 짓을 할 인간들은 수백 수천이니까. 내일 다시 가야지. 어둠 속에서 깜빡이던 눈을 감았다. 실은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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