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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거신접속: 블랙홀로 로그인
작가 : liel86
작품등록일 : 2017.6.4

[준먼치킨][반전다수][이계진입][통수전개][퓨전수다]

최첨단 AI가 관리 운영하는 RPG에서 잘 나가던 네임드 유저들, 기이한 퀘스트 종료 이후, 각자 이계에서 눈을 뜨다. 능력도, 외모도 만렙인 채!

게임 세계를 닮은 세계 세르네키아에 온 후, 어쩐 일인지 자신의 이름을 잊은 주인공 (게임 닉네임) 라그나.

그는 마지막 퀘스트에서 쓰러뜨린 악마의 말을 기억하고, 악마가 언급한 '거신들'을 찾아 나서는데...

 
1 세르네키아의 평행 세계(1)
작성일 : 17-06-04 11:35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7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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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뭔가 말하려 했는데 한숨만 나왔다. 꿈일 뿐이고 일어나면 '아 시발 꿈'할 상황이면 좋겠다. 그렇지만 현실이다.

 이렇게 생생할 리가 없다. 새카만 원형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인다.

 돌풍 소리가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밤꽃 내음은 웬 말인지 모르겠다.

 

 "아니, 저게 다가오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 내가 검은 원에 다가가고 있었다. 난 가만히 있었는데. 그러니까, 저기에 끌려가고 있는거다. 아주 천천히.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스카이워커(skywalker)?

 

 "블랙홀? 으악!!!"

 

 저게 블랙홀 같은 것임을 인지한 순간. 나는 엄청난 속도로 저것에 끌려갔다. 블랙홀이란 말이 시동어였다는 듯이. 인터스텔라에

 스타워즈, ET를 짬뽕한 삼류 영화에 출연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블랙홀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저리가!"

 

 부질없는 외침이었다. 블랙홀은 저리 가기는 커녕 이리 와서 나를 감쌌다. 기어코 나는 새카만 것의 반대편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사방이 검은 무(無)로 가득한 공간에서 나는 무지막지한 중력을 느꼈다.

 

 "아악! 이건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떨어지고 있잖아 아 시발!!!"

 

 나는 악을 썼다. 앞으로 저 먼 어딘가에 엄청난 자석이 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야말로, 철가루가 된 기분이었다.

 

 쾅.

 

 그러니까, 쾅, 이었다. 내 온 몸이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을 뜨자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미세먼지라곤 한 티끌도 없어 보이는 대기.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방금 전 같은 돌풍이 아니었다.

 

 "엥"

 

 뭔가에 큰 충격을 받고 기절했는데도 정신이 맑았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미풍이 밀밭 사이에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여기가 어디야?"

 

 멀리는 지평선, 가까이는 드넓은 밀밭. 벌떡 일어났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다.

 

 "뭐 어쨌든, 일단 살아 있네"

 

 살아 있음이 제대로 느껴졌다. 온 몸에 활력이 돌았다. 나는 충동적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신기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체육 수행평가 준비하느라 오래달리기 연습 죽어라 했을 때, 사점(dead point)를 넘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전신을 휘감았던 쾌감,

 마치 알아서 움직이는 다리를 타고 달리는 느낌. 그게 지금 느껴졌다.

 

 "목이 좀 마르네."

 

 마침 근처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햇살 속에서 물웅덩이의 바닥이 훤히 보였다. 물도 깨끗하네. 여긴 무릉도원 인가. 나 죽었나?

 

 "헐"

 

 물에 살짝 비친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내 얼굴이 맞긴 한데 좀 달랐다.

 

 나는 사각턱인데 물에 비친 얼굴은 빗살무늬토기마냥 갸름했다. 여드름은 온데간데 없고 삶은 달걀 같은 피부만 보였다.

 이렇게 환한 자연광에서 보이는 피부는 개막장이어야 정상인데. 눈도 커졌고, 코는 높아졌다.

 음, 이 쯤이면 내 얼굴이 맞긴 한데 다른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얼굴이다. 인정. 어. 인정.

 그러고보니 키도 커졌다. 대충 봐도 184는 넘었다. 한마디로 난 내 원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일락말락 하는 훈남 모델이

 되어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에 이제서야 눈길이 갔다. 웬 중세 판타지 복장. 바이킹 룬 문자 같은 게 수놓아진 상의에 질긴 면 바지, 가죽 구두.

 냉수 마시고 속 차려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물을 벌컥대고 마셨다.

 

 "으 어쨌든 시원하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가운 물 때문이 아니라, 여자의 비명 때문에.

 

 "꺄아아아악!!"

 

 위협받는 여자가 지를 법한 전형적인 비명이었다. 비명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이 모자라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두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무언가가 그 여자를 덮치려고 하고 있었다.

 무언가라고 하는 이유가 있지.

 

 "저게 사람이야 짐승이야?"

 

 답: 둘 다 아니다, 였기 때문이다. 눈과 코 없는 얼굴을 꽉 채운 입, 아니 아가리. 그 아가리가 쩍 벌어졌을 때 보이는 송곳 같은

 이빨들. 저건 사람도 짐승도 아니고 괴물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괴물이 썩어 문드러진 팔을 뻗어, 기괴할 정도로 큰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움켜쥐려 했다. 놀란 내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저것을 알고 있었다.

 

 "샤그라스...?"

 

 불과 얼마 전 날아다니는 검은 심장이 강림했던 장소, 악마의 신전. 그 주위에서 떼를 지어 어슬렁거리던 마물.

 사실 악마의 신전 뿐 아니라 세르네키아에선 어디서든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몹'이다.

 

 게임의 배경 세계, 세르네키아 대륙에서라면.

 

 

 

 -끼아아아아

 

 샤그라스가 하이톤으로 울부짖었다. 여자랑 옥타브 대결이라도 할 기세인 것 같다. 그럴 요량이라면 이 녀석의 승리.

 돌고래를 방불케하는 초-음파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놈은 내 존재를 감지한 듯 했다. 여자에게 등을 돌리고, 놈은 내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숨을 헉, 하고 삼켰다. 게임에서라면 이 놈은 손가락 몇번 놀려서 통구이로 만들든 얼려서 부숴버리든 알 수 있을텐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 얼얼했다.

 

 샤그라스의 손이 맨땅을 깊게 파고들었다.

 

 "응? 나 피한 거야?"

 

 그런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방금 전까지 서있던 장소가 아니었다. 어느 틈엔가 몸을 움직인 거다.

 샤그라스는 멈추지 않고 뛰어올라 내 머리통을 물어뜯으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저리 꺼져!"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훅. 복싱은 중2병 걸린 중1시절 3달 정도 깔짝대다가 관뒀었는데, 어이 없게도 깔끔한 훅이

 샤그라스의 안면을 강타했다.

 

 -끼악!

 

 샤그라스가 계집애처럼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기사님, 살려주세요!"

 

 한쪽 어깨가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가 절박하게 외쳤다. 기사님...? 흐음. 아무튼 저 여자를 살려주자면 일단 샤그라스를

 처리해야 겠지. 아무래도 난 외모만 바뀐게 아니라 엄청난 전투력도 갖게 된 것 같다.

 

 "어떻게 이 놈을 죽인다...?"

 

 무기가 딱히 없었다. 때려 죽이려면 죽일수야 있겠지만 꺼려진다. 놈에게서 지독한 악취가 났기 때문이다. 처음 맡아보는 악취인데,

 이게 시취 라는 건가.

 

 망설이는 사이 샤그라스가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황당한 상황의 연속인데, 저 놈이 성가시게 굴며 뭐라도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 이놈을 그냥 뼈도 남기지 말고 태워버리고 싶은데...어?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떠올랐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레인(digital rain)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문자들은 서로 뭉치며 어떤 모양을 이루었다. 그건 여전히 알 수 없는 하나의 기호였다.

 

 순간, 어떤 단어를 말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참을 수가 없었다.

 

 "프로비던스Providence!"

 

 뭐지?

 

 -끼악...끼아아아악!!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샤그라스가 자연 발화한 거다. 눈 깜짝할 사이 놈은 한 줌의 재로 바뀌어 버렸다.

 

 "마법사님...?"

 

 여자가 놀란 투로 말했다.

 

 "자연 발화한게 아냐?"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 해봤다.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이미 그럼직한 답을 내놓았다. 마법.

 나는 마법을 쓴 거다.

 그러고보니 프로비던스, 이와 비슷한 마법이 게임에 있었다. 프로미넌스. 목표가 전소되기 전에는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춤추는 화염. 땅에서 소환수처럼 솟아오르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프로비던스라는 마법은 없었는데.

 

 "맙소사... 그거 프로비던스에요?"

 "응? 이게 뭔지 알아요?"

 

 여자가 벌떡 일어나 선망의 눈빛을 발사했다. 10대 후반 내지는 20대 초반쯤 됐을까. 빨간머리 미녀. 귀여운 주근깨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건 없다.

 

 "그럼요! 마법! 그것도 아주 강력한! 유기체 내부의 열기를 이용하는 화염 마법이잖아요. 와 근데 이건 펠린도 못 쓰는 건데, 마법사님은 너무 쉽게 쓰시네요."

 "음.... 뭐 하하, 이 정도면 가뿐하죠."

 "저는 마법사님들이 너무 좋아요. 마을사람들이 전부 펠린을 따돌려도 나는 펠린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펠린은 눈속임 하나 없이 시든 장미를 다시 피어나게 해줘요. 예전에는 마법사님이 잡아주신 아까 그 괴물도 죽을 기세로 싸워서 쫓아내주기도 했고요."

 "샤그라스가 자주 나타나나요?"

 "샤그라스...? 그 괴물 이름은 카코이드 잖아요. 마법사님이 붙인 별명인가요?"

 "에."

 

 카코이드란 몹은 게임에 없었다. 저건 샤그라스가 맞는데. 뭐, 예쁜 누나니까 굳이 심기를 어지럽히진 말아 드려야 겠다.

 "맞아요. 전 샤그라스...아니 카코이드 사냥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하죠. 오늘도 영 공부가 하기 싫...은게 아니라 제피리아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밖으로 나왔어요. 나쁜 카코이드들을 벌주려고요. 잘 찾아 나온 거 같네요."

 

 나는 여자의 반응을 살폈다.

 

 "역시 마법사님들은 생각이 깊으세요. 마법사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제피리아 사람들이 두발 뻗고 자는건데, 사람들은 고마움을 몰라

 요. 한번은 펠린이 리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적이 있는데..."

 

 흠. 이 나라 이름이 제피리아는 맞군. 세르네키아 대륙 서북부 신성 제피리아 제국. 나는 정말로 게임의 세계로 강제소환된 것 같다. 펠린인지 린펠인지 하는 남자 얘기가 딱히 궁금하지 않았기에 나는 말을 돌렸다.

 

 "죄송한데, 제가 조금 바빠서요. 혹시 악마의 신전이란 곳에 대해 아시나요?"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당연히 알죠. 저는 마법에도 관심이 많고, 마법사들의 이야기에도 환장해요. 전설의 마도사 에이나르가 악마 군주들의 융합체를 쓰러뜨린 곳이잖아요. 천년 전, 여러 시대 마왕들의 심장이 얽혀들어 사상 최악 최강의 마물이 탄생했지만, 마도사 에이나르는 그것을 끝내 쓰러뜨렸죠. 사람들은 그게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뭐야 이건 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네. 실은 펠린이 에이나르의 후손이에요. 그 가문에서 마도사 에이나르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죠."

 "친구분이 그런 대단한 마법사의 후손이라고요? 정말요? 놀랍네요..."

 "글쎄요. 펠린이 그렇다고 했으니 그런 거죠. 펠린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남자인걸요. 그런 남자가 좋다는데 리사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리사 휠른이 솔직히 부러워 죽겠어요."

 

 그쪽 분도 이렇게 예쁜데 리사는 얼마나 예쁜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리사라는 분은..."

 

 여자가 뜬금포를 쐈다.

 

 "아! 근데 마법사님, 왜 카코이드 한마리 잡는데 프로비던스를 쓰신 거에요? 마스터 소서리스 샤하니에 여왕님이 쓴 책에서 프로비

 던스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마법은 소수의 대마법사만 구사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이라고 했어요."

 

 여자의 말이 맞았다. 내가 쓴 프로비던스가 게임에서의 프로미넌스에 대응하는 마법이라고 치면, 나는 병아리 잡는데 코끼리

 마취총을 쓴 격이었다. 게임 퀘스트로 불길한 별의 산맥에 있는 대협곡에서 천 마리의 샤그라스를 찢어발긴 코스믹 리퍼를 잡은

 적이 있다. 나 혼자, 단 한 번의 프로미넌스로. 나는 그 외눈박이 불가사리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먹었었다. 코스믹 리퍼 요리

 덕분에 하이스트 패러딘 라그나는 더욱 강해졌더랬다.

 

 "이런, 내 정신좀 봐. 생명의 은인을 두고 무슨 수다람.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는 리리아라고 해요. 리리아 휠른. 그런데 마법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 이름이라. 갑자기 머릿속이 턱 막혔다. 내 이름이 뭐였지?

 

 이상하다. 친구들 이름, 부모님 성함 다 기억이 나는데 내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라그나요. 성은 없어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성을 이 자리에서 적절하게 지어내야 했는데, 외국어영역에 맨날 탈탈 털려서(그렇다고 딱히

 다른 과목을 잘한 건 아니다) 그럴듯한 외국어 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 성이 없는 잘생긴 대마법사 님이시라니. 신비로워요. 전설의 마도사 에이나르 님도 그저 에이나르였죠. 풀 서클(Full Circle)의 마스터, 누구의 아들도 아닌 에이나르."

 

 난 이 미소녀 마법 덕후의 수다가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속 편하게 수다를 떨 수는 없었다.

 일단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야 했다.

 

 "저 리리아 님. 근처에 마을이 있나요? 프로비던스를 썼더니 티는 안 냈지만 너무 배고프네요. 아무거라도 좋으니 마을에서 뭔가를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이런, 역시 그러셨죠! 블루아이 군도의 비경도 먹고 봐야 제맛이라는데, 제가 라그나 님을 대접할게요. 전 혼자 살아서 혼자 이것저것 잘 해 먹는답니다."

 

 뭐? 자취하는 붉은머리 미소녀라고? 눈 앞에 떨어진 웬 떡에 나는 살짝 현기증을 느꼈다. 난 뽀뽀도 못 해봤는데 이런 급작스런

 전개는 좀 불편하긴 개뿔 오예!!!

 

 "...그래도 펠린이 마나로 식재료의 분자를 재배치 재구성해서 만드는 요리만은 못하죠. 라그나 님이니까, 특별히 펠린을 초청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달라고 부탁할게요. 질과 양 다 보장합니다! 펠린이 오면 리사도 오겠죠? 음, 그건 뭔가 질투나지만 어쩔 수 없죠."

 

 ...에라이. 뭔가 받았다 뺏긴 느낌이다.

 

 "흐으으으음, 그거 좋습니다. 제가 분자요리를 참 좋아하거든요."

 

 리리아가 분자 요리라는 말을 알 리가 없지만, 알아들을 것 같았다. 못 알아들어도 좋다. 뭔가 대마법사만이 쓰는 용어라고

 생각해주면 땡큐. 그냥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집에 초대해서 먹을 걸 대접한다는 말을 들으니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이 만발했다.

 

 '날 있어보인다고 계속 생각하겠지. 멋진 대마법사님이라고.'

 

 그러다 보면 뽀뽀를 넘어 키스도 할 수 있을 테고. 아놔, 나 리리아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상상은 깨지라고 있는건가보다.

 

 "히야아아아악!"

 

 오늘따라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걸 자주 듣는다. 리리아의 절박한 비명 &

 샤그라스의, 마치 머라이어 캐리의 초고음에 디스토션을 건 듯한 괴성 &

 그리고... 웬 여장부의 기합.

 

 "헉 마법사님, 저게 뭐죠?"

 "설마 저것들이 전부 카코이드?"

 

 멀리서 수십마리 정도 되어보이는 샤그라스(이하 그냥 카코이드라 하자)가 보였다. 시야가 워낙 트인 곳이라 보인다고 해도

 2km는 떨어져 있을 거다. 그런데도 기합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는 건... 카코이드 떼에 포위당한 여자의 목청이 무지막지하게

 끝내준다는거지 뭐야.

 

 리리아와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현실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여자는 짱돌(?)같은 걸 들고 사람 맞나 싶은 움직임으로 카코이드 사이를 비사이로

 막가듯 종횡무진했다. 아, 당연히 그 짱돌로 틈틈이 카코이드의 뚝배기를 부쉈고. 참고로 뚝배기=머리다.

 "세상에... 옛날 얘기에 나오는 사람 같네요. 만년 전 어머니의 시대(Mother Age)에 매머드를 혼자 때려잡았다던 붉은 돌도끼,

 라만치아 여족장이 저랬을 것 같은데. 제가 살아있는 전설 같은 분들을 계속 뵙고, 오늘 무슨 날인가봐요."

 리리아의 말은 정확했다. 그러니까, 여전사의 모습은 원시인이 돌도끼로 사냥하는 꼴 마냥 원시적이었다. 그리고 비현실적이었다. 카코이드들은 여전사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픽. 픽. 픽. 이건 프로듀스 101에 투표하는 소리가 아니라,

 카코이드들 쓰러져나가는 소리다. 여전사가 휘두르는 짱돌이 붉게 물들어가는 게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눈에 힘을 줬다. 여전사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프로비던스를 구사할 때처럼 머릿속에 정체모를

 문자들이 재생됐다. 그것들이 일순 밝게 빛났고, 눈이 번쩍, 했다.

 

 보였다. 뭔가 또 마법을 쓴 거다. 나는 양안 3.0쯤 된다는 몽골인이 된 기분이었다.

 

 "리리아, 저 지금 저 사람 얼굴이 보여요."

 "오호, 비홀더 블레싱beholder blessing이네요. 주시자들의 권능을 잠시 소환하는 마법! 라그나 님 눈이 더 예뻐졌어요. 눈만 잘 보이는 게 아니라 귀도 더 잘 들리실 거에요."

 

 하여튼 리리아는 마법 관련한 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전사를 주시했다.

 

 그녀는 무식하고 세련되게 양민학살을 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흑발, 대조되는 새하얀 피부, 큼직큼직하면서 섬세한 이목구비,

 육감적인 몸...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외모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비홀더 블레싱이란 마법 덕분인지 보다 생생하게 들렸다.

 

 "이빨 큰 오빠들, 그 날카로운 이빨 내 몸에 하나라도 좀 박아보면 안될까? 성공하면 뽀뽀해 줄게. 임플란트도 좀 해 주고."

 

 설마...

 

 "라그나 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리리아의 말이 한쪽 귀로 들어와 한쪽 귀로 흘러나갔다. 여전사는 틀림없이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본 적은 없지만.

 

 "루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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