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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우아한 세계에서
작가 : 마스트
작품등록일 : 2017.5.29

종전 이후 20년, 시대의 변화로 약해진 귀족, 흔들리기 시작하는 기존의 계급체계
거짓 평화 아래에서 숨죽이고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잊혀진 국가들

 
3화 차안
작성일 : 17-06-03 22:46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7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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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귀족원의 수석 자리를 여동생과 나눠가진것조차 더 이상 막스에겐 큰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겼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최종적으로 후계자로서 간택받은것은 여동생이 아닌 바로 나, 막스. 막스 슐레트다.

 무심한듯 오른손으로 턱을 괴면서 자꾸만 일그러지는 입가를 가렸다. 자동차안만 아니었더라면 미치광이마냥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몸을 뒤틀었을 것이다.

 여동생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까지 했다. 그때 아버지가 보여준 눈빛은 당사자가 아닌 막스 자신의 뼈를 후들거리게 했을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 녀석, 후계자 자리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에도 모자라 미운털이 단단해 박혔을 게 뻔하다. 내가 아버지라면 그랬을 터이니 아버지 본인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왼손으로 좌석의 가죽을 매만졌다.

 직인들이 흑색 외뿔소의 등을 갈라 벗긴 가죽으로 만든 좌석 겉감은 공장제 기성품 따위와는 감히 비교를 하기 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두터웠다. 고급품만을 취급하는 아버지의 취향을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느낄수가 있다. 그런 아버지를 제일 잘 이해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고 감히 자신하는 바였다. 아버지의 취향은 곧 내 취향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은 고스란히 물려받을 것이다.

 들뜬 마음을 추스렸다. 너무 앞서 나가지는 말자.

 아니, 이제는 한시름 놓아도 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 이런 순간이야말로 냉정해 져야한다고 막스는 스스로의 머릿속을 차갑게 식히려 노력했다. 더 이상 뒤를 바짝 쫓아오던 그 무시무시한 여동생은 없다. 차라리 죽어 사라져 줬더라면 마음이 놓였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 그녀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여동생, 내 여동생, 하나뿐이신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이어진 아주 질긴 인연 줄리아 슐레트.

 아니지 아니야.

 막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머지 않아 아도웰 가문의 귀부인이 되실 줄리아 아도웰....이라고 막스는 마음속으로 여동생의 이름을 정정하고는 곧 참을수 없다는 듯이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막스와 줄리아, 이 두 남매에게 각각 별개의 명을 내렸다. 물론 막스 본인에게는 비서실 내정될 것이라는 애두른 상속 통지를.

 그리고 줄리에겐 아도웰가문의 차남 '슬러일 아도웰'과의 약혼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아도웰가문을 현재 이끌고 계신 당주 ‘아드리어스 아도웰님’은 과거 아버지와 함께 대전쟁에 참전한 귀족장교 전우였다. 비록 후방의 정보부였지만 어려운 시기를 군인으로서 함께 복무한 두분은 깊은 우정을 나눠갖게 되었다. 현재 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귀족의원의 일원이지만 아드리어스 님의 아도웰 가문이 품은 정치적인 성향은 유감스럽게도 아버지와는 정 반대를 지향했다. 하지만 방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분을 포함한 몇 귀족의원과 평의원들은 요 몇년간 시끄러웠던 수상각하와의 대립전선을 구축하였고 전선의 주축을 맡은 아버지와 아드리어스 님은 정치적으로 동맹관계를 맺었다.

 아버지의 속내는 분명 아드리어스님과의 동맹을 더욱 돈독하게 묶기 위해 그 제물로 자신의 딸이자 자신의 여동생을 바치는 것일테다. 아버지라면 그러실만하다고 막스는 생각하며 당주님의 결단을 동의했다.

 

 "이제와서 그애가 신부수업을 받게될줄이야...참 볼만 하겠군."

 

 가문을 다스리고 나아가,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정치가가 되기위해 닥치는대로 공부하여 나와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이수한 줄리아. 앞으로 아버지를 보좌하며 정치란 무엇인가를 실전적으로 배워나갈 나와는 다르게 줄리아는 귀부인으로서의 소양과 남편을 치켜세우는 법을 배워야한다. 귀족원에서 조차 몸만 여성기숙사 머무를 뿐, 언제나 신사들 사이에서 학업에 정진해 경쟁한 그 아이가 여성의 사회에서 싸우는 법을 바닥부터 배우는 광경을 상상하니 이젠 약간이나마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 내여동생, 나와 같은 남자로 태어났다면 참으로 무시무시 했을 내 유일했던 적이여. 우리가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10년전, 오직 나만을 올곧이 바라보며 나를 몰아 부친 순수한 나만의 경쟁자.

 

 난 그 애를 여자로 낳아주신 것에 대해 어머니에게 감사했다. 만약 그애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만약이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할 만큼 한가하지 않지만 만약 그랬다면 결과가 어찌되었을지 난 장담할 수 없을 테다. 비록 그 자리에서 줄리의 말을 부정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구축해온 장벽의 높이가 동등했다는 것을 솔직한 심정으로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 간소했던 차이를 넘어서 내게 승리를 안겨준것은 다름아닌 전통적으로 이어왔던 성별의 장벽이었다.

 

 나는 동시에 어머니를 원망했다. 차라리 그애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만약 그럴수만 있다면 그때야말로 줄리와 나는 서로 모든 퍼즐의 조각을 갖춘 채로 시작하는 완전한 대결을 펼칠수가 있었을 것을. 물론 내가 패배하는것 따위 상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만약 그러했더라면 방금전과 같은 추태를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테다.

 굳이 내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이 즐거웠던 웃음뒤 뒤늦게 찾아오는 씁쓸함 때문일테다.

 굳이 감추지 않아도 될만큼 내 표정은 고요해졌기에 나는 더이상 입가를 가릴 필요가 없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줄리보다도 나를 더 아꼈다. 줄리는 결코 모를 그 편애가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 조차 이어져 내 부족했던 한걸음을 떠밀어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싹을 틔웠다.

 

 "그래도 이긴건 나야......내가 이겼어."

 

 스스로에게 들려주기위해 막스는 작게 속삭였다. 차가 흔들렸다. 돌부리의 위를 지나간 것이 분명했다.

 

  *

 

 눈을 떴다.

 창밖의 풍경은 이미 어두운 장막에 녹은 밤이다.

 품에서 꺼낸 회중시계는 아직 초저녁일 뿐이라 내게 본연의 시간을 일깨워줬지만 이제 겨우 3월이기에 해가 지는 속도는 여전히 빨랐다.

 아둔하게도 잠시동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버렸기에 줄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푹신한 와인색 쿠션이 깔린 긴 등받이 의자와 차내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감싸주주는 호박색의 전등, 유리창 너머로는 빠르게 뒤로 흘러가는 풍경이 보였고 소형 보일러에선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의심할 여지없이 1등 기차칸에 나는 홀로 앉아 있었고 시중을 드는 이는 없었다.

 

 '아직 출발한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어.'

 

 그로부터 며칠이라도 지난 것 같건만 아직도 오늘에서 조차 벗어나질 못했다.

 내 기대와는 다르게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느릿느릿 기고 있었다. 차안이 더워 창문을 열까 팔을 뻗었지만 여전히 외투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내 정신은 유감스럽게도 반쯤 나간 상태 같다.

 감색외투를 벗어 좌측 벽의 튀어나온 옷걸이를 향해 던졌다.

 '딱'하고 걸렸으면 좋았으련만 외투는 걸리지 않고 바닥에 떨어졌다.

 

 '줍기도 귀찮아.'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잠이라도 청하고자 눈을 감았지만 불과 5초가 채 되지 않아 줄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잘 털어 옷걸이에 똑바로 걸었다. 기왕 일어난 김에 보일러도 꺼버렸다.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왼쪽의 허벅지 위에 얹어 겹치는 자세로 몸을 고쳤다.

 귀족원에서 예절을 담당하셨던 교수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노발대발했을 모습이었다.

 ‘불필요한 자세로 발목 이상의 살을 들어내 보이는 것은 음란한 행위입니다! 고귀한 신분을 타고 자라난 여러분은 언제나 하급계급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줄리아 슐레트님! 당신의 그 모습은 마치 창부의 그것이군요. 신사분들속에 섞여 공부하시더니 숙녀로서의 예절은 이젠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까?’

 

 유난히도 까탈스러웠던 옌자민 쿠툴러 교수님은 모든 학생들중에서 유독 줄리아 자신을 공격하기를 사랑하는 듯 보였다. 저자의 눈에 무슨 이유에서 인지 완전히 나버린 이상, 되도록 그녀 앞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기위해 줄리아는 노력했다. 딱, 한번. 정말로 한번 쿠툴러 교수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들키고 말았을 때 그 노처녀 교수는 숨조차 쉬지 않고 재잘대는 새마냥 줄리아를 매도했다. 참 기이한 여자다. 더욱이 기이한 점은 쿠틀러교수의 예절과목에서 줄리아는 단 한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평가가 실기로 이루어지는 해당수업에는 교수의 주관이 섞일 수밖에 없으며 제아무리 완벽하게 행동을 취했다고 한들 흠을 잡기위해 눈에 불만 켠다면 몇점이든 간에 깍일 수 있는 과목이었다. 심지어 줄리아 본인조차 이 수업은 버리고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음에도 교수는 그녀에게 최고의 점수와 평가를 내려주었다.

 

 그녀는 귀족이란 하늘에서 점지하여 내려주는 존재로 모든 만인들에게 일종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존재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교수들의 눈 밖에선 더한 짓도 일삼던 게 귀족원의 진풍경이요 매력이었다. 과제자료나 수업족보를 내걸고 도박을 하거나 흡연을 일삼는 학생들도 결코 적지 않았고 남자들의 경우 비밀사교회를 조직하여 무작위 권투, 검술 시합을 벌였다. 심지어는 동성끼리의 연인관계를 맺고 서로 반지를 교환하는 둥 결혼의 의식을 소꿉놀이의 일종마냥 모방하는 학생들도 일부 존재했다. 그녀조차 재학하는 동안 아무런 일탈행위없이 공부만을 하며 보내지는 않았다. 물론 흡연이나 동성연애 따위는 아니다. 그러한 일탈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기에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 정도로 거리를 유지했다.

 우선 줄리아는 신사동맹 비밀 검술사교회의 명예회원이었다. 본의가 아니게 가입을 한 모임이었지만 줄리아는 이 정기모임을 싫어하지 않았다. 주에 한번, 혹은 격주에 한번씩 줄리아는 귀족원 서쪽의 폐쇄된 사냥터에서 신사들과 검을 맞부딪쳤다. 월반시험준비를 위한 귀중한 공부시간을 쪼개야 하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지만 그것마저 감수할정도로 모임은 줄리아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두 번째 일탈행위는 사실 일탈이라 하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누구나 할것없이 일삼는 행위를 과연 일탈이라 할수 있을까?

 짐가방을 열었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과 읽은 책들을 해치고 맨 아래바닥 숨겨둔 비밀공간에서 줄리아는 넓직한 나무상자를 꺼냈다.

 상자 겉에는 고풍스럽게 휘갈긴 상품명이 적혀있었다.

 

 상자속에는 향수병들이 담겨있었다. 손바닥의 높이보다 작은 유리향수병 다섯개가 내부의 빈홈에 꼭 맞물려서 내부를 채우고 있다.

 병만큼은 진짜 향수병이지만 내용물은 향수물 보다는 조금 불순한 것이었다.

 귀족원 숙녀기숙사에서 대대로 전해져 그 역사와 전통이 깊은 밀주, 즉 조제술이 향수를 대신하여 병속을 가득 채운 액체의 정체다.

 

 여학생의 귀족원 입학 필수소지품 중에는 여러 가지 준비품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정 향수병이었다. 학기중엔 이것을 제외한 어떤 향도 몸에 뿌려서는 안된다. 이는 사치스러운 어린 귀족들에게 검소함과 절제력을 기르게 하기위한 교육의 일환이라고 기숙사의 사감은 신입생들에게 일러주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귀족원의 학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계급개혁으로 모든 귀족들의 계급이 동일하다는 평귀족화가 이루어 지고 귀족세가 증가하면서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많은 귀족들이 스스로 귀족의 자리에서 물러나 평민의 계급으로 내려갔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귀족들이 대거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원의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일반 학교에 진학하는 지방귀족의 일화는 사교모임에서 여전히 귀부인의 혀위에 즐겨 오르는 일화중 하나였다. 귀족원을 처음부터 포기하고 평민사이에 섞이는 이러한 무리들은 고상하신 분들은 신분값을 못하는 평민귀족이라 조롱하였다.

 물론 장학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나 이는 빈곤한 귀족의 학업을 돕기위한 제도가 아니라 우수한 귀족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학비는 면제되지만 대신 학비만큼의 금액을 귀족원과 가문의 이름으로 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귀족자제는 사전에 알아서 솎아지고 만다. 이러한 부족함을 모르고 곱게 자란 온실속 화초들에게 사치란 마치 공기를 마시듯 일상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았고 뼛속 깊숙이까지 배어 이골이 나 있었다. 오죽하면 사치를 교정하기 위한 교육이 수업에 포함되어 있을정도일까?

  입사전 소지품 검사에서 색출된 지정외의 향수나 화장품, 소지품들은 모조리 압수당한다.

 누군가는 이를 시대착오적이라 비난하였고 또 어느 학생의 경우 제발 돌려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그 학생의 아버지가 어느 영지, 어느 위치에 있던지 간에 사감은 원칙을 준수했다. 자신의 가문이 어떤 땅 위에 자리잡고 있는지, 무슨 명예로운 칭호를 부여받았는지를 한톳씨도 틀리지 않고 구구절절 읇어대는 학생들의 말을 귓등으로조차 듣지않고 걸린 물품은 모조리 상자에 담겨 창고로 직행해야만 했다.

 줄리아의 경우 빼앗긴 물건이 없었다. 단순히 걸릴만한 물품이 없어서 였지만 무엇보다도 필수로 준비해야 하는 물품과 옷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애초부터 챙길생각을 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검사일 당시 그녀의 짐은 그 어느 여학생보다 적었고 심지어 사감마저 당황하여 ‘나머지 짐은 언제 도착할 예정인가요?’라며 되물었을 정도였다.

 총 다섯 개의 향수병과 상자로 구성된 지정향수는 각가지의 향에 따라서 용도별로 사용된다.

 어떨 때는 행사, 또 어떨 때는 기념일에 맞춰 올바르게 향수를 골라 뿌려야 하며 한번이상 과도하게 발라 주변에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비지정 향수는 절대로 발라서는 안된다. 소문에 의하면 소지품검사에서 걸려 아끼는 향수를 빼앗긴 것을 마음에 둔 어느 선배는 기어이 비지정 향수를 공수해 그것을 사용했고 불과 이틀만에 귀신같이 냄새를 맡은 사감에 의해 향수는 압수당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당사자는 결국 예절 과목과 도덕 과목에서 낙제에 가까운 점수을 받아 그해, 진급학점을 채우지 못해 유급을 했다고 한다.

 

 입학전 선배들이 돌린 전보에 따라 모든 여학생들은 지정향수를 상자째로 하나 더 사들고 기숙사에 입소한다. 필수소지품의 경우 소지량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에 한 상자 더 반입한다 해도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다. 다만 모두가 2개씩을 가져온다면 의심을 살수 있기에 누구는 세상자, 또 누구는 네상자씩을 사서 한상자만을 산 학생에게 잔금을 치른 후 넘기는 식으로 사감의 눈을 피했다. 첫날 밤부터 입학생들은 선배들의 지도하에 향수속의 알코올 뽑기를 시작한다. 일반 식용 알코올이야 감자를 증류해 얻거나 아니면 조리실에서 훔쳐 조달할 수는 있지만 고대의 조리법으로 만드는 밀주에는 이 향수에서 뽑은 알코올 한방울이 필수 첨가물이다.

 물론 알코올을 뽑아낸 나머지 향수의 잔여내용물은 모조리 변기통에 버려 비워버린다.

 누가 처음으로 시작했는지 모른다. 알려진 바로는 몇세대나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간 과거의 선배님들께서 소소한 일탈을 위해 배식으로 나오는 야채와 곡류, 과일등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술을 빚은 것이 시발점이라는 게 정설로 통하고 있다. 매해 신입생들은 그 비밀의 제조법을 전수받고 결코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비밀서약을 함으로써 비로서야 정식적인 귀족원 숙녀 기숙사생으로 받아드려진다.

 사감의 눈을 피해야 하기에 밀주는 향수병에 나눠 보관해야 했다. 한번에 만들어지는 양 자체는 적었지만 양이 적은만큼 도수가 아주 높아서 반드시 물에 타마셔야 한다는게 규칙이었다.

 

 '알게뭐야.'

 

 상자안의 병들중에서 짙은 제비꽃색으로 물들은 병하나를 꺼낸다. 줄리아는 병을 잡은 오른 손의 엄지와 검지만을 이용하여 요령있게 입구를 비틀어 열었다. 냄새를 맡기만 해도 취기가 오를것만 같았다. 줄리아는 병 입구에 입을 대어 망설임 없이 한 모금을 삼켰다. 희석하지 않은 원액을 마셔보는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귀족원도 수료했겠다. 또한 차내에서의 음주는 특별히 금지 된 것이 아니다. 미성년이라는 나이가 걸리긴 하지만 지적할 어른도 사용인도 어디에도 없다. 원래라면 물에 타 농도를 묽게 만들어 마셔야 하지만 물통을 꺼내기가 귀찮았고 무엇보다도 재학 중에 단련된 자신의 주(酎)력을 믿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마셔 취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너무나 강했다.

 줄리아는 그렇게 무모하고도 용감하게 저질렀고

 용감한 것과 우둔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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