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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매향유희
작가 : 정린
작품등록일 : 2017.6.3

상처는 아물수록 단단해진다. 사랑의 기억을 이겨내고 강해지는
한 여자의 로맨스무협판타지

 
제 3화. 매화는 향을 팔아 유혹하지 않는다.
작성일 : 17-06-03 17:12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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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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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향과 혜명은 단꿈을 꾸는 듯 깊은 꿈에 빠져든 재희를 바라보았다. 

 

 재희는 무의식 속에서 그토록 뜨겁도록 달아오르게 피어났던 열정의 시간을다시 재현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그와 함께였다.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었던 그 사람. 꼭 다시 파고들고 싶었던 그 너른 품. 인자한 웃음. 그 달달한 눈 빛. 그 뺨을 만지는 재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정녕 나으리가 맞으십니까? 정말 그 분이 맞으십니까?"

 

 "허허, 오늘따라 유난스럽게도 구는구나. 나쁜 꿈이라도 꾼 것이냐?"

 

 "아니옵니다. 곁에 있어도 왜 이렇게 나으리가 간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재희는 나으리를 뒤에서 꼭 안았다. 어린아이가 정을 보채는 듯 품에 매달려 깊게 사무쳤던 그리움을 달랬다. 그리고 그간의 갈증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 그의 입술에 입술을 맞댔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 감촉 그대로, 그 온기 그대로, 그의 것이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소원하던 입술을 오래 탐했다. 하지만, 곧 품에서 밀려나왔다. 마치 이별을 앞 둔 사람처럼 담담하게 재희를 밀어냈다.

 

 

 "계절이 바뀌니 마음에 허기가 드는가 보구나. 든든히 먹고 기운을 내거라. 공허한 마음에 바람이 드는 것이다. 저 나무를 보아라. 뿌리가 깊으니 바람에도 꼿꼿하지 않더냐?"

 

 

 "네. 그리하겠습니다. 나으리만 곁에 있으면, 폭풍이 몰아쳐도 견뎌낼 용기가 있습니다."

 

 

 대감은 재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재희의 간절한 눈빛과 반가움 그리고 애절함이 묻어나는 눈빛을 마주하면서도, 더 이상 교감하지 않고 이별을 예고하듯이 운을 띄웠다.

 

 

 "저 달을 보아라. 홀로 있어도 독야청청 밝지 않느냐?"

 

 "나으리, 오늘은 초생달이라 달이 이지러져 보입니다. 빛 또한 전과 같이 않게 어둡기도 하고요."

 

 "달이 이지러져 있다고 저 달의 원래 둥근 모습이 없던 것이 되더냐? 늙는 것, 이지러지는 것, 추한 것, 이별하는 것, 보이고 사라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란다. 버드나무 줄기는 백 번 찢어내도 다시 또 새로운 가지가 난단다."

 

 "갑자기 버드나무 줄기라니요? 무슨 뜻이옵니까?"

 

 "연인들이 헤어지면서, 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쥐어주며 이별을 고했다. 이별을 하더라도 다음 해 봄이면 다시 백 개의 새로운 가지가 계속 나온단 뜻이란다. 이별보다 강한 것은 새로운 사랑이란 뜻이라고 하더구나."

 

 

 "하오나, 나으리....."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이라 했단다. 매화는 봄이 와서 꽃을 틔운 게 아니라, 추운 겨울에서 꽃을 틔울 준비를 하고 봄을 맞았단다.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추위 자체가 삶의 환경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 춥다고 향을 팔아 꽃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꽃을 피운 것이 아니란다."

 

 

 "나으리, 기다리겠습니다. 거듭나는 해에도 매화를 보며 견뎌내겠습니다."

 

 "아니란다. 부질없는 것을. 이제 그만 새로운 사랑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이제 너를 놓아줄터이니, 예쁘게 피어나거라."

 

 "아닙니다. 저는 나리 곁에서 거듭 거듭 나리 곁에서, 언제까지나 나리를 따르겠습니다."

 

 

 재희는 그날 밤 성심을 다해 나리를 섬겼다. 둘 사이에 남겨놓은 시간이 단 하루 남은 것처럼 그를 위해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열었다. 겨우내 가꿔온 꽃을 피워 속절없이 떨구는 매화처럼, 그 남은 하루 사랑하는 이에게 남김없이 전했다. 단 하루 남은 여인의 움직임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깊고 담백하게 맑은 향을 풍겼다. 

 

 그리고는 이내 떠나는 나리의 행렬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며, 재희는 서러움에 목이 막혔다. 차마 울분을 다 토하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의 신분 탓이었을까? 아니면, 정성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왜, 자신을 데려가지 않는 걸까, 남겨둔 재희는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다. 정녕 이대로 영영 가버리신 걸까? 오매불망 기다리는 마음은 끝내 이대로 져버리는 걸까?

 

 매일 정안수를 떠놓고 빌기를, 그 곁에 잠시라도 머물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건만, 끝끝내 운명은 허락하지 않았다. 

 눈물짓는 밤들과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매화는 거듭거듭 피었어도, 자신은 끝내 피우지 못했다. 나리의 안녕을 빌며, 하루하루를 보냈건만 이젠 빌어야할 기도도 더 남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매화꽃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날 재희도 이별을 고하려 마지막 절을 올렸다. 사랑에 대한 기다림, 기다림의 대한 의미를 더 확인시켜 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재희는 쉼 없이 눈물을 흘렀다.

 

 "버드나무 가지도 해마다 거듭 피었고, 매화에게도 곧 겨울이 찾아들었지만, 제게는 다시 온다는 계절은 끝내 오지 않더이다. 나리, 저의 계절은 그 닿은 곳에 있을 텐데, 어찌하겠습니까."

 

 재희는 나리의 거처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리고 그 연모의 마음을 끊지 못해 몸을 던졌다. 긴 잠에 들었다. 아주 어둡고 고요한 곳에서 자신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진 자신을 보니, 애처롭고 가여웠다.

 

 '이제 무엇을 위해 울어야할까. 이루지 못한 사랑을 위해 울어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져버린 운명을 위해서? 왜 이 어두운 곳에서, 아직도 여전히 혼자 있는 걸까?'

 

 그때였다. 어디선가 음성이 들렸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세속의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 죽은 것인가요?"

 

 "아니다. 다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끊어야 할 인연이면 어떤 인연 말인가요?"

 

 "사내들의 소유물처럼 때가 되면 버려지는 사랑의 노리개로 살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재희는 누워있는 자신을 보며,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에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 노리개도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사랑이었고, 제가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그 분을 담은 제 마음, 그리고 그 분에 대한 마음을 함부로 단정짓지 말아주세요."

 

 "그러하면, 너는 왜 끝까지 혼자 남아서 울고 있는 것이냐?"

 

 "그것은......"

 

 "그는 왜 너를 끝내 곁에 부르지 않았던 것이냐?"

 

 "그것은......"

 

 "네가 그라면 너는 어찌하겠느냐?"

 

 "......"

 

 "너는 아직 죽지 않았느니라. 다시 남아 다르게 살아보지 않겠느냐? 세상에 네 뜻을 펼치며, 누구의 그늘이 아닌 양지로 나와 살아보지 않겠느냐?"

 

 "저는 그런 그릇이 아니 되옵니다."

 

 "맞다. 그런 그릇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의 기회를 준다면, 어찌하겠느냐?"

 

 "따르겠습니다. 기다림으로 얼룩지며 이렇게 쓸쓸한 결말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운명을 바꾸어 보겠느냐?"

 

 "네, 그러겠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과거를 다 잊고서, 남김없이 다 지워도 괜찮겠느냐?"

 

 재희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그리움에 사무쳐 울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는 사모하는 연정에 배신을 당한 듯, 운명에 베인 듯 알수없는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꼭 그러해야 한다면, 그러겠습니다."

 

 재희는 밤새 열이 오르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꿈을 꾸고, 울기를 반복했다. 긴 시간을 보내며 가쁜 숨이 가라앉고, 천천히 숨을 고르자 평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재희는 눈을 떴다. 천천히 뜨겁고 차갑던 가마솥에 들어간 손을 들어보았다. 손등에 여리게 매화꽃 문양이 흉터처럼 새겨져 있었다. 

 재희는 신기한 듯 손등의 매화를 어루만졌다.

 지나가다가 걱정이 되어서 들여다 본 혜명이 눈을 뜬 재희를 발견하고는 향의원 서생을 불러왔다.

 

 

 "스승님."

 

 "그래, 재희야 이제 괜찮은 것이냐?"

 

 "스승님, 한양 나들이 당장이라도 가고 싶습니다."

 

 

 

 

 ******

 

 

 

 재희가 나들이 행렬에 합류하기 위해 말에 올라탔다. 친구들이 배웅을 하며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도서원의 수행자들은 무공을 연마하기 위한 도복 차림으로 여염집 여인들의 차림과는 달랐다. 평상시에도 치마, 저고리 대신 바지를 입었으며, 색을 입히지 않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햇빛과 얼굴을 가리기 위한 변형된 지삿갓(조선시대 모자의 일종)을 썼다.

 

 

 "재희야, 한양에 가거든 나 장신구 하나만 사다 줘."

 

 "나는 읽고 있는 이 야설 다음 문집이 나왔는지, 하나만 부탁해."

 

 "나도, 난 은은한 꽃무늬 옷감으로!"

 

 

 동기생들이 부러워하며 재희에게 이런저런 요청을 하기 바빴다. 비록 수련을 하는 이들이지만, 아직 야리야리한 여인들이며 소녀들이었다. 이 소녀들의 가슴에 어떤 사연들을 품고 있기에 이 곳에 발길이 닿았던 것일까,

 

 재희는 눈이 가려진 채, 말 위에 올라앉아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승급시험을 통과한 고수가 되기 전까지는 도서원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까닭에, 재희는 눈을 가려야 했다.

 

 재희 자신도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필시 그만한 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 2년, 이제 겨우 초급의 티를 벗어낸 신참내기가 스스로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특히, 이번 장법에 대한 수련이 그러했다. 재희는 매화가 새겨진 사진의 손등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행렬은 조용히 도서원 밖을 나와 하남 위례성으로 향했다. 산세가 다소 높고 험했다. 장대한 잣나무들 사이로 아직 칼바람이 부는 이른 봄이었다. 재희의 말을 끌고 있는 것은 혜명이었고, 그 뒤를 운향과 다른 중급 이상의 수행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길을 가는 중, 바람 소리에 섞여 스산한 소리가 들렸다. 필시 그것은 계절풍인 하늬바람(봄에 부는 서풍)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소리를 감지한 혜명이 행렬을 멈추었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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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좋아함 17-06-04 01:07
 
음. 굿굿. 재밌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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