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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은혜로운 열애사
작가 : 우연리
작품등록일 : 2017.6.2

"귀신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죠?"

은혜가 물었다.

"춤 추는 건 본 적 있습니다."

차트를 넘기던 무열이 대답했다. 콧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을 끌어 올리려다 그냥 벗어 버렸다. 은혜만 있는데 뭐 어떠랴 싶었다.

"어땠는데요?"

"굳이 말로 해야 압니까?"

은혜와 무열이 조소를 머금었다. 삐딱한 그들의 입술은 동시에 답을 뱉었다.

"최악이죠."



귀신이 들리는 여자 주은혜와 귀신이 보이는 남자 최무열의, 미스터리로맨스릴러 은혜로운 열애사.

 
프롤로그 - 그 여자
작성일 : 17-06-02 23:06     조회 : 453     추천 : 1     분량 : 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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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은혜를 받은 아이, 주은혜는 실로 은혜로운 여자였다.

 

  「야.」

 

  "……."

 

  「야아.」

 

  "……."

 

  「어머, 이 년 안 들리는 척 하는 것 좀 보게.」

 

  "……."

 

  단지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가 귀신이라고 무시하냐?」

 

  산 사람이 아닌 죽은 망령들이 그녀에게 은혜를 입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

 

  「와, 이 독한 년.」

 

  그래, 독하다. 세상이 나를 독하게 만드는 걸 어쩌겠어.

 

  굳게 입을 다문 은혜는 738번 째 양을 울타리로 넘겼다. 밥 아저씨네 울타리가 터질 기세인데도 그녀는 꿈나라로 떠날 수 없었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 년아.」

 

  아까부터 년년거리는 귀신 아줌마가 오늘의 수면 훼방꾼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보이지 않으니 아줌마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은혜의 마음속에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아줌마로 낙찰되었다.

 

  목소리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무엇보다 꼬장 부리는 게 그냥 딱 대한민국 아줌마야. 잠에 빠져든 듯 고요한 표정을 유지하며 은혜는 양 목장의 주인 밥 아저씨를 애타게 찾았다.

 

  밥 아저씨, 양들아, 나에게 힘을 줘!

 

  매일 밤 은혜의 잠을 방해하는 귀신이야 차고 넘쳤으나 유난히 그녀를 힘들게 만드는 유형들이 있었다. 대뜸 빽빽대며 울어 재끼는 어린 아이, 죽어서도 노망은 지속되는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노인네, 위 아더 월드 시대에 맞춰 꼬부랑 말을 씨부리는 외국인 등등.

 

  하지만 그 중 최고는 단연 한국 아줌마였으니.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구수한 트로트 한 사발은 기본이오.

 

  「……그래서 이렇게 됐다는 거 아녀. 아유, 내 팔자야. 생전 여행 한 번 못 가다가 드디어 외국 땅 좀 밟아보나 했더니. 우리 의사 아들내미가 뼈 빠지게 돈 벌어서 사준 비행기 표도 못 써보고 이리 갈 줄이야. 아이고, 아까운 것. 근데 그 표 환불 되지? 우리 의사 아들내미가 환불은 했는가 모르겠네. 장례식 한다고 가뜩이나 돈도 나갔을 건데. 그러게 관은 뭐 그리 비싼 걸로 맞춰.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의사 아들내미가 워낙에 착해 빠져가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자식 자랑 겸 팔자 타령은 옵션이오.

 

  「오메, 근데 아가씨 밥은 제대로 먹긴 해? 팔뚝이 완전 얼라 팔뚝 같구먼. 그 뭐시냐, 다이어튼지 뭔지 하는 거 아녀? 삐쩍 말라가지고 할 필요도 없어 뵈는데. 이렇게 뼈밖에 없이 살아 봤자 나중에 나이 들어서 골병만 들어. 그나저나, 다 큰 아가씨가 혼자 사누? 애인은 없고? 인생 헛살고 있네. 쯧쯧. 젊은 애가 왜 그런대.」

 

  남의 자식도 내 자식 보듯 하는 태평양 오지랖까지.

 

  ……아, 위험했다. 지금 울컥해서 대꾸할 뻔했어. 침착하자. 침착해.

 

  은혜는 항시 구비하는 귀마개를 꾹꾹 눌러 끼웠다. 귓구멍이 아릴 정도로 밀어 넣고서 자기 자신을 서서히 세뇌시키기 시작했다.

 

  자, 레드 썬.

 

  나는, 아무 것도, 안 들린다.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대로, 잠이 든다. 잠에 빠져 든다. 빠져 든다. 빠져 든다.

 

  빠져든다…….

 

  「깔깔깔깔깔!」

 

  하지만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홀로 열심히 웃고 떠드는 아줌마의 목소리는 새벽이 다 지나도록 은혜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아주 혼잣말을 못해서 죽은 귀신인가 보다.

 

  「야야, 이 년아. 아가씨야. 인제 인나 봐라. 하여튼 간에 요새 젊은 애들은 어른 말씀하시는데…….」

 

  어쩌구 저쩌구 이러쿵 저러쿵 옹알 왱알.

 

  “……하아.”

 

  안 되겠어. 은혜는 진득한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훔쳤다. 미안해요, 밥 아저씨. 813마리나 빌려 주셨는데 오늘은 그른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매일이 불면의 연속이었던 그녀에게 밥 아저씨는 항상 큰 힘이 돼주었지만 아무래도 무적은 아니었다. 오늘처럼 막강한 상대를 만난 날이면 미어터질 듯한 양 울타리마저 뒤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얀 손수건을 휘날리는 밥 아저씨를 끝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깨어난 은혜가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뒷일이고 뭐고, 일단 잠 좀 자자!

 

  "내일 소원 들어줄 테니까 제발 닥쳐요!"

 

  그녀는 정말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자그마치 일주일을 제대로 못 잤다. 미치기 일보 직전이란 말이다.

 

  「어머머머, 정말?」

 

  아니나 다를까.

 

  「진짜지, 진짜? 딴 말하기 없기야? 내가 원하는 거 들어줘야 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아줌마의 음성은 잔뜩 들떠있었다. 혹시 은혜가 말이라도 바꿀까 애가 닳은 듯 했다.

 

  「아가씨, 거짓말하면 진짜 천벌 받아.」

 

  "허헛."

 

  은혜는 말 그대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귀신 입에서 천벌이라니.

 

  「내 소원 들어 주는 거 맞지, 응?」

 

  "아, 알았어. 알았다고요."

 

  그러니까 제발 좀 닥쳐줘요.

 

  기어코 은혜에게서 들어 주지 않으면 삼대가 멸하리란 맹세까지 받아 낸 뒤에야 아줌마는 입을 다물었다. 귀신과의 불평등 조약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뭔가 엄청 손해 당하는 느낌인데. 아, 몰라. 졸려서 미칠 것 같아. 이러다 저 귀신이랑 제삿밥 겸상하게 생겼어.’

 

  지난주부터 서점 개업 준비로 날밤을 센 은혜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자자. 일단 자는 거야. 숙면, 그것은 행복이지. 은혜의 입가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이 해맑게 빛나고 있는 꿈나라에 심신을 풍덩 빠트렸다. 내일 할 일을 굳이 오늘 생각할 필요는 없다, 는 좌우명을 되새기며.

 

  안녕, 밥 아저씨. 저 왔어요. 울타리가 결국 터졌네요. 죄송해라……. 어머나, 파트라슈. 오늘도 양 떼를 잘 몰고 있구나. 응? 아무리 들어도 네 이름이 뭔가 불길하다고? 이런, 착각이란다. 다만 남자 아이와 성당 같은 데는 얼씬도 마렴.

 

  셀레나 아주머니는 오늘도 여전히 기운차시군요. 옆 집 에밀리 아주머니와 그만 좀 싸우세요. 네? ……그 여편네가 머리털을 한 움큼 뽑아 갔다구요? 에이. 그럼 아주머니께선 두 움큼 뽑아 오셨겠죠. 언제나 두 배로 갚아 주시잖아요.

 

  으음, 이 향기. 다니아 아주머니가 또 파이를 숯덩이로 만드셨나 봐요. 저기 존 아저씨가 핀잔주시다가 부지깽이로 얻어맞고 계시네. 호호호. 꿈나라는 오늘도 평화롭군요.

 

  아아, 여러분. 정말 아름다운 밤이에…….

 

  「일어나ㅡ!」

 

  "꺅……!"

 

  은혜는 눈도 못 뜬 채 침대를 굴러 다녔다. 귀도 정신도 얼얼하다. 고막에 왠 날벼락이 내리 꽂히는 고통이었다.

 

  「어쩜, 젊은 처자가 이 시간이 되도록 잘 수가 있나 몰라.」

 

  익숙한 목소리였다. 간밤에 은혜를 괴롭히던 실체 없는 목소리.

 

  「얼른 일어나서 씻고 밥 먹어!」

 

  "어우……."

 

  귀 째지겠네. 나는 아마 제 명에 못 살 거야. 한참을 끙끙대던 은혜가 몸을 일으켜 시간을 확인하자 시계의 짧은 바늘은 정확히 숫자 6을 가리키고 있었다.

 

  푸스스. 은혜의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올바른 생활 패턴을 가진 편은 아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겨우 6시까지 잤다고 사람을 고함 쳐서 깨워? 저 때문에 몇 시간 자지도 못했는데? 양심도 가책도 육신과 같이 죽었나 보지?

 

  「얼른 얼른 움직여!」

 

  눈을 뜨자마자 보이지도 않는 칭얼거림에 시달리는 게 익숙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렇게 살아 온지도 벌써 20여 년째였다. 귀신과의 불평등 조약을 채결한 것 역시 처음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번이지.

 

  잠에 취해 책임지지도 못할 약속을 던진 적이 꽤 많았다. 혹은 하도 찡찡대니 어쩔 수 없이 붙잡혀 몇 날 며칠 내내 하소연을 들어준 적도 있었다.

 

  그래,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들린 순간부터 은혜의 인생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처음에는 무시도 해보고, 차근차근 대답도 해보고, 아예 윽박부터 질러도 보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돼주지 못했다.

 

  그저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알아서 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들리는 것을 듣지 않는 훈련이 필요했다. 항상 귀마개나 이어폰을 가까이 뒀고, 웬만한 소리에는 반응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들리지 않는 ‘척’하는 데에 도사가 되었다.

 

  하지만 귀신이 괜히 귀신이겠는가.

 

  유독 감이 좋은 귀신들은 곧잘 그녀에게 들러붙었다. 그럼 은혜는 그들을 요령 좋게 상대해야 했다. 요점은 ‘적당히’였다.

 

  귀신을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대꾸하며, 적당히 쫓아 보낸다.

 

  그렇게 점차 귀신과의 삶에 익숙해져왔다.

 

  「빨리 소원 들어줘!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러나 아무리 익숙해져도 귀신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이……, 망할 귀신같으니!"

 

  주의 은혜를 받은 여자, 주은혜. 오늘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 귀들의 은혜로운 주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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