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터진건 그날 저녁이었다. 난 평소처럼 손님들을 응대하고 비는 시간에는 레이첼에게 업무를 가르쳤다. 조금 수위가 강한 꿈을 원하시는 손님의 방에는 내가 대신 들어가 청소를 했고 레이첼에게는 대부분 좋은 손님들 쪽으로만 양도했다. 그러자 내 배려를 조금은 눈치챈듯 레이첼이 내게 감사했고, 거기까지는 좋았다. 난 혹시라도 청소가 덜 된 방이 있지 않을까 한번 더 순찰을 했고 그 탓에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고 말았다. 연리씨와 세리씨가 숨기고 있는듯한 소녀. 언뜻 본 소녀는 마치 하얀 눈꽃과 같았다.
연하늘색 머리, 연하늘색 눈동자, 시리도록 아름다운 소녀
나는 그 뒤 재빠르게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어느샌가 나타난 세리씨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너도 결국 보고 말았네, 이번엔 꽤 맘에 들었는데 아쉬워."
그 순간 몸에서 힘이 빠지더니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떳을 때는 허름해 보이는 창고 안 연리씨가 눈 앞에 있었다. 연리씨는 그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얘기했다.
"결국은 이렇게 됬네, 그러니까 도망갔어야지."
뒤 이어 세리씨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옆에는 아까 본 아름다운 소녀도 같이 있었다. 나는 도망치는건 힘들거라고 생각해서 세리씨에게 얘기했다.
"그 소녀는 누구죠?"
그러자 세리씨가 빙긋 웃으며 내게 얘기했다.
"어차피 죽을 몸이니 알려줄게, 이 아이는 마왕의 딸, 용사가 전리품으로 데려갔지만 용사가 손을 대기 전 누군가의 도움으로 겨우 꺼낼 수 있었지."
"마왕의 딸이라구요?"
"응, 여튼 유감이야, 미안하게 됬네."
세리씨는 날이 서린 검을 꺼내 보였고 날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 줘, 조금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세리씨가 걸음을 멈추었고 나는 소녀를 향해 얘기했다.
"왜 이런짓을 하는거야?"
"우선은 나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나는 마왕의 딸.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더 이상 지켜야할건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어. 그렇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 사람과 마족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어머니가 꿈꾸던 세상이 왔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현실은 우리 탓에 많은 마족들이 노예나 평생 갚지못할 무거운 빚을 안고 살아가고 있어. 난 책임이 있어. 어머니의 딸로써, 군중의 딸로써 그래서 난 아직 죽을 수가 없어. 살아남아야만해. 하지만 난 아무런 힘도 없고 모습을 드러낼수도 없어. 그래서 쥐 죽은듯 힘을 키우며 몇번이고 너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 기억을 지우고 돌려보냈지.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야. 이미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거든. 지금에 와선 어느쪽이든 누군가가 희생되지않으면 이 결말은 비극으로 치닫게 될거야.. 그래서 오늘은 너랑 나 둘중에서 한 사람은 죽어야만해. 솔직히 다른 방법이 없는 아니지만 난 사람을 신용하지 못해. 몇번이고 내 기대를 어기고 너희같은 어른들은 날 팔아넘기려고했으니까. 그 탓에 여기 있는 세리랑 연리가 몇 번이고 상처와 희생을 대가를 치뤄야만했어. 그러니 차라리 네가 처음부터 없었던 편이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결말이야. 이정도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물론 그런다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소녀가 말을 마치자 다시 세리씨가 날 향해 검을 겨누었고 나는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 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 창고의 문이 열리고 레이첼이 모습을 드러내 얘기했다.
"서..선배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레이첼은 곧장 내 앞으로 뛰어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마왕의 딸이라는 소녀는 곤란해 했다. 자신의 말이 맞다는걸 증명하기 위해선 마족 소녀를 베어선 안되고 그렇다고 나를 살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순간 세리씨가 세뇌로 레이첼을 내게서 떨어트렸고 날 향해 검을 휘두르며 얘기했다.
"너의 이름은 내가 기억할게."
그러자 순식간에 지배가 풀린 레이첼이 날 대신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걸 본 마왕의 딸은 세리를 말리려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레이첼을 대신해 몸을 틀었고 세리의 본 목적대로 내가 등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일격에 죽지는 못했고 고통만이 내게로 전해져왔다. 그러자 세리씨는 곧바로 검을 고쳐잡아 날 향해 다시 휘둘렀다. 그 순간 소녀가 소리치는 동시에 방 안에 서리 폭풍이 몰아쳤고 세리씨의 팔이 얼음 동상처럼 굳어갔다.
"그만"
그러자 세리씨가 소녀에게 얘기했다.
"어설픈 동정은 좋지 않아요."
그에 소녀가 곧장 대답했다.
"그런게 아니야. 묻고 싶은게 있어, 넌 왜 저 아이를 감싼거지?"
나는 그 말에 바로 대답했다.
"이 아이는 아무런 죄도 없잖아."
소녀는 그 말을 듣고 세리의 동상을 푼 뒤 세리에게 얘기했다.
"그만하자."
"하지만.."
"너도 사람을 죽이는게 내키지 않잖아, 무엇보다 믿을만한 사람인거 같아.자신이랑 관계없는 타인을 감쌀줄 아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없어."
말을 마친 소녀는 곧장 내게 치료 마법을 걸며 얘기했다.
"미안해."
"사람을 베어놓고 미안하다면 다냐."
"처음에는 대화를 시도 했어, 하지만 돈에 눈이 먼 그는 나에 대한 정보를 팔려고 했어. 두번째는 부탁을 했지, 하지만 그는 끝내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어, 그 탓에 책임은 세리와 연리에게 늘 돌아왔지. 그날 이후 우리는 사람에 대한 신용을 잃었어. 그리고 네가 오게 된 거야. 하지만 이런 말은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게 할 수는 있지만 너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는 되지않아. 그러니 앞으로 나에 대해서 숨겨준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을 해주도록 노력할게."
그 순간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무슨 일 있는거야?"
그러자 내가 그에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는?"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벙쪄 있자 밖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스 퀘이크."
뒤 이어 거대한 울림과 함께 창고 옆 벽면이 박살나며 파편이 가루로 흩어졌다. 그리고 나서 부서진 틈 사이로 주황색 머리의 드워프 소녀가 난입해서 얘기했다.
"이웃끼리 싸우면 못쓰지!"
난 그에 손을 들고 얘기했다.
"아, 저기 상황 끝났는데요?"
그러자 드워프 소녀가 가볍게 웃어보이며 얘기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너무 호탕하잖아! 그리고 도와줄거면 조금 일찍 오던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얌마!"
말을 마친 내가 뒤를 돌아 보자 마왕의 딸이라고 부르는 소녀는 어느샌가 사라져있었고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정리되었다. 드워프 소녀는 세리씨의 권유로 차를 마시러 같이 집안으로 들어왔고 그렇게 잠깐의 평화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을 찰나 문 앞에 말 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불청객이 찾아왔다. 세리씨와 연리씨는 그 대상이 누군지 짐작이 가는듯 이내 인상을 찌푸리는 동시에 안색이 조금 새파랗게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