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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질풍마검사
작가 : 인기영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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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두고 체인지 소울을 발동시킨 팔라칸.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그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질풍 마검사 이안으로 거듭났다.
하얀 매를 등지고 싸우는 그의 무위가 눈부시게 펼쳐진다.

 
제 24 화
작성일 : 16-07-21 13:14     조회 : 647     추천 : 0     분량 : 5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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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만찬회의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을 무렵.

 나는 가브레하 왕국에서 몸소 찾아온 베랄드 진 팔라스티앙 왕자와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클라드 왕국이 일 년 만에 이토록 발전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나는 겸양을 표했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제 겨우 바람 앞의 등불 신세를 면한 것이다.

 지금도 바론 왕국이 딴생각을 품는다면 당장에 짓밟히는 나라다. 하지만 다행히 세스타스 국왕은 식량난의 손쉬운 해결을 위해 클라드 왕국을 두고 보는 중이었다.

 물론 전쟁을 일으켜 다 쓸어버려도 상관없겠지만, 괜한 소모전은 피하려는 듯했다.

 더불어 바론 왕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타르가를 수입하는 데 지출하는 돈은 그다지 큰돈이 아니었다.

 세스타스 국왕은 클라드 왕국을 바론 왕국의 하청을 듣는 나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위협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나보다 3살이 어린 가브레하 왕국의 왕자는 진심으로 존경을 담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금발 머리에 벽안을 지닌 귀염성 있게 생긴 얼굴에는 공손함이 잔뜩 묻어 나왔다.

 아직 세상의 때가 타지 않은 순진한 왕자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베랄드 왕자의 뒤에 서 있는 호위 기사는 대단히 강인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였다.

 이제 갓 20대 중반을 넘어선 듯한 외모인데, 글루번을 훨씬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풍겨지고 있었다.

 다크터퀴스의 눈동자와 청색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내의 인상을 더욱 차갑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몸에는 간단한 방어구만 걸쳤고, 허리에 롱 소드 한 자루를 차고 있는 게 전부였다.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유려한 얼굴 덕분인지 고귀함이 온몸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그는 왕자의 뒤에서 날 바라보며 한마디 말이 없었다.

 “호위 기사인가 보군요.”

 “아, 네. 우리 가브레하 왕국의 자랑인 소드마스터 아키넬 데미테르 경입니다.”

 “소드… 마스터라구요?”

 “네.”

 베랄드 왕자는 자랑스럽게 아키넬을 소개했다.

 소드마스터라 함은 검에서 검기를 일으킬 수 있는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다.

 검의 극의에 가장 근접한 자들을 소드마스터라 부른다.

 소드마스터라는 존재는 너무도 귀해서 바론 왕국에도 2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왕국에는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가브레하 왕국에 소드마스터가 존재한다니?

 소드마스터 한 명이면 능히 1만의 병사를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내가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달해봤으니 충분히 잘 알고 있다.

 대단히 조심해야 할 인물이 하나 더 늘었다.

 “소드마스터라니. 클라드 왕국이 발전한 것은 비할 바도 못 되는군요.”

 내 말에 베랄드 왕자가 수줍게 웃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난 부디 이대로 조용히 만찬회가 끝맺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바람에 불과했다.

 쨍그랑!

 “이런 무례한!”

 갑작스런 소란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분노한 얼굴의 헝크 백작과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루페이 마네비올라가 보였다.

 헝크 백작의 옷은 붉은 와인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바닥에는 와인 잔이 조각나 굴러다녔다.

 “이거 죄송합니다.”

 루페이는 잔뜩 술이 올라 있었다.

 나는 다급히 루페이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그냥… 실수를 좀 저질렀을 뿐인데요, 왕자님.”

 “실수? 대놓고 내 옷을 더럽힌 게 실수란 말이야!”

 헝크 백작은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가뜩이나 프리실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그였다.

 하지만 루페이는 기이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이봐, 루페이.”

 난 비틀거리는 루페이의 몸을 잡아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름 끼치도록 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 그것은 감정이었다.

 루페이의 응어리진 감정의 덩어리가 곪아터져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루페이는 내 손을 조심스레 뿌리치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왕자님은 철천지원수라고 느꼈던 복수의 대상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어찌 대처하십니까?”

 그가 말하는 철천지원수란 마네비올라 공작 가문의 영애인 샤를 마네비올라를 겁탈하려 했던 내가 분명했다.

 루페이는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한 번 날 암살하려다 실패한 것에 더욱 분노하고 있는 인상이었다.

 “그토록 증오하고 원망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달라져 버렸을 때 어찌 대처하십니까? 저는… 드디어 그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루페이는 휘적거리며 홀을 나섰다.

 헝크 백작은 그런 루페이의 행태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듯했다.

 “이 나라는 만찬회에 온 타국의 귀족을 이따위로 대접하는가 보군! 내 똑똑히 기억하리다! 일 년간의 번영이라고? 흥! 그게 어디까지 가는지 두고 보겠소!”

 폭언을 쏟아 부은 헝크 백작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기세로 돌아가 버렸고, 프리페라 왕국의 다른 사람들 역시 그를 따라 슬슬 걸음을 돌렸다.

 홀을 나서는 그들의 얼굴에는 언짢음이 가득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가브레하 왕국의 사람들도 모두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우울해진 만찬회 따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모두가 빠져나가고 난 뒤, 휑해진 홀 안에 타국 사람이라곤 세스타스 국왕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좌에서 내려와 착잡해하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그때 세스타스 국왕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만찬회가 엉망이 되었군.”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허!”

 “내가 생각하기에 클라드 왕국은 참 운이 따라주는 나라야. 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은 관심이 가는군.”

 “그렇습니까?”

 세스타스 국왕은 나를 흘끔 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운이 따라주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 그 운… 내게도 나눠줄 생각이 없는가?”

 “보이지도 않는 운을 나눠달라 하시니 난감하군요, 허허허!”

 아버지는 슬쩍 받아쳤다. 세스타스 국왕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단도직입적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이렇게 제안하지. 바론 왕국의 속국으로 들어오지 않겠나?”

 순간, 아버지와 세스타스 국왕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여전히 사람 좋은 낯으로 세스타스 국왕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는 어좌로 시선을 돌렸다.

 어좌의 등받이에는 클라드 왕국의 국기이자 왕가의 표식인 하얀 매가 음각되어 있었다.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듯 기개 있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그 하얀 매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내셨다.

 “하얀 매가 아직도 배고프다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세스타스 국왕은 단박에 제의를 거절한 아버지를 보며 입매를 살짝 일그러뜨렸다.

 “역시 그 아들에 그 아비로군. 하지만 언제까지 승승장구할 수는 없는 법이지. 당장이라도 내가 마음만 바꿔먹으면 어찌 될지 뻔히 보일 거야. 하지만 두고 보는 이유는… 조금 아깝기 때문이랄까?”

 세스타스 국왕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가 다시 아버지를 향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을 동안 최대한 발버둥 쳐 보라고. 어차피 헛수고가 되겠지만.”

 말을 마치며 세스타스 국왕은 아버지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세스타스 국왕의 지금 행태는 완전히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세스타스 국왕의 뒷모습을 보며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데…

 “발버둥 치도록 하지요.”

 아버지의 말이었다.

 세스타스 국왕이 멈칫하며 고개만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론 왕국은 분명히 강합니다. 하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지요. 최후에 살아남는 게 과연 어느 쪽일까요?”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대사를 날리며 세스타스 국왕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그야말로 한 나라의 운명을 어깨에 지고 있는 국왕이었다.

 세스타스 국왕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그대로 홀을 나가버렸다.

 나는 놀란 얼굴로 아버지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정말 이분이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가 맞나 싶었다.

 위엄 있는 수염, 다부진 입술, 늠름한 어깨, 그리고…

 “아버지.”

 “왜 그러느냐, 아들아.”

 아버지는 짐짓 근엄하게 대답하셨다.

 나는 대단히 감동해서 아버지께 말했다.

 “…다리가 떨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어째 끝까지 감동을 주는 경우가 없으시군요.”

 “잘못하면 목 날아가게 생겼는데 감동을 찾느냐? 다음부턴 절대로 객기 부리지 말아야겠구나.”

 나는 감동한 듯 먼발치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귀족 및 관료 대신들의 면면을 살폈다.

 “지금 이 대화… 관료 대신들이 알게 되면 대단히 큰 파란이 일 겁니다.”

 “네가 말 안 하면 되지 않느냐.”

 “꿔간 돈 주십시오.”

 “…비정한 녀석.”

 만찬회는 그것으로 끝났다.

 

 ***

 

 현재 클라드 왕국은 프리페라 왕국과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헝크 백작이 대단한 수모를 받고 돌아갔으니 이를 묻어두진 않을 게 분명했다.

 더불어 세스타스 국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당장 우리나라를 어떻게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영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조금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나라는 가브레하 왕국 정도일까?

 하지만 아키넬이라는 소드마스터는 가브레하 왕국을 감히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조금 발전했다 싶었더니 이래저래 처한 문제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나라 밖은 밖대로, 안은 안대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바로 루페이였다.

 놈은 날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전 국제 만찬회에 참석해서는 뜻 모를 소리를 지껄이다 돌아갔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아직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생각을 접고 다시 마나 심법에 몰두했다.

 4서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틈날 때마다 마나를 모아주어야 한다.

 체검의 수준은 이제 기본기를 무리 없이 발휘할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섰다.

 더불어 가장 약한 기술 몇 개까지 소화하게 되었다.

 기본 체력과 근력도 많이 붙었다.

 그렇다고 근육이 무식하게 커진 것은 아니다.

 나는 마검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쌓는 것이다.

 마검사에게 있어 커다란 근육은 몸을 둔하게 만들 뿐이다.

 마법과 검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계열이니만큼 민첩성이 중요시된다.

 검과 마법을 적절히 섞어 전투에 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 봐서 비대한 근육은 마검사뿐만 아니라 보통 검사들에게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깊이 따져 봤을 때, 마검사에게 비대한 근육이 쥐약이라는 얘기다. 이미 한 번 대마검사의 자리에 올라봤던 나인지라 성장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지금은 마법과 체검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면 제인트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글루번을 넘어서는 것도 코앞이었다.

 한참 마나 심법에 빠져 들어 있던 나는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누구지?”

 “그렌드입니다, 왕자님.”

 “무슨 일이야?”

 “왕자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셔 모셔 왔습니다.”

 나를 보고 싶어 해서 모셔 왔다고?

 오늘 일정엔 개인적인 약속이 잡혀 있지 않을 텐데?

 즉흥적으로 움직인 걸 보니 제법 직위가 높은 귀족이라도 찾아왔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안으로 모시도록.”

 나는 가부좌를 풀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곧 문이 열리며 그렌드와 함께 나타난 이는 황금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였다.

 푹 눌러쓴 후드 안으로는 예순을 바라보는 노안(老顔)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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