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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질풍마검사
작가 : 인기영
작품등록일 : 201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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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두고 체인지 소울을 발동시킨 팔라칸.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그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질풍 마검사 이안으로 거듭났다.
하얀 매를 등지고 싸우는 그의 무위가 눈부시게 펼쳐진다.

 
제 23 화
작성일 : 16-07-21 13:14     조회 : 810     추천 : 0     분량 : 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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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그리어드 섬의 정체 모를 몬스터들은 베르함의 실험으로 태어난 키메라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키메라는 서로 다른 몬스터의 유전인자가 조합되어 태어난 희귀 몬스터를 말한다.

 아무튼 이제 겨우 다크니안을 정벌한 상황에 그리어드 섬까지 노릴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나는 뱃머리를 돌리기로 했다.

 훗날을 도모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섬이… 내가 대마검사 이안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거듭나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

 

 만찬회의 준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나는 마나 심법에 몰두했다.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대자연의 기운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것들을 모두 깨끗한 내 몸 안으로 빨아들였다.

 몸 안으로 모여든 마나들은 저절로 단전을 찾아갔다.

 단전에 자리 잡은 강대한 대자연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다.

 계속해서 단전에 모여지는 마나가 빠르게 덩어리를 불려갔다. 불리고, 불리고, 불리고… 그렇게 늘어나다가 어느 한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

 댐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마나의 홍수가 일었다!

 단전에서 터져 나간 마나의 기운은 내 몸 전체를 훑고 다시 단전으로 와서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이내 또 하나의 고리로 형상화되고… 드디어…

 “삼 서클.”

 난 눈을 뜨며 말했다. 3서클을 이룩한 것이다.

 

 ***

 

 “여기에서 뭐 해? 만찬회에 참석해야지.”

 나는 리네와 함께 프리실라의 방을 찾아갔다.

 리네는 벌써부터 만찬회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런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눈이 곱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리네의 업적이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추세였고, 이는 프리실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들떠 있는 리네에 반해 프리실라는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하기야 프리실라의 들떠 있는 모습 같은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늘 마이페이스에 자존심과 자긍심,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저 아가씨가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하하! 어색하지, 어색해.

 “빨리 가요, 언니~!”

 리네는 프리실라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리네는 프리실라를 아무 스스럼없이 대한다.

 왕자인 나조차도 막역하게 대하긴 좀 어려운데 말이야.

 프리실라 또한 그런 리네에게 화를 내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그저 끌려가 줄 뿐이었다.

 한데, 어쩐지 평소보다도 표정이 더 어두운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만찬회에 참석하기 싫어?”

 그러자 프리실라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즐거워져서 말이에요.”

 “무슨 일?”

 “사상 최악의 신파극이 벌어지겠군요.”

 그때까지도 나는 프리실라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

 

 왕궁의 넓은 홀은 벌써 만찬회에 참석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클라드 왕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넓게 지어진 공간이 바로 왕궁의 홀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홀이 3분의 1 이상 차는 걸 보지 못했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그런데 역시 국제 만찬회는 달랐다.

 프리페라 왕국과 가브레하 왕국,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바론 왕국의 유명 인사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더군다나 더 놀라운 것은 세스타스 국왕이 직접 행차한 것이었다.

 세스타스 국왕은 아직까지 그다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바론 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삼국의 사람들은 감히 세스타스 국왕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쩔쩔맸다.

 그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기 바빴다.

 나도 괜히 세스타스 국왕과 얽히는 게 싫어 조용히 피해 다니려 했다.

 그런데 지지리 복도 없지.

 “이안 왕자가 아닌가?”

 세스타스 국왕이 내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아주 또박또박.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난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래간만입니다, 세스타스 국왕 폐하.”

 “그렇군. 간 큰 애송이.”

 세스타스 국왕과 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주변의 모든 시선은 우리 두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나는 식탐에서 멀어질 나이가 되었지. 그리고 코딱지만 한 나라에서 준비한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와인 말고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네.”

 “아… 예, 그러시군요.”

 “역시 생각했던 것만큼 형편없는 만찬회로군. 아니, 약소국이니만큼 국제 만찬회를 개최한 것만으로도 칭찬해줘야겠지. 한데, 이렇게 보잘것없는 만찬회에 내가 왜 찾아왔을 거라 생각하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듭니다만.”

 세스타스 국왕이 비리게 웃으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부터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어여쁜 여인 한 명이 내게로 걸어왔다.

 그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내 가슴은 두근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바로 내가 강간하려 들었던 메르나 공주였다.

 나를 바라보는 메르나 공주의 얼굴은 온갖 치욕과 분노에 젖어 있었다.

 귀밑까지 붉게 물든 얼굴이 얼마나 수치스러워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항하며 내 앞에 섰다.

 과연 세스타스 국왕의 핏줄이라는 건가?

 세스타스 국왕은 메르나 공주에게 시선을 둔 채 내게 말했다.

 “사과해라.”

 좌중이 조용하던 찰나, 세스타스 국왕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한마디는 홀을 가득 채웠다.

 만찬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이목이 내게 몰렸다.

 과연 국제 만찬회를 연 왕국의 왕자가 타국의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릴 것인지 궁금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이것은 한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나는 어좌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는… 그저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조금 난감했다.

 사과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사과를 한다면 나라의 위세가 급격히 떨어지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바론 왕국에 우리나라를 짓밟을 명분 하나만 얹어주는 셈이었다.

 굳이 선택을 하라면 아무래도 사과를 하는 쪽이 낫겠지.

 적어도 나라가 뭉개지진 않을 테니.

 마음을 굳게 먹은 내가 사과를 하기 위해 천천히 무릎을 꿇으려던 찰나…

 “프리실라!”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모든 이의 시선은 새로운 사건을 일으킨 한 중년 남자에게 돌아갔다.

 하늘이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에 난 공주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어린 날의 제 과오를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과를 마친 후 일어섰을 때 공주는 대단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일국의 왕자가 평민이 귀족을 대할 때나 올리는 인사법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

 공주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진심은 분명히 전해졌으리라.

 바론 국왕도 내가 사과하는 것을 똑똑히 봤다.

 때문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항상 그렇지만 운이 좋군, 애송이 왕자.”

 “그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살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흥!”

 콧방귀를 뀐 세스타스 국왕은 내게서 멀리 떨어지며 혼잣말을 했다.

 “어쩌면… 저 녀석이 정말 강한 놈일지도 모르겠군.”

 날 두고 한 말인가? 하하하하! 그럴 만도 하지.

 세스타스 국왕이라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난 악운에 정말 강했단 말이…….

 “프리실라! 네가… 감히 네년이 살아서 돌아다니다니!”

 또다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프리실라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데. 혹시?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 오만하게 그를 올려다보는 프리실라가 보였다.

 프리실라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오래간만이군요, 아버지.”

 아버지?

 아, 그럼…

 저 목소리 큰 근육 덩어리가… 헝크 백작인가?

 하지만… 헝크 백작과 프리실라의 외모는 너무나 딴판이다.

 훌러덩 까진 대머리에 두툼한 눈두덩이하며, 각진 얼굴은 아무리 봐도 조물주의 미적 센스를 받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프리실라는 내가 보아온 여인 중 최고의 미모를 자랑한다.

 헝크 백작이 하룻밤 상대로 안았던 하녀에게서 태어난 것이 프리실라라고 했으니…

 그녀의 어머니가 절세미인이겠군.

 헝크 백작은 프리실라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더니 소리쳤다.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그러자 프리실라는 귀를 후볐다.

 “귀청 떨어지겠네. 그럼 헝크 백작이라 부르지요.”

 “어디 천한 계집이 내 앞에서 이리 뻣뻣한 작태를 보인단 말이더냐!”

 순간, 프리실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천한 계집? 어디의 누가? 나는 클라드 왕국의 남작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귀족의 피가 이제는 내게도 흐른다는 얘기죠.”

 “뭣이? 네가 귀족이라고?”

 “믿기 힘들면 믿지 마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프리실라는 특유의 비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대치해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낮에 프리실라가 한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최악의 신파극이 벌어진다더니 결국엔 이렇게 되는군.

 그래도 내가 데려온 사람이니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프리실라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헝크 백작의 시선은 자연스레 내게 고정되었다.

 ‘너는 또 뭐냐?’라고 묻는 듯한 눈빛에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프리페라국의 명망 높은 귀족이자 기관의 대가라 불리시는 헝크 백작님. 저는 클라드 왕국의 왕자, 이안 하르넬 지크프리트라고 합니다.”

 “오오~ 그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 이번에 다크니안을 정벌한 것도 왕자님의 활약이라 들었소이다. 나도 정식으로 소개하겠소. 프리페라 왕국의 렌트웰 헝크 백작이오.”

 나는 헝크 백작이 내민 손을 가볍게 쥐고 흔들었다.

 “한데, 드루와일 남작과 안면이 있으신 듯합니다?”

 내 말에 헝크 백작은 콧잔등을 씰룩이며 프리실라를 흘겨보았다.

 “드루와일? 제 어미의 성을 가져다붙였군. 한데… 이 계집이 정말 남작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번 다크니안 정벌 때 오크들의 노예로 붙잡혀 있었습니다. 본래는 본국으로 돌아간다 했으나 제가 그녀의 능력을 높이 사 망명하길 권했습니다. 헝크 백작님과 소중한 인연이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소중한 인연? 재미없는 농담이군. 잘 가지셨소. 난 이 계집과 일말의 정으로도 얽혀 있지 않은 사람이오.”

 이에 잠자코 듣던 프리실라가 비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헝크 백작은 사납게 프리실라를 노려보다가 이를 갈고는 등을 돌려 멀어졌다.

 “후우! 프리실라, 당신과 함께 있으면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제 기가 더 산 것뿐이에요. 한창 재밌던 와중이었는데 기분 잡쳤네.”

 프리실라는 들고 있던 와인을 벌컥 들이마시더니 파티장 밖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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