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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호박 속 미녀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4.6
호박 속 미녀 더보기

에브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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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병에서 악마를 꺼내 준 답례로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드는 손수건을 얻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로맨스(?)입니다.

 
호박 속 미녀4.
작성일 : 16-04-09 17:33     조회 : 581     추천 : 0     분량 : 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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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빛으로 광기에 매몰된 얼굴을 창문에 투영시킨다.

 나는 썩썩 썰리는 호박을 집요하게 노려보며 세공에 열을 올린다.

 떨어져 나가는 조각을 주머니 안으로 가득, 가득 집어넣는다.

 그녀는 괴로워하는 것이 역력한 얼굴로 몸을 비틀며 눈물을 흘리지만 난 더 이상 멈추지 않고 세공에만 집중한다.

 그녀의 몸에서 분수처럼 핏물이 흘러내린다.

 호박이 다시 채워진다.

 그녀의 몸에서 피가 사정없이 흘러넘칠수록 나는 환희에 들뜬다.

 더욱 신들린 것처럼 열정적으로 호박을 깎는다.

 그럴수록 호박의 빛은 요염한 붉은 색으로 변해간다.

 몇 분 후.

 이제 더 이상 호박은 온전한 노란 색을 갖고 있지 않다.

 흔치 않은 매끈한 붉은 빛의 요염한 호박이 되어 교교하게 빛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흔치 않은 붉은 빛 호박이 얼마나 더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을지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계산은 끝났다. 호박의 값은 천정부지로 뛸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이 비쌀 것 같다. 최소한 지금 팔아치우는 가격의 이십 배는 넘겠지. 기쁘다.

 술에서 깨어나면 미친 짓이었다고 나 자신을 혐오하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기쁨에 들떠 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보석을 갈아서 세공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 자유롭다.

 온전한 희열로 충만하다.

 누구의 강압도 없는 순수한 의지에 의한 예술. 이런 기쁨을 무려 한 달 가까이 지속 해 왔다는 것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신난다! 와하하하!”

 나도 모르게 비명 같은 웃음소리가 비어져 나온다.

 그러던 그 순간.

 나는 여태껏 들리지 않았던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어쩐지 음산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하지 말아요. 그러지 마!

 “아냐. 이건 꿈이야. 착각이라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렇게 아프게 해?

 “안 들려! 안 들려!”

 죽이지 마.

 “이건 환청이야!”

 환청이 아니야. 난 항상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잖아. 당신이 듣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지.

 “아니. 환청 맞아! 내가 요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환청을 듣는 거야.”

 그렇게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어. 하지만 난 이 말을 꼭 해야겠어. 당신, 날 두 번 죽일 셈이야? 여태까지 정말 잘 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왜 이렇게 돌변 한 거야?

 ‘내가 언제 널 죽였다는 거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는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며 내게 말한다.

 날 두 번 죽이지 마.

 “난 널 죽인 적 없어!”

 날 두 번 죽이지 마.

 “널 죽인 적 없다니까?”

 넌 벌을 받게 될 거야. 또다시 날 죽인다면.

 “내가 언제…….”

 아파. 너무 아프다고.

 ‘아파? 넌 진짜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 인간이 아닌데, 왜 아프다는 거지?’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어떻게 네가 아플 수 있어. 어떻게 허상인 네가…….’

 나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제발 날 두 번 죽이지 마.

 위이잉-

 살려줘. 아악-! 날 조심스럽게 다루겠다고 했잖아. 그 약속, 설마 잊은 거야?

 “난 내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도 못 지키고 한 달을 버텼어. 더 이상은 그러기 싫어.”

 나는 두려웠지만 객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절대로 너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고, 난 더 이상 네게 휘둘리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억누르지 않겠다고.

 그러자 그녀는 더없이 무섭고도 서글픈 눈을 하고 소리쳤다.

 이 나쁜 새끼!! 저만 아는 이기적인 새끼!! 넌 항상 그렇게 네가 원하는 것만 취할 줄 알아. 그래서 사람들이 다치는데도, 항상. 넌 왜 변하지 않고 항상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건데?

 그녀가 뭔가 안다는 듯이 소리친다.

 너 때문에 난 왜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해. 죄를 진 건 너인데, 왜 내가…….어째서 나만 이렇게…….

 “안 들려.”

 제발 들어 줘. 제발 멈춰줘. 아악-!

 호박 속 그녀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다. 그녀에게서 점점 더 많은 혈액과 체액이 흘러나오며 그녀의 몸을 감싸다가 호박의 일부로 변화한다.

 그녀가 물속에서 질식사 한 시체처럼 점점 호박 안에서 둥둥 뜨기 시작한다.

 피가 넘쳐흐르고 몸이 부풀어 오른다.

 마치 정말 시체라도 되는 것처럼.

 “아냐. 이건…….착각이다. 착각이야.”

 살려줘. 살려줘. 살려…….

 목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몇 분 후.

 헐떡이던 숨소리조차도 이젠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호박을 생산해내던 그녀의 눈물과 핏물도 이젠 더 이상 없다.

 모든 게 굳어버린 채, 그녀를 감싸고 있는 기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끊임없이 호박을 생산하던 그녀의 눈물과 핏물도 이제는 딱딱하게 굳은 채로 더 이상 호박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게 왜 이러지?’

 모든 것이 멈추고 굳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못 가서 그녀의 몸에서 나온 핏물은 안에서부터 새카맣게 변해 나간다.

 썩은 냄새가 풍긴다.

 시체 썩은 냄새와 같은 아주 고약한 냄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호박! 내 호박이…….’

 호박이 썩는다. 이제 더 이상 식물이 아닌 보석임에도 안에서부터 완벽하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건질 것 없이 철저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내가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그녀가 죽은 것은 안타깝지 않았다. 어차피 진짜가 아니니까.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는 다분히 두려운 감정이 있었지만 기분 좋게 술을 마셨을 땐 그녀를 향한 어떤 감정조차 나를 좌지우지 할 수 없었다. 온전히 나로서 군림하는 순간이었는데…….대체 무엇이 잘못 되어서 내 호박이 이렇게 썩어버리는 거지?

 “안 돼! 썩지 마. 썩으면 안 돼! 야,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그녀에게 소리쳐 봤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미약한 소리도 내지 않는 여자의 몸은 점점 새카맣게 변해갈 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내 얼굴이 안타까움과 경악으로 물들어가고 있을 때,

 점점 고약한 썩은 내를 풍기던 호박이 계란껍질처럼 ‘파사삭’ 부서져 내렸다.

 시체 썩은 냄새를 풍기면서.

 그리고 이어서 보인 것은…….그녀. 아니, 언제 죽은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된 시체 한 구 였다.

 뼈가 되다시피 썩어버린 시신. 그 주변을 막처럼 둘러싸고 있는 노란 점액질.

 한 때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었을 골격과 거의 다 부식 되어버린 옷, 머리칼이 그녀가 적어도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아니, 이건!”

 그러다 난 경악하고 말았다.

 내가 알고 있는, 절대로 여기 있어선 안 되는 여자의 물건이 그 시체의 머리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고 노란 방울이 달린 머리 삔. 조악하지만 내가 19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호박 머리핀이 거기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었다.

 ‘저 시체가…….그러니까.’

 그제야 난, 망각 속에 밀어 넣고 있던 기억 한 자락을 꺼내 볼 수 있었다.

 사실상 내 첫 살인이 있던 날의 기억.

 절대로 내가 그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치욕스러운 기억이 머릿속으로 무참하게 밀고 들어왔다.

 내 나이보다 다섯 살 많은 여자였지만 몹시 사랑했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공방에서 조수로 일하던 그녀와의 만남은 사실상 밖에서 이루어졌고, 첫 만남은 아버지가 아닌 내가 더 빨랐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몇 년 째 사귀어 온 연인이라는 사실은 공방 안의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 나이 열네 살. 그녀 나이 열아홉에 만났고, 그렇게 5년간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오다가 그녀가 공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더욱 친밀해진 관계였었다.

 나는 그녀와 결혼까지 하고 싶을 만큼 몰입 해 있었고, 그녀역시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아닌 아버지를 택했다.

 “네가 가진 게 뭐야? 네가 내게 뭘 해 줄 수 있는데! 같잖은 오기나 부리면서 아까운 보석을 작살 낼 줄만 알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잖아!!”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애송이인 나보다, 돈 많고 능력 있는 아버지 쪽을 택했다.

 사랑한 건 우리였는데, 어느 틈에 나는 떨어져 나가고 아버지와 그녀가 하나로 이어져 버렸다.

 연인이었던 여자를 늙은 아버지의 새 여자로, 새어머니로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주변이 뿌옇게 흐려졌다.

 함께 한 건 우리였는데……. 어째서 우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용기란 용기를 다 끌어 모아서 청혼을 했지만 그녀는 냉랭한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우린, 안 맞는 것 같아. 넌 너무 보석 아까운 줄도 모르고 제대로 사는 게 뭔지도 알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네게 평생을 맡길 수 있겠어? 보석에 이렇게 큰 상처를 주는 네가 날 상처 주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어.”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석을 과감하게 세공하는 것이 어떻게 이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순간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가당치 않은 이유를 들어서 이별을 고하는 그녀를 처단해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그때 그녀가 조금 더 부드럽게 납득 시켰다면…….어쩌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만 뒀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그녀가 아버지와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내 보석 반지에는 기뻐하지 않던 그녀가 아버지의 심플하고 커다란 보석 반지에는 눈물마저 글썽이는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그녀를 포기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잘못은 그녀가 한 거였다.

 내가 아닌 그녀가.

 그런데…….

 ‘그녀의 시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녀의 시신은 아주 깊은 산중의 나무 밑에 묻어놔서 아무도 모를 텐데. 어떻게…….어떻게 이게 내게로 온 거지? 이 여잔 실종 처리 된 채로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여자인데 어째서 이 시점에 이 여자가……. 이건 꿈일 거야. 악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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