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빼앗긴 신의 아이들
작가 : 가브리엘
작품등록일 : 2017.5.19

살아있는 모든 자의 왕이자 신앙의 수호자로서
천 년 넘게 세상을 지배하던 라티움 제국의 콤네노스 가문이 무너져 갈 때
작은 나라 아키엔의 나이시아 가문과 제국의 방계인 앙겔로스 가문이 일어섰다.

꺼져 가는 촛불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콤네노스 가문과
잃어버린 이름의 신과 오래된 종교를 받아들인 나이시아 가문
미쳐버린 왕을 폐하고 제국의 계승권을 주장하는 앙겔로스 가문의

장구한 천 년 역사의 수도이자 신이 내린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노플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한 결전이 시작되리니…….

 
1. 아키엔 - 08
작성일 : 17-05-21 13:33     조회 : 291     추천 : 0     분량 : 841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놔! 이거 놓으란 말이다!”

 

 오르무스 변경백과 칼레인은 형장으로 끌려가며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에는 제 발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교수대가 세워진 곳에는 봉신들이 온몸을 엄습하는 공포에 압도당해 있었다. 그들의 목에 걸린 교수대 밧줄이 영원한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미리 왕의 밀명을 받아 준비하고 있었던 형벌 집행인들은 근위대로부터 제발 받아달라는 눈빛에 응답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변경백과 칼레인을 인계받았다. 검은색의 옷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던 이들은 눈만 바깥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형을 집행하는 자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가 백작이건 심지어 이 나라의 왕위계승자이건, 그들에게는 현 왕의 명령이 절대적이었다.

 

 “서둘러라. 폐하께서 오실 것이다.”

 

 집행장의 차가울 정도의 낮은 목소리가 울리자 그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이미 그들이 무슨 형벌을 받을지 알현실에 들어와 있던 자가 날렵하게 전달했기 때문에 아무 망설임이 없었다. 두 눈을 도려내기 위해서 오르무스 변경백은 형틀 위에 뉘인 채 묶여 버렸다. 아무리 눈을 희번덕거리며 당장 중지하라고 난리를 쳐도 들리지가 않는 듯, 그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발악의 극을 달리고 있는 변경백과 달리 칼레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은 형장 저 안쪽에 방치된 거대한 기둥과 형틀을 향했다. 눈동자에 공포감이 피어올랐다.

 

 예전에 한번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어렸기에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봉신들의 대사병 소유 금지에 대해 대영주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때였다.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지나 역모와 반란이 진압된 뒤,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역에 대한 본보기를 확실히 보이기 위하여, 그들은 두 눈이 뽑히고 혀가 잘린 뒤 핏물을 줄줄 흘리며 저곳에 하체가 고정됐었다. 그 뒤 떨어져 내리던 거대한 추와 귓가를 찢어발길 듯 울려 퍼지던 비명…….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칼레인은 온몸을 옭아매고 있는 자들의 포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그가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한 들 여러 장정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형벌 집행인들은 망설임 없이 그를 형틀로 데려갔다. 몸통이 묶이고 허리가 묶인 뒤 팔이 뒤로 돌려 묶였다. 작은 칼이 휘둘러지자 입고 있는 바지가 찢어져 나갔고 그의 치부가 드러났다. 집행인이 손을 뻗어 그의 음낭을 움켜잡자 왕자의 입에서 저주와도 같은 폭언이 쏟아졌다. 그 기세가 하도 흉흉하여 집행인들도 잠시 머뭇거렸으나 왕과 봉신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서 하라는 집행장의 강렬한 눈빛도 함께 날아들었다.

 

 “크윽!”

 

 순간적으로 몸통을 관통하는 듯한 찌릿한 고통에 왕자의 반항이 잠깐 멈춘 사이, 그의 음낭은 형틀 위의 고정대에 순식간에 채워져 버렸다. 검은 천으로 그것을 가린 뒤 형 집행인들이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알현실에 있던 사람들이 형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이내 왕이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조금 전에 보았건만, 십 년은 더 늙어버린 듯한 초췌한 얼굴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파리하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자들에 대한 분노는 더는 보이지 않는 듯싶었다.

 

 “혀, 형님! 형님, 살려주십시오!”

 

 변경백은 단번에 왕의 마음이 약해져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생애에 이렇게 자신의 동생이 형틀에 묶여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을 터. 게다가 아들까지 저렇게 비참한 꼴로 묶여 있으니 나이시아 12세의 마음은 필시 흔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형장에 들어섰음에도 그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조금 전처럼 불같이 성을 내며 형을 집행하라 소리치던 기세가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희망이 사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왕의 시선이 교수대로 향했고, 들어 올려진 오른손이 신호를 보내자 봉신들의 몸이 허공에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벌레처럼 부들부들 떨며 살기 위해 발악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 신하들은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일부는 변경백 쪽으로 눈을 돌렸다. 경멸과 분노,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 담긴 눈빛들이었다.

 

 “혀, 형님?”

 

 자신을 바라보는 나이시아 12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아니, 감정을 담을 필요를 못 느끼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우는 날 이슬이라도 머금고자 나왔다가 사람에게 짓밟혀 죽어버린 달팽이라든가 꾸역꾸역 짐을 지고 기어가는 개미를 보는 것과도 같은 시선이었다. 다만 그의 눈동자만은 여전히 붉었기에, 그리고 저 무심한 표정으로 여러 봉신의 목숨을 단숨에 거둬갔기에 그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된 너를 보니, 참으로 할 말이 없구나.”

 “형님, 이것은 다 모함입니다. 제가 형님께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래, 누구나 마지막이 다가오면 있는 말 없는 말 모두 주절거리게 되는 법이지. 네게 쌍둥이 형제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 네가 한 행동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중간에 잠시 말을 멈췄다가 검은 로브의 사내를 흘끗 바라본 국왕은 이내 말을 마무리 지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집행장에게 신호를 보낸 왕은 뒤로 물러섰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작은 칼을 꺼내 들은 집행장의 모습이 변경백의 시야를 가득 메우며 다가왔다.

 

 “아, 안돼, 안돼! 그만! 안돼애-!!”

 

 찌르듯이 날카로운 느낌이 세상을 뒤흔들었고 이내 그것은 비명과 함께 찾아온 어둠으로 가득 차 버렸다. 변경백의 괴성이 흥겨운 노랫가락이라도 되는 양, 집행장의 손은 물결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에 그의 두 눈을 도려내 버렸다. 피를 철철 흘리는 그의 눈에서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눈알을 끄집어낸 집행장은 대기하고 있던 집행인들에게 눈짓했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변경백의 잘린 두 손이 바닥으로 털썩 떨어졌다.

 

 “죄가 가득 담긴 그것은, 그의 손아귀에 내려놓거라. 그리고 변경백은 풀어 주어라.”

 

 국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집행장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명령을 시행에 옮겼다. 끝없이 비명을 내지르는 변경백의 모습에 사람들 대부분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으나,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이들은 형틀에서 풀려나 비틀거리던 변경백이 자신의 손을 밟고 그 안에 담겨 있던 눈알을 밟아 터트리는 것까지 모조리 보고야 말았다. 그게 뭔지도 모를 변경백을 위해 최후를 확인한 사람들이 대신 짧게 비명을 질렀고, 마지막 단말마를 내뱉으며 고꾸라진 변경백은 이내 집행인들의 손에 이끌려 형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모두를 감쌌다. 마지막으로 형을 받아야 할 왕자는 조금 전 일어난 처참한 광경에 완전히 얼어붙은 것인지, 아니면 희망을 버린 것인지 입을 반쯤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를 향해, 차츰 정신을 차린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씩 하나씩 모이기 시작했다. 국왕의 시선마저 그를 향했을 때, 막혔던 음성이 터지기라도 한 듯 왕자는 소리쳤다.

 

 “아, 아버지!”

 

 마침내 형이 집행될 것 같자 왕을 소리쳐 불렀다. 이미 자신은 형틀에 묶였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움직일수록 내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이대로 왕이 손짓하면 저쪽에 있는 집행인이 추를 매달아 고정해 놓은 걸쇠를 풀 것이고 추는 자유 낙하하여 자신에게 떨어져 내릴 것이다.

 

 본래 이와 같은 거세형은 눈을 파 버리는 실명형과 함께 황가에 대한 반역을 저지른 자들에게 흔히 행해지는 라티움 제국의 유서 깊은 형벌로써 ‘거룩한 황제의 자비’나 ‘품위 있는 죽음’ 등으로 불렸다. 눈을 뽑아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생의 몰락을 경험케 할뿐더러 군주에게 가해질 수 있는 위협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에, 지금은 제국 근처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혹한 형벌은 바로 거세형이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영지를 세습할 수도 없고, 환관을 만들 때처럼 세심하게 거세를 하는 것이 아닌, 추를 떨어뜨려 무자비하게 터트려 버리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상당수는 극심한 고통에 떨다가 죽어 버리곤 했다. 말이 거세형이었지 실질적으로 사형에 버금가는 형벌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왕은 만발의 준비가 끝나고 모두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쏠린 지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멍하니 왕자를 응시했다. 왕자가 뭐라고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왕은 신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나가다오.”

 

 형을 집행할 때는 이처럼 봉신들과 관료들이 지켜보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왕은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그들은 안 그래도 후계자의 거세형인지라 보기가 참으로 민망했었는데 차라리 잘됐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형장에서 빠져나갔다. 최후까지 남아 있던 가르멜 백작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떼며 사라져야만 했다.

 

 불규칙한 발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이제는 형 집행인과 왕자 그리고 왕과 그의 그림자처럼 옆에 있는 검은 로브의 사내만이 남은 상태였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왕은 집행장에게 손짓을 했다. 잠시의 기다림도 없이 바로 형이 집행되려 하자 칼레인은 저도 모르게 고함을 내질렀다. 집행장이 걸쇠를 풀어 버리면 저 높이 매달려 있는 추가 그대로 떨어져 내릴 것이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에 그는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 들려온 것은 끼익 끼익 하는 쇳소리였다.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드니, 자유낙하 하여야 할 추가 집행장의 손짓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형틀까지 내려온 추의 침중한 소리를 끝으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집행장은 도르래 레버에 올렸던 손을 거둔 뒤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아, 아버지……?”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추 자체의 무게도 상당했기에 그는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하고 형언하기 힘든 기묘한 고통에 토할 것만 같았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재고도 없이 그 많은 봉신의 즉결 처형을 명했던 나이시아 12세였다. 자신의 친동생마저도 잔인하게 눈을 도려내고 추방해 버린 그였다. 그런 그가, 아들인 자신을 분노가 가신,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감정을 담아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라, 아들아. 고작 그 정도가 아프단 말이냐.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워 봤자 자식이 아비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보다 더 아프겠느냐.”

 

 왕은 천천히 칼레인에게 다가왔다. 온몸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무척이나 불편한 고통과 이대로 정말로 남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아버지와 대면한 것에 대한 민망함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그의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왜 그랬느냐 아들아. 어차피 이 아비는 얼마 못 갈 텐데…… 무엇이 아쉬워서 저 녀석과 짜고 날 죽이려 했느냐.”

 “아, 아닙니다, 아버지, 절대로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증거가 명백한데도 진실을 부정하려 하느냐? 이 아비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고 해서 이제 사리 분간도 못 하는 머저리로 생각하는 것이더냐!”

 “아버지, 그것이 아니라…… 윽!”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앞으로 기울인 몸을 지탱하기 위해 추에 손을 올린 그의 행동에 칼레인은 헉,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보다 더한 압력이 가해지니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왕은 잠시 숨을 몰아쉬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대로 말해다오, 아들아. 정말로 날 죽이려고 한 것이냐.”

 “아닙니다, 아버지. 그러지 않았고,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제가 저들과 엮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결백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칼레인 역시 왕의 귓가에 속삭이듯, 하지만 진심만을 담아 말했다. 왕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리는 것이 보였다. 왕의 눈동자가 말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짙은 녹색의 물결이 일렁이며 붉은빛을 밀어냈고 입가에 미약하게 걸려 있던 미소가 왕의 얼굴 전체로 퍼져 나갔디.

 

 “그래…… 그렇겠지. 역시 저것들의 음모였구나. 너도 저 간사한 내 동생 놈의 음모에 빠진 거였어. 내 그럴 줄 알았느니. 그랬기에 너의 형 집행은 마지막으로 둔 것이란다. 설마 하니 이 아비가 아들을 거세하여 가문의 대를 끊을 리가 있겠느냐?”

 “아버지…….”

 

 왕은 팔을 벌려 칼레인을 부드럽게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자 졸지에 그에게 가해지던 무게가 더해지는 꼴이 되어 버렸고 칼레인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흠칫하며 뒤로 물러선 왕은 집행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도르래가 움직이며 추가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고통도 함께 사라져갔다.

 

 “허나 이미 내린 결정은 그냥 뒤집을 수는 없는 법. 다행히 지금 이곳엔 저들뿐이다. 저들은 내 명령에 따라 입을 다물 터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 너만 잘 행동을 하면 된다. 알겠느냐? 형벌을 받아 기절한 척하고, 아헨의 탑에서 잠시 기거하도록 해라. 그런 뒤에 아비가 적절한 때에 사면령을 내릴 것이니, 부디 그때까지는 몸조심…….”

 

 그리는 못하십니다.

 

 크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강렬한 음성이 고막을 뚫으며 귓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살가운 표정을 지으며 칼레인에게 말을 이어가던 국왕은 갑자기 침중한 신음을 내뱉더니 비틀거렸다. 칼레인은 서둘러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온몸이 묶여 있었기에 불가능했다.

 

 “어서 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뭘…….”

 

 소리치던 칼레인은 보았다.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의 등 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한 쌍의 칠흑같이 짙은 그림자를. 검은색의 로브 위에 드리워졌음에도, 칼레인의 눈에는 또렷하게 보였다. 사제의 제의에 걸쳐진 영대처럼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이내 바닥까지 내려오더니 순간적으로 그의 주변을 동그랗게 에워쌌다. 한순간 불길이 타오르듯 그의 몸이 일렁였다.

 

 순간 비틀거리던 왕이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몸을 바로 세웠다. 다행이다 생각한 칼레인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초점을 잃은 듯한 멍한 눈동자가 또륵, 구르더니 이내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녹색의 눈동자가 다시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눈 속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살가운 표정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독기 어린 표정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인제 와서 아비를 생각하는 척하는 것이더냐?”

 “아, 아버지, 저는…….”

 “듣기 싫다! 아비를 살해하려 한 죄, 그 무엇으로도 용서할 수 없으니!”

 

 일갈을 한 뒤 시선을 거둔 국왕은 이내 검은 로브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힘겹게 만들어 낸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검은 로브의 남자 역시 입가에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며 천천히 다가왔다. 왕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잠시 어루만지더니 이내 칼레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떠냐. 이것으로 네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됐으니, 인제 그만 아비를 용서해 주겠느냐?”

 

 칼레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왕위를 저 남자가 계승한다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칼레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 없다는 듯, 검은 로브의 사내는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국왕을 향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네, 아버지. 그러니 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마무리 지어 주십시오.”

 

 나이시아 12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습에 칼레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에게 입을 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의 생각 역시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싸늘한 정도의 차가운 목소리가 형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형을 집행하라.”

 

 집행장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조금 전 고정해 놓은 걸쇠를 향해 다시 손을 내뻗었다. 왕자가 발악하며 고함을 쳤으나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피와 눈물을 모두 버린 형 집행장이었다. 걸쇠는 그의 손짓에 따라 해방되어 버렸다.

 

 쉬이이익-

 

 추가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형틀 위에 세워진 기둥을 타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자의 눈이 공포로 물든 순간, 추는 빠르게 떨어졌고 이윽고, 쩡-! 하는 굉음과 함께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찬 단말마의 외침이 형장을 가득 메웠다.

 

 “커헉-!!”

 

 뱃속에서 뭔가가 터지는 듯한 격통과 함께 왕자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뿜어져 나왔다. 단단히 묶여 있었음에도 그의 몸이 미친 듯이 부르르 떨었다. 아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왕자는 평상시에 찾지도 않았던 칼케도니아의 신을 미친 듯이 찾았다. 헛소리가 튀어나오더니 이내 격한 기침과 함께 다시 핏물과 구토물이 쏟아져 나와 그의 몸을 더럽혔다. 이성이 마비되고 사고를 유지할 수 없었다. 끝없는 고통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풀어서…… 이동…… 내의를 부르…….”

 

 점점 아득해지는 의식 저 너머로 뭐라고 떠드는 것이 들려왔다. 그러다가 조금 전에 터져 나가버린 부분에 누군가의 손이 닿자 왕자는 기절할 것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뭔가가 쑥 빠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을 옥죄고 있던 느낌이 사라지더니 이내 붕 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을 때 하늘로 들어 올려진다더니 그것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을 끝으로, 왕자는 기어이 의식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

 

 감사합니당...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1. 아키엔 - 10 2017 / 5 / 25 280 0 11372   
9 1. 아키엔 - 09 2017 / 5 / 23 283 0 6288   
8 1. 아키엔 - 08 2017 / 5 / 21 292 0 8413   
7 1. 아키엔 - 07 2017 / 5 / 20 279 0 6987   
6 1. 아키엔 - 06 2017 / 5 / 20 298 0 7666   
5 1. 아키엔 - 05 2017 / 5 / 20 291 0 3085   
4 1. 아키엔 - 04 2017 / 5 / 19 305 0 7258   
3 1. 아키엔 - 03 2017 / 5 / 19 302 0 5407   
2 1. 아키엔 - 02 2017 / 5 / 19 295 0 3366   
1 1. 아키엔 - 01 2017 / 5 / 19 493 0 682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