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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빼앗긴 신의 아이들
작가 : 가브리엘
작품등록일 : 2017.5.19

살아있는 모든 자의 왕이자 신앙의 수호자로서
천 년 넘게 세상을 지배하던 라티움 제국의 콤네노스 가문이 무너져 갈 때
작은 나라 아키엔의 나이시아 가문과 제국의 방계인 앙겔로스 가문이 일어섰다.

꺼져 가는 촛불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콤네노스 가문과
잃어버린 이름의 신과 오래된 종교를 받아들인 나이시아 가문
미쳐버린 왕을 폐하고 제국의 계승권을 주장하는 앙겔로스 가문의

장구한 천 년 역사의 수도이자 신이 내린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노플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한 결전이 시작되리니…….

 
1. 아키엔 - 06
작성일 : 17-05-20 03:03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7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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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레인은 말이 없었다. 돌처럼 싸늘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타오를 것처럼 뜨거웠다. 금방이라도 뿜어져 모조리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눈빛이었다.

 

 그런 눈으로, 그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인내하며 기다렸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기를. 자신을 적극 변호하기를. 아니면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스스로 무죄를 증명해 보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했다. 누군가가 건네준 두루마리와 변경백의 봉신들을 털어서 알아낸 진실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토록 믿었던 숙부가 반역을 꾀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꾸며진 연극이고, 숙부는 희생양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아무 말씀도 안 하실 작정입니까, 숙부.”

 “말을 할지언정, 달라질 것이 있겠느냐.”

 

 자문회 위원들은 변경백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오르무스 변경백의 시선이 그들에게 가 닿자 그들의 바쁘게 나불거리던 입은 그대로 돌이 되어 굳어 버렸다. 변경백의 안광에 눈이 멀지 않기 위해서 고개들은 서둘러 좌우 어디론 가로 다급히 돌려졌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라…… 그거야 네가 너 잘 알지 않느냐. 인제 와서 내게 그렇게 묻는 이유야말로 무엇이냐 칼레인.”

 

 칼레인의 눈썹이 슬쩍 위로 치켜세워졌다. 그리고 감탄했다. 역시 숙부였다. 그냥 당할 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한 마디로 저렇게 간단히 자문회 위원들의 마음에 의혹의 불씨를 지필 줄이야.

 

 “그 말씀은 마치 제가 숙부께서 저지른 반역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형님이 죽고 난 뒤에 왕이 되는 것이 바로 누구더냐? 칼레인 네가 아니냐. 그런 너 모르게 어찌 그런 일을 벌일 수가 있겠느냐?”

 “국왕을 시해하려 한 대 반역죄로도 모자라 이젠 저를 가지고 사기까지 치려 하십니까?”

 “칼레인. 인제 와서 보니 내가 너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 그 보답을 이런 식으로 갚는단 말이더냐? 실컷 이용해 먹고는, 네가 짠 계획들이 탄로 날 지경이 되자 지금에 와서 나에게 모조리 뒤집어씌운 뒤 이렇게 내치려는 것이냐?”

 “보기가 안쓰럽습니다, 숙부. 있지도 않은 일을 마치 진실인 냥 말씀하시다니요. 그래도 아버지의 형제이자 이 나라의 대영주이며 자문회의 공동 수장이신 분이, 죽음이 가까워져 오자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뱉어내시는 겁니까?”

 “나야말로 네가 안쓰럽구나. 정녕 네가 나에게 꼬드긴 것을 발뺌하려는 것이더냐? 정말로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네가 그리도 모르쇠로 일관하니, 내 증거를 보여주겠다. 정황상의 증거가 아닌 확실한 물증을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모면하려는 최후의 발악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증거라는 말에 칼레인의 마음은 일순 흔들렸다. 게다가 물증이라니? 자신조차 손에 넣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게 어디에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허풍이 분명하리라 생각한 칼레인은 그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

 

 “어디, 그 물증이라는 것을 한번 가져와 보십시오. 저도 궁금해 죽을 지경이군요.”

 “네가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내 시종에게 일러두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니 좀 불러다오.”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한 건지 점점 의심스러워졌으나 칼레인은 숙부가 어떻게 함정을 쳐 놓은 지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에 손짓하였다.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접견실의 바깥에 있는 변경백의 시종을 안으로 데려왔다.

 

 “클레베 남작에게 가져다주어라.”

 

 변경백의 말에 시종은 방향을 바꿔 궁중 법률관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자신을 지목하자 의아해하던 그는 시종이 어서 보라는 듯 두루마리를 앞으로 쑤욱 내밀자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 들었다. 흘끗 고개를 돌린 칼레인 역시 어서 읽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침을 꿀꺽 삼킨 그는 두루마리를 펼친 뒤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이, 이것은…….”

 

 클레베 남작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칼레인을 향해 다가온 뒤 두루마리를 건네주었고 그것을 받아 든 칼레인은 어이가 없어 허, 하고 탄식을 뱉어냈다. 두루마리에는 나이시아 12세를 시해하고 왕좌를 자신에게 가져오라는 밀명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서명과 인장은 자신의 것이었다. 내가 정말로 이런 것을 인준했단 말인가? 잠깐의 의혹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나, 이내 떨리던 마음은 안정되었다. 변경백을 향한 그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런 유치한 수법에 누가 당하기나 하겠습니까, 숙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꽤 공을 들이시긴 하셨군요. 저조차도 얼핏 봤다면 제 필체로 착각했을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저의 인장이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변경백의 눈에 인장 부분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두루마리를 펼친 칼레인을 말을 이었다.

 

 “이 인장에는 미세한 금이 가 있습니다. 현재 제가 사용하고 있는 인장에 이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었으니까요. 숙부께서 이 문서를 위조할 때에는 미처 그것까지는 모르셨나 보군요.”

 “그야 그 문서를 내가 쓴 것이 아니니 나야 알 도리가 없지 않으냐? 헌데, 인장을 새로 만들었다 했는데, 언제 나도 모르게 새로 만들었단 말이냐?”

 “왜요, 사기 친 것이 들통이 나니 다급히 화제를 바꾸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나는 다만, 칼레인 네가 마치 내가 문서를 위조했다는 듯이 말하기에 되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물어보자꾸나. 새로운 인장은 언제 주조하였느냐?”

 “몇 달 됐을 겁니다. 정확한 걸 알고 싶어 하시는 듯하니, 율리히 남작, 그대는 가서 재무일지를 가져오도록 하시오.”

 

 율리히 남작은 왕실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왕실이 유지되려면 돈이 가장 중요했고 역대 왕들 보다 왕실의 재정에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인 나이시아 12세의 즉위 이후, 다른 일들과는 달리 재무일지는 주기적으로 국왕이 검토한 뒤 인장을 찍게 되어 있었다. 대영주와 직속 소영주들에게 부여된 세금이 얼마나 잘 들어오고 있는지, 지으라고 했던 성은 안 짓고 엉뚱한 교회를 짓는데 돈을 쓴 것은 아닌지, 수도원과 교회가 십일조 외에 빼돌리는 돈은 없는지, 세율을 올려야 하는지, 어느 놈이 불만을 품고 탈세를 일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을 파악하기에 꽤나 용이했기 때문이다. 군주 대부분이 재화의 관리 보다는 그것의 소비에만 관심이 있는 것과는 달리 재정을 탄탄히 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상비군을 창설하고 그 힘으로 강한 왕국을 만들려 했던 나이시아 12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미쳐 버린 뒤에도 그 전통은 그대로 남아 있어 칼레인이 변경백과 함께 자문회의 공동 수장이 된 이후로는 국왕의 인장을 대신하여 왕위계승자의 인장이 찍히게 되었다. 따라서 인장이 언제부터 바뀐 지 알고 싶다는 변경백에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들이밀기 위해서는 재무일지 만한 것이 없는 셈이었다.

 

 “자, 확인해 보시지요.”

 

 날 듯이 달려갔다가 온 율리히 남작의 손에서 재무일지를 받아 든 칼레인은 찍혀 있는 인장의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진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변경백은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칼레인, 네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하늘을 가리려면 손바닥보다는 더 큰 것이 필요한 법이다. 지금 너의 행동은 오히려 네가 저 문서를 작성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구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칼레인이 표정을 찡그리자 변경백은 클레베 남작을 향해 말했다.

 

 “그 문서가 언제 작성되었는가 클레베 남작?”

 “네? 아, 그게…… 두 달 하고, 칠일 전입니다.”

 “그렇군. 그럼 칼레인. 이제 네가 확인해 보아라. 인장의 형태가 언제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

 

 칼레인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토록 숙부가 당당한 데에는 필시 그 이유가 있을 터. 재무일지에 찍힌 자신의 인장을 차례차례 확인해 보던 그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보름에 한 번 찍히는 인장은 두 달 하고 보름 전까지는 금이 가 있는 형태였다가, 두 달 전에는 새로운 말끔한 형태로 바뀌어 있었고 그 뒤로는 계속 그 형태였다. 즉, 저 문서는 칼레인이 새로운 인장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전에 만들어졌다는 뜻이었다.

 

 점차 굳어가는 칼레인의 표정을 보며 입 놀리기 좋아하는 자문회 위원들은 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편안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사기를 치다 걸려서 이제 혼날 일만 남은 조카를 향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변경백과, 제 꾀에 빠져 버려 할 말을 잃은 듯 보이는 칼레인 왕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인장을 잘도 빼돌리셨군요.”

 “어허, 그리도 인정할 수 없겠더냐? 하긴, 형님을 시해하려는 음모를 아들인 네가 직접 주도했다는 것을 네 입으로 밝히기야 어렵겠지. 하지만 칼레인, 네가 비록 친부 살해의 죄를 지어 지옥으로 떨어진다 할 지언 정, 너의 치세가 오래되고, 네가 왕국의 기상을 높인다면 사람들은 너를 칭송할 것이니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더냐? 또한, 네 왕위계승에 영주들이 문제를 제기하여 반란이라도 일어날 경우, 이 숙부더러 막아달라고 누가 한 말이더냐.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냐?”

 

 자문회 위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칼레인이 변경백의 봉신들을 유도신문하여 누구의 죽음도 없이, 그들의 공포를 잘 이용하여 자백을 받아냈을 때만 해도 변경백이 반역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고 철석같이 믿었으나, 변경백이 가져온 증거와 그의 말을 들어 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칼레인처럼 강성한 왕국의 군주가 되고 싶어 하는 야심 찬 아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다름 아닌 미쳐 버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늙은 아버지였다. 명줄이라도 짧으면 좋으련만 무지하게도 길어 자리만 차지한 채 앞길을 틀어막은 그를 옆으로 치워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칼레인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본래 합심하여 일을 진행하려다 둘 사이 무슨 내분이라도 생겨 한쪽을 쳐 내고자 작금의 일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온갖 망상을 떠올리는 자문회 위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칼레인은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가르멜 백작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인장관리인을 불러와 주십시오. 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인장을 새로 만든 후, 예전의 인장은 칼레인만 아는 곳에 봉인해 두었다. 이 사실은 칼레인과 칼레인을 위해 그 특별한 장소를 마련해 준 인장관리인만이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노쇠했던 인장관리인은 새로운 인장을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는지 세상을 떠나 버렸고 덕분에 이제 그곳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다.

 

 “전하, 인장관리인을 데려왔습니다.”

 

 가르멜 백작의 손에 이끌려 접견실에 당도한 젊은 관리인은 칼레인을 보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칼레인은 그에게 다가가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고 이내 사라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이 안에는 예전에 자신이 사용하던 인장이 담겨 있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숙부가 인장이 있는 곳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알아내어 빼돌렸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열어 보아라.”

 

 칼레인의 말에 인장관리인은 떨리는 손으로 가만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 담겨 있던 작은 종이 쪼가리를 꺼내 들었다. 칼레인이 그게 무엇이느냐고 마악 물으려는 찰나, 갑자기 관리인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눈물 젖은 눈동자가 칼레인을 향했다. 놀라움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저, 전하…… 이것이 사실입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게 무엇이냐. 인장은 담겨 있지 않으냐?”

 “전하께서…… 정녕 제 아버지를 죽이신 겁니까?”

 “이놈! 전하께 그 무슨 망발이더냐!”

 

 가르멜 백작이 호통치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리인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이전 인장관리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하의 인장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제게 이 일을 넘겨 주시기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발설할 수 없다고, 그랬다가는 우리 가족은 모두 죽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얼마 뒤에 누군가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이…… 전하의 명이셨습니까?”

 

 이 작자가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이유가 궁금했던 가르멜 백작은 종이쪽지를 빼앗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조금 굳어진 표정으로 그는 그것을 칼레인에게 넘겨 주었다. 칼레인의 얼굴 역시 굳어갔다.

 

 - 신이여 이 무서운 일을 행하려는 전하를 용서하소서 그리하여 전하께서 이것을 발견하셨을 때 사실의 은닉에 괴로워하는 저를 구원케 하소서 어려움 속에서도 전하의 명을 받아 수행해야만 했던 저의 목숨을 살려주소서 -

 

 “왜 그러느냐 칼레인. 무엇을 보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냐?”

 

 오르무스 변경백은 묘하게 느긋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칼레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역시 곧이어 입을 다물게 되었다. 상자 안에 들어 있어야 하는 인장이 온데간데없었기 때문이다.

 

 ‘뭐지? 칼레인이 어디론가 빼돌린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인장 대신 들어 있는 뭔지 모를 저 쪽지를 보고 저렇게 얼굴이 굳을 리 없었다. 뭔가 칼레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는 듯싶었으나 인장의 행방이 묘연한 이상, 자신에게도 불리했다. 칼레인의 말처럼 자신이 인장을 빼돌려 국왕 시해 음모를 마치 칼레인이 지시한 양 만들었음을 부정할 결정적인 증거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모조품을 만들어서 잘 보관해 뒀을 텐데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당사자들은 말이 없고 인장관리인은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불가해한 상황에 자문회 위원들이 사실을 말해 달라 요청하려는 순간 갑자기 접견실의 문이 벼락처럼 열리며 근위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난데없는 그들의 등장에 가르멜 백작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근위대장은 잠시 주저하는 모습이었으나 이내 결심한 듯 앞으로 다가와 예를 올렸다. 그리고 한 마디 던짐으로써 칼레인과 변경백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두 분을 모시고 오라는 폐하의 명령입니다.”

 “아버지께서?”

 “형님이?”

 

 차마 끌고 오라는 말은 할 수 없었기에 슬쩍 돌려 말했으나 칼레인과 변경백은 실성해 있던 나이시아 12세가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근위대장을 노려보았다.

 

 “헌데, 이 많은 근위병은 왜 온 것이냐?”

 “……같이 가 주시기 바랍니다. 정중히 모시거라.”

 

 대장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근위병들은 칼레인과 변경백을 에워쌌다.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두 사람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왕이 찾는 것이라면 국왕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근위병들이 동원될 이유가 없었다. 이는 국왕의 신변에 위해가 가해졌을 때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알았다.”

 

 오랫동안 무릎을 꿇어앉아 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 엉거주춤한 모습을 한 변경백과는 달리 칼레인은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의연한 모습으로 그들의 호위 아닌 포위 속에서 먼저 접견실을 나갔다. 변경백 역시 근위병들이 자신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자 포박된 자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닫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근위대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어찌 그대가 전하를 저리 대할 수가 있단 말이오?”

 “……폐하의 명입니다.”

 

 말 좀 해 보라고 보채는 가르멜 백작에게 근위대장은 짧게 답한 뒤 아니 그거 말고 좀 더 상세하게, 라고 얼굴을 들이미는 그를 피하고자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 하며 가르멜 백작마저 종종걸음으로 나가 버리자, 수군거리던 자문회 위원들도 비록 자신들을 찾지는 않았지만, 왠지 꼭 저 자리에 자신들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그들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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