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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빼앗긴 신의 아이들
작가 : 가브리엘
작품등록일 : 2017.5.19

살아있는 모든 자의 왕이자 신앙의 수호자로서
천 년 넘게 세상을 지배하던 라티움 제국의 콤네노스 가문이 무너져 갈 때
작은 나라 아키엔의 나이시아 가문과 제국의 방계인 앙겔로스 가문이 일어섰다.

꺼져 가는 촛불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콤네노스 가문과
잃어버린 이름의 신과 오래된 종교를 받아들인 나이시아 가문
미쳐버린 왕을 폐하고 제국의 계승권을 주장하는 앙겔로스 가문의

장구한 천 년 역사의 수도이자 신이 내린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노플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한 결전이 시작되리니…….

 
1. 아키엔 - 04
작성일 : 17-05-19 17:58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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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부께서 그리하라고 시킨 겁니까.”

 “아닙니다. 오르무스 변경백께서는 이 일과 무관하십니다.”

 “대영주의 지원 없이 소영주인 그대들만의 힘으로 이 음모를 시행하려 했다 그 말입니까?”

 

 칼레인은 어떻게 해서든 오르무스 변경백은 이 일과는 상관이 없고 자신들이 다 뒤집어쓰려는 숙부의 세 봉신과 노쇠한 아버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변경백도 당연히 모른다고 말하는 브뤼셀 백작의 두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쪽 바닥에 시체처럼 꾸며 놓은 가짜 다리를 통해서 반역의 핵심 인물과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거들기만 한 잉여들을 걸러낼 수 있었다. 남아 있는 핵심 인물들에게서 일단 들을 것은 모두 들었다. 여기서 심문해 봤자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층 더 강도 높은 심문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나라에는 법이 있고, 나는 그 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느닷없는 법 타령에 칼레인의 앞에 있는 다섯 남자는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들이 아는 칼레인이라면, 아무 의미도 없이 저런 말을 내뱉을 리가 없었다.

 

 “허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군요. 그대들의 죄를 밝히려면 그리해야겠지요.”

 

 칼레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다가왔다. 준비해 놓은 복면을 머리에 씌운 뒤, 칼레인은 이미 마련해 놓은 작은 방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시야가 가려진 채 각각이 따로따로 흩어져 들어갔기에 누가 어느 곳에 들어가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안에 놓인 의자에 앉혀진 그들은 이내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과 다리가 의자에 묶여 버렸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복면이 벗겨지자 그들은 헉,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방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그곳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은 결단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지하 감옥 저 깊은 곳에나 존재할 법한 고문 도구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구에 군데군데 묻어 있는 미처 치우지 못한, 어쩌면 일부러 치우지 않은 듯한 핏자국과 살점 쪼가리들이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그대는 대 반역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가 직접 꾸민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한 짓인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지요.”

 “사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

 “그대의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고통스럽게 고문당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른 채 불에 타 죽을 테니. 아, 오히려 그게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군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끔찍한 말을 해대는 칼레인의 모습에, 눈앞에 앉아 있는 겐트 남작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했으나 이미 이런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계획이 탄로 난 이상 어차피 저희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길게 시간 끄실 필요가 없으실 텐데요.”

 “흠,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 좋습니다. 그럼 다른 이들에게 한번 다녀와 보지요. 모두의 말이 맞는다면 그대의 소원대로 즉시 처결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방에서 유유히 사라지는 칼레인의 향해 겐트 남작은 소리 없는 웃음을 날렸다. 어디 실컷 심문해 봐라. 이미 모든 것이 주군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네가 그분께 굴복하지 않고 배기겠느냐. 변경백의 직속 봉신인 자신들과 브뤼셀 백작의 아들 둘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왔다.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변경백에게 시간을 더 주는 것이었다. 오르무스 변경백과 더불어 다섯 명은 국왕 시해 음모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섯 명이 모두 똑같은 것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말한다면 짜고 치는 것이 더 의심스러워지기에 이쪽 세 명과 저쪽 두 명은 각각 서로 다른 말을 할 예정이었다. 과감하면서도 신중한 칼레인의 특성에 맞춘 오르무스 변경백의 작전이었다. 조금씩 그가 원하는 먹이를 주면서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척, 해 주면 된다. 이미 자신들의 주군이 함께 소환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번 거사는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것은 칼레인이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으아악!!”

 

 난데없이 옆 방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자 겐트 남작은 흠칫하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대쪽 방에서도 악에 받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구지? 누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단발성 비명이 아닌 연이어 터져 나오는 비명과 뭔가가 후려쳐 맞아 터지는 듯한 소리에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해 보던 겐트 남작의 머리는 정지하고 말았다. 그들의 비명이 점차 잦아들 무렵,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칼레인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철퇴에는 누군가의 살점이 핏물을 뚝뚝 흘리며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게 말하라고 할 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 그렇게 사시나무 떨 듯 떨 필요 없습니다. 죽이지는 않았으니까요. 역시 말 안 듣는 것들에겐 매가 약인 듯싶습니다. 그냥 술술술 내뱉는 것이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군요. 사람을 직접 후려쳐 본 적은 없는데…… 인정해야겠군요. 꽤나 시원합디다.”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내용을 평화롭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읊는 칼레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겐트 남작까지 여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누군가가 저 혼자 살자고 자백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뭘 그리 놀라는 척을 하십니까? 설마 이것조차 짜고 치는 행위입니까? 인제 그만 하시라니까요? 오리엘 남작이 모두 불었습니다.”

 “오리엘 남작이 말입니까?”

 “네. 그가 말하길 자기들이 벌인 일이긴 하지만 모두 사주를 받고 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오리엘 그 작자가! 겐트 남작은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을 뻔했으나 혀를 깨물면서 간신히 참아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무슨 사주를 누구에게 받고 어떤 내용의 자백을 했는지는 말 속에서 빠져 있지 않은가?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을 그저 내뱉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즉, 칼레인은 아무것도 손에 든 것 없이, 그냥 허세를 떠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때, 열린 방문 저 너머로 피를 흘리며 축 늘어진 채 끌려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리엘 남작처럼 붉은색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설마? 하는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겐트 남작에게 칼레인은 한 걸음 다가갔다. 철퇴가 묶여 있는 손등 위에 올려졌고 뜨뜻한 살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기괴하기 짝이 없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때, 또 한 명의 누군가가 문 저 너머로 끌려나갔다. 킬데어 남작이 분명했다.

 

 “아, 킬데어 남작도 일부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두 사람의 자백이 조금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일치하는 것이 하나 있더군요.”

 

 이 작자들이 기어이 주군을 배신한 것이로구나! 겐트 남작은 손등으로 느껴지는 압력이 조금씩 증가함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만은 주군을 배신할 수 없었다. 어떤 은혜를 입었는데 그렇게 쉽게 저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건 바로, 이 모든 것이 겐트 남작, 당신이 주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네?”

 “그대의 말이 맞긴 맞았군요. 다행입니다. 숙부께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되지 않으셨으니.”

 “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칼레인은 눈을 또륵 한 바퀴 굴린 뒤 말을 이었다.

 

 “그 누구도 숙부의 이름을 거론한 자는 없습니다. 다만 그대의 이름은 공통으로 말하더군요. 심지어 브뤼셀 백작의 아들들조차 말입니다. 그대의 사주를 받고 일을 벌였다고. 그대가 주도한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는 오리엘 남작과 킬데어 남작이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 모두가 그대를 지목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저 혼자 주도한 일이 아닙니다! 저희 모두가…….”

 

 뭔가 잘못됐다. 주군의 지령에는 일이 잘못될 때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라는 말은 없었다. 그들이 독단으로 일을 벌임이 분명했다. 자신을 빼고…… 순간, 겐트 남작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설마, 주군께서 그 둘에게 밀명이라도 내리셨단 말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세 명 모두가 각자 역할이 있는 핵심 인물이긴 했으나 변경백은 자신을 통해 주로 계획을 전달하게 했다. 실질적으로 자신이 가장 윗 단계의 남작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변경백이 꼬리치기로 자신을 지목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대의 비뚤어진 충심은 잘 알겠습니다. 죄상이 모두 드러났으니 그대의 처형을 시작으로 모든 이들이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반역자에게 행해지는 처벌은 그대도 잘 알고 있겠지요? 신체훼손형, 예를 들면 실명 후 추방…… 아, 미안합니다. 그대는 고귀한 신분이 아니니 더 험한 꼴을 당한 뒤 어쨌든 죽겠군요. 이 자를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라.”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서 끌고 가지 않고 뭐 하느냐?”

 “잠깐만!! 기다려 달란 말입니다!!”

 

 죽음이 목전에 당도하자 겐트 남작은 고함을 내질렀다. 칼레인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더러운 벌레를 바라보는 것 같은 그의 눈빛에 겐트 남작은 이를 악물었으나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무슨 망발을 일삼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 혼자 모든 것을 주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니까 그러시는군요. 그대가 무슨 말을 하든 이미 끝난 일 아닙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겐트 남작은 그 뒤로 악에 받쳐 감춰 두었던 사실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칼레인은 가만히 그것을 듣다가 중간 중간 되묻거나 부인하거나 혹은 그의 심란한 마음을 더욱 뒤흔들 의혹이 가득 담긴 말들을 내뱉으며 그것을 재료로 하여 그의 마음속에 불을 내질렀다. 결국, 겐트 남작은 처음에 마음먹었던 말들 이상의 것들을 모조리 쏟아내고 말았다.

 

 “이 배신자!”

 “그 입 닥치시오!”

 

 그가 이성을 잃고 오르무스 변경백이 여기에 관여해 있다는 말까지 내뱉은 순간 양쪽의 방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겐트 남작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모두 죽어서 끌려갔을 텐데 누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칼레인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자신이 당했음을 깨달았다. 칼레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병사들은 옆방에 있던 자들을 데려왔고, 그들의 얼굴을 본 순간 겐트 남작은 귀신을 본 것인 양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 그대들은 분명 죽었을 텐데……?!”

 “이 배신자! 그러고도 심복이라 할 수 있는 게요?!”

 

 씹어 죽일 듯한 얼굴로 겐트 남작을 노려보는 것은 전신 멀쩡한 오리엘 남작과 킬데어 남작이었다. 핏방울 하나 그들의 옷에는 묻어 있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겐트 남작을 위해 칼레인은 어딘가를 향해 손짓했다. 이내 두 남작의 뒤편으로 피투성이가 된 로브를 걸친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게 중 한 명은 오리엘 남작과 같은 붉은색 머리였다. 조금 전에 피떡이 되어 끌려나갔던 놈들이 분명해 보였다.

 

 “마, 마, 말도 안 되는……!”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이 칼레인이 정교하게 꾸민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보기 좋게 거기에 걸려들고 말았다. 이제 이해되겠느냐는 듯한 차가운 미소를 띤 칼레인을 바라보며 겐트 남작은 끓어 오르는 분노와 모멸감 때문에 부르르 떨어댔다.

 

 “이만하면, 정황 증거들은 충분할 것 같군요.”

 

 칼레인은 벽 쪽으로 다가가더니 어딘가를 내리쳤다. 그리고 힘주어 벽을 밀자 빙그르르 돌아간 벽 저 너머로 자문회 위원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세 남작은 그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칼레인은 그들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뒤 말을 이었다.

 

 “어떻습니까. 위원님들. 이자들이 하는 말은 모두 들으셨겠지요.”

 “네, 전하…… 참으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국왕의 동생이자 자문회의 공동수장인 변경백이 반역을 꾀했다는 사실에 그들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듯싶었다. 그의 심복 중 한 명이 제 입으로 모조리 토해 냈으니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문회 위원들은 앞으로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그들 중 왕실 법률을 담당하는 클레베 남작은 뭔가 주저하는 듯한 모습이었고, 칼레인은 마침 기억났다는 듯이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클레베 남작, 경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지목을 받은 그는 잠시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으나 이내 잘 모르겠다는 듯이 우물쭈물거렸다. 그래서 칼레인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내가 알기로, 숙부께서는 그대에게 상속법에 대한 자문을 구하신 적이 있을 텐데요.”

 “네, 네에?”

 “이 나라의 왕위계승법이 연장자 상속인 적이 있었느냐,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저, 전하께서 그것을 어찌…… 헙!”

 

 클레베 남작은 황망해하며 입을 가렸다. 오르무스 변경백이 반역을 꾀한 것이 정황상 맞는 듯싶었으나 그렇다고 칼레인 앞에서 대놓고 그를 고자질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은, 만에 하나 그가 무죄방면 되었을 때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연장자 상속이라니…….”

 

 자문회 위원들이 술렁였다. 변경백의 세 남작은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서로 바라보았다. 국왕 시해 음모는 지금의 실성한 왕을 죽이고 칼레인을 왕으로 등극시켜 강성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거늘, 난데없이 연장자 상속이라니? 세 남작은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혼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오르무스 변경백은 어차피 미친 왕이 죽으면 즉위하는 것은 칼레인이고, 비록 매끄럽지 않은 즉위 과정에 그가 불만을 품을 수도 있으나 숙부인 자신이 충분히 무마시킬 수 있다고 장담해 왔다. 실제로도 칼레인은 변경백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자신들의 목숨 또한 변경백이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왕위계승이 연장자 상속으로 바뀐다면, 국왕의 사후 왕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변경백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칼레인 왕자는? 지금 이 사실을 그가 알아 버린 상태인데, 만일 주군께서 아무것도 모르고 소환되어 버린다면? 아니, 그 전에 자신들이 이대로 처형장으로 향한다면? 일이 너무도 잘못된 방향으로 미친 듯이 흘러가고 있음에 그들은 부르르 떨었다.

 

 이내, 칼레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즉시 오르무스 변경백을 끌고 와라.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포박하여 압송하라.”

 

 물적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대영주를 심증만으로 체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으나 이미 칼레인의 결심은 굳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봉신들이 지껄이는 역모의 계획을 벽 너머에서 숨죽여 다 듣고 있던 자문회 위원들이 증인으로 있는 이상, 오르무스 변경백이 자신의 무죄를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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