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청무는 악초영이 수련하는 걸 보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멍청하기는, 거기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기운을 쏟아낼 때와 거두어들일 때 분배를 적절히 해야 위력이 강해지는데…….”
“화려하기만 하지 위력이 떨어지잖아? 쓸데없는 변화를 줄이고 힘을 집중시켜야지.”
“상대가 피할 시간을 주면 어떡해? 일격필살이라는 말도 몰라? 기회가 오면 단칼에 끝장내야지.”
담위진의 말대로, 청무의 무공에 대한 지식은 감탄이 나올 만큼 해박했다.
악초영은 될 수 있으면 그가 보는 앞에서 초식을 펼쳤다.
그리고 귀만 열어 두었다. 덕분에 답답하게 느껴지던 이유를 찾아내고 초식의 미진한 점을 보강할 수 있었다.
청무는 악초영의 초식이 점점 완벽해지자 눈에 불을 켜고 잘못된 점을 찾으려 했다.
그럴수록 악초영은 더욱 심혈을 기울여서 초식을 펼치고, 청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악초영이 펼치는 초식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석 달. 겨울로 들어설 즈음, 악초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초식 대부분을 완벽하게 가다듬을 수 있었다.
상승 경지에 진입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청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악초영을 닦달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천하에서 제일 강한 무공을 가르쳐 준다니까?”
악초영은 그 말 때문에 청무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천하에서 제일 강한 무공이라니.
천고의 절기인 가문의 용화천공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거늘, 천하의 어떤 무공이 천하제일을 내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호기심이 생긴 악초영은 좀 더 자세한 것을 물어보았다.
“정말 그렇게 강한 무공입니까?”
“그러엄! 완성하기만 하면 천하에서 제일 강한 수공(手功)이지!”
완성하기만 하면?
“그럼 도사님도 완성하지 못했습니까?”
“그게 좀……. 하, 하, 하. 워낙 익히기가 어려운 무공이어서 말이야.”
“도사님도 완성하지 못한 무공을 어떻게 제가 익힌단 말입니까?”
“너라면 완성할 수 있을 거야.”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너는 다른 사람이 보름 이상 걸려야 할 상처도 닷새 만에 나았잖아.”
“그게 무슨 상관……?”
“철혈혼천수(鐵血混天手)를 익히다 보면 다칠 수도 있거든. 그런데 너는 다쳐도 금방 나으니, 남이 수십 년 고련해야 할 것도 몇 년이면 될 거야.”
몸의 회복력이 중요하다는 말. 또한 그만큼 많이 다칠 거라는 말이었다.
악초영은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할 일이 많았다. 엉뚱한 무공을 익히겠다고 고난을 자초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철혈혼천수가 정말 그렇게 강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도사님. 아무래도 저와는 맞지 않는 무공 같습니다.”
그때였다.
청무가 검지를 꼿꼿이 세우더니 악초영을 가리켰다.
순간, 악초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이마가 뚫릴 것 같은 느낌!
손에 땀이 차고 등줄기로 소름이 돋은 그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서 이를 악물었다.
청무는 평소와 달리 진지한 눈빛으로 악초영을 직시한 채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십 년을 익혔는데도 겨우 손가락 하나에 힘을 집중할 수 있을 뿐이야. 하지만 천하의 어떤 지법도 이 손가락보다 강하지 않지. 만약 손 전체에 철혈혼천기(鐵血混天氣)를 집중시킬 수 있다면, 천하의 어떤 수공도 막을 수 없을 거다.”
손가락 하나로 자신을 꼼짝 못 하게 하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오한 무공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그 무공을 완성한다면 굳이 가문의 무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민하던 그는 일단 몇 가지 사실을 알아보았다.
“제가 익힌 무공과 철혈혼천기가 충돌할 염려는 없습니까?”
청무는 씩 웃으며 손가락을 저었다.
“걱정 마라. 철혈혼천기의 장점이 바로 어떤 무공과도 충돌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철혈혼천기는 따로 수련하는 게 아니고, 세맥에 잠들어 있는 잠력을 활성화하는 것이거든. 그래서 네가 익히는 공부가 뛰어날수록 철혈혼천기도 함께 커지게 되어 있지.”
용화천공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공력이 강해질수록 철혈혼천기의 힘도 커진다는 말.
그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었다.
“익히는 과정에 대해서 알았으면 합니다. 괜찮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청무는 순순히 말해 주었다.
그런데 청무의 말을 들어 보니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철혈혼천기의 구결대로 세맥에 잠재된 기운을 끌어내야 된다. 그리고 기운을 끌어내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그 잠력를 폭주시켜서 두 손에 집중시키는 거지. 그러면 손안에 엄청난 진기가 모이면서 살로 된 손이 쇠보다 더 단단하게 변하는데, 거기까지가 일 단계야.”
문제는 잘못될 경우 진기가 제멋대로 날뛴다는 것이다.
“걱정할 것 없어. 잠시 고생만 할 뿐 주화입마에 들 정도는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는 겨우 손가락 하나에 진기를 집중시키려다가 잘못되어서 죽을 지경까지 갔었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그것은 일차적인 관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손에 모인 진기를 밖으로 방출시킬 수 있게 되면 이 단계에 오른 것이 되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방출된 힘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게 삼 단계인데, 그 경지에 올라 만압결(萬壓訣)을 펼치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도 맨손으로 부술 수 있지. 또한 탄강결(彈罡訣)을 펼치면 삼 장 밖에 있는 집채만 한 바위에 구멍이 낼 수 있고 말이야.”
악초영은 그의 말을 반의반도 믿지 않았다.
그래도 모험할 만한 가치는 충분해 보여서 철혈혼천수를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좋습니다. 그럼 배워 보겠습니다.”
청무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잘 생각했다.”
가르쳐줄 사람이 왜 사정해야 하는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당장은 고집쟁이의 고집을 꺾었다는 게 마냥 즐겁기만 했다.
‘자식. 어디서 이 도사님을 이기려고 들어?’
* * *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일 년에 걸친 고련 덕분에 철혈혼천기로 세맥에 잠재된 기운을 자유롭게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악초영은 그때부터, 기운을 두 손에 모으는 수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수련은 단순히 진기가 손에 모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두 손에 진기가 모이면서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었다.
뼈와 살이 폭죽처럼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이!
문제는 중간에서 멈추면 진기가 제멋대로 날뛸 터, 마음대로 멈출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악초영은 고통이 밀려들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청무를 향해 이를 갈았다.
그토록 지독한 고통이 뒤따른다는 말은 없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토록 지독한 고통을 참으며 자신의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채찍질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자 고통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청무는 한 달이 지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삼 년은 되어야 고통이 줄어들기 시작할 텐데, 너무나 빠른 것이다.
혹시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수련을 중단했으면서 거짓으로 하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청무는 시험을 하기 위해서 철혈혼천기의 힘을 외부로 표출하는 이 단계를 가르쳤다.
악초영은 그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단 두 달 만에 철혈혼천기의 힘을 외부로 표출했다.
청무는 악초영의 손이 은은하게 빛나는 걸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설령 일 단계를 제대로 익혔다 해도 철현혼천기를 외부로 표출하려면 이 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달랑 두 달이라니!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한편으로는 악초영과 비교되는 자신을 돌아보고 무력감마저 느꼈다.
‘씨발, 나도 젊을 때는 자질이 괜찮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삼 년이 지나자 악초영의 철혈혼천기가 사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철혈혼천수도 삼 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 제법 그럴 듯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손인데, 아무리 단단한 자갈도 철혈혼천기를 일으킨 손으로 움켜쥐면 모래처럼 부서지는 것이다.
더 뛰어난 점은 용화천공으로 쌓인 단전의 공력이 거의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악초영은 철혈혼천수가 정말 청무의 말대로 천하제일의 수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화천공을 전력으로 펼치는 와중에 철혈혼천수를 펼칠 수 있다면, 두 사람이 공격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청무에게는 일절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도장님 말씀대로 쓸 만한 무공 같군요.”
단지 그렇게 공치사한 그는 묵묵히 가문의 무공을 익히는 일에 열중했다.
청무는 악초영의 빠른 성취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세상에 사람이 오죽 많아?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없으란 법도 없지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니면 자신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았다.
빌어먹을!
* * *
세상천지가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가을의 어느 날.
악초영은 사공혁에게 받은 무정도를 익히기로 작정했다.
악초를 팔기 위해 마을로 나갔다가 마음에 드는 도를 하나 얻은 게 빌미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무정도를 익히려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강호에 나간다 해도 가문의 무공을 함부로 펼칠 수 없는 상황. 탈혼도를 익혔으니 도법을 자신의 주 무공처럼 사용하면 괜찮을 듯했다.
다만 문제는 무정도가 사공혁이 내준 도법이라는 점이었다.
사건을 파헤치려면 철저히 자신을 감춰야 하거늘, 자칫 그가 무정도를 알아보면 자신의 정체를 눈치챌지도 몰랐다,
악초영도 그동안 그 점 때문에 익히기를 꺼렸는데 고심 끝에 마음을 바꾸었다.
사공혁이 무정도를 자세히 알았다면 자신에게 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만약 알고도 내줬다면 그에게 딴마음이 없었다는 말일 것이고.
그만큼 무정도는 상승의 도법이었다.
‘백부도 몰랐을 가능성이 커.’
받았을 당시, 앞쪽 두어 장을 제외하고는 종이가 붙어 있다시피 했다. 뒤쪽은 펴 보지 않았다는 말. 다시 말해 대충 앞만 살펴봤다는 뜻이었다.
간략한 구결. 게다가 도법이었다. 검을 최고로 아는 백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아마 자신도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탈혼도를 익히면서 간간이 떠올려 보지 않았다면 그 진가를 몰라봤을 게 분명했다.
결심을 굳힌 악초영은 초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도를 휘둘렀다.
도법 수련은 주로 오후에 했지만,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을 때가 잦았다.
한 번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 오죽하면 무광이라는 청무가 질려서 쉬어 가며 하라고 할 정도였다.
사실은 식사 시간 다 되었는데도 시간의 흐름을 잊고 수련에만 열중하는 게 못마땅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청귀암의 하늘이 수만 번 갈라졌다.
어떤 때는 빗방울이 갈라지고, 어떤 때는 하늘하늘 떨어지던 눈이 두 조각, 네 조각나서 흩어졌다.
무정도는 일체의 정이 배제된 일격필살의 패도(覇刀)였다.
무정단천 천공혈염(無情斷天 天空血染)!
―무정함이 하늘을 가르면, 천공이 피로 물든다!
오죽하면 서문에 그런 말이 쓰여 있을까.
악초영은 도를 휘두를 때마다 적이 앞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도에 적을 물리치지 못하면 자신이 당한다는 절박감.
자신의 도는 하늘도 가른다는 자신감.
도를 떨치면 정조차 베어 버려야 한다는 무정함.
그는 자신의 도에 그 모든 마음을 담아서 휘둘렀다.
그러나 간략한 구결과 어설프게 그려진 그림만으로 무정도를 완성한다는 것은, 그가 제아무리 천고기재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석 달째부터 한계에 부딪힌 도법은 육 개월이 되도록 전진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청무도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문제가 보다 빨리 해결될지 모르는데도, 악초영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더욱더 도법에 매달렸다.
언제까지 청무의 도움만 바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구경하던 청무가 먼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무지 살벌한 도법이군. 그런데 갑자기 웬 도법이냐?”
“사정이 있어서 검은 함부로 쓸 수가 없습니다. 해서 도법을 익혀 놓으면 필요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초식이 연결될 때 자꾸 흐름이 끊기던데, 왜 그런 거냐?”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초식의 변화에 따라 공력의 운용이 달라지는데, 이상할 정도로 제어가 안 됩니다.”
“너무 억지로 제어하려는 거 아냐? 거기서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서 자연스러운 운용이 방해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악초영은 망치로 한 대 머리를 맞은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