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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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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격류는 그 연무 방법이나 파훼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성하기 힘들다.
하나 분명히 전단격류는 세상에 존재한다. 이미 익힌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

전장에서 거두어지고 자라나,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해 온 무정.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전장을 겪어온 그가 자유를 얻어 마침내
칼날 위 인생을 사는 무인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데...
무정의 거친 기지개에 무림은 거대한 요동을 시작하는데...... ."

 
5 화
작성일 : 16-07-20 16:37     조회 : 569     추천 : 0     분량 : 12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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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정이라는 사내

 

 

 

 “아따, 상귀 성님! 이건 제 겁니다, 제 거.”

 “씁새가? 의리 없이 굴래? 방쉐이 같으니…….”

 장씨 세가의 내원에는 언제나 저녁마다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지금 내원 중 그나마 제일 큰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원래는 보급품 창고였으나 몇 년 전부터 이곳은 낭인대의 차지가 되었다. 군졸들과 같이 군막을 썼다가 피 본 군졸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잉, 하여튼 저것들은 하는 일도 없으면서 돈은 무지 밝혀요. 안 그렇소, 우 공자?”

 오늘도 전리품을 챙겨 잽싸게 전장에서 환전해 온 두 사람을 보며 고죽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곤 우 공자의 눈을 힐끔 보며 넌지시 물었다.

 “하하!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법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분들은 참 개성이 강하신 것뿐입니다.”

 “히유~ 하여튼 사람하고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에잉~ 츳츳.”

 고죽노인은 이 사람 좋은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광검, 아까 대장의 일권을 봤나?”

 뜬금없는 패도의 대장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패도 구서력은 얼굴을 굳혔다. 아마도 광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일 것이다.

 상귀와 하귀는 뭔 일인가 싶어 쪼르르 달려와 앉았다. 광검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이자 패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분명 그놈은 맞지 않았다. 일 촌 정도의 공간에서 대장의 주먹이 막혔다. 대체 그게 뭐냐?”

 “호신강기에요”

 대답은 광검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있던 비연 화수련이 꽃 같은 입을 벌린 것이다.

 패도는 그녀를 보았다. 뭔가 미진하다는 듯이 비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비연은 피식 웃었다. 조용히 노려보는 것은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패도의 습관이었다.

 “그 마가난타라는 라마는 무의식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운용했을 겁니다. 무공을 익힌 자의 습성이지요. 그런데 대장의 주먹이 호신강기를 뚫고 타격한 것이지요. 그게 다에요.”

 “하지만 호신강기가 다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잖소? 다들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그 라마가 그만큼 무공이 높다는 말이오?”

 하귀가 또롱한 눈을 빛내며 비연에게 묻자 비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귀를 바라보았다. 순간 패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아니, 분명히 대장은 호신강기를 파괴하지 못했다. 하귀의 말대로 그자는 상당히 무공이 높은 자였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자는 정말 맥없이 쓰러졌다.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그 점이다, 비연. 진짜 그자의 호신강기가 외부의 타격으로 깨진 것인가?”

 “…….”

 패도의 말에 비연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자세히 보지 못하고 그냥 짐작으로 말한 것이었다. 솔직히 대장이 그렇게 이겼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기에 그녀도 미간에 골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음, 그건 반만 맞은 것 같군.”

 한쪽 팔을 베고 옆으로 돌아누웠던 광검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목이 아픈지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흐릿한 눈동자로 말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신강기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신강기에 자신이 당한 것이지.”

 귀찮은 듯 그는 멍한 눈동자로 일행을 돌아봤다. 눈만 껌뻑이는 그들을 보니 아무래도 설명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다들 알다시피… 대장의 권격은 일종의 와류(渦流)를 형성하지. 이렇게.”

 말과 함께 광검은 옆구리로 주먹을 당기며 손목을 돌렸다.

 손등 쪽이 옆구리에 완전히 붙게. 그리고는 주먹을 원위치로 돌리며 앞으로 쭉 뻗었다.

 쉬이이! 팡!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광검의 주먹이 공중에 멈추어 섰다. 순간적으로 방 안에 바람이 이는 듯했다.

 “이런 식의 충격이 그자의 호신강기에 와선형(渦폫型)의 충격을 준 거야. 그리곤 호신강기는 되려 권력을 퉁겨냈을 뿐만 아니라 안쪽으로 증폭되도록 도와준 셈이지. 마치 북을 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쪽으로 치면 다른 쪽도 같이 울리는…….”

 “그렇지만 그자는 음유한 느낌의 무공이었어요. 튕긴다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이 묶여야 정상이지요. 게다가 호신강기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무공을 익힌 게 아무 소용없겠네요?”

 비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을 지키는 호신강기가 자신을 해친다니 듣도 보도 못한 괴사(怪事)였다.

 “훗, 나도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오늘 어떤 인간이 그렇게 해냈잖아?”

 “…….”

 일행은 말이 없었다. 무정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특별히 무공도 내력도 없는 게 확실한데 어째서 그런 능력을 보일 수 있는지 정말 의문이었다.

 “진짜 우리 대장이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광검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 저 인간은 저만큼씩 성큼성큼 나가니…….

 “대장 내력의 배 이상 되는 자가 아니면 덤빌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라도 대장의 일권은 못 막아. 아니, 이건 무공 수준의 문제가 아니야. 맞는 순간 서서히 골로 가기 시작하지.”

 “……!”

 광검의 발언에 일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호신강기에 자신이 되려 당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싶었다.

 “아무리 두 배라 하지만 장문인들과 비교하기에는 내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

 패도 구서력이 이의를 제기했다. 맞는 말이다.

 내력이 낮은 자는 벽에다 주먹질을 한 꼴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무정이 아무리 기이한 힘을 갖고 있어도 현격한 내공의 차이는 자신의 손만 부러지게 할 것이다.

 “내가 일 갑자가 좀 넘는다.”

 내뱉듯 던진 광검의 말에 모두 이채를 띠었다.

 일 갑자 정도면 장로 급은 아니지만 웬만한 장문인들보다는 조금 처지는 정도고 후기지수보다는 높은 정도였다.

 광검은 눈을 감았다. 오 년 전 처음 이곳에 와서 무정과 비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대장이 공격이나 방어하는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적어도 나보다 내력이 위라는 것이었다.”

 “…….”

 또다시 방 안에 적막이 돌았다. 광검은 표면상으로 본다면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최고 고수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 허투루 들릴 리 없었다.

 패도 구서력은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기껏해야 대장이 익힌 것은 군인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군대의 권각술과 장창술, 그리고 잡다한 무학 정도였다.

 그런 것이 그렇게 효과가 있다면 무림인은 누구나 군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특별한 심법? 더군다나 없었다. 시골 촌부도 잘 안 하는 온몸을 흐느적거리는 이상한 유가술 같은 양생술과 정말 간단한 토납술(吐納術)만 익혔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실제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적도 있었다.

 한데 그러한 사람의 내력이 일 갑자에 육박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이제 이십 대 중반에.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에이, 쓰벌! 뭘 그걸 갖고 고민하고들 그래? 그냥 대장이랑 붙을 땐 호신강기 안 쓰면 되잖아! 쓰벌, 안 그러냐, 하귀야?”

 상귀가 투덜거리며 지껄인 소리에 일행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어이없는 눈초리로 상귀를 쳐다보았다.

 “무식하면 입이나 다물지! 야, 이 덜떨어진 놈아! 호신강기를 뒤흔드는 주먹을 맨몸으로 그냥 막는다고? 차라리 네 배를 째라, 배를 째!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게 덜 아플 거다, 이 무식한 놈아!”

 고죽노인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다시 곰방대를 잡았다. 상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하는 저 경멸스러운 눈초리를 보았다.

 심지어 하귀까지도 눈을 크게 뜨며 안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니기미, 쓰벌. 아, 장난이야, 장난! 씁새들, 난 장난도 못하냐? 니미, 캬아아아아아악!”

 벌게진 얼굴로 상귀는 이 경멸스러운 분위기의 반전을 위해 한껏 목울대를 울렸다. 그러나 시원하게 뱉을 수는 없었다.

 “방 안에서 침 뱉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칠 척이 약간 넘는 저 무시무시한 곰 같은 인상의 패도 구서력이 눈을 흘겼다. 상귀는 순간 움찔했다.

 “…꿀꺽!”

 시원하게 목울대가 위아래로 젖혀졌다. 상귀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자랑스레 씨익 웃었다.

 옆에 있던 고죽노인은 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심지어 하귀는 슬금슬금 상귀에게서 떨어지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은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광검은 아무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과 비무했을 때 문제는 그의 권력이 아니었다. 그의 참마도 초우, 그것이 더 문제였다.

 호신강기를 가르고 목에 대어져 있던 그의 거대한 참마도. 그는 분명히 보았다. 그 검은 도 주위로 보였던 옅은 묵빛 기류를. 아마 대장의 내력은 그 묵기에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무정에게 패했고 이후 광검이 되었다. 자신이 아는 무공을 다시 시전해 보고 또 수없이 수련했다. 이제 검 끝에 조금 푸른빛이 돌 정도? 그래도 오 년 전의 대장보다도 뒤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 쓰벌! 근데 대장은 어디 처박혀서 안 오는 거야, 피곤하게스리?”

 방 안에서는 상귀의 투덜거림만 계속되었다.

 

 ***

 

 “서장의 라마승, 그것도 무승이 적의 진지에 있다.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니군.”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어쨌든 삼 일 후에 총공세는 예정대로 진행될 걸세.”

 “…알겠습니다.”

 장가장의 접객전에서는 지금 한창 천호 마 대인과 무정이 대화 중이었다. 무정은 복귀하자마자 마 대인을 만나 결과를 보고했다.

 이미 세작의 보고로 인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마 대인은 무정의 보고에 서장과 우량하 족의 연수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나저나 궁금하군. 서장도 서장이지만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야달목차가 연수를 하다니…….”

 마영령은 책상 위에 올려진 찻잔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뭔가 생각할 때마다 보이는 그의 습관이었다.

 무정은 그런 마 대인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야달목차는 우량하 족의 수장이었다.

 당시 남만주의 여진은 건주 여진이라고 해서 워더리[斡朶里], 하루아[火兒阿], 나하추[納哈出]의 큰 세 부족을 말했다. 그러나 유목 민족의 특성상 그 외의 부족들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량하 족은 그런 부족들 중에서도 약간 큰 세를 가지고 있는 부족으로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높이 사서 연수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할 줄 모르는 부족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서장과 손을 잡다니, 마영령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흑룡강(黑龍江)과 하북성(河北省)에서만 놀던 부족이 하루아침에 이곳 감숙성과 섬서성 인근에 온 것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마영령은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애써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적(敵)이었고 싸워 이기면 그뿐이었다.

 “흠…….”

 짧은 헛기침 소리와 함께 마 대인은 상체를 세웠다. 무정도 고개를 들었다.

 “이번 공격은 거의 총공격이 될 것이네. 작전 지휘도 섬서도 지휘사가 직접 진두지휘한다.”

 “위민왕(爲民王)이 직접 나선다는 말씀이십니까?”

 뜻밖의 상황에 무정은 반문했다. 현재 섬서위(衛)의 수장은 당금 황제인 영종(英宗)의 첩실 중 둘째 경인비(敬仁妃)의 소생이다.

 무재라기보다는 문재에 더 가깝다는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단 한 번도 전장에 나온 적이 없었다.

 하나 그것도 좋게 말해서 그런 것이지 사실 무예라는 것은 거의 모르고 그저 기분 위주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직접 출정을 한다니, 무정이 생각했던 용현천호소의 전 병력만으로 하는 총공격이 아니었다. 주변의 위(衛), 소(所)의 병력 모두가 참여하는 상당한 전면전일 것이다.

 “이번 전투에는 이곳 용현천호소의 아홉 개 백호소 병력과 섬서의 연중(連中) 천호소의 다섯 개 백호소가 나설 것이라고 하더군.”

 “…….”

 무정은 왠지 기이한 느낌이 머리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다른 위의 병력을 다 합쳐도 될까 말까 한 공격이었다.

 보통 백호소 하나의 병력이 약 백십 명.

 총 천오백 명 정도의 병력인데 우량하 족은 정예 기병만 일천이고 보병이 약 삼천, 총 부족민 수가 오천이 넘는 대부족이다.

 허투루 보았다면 벌써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한데 단 천오백 정도의 병력으로 그들을 정벌한다? 그것도 전투력도 상당한 부족을?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섬서의 연중천호소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양민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자살 행위였다. 그의 뇌리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위장입니까?”

 마 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침중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네 휘하의 낭인대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적지로 스며든다.”

 결국 이것이 진짜였다. 목표는 요인(要人) 암살. 아마도 야달목차의 제거일 것이다.

 “야달목차를 제거하는 것, 그것이 이번 작전의 목적이다.”

 “…….”

 무정은 말없이 낯빛을 굳혔다. 길게 내려온 머리칼 사이로 서늘한 눈빛이 흐르더니 굳게 다문 입술이 벌어졌다.

 “성공… 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다.”

 자조적인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마영령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따라야 했다. 이 작전은 자신이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 인물을 떠올렸다.

 위민왕의 곁에는 책사랍시고 달라붙어 있는 인물이 있다. 멋들어진 수염에 어울리는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사내. 위군성(委君聖)이라는 자였다. 이번 작전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 말도 안 되는 작전은.

 지난 주였다. 영중위의 연회에서 싸움이란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며 성동격서(聲東擊西) 어쩌구 하며 술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든 어이없는 책략이었다.

 위민왕은 취기가 한껏 올라 아예 그 자리에서 명령서를 작성했다.

 마영령은 술기운에 한 작전을 설마 실전에 옮기랴 했지만 다음날 떠날 때 받은 명령서를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긴급히 면담을 요청했지만 면담은 거부당했다. 국무에 지쳐 쉬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영령은 수염을 떨며 분에 못 이겨 일장에 정문의 돌사자 머리를 부수어 버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무정은 일의 전후 사정을 짐작했다. 그는 위민왕을 기억했다. 한 번인가 본 사람으로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책사도 기억했다.

 사실 이제껏 그 책사는 어이없는 작전을 많이 세웠지만 마 대인이 그 모든 것에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작은 감숙의 용현천호소를 그 어떤 소보다도 높은 순위에 올려놓게 한 이유였다.

 마영령은 탁자에 손을 짚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오늘 무정을 부른 진짜 이유를 말했다.

 “정아, 명심해라. 만일 일이 조금이라도 여의치 않으면 당장 빠져나오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대인.”

 대답을 들으면서도 마 대인은 속이 탔다. 명령이기에 그들은 가야 한다. 그러나 못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이 너무나 높았다.

 무정도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렇기에 사실상 명령을 기만하라는 말까지 한 것이다.

 마 대인의 눈빛이 따뜻해졌다. 무정은 부하이기 이전에 아들과 같은 존재였다.

 군령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사지에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인상을 풀고 따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글공부는 잘 되어가느냐?”

 무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 명의 살귀로 만들기 싫었던 마 대인의 의도임을 잘 알기에 그래서 그는 지금껏 자신의 본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혈귀라는 호칭을 얻은 후로 그는 묵빛 기류를 사용하는 무공은 실전에 사용치 않았고 또 그래도 충분했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을 때만 조금씩 사용했다.

 그렇다고 무정이 아예 무공 수련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묵빛 기류를 이용한 수련은 거의 매일 해왔다. 다만 수련만 했을 뿐 거의 사용을 안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무정의 대답에 마 대인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무래도 글을 계속 접하면 심성이 올바로 잡힐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데… 부탁이 있다 했느냐?”

 무정은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인상의 젊은 얼굴이 한쪽의 검상과 함께 드러났다. 그는 주저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군을… 떠나고 싶습니다…….”

 막 찻잔을 입에 대던 마영령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언젠가 듣게 될 말이었지만 막상 듣고 나니 가슴이 떨려왔다.

 “이유가 무엇이더냐?”

 무정은 눈을 감았다. 이유? 이유라……. 이유는 없었다. 가족과 상현촌 사람들의 원한? 굳이 갖다 붙이자면 갚았다고도 할 수 있다.

 마 대인의 대우도 좋았다. 일반 병사들의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생활하는 데도 아쉬움이 없었다. 오히려 돈도 조금 벌었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무정은 생각할수록 모호해졌다. 이유? 그런 것은 없었다.

 “없습니다.”

 조용하지만 나직하게 힘 있는 목소리가 마 대인의 귀를 울렸다. 마 대인은 그 소리의 여운을 곱씹었다.

 사춘기 소년의 투정도, 세상을 향한 염세(厭世)적인 어투도, 악의(惡意)가 깃든 느낌도 없었다. 그런데 마 대인은 이 여운이 굉장히 낯익게 느껴졌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 마 대인 자신의 소리였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자신의 목소리였다.

 사천성(四川省) 서창(西昌)에 있는 마가장(瑪家莊)을 나와 군문에 투신할 때 자신이 느꼈고 부모님께 말했던 것, 바로 그것이었다.

 마 대인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접객청을 나와 무정은 일행이 있는 내원으로 향했다. 이미 술시가 넘은 시간. 짙은 어둠 사이로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정은 잠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쩌면 마 대인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기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 대인은 조용히 웃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곤 말했다.

 

 ‘허허… 알겠다. 네 뜻대로 하려무나.’

 

 허탈함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무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를 일이다. 그게 연륜(年輪)이라는 것인가?

 어느새 무정은 내당 앞에 서 있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노르스름한 유등의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틈으로 손을 비집어 넣어 문을 열었다.

 

 “니미, 쓰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쇼!”

 “말조심해라, 상귀! 대장에게 그 무슨 말버릇이야?”

 “패도, 이 씁새야! 죽으러 기를 쓰고 가자는데 무슨 얼어 죽을 대장이야, 대장은! 니기미……!”

 상귀 주서평(注敍平)은 악을 버럭버럭 쓰며 화살을 패도에게 돌렸다. 패도는 침중한 안색으로 상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상귀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일행의 마음은 그와 같을 것이다. 그것은 굳어져 있는 낭인대원의 안색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매사에 흐릿한 광검까지도 낯빛을 굳히고 있었다.

 예상한 일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죽으러 가자는데 그 누가 뭐라 안 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는 점에 있었다. 무정은 눈을 돌려 반뇌에게 물었다.

 “반뇌, 이 작전을 어떻게 생각하나?”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반뇌도 굳은 낯빛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위에서 지껄이는 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비록 상관 앞이지만 그 정도의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가면 죽습니다. 지형도, 숫자도, 전술도 모든 것이 불리합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청년의 입에선 너무도 비관적인 관측이 나왔다. 반뇌 우세중, 실없어 보이는 청년이지만 그의 머리는 항상 무서울 정도로 회전이 빨랐다.

 실제로 그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은 일행의 어려움을 수도 없이 타개할 수 있게 했다. 이에 일행은 그에게 말은 안 해도 책사 대접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가슴에 검상을 맞고 들것에 실려 오면서도 멍하게 웃어 반뇌라는 별호를 지니게 된 그가 지금 낯빛을 굳히고 있는 것이다.

 “흐미, 반뇌 성님, 그래도 마 천호께서 시늉만 하고 나오면 된다고 그러잖았습니까?”

 하귀 여문탁(呂聞倬)이 작은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반뇌는 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생각한 바가 제발 틀리길 바라며 말하기 시작했다.

 “하귀 너는 우리가 어떻게 소뢰음사 중들이 우량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나?”

 “그거야 간자(間者)가 알려준 것 아니오!”

 “그럼 우량하에는 간자가 없을까?”

 “…….”

 “아니, 우량하 족은 간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을 것이네. 출정일과 출정 병력을, 그리고 우리들의 임무도.”

 고죽노인은 생각했다.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비밀도 새어 나가는 법이다.

 하물며 그것도 연회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술주정 같은 명령서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두고두고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군사 천오백이 몰려온다면 네가 우량하의 야달목차라면 어떻게 하겠나?”

 “얼씨구나 하고 싹 죽이면 되는 것 아뇨?”

 하귀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반뇌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의심을 하겠지. 여태껏 그들이 유리한 점을 다 버리고 오기에…….”

 대답은 비연이 했고 그 말에 광검이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 그동안 유리했던 것은 무공도 숫자도 아니었다. 책략이 모두 수세(守勢)에 있었기 때문이다.

 용현위의 군졸 수도 그들보다 적은데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낭인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수세를 위한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세는 달랐다. 통상 두 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했다. 만일 산성이라도 함락시킬라치면 거의 다섯 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한 것이 상식이다.

 반뇌도 그런 광검의 생각을 읽은 듯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떡였다.

 “의심을 한다면 결과는 한 가지입니다. 적의 본진을 칠 병력이 따로 온다는 말이 되겠죠. 더구나 항상 선봉에 서던 저희가 안 보인다면 말입니다.”

 “쓰벌, 그러니까 니미 그냥 나오자는 거잖아! 땅만 밟고 나오자고!”

 반뇌의 말에 상귀가 다시 발작했지만 반뇌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냥을 할 때는…….”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구석에서 울렸다. 패도였다.

 “퇴로를 막고 하는 것이 기본이다.”

 “……!”

 패도의 말에 상귀는 이를 악물었다.

 모르는 게 아니다. 비록 용병이지만 그래도 군이다. 더군다나 대장이 간다. 그럼 아마 모두 갈 것이다. 꽁무니를 빼긴 정말 싫었기에 애써 부인하고 싶은 것이 상귀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고죽노인은 그런 상귀를 바라보았다. 저놈의 마음을 알 것 같았지만 본인도 답답할 뿐이었다. 그는 반뇌를 바라보았다.

 “방법이 없겠나, 우 공자?”

 “…….”

 고죽노인의 담담한 말에 반뇌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정말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육도삼략에도, 손자병법에도, 그 어느 것에도 이런 경우의 해답은 없었다.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모두 들어라!”

 무정은 고개를 들고 허리를 폈다.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낭인대 대장으로서 말한다! 빠지고 싶은 사람은 빠져도 좋다!”

 조용한 침묵이 방 안을 휘돌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자신들은 낭인이었다. 돈을 받고 싸우는 사람들. 일반 군졸들처럼 얽매인 입장이 아니었다. 싸우기 싫으면 그냥 떠나면 그만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났다.

 그렇지만 그들은 갈 수 없었다. 지금 눈앞에 떡하니 앉아 있는 저 인간, 무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저 인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사람, 우리 대장은 혼자라도 갈 인간임을……. 결국 침묵은 깨졌다. 방구석 한쪽의 묵직한 음성 때문에.

 “난 간다.”

 패도 구서력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비연 화수련이 뒤를 이었다.

 “저도 가겠어요.”

 “헐헐, 어차피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미련이 있겠나? 나도 가겠네.”

 “훗, 말은 없어도 제가 책사 아닙니까? 저도 가야죠.”

 “에이, 잔정이 있지, 지도 갈랍니다. 성님은 우짤라요?”

 고죽노인과 반뇌, 우세중, 하귀 여문탁이 뒤를 이었다. 상귀 주서평도 인상을 있는 대로 쓰더니 결국 악을 써댔다.

 “니미 쓰벌, 씁새들! 아, 눈물 나오게 하네! 가자, 가! 시펄, 가! 가면 될 것 아냐? 지미럴!”

 상귀는 독하게 한마디 뱉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멍한 눈을 가진 광검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야, 씁새, 동태 눈깔! 넌 어쩔 건데?”

 일행은 광검을 보았다. 광검은 부스스 벽에서 등을 뗐다. 그리고는 무정을 향해 말했다.

 “조건이 있소.”

 “…….”

 “지금 나와 비무 한번 해주면 가리다.”

 조금은 어이없는 대답에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미치긴 해도 이 정도일 줄이야…….

 며칠 후면 죽을힘 살힘 다 써야 되는데 비무를 신청하다니……. 일행은 대장에게 말하고 싶었다. 거절하라고. 그러나 무정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와라.”

 말과 함께 무정은 내원 앞뜰로 나갔다. 광검도 자신의 검을 챙겨 따라 나갔다.

 “쓰벌, 둘 다 미쳤어. 정신 나간 쉐이들이야. 내가 미쳤지, 저 쉐이들을 따라간다니……. 카아악, 퉤! 야, 패도 씁새야, 밖에 뱉었다. 쓰벌, 오늘은 긁지 마라, 지발.”

 상귀는 문을 열고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의 신형도 밖으로 나섰다.

 뒤따라오던 패도에게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미 투기를 내뿜고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이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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