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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무정지로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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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격류는 그 연무 방법이나 파훼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성하기 힘들다.
하나 분명히 전단격류는 세상에 존재한다. 이미 익힌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

전장에서 거두어지고 자라나,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해 온 무정.
생사를 넘나드는 험난한 전장을 겪어온 그가 자유를 얻어 마침내
칼날 위 인생을 사는 무인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데...
무정의 거친 기지개에 무림은 거대한 요동을 시작하는데...... ."

 
1 화
작성일 : 16-07-20 16:21     조회 : 1,020     추천 : 0     분량 : 14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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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序) 1

 

 

 

 쩌러렁!

 “큭!”

 “…….”

 검을 들고 있는 한 사람의 주위로 무림인으로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낭패 가득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맑은 검명과 함께 모두 뒤로 물러선 듯했다.

 “계속하시겠소?”

 머릿속을 울리는 넉넉한 소리가 중인들의 귀에 들어온다. 중앙에 홀로 서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인데 도발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중인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두 저마다의 무기를 쥐고 아무 말 없이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어느 이름 모를 산의 작은 분지 위에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적막한 고요 속에서 문득 하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묻겠소이다. 그대의 무공, 이름이 무엇이오?”

 “…모르오. 나도 그냥 수련하다 보니 할 수 있게 된 것이오. 성의없다 생각지 말고 사실로 여겨주시오, 암격제 당현 어르신.”

 당현이라 불린 사내의 눈이 꿈틀거린다. 이미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 그의 얼굴에 한줄기 노기가 스쳐갔다. 정말 성의없는 대답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소림의 무학이라 하오. 솔직히 사정이 있어 말씀을 못한다고 생각되오만 확실히 그대의 무공은 대단하외다. 이 무학, 탄복했소이다!”

 “감사하오, 무학 대사.”

 무학이란 스님의 합장에 사내는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그때였다.

 “닥쳐라! 여기 있는 분들을 꺾었다고 무림을 꺾은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청백지강호 어르신들이 오셨다면 넌 십초지적도 안 되었을 것이다! 하물며…….”

 “조용하지 못할까, 이 녀석 당세극! 감히 어느 자리라고 나서는 것이냐?”

 삼십 대 중반의 장한이 앞으로 나서며 얼굴 가득 독기를 품고 말하자 당현이란 사내가 말을 잘랐다. 당현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아미타불… 시주,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구여신니시여.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자한 미소를 담은 여승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대의 무공, 혹 전단격류라 불리는 무공은 아닌지요?”

 “……!”

 중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전단격류… 실체도 기록도 변변히 없는 불패의 무공. 설마 저자가 전단격류를 익혔단 말인가? 하나 그들의 얼굴은 다시 의아함으로 물들어갔다.

 “아닙니다, 신니. 전 제 무공이 전단격류인지 뭔지 모릅니다. 그저 가전의 무공을 수련했을 뿐입니다. 감히 전단격류라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군요.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도 잘 모릅니다.”

 “아미타불…….”

 아리송한 대답에 구여신니는 불호만 되뇌었다. 왠지 청년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믿기도 힘든 대답이었다.

 “허허, 저도 하나 묻겠소이다. 그래도 되겠소이까?”

 “어느 안전이라고 거절하겠나이까. 경세 진인께서는 안심하고 하례하시지요.”

 “감사하오이다, 소협.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겠소. 앞으로 소협은 어떻게 할 것이오? 혹 문파라도 창시하려는 것이오?”

 “…….”

 잘 대답하던 그가 이번엔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저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볼 뿐.

 중인들도 긴장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한마디가 앞으로의 강호 정세를 좌지우지할 것이기에…….

 한참이나 말이 없던 그는 여기저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보다가 어느 순간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 못난 얼굴은 아니지만 왠지 그에겐 웃는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사내는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 건방……!”

 “조용!”

 여기저기서 젊은 사람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당장에라도 달려갈 듯하자 당현의 입이 열렸다. 내공을 실은 한마디가 중인들의 귀에 울려 퍼졌다.

 “아미타불……!”

 무학 대사는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중인들의 얼굴은 모두 적의를 한가득 담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항.

 아무리 무공의 원동력이 보다 강한 것에 대한 동경과 질투라고는 하지만 이렇듯 갑작스럽게 바뀌는 분위기에는 솔직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사내가 점차 멀어졌다. 차차 멀어져 점이 되어가는 사내의 등을 바라보며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검으로 몸을 지키고 이검은 반드시 승리를 하는 사람이라니[一劍護身 二劍必勝人]…….”

 무학 대사의 목소리가 중인들의 귀에 꽂히자 사람들의 신형이 저마다 굳어졌다. 눈으로 보고 확인한 사실이나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이라는 듯 머리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중인들의 눈에서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 척의 장검이 휘둘러졌던 궤적만이 머릿속에서 흔들거리며 잔상처럼 남아 있는 그의 이름만 입속으로 되뇌일 뿐이었다.

 “이검필승인 장규연(張規沿)…….”

 

 

 서(序) 2

 

 

 

 하늘은 잔뜩 흐렸다. 묵빛 구름으로 온통 둘러쳐진 하늘은 마치 땅 위의 모습은 보지 않겠다는 듯했다.

 “아악! 살려… 살려주세…!”

 “크하하하! 죽여라! 모조리 죽여라!”

 애당초 초원의 군사들과 양민의 싸움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잔혹한 몽고족의 약탈에 남녀노소 구분 없이 수많은 비명만이 꼬리를 물었고 난무하는 피와 청광 속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스러져 갔다.

 무정한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이젠 묵빛 구름은 물러가고 모든 것이 잊히고 망각되는 어둠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그토록 소름끼치게 들려왔던 비명도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

 

 어둑해진 하늘 아래 일단의 인물들이 보인다. 가슴에 명(明)이라는 글자가 쓰인 옷을 입은 군사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지옥의 참상을 보며 그저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말 지독하군.”

 목불인견의 참상을 앞에 둔 한 무장이 눈썹을 떨며 중얼거렸다. 마을, 한때 상현촌으로 불렸던 마을은 그렇게 이 땅에서 지워져 버렸다.

 “혹 생존자가 있는지 찾아라! 시체는 한곳으로 모으도록!”

 “옛, 마 백호님!”

 군졸은 마 백호라는 사내의 말에 복명하며 몸을 돌렸지만 사내는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생존자는 없을 것이다.

 야만족이라는 놈들,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잡아가고 노인과 장정은 살려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것이 초원의 율법이라 떠드는 놈들이었다.

 곳곳에서 토악질을 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제대로 된 시신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었으니 몇 번이나 봤지만 정말 참기 힘든 광경에 병사는 이를 악물고 눈을 돌렸다.

 그런 병사의 눈에 예닐곱 살쯤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모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목이 없는 어린애를 안고 있는 남자 아이.

 아마도 동생을 안고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병사는 측은한 마음에 소년 가까이 갔다.

 그때였다. 아주 작고 낮은 소리가 들려와 병사는 흠칫하며 제자리에 섰다.

 “시익… 시익.”

 “…….”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확실하게 들리는 소리에 그는 귀를 열고 근원지를 찾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한껏 청력을 집중하자 바로 눈앞의 소년에게서 들리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허겁지겁 손을 소년의 코앞에 대보니 미약하지만 약한 숨결이 느껴졌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있는 힘껏 외쳤다.

 “마 백호님! 생존자입니다! 생존자가 있습니다!!”

 시체를 뒤적이던 사람들도, 고개를 돌리고 토악질을 하던 병사도, 허망하게 하늘을 쳐다보던 마 백호도 눈을 빛내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생존자라니…….

 이미 몇 개의 마을을 거쳐 온 그들이었지만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볼 수 없었다.

 생소한 단어에 마 백호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소년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을 확인하고는 흠칫했다.

 아이의 오른쪽 얼굴에는 이마부터 턱의 반 치 정도 위까지 구불구불한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덕지덕지 딱정이가 앉아 있었고 파리마저 꼬이고 있었다. 아마도 습격 이후 이 상태 이대로 있었던 모양이다.

 “꼬마야, 괜찮느냐?”

 마 백호는 물어놓고는 후회했다. 괜찮을 리가 없다. 소년의 눈은 이미 초점이 맺혀 있지 않았다.

 “마 백호님, 이 꼬마… 넋이 나간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병졸 하나가 마 백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미친 것 같다고 말하려다 말을 바꾼 것이다.

 죄 없는 양민 학살 앞에서 다들 예민해져 있었기에 이럴 때일수록 말을 가려가면서 해야 했다. 마 백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며 일어섰다.

 “일단 데려간다. 나머지는 수습하도록.”

 “옛.”

 부대는 다시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군졸 하나가 소년을 번쩍 들어 말 위에 얹었다.

 짐작대로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었다. 아니, 이 참상 속에서 살아날 생명이 있을 수 없었다.

 마 백호는 말에 올랐다. 이미 어두워진 새까만 하늘을 쳐다보자 별조차 부끄러운 듯 먹물처럼 검은 하늘이 눈 안 가득 들어왔다. 그는 무정한 하늘이 괜스레 원망스러웠다.

 

 

 

 

 

 1. 감숙성의 소년

 

 

 

 꼬마는 회복하는 데 근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몸은 완치되었지만 얼굴의 검상은 길게 흉터로 남았다.

 그래도 다행히 칼등에 맞은 것인지 시력에는 이상이 없었다. 마 백호는 지금 그런 꼬마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이제 부상도 완치되었으니 너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려…….”

 “싫습니다!”

 말을 자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하는 소년을 마 백호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보기만 했다.

 이 작은 소년의 가슴속에도 원한이라는 두 글자가 남아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갈 곳이 없기에? 하나 그 어느 것도 이 어린 소년이 남아 있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군은 협사를 원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개인 감정 따위는 아무 필요 없었고 복수를 위해서라면 더욱 안 될 일이었다. 그 하나로 인해 다른 사람도 위험해질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은 철부지 아이들을 수용하는 보호소도 아니기에 이 아이는 더 더욱 있을 수 없었다.

 마 백호는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전 여기 있겠습니다. 나이는 어려도 반드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고개를 숙이며 꼬마는 말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마 백호도 꼬마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

 소년의 눈이 보인다.

 왠지 슬픈 듯한 눈, 그 눈 속에 보이는 진한 피보라는 혈풍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소년의 처연한 운명을 언뜻 느끼게 하였다.

 왜일까? 마 백호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이런 생각들이 들면 안 되는 것을, 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게 놔두어야 하는 걸 잘 알면서도 왜 이렇게 저 눈이 마음에 걸리는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먼저 말문을 연 마 백호에 의해 침묵이 깨어졌다.

 “내 이름은 마영령(瑪榮寧), 이곳 강주백호소(剛株百戶所) 백호장(百戶將)이다. 앞으로는 마 백호라 불러라.”

 “상, 상현촌의… 연(燕)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 다.”

 당시에는 어릴 때의 이름과 장성해서 이름이 다른 것은 흔한 일이었다. 연이라는 이름은 아명(兒名) 같았는데 마 백호는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음… 연이라… 왠지 군문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구나. 무정(無正)… 무정으로 하자. 바른 것은 없으니 스스로 세우라는 뜻도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 닥쳐 올 일에 스스로 판단하라는 의미에서 그게 좋겠구나. 어떠냐, 꼬마야?”

 마 백호는 꼬마의 반응을 살폈다. 고개를 끄떡이는 꼬마를 보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반갑다, 무정아. 힘든 곳이지만 강건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마 백호는 손을 들어 무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딸려 올라오는 소년의 머리칼이 싫지 않게 느껴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이미 무정은 살아 있기만 해도 고맙게 느껴지는 존재였던 것이다.

 

 ***

 

 명나라는 위소제(衛所制)라는 군사체계를 실시하였다. 위소제란 전국의 요소(要所)에 위와 소를 설치하여 군사를 주둔시킨 후 각 도의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 휘하에 두어 운용하는 편제를 말한다.

 이곳 강주백호소(剛株百戶所)는 그러한 수많은 위, 소 중의 한 부분이었고 강주백호소는 약 사십여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용현천호소(龍玄千戶所)에 소속되어 있었다.

 비록 감숙성에 위치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기에 섬서(陝西) 도지휘사사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어린 무정의 일상은 바로 이 강주백호소에서 새벽같이 시작되었는데 눈곱을 떼자마자 꼬마는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물통 두 개를 주방에서 들고 나왔다.

 새벽의 여명이 떠오르기 전까지 그는 오 리 정도 떨어진 우물가로 가서 물을 길어와야만 했다.

 명군의 생활 편제는 비율상 오 할 정도의 자족 체제였다.

 한 개의 백호소 안에 다시 열 명 단위로 일정 군사를 엮어 생활하는데 물론 어느 정도의 지원은 해주지만 세세한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에 열 명 단위의 군사들은 각각 독립된 막사에서 스스로 필요한 것을 자급하고 있었고 서로가 당번이나 역할을 정해 움직이고 있었다.

 무정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이 속해 있는 막사의 사람들이 쓸 식수를 아침마다 길어오고 있었다.

 아직 어린 무정에게 다소 가혹하다 싶지만 아무리 어려도 할 일은 해야만 했다.

 “얘, 정아, 그만두거라. 그만하면 되었어.”

 “…….”

 이미 두 번이나 갔다 와서 그런지 물이 넘쳐흐를 정도였지만 무정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돌아서 부엌문을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늘의 식사 당번이 혀를 끌끌 찼다. 언제나 무정은 이렇게 아침마다 꼭 세 번씩 물을 길어오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무정은 대원들의 무기와 무구들을 손보았다.

 명군의 무장이야 그리 대단치는 않다. 장수 급이 아닌 이상 갑옷을 지닌 것도 아니고 각종 수투나 철각뿐이지만 그는 마른 무명천으로 광택을 내었다.

 그러고 난 후엔 숫돌로 검과 도, 극, 창 등을 손질했다. 작은 꼬마가 자신의 키만 한 무기들을 손본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엔 그도 수없이 손가락을 베었다. 보다 못한 대원들이 그를 말렸으나 부득부득 우기는 꼬마의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렇게 이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무정은 땀을 흠뻑 흘리면서도 아주 능숙하게 해치우고 있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나면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꼬마는 이후 석식 때까지 무공 수련에 힘을 쏟았다.

 무공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양생술과 권각술 정도였지만 그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보로부터 시작한 후 이어 이리저리 보법을 바꾸면서 신형을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는데 좌궁보, 우궁보에 이어 조천세로 끝맺음을 하는 그의 말도 안 되는 양생법은 군졸들이 지나가다 필요한 자세들을 하나둘 던지듯 가르쳐 줌으로 인해 중구난방으로 이어 붙여져 버렸다.

 하나 꼬마는 진지했다. 특히나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호흡이었다. 숨이 가빠지지 않도록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면서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움직이고자 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석식이 끝나면 꼬마는 마 백호에게 갔다.

 마 백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한 시진 정도 그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꼬마는 둔재도 그렇다고 천재도 아니었지만 영특한 면모를 가끔 보여 마 백호는 흐뭇했다. 그 증거로 지금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무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들 수 있으리라.

 마 백호는 무정의 글 솜씨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것을 보고 무(武)가 아니라 문(文)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환경인데 군문(軍門)에서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란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무정이 무공을 배우는 것도 아는 그로서는 문에 집착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비록 한다고 하는 것들이 무슨 천축 유가술(踰跏術) 같은 양생법이었지만 엉터리 동작들이라도 유가술 쪽이라면 몸에 이로운 것들이었고 어디서 들었는지 호흡만큼은 안정되고 정확하게 익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별말이 없었던 것이다.

 마 백호는 자신의 가문에서 내려오는 도가(道家) 쪽의 무량심법(憮良心法)을 가르쳐 줄까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문의 비전을 함부로 남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생각하는 무정의 가능성은 무한했다. 그는 그저 어긋나지만 않게 도와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 백호의 시선이 돌려졌다. 어느새 창밖으로 이름 모를 꽃들이 보였다. 겨울이 가고 무정이 이곳에 온 지 이 년이 되는 어느 춘삼월의 밤이었다.

 

 ***

 

 “야차심해세(野叉深海勢)!”

 “햐얏!”

 “출신적격(出身敵擊)!”

 “타이앗!”

 우렁찬 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수백의 인원이 교두의 음성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총교두(摠敎頭) 하중경(下衆倞)은 대열의 후미에 시선을 고정했다. 웬만한 어른의 키만 한 소년이 하중경의 눈에 들어왔다.

 소년의 나이 십사 세. 그는 더 이상 허드렛일을 하지 않았고 이제 일반 병사와 마찬가지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의 창에서 유월의 햇살이 부서지며 현란한 눈부심이 찬연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본인의 의지가 저럴진대 어찌하겠나?”

 하중경은 무정을 향해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마 백호와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어릴 때부터 배워서 그런지 투로와 초식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실전과 훈련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중경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그시 무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무정이 내일부터 실전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마 백호는 그런 하중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이고는 입을 열었다.

 “물론 잘 알고 있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제 그를 여기서 머물게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어. 내 입장에서도 전투에 내보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게.”

 확실히 마 백호의 말처럼 이곳은 군문이지 보육 기관이 아니었다. 그는 군인 이외에는 허드렛일이나 하는 잡부들만이 있는 이곳에서 무정이 잡부로서 살아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 점은 무정도 마찬가지였다.

 “…….”

 하중경은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정이 측은한 것도 사실이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서당에 다니며 한창 또래와 어울려 놀러 다닐 나이에 무기를 들고 피를 봐야만 하다니……. 하중경의 눈에 측은함이 물씬 묻어났다.

 무정은 이미 강주백호소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장수로부터 일반병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마치 자신의 동생, 혹은 아들처럼 생각하며 저마다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중경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서 왠지 무정에게만은 전투의 참혹함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무정의 일과는 이제 오로지 무공 수련이었다.

 권법삼십이권(拳法三十二拳), 장창이십사세(長槍二十四勢), 협도(挾刀), 쌍수도(雙手刀), 쌍검(雙劍), 궁(弓), 비도(飛刀)와 암기술 등 군에서 지정하는 거의 모든 분야를 배우고 익혔다.

 초식과 투로는 이미 다 익힌 상태였다. 그것도 아주 지겨울 만큼…….

 그는 양생술도 제대로 다시 배웠다. 총교두 하중경이 오 년 전 부임한 후 그에게 올바른 호흡법과 습득로를 알려주었던 것인데 개인 시간이 된 지금 무정은 그것을 수련하고 있었다.

 “후욱!”

 “훅!”

 길고 짧은 호흡이 반복되며 기묘한 동작들을 취했다. 군의 양생술은 내공 수련을 목적으로 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장에 서기 전에 최대한 경직된 몸을 유연하게 만드는 동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나 무정은 그러한 목적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총교두가 가르치기에 전장에서 무척 중요한 것인 줄만 알고 맹목적으로 움직였다. 동물이 움직이는 동작들을 기본으로 한 양생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와 함께 그의 내부에서는 서서히 그 효과가 쌓여가고 있었다.

 무릇 한 동작에도 힘은 소요된다. 하지만 같은 동작이라도 동등한 힘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다.

 즉 팔만 사용할 때와 몸과 같이 움직일 때 그 힘은 같지만 타격력은 배가 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라 하겠다.

 무정이 하는 양생술은 그런 작은 힘으로 큰 효용을 내는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비록 축기는 못하지만 그 통로가 되는 근육과 핏줄이 강건해지고 뼈가 유연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하나 무정은 그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이젠 마음먹은 대로 몸을 양껏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마냥 즐거울 따름이었다.

 마 백호와의 글공부도 계속되었다. 천자문은 이미 몇 년 전에 다 숙지했다.

 같은 또래의 소년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빠른 성취였기에 마 백호는 이에 논어부터 한 단계씩 나아갈 것을 제의했지만 무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무비지(武備志), 육도삼략(六韜三略), 기효신서(紀效新書) 등을 읽기를 원했으니 마 백호는 그러한 무정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것들은 책략을 겸한 간단한 병법서임과 동시에 군문에서 사용되는 각종 무공들을 집대성한 일종의 필독서였는데 군문에서 살 생각이라서 그랬는지 지금 무정은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읽고 있었다.

 마 백호는 정독을 하고 있는 무정을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실전에 나서게 된다는 것을 눈앞의 덩치만 큰 소년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두려울 만도 할 텐데 내색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눈이 무정의 손발에 채워진 묵환에 머물렀다.

 꽤 오래전부터 무정은 한쪽에 두 관짜리, 도합 총 여덟 관의 철환(鐵丸)을 차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일반 병사와 같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이 천장을 향했다.

 지금 그가 무정에게 잘하고 있는지,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오직 그만이 알 것이다.

 

 ***

 

 “무정! 본진까지 길을 열어라! 일(一), 삼(三), 사십호대(四十戶隊)는 그 뒤를 따라 진격!”

 무정의 이름이 마 백호의 입에서 불리는 순간 방어 진영을 짜고 있던 용현천호소의 군졸들 뒤에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긴 머리에 구릿빛 동체, 육 척이 훌쩍 넘는 키에 보통 사람의 팔뚝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팔뚝에 팔 척에 가까운 미첨도(眉尖刀)를 들고 달리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압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휘리리리리링!

 한 사내가 전면으로 폭사되는 수많은 화살들을 작은 방패 하나만 들고 두려움 없이 달려갔다.

 섬전같이 진영을 빠져나간 그는 이윽고 빗발치는 화살비 속으로 빨리듯 사라졌다.

 텅! 터덩!

 화살이 그의 방패에 퉁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무정의 전신에 화살들이 스치고 간 생채기가 생겨났지만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닌 듯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패로 중요 부위만을 막으며 달렸다.

 마 백호는 어느새 십팔 세의 청년으로 변모한 무정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떨릴 만큼 무정의 신위는 놀라웠다.

 문득 그는 사 년 전 무정의 첫 출전 때를 생각했다.

 

 여진족은 강했다. 궁술도 기마술도 강하지만 무엇보다도 굽힐 줄 모르는 투지가 무서울 정도였다.

 삼십여 장 앞의 격전지를 바라보며 육 척의 장창을 꼭 쥔 무정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떨고 있었다.

 마 백호는 그런 무정을 보고 일순 후회했다. 아직 이런 일을 겪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하나 이미 전장에 나온 이상 어서 떨치고 정신을 차려야 무정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본진의 우측에서 적의 복병이 나타났다.

 기마를 타고 나타난 그들은 상당한 속도로 본진을 타격했고 이어 말과 사람, 그리고 적아(敵我)의 구분 없는 난전(亂戰)이 시작되었다.

 “크악!”

 “어흑! 이, 이런……! 커흑!”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무정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두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움직일 수도 없었고 두려움에 창을 든 손에서는 잔떨림이 그치지를 않았다.

 그런 그의 눈에 한 여진족 병사가 만도를 치켜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두 눈을 붉히고 자신을 향해 정면에서 달려오는 그를 보고 무정은 일단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무정은 움직이지 못했다. 입만 벌리고 턱을 떨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새 지척에 이른 여진족 병사는 이윽고 입가에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만도를 내려쳤다.

 무정의 눈에 희뿌연 도의 잔상이 자신의 미간을 향해 떨어지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까강!

 순간 청아한 한줄기 울림과 함께 만도가 무정의 머리 한 자 앞에서 멈추자 만도 아래로 하얗게 빛나는 장군검이 보였다.

 두 개의 검과 도가 부르르 떨리면서 힘겨루기를 시작하자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라라락!

 “타아아앗!”

 마 백호의 검이다. 어느 틈에 무정의 곁으로 다가온 마 백호는 일갈을 터뜨리면서 힘껏 검을 들어 올리더니 오른발로 여진 병사의 명치를 가격해 저만치 날려 버렸다.

 “정신 차려라, 무정! 몸을 움직여! 상현촌의 네 부모와 동생을 생각……!”

 고개를 돌릴 생각도 못하고 소리치던 마 백호는 자신을 적장으로 짐작한 여진족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서너 명의 병사가 마 백호를 둘러싸고 만도를 날려온 것이다.

 무정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마 백호의 말처럼 복수, 복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합리화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얼어붙은 그에게 돌아올 것은 죽음뿐이었다.

 그의 눈앞으로 한 여진족 병사의 등이 보였다. 그 병사는 마 백호를 향해 뒤에서 만도를 날리는 중이었는데 마 백호를 생각하자 무정의 창이 반사적으로 내질러졌다.

 푸욱!

 “캬아아악!”

 등을 조준한 그의 창은 엉뚱하게도 병사의 옆구리에 박혔다.

 손아귀를 통해 전해지는 기괴한 파육감(破肉感)에 하마터면 창을 놓칠 뻔했던 그는 이를 악물고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배운 대로 창대를 힘껏 돌렸다.

 우드득!

 “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여진 병사의 옆구리 살이 한 움큼 뜯겨 나가며 그의 몸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무정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창을 휘둘렀다. 마치 최면을 걸 듯이 그의 입은 끝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복수… 복수… 복수… 복수…….”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명군은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다.

 마 백호는 온몸에 피 칠을 한 채 복수라는 단어만을 되뇌이는 무정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바닥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무정의 몸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철수했다.

 주둔지로 돌아온 마 백호는 간단한 상처 치료를 마치고 무정이 마음에 걸려 그의 막사에 들렀지만 무정은 없었다.

 그는 막사에서 나와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쪽 막사 끝 어스름한 우물가에서 한 소년이 우물물을 몸에 끼얹고 있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는 무정이었다.

 아마도 심적 고통이 컸을 것이기에 마 백호는 위로의 한마디라도 해줄 생각으로 무정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소년은 더 이상 물을 뿌리지 않았다. 그는 우물가에 주저앉아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는데 아마도 울고 있는 듯했다.

 살인. 열네 살의 어린 소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당연한 이치였고 마 백호는 저렇게나마 하고 있는 무정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는 결국 몸을 돌려야만 했다. 그 누구도 소년을 도와줄 수 없다. 스스로 헤쳐 나와야만 하는 일이며 그것이 군이란 곳이고 무정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군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달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사 년이 지난 지금 마 백호의 눈에 무정이 막 적의 궁수대 안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방패를 집어 던지며 대형을 흐트러뜨린 그는 팔 척의 미첨도(眉尖刀)를 휘두르고 있었다.

 거의 일 장에 가까운 공간 안의 모든 것이 풀을 베듯 깨끗하게 잘려 나가더니 그 뒤로 명군이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정은 곳곳에 그런 공간을 만들며 한 마리의 야차(夜叉)처럼 적의 진영을 헤집고 다녔다.

 마 백호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무정은 이제 완전히 살인의 거부감을 떨쳐 냈다.

 그러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첫 출전 이후 꼬박 이틀을 앓아누운 그는 자리를 털자마자 매일같이 전장으로 나갔다.

 교대도 없이 근 사 년간을 전투가 없거나 정말 심하게 다치지 않은 이상 절대로 쉬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새 적의 진영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무정의 신형이 본진의 적장 근처까지 도달하자 그가 미첨도를 치켜들며 도약하는 모습이 보였다.

 착각이었을까? 그의 미첨도에 검은 기운이 서린 듯했다. 무정은 내려오면서 힘차게 도를 내려쳤다.

 “……!”

 마 백호는 눈을 크게 떴다. 뒤로 물러서던 적장의 머리가 두 쪽이 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분명히 무정의 미첨도는 적장의 몸에 닿지도 않았다.

 “도기(刀氣)… 도기인가?”

 스스로에게 반문하던 마 백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무정은 내공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몇 개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도 잘 아는 것이다.

 축기가 가능한 무공들이 아니었고 더구나 무정이 아는 무공은 내기보다는 외공 위주로 싸우는 것이었기에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제 전황이 급변했다. 적장이 죽자 적군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적기라고 판단한 마 백호는 총공격을 명했다. 이 전투도 명군의 승리가 될 것이다.

 문득 마 백호는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어느새 시월이었다. 곧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될 것이고 그럼 자신들도 좀 쉴 수 있을 것이다. 겨울에는 여진족도 전면전은 하지 않는다. 다만 약탈만은 간간히 계속되었던 것이 그간의 통례였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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