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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풍운검협전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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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의 은원을 어깨에 지고 강호에 번지는 음모와 혈풍에 맞서며
사랑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
가혹한 운명에 맞서는 주인공에게 시시각각 닥쳐오는 모진 시련이 펼쳐진다.

 
제 25 화
작성일 : 16-07-20 13:29     조회 : 420     추천 : 0     분량 : 9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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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때문에 이미 아미산이 한차례 풍파에 휩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어요.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되기를 바라는 건가요?”

 “천만에, 천만에.”

 광명존자가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나는 다만 그대가 있는 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속죄하고 싶었을 뿐이라오. 그 세월이 무려 오십 년이나 지났지. 매일매일 속죄하고, 매일매일 후회하는 삶을 살아왔단 말이오. 그런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거요?”

 “하―”

 소정 사태가 긴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노안에 짙은 어둠이 드리운 건 달 그림자 때문만이 아니다.

 “석 달 전에 당신의 제자가 이미 한차례 분란을 일으켰답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며 광명존자의 눈치를 본다. 존자는 묵묵히 침묵할 뿐,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로 막내의 화가 다시 폭발했어요. 길길이 날뛰는 걸 그동안 억지로 붙들어두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아이를 막을 수 없을 거예요.”

 “소령의 성미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변하지 않았으니 그런 사람도 드물지.”

 “당신은 그 아이를 탓할 자격이 없다는 걸 모르나요?”

 소정 사태는 칠십을 넘긴 소령 사태를 아이라고 불렀다.

 까마득한 과거의 일을 떠올린 때문인데, 광명존자 역시 그때의 우울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호칭을 아무렇지 않게 들었다.

 쏘아보듯 존자를 흘겨본 소정 사태가 다시 말했다.

 “그 아이가 당신의 존재를 알고서도 이 년 동안이나 참아준 건 대단한 거였어요.”

 “인정하오.”

 “그 아이 또한 마음속에 당신에 대한 한 가닥 연민이 있기 때문인데, 이제는 그렇지 않답니다.”

 “그래도 나는 떠나지 않겠소.”

 “계속 고집을 부릴 건가요?”

 “학정봉은 아미파와 멀리 떨어진 곳이라오. 아미산이 얼마나 크고 넓은 산이오? 설마 아미파의 비구니들이 그 산 모두를 독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당신, 그 말은…….”

 “학정봉에 사는 내가 가까워서 싫다고 한다면 천하 어디에 있더라도 가깝다고 할 것이오. 결국 죽어서 저승으로 떠나 버려야 비로소 멀리 갔다고 하겠지. 그렇다면 당신들 괴팍한 비구니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도록 하시오. 머지않아 그렇게 될 테니까.”

 광명존자의 말에 쓸쓸한 감정이 묻어났다. 그걸 느낀 소정 사태가 낮은 음성으로 거듭 불호를 중얼거렸다. 염주를 굴리는 손이 가늘게 떨린다.

 잠시 침묵했던 광명존자가 다시 말했다.

 “그놈은 반드시 아미산으로 찾아올 텐데, 그때까지는 내가 학정봉에 있는 게 낫지 않겠소?”

 “아미타불…….”

 존자의 말에 소정 사태가 큰 소리로 불호를 외웠다. 음성이 사뭇 떨려 나온다.

 “그때, 그놈을 확실히 죽여 없앴어야 했는데, 당신의 자비심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오십 년이 넘도록 늘 후환을 걱정하며 살아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나 또한 굳이 학정봉을 고집하며 구차하게 살아오지 않았을 것이오.”

 “아미타불…….”

 “그놈은 지금쯤 아미산 아래에 와 있을지도 모르지. 턱 밑에서 원한의 칼을 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놈의 이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은 벌써 죽어 저승으로 가 있는지도 몰라요.”

 “흥, 그놈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아.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그놈에게 한 가닥 연민지정을 품고 있는데, 다 쓸데없는 짓이오. 조금 더 솔직히 말해볼까?”

 “…….”

 “그대는 아미파의 분란이 나 때문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그대의 쓸데없는 자비심 때문이었소. 그걸 인정해야 하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대뿐만 아니라 소령, 그 깜찍한 것도 한몫을 했지. 내가 그놈을 죽이지 못하도록 끝까지 훼방 놓았으니까. 그 결과 나는 오십 년을 학정봉에 숨어 살아야 했고, 당신은 오십 년 동안이나 가슴속에 하고 싶은 말을 숨긴 채 복호사에 틀어박혀 살아야 했지. 소령은 또 어떻소? 듣자 하니 그 아이는 뇌음사에 죽은 듯 처박혀서 꼼짝하지 않는다던데? 그 세월 또한 오십 년이오. 그런데도 나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길 셈이오?”

 울분을 터뜨리듯 거침없이 쏟아내는 광명존자의 말에 소정 사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광명존자가 작심한 듯 말했다.

 “당신들 아미사소(峨眉四素)의 막내 소양은 또 어떻소?”

 “그만, 그만 하세요!”

 오래전에 죽은 걸로 알려진 소양의 이름을 광명존자에 의해 듣게 되자 소정 사태가 평정심을 잃고 소리쳤다.

 “다시는 그 아이의 이름을 꺼내지 마세요!”

 “흥! 솔직히 말해보시오. 그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당장 당신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속죄하리다.”

 “아, 도대체 이 질기고 질긴 악업은 얼마나 더 참고 견뎌야 끝난단 말인가…….”

 소정 사태의 한숨에 풍소애가 무너질 듯하다.

 한참 동안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중얼 진언을 외고 난 소정 사태가 겨우 마음을 안정시키고 말했다.

 “좋아요, 그건 당신과 나, 그리고 소령의 공동 책임이라고 해요. 당신의 고집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운몽은 멀리 떠나도록 하세요. 다시는 아미산 근처에도 얼씬거려서는 안 돼요.”

 “어째서?”

 “당신은 우리의 악업을 그 아이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건가요? 당신이 사랑하는 하나뿐인 제자에게?”

 “으음―”

 이번에는 광명존자가 깊은 탄식을 불어냈다. 소정 사태가 그런 존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타이르듯 말했다.

 “그 아이는 천성이 순박하고 온후한데, 당신을 닮아 고집이 센 게 탈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그동안 잘 가르치고 지도해서 나무랄 데가 없지요.”

 제자의 칭찬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 광명존자가 빙긋 웃었다.

 “그러나 단단히 소령의 눈 밖에 났으니, 이곳에 오래 있다가는 더 큰 봉변을 당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흥, 나는 소령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소. 지금이야 그 녀석을 죽이고 살리는 일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 년 뒤에도 그럴까?”

 “그 말은? 당신은 설마 이 년 뒤에는 운몽이 소령보다 뛰어나게 될 거라고 말하는 건가요?”

 “그렇소,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되고도 남지. 내기를 해도 좋소.”

 “아!”

 광명존자의 자신만만한 말에 소정 사태가 충격을 받고 움찔했다.

 아미소령의 존재는 아미파에서는 물론 강호에서도 그 비중이 무겁기 짝이 없다. 그런데 약관에 불과한 운몽이 이 년 뒤에는 그녀를 뛰어넘게 될 것이라니…….

 소정 사태는 광명존자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존자는 자신만만했다. 때문에 소정 사태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광명존자가 단언하듯 말했다.

 “이 년 뒤에는 그 녀석을 아미산에서 내려보내지. 그때까지는 그대가 양보해 주는 게 좋겠소.”

 존자의 고집이 어떤지는 젊었을 때부터 충분히 겪어 잘 알고 있는 소정 사태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나온다면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머뭇거리던 소정 사태가 한숨을 쉬고 마지못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약속을 해주세요.”

 “말해보시오.”

 “그동안 운몽이 절대로 절연암에 찾아와서는 안 되고, 아미파에 분란을 일으켜서도 안 돼요.”

 “알겠소. 약속하지.”

 “좋아요, 당신의 말을 믿겠어요.”

 소정 사태가 지그시 광명존자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머리 숙이고 그 자리를 떴다.

 밤바람에 잿빛 옷자락을 펄럭이며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광명존자는 언제까지고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녀의 모습이 우거진 송림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자 땅이 꺼져라고 탄식한다.

 “휴― 오십 년이라면 바위라도 갈고 갈아서 조약돌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련만 나와 그녀들 사이의 악연은 조금도 엷어지지 않았구나.”

 

 운몽은 사부가 저를 그렇게 다그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광명존자는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고 호되게 운몽을 가르쳤고, 그의 초식이 조금만 틀리거나 어색해도 정색을 하고 꾸짖었다.

 먹고 자는 일 외에 운몽은 오직 사부의 세 가지 절기를 수련하는 데에 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일 년이 지났을 때 광명존자는 그동안 쌓인 운몽의 내력을 촉발시켜 임독양맥을 뚫어주었다.

 그 일로 인해 운몽의 공력은 배는 더 증진되었으니, 이제는 광명존자가 그에게 십 초의 승부를 가려보자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나자 운몽의 눈에는 정기가 충만해지고, 안색 또한 밝게 빛났다.

 이 년 동안의 숨 돌릴 새 없는 수련 기간이 그를 확실히 그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광명존자는 날이 갈수록 마음속에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커져만 갔다. 운몽과 헤어져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십 년 동안이나 늘 곁에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떠나보내고 나면 홀로 허전해서 어찌 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더욱 한숨만 나온다.

 운몽이 과연 강호에 나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는 붙임성이 있고 성격이 밝으니 사람들을 잘 사귀고 사랑을 받을 거라고 믿었다.

 햇빛이 잔잔한 오월 어느 날 아침, 광명존자가 운몽을 불렀다.

 모처럼 오늘 하루 무공 수련을 쉬어도 된다는 사부의 말에 운몽은 잔뜩 들떠 있었다.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곧장 개울가로 내려가 볼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사부가 부른 것이다.

 사부에게로 가면서 운몽은, ‘이 노인네가 그새 마음이 변해서 오늘도 꼼짝 못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존자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 운몽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른 때와는 달리 사부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늘 부스스하던 머리마저 정갈하게 손질한 채 엄숙하고 근엄한 얼굴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어? 어디 가시려고요?”

 운몽이 어리둥절해서 묻자 광명존자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게 앉아라. 너에게 할 말이 있느니라.”

 운몽은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불안한 마음이 불쑥 들더니 걷잡을 수 없어진 것이다. 그가 눈치를 보며 사부와 마주 앉았다.

 핏덩일 때부터 제 손으로 오늘까지 키워온 사랑하는 제자를 바라보는 광명존자의 눈빛이 그윽하게 깊어졌다.

 “내가 너에게 다시 자유를 주었을 때 너는 제일 먼저 무엇을 했었지?”

 “예?”

 “너는 그 즉시 도관을 나가 곧장 절연암으로 갔더구나.”

 이 년 전 운지를 찾아갔던 때를 말하는 것이다. 운몽은 사부의 의중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갑자기 그때의 일을 들먹이는 건지…….

 “떠나거라.”

 “예?”

 “절연암 따위에 연연해하지 말고 이제는 더 넓은 세상을 보란 말이다. 세상에 비하면 아미산은 좁아서 쌀뒤주만 하다. 하물며 그 속에 있는 낡아빠진 절연암이야 더 말할 게 있으랴. 너는 좁쌀만 한 그것에 집착하고 싶으냐?”

 “사부님, 제가 어찌 절연암에 집착해서 그러겠습니까? 다만 그 안에 갇혀 있는…….”

 운몽이 반박하려 하자 광명존자가 손을 쌀쌀 내둘렀다.

 “안다, 알아. 네 마음이 어떤지 다 아느니라. 하지만 내 말뜻을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예?”

 “좁쌀만 한 절연암 속에 네 마음마저 가두어 버리지 말란 말이다. 그곳에 갇혀 있는 건 작은 비구니 한 명으로 족하다. 너는 넓은 세상에 나가 큰일을 해야만 한다. 대저, 정을 끊지 못하는 사내 치고 큰일을 한 자가 없느니라. 그 말은 곧, 대장부의 웅지를 시들게 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여자라는 것이야. 모름지기 사내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매정하고 무정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느니라.”

 “사부님?”

 “이제부터 너의 세상은 좁아터진 이 아미산이 아니다.”

 “사부님!”

 “시끄럽다! 사부가 말하면 공손히 듣고 따르면 되는 거야! 버릇없이 굴지 마라.”

 버럭 소리쳐 운몽의 입을 막은 광명존자가 마구 다그쳤다. 운몽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너는 강호에 나가 웅지를 한껏 펼치고, 영웅호한으로서의 아름다운 이름을 얻고 싶지 않느냐? 너는 구름을 깔고 우뚝 선 저 학정봉처럼 오만하고 도도하게 강호의 복판에 홀로 서서 뭇 고수들을 내려다보며 껄껄 웃어주고 싶지 않느냐? 너는 호협한 기상을 한껏 떨치며 군마(群魔)들을 네 발아래 엎드리게 하고 싶지 않느냐? 너는 너의 검 한 자루로 종횡천하고 싶지 않느냐? 그 쓸쓸하고 고독한 행로가 장차 영웅지로로 불리기를 원치 않느냐?”

 “원합니다!”

 대웅심(大雄心)을 한껏 고양시키는 사부의 말에 어느덧 동화된 운몽이 버럭 소리쳐 대답했다.

 그는 스무 살의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내가 된 것이다. 그런 운몽에게 사부의 말은 호연지기를 불러일으키고 영웅심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사랑을 다투는 건 작은 일이고 영웅의 기개를 높이는 건 큰일이다. 어리석은 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작은 일을 위해 대장부의 큰 뜻을 버리랴.”

 운몽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 눈에서 불길이 토해질 듯하다.

 이때라는 듯, 광명존자가 더 급하게 다그쳤다.

 “사부에게 약속해라. 강호에 내딛는 첫 걸음을 고작 절연암으로 향하게 하지 않겠다고.”

 “그건…….”

 머뭇거리는 운몽의 가슴에 꽂아버리려는 듯 광명존자가 품 안에서 둘둘 말려 있는 작은 깃발 한 개를 꺼냈다.

 그동안 사부 슬하에 있었으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운몽이 의아해서 바라보는데, 광명존자가 그것을 활짝 펼쳤다.

 한 뼘쯤 되는 깃대에 손바닥만 한 작은 깃발이 달려 있었다. 온통 피처럼 붉은색이라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깃발 주위에 금사(金絲)로 알 수 없는 문양을 빙 둘러 수놓았는데,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 보면 그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고대 문자 같기도 했으며, 또 어딘가를 표시한 지도 같기도 했다.

 그 복판에 검은색의 수인(手印)이 박혀 있었다. 왼 손바닥을 활짝 펴서 찍어놓은 것인데, 특이하게도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새끼손가락 곁에 또 하나의 작은 손가락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손금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새겨진 수인이라 단번에 머릿속에 박혔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잘 봐두어라.”

 “이미 똑똑히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지요? 어째서 저는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요?”

 “혈사기(血師旗)라는 것이다.”

 “혈사기?”

 “강호에 나가 네가 찾아야 할 것이기도 하니 다시 똑똑히 보아두어라.”

 운몽은 사부가 갑자기 정색을 한 것도 이상하지만, 사부의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너에게 네가 반드시 해야 할 한 가지 일을 맡기려고 한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거야.”

 “…….”

 “너는 한 사람을 찾아 죽여야 한다. 오 년 안에 그 일을 해내야만 해. 그렇지 못하면 세상이 피로 뒤덮이고, 아미산이 모두 불타 버릴 것이다. 절연암에 미련을 두고 미적거리는 일보다 그 일이 더 크지 않으냐?”

 “아!”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말이라 운몽이 놀란 외침을 터뜨렸다.

 그에게 세상은 생소한 곳이기만 하고, 조금의 정도 깃들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이 피로 뒤덮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담담했는데, 아미산이 모두 불타 버린다는 말에는 깜짝 놀라고 몸서리가 처졌다.

 게다가 누구를 죽인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 아니던가. 사부가 그 말을 했다는 것조차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사부가 저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명했단 말인가? 하고 제 귀를 의심한다.

 “대체,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깃발의 주인은 혈영자(血影子)라고 하는 자다.”

 “혈영자…….”

 운몽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핏빛 그림자라는 이름이니 듣기만 해도 끔찍해서 소름이 돋는다.

 세상에 하고많은 이름 중에서 지을 게 없어 그따위 섬뜩하고 징그러운 이름을 지어 갖는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름을 지어 가진 자는 악귀나 나찰일 게 틀림없다.

 “명심해라. 너는 오 년 안에 반드시 그자를 찾아야 한다. 세상은 바다처럼 넓고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많으니 지금부터 서두른다고 해도 과연 기한 안에 그자를 찾을 수 있을지…….”

 광명존자가 말끝을 흐렸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존자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그자를 마지막으로 본 곳이 숭산(崇山)의 소림사(少林寺)였느니라. 벌써 오십 년 전의 일이구나.”

 광명존자는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지만 운몽에게는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이었다.

 “그놈은 나보다 다섯 살이 아래였으니 지금쯤 칠십을 넘긴 늙은이가 되었겠지. 하, 세월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는데,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그처럼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여 지독한 원한을 품어야 한단 말인가.”

 존자의 말에 비감이 어렸다. 운몽은 사부가 혈영자를 말하는 건지, 자기 자신을 두고 말하는 건지 언뜻 판단할 수 없었다.

 한번 깃발을 펄럭여 보인 존자가 그것을 둘둘 말아 다시 품속에 소중히 간직했다.

 “가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사부님!”

 운몽이 놀랍고 믿어지지 않아 소리치지만 아예 눈마저 감아버렸다. 그대로 바윗덩이가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을 태세였다.

 운몽은 울면서 사부 앞에 엎드려 밤이 될 때까지 애원했다. 하지만 한번 감긴 광명존자의 눈은 영영 떠지지 않았고, 한번 다물어진 그 입은 영영 열리지 않았다.

 새벽이 되었다.

 운몽은 이제 제가 떠나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사부의 마음을 되돌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가슴이 미어지고, 걱정과 안타까움과 두려움으로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하지만 사부의 눈과 입은 여전히 닫혀 있기만 했다.

 “옥체 보중하십시오.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의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오 년 안에 혈영자를 찾아내 그를, 그를…….”

 차마 제 입으로 죽이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한동안 미적거리며 우물쭈물하자 광명자가 여전히 눈을 굳게 감은 채 입술만 달싹여서 말했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가 대신 죽게 될 것이고, 아미산은 불타 없어져 버릴 것이다.”

 “아!”

 운몽은 낙심과 두려움과 놀람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소림사에 가서 혜원 선사(慧元禪師)를 찾아라. 그가 불법무변(佛法無變)이라고 하거든 너는 ‘돌중의 웃기는 개소리’라고 하거라. 그러면 그가 한 가지 물건을 내줄 텐데, 그 이후로는 네 몸인 것처럼, 네 목숨인 것처럼 잘 간직해야 하느니라. 이게 끝이다.”

 다시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린다. 말하는 동안에도 눈은 한 번도 뜨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릴까 봐서이고, 떠나는 그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인 것이다.

 운몽은 사부가 이별하는 순간에도 엉뚱한 소리로 저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 중에 한 가닥 얄밉다는 생각도 자리한다.

 “제자는 사부님의 명을 받고 이제 산을 떠납니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제때에 꼭꼭 식사를 챙겨 드시고, 잠도 푹 주무십시오. 혹시라도 제자에 대한 걱정이나 그리움 때문에 입맛이 없다거나 밤잠을 설친다거나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에 영영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광명존자의 입술이 다시 슬그머니 열렸다.

 “그럴 일 없다.”

 운몽이 빙긋 웃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웃 마을에 심부름이라도 가는 아이처럼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일어선다.

 그래야 사부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으실 것이고, 저 또한 이 슬픔과 안타까움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운몽은 태연한 척,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열 걸음도 가지 못하고 다시 달려와 사부의 무릎을 안고 매달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몽이 반정도관을 나가지만 광명존자는 끝내 눈을 떠서 바라보지 않았다.

 눈을 꼭 감고 있는 늙은 사부의 가슴속에 콸콸 흐르는 눈물의 강물소리를 운몽은 마음으로 절실히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십 년 동안 수도 없이 넘나들었던 반정도관의 문턱을 차마 넘지 못하고 망설인다.

 뒤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떠나는 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굳게 눈을 감고 있는 사부를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이고, 만약 사부가 눈을 떠서 저를 보고 있다면 그 눈길과 마주친 순간 다시 달려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던 운몽이 입술을 악물고 기어이 반정도관의 문턱을 넘어섰다.

 과연 오 년 안에 혈영자라는 사람을 찾아내 그를 죽이고 돌아올 수 있을지, 하는 걱정보다 과연 그동안 사부님이 홀로 어찌 살아가실까, 하는 걱정이 눈물이 되어 그의 눈앞을 뿌옇게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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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 17 화 2016 / 7 / 20 638 0 6590   
16 제 16 화 2016 / 7 / 20 462 0 6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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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 14 화 2016 / 7 / 20 471 0 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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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12 화 2016 / 7 / 20 483 0 5770   
11 제 11 화 2016 / 7 / 20 438 0 5982   
10 제 10 화 2016 / 7 / 14 428 0 5577   
9 제 9 화 2016 / 7 / 14 469 0 6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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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 3 화 2016 / 7 / 14 452 0 5422   
2 제 2 화 2016 / 7 / 14 514 0 5717   
1 제 1 화 2016 / 7 / 14 715 0 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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