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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여배우 월화의 생애
작가 : 한계령
작품등록일 : 2016.9.18

조선 최초 스크린의 여배우인 이월화의 일생 입니다.
척박한 조선 연극계와 영화계을 거치며 질곡의 삶을 산 그녀의 비극적인 생을 조감 합니다.

 
제4장 여배우의 삶 (27)채전
작성일 : 17-01-19 12:46     조회 : 421     추천 : 0     분량 : 9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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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채전

 

 

 ‘탕! 탕!’

 

  어둠속에 총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요란한 호각소리와 함께 무질서한 군화의 발자국 소리가 주변에 가득했다. 분명 담 너머 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분명 했다.

 

 그런 총소리와는 무관하게 이곳 요정 명월관의 특실은 지금 기녀들의 장구소리와 함께 음무가무에 흥청이고 있다.

 

  오늘도 친일파들과 그 하수인들이 고객이다. 이들의 의상은 하오리의 일본격식이다. 이런 차림으로 남촌에 성업 중인 일본 요정에서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들이나 상대 할 것이지 뭐 하러 조선 요정을 찾는단 말인가?

 

  특히 장구가락으로 서투른 일본민요를 부르는 꼴이란 영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월화는 심사가 틀린 다기 보다 이들이 연거푸 건네는 술잔을 피해 조용히 방을 빠져 나왔다.

 

  이때 총소리가 다시 들려오며 밖은 더욱 소란스러워 졌다.

 

  “무슨 일이지?”

 

  여기서는 총독부도 가까고 종로 경찰서도 근척이나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일까?

 

  벌써 정원에는 이방 저 방에서 뛰쳐나온 주객들과 기녀들이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요정 밖을 주시하며 서성대고 있고 어떤 주객은 놀라 대문을 빠져 나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꽁지 빠진 닭이 도망치는 꼴이었다.

 

  월화도 더 이상 명월관에 있을 필요를 못 느끼고 예약이 되어 있는 황금관으로 가야겠다고 요정을 빠져 나와 대기한 인력거에 올랐다. 이미 거리는 무장한 일본 경찰들로 가득했고 누구를 찾는 듯 골목길과 이집 저집의 문을 뚜드리고 있었다.

 

  월화가 탄 인력거도 검문을 받아야 했고 혹시 인력거 안에 누군가가 타고 있는지 철저하게 검색을 받았다.

 

  그렇게 경찰의 검문을 피해 한참을 달리는데 돌연 인력거가 휘청하며 비틀거렸다. 인력거에 몸을 실은 월화도 따라 몸이 휘청 이며 겨우 인력거의 손잡이를 잡으며 놀라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인력거가 멈춰서며 인력거꾼의 놀란 듯 한 소리가 들려 왔다.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뎁쇼.”

 

  월화가 휘장을 들치고 보니 길가에 마치 죽은 개가 방치되어 있듯 어떤 검은 물체가 쓰러진 체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처음엔 그 물체에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자세히 보니 사람 이 틀림없었다.

 

  “아씨! 어떻게 할갑쇼?"

 

  월화는 급히 인력거에서 내렸다. 그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서니 여자였다. 그 여자는 어깨에 선명한 총탄 자국과 함께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리는 뎁쇼”

 

 월화는 망설일 게 없었다. 그 여자는 인기척을 느끼고 강한 경계를 해 왔다. 고개를 돌려 상대를 쏘아 보았다. 어둠속이나마 그 여자의 얼굴이 노출되었다.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월화는 소스라치듯 소리 쳤다.

 

  “채..전아!”

 

  바로 부산 키네마 사에서 제작한 <해의 비곡>에서 함께 출연한 여배우 이채전 이었다. 그녀와 잠시 생활했던 부산이 월화의 잔상에 잠시 떠올랐다. 그러나 채전은 반은 정신이 나간 듯 한 얼굴로 월화를 보더니 힘들게 입은 연다.

 

  “언..니! 월화 언니..”

 

  겨우 월화를 알아본 모양이다. 그러더니ㅣ이내 안심이라도 한 듯 힘든 눈을 감아 버리며 실신을 해 버리고 만다.

 

  지켜보던 인력거꾼이 묻는다.

 

 “아시는 분이십니까? ”

 

 이때 어둠 저편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월화는 망서릴 겨를이 없다.

 

 “어서 인력거에 태워요.”

 

  월화가 지시하자 인력거꾼은 인지상정이라는 듯 채전을 안아 일으켜 인력거에 태웠다. 월화가 따라 인력거에 오르며 급하게 말한다.

 

  “어서 병원으로 가요.”

 

  “병원은 위험 한뎁쇼”

 

  “그럼 어디로 간 단 말이에요?”

 

  “제가 잘 아는 한약방이 있는데 그리고 가면 어떨까요?’

 

  “믿을 만 한데에요?”

 

  “제 종형님이 하는 약방입니다. 그 형님도 워낙 인정이 많으셔서 작은 생명 하나 서투로 대하지 않으시지요.”

 

 월화가 생각해 보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우선 생명을 살리는 게 우선이 아닌가?.

 

  ‘그곳이 어딘데요?’

 

  “여기서 가까운 사동입니다.”

 

  사동이라면 탑골공원 근처이고 여기서 그리 멀지가 않다

 

  “큰길로 안가고 좀 돌지만 골목을 이용하면 검문도 피할 수 있을 겝니다.”

 

  “그럼 그리로 가요.”

 

  월화가 승낙하자 인력거꾼은 힘차게 인력거를 몰았다.

 

  채전이 깨어난 것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사동에 있는 한약방은 박주부라는 육십 대 노인이 운영하는 작은 초가집 이었다.

 안채는 살림집이고 문가에 사랑방이 약방인데 약초 냄새가 가득했다.

 

  채전은 다행히 어깨에 맞는 총탄이 스쳐 지나가 총알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상처가 심해 환부가 부어올랐다. 박주부는 이런 저런 약초로 처방하자 신통하게 채전은 상처가 좀 나아진 모양이다.

 

  약국 옆 빈방으로 자리보전을 한 채전은 박주부의 아내가 끓여 온 녹두죽을 한 그릇 먹고는 이제 살았다는 듯 입을 연다.

 

  “언니가 내 목숨을 살려 주다니…….이렇게 언니를 만날 줄 몰랐어요.”

 

 하며 해맑게 웃는다.

 

  “너 어찌 된 거야? 부산에서는 언제 올라 왔어?”

 

  “언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채전도 월화와 약 일 년 간 부산에서 함께 생활하며 정을 많이 주었나 보다. 월화 역시도 얼마나 채전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채전아! 이 무심한 것 편지라도 한통 해주면 어디가 덧나니?”

 

  “그런 언니는 그동안 뭐 했수?”

 

 이제는 농담까지 하는 채전이다.

 

  그동안, 부산에 홀로 남은 채전은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월화가 경성으로 떠날 때 함게 갔어야 하는데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에 조역으로 출연 하느라 남게 되었다. 그러나 출연보다 이경손이 윤감독의 조감독을 하게 되자 그의 곁에 있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결국 <운영전>이 흥행에 실패하자 윤감독과 모든 조선인 스태프들과 안종화까지고 모두 상경하고 만다.

 

 그러나 채전은 부산에 남았다. 다시 차기작인 <암광>의 메가폰을 잡은 왕필렬 감독이 채전에게 주연 여배우 역활을 주었기 대문이다. 어느 배우든 배우에겐 주인공이라는 로망이 있다. 더욱이 여배우의 경우는 더 간절하다. 그동안 주연배우의 그늘에 가려 재대로 역활을 못하던 채전에게도 오기 같은게 생겨나 털컥 주연을 맡게 되고 정든 사람들과도 결별하게 된다. 특히 이경손과의 이별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그동안 응답없는 짝사랑을 청산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아팠지만 어쩔수가 없다.

 

  그러나 채전에게 주인공 역활을 준 왕감독은 은근히 채전을 짝사랑 하고 있었다. 왕필렬은 일본인 치고는 그 사람됨이 꽤 무던한 사람이었으며 승려다운 품위와 문학사로써의 지식과 교양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채전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날 한 잔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고 만 것이다. 채전은 영화사 내에 한 방을 얻어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날 늦은 밤, 괘종시계 소리에 채전은 어렴프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 방문 앞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이텐(採田) 상! 사이탠 상!”

 

  문을 뚜드리며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채전은 곧 그가 왕감독 이라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자신은 여배우고 그는 하늘 보다 높은 감독이었다. 마땅히 뾰족한 수도 없이 문을 열어 주고 만다.

 

  “감독님이 웬일이세요? 이 밤중에..”

 

 정중했으나 겁을 먹은 표정이 역역했다.

 

  “당신을 사랑해 왔습니다.”

 

 왕필렬의 말이었다. 채전은 너무도 황당하고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볼 뿐이다.

 

  “사랑은 죄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왕필렬은 이불을 감고 앉아 있는 채전에게 다가섰다. 그러더니 대짜로 이불을 재치고 채전에게 달려들었다.

 

  “이러지 마세요.”

 

 채전은 거세게 반항 했으나 역부족 이었다. 왕필렬은 거의 이성을 잃은 듯 했다. 채전은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이때, 영화사 식당에 일하는 주방장이 이 앞을 지나다가 안에서 심상치 않은 남녀의 소리가 들려오자

 

  “채전 씨! 웬일이세요? 무슨 일 있습니까?”

 

 방문 앞에 다가와 물었다. 곧 방안은 곧 잠잠해 졌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가서 일 보세요.”

 

  태연한 채전의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숨이 찬 듯 당황한 목소리가 분명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기도 한데? 아무 일도 아니라니? 혼자인 여자의 방에서 남자의 소리를 분명 들려왔다?

 

  주방장은 그대로 어둠속에 숨어 지켜보기로 했다. 방안에서는 왕필렬과 채전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 대치한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이런 사실이 발각되면 감독님이나 나나 웃음꺼리가 되 버 려요.”

 

 

  채전은 사정한다. 그제야 이성을 찾은 왕필렬도 더 이상의 행동을 자재한다.

 

 

  “미안하오.내가 술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겸연쩍게 웃으며 왕필렬은 채전의 방을 허둥지둥 나섰다.

 

 

  “아니.. 왕감독이?”

 

  주방장도 놀랬다.

 

  “자..자네는?”

 

  동시에 주방장과 얼굴이 마주 친 왕감독도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방안에 있던 채전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등줄기에 흐른 땀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도 안심 할 수 없다는 듯 문을 굳게 잠그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꼬빡 새운다.

 

  며칠 후, 입 가벼운 주방장에 의해 이 소문은 영화사 내로 퍼져 나간다.

 

 

  “고자! 그 작자가 채전의 방에 뛰어 들었다네.”

 

  “허... 그럼 고자가 아니었담 말인가?”

 

 고좌(高佐)란 왕 감독의 본명인 다카사의 한자이고 고좌가 고자라는 별명이 된 것이다. 이제 채전은 챙피해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결국 조선키네마 사는 마지막 작품 <촌의 영웅>을 만들고 적자운영으로 도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뿔뿔이 헤어진다. 왕필렬은 다시 자신의 절인 남천사로 돌아가 승려가 되고 나데도 다시 총포상을 운영하는 과거로 돌아간다.

 

  채전도 다시 경성으로 돌아 왔다. 그동안 경성에서는 이경손이 <심청전>으로 감독이 되어 있었다. 그런 이경손에게 찾아가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 순 없었다 . 어런 저런 신파극단을 따라다니며 육체도 정신도 혹사 시켰다. .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동지인 박 선생을 우연히 만났다 박 선생은 아버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제 밤, 총성과 함께 채전이 왜놈경찰에 추적을 당하게 된 것도 박선생의 지령을 받아 독립군의 군자금을 전달 받기 위해 가던 중에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게 된 것이다. 채전은 위기를 느끼자 급하게 손에 쥔 뭔가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접선자를 만나기 위한 비표다. 그러나 채전이 입을 우물거리자 경찰은 수상하게 느끼고 강제로 채전의 입을 벌려 비표를 꺼내려 했지만 벌써 비표는 목을 넘어가 버렸다.

 

  이런 사태에 중대함을 느낀 경찰은 채전을 종로서로 연행하려 하였지만 요행 그녀을 보호하기 위해 뒤를 따라 오던 동지 한 사람이 권총을 꺼내 경찰을 향해 발사하고 그 혼란한 사이 채전은 도망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경찰의 총에 의해 그 동지는 그 자리에서 사살되고 만다.

 

  이런 이야기를 채전으로부터 전해들은 월화는 입술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채전은 마치 활동사진 활극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를 끝내더니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방안을 문밖을 경계 하더니 각오한 얼굴로 말한다.

 

  “언니! 언니한테 부탁이 있어.”

 

  “무..무슨 부탁?”

 

  “나 대신 접선자를 만나 줘.”

 

  ‘뭐라고?“

 

  “급해! 그 접선자를 만나 군자금을 받아 박선생님에게 전달 해 줘야해. 그 군자금은 만주에서 고생하는 독립군들의 활동비가될 거야.”

 

  “그 그 위험한 일을 나보고 하라고?‘

 

  “시간이 없어. 그 군자금을 가지고 박 선생님이 내일 밤 봉천 행 야간열차를 타셔야 해.”

 

  “나.. 난 못해!”

 

 월화는 이제 입술은 물론 이빨까지 덜덜 떨린다. 그러더니 원망 스럽게 채전을 쏘아보며

 

  “이건 물에 빠진 거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로라하는 거 보다 더 잔악하구나. 나는 독립이 뭔지 해방이 뭔지 그런 거 전혀 모른다. 그런 명제들은 나에게는 너무도 크고 광대해. 물론 나도 조선인이 분명 하지만 그런 큰일들은 보통 담력이 큰 투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냐?”

 

 “언니! 투사는 결코 강한 사람 마니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누구나 투사가 될 수 있어.”

 

  채전은 더욱 강하게 월화를 몰아친다. 그러나 더욱 기가 죽은 월화는 이내 자격지심의 얼굴이 되어 입을 연다.

 

  “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니? 나는 지금은 꿈도.. 명예도 다 버린 채 껍데기만 남아 헛웃음을 파는 기생이란 걸 너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알고 있어! 언니가 생활고로 기생이 되었다는 소문은 이미 잡지 와 신문기사에도 다 도배가 되었으니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지.”

 

  “그런데도 네가 그런 부탁을 나한테 할 수 있는 거야?‘

 

 월화는 너무도 서운한 듯 이제는 눈가에 이슬까지 매친다.

 

  “미안해! 그러나 이건 낮선 만주 땅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의 생사 가 걸린 문제야. 당장 그들에겐 식량이 절실하고 추위를 녹일 의복이 필요해. 물론 무기와 탄약을 사는데도 그 돈이 요긴하게 쓰일 거야.“

 

  결국, 월화는 채전의 간절하고 단호한 청을 거절 못하고 승낙을 하고 만다. 월화는 인력거를 불러 타고 그 장소로 향했다. 채전이 만나라는 접선자는 예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나 가는 길에 여러번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월화는 곧 바로 인왕산 근처의 한 무당집을 찾았다. 인력거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가니 무당은 늙은 노파였다.

 

  이런 쭈그렁 노파가 접선자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채전이 말한 누구나 투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노파는 월화가 신당으로 들어서자 슬그머니 지청구를 놓는다.

 

  “아이고 박복도 해라. 평생 노류장화 신세를 못 면하겠군.”

 

  요란하게 혀를 차며 월화의 얼굴을 뜯어본다. 월화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기생팔자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감옥 가는 일이나 없었으면 좋겠수?”

 

  “팔자에 관제수는 없는 것 같은데?"

 

  “그 말 믿읋 수 있는거죠?”

 

  “우리 인왕산 산신님이 워낙 영험 하시거든.”

 

 무당은 능청을 떨 듯 등 뒤 산신도에 그려진 호랑이를 가리킨다.

 

  “시간이 없어요! 물건을 내 주세요.”

 

  “물건? 그녁을 어찌 믿고..”

 

  “여기 비표!”

 

  월화는 들고 온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 건넨다. 그것은 반쪽짜리 엽전이었다. 그 엽전은 채전이 변소에서 용을 쓰며 꺼내 논 것으로 물로 여러 번 닦아 가져 온 것이다.

 

 그 엽전을 보자 노파도 허리춤에 매단 역시 반쪽의 엽전을 꺼내 맞춰 보더니 안심 한 듯 말한다.

 

  “어제 총소리가 심하게 들려서 접선이 끊길 줄 알았는데 용케도 오셨구료.”

 

  “당자는 총상으로 움직일 수 없어 대신 온 겁니다.”

 

  무당은 믿는다는 얼굴로 제단 밑에서 불룩한 전대를 꺼내 건네주며

 

  “어혀 풍찬노숙 춥고 배고픈 중생들에게 전해 주시오.”

 

 하며 빨리 가라며 손을 훼훼 내 졌는다.

 

 월화는 전대를 받아 치마를 들치고 허리춤에 제법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지전이 분명 할 진데 이 정도의 돈이라면 거액이라 할 수 있다. 월화는 짧게 눈인사를 끝내고 무당집을 나섰다.

 이제 채전이 말한 박선생 이라는 사람에게 이 전대를 전해 주기 위해 제2의 접선장소로 가야 한다.

 

  그 장소는 남산공원이다. 일제는 남산위에 신궁을 지어 놓고 조선의 역사를 말살하며 이제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내선일체 정책을 꽤하고 있다. 그렇듯 여기 저기 강제로 동원된 주민들과 학생들이 신궁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 신궁을 오르는 27번째 계단에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카메라에 물통을 옆에 찬 모습이 그 어느 참배객과 다른 바 없다.

 

  월화가 계단을 올라서며 그 남자의 앞에 다가서며 다리가 삐끗하며 넘어 지려 하자 남자는 얼른 월화를 부축하며 일으키고 치마 속 허리에 찬 전대를 만지더니 이내 안도의 표정이 되나 역시 주위를 둘러보는 눈초리는 매섭다.

 

  월화가 눈짓으로 끄떡이자 남자는 슬그머니 계단을 올라 남산의 숲속으로 향했다. 월화는 마치 속죄양처럼 그런 남자를 뒤 따른다.

 

  두 사람은 한적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이제 남산도 소나무는 많이 배어 지고 벚꽃들이 심겨져 있다.

  주위에 몇 몇 사람들이 지나쳤지만 이 두 사람을 한량과 기생의 밀회 정도로 여기고 지들이 먼저 얼굴이 붉어져 외면하며 가 버린다.

 

  월화가 커다란 소나무를 은폐삼아 서머 남자에게 묻는다.

 

  “박 선생님 이세요?"

 

  “그렇소 ! 나 박가외다.”

 

  남자는 자신의 성씨만을 밝힐 뿐 더 이상 자기소개를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 박 씨라는 성도 가성일지도 모른다. 월화는 이제 묻고 따지고 싶지도 않고 치마 속에 손을 넣어 전대를 풀러 남자에게 건네준다. 남자는 당연히 자기 물건처럼 전대를 받아 허리에 차더니 비로소 묻는다.

 

  "이사벨을 어찌 되었소. 총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다는데?'

 

  "이사벨이 누구에요?"

 

  "아! 한때 배우를 하며 이름을 채전이라 불렀다던데?"

 

  "그럼 채전이.. 이..사벨이에요?"

 

  "그녀의 세례명이요. 그녀는 한 때 보통학교 여교사를 지낸 적도 있다오."

 

  채전에게 그런 전적을 가졌을지 몰랐다. 그저 순진하고 감수성 많은 새내기 여배우라고 만 생각 했는데..

 

  "이사벨이든 채전이든 이제 그녀를 어찌 할거에요?"

 

  "어찌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더 이상 독립이니 해방이니 하며 그 애를 위험에 빠트릴 수 없어요. 그 애는 내겐 그저 순수하고 착한 여동생 일 뿐이에요. 이제 부터는 내가 그 애를 지킬거에요. 여교사를 하겠다면 시키고 배우를 하겠다면 밀어 줄거에요."

 

  남자는 그런 월화의 말에 동요를 받은 듯 잠시 머뭇하더니

 

  "난 어차피 이제 만주로 들어가면 당분간은 조선엔 나오지 않을 작정이요.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이사벨은 내 세포에서 떠난 거요. 나 역시도 그녀에게 지령을 내리며 무척 마음이 아팠다오."

 

  남자 역시 그렇게 채전을 생각하는 듯 싶다.

 

  '하여간 수고 하셨소. 언젠가 되찾을 조국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짧게 경의를 표하더니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월화는 남자가 사라지자 그제야 등줄기에 흔건한 땀이 배어 있는 것을 느꼈다. 숲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와 광장에 오니 타고 온 인력거가 대기하고 있다. 인력거에 오르며 조금은 마음이 뿌듯했고 마치 채증이 내려 간 듯 하다. 월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피의 한민족인가 보다.'

 

 입가에 만족과 통쾌한 미소가 떠올랐다. 급히 채전이 있는 한약방으로 향했다.

 

  '이제 그 애를 내 동생으로 삼을 거야. 그래서 나의 못다 한 꿈을 그녀로 하여금 이루게 해야지."

 

  그러나 막상 한약방에 도착하니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주부가 한 장의 편지를 월화에게 내밀며

 

 "방금 떠났다오. 몸을 좀 더 추스르면 만주로 간다고 하더이다."

 

 월화는 급하게 편지를 펼쳤다. 채전의 다감한 목소리가 환상처럼 들려왔다.

 

  '언니! 고마워! 또 언니에게 도움을 받았네. 나 헤어져 있어도 늘 언니에게 감사하며 살게. 언니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월화는 더 이상 편지를 읽지 않았다. 왈칵 편지를 꾸기며 눈가에 눈물이 메쳤다.

 

  "나쁜 계집애!"

 

 그렇게 중얼 거렸다. 이후 월화는 물론, 그 누구도 채전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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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4장 여배우의 삶 (24)구원 2016 / 10 / 16 641 0 8633   
23 제3장 여배우의 길(23)야래향 2016 / 9 / 30 564 0 7833   
22 제3장/여배우의 길(22) 치파오 2016 / 9 / 29 536 0 5251   
21 제3장/여배우의 길(21) 상하이 2016 / 9 / 29 465 0 7247   
20 제3장 여배우의 길 (20)카츄사 2016 / 9 / 28 415 0 7449   
19 제3장 여배우의 길 (19)재회 2016 / 9 / 28 564 0 9669   
18 제3장 여배우의 길 (18)해의 비곡 2016 / 9 / 27 501 0 12362   
17 제3장 여배우의 길 (17)은막 2016 / 9 / 27 416 0 3843   
16 제2장 여배우의 적 (16) 유리 2016 / 9 / 26 424 0 4716   
15 제2장 여배우의 적 (15)막는 오르고 2016 / 9 / 26 442 0 5538   
14 제2장 여배우의 적 (14)부활 2016 / 9 / 25 464 0 4786   
13 제2장 여배우의 적 (13)토월회 2016 / 9 / 25 685 0 6103   
12 제2장 여배우의 적 (12) 절벽 2016 / 9 / 24 531 0 5033   
11 제2장 여배우의 적 (11) 시사회 2016 / 9 / 24 491 0 5566   
10 제2장 여배우의 적 (10) 활동사진 2016 / 9 / 23 395 0 7157   
9 제2장 여배우의 적 (9) 스타탄생 2016 / 9 / 23 480 0 5373   
8 제2장 여배우의 적 (8) 친구 2016 / 9 / 22 598 0 3534   
7 제1장 여배우의 꿈/ (7) 문성별 2016 / 9 / 22 474 0 4977   
6 제1장 여배우의 꿈 (6) 배우수업 (2) 2016 / 9 / 21 456 2 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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