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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제국의 광대
작가 : 연보라
작품등록일 : 2016.12.21

"황금의 나라 '엘도라 제국'의 황궁에는 판자마을에서 자란 공주가 있다고 합니다."
왕자는 호기심이 많았다.
[...]
그리하여 시작된 것이다. 엘도라 제국을 향한 그의 여행이.

 
3화 (2)
작성일 : 17-01-02 21:31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7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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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리베로 백작은 개국공신 귀족 중 한 가문으로 가문 그 자체가 상징적인 유명한 귀족이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꾸며진 아름다운 성은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성이었다. 잉그리드 후작의 성도 무척 컸지만 솔직히 비교가 안 된다.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은 모두 산책에 할애했는데도 모두 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건 어제까지의 이야기.

 

 “마데카. 그림 하나만 그리고 바로 돌아 올 거야. 걱정 붙들어 매!”

 

 “꼭 저녁식사 전에 돌아오셔야 합니다.”

 

 “응. 그럼. 클락한테 시간 맞춰 와달라고 했어.”

 

 “끙. 하필 오늘 제가 함께하지 못하다니...”

 

 “너무 걱정하지 말래두. 오늘 저녁 약속 알고 있으니까.”

 

 “일주일 전에도 그림에 빠지셔서 식사 시간에 한 시간이나 늦으셨..”

 

 “오늘은 시간 맞춰 올게!”

 

 마데카는 걱정인 듯 몇 번이나 당부했다. 오늘 저녁식사는 리베로 백작과 그의 아들도 함께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부인은 현재 휴가 차 별장에 가있기 때문에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다. 아마 정식 공주가 되고 나서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의 가장 커다란 홀에는 큰 액자가 걸려있었다. 거기서 본 아들 카리센은 백작을 닮은 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성인이 되기 전 그림이니 올해로 열여덟 살인 그의 모습은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눈 깜짝할 새 크곤 하니까. 기사단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지 어제라 식사시간에 처음 보게 될 사람이었다. 솔직히 엄청 걱정이다. 생각만 해도 어색한 걸.

 

 “보나, 시프님을 잘 모시거라.”

 

 “걱정 마요. 제가 시간 안에 오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보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믿겠다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 나에게 그랬듯 연신 똑같은 당부다. 나라면 부담이 될 것 같은데 보나는 끝까지 씩씩하게 답했다. 일부러 날 압박하려고 하는 건가? 살짝 의심이 들 때 쯤 마데카가 나에게 다가왔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그의 표정이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얼굴 같았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응. 마데카도 잘 다녀와.”

 

 오늘 그는 나에게 필요한 옷이나 물품을 구하러 다녀올 예정이었다. 궁으로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잘 먹고 잘 잔 덕분인지 이곳에 온지 세 달 만에 부쩍 키가 자랐다. 덕분에 소매가 애매해진 옷들이 많았다.

 

 “다녀오세요.”

 

 마데카는 끝까지 나를 배웅했다. 오래간만의 산책이었다. 꼭 필요한 예법이나 지식을 어느 정도 익히자 내게도 자유시간이 늘어났다. 거기다 오늘로 지리와 역사수업을 끝냈으니 궁에 돌아갈 때까지는 더 여유가 많아지겠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흐으음~”

 

 실수로 콧물이 조금 나오려는 걸 소매로 슬쩍 닦았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오늘은 기분이 정말 좋은가 봐요~ 저까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에요.”

 

 “응~ 정말 좋아! 오늘로 수업이 끝났거든!”

 

 보나는 내가 성에 오고 나서 배정된 하녀로 나보다 한 살 많은 또래였다. 흔치않은 주홍빛 머리칼과 눈동자에 하녀들과는 약간 다른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뾰족한 귀는 늘 머리로 가려져있었지만 난 단번에 알아차렸다. 엘프. 보나는 검은 숲에 살던 엘프였다. 그들이 인간 세상에 섞여있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노예로 잡힌 엘프가 아주 극소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보나는 자청해서 성에 일을 돕고 있는 엘프였다. 진실의 종족이라는 엘프를 굳이 내 하녀로 소개한 리베로 백작의 속내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단순히 의지할 사람을 소개시켜준 걸까?

 그 이유가 어찌됐건 간에 보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친구나 다름없었다. 천민이었다가 왕족의 신분이 된 나와 엘프였다가 평민의 신분으로 일을 하게 된 보나. 참으로 특이하고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운명인건지, 우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음이 정말 잘 통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럼 이제 자유시간이 더 늘어나겠군요!”

 

 “응! 남작을 못 보게 되어 아쉽긴 하지만.”

 

 바로 지금처럼.

  아니, 사실은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껏 나는 그를 남작이라고 칭한 적이 없으니까.

 

 “시프님께 예의를 갖추던가요?”

 

 “으응.. 역시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금세 침울해진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감정변화였다.

 

 “다시 만날 때는 궁이겠군요.”

 

 보나는 내 가라앉은 기분을 눈치 챘는지 평소보다 한층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응. 사실 실감이 잘 안 났거든. 근데 오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확 와 닿더라고. 솔직히 조금 겁나. 앞으로 많이 달라질 것 같아서.”

 

 “전 오히려 기대가 되는데요?”

 

 “기대?”

 

 예상외의 답에 눈이 번쩍 뜨였다. 보나는 내 동그래진 눈을 보고 쿡쿡 웃었다.

 

 “네. 시프님이 저번에도 그러셨죠? 귀족인 것을 몰랐을 때랑 지금이랑 너무 달라졌다고요.”

 

 “응. 환경뿐만이 아니야. 내가 달라진 게 느껴져. 취미, 음식, 말투, 행동...전부 다 달라졌어,”

 

 “제가 지금까지 지켜봤던 시프님은 누구보다 올곧은 사람이에요. 적응을 했을 뿐 변하진 않았어요. 누구보다 한결같죠. 깊은 내면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답니다. 성숙해질 뿐.”

 

 “고마워. 앞으로도 그 말 잊지 않을게.”

 

 나를 위하는 보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말이다. 보나는 이종족이기 때문인지 훨씬 솔직하고 성숙했다. 보나는 내가 기운을 차리자 밝은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설사 변한다하여도 시프님이 걸어갈 길이라면 그 길이 아름다울 것이라 믿어요.”

 

 “보나......”

 

 나와 시선을 맞추는 주홍빛 눈동자는 진심으로 순수하게 빛났다. 확실히 다른 하녀들과는 달랐다. 이렇게 진심어린 말을 해주는 사람은 보나 뿐이다. 다들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며 대했으니까. 지금처럼 시선을 맞추거나 나란히 걷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했다. 꼭 친구 같지 않은가. 하지만 그걸로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검은 숲에서 죽어가던 그녀를 리베로 백작이 데려와 살려줬다고 했다. 아무리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지만 스스로 하녀를 자청한 엘프라니. 어떻게 대해야할지 나도 가끔 헷갈리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보나는 내가 오기 전까지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엘프의 자격을 잃은 엘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보나는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달라지지 않으면 백작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걸요.”

 

 “푸흡 맞아. 이렇게 산책 시간도 없겠지.”

 

 “어떤 새로운 것들이 있을까요? 걱정도 되지만 설레기도 해요. 요즘 온통 그 생각뿐이라 잠을 설치게 되는 거 있죠?”

 

 백작에게는 이미 궁에 데려가겠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보나는 어째 나보다 더 복잡한 심경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보나가 걱정되어 다시 물었다.

 

 “보나. 나는 너와 함께해서 정말 좋지만 불편하다면 여기서 지내도 좋아. 사람들을 엄청 많이 만날게 될 텐데...."

 

 “어차피 전 시프님 곁에 있을 텐데요. 그리고 솔직히 떨어지기 싫어요. 시프님처럼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거든요..”

 

 보나의 말에서 그녀의 외로움이 절절히 느껴졌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가장 의지하는 친구나 다름없어.”

 

 나도 모르게 보나에게 옮았나보다. 이거 너무 직접적 인거 아냐? 고백 같잖아! 아무리 또래라지만 역시 이런 말은 쑥스럽다. 나는 러시안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통했네요!”

 

 보나는 노을을 닮은 눈을 곱게 접으며 활짝 웃었다. 그건 그녀의 눈에 비친 내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

 

 러시안 남작은 아직도 시프를 처음 만나던 때가 생생했다.

 

 “러시안 남작은 투박한 원석을 다듬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

 

 ‘투박한’에 강세가 들어갔다. 시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남작에게는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입이 바짝 마른다. 그 말은 지금은 투박한 원석이라는 말입니까? 러시안 남작은 속으로 소리쳤다.

 리베로 백작이 그런 그의 모습을 살짝 바라보았다. 소리는 내지 못한 채 뻐끔거리는 것이 우스웠다. 그런데 그 웃음이 어찌 시프에겐 도발이 된 모양이었다. 시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빛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헤?”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러시안 남작이 당황했을 때 내는 소리였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우아한 목례였다. 남작은 당황해서 리베로 백작을 바라보았다. 백작은 그런 그를 외면했다. 그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예..예..”

 

 내가 이런 어정쩡한 인사를 하다니. 러시안 남작은 두고두고 이 순간을 후회했다. 지금. 백작에게 대답을 하는 순간까지도.

 

 “제가 시프님을 처음 뵈었을 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요. 시프님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리베로 백작과 러시안 남작의 눈이 마주쳤다. 필시 백작이 원하던 답은 아니었을 터였다. 하지만 백작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고요한 청록색 눈동자는 엘도라 제국의 휴양지 에메랄드 해변의 물을 담아온 듯했다.

 

 “역시 자네는 입이 발린 소리를 전혀 하지 않는군.”

 

 이상했다.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을 텐데도 백작은 웃고 있었다.

 

 -

 

 오늘은 미처 가보지 못한 성의 입구 가까이 있는 산책로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내가 머무는 방은 성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내가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온 셈이다. 대연회가 있기 전까지 노출이 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성 밖으로의 외출은 금지된 상태였다.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백작의 조카로 알고 있었다. 답답함을 전혀 못 느낄 정도로 큰 성이라 다행이었다.

 

 “흐음~”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은은한 꽃향기가 들어온다. 온 몸에 활력이 도는 상쾌한 향이다. 오랜만의 산책이었다. 잘 꾸며진 정원을 걸으면 처음 보는 꽃들과 나무, 조형물로 가득해서 기분이 좋았다.

 

 “생긴 것도 예쁘네~”

 

 연보라색을 띈 큰 키의 꽃들이 산책로 주변을 따라 꼿꼿하게 늘어서 있었다. 곳곳에 섞인 푸른 별 모양의 열매가 맺혀있는 덤불은 아기자기한 느낌을 연출했다. 나는 길을 따라 걷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을 발견하자 보나를 불렀다. 보나도 주위를 기웃거리며 정원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얼굴을 살짝 찌푸린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진 못한 것 같았다.

 

 “보나! 여기쯤이 좋겠어.”

 

 무엇보다 보나와 내가 잘 통하는 점은 자연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리베로 백작의 성은 인위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꾸며진 정원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보나는 나와 산책을 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내가 정원에 관심이 많아진 것을 알고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원하는 그림도구를 아낌없이 구해다 주었다. 여러모로 잘 맞았다. 꼭 거짓말처럼. 보나는 내 비유에 한참을 웃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녀가 엘프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녀가 웃을 때면 주위로 산뜻한 바람이 일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번엔 이 길을 그리시려고요?”

 

 “응. 매번 느끼지만 리베로 성은 정원이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건물들도 그렇고. 조형물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달까.”

 

 “정원을 가꾸는 것을 도와주는 가문이 있거든요. 제국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성을 하사 받았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그 아들이 가꾼다고 하던데.”

 

 “정말? 귀족이 도와준단 말이야?”

 

 “네. 건축에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해요. 얼마 전에 완공된 구름다리도 그 가문이 직접 설계하고 만든 걸로 알고 있어요.”

 

 구름다리라니! 수도로 이어지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은 ‘구름길’이다. 하지만 그 곳은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돌아가야 했다. 그곳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는 절벽을 잇는 다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걸 어렸을 때 소문으로 들어봤다. 수도에 갈 일이 없어 헛소문이거나 완공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뭐지. 이 느낌은.

 

 “와. 그랬구나. 정말 대단하다. 꼭 직접 보고 싶어! 거기에 다리가 세워질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반신반의했거든. 진짜로 사람이 세운거구나. 대단하잖아 엘도라!”

 

 그래. 이건 자랑스러운 맛이다. 엄마가 만든 요리를 다른 사람들이 극찬했을 때.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심장이 뜨겁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네. 저도 믿기지 않았어요! 참 대단해요. 인간의 기술은 뛰어나다 익히 들었지만.. 어떻게 그곳에 다리를 세울 수 있었을까요.”

 

 보나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건 어째 덩달아 칭찬 받은 기분인걸.

 

 “정말. 천재라고 하던데 그런가봐. 나라의 인재지만 크게 봤을 땐 인류의 복이야!”

 

 “아, 리베로 백작님이 화가를 데리고 완공기념 행사에 다녀왔었어요. 곧 다리 풍경을 담은 그림이 온다나 봐요.”

 “그래? 그림으로라도 꼭 봐야겠어!”

 

 “저.... 그런데 시프님. 정말 죄송한데 제가 화장실이 좀 급해서..”

 

 보나가 몸을 베베 꼬았다. 아까부터 무언가 불편해 보인다 했는데 화장실이 급했나 보다. 보나와 둘만 있는 것이 편하다는 핑계로 아무도 대동하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풋.. 진작 말하지 그랬어. 여기 얌전히 있을 테니까 다녀와. 저 뒤에 기사님들도 계시니까. 아, 저기 건물로 들어가면 되겠다.”

 

 “가감사합니다 시프님. 정말 여기 꼼짝 말고 계셔야 해요?”

 

 “그래. 약속할게.”

 

 보나는 후다닥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발걸음이 가벼운 것이 사람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냥 여기서 그려볼까.”

 

 나는 보나가 놓고 간 돗자리를 바라보다 털썩 잔디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간단히 밑그림만 그리고 가야지. 어차피 다시 몸을 씻고 단장할 테니 옷이 좀 더러워져도 상관없겠지. 슬쩍 뒤를 보자 호위기사 두 명이 망설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준 다음 종이를 꺼내 연필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보다 저쪽이 훨씬 나을 텐데.”

 

 “헛! 놀래라.”

 

 꽈득.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부러진 심과 뭉개진 그림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뭐야 그 표정은.”

 

 뭐지 이 건방진 아이는! 나는 열 살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머리칼이 햇빛을 받자 푸른빛을 띠며 반짝인다. 슬쩍 옷차림을 훑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급스러운 옷차림이었다.

 

 “누구신지요?”

 

 어디서나 당당하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앉아있어서 그를 올려다보아야 했지만 소년은 나보다 키가 작은 어린이였다.

 

 콰다당-

 

 “엇! 안 돼!”

 

 아아. 위풍당당하게 일어나려 했건만.

 현실은 그림도구가 든 통을 요란하게 넘어뜨렸을 뿐이었다.

 

 “몽땅 .....”

 

 창피하다. 나는 순식간에 뜨거워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굽혀 쏟아진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뭐하는 거야?”

 

 “...쏟아져서 줍고 있는데요.”

 

 “쯧쯧”

 

 의외로 소년은 순순히 물건들을 같이 주워주었다.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드는 게 꼭 리베로 백작을 생각나게 했다.

 

 “고마워요.”

 

 “뭘 이정도로. 근데 여기까지 와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야? 내 또래 같은데.. ”

 

 “저 열네 살인데요.”

 

 “지.진짜?”

 

 “내년에 성인이 된답니다.”

 

 정말 동갑내기인 줄 알았는지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그의 뒤로 볼일을 마친 보나가 저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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