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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수박
작가 : 강원산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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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고유의 무예 수박.
그 전설의 완성을 위해 뫼문의 제자 북수산이 중원에 발을 딛었다.

 
제 13 화
작성일 : 16-07-19 10:25     조회 : 675     추천 : 0     분량 : 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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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훅!”

 을지상인이 입으로 바람을 내불자 호롱불은 순식간에 빛을 잃고 꺼져들었다.

 지난밤 내내 작은 방을 환히 밝혀 주었던 호롱불은 아침 해가 떠오를 시간이 되어서야 그 역할을 마치고 휴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을지상인은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사랑하는 제자의 소식을 정말 오랜 만에 들었다.

 하나 잘 있다는 소식이 아니라 살해되었다는 비참한 소식이었으니 어찌 잠을 잘 수 있었으랴.

 을지상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밤새 을지상인은 북수산을 왜 중원으로 보냈을까 하는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북수산이 중원에 가고 싶어 했어도, 아무리 북수산의 뿌리가 중원에 있다 해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고려 비무행을 마쳤을 때 멈추게 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을 것이다.

 을지상인은 제자를 덧없이 죽게 만든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지난밤 스스로의 잘못을 탓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던 을지상인은 힘겹게 마음을 다잡으며 앞으로의 일을 차분히 준비했다.

 백산에게는 아직 북수산의 죽음을 알릴 수 없었다.

 백산이 사형인 북수산을 얼마나 잘 따르고 좋아하는지 알기에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만약 알게 되면 당장이라도 사형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중원으로 달려가리라.

 억지로 말릴 수는 있겠지만 백산은 북수산의 일로 더 이상 무예를 익히는 데 집중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을지상인은 북수산의 죽음을 숨긴 채 백산을 하산시키기로 했다.

 삼 년 전 칠보산에 유배된 조봉인의 충고대로 진정한 ‘갈’의 전인들에게 백산을 보내 스스로 수박에 정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백산의 무예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북수산의 죽음을 알릴 생각이었다.

 그 사이 을지상인은 직접 중원을 찾아가 북수산의 시신을 회수해 올 계획이었다. 더불어 북수산을 죽게 만든 원흉을 찾아 그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원의 무예 역시 뿌리가 깊은 것이라 만만히 볼 수 없었다.

 어쩌면 을지상인 그 자신도 고려로 되돌아오지 못할 수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뫼문의 맥은 끊긴다.

 북수산을 통해 뫼문의 맥을 잇고 백산을 통해 뫼문을 더욱 발전시키려던 을지상인은 이제 모든 것이 백산에게 달려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을지상인은 백산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자 했다.

 뫼문의 맥을 이을 후계자에게만 전하는 비전의 ‘갈’. 그것을 백산에게 남겨 줄 생각인 것이다.

 뫼문 비전의 ‘갈’은 바로 ‘쌈수’였다.

 살인 무예나 다름없는 쌈수박보다 한두 단계 높은 수준으로 볼 수 있는 쌈수.

 북수산은 이 쌈수를 완벽히 배우지 못하고 중원으로 떠났다.

 뫼문의 전통상 비전의 ‘갈’은 서책으로 전하지 않는다. 반드시 스승이 직접 제자에게 전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백산에게는 직접 전수가 어려울 듯했다.

 차라리 ‘갈’의 전인에게 보내지 않고 직접 쌈수를 전수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북수산의 시신을 이대로 중원에 방치할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고려로 시신을 회수해 와야 했다.

 지금으로써는 뫼문의 비전인 쌈수를 서책으로 남기는 길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자세하게, 마치 직접 전수하듯 정리해 놓는다면 백산의 총명함으로 충분히 터득해 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을지상인은 자신이 중원에 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백산이 비무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북수산에 대한 것도 알려 줘야했기에 따로 편지도 써야 했다. 하지만 쌈수를 익히기 전에는 중원에 나설 수 없도록 작은 조치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을지상인의 가정은 최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자신이 중원에서 무사히 북수산의 시신을 회수하고 흉수를 처리한다면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을지상인은 백산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달리 떠나는 제자가 마음 편히 비무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냉정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투박한 한지로 덧대어진 방문과 창문 틈으로 햇볕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시간, 백산은 북수백산을 떠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을지상인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을지상인도 백산도 차마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방문 앞 문지방 아래에 고이 놓인 밥상에서는 하얀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백산이 스승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 올린 것이다.

 “아침상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고생했다. 그래, 떠날 차비는 다 하였고?”

 “네, 여벌의 옷과 짚신, 그리고 약간의 포(布)를 준비하였습니다.”

 “목함은 찾았느냐?”

 “네… 목함을 찾아 안에서 인명록을 꺼냈습니다.”

 백산 역시 지난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게 분명해 보였다.

 얼굴빛이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고 눈도 평소보다 부어 있었다.

 백산은 자신의 이런 몰골이 방문에 가려져 스승이 보지 못함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인명록의 내용을 완전히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뫼문이 아닌 자에게 그 인명록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산아…….”

 “네, 스승님.”

 백산은 스승의 말투가 사뭇 부드럽게 변하자 살짝 긴장했다.

 지금까지 이런 식의 말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던 백산으로서는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칠 것 같은 기분이 백산을 긴장시켰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다.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다시 되돌릴 수도, 멈춰 세울 수도 없다.”

 난데없는 세월 타령이었다.

 예전 같으면 ‘흐르는 물은 둑으로 막으면 멈출 수 있는데요?’ 하고 장난 식으로 걸고 넘어갔겠지만 지금 백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분위기가 진중했다.

 “세월을 낭비하지 말거라. 아끼고 또 아껴 네게 주어진 삶을 소중히 살아가야 한다. 오늘 이 순간부터 너는 내 제자인 백산도 아니요, 북수산의 사제인 백산도 아니다. 네가 바로 뫼문이고 네가 바로 쌈수박의 전인이다. 알겠느냐?”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가슴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불안감.

 백산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반박해야 했다. 이대로 을지상인의 말을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스승님이 계신 이상 제가 뫼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사형이 있는 이상 저는 쌈수박의 제자일 뿐 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백산은 방문을 투시하듯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이 녀석! 먼 길을 떠나는 녀석이 끝까지 스승의 말에 토를 다느냐? 에잉!”

 을지상인의 말투가 변했다.

 진중한 분위기가 갑자기 가볍게 변하자 백산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심이었다.

 백산을 뒤흔들던 불안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긴 뭐가 아니냐! 네 녀석이 떠나 있는 동안 발 뻗고 잘 수 있나 했더니 끝까지 말썽이로구나. 가라. 가서 네 마음껏 발질을 해 보아라. 우매한 녀석…….”

 “발질이라니요? 제 발의 무예를 그렇게 비하하시면 아니 되지요. 제 발 기술로 말하자면 무려 십 년에 가까운 수련 기간을 거치며 갈고닦은 최고의 무예로서…….”

 “닥치고 가라니까? 난 이미 귀를 막았으니 빨리 가거라! 인명록에 적힌 모든 곳을 들러야 한다. 반드시 순서대로… 그 순서를 어기면 내가 당장 쫓아가서 볼기를 때려 줄 테다!”

 “아, 네… 그러겠습니다. 그럼 제가 없는 동안 끼니 거르지 마시고, 틈틈이 허리 관절도 좀 펴세요. 자꾸 앉아만 계시니까 허리가 점점 구부러지잖아요. 그리고 사흘에 한 번은 육류를 챙겨 드시고, 마당의 눈도 좀 치우세요. 나이 드실수록 몸을 자주 움직여 줘야…….”

 “고추를 떼어 주랴? 사내자식이 뭔 말이 그리 많더냐? 네 일이나 걱정해라. 인명록의 인물들을 쉽게 생각했다가는 나보다 먼저 저승으로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허험!”

 을지상인은 헛기침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런 식으로 대화하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일부러 대화를 끊은 것이다.

 백산도 그런 을지상인의 마음을 읽었다.

 자신도, 그리고 스승도 아쉬운 것이리라.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낸 적이 거의 없었던 을지상인과 백산.

 백산을 처음으로 멀리 보내게 된 을지상인은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백산 역시 나이가 많은 스승을 홀로 남기고 떠나려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야 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그동안 갈고닦은 발의 무예를 인정받을 마지막 기회였다.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비가 죽었고 복수의 대상인 최 씨와 이복형제들도 죽었을 게 분명했다.

 한 가지 목표가 사라졌으니 이제 남은 또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걸 생각이었다.

 ‘해낸다. 난 반드시 해내겠어!’

 백산은 마침내 발길을 돌렸다.

 등 뒤로 걸쳐 멘 보퉁이 하나와 산짐승을 잡을 때 쓸 죽창 하나가 전부인 백산은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십 년 전 어미의 무덤을 떠날 때처럼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걸었다.

 “떠나리, 떠나리랏다. 이 한 몸 뉘일 곳 찾아 청산을 떠나리랏다.”

 백산의 입에서 원류를 알 수 없는 묘한 가락이 흘러나왔다.

 누군가에게 배운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자신의 처지를 노래로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련한 아픔이 전해지는 그런 가락이었다.

 푹푹 빠져 드는 눈길을 걸으면서도 백산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몸을 갈고닦는 데에만 집중했던 덕에 백산의 신체는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해 보였다.

 여덟 살의 나이로 구름보다 높은 곳에 있는 두운봉에 올랐으나 이제 십팔 세의 나이로 두운봉을 내려가고 있었다.

 백산은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며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을지상인 곁으로 돌아오리라 마음먹었다.

 한편 을지상인은 백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방문을 열어보았다.

 문지방 아래로 곱게 차려진 밥상이 보였다.

 정성스레 준비한 듯 오늘따라 찬이 많아 보였다.

 “찬을 준비하느라 밤잠도 제대로 못 잤겠구나. 제자를 죽게 만든 이 못난 스승을 위해서 말이야… 허허…….”

 을지상인의 시선이 산 아래를 향해 던져졌다.

 백산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지만 을지상인의 눈에는 아직도 백산의 해맑은 모습이 선했다.

 키도 자랐고, 손발도 모두 컸지만 단 한 가지 예전과 그대로인 것이 있었다.

 고집불통의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고집을 꺾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을지상인은 이번 비무행에서 백산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리라 믿었다.

 ‘갈’의 전인들과 만난다면 분명 정신적으로 많은 성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왠지 당당한 모습으로, 훌륭하게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올 백산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허어… 어찌 이런 불길한 생각이 든단 말인가. 나이가 들어 망령이라도 든 겐가?’

 을지상인은 백산이 떠나간 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상을 방 안에 들여놓고 방문을 닫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백산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백산에게 전해 줄 쌈수를 책으로 남겨야 했고, 북수산의 소식을 전할 서찰을 책과는 다른 방법으로 남겨 두어야 했다.

 더불어 뫼문을 비롯하여 모든 ‘갈’의 전인에게 있었던 십오 년 전 과거의 비사(秘事)도 백산이 알 수 있게 남겨 둘 생각이었다. 가능한 많은 걸 알려 줘야 했다.

 “수산아… 이제 곧 내가 가마.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거라.”

 을지상인은 백산마저 떠난 지금, 북수산을 잃은 슬픔이 떠오르자 북받치는 슬픔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수저를 들었다.

 사랑하는 제자가 정성껏 준비한 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어쩌면 다시는 제자가 해 주는 밥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을지상인을 계속해서 괴롭혔다.

 

 ***

 

 어두웠다.

 마치 먹물 통 속에 빠진 듯 사위가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빛이 있었다. 어둠 속의 한 곳에서부터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와 한 사내의 손을 비춰 주었다.

 여인의 것처럼 새하얀 손은 붓을 놀리고 있었다.

 백지 위로 그림을 그리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몸은 어둠 속에 잠겨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손과 붓 그리고 백지뿐.

 언제까지고 멈출 것 같지 않던 그 손이 어느 순간 멈춰 섰다.

 “부르셨습니까?”

 “들어오라.”

 누군가의 음성에 붓을 든 사내가 명령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육성이 아닌 듯 사방을 울리고 있었다.

 달깍!

 온통 암흑뿐이던 곳에 아주 잠시 빛이 찾아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둠의 장소에는 두 사내가 머물게 되었다.

 “무현검대주(武玄劍隊主)님을 뵙습니다.”

 방문을 열고 새로 등장한 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상황은?”

 짧고 강한 물음.

 처음부터 방 안에 있던 사내는 여전히 사방을 울리는 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용청(龍靑), 호백(虎白), 작주(雀朱), 무현(武玄)의 사검대(四劍隊) 모두 중원 각 성(城)에 지부 건설을 완료하였으며 은밀히 활동을 개시하였습니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본 원(原)의 행사를 들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현검대주님의 뜻을 사검대의 대원들에게 이미 전달해 두었습니다. 다만 작주검대주(雀朱劍隊主)님께서…….”

 “말하라.”

 “작주검대주님께서는 무현검대주님을 여전히 탐탁치 않게 여기시는 듯합니다. 또한 무현검대의 대원들을 깔보고 계십니다.”

 무현검대주의 건위(乾衛)인 형인은 고자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반 년간 봐 온 무현검대주의 성정은 무심(無心), 무정(無情), 무애(無愛)인지라 자칫 하다가는 오히려 형인이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었다.

 무현검대의 대원들로부터 삼무인(三無人)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무현검대주. 그는 형인의 말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잠시간이 흐르자 무현검대주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바닥에 놓여 있던 백지를 둘둘 말아 죽통에 넣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죽통을 들어 입구를 잘 봉했다.

 말은 없었다. 그저 차가운 기운만을 물씬 풍기며 할 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형인은 그런 반응에 이미 익숙한지 전혀 이상히 여기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무현검대주의 입이 열렸다.

 “한 번 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앞에서 검을 뽑아라. 그를, 작주검대주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되면 네 힘으로 얼마든지 그를 응징해라. 나 역시 마찬가지…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내 손에 죽는다.”

 “네, 네! 아, 알겠습니다.”

 무현검대주의 말이 너무도 살벌했던 것일까? 형인은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지금껏 그 무엇도 두려워한 적이 없던 형인이었다. 하지만 무현검대주의 앞에만 서면 자신도 모르게 공포를 느꼈다.

 무현검대주가 한 말은 다른 게 아니었다.

 실력이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무슨 짓이든 용납된다는 말이었다. 반대로 무시당하기 싫으면 형인과 무현검대의 대원들에게 실력을 키우라는 소리였다.

 “시킬 일이 있다.”

 “형인, 대주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형인이 바닥에 머리를 대는 순간이었다.

 툭! 투륵!

 두 개의 죽통이 형인의 머리맡에 던져졌다.

 “그림에 있는 두 사람을 내게 데려오라.”

 형인은 머리를 바닥에 댄 채 두 개의 죽통을 회수했다.

 “칠십사 세 정도의 노인과 십팔 세 정도의 소년… 둘 다 동이족이지.”

 “어디를 가면 찾을 수 있습니까?”

 “동이족의 땅, 아사벌… 아침의 대지에 있다. 장백산의 남서쪽에 있는 북수백산을 찾아라. 그 산의 두운봉이라는 봉우리에 그들이 있을 것이다. 두 노소의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말고 데려와라.”

 “그들이 반항을 한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형인의 물음에 무현검대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형인은 이번에도 역시 재촉 없이 대답을 기다렸다.

 끝이 있는 기다림은 사람을 즐겁게 한다. 지금 형인은 그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다.

 “산공독(散功毒)을 써라. 그들은 중원의 암계 같은 것에 무지하니 별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존명!”

 쿵!

 형인은 바닥에 머리를 찧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다시 한 번 밝은 빛이 안을 비추었다.

 그때 방 안에 있던 무현검대주의 모습이 찰나적으로 드러났다.

 흑색 장포로 온몸을 가린 사내였다.

 그러나 빛이 비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용모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엔 은색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턱 끝부터 머리끝까지를 무표정한 은색의 가면이 가리고 있었다.

 형인은 그런 무현검대주의 얼굴을 아주 잠깐 스치듯 바라보고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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