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고 서서 누구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달라고 당신이 아니면 안된다고 당신이 누구이든 어떤 사람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어떤일을 당한다고 해도 그래서 나중에 내가 당신을 왜 만나선 하고 당신에게 화를 낸다고 해도 그래도 그것 먼 미래의 일이니까 그런 생각 따위는 잊어버리고 그냥 지금 이 순간만 생각 하자고 말이다. 그가 나를 발길질하고 놓으라고 해도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가 내 손끝에서 불꽃이 사라지듯 사라지고 난 후에 알게 된것이다. 사라지고 나면 깨닫는 것들 없어지고 나면 그 소중함이 얼마나 컸던지 알게 되는 처참함 내가 가진 숙명은 그런 것이 었다. 외로운 것 외로움 나는 그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외로웠다. 더 더욱 외로웠다.
하지만 그 집에선 그는 없었다. 나는 그 집의 현관을 열었다. 그 집의 현관을 열어서 그 곳에 그가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가 아닌 누구라고 해도 그가 누구요 하고 묻는다면 아 그러니까 친구네 집인데 누구 없어요 하고 말할 것까지 생각 하고 현관을 열었다.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문은 열렸다. 나는 빼꼼히 문을 열었다. 가슴이 그렇게 절절히 사람이 그리워 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시는 감정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고리 타분하지만 이성이 지시하는 일을 더 따를 것이다. 감정이 시키는 것은 언제나 분란이 따른다.
그 곳에는 이성이 반쯤 집을 나간 여자가 집안 곳곳에 휘발유를 뿌리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그 여자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내가 그것을 물을 입장 따위는 되지 않지만 하도 그 모양새가 이상해서 였다. 아무리 봐도 그 여자는 제정신 같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여자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그 여자는 나를 한번 휙하고 돌아보더니 하던 일을 다시 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네 눈에는 뭐하는 걸로 보이냐?”
여자는 초면에 반말 질이었다.
나는 어따 대고 반말이야 하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것 따위를 말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냐구요?”
“나는 지금 여따대고 불을 확 싸질러 버릴 려구 그런다 왜”
여자가 악을 썼다.
“아니 왜 여기다 불을 싸질러요?”
나도 같이 악을 썼다. 그 여자도 반쯤 정신이 나갔지만 나 역시도 외로움에 술기운에 후회에 악이 받혀 있던 터였다.
“넌 알 것 없잖아. 네 년이 일을 이따위로 하니까 내가 지금이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는 거잖아. 네 년만 아니었으면 난 벌써 그 놈의 사지를 절단 했을 거라고”
하며 악을 쓰면서 소리를 질렀다. 미친 년이 틀림이 없었다.
그래 그 스토커 였다. 성찬 아니 그를 내내 괴롭혀 왔던 스토커
“네 년이 전에 그랬지? 집을 다 뒤집어 놓은 거 말이야”
“그래 내가 그랬다. 그리고 그 전에 도 그전에 도 그 전전에도 그랬어. 그 놈이 제대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어? 그 놈이 도망 다닌다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 했냐고? 어떻게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제 깟 놈이 잘 살거라고? 흥! 웃기고 있네. 난 말이야 지옥까지 그 놈을 쫒아 갈거야. 알겠어. 그러니까 그런 놈 좋아했다면 맘을 접으라고 그 놈은 내꺼니까”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그 여자의 말은 그냥 하는 농담 같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 사람들이 왜 내 사랑에 이렇게 왈가 왈부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누구랑 지랄을 털든 그것이 뭐 지들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말이다. 확 끼쳐 오르는 화를 누를 수 없었다. 그래 네년이 미쳤단 말이지. 나도 미쳤다.
“왜 그놈이 네꺼야 내꺼지. 야 이 미친년야. “
악을 쓰며 나는 그여자에게 달려 들었다. 미친여자도 당황했는지 들고 있던 휘발유통을 휘두르며 뒷 걸음질 쳤다.
“휘발로 뒤집어 쓰고 그래 죽어 보자 이년아 그래 그래 네가 뭔데 네가 뭐냐구 네가 뭔데 감놔라 대추 놔라야.”
나는 닥치는 대로 여자의 머리르 뜯고 옷을 뜯었다. 미친년은 생각 보다 힘이 없었다. 이리 저리 떠 밀려 가기만 했다. 휘둘리기만 하던 여자는 소리만 질렀다. 그래 미친년한테는 미친년 말고 약 없거든
기름 냄새가 역겨웠다. 두려운 것도 없었다. 이렇게 살아온 7년 인생 앞으로도 살아갈거 별반 다름 없으니 무서운것도 없었다. 가진것도 없으니 무서운 것도 없다. 가진게 많은 사람일수록 두려움이 많은 법이 었다. 나에겐 아무도 없었다. 유일한 그 마저도 이제 사라졌다. 그래서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있으면 이 미친년이 가진 휘발류통 들고 쫒아가서 이 미친년이 말한 것처럼 불을 확 싸질러 버릴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미친년이 말했다.
“이것 좀 놔. 이것 좀 놔. 제발 이것 좀 놔라고”
여자의 목소리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쥐고 있던 여자의 머리 채를 놨다. 나의 손에 한 주먹만큼 뜯겨진 머리칼에 나도 화들짝 놀랐다.
여자는 울기 시작 했다. 아이처럼 엉엉하고 울었다. 바닥에 주저 앉아 다리를 굴리며 울었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 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내 손에 그녀의 머리칼이 왠만한 다람쥐의 꼬리만큼 말려 져서 바닥에 굴러 다녔다. 바닥은 휘발류로 미끌 거렸다.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여자의 꼴은 내 마음의 꼴 만큼이나 처량 맞아 보였다.
그리고 나는 여자의 옆에 앉아 같이 울었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그에게 단단히 원한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