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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87 괜찮아 나야 안심해
작성일 : 16-12-03 05:58     조회 : 560     추천 : 0     분량 : 9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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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대현은 윤아를 윤아의 침대에 앉혔다. 목도리를 거두고 소독수로 피를 닦았다. 연고로 상처 부위에 덧바르고 윤아의 손에 얼음 팩을 쥐어주었다. 윤아는 말없이 얼음 팩을 목에 갖다 댔다. 대현은 윤아의 다리를 잡고 들었다. 순간 윤아의 몸이 움찔거렸다.

 

 

  “아파?”

 

 

  윤아가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릎의 상태는 꽤나 양호했다. 다행이 치마대신 바지를 입었으니 가능했다. 그래도 혹시 덧날까봐 연고를 발랐다. 치료는 끝났다. 대현이 윤아의 옆에 앉아 윤아에게 손을 뻗었다. 순간 윤아가 대현의 손길을 피했다. 대현이 꽤나 충격을 받아 몸이 굳었다. 윤아 역시 주훤의 손길이 가시질 않아 본능적으로 피했기 때문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윤아가 울먹이며 입술을 뗐다.

 

 

  “미……, 안해.”

 

 

  대현은 윤아를 끌어안아 벽에 등을 기댔다.

 

 

  “괜찮아. 나야, 안심해.”

 

 

  윤아의 떨리는 몸, 흐느끼며 들려오는 얕은 숨. 깊이 상처 받은 여린 맘. 대현은 그것을 더욱 안아주고 싶었다. 대현이 윤아의 목에다 입술을 갖다 대며 작게 속삭였다.

 

 

  “잠시, 잠시 동안 윤아가 진정될 때까지 이러고 있자.”

 

 

  대현은 무척이나 속상했다. 이렇게 여리디 여린 윤아의 살결에 혐오하던 놈이 상처를 주었다는 것에. 아마 윤아는 이 폭력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윤아를 처음부터 지켜주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밉다고.

 

 

  ‘흉터지지 않아야 할 텐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윤아가 몸을 꿈틀댔다. 대현이 천천히 안고 있던 것을 풀어주었다. 윤아가 몸을 돌려 대현과 마주보았다. 대현의 입술이 터진 채로 치료되지 않은 것이 보였다.

 

 

  “내가 해줄래. 치료.”

 

 

  대현은 얌전히 윤아의 손길을 받았다. 말랑하고도 촉촉한 대현의 입술이 윤아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윤아 역시 괜히 말려들어 다친 대현을 보니 속상했다. 윤아의 떨리는 손길이 대현의 얼굴을 살며시 더듬다가 뗐다. 윤아의 고개가 점차 숙여졌다. 흐느끼며 울었다.

 

 

  ‘왜 우리가 상처 받아야 하는 걸까.’

 

 

  “나 봐봐.”

 

 

  대현이 윤아에게 말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나 봐봐.”

 

 

  여전히 윤아의 고개는 숙여있었다.

 

 

  “윤아야 나 봐줘.”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윤아가 대현의 목에 팔을 두르며 안아 말했다.

 

 

  “앞으로 꼭 내 옆에 있어줘.”

  “응.”

 

 

  대현은 윤아의 말에 대답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시계 바늘이 오전 10시를 가리켰다. 그날 밤 대현은 윤아의 방에서 함께 잠들었다. 대현이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숨기자고?”

  “외삼촌이나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신경 쓰이게 만들 것 같아.”

  “네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폐를 끼쳐.”

  “그렇네.”

 

 

  윤아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대현이 당황해 윤아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놈 어떻게 엿 먹이지.’

 

 

 -

 

 

  “이번 프로그램의 MC는 연예인으로 할 거야. 입담 좋은 남자 두 명으로. 그리고 유명 셰프들을 모아서 요리를 하는 거지.”

  “그 중 제가 홍일점이고요?”

  “응. 다 시커먼 남자로 하기엔 너무 칙칙하니까 홍일점으로 더 튀어 보이는 거야.”

 

  “이번도 경쟁을 하는 진행 방식이네요.”

  “정확한 룰은 지금 작가와 상의 중이야.”

 

  “지금 이 제안으로도 괜찮을 것 같긴 해요. 셰프들 라인업도 좋고요. 언제부터 시작한다고 했죠?”

  “정확하게 날 잡힌 건 아니지만 내년 여름 전부터는 시작할 것 같아. 촬영은 매 주 화요일에 있을 생각이고. 너 로제와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아, 나 로제와인 갈 거 생각해서 촬영 화요일로 정한 거예요?”

  “응.”

  “센스쟁이.”

 

  “네가 일하고 다음 날 하루종일 로제와인 얘기만 했는 걸.”

  “하하, 제가 그랬나요? 간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 설레다보니.”

  “뭐 좋을 대로 해. 원래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하는 거니까.”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단비에게서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받았다.

 

 

  “응? 네가 웬일로 사진을 인화해 달라고 한데. 응, 그야 이번 촬영 우리 팀이 하지.”

 

 

  단비는 대현으로부터 어제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단비의 입에서 찰진 육두문자가 나왔다. PD가 단비의 욕설에 놀라 몸을 움찔했다.

 

 

  “완전 미친 자식 아냐? 그랑프리에서 그 자식 얼굴 봐야할 텐데 윤아 괜찮겠어? 일단 알겠어.”

  “무슨 일인데 그래? 왜 이리 신경이 날 섰어.”

 

 

  단비는 진정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표정을 잔뜩 일그러진 상태로 화를 표출했다.

 

 

  “나주훤 그 자식이 윤아 골목에다 납치해서 얼굴을 때렸데요. 목에는 세게 손으로 눌린 자국 때문에 멍 생기고 대현이는 입술이 조금 터졌데요.”

 

  “혹시 내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그 대현이와 윤아?”

  “네. 이번 마지막 시즌 왕중왕전 우승자요.”

  “허? 나주훤 그 인간은 이번 그랑프리 대회 후원 소속 사장이잖아. 왜 건든 건데?”

 

  “분에 안 찼겠죠. 예부터 마스터께 악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그런 로제와인에게 1위를 빼앗겼으니까요. 마침 그 로제와인에 마스터의 조카인 윤아가 있던 것이고 부총주방장으로 오른 실력이 있으니 윤아를 건든 거죠. 윤아의 남자친구인 대현은 총주방장이니까 나주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알맞죠.”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그건 애매한게 대현이도 똑같이 복수라 납시고 나주훤을 때렸나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네.”

 

  “이번에 자기가 후원한다고 엄청 그거 믿고 슬슬 시동 걸기 시작했나 봐요. 꼭 이번 대회 참여해서 색다르게 욕 먹여야겠어요.”

  “괜히 말려들면 어떡해? 위험할 것 같은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저의 스승님인 마스터와 율 스승님의 조카이자 딸인 걸요. 내 친동생 같은 아이에요. 대현이는 실제 사촌이고요.”

 

  “흐음, 그럼 이 방법이 어떨까.”

 

 -

 

 

  “대현아, 너 이 사실 알고 있었어?”

 

 

  자신의 옆에서 팔뚝을 툭툭 치는 규동에게 고개를 돌렸다.

 

 

  “뭘?”

  “네 형 그랜드 파티스 소속으로 이번 대회 참여한다는데?”

  “뭐?”

 

 

  대현이 노트북을 자신의 방향으로 돌려 자세히 포트폴리오를 읽어보았다.

 

 

  “지욱이 형 분명 그랜드 파티스 관뒀다고 했지 않아?”

  “분명 나도 마스터께 그렇게 들었는데 뭐지.”

 

 

  ‘무슨 생각이야.’

 

 

  대현이 지욱에게 SNS 문자를 주었다. 지욱은 예상과 달리 빠른 답장을 주었다.

 

 

  -너 뭐냐? 이번 대회 왜 그랜드 파티스 소속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뭔데. 관뒀다고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거기다 붙어. 거기서 네가 붙어서 좋을 게 뭔데. 무슨 생각이야.

  -주훤이를 다시 한 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몰라서.

  -무슨 소리야 호구야. 그 녀석은 너한테 영양가 하나 없는 놈이라니까. 너 그냥 이용당하는 거라고 이 답답아.

 

 

  대현은 지욱의 대답에 답답함을 느껴 뒷목을 잡았다.

 

 

  -어휴. 한 번 더 데여봐야 네가 정신 차리겠지. 네 알아서 해라.

 

 

  ‘보다 높은 직이라면 다른 건 모두 버릴 사람이, 어째서 마스터 보다 낮은 자리로 다시 들어간 거지? 자기 자신을 위해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인간을 위해서? 걔의 어디가 그렇게도 좋은데 이러는 건데.’

 

 

  대현이 핸드폰을 던지다시피 소파 위에다 던졌다. 규동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담 우리들 중 하나가 형이랑 붙는다는 거네.”

 

 

  ‘여기다가 도지욱을 같은 소속도 아닌 다른 소속으로 붙는다고?’

 

 

  대현은 재작년에 자신을 재치고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었던 지욱을 떠올렸다. 2위 강단에서 1위 강단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그 상황을.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군.”

  “뭐가?”

  “이번 대회가. 일단 나 윤아한테 가본다.”

  “윤아 상처는 좀 어때? 오늘 모임 괜찮겠어?”

  “생각보다 상처는 빨리 아물었긴 한데 목이랑 볼엔 시퍼렇게 멍들었더라.”

 

 

  규동이 한숨을 쉬었다. 대현도 규동과 같은 마음이었다. 대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윤아의 방으로 갔다.

 

  윤아는 모임에 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대현이 들어오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 너무 창피해. 이러고 밖에 나가질까?”

 

 

  대현이 괜찮다며 윤아의 손등에 살며시 뽀뽀를 하며 윤아의 손을 내렸다. 볼의 멍은 그리 크지 않아 밴드로 가려졌으며, 목은 목도리나 손수건으로 목을 둘러 가리면 심각한 상황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아물어서 다행이다. 이런 것일수록 가리지말고 친구들에게 상담을 하고 같이 해결 방안을 생각하는 게 좋아. 혼자 이렇게 숨는 습관은 좋지 않아.”

  “애들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해.”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지. 그래도 너 모임에 가고 싶어서 이렇게 옷도 갈아입었잖아.”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로제와인 학원에 모였다. 대근의 허락으로 대회 준비 기간 동안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윤아와 규동, 대현을 제외한 사람들이 윤아의 상태에 식겁했다.

 

 

  “여자의 얼굴을 때린 건 너무한 거 아냐?”

  “쓰레기네.”

 

 

  효린과 명수가 쩔쩔 맸고.

 

 

  “그 새낀 왜 이렇게 한결 같아? 빨리 안 망하나?”

 

 

  리하가 화를 냈으며.

 

 

  “아니, 얼마나 목을 세게 쥐었기에 멍이 이렇게 심하게 들어? 이정도의 멍이라면 목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으로도 다행이겠는 걸.”

  “암만 빨리 낫는 편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상처로는 대회 때도 이 상태로 쳐야할 것 같은데.”

 

  “그래도 예선 때는 크게 영상으로 안 찍혀서 눈에 띌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워낙 인원도 많고 복잡해서.”

  “목도리보다는 그 때는 손수건 같은 걸로 접어서 목에 두르는 게 좋겠다.”

 

 

  현미와 제훈이 걱정해주었다. 생각보다 그들은 윤아를 걱정해주었다. 한순간 이들에게 숨기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현이 말했다.

 

 

  “들었지? 절대로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야. 부끄러움을 당하는 건 가해자인 나주훤이야.”

  “응.”

 

 

  본격적으로 대회에 대해 대현이 대표로 설명해주었다.

 

 

  “이미 출전해본 경험자도 있지만 처음인 사람도 있으니까 내 경험담을 얘기해줄게. 예선은 10명씩 팀으로 나눠서 주어진 제과제빵의 종류를 만들어서 보다 나은 사람을 뽑았어. 이번엔 몇 팀으로 될지 얼마나 뽑을지도 몰라. 그 때는 잠깐씩 편집해서 영상 찍는 것 말고는 크게 없어. 그리고 예선을 치러서 본선으로 올라가는 몇 십 명이서 1:1 토너먼트식으로 올라가서 쳤어. 이거는 꽤 몇 년간 시행되었던 전통적인 방법이니까 혹시 모를 주제들을 예상해보고 그에 맞게 여러 종류의 빵들을 준비해두면 될 것 같아.”

 

 

  윤아가 질문했다.

 

 

  “그럼 심사는 어떻게 하는 거야?”

 

  “일단 핵심 심사는 3명인데 인터넷에도 쳐보면 알겠듯이 여자 한 명 남자 두 명이야. 그 중 남자 하나는 시즌 거듭할수록 유지되거나 바뀌어. 진행자이자 심사위원이지. 그리고 8강땐가 그 때서부터 각 소속의 마스터들과 영향력 있는 셰프들도 뒤에서 심사를 할 거야. 세미파이널부터는 아마 일반인들도 참여했었거든.”

 

 

  규동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게 몇 년에 한 번씩 룰을 바꾸는데 슬슬 바꿔질 기간도 됐지 않아?”

  “몇 년 지나면 이렇게 추측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다가 진행 방식도 지루해지니까. 그러니 올해는 위험할지도.”

 

 

  파티쉐들이 갓 만든 디저트를 조리대 위에 올려놓으면, 윤아가 디저트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그것을 웨이터에게 건넸다. 그 시각에 다른 한 파티쉐는 갓 구워진 구겔 호프(중간에 구멍이 있는 스펀지 혹은 파인드 형태의 케이크)를 꺼냈다. 어떤 파티시에는 블랑망제 위에 산딸기 소스를 뿌렸다. 그 옆에 있던 리하는 다 만들어 접은 크레페(얇은 핫케이크라는 뜻으로 크레페와 크레이프는 같은 뜻임)와 오렌지 소스를 프라이팬에 넣고 함께 데웠다. 그런 뒤에 자신의 앞에 있는 규동을 쳐다보았다. 규동의 크레이프 만드는 솜씨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리하는 자신의 크레페 상태를 보며 괜히 찔러보았다.

 

 

  “꽤 하네?”

  “뭐가?”

  “그 크레이프.”

 

 

  규동은 신중하게 크레이프 위에 생크림을 바르고, 다시 크레이프를 위에 올리는 것을 반복하며 말했다.

 

 

  “나 지금 집중하는 중.”

 

 

  리하는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게 칭찬을 해주려고 해도…….”

 

 

  규동은 입 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웬 일이야, 천하의 권리하가 남을 칭찬할 줄도 알고.”

  “야, 칭찬 안 하려고 했어. 안 해. 왜 해, 내가 너한테.”

 

 

  리하는 작은 접시에 적당히 데운 오렌지 수제트(크레페를 캐러멜화한 소스와 오렌지를 데워서 먹는 디저트)를 올렸다. 그러다 규동이 자신이 훨씬 리하보다 잘하지 않냐는 말에 울컥해, 프라이팬을 좀 더 들어올렸다.

 

 

  “어, 어, 수제트 떨어진다.”

 

 

  리하는 규동의 말에 급히 프라이팬을 내려놓았다.

 

 

  “하여간 남자는 대현이 말고는 전부 다…….”

 

 

  리하의 말에 규동이 리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규동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아직 윤아를 잊지 못한 마음이 마치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규동은 발뺌을 하며 자신의 디저트에 집중했다. 리하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빈 접시에 수제트를 담았다.

 

 

  ‘뭔가 여기서 더 튈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해.’

 

 

  “아아, 뭔지 모르게 다 하니 씩 부족한 기분.”

 

 

 -

 

 

  “얘들아, 치킨 먹자!”

 

 

  갑작스럽게 외삼촌이 학원에 들이닥쳤다. 파티쉐들과 외삼촌은 치킨을 뜯어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나도 그 얘기는 들었어. 지욱이가 그랜드 파티스의 파티쉐로서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된 거. 어쩌면 재작년 그랑프리 대회의 일들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대현아.”

 

 

  대현은 외삼촌을 보며 대답했다.

 

 

  “네.”

  “자신 있지?”

 

 

  대현은 지욱이 쥐고 있었던 트로피를 기억해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드시 도지욱은 이깁니다.”

 

 

  D-3. 지욱은 그랜드 파티스의 조리실에 밤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계속했다. 사각 무스링에다가 브라우니 반죽을 조금 부은 다음, 군데군데에 크림치즈를 짤주머니로 짜서 넣었다. 그 위에 다시 브라우니 반죽을 붓고 또 다시 크림치즈를 짰다. 무스링에 어느 정도 반죽이 채워지자, 지욱은 그것을 조리대 위에 몇 번 쳐서 반죽 안에 들어간 공기를 빼냈다. 그런 후에 그것을 오븐에 집어넣었다.

 

  맞은편에 있던 쌍둥이 역시 연습하였다. 형인 차 정은 자신의 디저트를 꼼꼼히 살피며 추가적인 수정을 거치는 중이었지만 차 웅은 자신의 것을 맛보지 않고 바로 다음 디저트를 만드는데 힘을 기여했다. 보다 못한 정이 웅에게 말했다.

 

 

  “네가 한 건 안 먹어볼 거야?”

  “어차피 완벽할 텐데 뭐 하러 먹어봐.”

  “그래도 혹시 모르니 먹어보고 분석해봐야지.”

 

  “형 지금 내 실력을 무시하는 거야?”

  “걱정의 차원으로 말한 거잖아.”

  “아아, 신경 꺼. 형 거나 하라고. 나는 괜찮으니까.”

  ‘얘는 겨우 찾아온 기회인데도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이니 걱정이다.’

  “어휴.”

 

 

  그 시각 주훤은 각 소속의 마스터들과 추가 심사위원, 대회의 스태프들이 토의를 하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즉흥적인 경연이 어떻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여태껏 진행해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군요. 충분히 당황 할만 합니다.”

  “이대로 하죠. 올해는 역대 인원의 참가자라서 그만큼 상금도 늘어났으니 방심할 틈을 주지 말아야죠.”

 

 

  모두가 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회장의 구조와 기타 유의할 점을 꼼꼼히 체크했다. 외삼촌은 손에 들린 유의사항을 살펴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자신의 앞에 주훤이 씩 웃으며 서 있었다.

 

 

  “머지않아 시작되겠네요, 마스터.”

  “꽤나 여유로운 척 하는 구나.”

  “척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제대로 삐뚤어졌구나.”

  “다 마스터 덕 아니겠습니까.”

  “볼 때마다 안타깝구나.”

 

 

  외삼촌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뭔가를 생각해내다가 다시 주훤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주훤의 속을 전혀 몰랐다. 내심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주훤을 종잡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완전히 틀어진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당당하게 선 주훤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주훤을 이렇게 만든 탓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뒤에 있던 대근이 외삼촌의 옆에 섰다.

 

 

  “왜 자네가 남 탓으로 돌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

 

 

  주훤이 순간적으로 인상을 쓰다가 거짓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께선 굳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는 문제입니다만.”

  “그럼 신경 쓰이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말해줬으면 하는데. 형님, 여기 이 부분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제안하는 게 어떻습니까.”

 

 

  대근이 외삼촌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외삼촌은 대근이 가리키는 사항을 보았지만 별 문제가 없었다.

 

 

  “별 문제가 없는데 뭘 제안해?”

  “인생엔 적당한 연기가 필요하죠.”

 

 

  대근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 말이었다. 주훤은 멀리서 무언가의 대화에 대근과 웃는 외삼촌을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웃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혹시 자신의 욕을 하며 웃는 것이 아닐까, 란 추측에 몹시 기분이 언짢아졌다.

 

 

  “언제나, 언제나…….”

 

 

  ‘당신은 나를 내리 깔았죠.’

 

 

  윤아는 자신의 방에서 한창 아이디어 노트에다가 직접 창작한 디저트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떠올리곤 급히 대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지금 통화할 시간 있으세요? 아, 그게 어제 말한 그거 때문에 그런데요. 구할 수……, 있나요?”

 

 

  윤아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대근의 목소리에 활짝 웃었다.

 

 

  “네. 고마워요 아빠.”

  -이런 말하기엔 낯부끄러운데.

  “네?”

  -네가 자랑스럽다. 우승해라.

 

 

  대현이 윤아의 방문에 노크하고 들어왔다. 윤아는 고맙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대현은 윤아의 옆으로 다가갔다. 한 손을 책상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의자의 등받이를 잡고는, 윤아를 내려다보았다.

 

 

  “뭐가 그리도 좋아서 혼자 히죽거려?”

  “그냥.”

  “변태야?”

  “아, 아니거든? 아빠가 나더러 자랑스럽다고 했어. 열심히 하래. 꼭 우승하래.”

 

 

  대현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다 얼핏 윤아의 아이디어 노트에 그려진 케이크를 보았다.

 

 

  “저건 뭐야?”

  “아, 이거? 이건 결승전을 위해서 준비해둔 거야.”

  “뭔데?”

  “그건 비밀. 결승전 때 되면 알려줄게.”

  “결승전까지 갈 수 있단 보장이 있나?”

 

 

  윤아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것 같은데?”

  “우승이 걸린 결승전이라.”

 

 

  대현은 책상을 짚은 손에 체중을 실고 책상 위에 살짝 걸터앉았다. 여전히 대현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건 쉽게 못 내줄 것 같은데?”

  “어, 그래. 아주 두고 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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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 God Of Crown,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2016 / 12 / 3 604 0 7400   
87 87 괜찮아 나야 안심해 2016 / 12 / 3 561 0 9024   
86 86 하나 쯤은 어떻게 되도 상관 없잖아 2016 / 12 / 3 697 0 8165   
85 85 에라이 모든 커플 다 망해라 2016 / 12 / 3 683 0 6080   
84 84 너 인마, 울고 있잖아 2016 / 12 / 3 575 0 7044   
83 83 내 아가들 찾으러 왔다 2016 / 12 / 3 677 0 8743   
82 82 거짓말, 이거 진짜야? 2016 / 12 / 3 447 0 6869   
81 81 자네, 보고 있나? 바람은 이루어졌지 2016 / 12 / 3 447 0 6157   
80 80 왜 16명이야, 19명이지 2016 / 12 / 3 522 0 6970   
79 79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2016 / 12 / 3 750 0 9801   
78 78 너니까 가능한 거야 2016 / 11 / 29 840 0 8572   
77 77 단 한 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2016 / 11 / 29 789 0 11402   
76 76 오늘 밤, 방으로 들어와 2016 / 11 / 29 601 0 7223   
75 75 대체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2016 / 11 / 28 730 0 8898   
74 74 우린 단 한 번도 널 2016 / 11 / 28 666 0 11084   
73 73 당신의 모든 것 내가 빼앗아 2016 / 11 / 27 798 0 11412   
72 72 세 번의 변화 2016 / 11 / 26 520 0 10595   
71 71 넌 정리 했어? 2016 / 11 / 26 559 0 8272   
70 70 좋아, 좋아해 2016 / 11 / 25 477 0 9770   
69 69 기회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 2016 / 11 / 25 567 0 10534   
68 68 그 누나는 행복한 사람이네 2016 / 11 / 24 541 0 6712   
67 67 부디 이 아이만큼은 2016 / 11 / 24 843 0 8561   
66 66 너의 한계 2016 / 11 / 24 706 0 8925   
65 65 신은 나의 위치를 실감나게 해 2016 / 11 / 23 855 0 8859   
64 64 이게 무슨 일이야 2016 / 11 / 23 445 0 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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