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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79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작성일 : 16-12-03 05:12     조회 : 750     추천 : 0     분량 : 9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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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차, 오늘 당번 아니니?”

 

 

  노인이 화분을 옮기며 한 소리였다. 윤아가 화분 들어주기를 도와주며 말했다.

 

 

  “네. 오늘은 부모님이랑 외삼촌께서 하신데요.”

  “으응? 그 셋이? 오랜만의 조화구먼. 어어, 그건 여기다가 가지고 와.”

 

  율이 케이크를 데커레이션 할 동안 외삼촌은 빵의 반죽을, 대근은 갓 구운 빵을 꺼냈다. 누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었는데도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다. 저마다 조금씩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옛 추억을 회상했다.

 

 

  ‘누가 더 빨리 만드나 내기 하자.’

 

 

  고등학생의 대근이 외삼촌에게 했던 제안이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빵의 반죽을 빨리 성형하느라 바빴었다.

 

  현재의 대근과 외삼촌은 같은 종류의 빵을 오븐 팬에 채워가고 있었다.

 

 

  ‘이번 데커레이션은 어때?’

  ‘지, 진짜 잘했어! 율이가 제일 잘한 것 같아! 이건 그냥 막 시중에 막 팔아도 될 것 같아!’

 

 

  율을 안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대근이라면 어떻게든 율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칭찬을 퍼부었었다.

 

  대근이 성형이 된 반죽에 계란 물을 바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율을 올려다보았다. 율과 시선이 마주쳤다. 칭찬을 내뱉은 것이 아닌 그저 눈빛을 주고받는 것이었는데 미소가 번졌다.

 

 

  ‘우리 나중에 최정상 제빵계의 톱스타가 되어서.’

 

 

  외삼촌이 가게에 걸린 팻말을 OPEN으로 바꾸었다.

 

 

  ‘같이 빵집 운영하면 좋겠다.’

 

 

  외삼촌이 바꾸고 돌아왔을 땐 율과 대근이 카운터에서 외삼촌을 보고 있었다.

 

 

  “우리 셋이 빵 가게 하나 차려버릴까.”

  “형님,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응. 유명인 셋이서 여는 빵가게! 완전 대박 날 것 같지 않아? 입소문에 입소문을 타서.”

 

 

  대근이 잔뜩 신난 외삼촌을 보다가 무심한 듯 툭 하고 말을 건넸다.

 

 

  “카페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그거 진심이야?”

  “제가 언제 농담 건넨 적 있습니까.”

  “푸하하! 율아 들었지? 당장 차리자.”

 

 

  율이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기억이 떠올랐는지 자신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이것봐봐. 첫날에 윤아가 만들었던 피자빵이 맛있었는지 또 팔게 되면 연락 달라고 직접 찾아온 손님 있었어.”

 

 

  연락처와 함께 간단한 메모가 적힌 쪽지였다. 대근은 그것을 보고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꽤나 쪽지를 붙들고 있었다. 율이 어깨를 으쓱였다. 대근의 쪽지 쥔 손을 감싸 잡으며 말했다.

 

 

  “오늘 애들 가면 당분간 우리끼리 있을 텐데 편하게 시간 가져봐.”

  “늦었어.”

  “가족 사이에 늦을 건 없어.”

 

 

 -

 

 

  윤아와 노인은 화분을 모두 옮긴 후에 마루에 앉았다.

 

 

  “힘들지?”

  “아뇨, 아뇨! 여기에 머무르면서 이런 일은 기본적으로 해야죠.”

  “아니, 그거 말고.”

 

 

  윤아는 그제야 노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견딜만해요. 번번이 실패하지만요.”

 

 

  윤아는 한동안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자신의 사정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고 당했던 현장과, 그 때문에 입원을 했던 일, 친목파티에서 있었던 일과 이번 여행을 통해 또 다시 반복했던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과거에 대한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아무리 지워보려고 해도,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요.”

  “네 마음이 뭔데?”

  “네?”

 

  “넌 내가 며칠 밖에 보지 않아서 너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 수 있어. 넌 그 누가 보더라도 열심히 해. 그런데 열심히 하는 노력만큼이나 네 마음이 강인하지 않아. 남에게 실망을 주면 어쩌지, 피해가 되면 어쩌지, 라고 덜컥 겁부터 먹어. 남들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네 마음은 생각보다 여리다는 거지. 그렇지만 남에게 신경을 기울이고, 과거의 일을 환기시키면서, 미래를 생각한다는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냐. 단지 그 정도가 조금 지나칠 뿐이지.”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그랬어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요.”

 

  “그래. 어느 정도 적당히 생각해줘도 되는 문제야. 원래 어렵다고 생각하는 문제일수록 쉽게 생각하면 금방 풀리는 문제가 많거든. 뭐, 너한텐 엄청난 고비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굴곡진 고비가 있어서 발전할 수 있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같은 늙은이는 이제 미련 남을 것도 없지만, 넌 아직 젊잖아? 앞으로 책임질 밤과 대낮이 많단 말이야. 흠, 넌 과거에 어떤 일이 최대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현재는 어떤 일을 가장 하고 싶고, 미래엔 뭐가 되고 싶니?”

 

  “과거의 최대 실수……, 좀 더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해서, 부모님께 장래에 대해 얘기 못한 점과 여러모로 부주의 한 점인 것 같아요. 현재에 하고 싶은 일은 로제와인 동료들과 일을 하는 것, 다시 오븐을 사용하는 것이고요. 미래엔 그랑프리 대회에 참여하고 싶기도 하고,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 일을 널리 퍼트리게 하고 싶어요. 외삼촌처럼 훌륭한 파티쉐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아, 그랑프리 우승하면 프랑스에 놀러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어요. 꼭 우승하면 프랑스에 며칠 동안 가서 제가 모르는 디저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어때? 숨이 벅차오를 정도로 기쁘지 않아?”

 

  “맞아요. 상상만 해도 정말 기뻐요. 꼭 열심히 해서, 노력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이뤄내고 싶어요.”

 

 

  노인은 윤아의 힘 있는 목소리에 흐뭇하게 웃었다. 고개를 돌려 화단 너머의 건물을 보다가, 다시 윤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거야. 뭐든 간에 구체적으로 잡을수록 뚜렷해지지. 그렇게 마음을 강하게 먹는 거야. 윤아야,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만들어. 과거를 잊으려고 애쓰거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과거에 부족했던 네가, 현재에서 노력해 그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가면, 미래는 과거와 현재가 합쳐져서 완고한 하나의 형체가 돼. 그러니까 보다 네가 바라는 이상향이 있다면, 그 이상향을 구체적으로 잡아서 지금 노력하렴. 넌 할 수 있어. 네 주위엔 널 이끌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란다.”

 

 

  윤아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윤아는 자리에 박차고 일어나 노인의 앞에 선 다음, 노인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노인은 윤아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 쯤, 화단 너머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말했다.

 

 

  “이제 나와도 돼.”

 

 

  지욱은 주뼛주뼛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건물 뒤에서 나왔다. 노인은 지욱을 향해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말하고 싶은 것도 이와 같아. 네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나, 여기 있는 동안 치유 받고 가길 바랄게.”

 

 

  윤아가 대현네 방으로 갔다. 규동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현이는?”

  “모르겠어. 밖으로 나가던걸?”

 

 

  윤아가 깜짝 놀라 민박집 밖으로 나갔다. 빵집과 주변 건물을 둘러보았지만 대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아, 나 운동 부족인 것 같아.’

 

 

  숨이 너무 벅차오르는 탓에 윤아의 발이 차차 느려지려고 할 찰나, 무섬다리를 건너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회색 후드 집업……! 어딜 가려는 거지? 설마 마을을 벗어나려는 건가?’

 

 

  윤아는 안간힘을 다해 대현을 향해 무섬다리 위를 뛰었다. 한 칸, 두 칸, 세 칸, 빠르게 넘어가자 중간 지점에 다다랐다. 앞으로 두 칸 더 간다면 대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윤아는 대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현이 누군가 급하게 자신의 뒤를 쫒고 있단 생각에 뒤로 돌려고 할 찰나, 윤아가 먼저 대현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대현은 윤아의 힘에 이끌려 몸이 뒤로 돌려졌다. 윤아는 대현과 마주보자마자 달려들 듯이 대현을 안았다. 윤아는 계속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현을 더욱 더 세게 안았다. 대현은 두 손을 어찌할지 모르다가 결국 윤아를 안았다.

 

 

  “어디 가. 아직 가지 마.”

 

 

  대현은 눈을 꿈뻑이며 윤아를 내려다보았다.

 

 

  “어디 안 가. 그냥 다리 건넜던 것뿐이야.”

  “나 할아버지께 고민 상담했어.”

  “고민?”

 

  “오븐 볼 때마다 과거의 일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더 신경 쓰이고 환기 돼서 힘들었었거든. 이제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

  “기특하네.”

 

 

  윤아는 여전히 대현을 안은 상태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해가 좀 더 빠른 속도로 지자, 하늘이 붉어졌다. 노을이 짙어질 때마다 구름의 색깔이 시시때때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 지금 정말 잘해서 로제와인 파티쉐들이랑 다시 뷔페에서 일하고 싶어. 손님들이 활짝 웃는 것도 보고 싶고, 사람들이 우리 사이트에 댓글 달아주는 것도 지켜보고 싶어. 우리가 다시 1위하는 것도 보고 싶고, 그랑프리 대회에 가서 우승도 해보고 싶어. 우승하면 프랑스에 놀러가게 해준다니까 너랑 놀러가서 좀 더 디저트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아니, 꼭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좋아. 참여만이라도 엄청 설렐 것 같아.”

 

 

  대현은 윤아를 제대로 일으켜 세운 뒤, 윤아를 내려다보았다. 노을 탓인지, 윤아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인지 윤아의 얼굴이 붉게 보였다. 붉어진 노을 때문에 윤아의 짙은 속눈썹이 반짝였다. 대현은 윤아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침착하라는 듯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윤아는 숨이 차올라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너랑 못했던 데이트도 하고 싶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대현이한테 뭐든 챙겨 주고 싶어. 나도 요리 배워서 도시락 싸서 소풍가고 싶어. 대현이가 아플 때면 나도 닭죽 만들어 줄 거야.”

  “아서라, 요리는 아닌 것 같아.”

 

  “싫어, 싫어! 나도 엄마한테 배워서 해줄 거야. 나도 대현이가 아프면 의사 뺨치게 간호해 줄 거야. 그리고, 그리고 대현이랑 단 둘이서 여행도 가고 싶고 친구들이랑 다 같이 여행도 하고 싶고, 저번에 아름 유치원 다시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어. 다솜이랑 태준이 보고 싶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싶고, 나 정말 열심히 활동해서 대현이한테 바가지 긁는 일 없도록 할 거야!”

 

 

  “뭐?”

  “나 너랑 결혼 할래!”

 

 

  대현은 뜬금없이 고백하는 윤아를 향해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윤아의 머리 위에 댔던 손으로 천천히 윤아의 머릿결을 만지다가 윤아의 볼을 감쌌다. 그 다음 엄지손가락으로 윤아의 촉촉한 눈가를 슥 훑고는 윤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눈물을 참기 위해 울상을 짓는 윤아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노을빛이 유난히 대현의 환한 미소를 비추었다. 대현은 윤아가 놀라기도 전에 눈을 감고 윤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윤아는 천천히 대현을 따라 눈을 감았다.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 하늘과 데칼코마니를 찍은 것처럼 붉어져, 바람의 결 따라 움직이며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강물.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는 윤아의 볼과, 윤아의 볼을 감싼 대현의 손. 대현은 천천히 입술을 떼고 윤아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윤아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손으로 대현의 볼을 만졌다. 대현의 볼과 자신의 볼의 온도가 같아졌다.

 

 

  “대현이 볼 뜨거워.”

  “너라고 뭐 안 뜨거운 줄 알아?”

 

 

  대현과 윤아는 누구라 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대현은 다른 한 쪽 손도 윤아의 볼을 감싸며 짧게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서 윤아의 몸을 뒤로 돌렸다.

 

 

  “가자, 집으로.”

 

 

  대현은 윤아의 뒤에서 윤아가 행여 다리를 건너며 넘어지는 것이 아닌지 잘 살펴주었다. 그러면서 괜히 투덜거렸다.

 

 

  “야, 내가 너 때문에 창피하게시리 김효린한테 전복죽을 배웠잖아.”

  “효린이한테 배웠어?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너 지금 여기 강물에 빠지고 싶어?”

 

 

  대현이 윤아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강물에 빠트리는 시늉을 했다. 윤아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어? 나 방금 진짜 깜짝 놀랐어.”

  “진짜 놀라면 어쩔 건데. 내가 너 때문에 놀란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건 약과지.”

 

 

  대현은 한 번 더 윤아의 어깨를 부여잡고 떨어뜨리는 시늉을 하다가, 이번엔 진짜로 윤아를 강물에 빠트렸다. 다행이도 강물은 윤아의 발목 밖에 오지 않는 깊이였다. 윤아는 자신의 신발을 내려다보다 다시 대현을 쳐다보았다. 대현은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윤아는 장난 끼 가득한 표정으로 대현에게 씩 웃었다. 대현은 설마, 하는 마음에 급히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는데, 윤아는 대현을 놓치지 않고 대현의 손을 잡아 강물에 빠트렸다. 대현이 강물을 밟으면서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이번엔 대현이 윤아를 노려보았다.

 

 

  “야.”

  “왜, 뭐!”

  “너 지금, 야.”

 

 

  대현은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지, 윤아를 향해 발등으로 물장구를 쳤다. 그것을 시작으로 윤아와 대현은 한동안 강물에서 물장난을 쳤다.

 

 

  “너희들 여기서 뭐해? 앗, 차가워!”

 

 

  규동이 무섬다리를 건너 윤아와 대현에게 가까이 가자마자 튀기는 강물에 발이 흠뻑 젖었다. 윤아와 대현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규동을 쳐다보았다.

 

 

  “왜, 왜 그래?”

 

 

  불안감이 엄습해오자, 규동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대현은 규동의 바지를 잡고 늘어섰다. 규동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조금만 힘주어 밑으로 당겨도 쉽게 내려지는 옷이었다. 규동은 악착같이 달라붙는 대현의 힘을 이기지 못해, 결국 강물에 빠졌다. 축축해진 바지를 내려다보다가, 차마 윤아를 노려볼 수가 없으니 대현을 노려보았다. 대현이 윤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규동을 잔뜩 약 올렸다. 규동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손으로 물을 뜨려던 참이었다. 윤아가 재채기를 한 뒤 눈을 깜빡였다.

 

 

  “지금 몇 시냐?”

  “슬슬 우리 가볼 시간이야.”

 

 

  대현은 규동의 말에 다리 위로 올라가고 나서 윤아에게 손을 뻗었다. 윤아가 대현의 손을 잡자, 대현은 윤아를 이끌어 다리 위에 올라오도록 도왔다. 규동도 대현에게 손을 뻗었다.

 

 

  “너 알아서 올라와 인마.”

  “와, 나쁜 놈 의리가 없어요.”

  “어쩌냐, 우리한테 복수도 못해서.”

  “저게…….”

 

 

  규동이 물을 뿌리려는 찰나, 대현이 윤아를 방패로 삼아, 윤아 뒤에 숨었다. 윤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너 지금 나 방어막으로 이용했어?”

 

 

  대현은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곤 윤아를 마을로 향하게 몸을 돌려세웠다. 그 다음 윤아 뒤에서 윤아의 양쪽 팔을 잡으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규동은 자신만 놔두고 간다며 급히 다리 위로 올라 그들의 뒤를 따랐다. 민박집에 도착했을 쯤, 외삼촌과 대근이 멍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대현과 규동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윤아는 볼을 긁적이며 물장난을 했다고 말했다. 대근은 혀를 차며 다른 곳으로 향했고, 외삼촌은 어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일렀다. 지나가던 단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여간 애다. 애.”

 

 

  대현과 규동이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윤아는 강물에 배려 빤 옷을 빨랫줄에 널고 있었다. 빨랫줄에 널린 옷들과 흰 수건이 바람에 옅게 흔들렸다. 윤아는 흰 수건을 쫙 펴서 널고 두 개의 빨랫줄을 건너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윤아의 발 앞에 슬리퍼를 신은 남자의 발이 보였다. 윤아가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만 들어 올리자, 잔 근육으로 다잡아진 팔과, 볼록 튀어나온 목젖, 갸름한 턱선, 이어서 대현의 눈이 보였다.

 

  대현이 두 개의 평행된 빨랫줄 사이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서 있었는데, 빨래거리에 가려진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대현은 윤아의 손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긴 뒤, 윤아를 끌어안았다. 윤아는 손을 어떻게 할 줄 몰라 하다가 대현의 등을 토닥였다. 대현의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윤아의 귀를 간지럽혔다.

 

 

  “잠시만 이러고 있자.”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

 

 

  대현은 허리를 좀 더 숙여, 윤아를 가둔 팔을 조여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윤아의 귀가 대현의 가슴에 맞닿으면서 대현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윤아는 괜스레 그 소리에 자신이 부끄러워 윤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차피 빨래거리랑 화단에 가려져서 우리 안 보여.”

 

 

  윤아는 한동안 대현의 샴푸 냄새를 맡으며 숨을 쉬다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대현은 윤아보다 키도, 손도, 발도, 몸집 자체도 훨씬 큰데도.

 

  “대현이는 아이 같아.”

  “뭐?”

 

 

  대현은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윤아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안는 거 좋아. 대현이도 나 안고 싶었지?” “내가 너랑 그러고 싶었겠냐.”

 

 

  대현은 내뱉은 말과 다르게 윤아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는 무슨. 당연하지.”

 

 

  윤아가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대현의 아쉬운 표정이 보였다.

 

 

  “나 이제 가야해.”

 

 

  때마침 규동이 대현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빨래터에서 나와 무섬다리를 건너 정류장까지 함께했다. 마을버스가 소실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제 가보겠습니다. 필요하신 것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다 늙어빠진 노인이 필요할 게 뭐가 있다고. 남은 일은 걱정말고 가봐. 할 일도 많다면서.”

  “네. 건강하시고 제가 틈틈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다른 아가들도 잘 가. 생각나면 한 번 놀러오고.”

  “네!”

 

 

  버스가 도착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빵집 부탁해. 밥 잘 챙겨 먹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오빠야 말로 밥 잘 챙겨먹고 그래. 로제와인, 금방 1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외삼촌과 율의 대화를 이어 윤아도 대화를 나눴다.

 

 

  “조심해서 가. 나도 금방 따라갈게.”

  “푹 쉬고 와. 내가 조만간 한 번 더 올 테니까.”

 

 

  단비가 깍지낀 손으로 머리 위에 올리며 말했다.

 

 

  “아아, 윤아가 부총주방장이라며. 검은 제복 입은 모습 보고 싶은데 나 이참에 로제와인으로 복귀할까봐.”

  “뭐?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아잉.”

 

 

  단비가 V한 손으로 찡그린 한쪽 눈에 갖다 댔다. 대현이 단비의 무자비한 애교에 분노를 느끼고 단비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단비는 자신을 때리는 줄 알고 제발이 저려 규동에게 몸을 숨겼다.

 

 

  “이제 진짜 갈게.”

 

 

  버스가 떠났다. 윤아는 한동안 제자리에서 버스가 떠나고 없는 휑한 도로를 바라봤다.

 

  날이 밝자마자 윤아는 빵집으로 나갈 채비를 갖춘 뒤 빵집으로 향했다. 머리를 단단히 올려 묶고,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모자를 쓴 뒤 소매를 걷었다.

 

  굽기 전의 상태인 에그타르트를 완성시켰다. 천천히 오븐으로 손을 뻗을 때, 유난히 윤아의 양쪽 옆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아는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보았다. 오른쪽엔 굳힌 초콜릿에 다른 초콜릿의 색상으로 데코를 하고 있는 율이, 왼쪽엔 구워진 케이크 위에 생크림으로 도포하는 대근이 보였다.

 

  윤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오븐의 문을 잡고 열었다. 살짝 떨려오는 손, 조금은 겁에 먹은 표정이었다. 윤아가 옆으로 고갤 돌렸다. 어느새 율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율이 윤아의 장갑 낀 손을 잡았다.

 

 

  “쉼호흡 하고 같이 넣는 거야.”

 

 

  어쩌면 수십 번 했던 1분 전 고민이 사실은 별 것이 아님을.

 

 

  드르륵. 오븐 팬이 완전히 오븐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윤아는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윤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고 후에 처음으로 오븐을 이용했다. 20분 후에 윤아는 장갑을 끼고 숨죽여 기다리다가, 오븐의 알람 소리에 오븐을 열었다. 고소하면서도 특유 버터의 느끼한 향이 윤아의 코를 자극시켰다. 에그 필링이 보기 좋게 그을린 모습을 보니 윤아의 두려움보다 앞섰다. 긍정적인 생각을 찾고 좋은 모습을 보려고 노력하니 조금은 안정을 찾게 되었다.

 

 

  “할 줄 아네.”

 

 

  윤아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윤아는 대근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네!”

 

 

  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대근이 당황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그냥……,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서.”

 

 

  곧바로 윤아의 눈도 충혈 되었다. 엄마의 눈물에는 한없이 약해지는 딸이었다. 대근의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단지 이것은 분위기를 타서 그런 것뿐이라고.

 

  대근은 장사를 하기 직전에 쪽지를 보며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늘봄 양과자입니다. 다름 아니라 오늘부터 피자빵 판매하는 걸 알리고자 연락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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