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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77 단 한 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작성일 : 16-11-29 21:27     조회 : 789     추천 : 0     분량 : 1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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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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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르륵,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방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섰다.

 

 

  “와줬구나.”

 

 

  대근은 완전히 방에 들어선 다음, 문을 닫고 어정쩡하게 섰다.

 

 

  “이리와. 편하게 앉아.”

 

 

  대근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외삼촌의 바로 앞에 앉았다. 방 안은 비교적 따뜻했고, 주변엔 이불을 놔두는 장롱과 옷걸이, 탁자와 그 위에 놓인 몇몇의 책이 전부였다.

 

 

  “아직 보일러를 틀 만큼 춥지 않은데, 형님이 트셨습니까?”

  “아니. 선생님께서 춥다고 트셨어.”

  “그렇군요.”

 

 

  방 안에는 미묘하고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외삼촌도 쉽게 뭔가를 말하기가 어색했던 것인지 한동안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그러다 자신의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발견하곤 천천히 입을 뗐다.

 

 

  “난 네가 과거의 어느 부분을 오해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솔직히 나도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네가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우리에게 화가 났던 건지 알고 싶어. 굳이 화난 부분이 아니라도 좋아. 네 감정이 조금이라도 일그러진 부분을 말해줘.”

 

 

  그것은 아주 먼 과거의 일, 그러니까 대근이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그 때 당시엔 빵이 꽤나 귀한 음식에 속했기 때문에 현재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빵이 아니었다. 먹을 수 있는 날이라고 해도 중요한 날이나 남녀 간의 소개팅이 있을 때가 고작이었다. 대근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밥이 아닌, 밀가루로 만든 빵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 가지 종류의 빵이 고작이었지만 그것들의 맛은 어떠할지, 그것들은 또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겨우 돈을 모아 처음으로 먹게 되는 날, 우연히 빵집 앞에서 율을 발견했다. 율은 꽤나 예뻤고 특이하게 귀에 두 개의 점이 있어서 눈에 쉽게 틔었다. 율은 아무렇지 않게 빵집에 들어갔고, 대근도 이어서 그곳에 들어갔다.

 

  율은 빵을 종류 별로 세 개씩 골라 담았다. 대근은 율의 옆에서 그 광경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카스텔라 빵을 골랐다. 대근이 율의 뒤에 서서 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율은 빵집 사람과 친분이었는지 꽤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근이 저도 모르게 나오는 콧물을 훌쩍이자, 그제야 율이 뒤에 손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대근은 옆으로 지나쳐가는 율을 보다가 고갤 돌려 빵을 계산했다.

 

  빵집에서 나와 빵을 먹으며 골목을 거닐었다. 처음 먹었던 빵은 부드러우면서도 옥수수와 같은 고소한 맛이 났다. 문득 다른 빵들은 어떤 맛이 날지, 빵은 어느 나라의 음식인지 궁금했다. 그 날 이후로 대근은 돈이 모아질 때마다 빵집에서 종종 빵을 사먹곤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빵에 필요한 재료들을 힘겹게 구해 만들어보기도 했다. 뭣도 모르고 만드는 것이라 매번 타버리는 게 전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 하루도 그것을 게을리 여기는 적은 없었다.

 

 

  ‘어, 오늘도 왔네?’

 

 

  대근이 빵집에 올 때면 항상 율이 있었다. 늘 혼자인 상태로, 항상 뭔가에 잔뜩 들떠있는 그 상태로 말이다. 대근은 먼저 말을 걸어온 율을 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율도 줄곧 혼자서 빵을 사러 오던 대근에게 흥미와 더불어 궁금증이 있었다.

 

 

  ‘넌 여기서 소개팅 같은 거 안 해?’

  ‘소개팅?’

  ‘응.’

  ‘아, 안 해, 그런 거. 그냥 빵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겨서 온 거뿐이야.’

  ‘정말? 나돈데.’

  ‘너도?’

 

  ‘응. 난 빵도 빵이지만 초콜릿에 흥미가 많거든. 어떻게 하면 초코 빵을 만들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초콜릿에 어울리는 빵을 만들 수 있을 지 매일 연구해. 물론 부모님한텐 비밀이지만.’

 

  ‘왜 비밀이야?’

  ‘부모님이 별로 안 좋아하시거든.’

 

 

  율은 옅은 미소를 띠며 자신의 품에 한 아름 안겨있는 빵을 내려다보았다. 대근은 뭔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아 기뻤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율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빵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

  ‘글쎄? 난 초콜릿 만드는 방법밖에 몰라. 빵이라면 스승님께서 더 잘 아실지도.’

  ‘스승님?’

 

 

  율은 빵집 운영 시간이 마감될 때, 대근을 빵집 내부에 있는 조리실로 끌어들였다. 대근은 처음 보는 오븐과 각종 기구들에 푹 빠져 그것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 때, 대근의 뒤에 중년의 남자와 남학생이 섰다.

 

 

  ‘아하하, 이렇게 관심을 가져다주는 아이가 또 나타나다니.’

 

 

  대근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황급히 뒤돌아 허리 숙여 인사한 뒤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스승과 외삼촌과 대근의 첫 만남이었다. 대근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스승에게 얘기했고, 스승은 시간 날 때마다 놀러온다면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 이후로 대근은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허락 맡은 뒤에 스승에게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매일 실수투성이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엉망인 대근과 달리 외삼촌은 뭐든 간에 탁월해서 쉽게 해냈다. 거기다가 외삼촌과 율은 유난히 친해보였다.

 

  스승은 대근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종종 외삼촌과 비교하는 말을 했다. 대근은 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외삼촌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서 더 열심히 했다. 성공한 나날보다 실패한 나날이 수없이 많았지만 여우곡절 끝에 중학교 졸업 때까지 버텨왔다. 대근은 어느 정도 해내는 실력이었고, 외삼촌은 월등히 잘했다. 율도 나름의 틀이 잡혔지만, 율은 고등학교 졸업하기 바로 직전에 부모님에게 들켜서 중간에 그만두었다. 대근은 오늘도 여전히 비워져 있는 율의 자리를 보다가 스승에게 제안을 받았다.

 

 

  ‘기간은 한정해두지 않았지만 다음 달부터 몇 년간 프랑스로 유학 갈 생각이야. 대근아, 좀 더 빵에 대해 배우고 싶니?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둘래?’

 

 

  대근은 빵에 대한 흥미가 많았긴 하지만 율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에 줄곧 힘들어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현재 율이 없는 자리에서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배울지, 얼마나 더 다치게 되고 험한 나날일 많을지에 대해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외삼촌은 그런 대근을 잘 알기 때문에, 대근과 단 둘이서 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너 율이 좋아하지?’

  ‘네?’

  ‘에이, 좋아하잖아.’

  ‘그, 뭐……, 뭐…….’

 

  ‘율이는 3년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어.’

  ‘어떻게요?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율이는 내 여동생이거든.’

  ‘아……, 네? 율이가 형의 친 여동생?’

 

 

  외삼촌은 대근의 격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다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 안이 그, 뭐라 해야 할까. 남자를 중요시 여기고 여자를 조금 천하게 보는? 하여튼 남녀가 불공평한 게 있어.’

  ‘어라, 우리 친척도 그런데.’

 

  ‘그 어느 집안도 대부분 이럴 거야. 여자가 뭘 해. 뭘 하겠다는 거야. 할 수 없어. 사회에 나가 쉽게 성공할 수 있어? 시집이나 가. 좋은 남자나 어디 구슬려 가란 말이야. 여자는 가정을 이끌어갈 힘이 없어.’

 

 

  대근은 점점 일그러져 가는 외삼촌의 표정과 말을 들으며 점점 눈을 크게 떴다.

 

 

  ‘율이는 그런 말을 매일 들으며 살아. 그렇지만 이번에 성적 우수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3년 뒤에 프랑스로 갈 거야. 그러니까 네가 프랑스에 간다면 다시 만날 수 있어. 그 3년 간 잘 버텨볼래?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둘래?’

 

  ‘하, 할래요!’

  ‘그래. 우리 열심히 하자.’

 

 

  대근은 전혀 다른 환경과 좀 더 다양화되고 복잡한 제과제빵 수업을 3년간 기를 쓰며 이겨냈다. 단지 3년간 버티면 율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그렇게 대근은 눈에 띄게 성장했고, 이윽고 율과 3년 만의 재회를 할 수 있었다. 율은 다행이도 부모에게 쇼콜라티에가 되는 것을 허락 맡았고, 그들 셋은 스승의 밑에서 정식적으로 다시 한 번 배우게 되었다.

 

  분명 더 오래 배운 건 율보다 대근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근의 실력이 현저하게 남은 둘보다 떨어졌다. 율과 외삼촌은 원래 재능이 탁월했던 것이고, 대근은 노력을 해야 겨우 되었던 실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근의 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근이 바라보는 시선, 대근이 생각하는 그 순간들은 항상 외삼촌과 율이 있었기에, 그들의 기준과 자신의 기준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가르침을 받는 곳엔 스승의 친구가 있었는데, 박하게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성격이라 대근이 감당하긴 더더욱 힘들었다.

 

 

  ‘실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 네 한계의 기준점은 네 노력으로 만드는 거야! 노력하겠다는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못 한다고!’

 

 

  각종 대회가 있으면 대부분의 우승은 외삼촌이 휩쓸어 갔는데, 어쩌다 한 번씩 율이 우승을 거머쥘 때도 있었다. 대근이 그들보다 수백 번을 더 연습하고 밤을 지새웠는데도 매번 그들의 그림자에 머무르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늘 스승의 관심사엔 외삼촌과 율이 꿰차고 있었다. 아니, 대근은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번 인터뷰 널 꼭 초청하고 싶다고 하더라.’

 

 

  잠결에 언뜻 들었던 외삼촌과 스승의 대화였다. 화목하게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던 그들, 대근이 잠드는 사이에 몰래 나누었던 그들의 담소. 그것은 그 날 하루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번 대회에 우승했으니까 2연승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번 해볼래?’

  ‘아, 이거 꼭 나가봐. 응. 그래, 그거랑 해서 같이 나가면 더 좋지. 분명 여러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그들의 얘기를 엿들을 때마다 종종 스승의 친구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실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

  ‘고작 이것 밖에 못 해? 왜 그렇게 마음을 약하게 먹어? 정말 뭣도 안 되는 놈이 되고 싶어?’

 

  ‘네 형이랑 율이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고작 이 정도로 해서 세계에 주최되는 대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 같아?’

 

 

  대근은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대회의 결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도 안 된다면 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렇게 각오를 다짐하며 준비하던 서른 살의 어느 날, 율이 사고를 당했다. 친구의 가게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율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그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가 생겼다. 율은 강압적으로 쇼콜라티에가 되는 것을 막는 부모와, 장애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고, 결국 쇼콜라티에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대근은 그나마 비슷했던 자신의 처지의 율이 포기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대회에 대한 각오를 다짐했다. 그리고 그랑프리의 결과가 나오는 날, 외삼촌의 우승으로 대근의 노력과 반비례하는 결과가 나왔다.

 

 

  ‘할 수 없어. 넌 못 해. 여자가 뭘 하겠다는 거야?’

 

 

  율이 느꼈던 여자로서의 한계.

 

 

  ‘고작 이 정도로 해서 세계에 주최되는 대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 같아?’

 

 

  대근에겐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던 최선의 노력에 비해, 처참한 결과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 율과 대근은 결국 서로의 거울이 되어, 대등한 고통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유일하게 쥐고 있던 것들을 손 놓았다. 율은 사고로 인해 그럴 수 없다고 쳐도, 대근만큼은 포기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던 스승과 외삼촌은 대근을 설득했지만, 대근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단호했다.

 

 

  ‘안 될 놈은 될 수 없어요. 이제 제가 발을 디뎌놓을 틈 따윈 없어요.’

  ‘너 빵 만드는 거 좋아하잖아.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야?’

  ‘제가 이 일에 대해 쉽게 생각했던 적이 있는 걸로 보여요?’

  ‘대근아…….’

 

  ‘이 일을 좋아했던 게 제 일에 분수에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안 될 놈은 안 되니까요. 부럽네요, 형은. 뭐든 실력이 받쳐주니까. 그러니까 스승님이 형을 더 아껴하는 거잖아요? 저 따윈 관심도 없겠죠. 뭘 해도 안 되는 놈이니까.’

 

  ‘대근아, 뭔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

  ‘그 오해도 제 탓인가요?’

  ‘뭐?’

  ‘됐어요. 이제 이 얘기 그만해요. 오늘로부터 파티시에 일은 접을 거니까.’

 

 

  그렇게 율과 대근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스승과 외삼촌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근은 줄곧 스승과 외삼촌을 피했지만, 어쩌다가 율과 결혼하게 되면서, 외삼촌과는 형과 동생이 아닌 매제와 형님이라는 묘한 명칭으로 사이가 더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종종 친척끼리 모임이 생겨 외삼촌과 율 그리고 대근이 모이는 날이 있었는데, 간혹 스승과 마주하는 날이 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대근은 그들의 사이에 끼지 않게 멀어졌다가, 다시 뒤돌아보면 그들은 항상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죽게 된 후의 먼 훗날, 네가 이끌고 싶어 하는 곳을 만들길 바라마. 비록 넌 내 아들이 아니지만, 넌 내가 제일 아끼는 제자니까 모든 걸 너한테 맡기마.’

 

 

  “스승님은 항상 형님 편이었습니다. 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정말 스승님께서 네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않습니까? 스승님께서는 형님을 제일 아끼는 제자라고 했고, 스승님의 모든 희망을 형님께 걸었으니까요.”

  “넌 정말 네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하는구나.”

 

 

  외삼촌은 대근이 들었던 대화의 일부분을 다시 떠올렸다.

 

 

  ‘아, 이거 꼭 나가봐.’

  ‘아, 이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이 대회라면 대근이도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그래, 그거랑 해서 대근이랑 같이 나가면 더 좋지.’

 

  ‘여긴 대회 하기 전에 참가자들과 친목 파티를 여니까 어느 정도 대화를 하다보면 대근이도 조금은 긴장을 풀 수 있을 거예요.’

  ‘분명 여러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항상 대근이를 이끌어주려 노력해보지만 막상 난 그럴 능력이 없으니, 그나마 나이대가 비슷한 네가 대근이를 많이 이끌어줘.’

 

  ‘네. 열심히 해서 대근이랑 꼭 3위 안에 들게요.’

  ‘그래. 대근이가 너랑 같이 있어서 뭘 못 느끼겠지만 대근이 실력도 엄청나니까.’

 

 

  “네가 듣고 싶은 말만 듣지 마. 일부러 귀를 막으려고도 하지 말고. 좀 더 자세히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 해결되는 문제잖아. 왜 겁먹고 있었어? 스승님과 너랑 나는 더더욱 각별한 사이잖아. 그런 사이에 왜 겁을 먹어.”

 

 

  “로제와인 뷔페든 뭐든 간에 다 형님을 위해 힘을 쓰신 거잖아요, 스승님은.”

 

  “원래 지금의 뷔페는 너랑 같이 운영하려고 했어. 내가 형이니까 널 더 이끌어주라고 하셔서, 스승님이 이 곳, 이 방에서 돌아가시는 직전까지 줄곧 너만 걱정했다고! 내가 봤을 땐 윤아보다 네가 더 응석 부리고 있어, 지금. 이제 그만 삐딱하게 쳐다 봐!”

 

 

  외삼촌은 씩씩거리다가 이내 숨을 몰아쉬고 안정을 되찾았다. 대근은 외삼촌이 오랜만에 흥분했던 모습을 보는지라,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외삼촌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봤을 때의 스승님은 항상 너만 걱정했어. 그냥 내가 단지 너랑 율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그 노릇을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좀 더 밝은 곳으로 이끌어주기 위해서, 스승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줄곧 우승이란 우승의 자리는 다 노려왔었어. 그런데도 나와 스승님의 노력이 부족했던 건지, 율이는 사고로 지금까지 전전긍긍하고 있고, 넌 너대로 단단히 삐뚤어졌어. 그래, 알아. 너희들은 너희들대로 많이 힘들었다는 걸. 그런데 너희는 우리를 진정으로 생각해본 적 있니? 너희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우리들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대근은 순간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외삼촌의 모습을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승님은 가뜩이나 연세가 있으신데다가, 워낙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셔서 결국 이곳으로 요양 오셨어. 내가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너한테 갔지만 그럴 때마다 넌 피했어. 스승님을 돌봐줄 수 있는 건 너랑 난데, 네가 안 되니까 나라도 지금 당장 돌봐드려야 할 것 같아서 한 달에 몇 번씩 찾아갔었어. 처음엔 나도 네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너무 화가 났어. 이렇게 매번 찾아갈 때마다 야위어 가는 스승님을 나 혼자 지켜야한다는 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결국 이 방에서 돌아가셨을 때 생각했지. 아, 차라리 어쩌면 날마다 야위어 가시는 스승의 모습을 나 혼자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아무리 너라고 해도 스승님의 제자였으니까 어느 정도 고통스러울 걸 생각하니까, 이미 내가 그걸 겪었으니까, 당분간 너한테 말하는 걸 더 늦춰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한참 뒤에 말했어. 로제와인 호텔이 개업하기 며칠 전에. 그런데 내가 널 생각해서 늦게 말했던 게 오히려 너한테 상처를 줄줄은 몰랐어. 미안해.”

 

 

  ‘내가 죽고 난 뒤에 대근이와 오해가 풀리게 된다면, 꼭 편지를 전해줘. 못 다한 말, 꼭 눈을 마주보면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난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지라 버겁구나. 대근이를, 율이를 잘 부탁한다.’

 

 

  “그냥 스승님을 좀 더 편하게 가시게 하지 못한 것도, 널 지켜주지 못하고, 율이도, 윤아도……, 미안.”

 

 

  외삼촌의 얼굴을 가린 손 틈 사이로 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대근은 외삼촌이 자신의 앞에 눈물이 흘린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없었다. 몇 십 년을 함께 해왔는데도 이러한 적이 전혀 없었다. 대근은 점점 빠르게 요동쳐오는 심장소리를 느끼며 천천히, 그리고 크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방안의 냄새, 나무의 냄새가 나는 듯 하면서도 눅눅한 냄새엔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의 스승의 냄새라곤 맡을 수 없었다. 스승의 마음을 너무나도 뒤늦게 알아서, 어쩌면 정말 그리웠을 스승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러한 곳을 불과 로제와인이 개업하기 전, 그러니까 약 4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홀로 드나들었을 외삼촌의 뒷모습을 생각하자니, 대근은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혼자서 죽음을 지켜보는 느낌은 어떨까. 그 느낌은 대근이 종잡을 수도 없는 거대한 느낌이라 가히 생각해보았다. 대근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대근아, 너한테 보여줄 게 있는데 지금 당장 난 밖으로 못 나가겠다. 방 밖으로 나가면 선생님께서 밖에 서 있으실 거야. 그 분을 따라가.”

 

 

  대근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외삼촌의 말대로 노인이 서 있었다. 대근은 조심스럽게 노인의 뒤를 따랐다. 그 때,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던 율이 대근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율이 대근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을 때, 누군가 율을 불렀다.

 

 

  노인이 도착한 곳은 민박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팬트리였다. 노인은 자물쇠로 팬트리 안을 연 다음, 대근에게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일렀다. 대근은 조심스럽게 팬트리의 천장에 매달린 전구 스위치를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근은 그 광경을 보자니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팬트리는 바닥을 제외한 다섯 면이 레시피가 적힌 종이와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져있었다. 대근은 사진들과 종이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진은 전부 스승과 대근, 율과 외삼촌이 전부였고, 레시피는 여태껏 대근에게 가르쳐주었던 레시피로 가득했다. 노인은 팬트리의 문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 앞에 보이는 서랍 있지? 그거 열어봐.”

 

 

  팬트리 안에 있는 물건이라곤 서랍이 전부였는데, 대근은 그 서랍의 칸을 열었다. 첫 번째 서랍엔 스승이 한 때 입었던 파티쉐 제복이, 두 번째 칸에는 대근과 외삼촌과 율이 타왔던 상이, 세 번째 칸엔 편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대근은 서랍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지를 한 장씩 넘길수록 대근의 손이 점차 떨려왔다. 이윽고 대근은 편지의 맨 마지막 부분을 읽고 눈물을 참는 듯 끅, 끅 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도 사과하마. 내가 그 때 당시 널 너무 박하게 뭐라 한 것 같구나. 나름의 애정이라 납시고 했던 게 지금까지도 이렇게 틀어있을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대근아.”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다가 다시 뜨며 말했다. 대근은 노인의 말을 들으며 편지의 맨 마지막 문단을 다시금 떠올렸다.

 

 

  “네 스승은 여기에 머무를 동안 네 얘기를 많이 하곤 했지. 네 스승은 단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대근아, 난 단 한 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대근은 쥐고 있던 편지가 구겨질 만큼 손에 힘을 주었다.

 

 

 -

 

 

  율은 자신의 부름에 뒤로 돌아보았다. 단비도 마당에 서 있었는데, 율은 여태껏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안 잤어?”

  “스승님, 잠 안 오시죠?”

  “응?”

  “저도 잠이 안 와서요.”

 

 

  단비는 율의 옆에 서서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이었다.

 

 

  “여긴 서울과 다르게 참 조용하네요. 시끄러운 차 소리나 사람들 술주정하는 소리도 없고요.”

  “그러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네.”

  “스승님, 이제 초콜릿 영영 안 만드실 거예요?”

  “글쎄.”

 

 

  단비는 유독 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개수를 셌는데, 그 별들이 너무 많은 바람에 세는 것을 포기했다.

 

 

  “감히 제자인 주제에 이런 말을 하기엔 건방질 수도 있겠지만요……, 스승님. 전 스승님께서 왜 일어서려고 노력하지 않은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뭐?”

 

  “저는 스승님과 윤아처럼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아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없어요. 물론 많이 힘들겠지만, 윤아처럼 시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시대는 많이 바뀌었어요. 부모님께서 여자의 직업을 한정 짓는 시기도 지났잖아요. 스승님께서도 이젠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상태니까요. 스승님을 건드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 당장 한계에 부딪혔을 때의 고통보다, 미래에 성공하고 나서의 기쁨이 더 크다면 그걸로 되지 않나요?”

 

 

  율은 정면에 있던 화단을 보다가 단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스승님께서 화재 사고 이후로 몇 십 년 뒤에 두바이 쇼콜라티에가 되었을 시절, 그 때의 전, 스승님을 보자마자 절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했죠. 분명 그만둔다고 하셨던 스승님이 다시 일어나시니까 정말 멋져 보였거든요. 몇 개월 동안은 잘 받아주시나 싶더니, 더 이상 가르쳐주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죠. 실망도 실망이지만 슬펐던 감정이 더 컸어요. 정말 친애하는 스승님이 저보다 먼저 좋아하는 일을 포기했을 때, 한순간 보금자리를 잃는 느낌이랄까. 그냥 외로웠던 것 같아요. 스승님께서 초콜릿을 만들 때의 환한 미소도 그립고, 스승님께서 시범으로 매번 저한테 만들어주셨던 초콜릿의 맛도 그립고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단비와 율의 코끝이 동시에 찡해졌다.

 

 

  “윤아가 스승님과 같은 일을 무려 두 번 씩이나 당하고 난 뒤 스승님께선 윤아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고쳐 잡았다고 하셨죠?”

  “응.”

 

  “그렇담 더 이상 피하려 하지 말고 윤아를 계속 지켜봐주세요. 따지고 보면 윤아는 스승님의 과거와 같잖아요. 과거를 마냥 피하거나 지우지 마세요. 과거를 보고, 과거를 이해하고, 과거를 기억해야,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스승님께서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윤아는 좀 더 용기를 얻고 쉽게 고칠 수 있을 거예요. 스승님은 윤아의 엄마니까, 딸을 가장 이해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엄마니까요.”

 

 

  단비는 그제야 외삼촌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이곳에 부른 이유를.

 

 

  “다시……, 초콜릿 만들어 주실 거죠?”

 

 

  율은 단비를 꼭 안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내 제자가 너라서 다행이야.”

 

 

  단비 역시 율을 꼭 안았다.

 

 

  “스승님의 딸이니까, 작고 여린 것 같으면서도 이 중에서 제일 강한 아이니까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제 남은 건 걔네들인가……. 대현이는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자고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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