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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75 대체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작성일 : 16-11-28 16:54     조회 : 729     추천 : 0     분량 : 8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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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로제와인 조리실 내부에서 도마 위에 칼을 내리치는 소리가, 잼이 끓는 소리가, 볼과 거품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친목 파티 이후로 첫 영업이었다. 이 자리엔 윤아가 없었다. 중요한 인력도 몇몇 빠졌기에 더더욱 분주했다. 대현은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자 점심과 휴식 시간을 거르고 마감할 때까지 일했다. 그런 대현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마감 청소는 더 이상 파티쉐들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외삼촌이 청소 업체를 고용했기 때문이었다.

 

 

  ‘매일이 고비군.’

 

 

  윤아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 이 집엔 윤아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초췌한 자신의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이 시간이라면 나도 일할 시간인데.”

 

 

  ‘나는 뭐하고 있는 걸까.’

 

 

  천천히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향하다가 멈췄다. 자꾸만 눈길이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의 바닥을 밟고, 익숙하고도 포근한 흙과 나무 냄새를 맡고, 매일을 지새우며 노력했던 흔적을 남긴 책들을 보고, 소파에 누워 그 질감이 살결에 스치는 느꼈다.

 

 

  ‘한 번 더 도전하기엔 내가 너무 지치고 너덜너덜 해졌어. 그렇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난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야.’

 

 

  윤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새 자고 있었던 거였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남자의 손. 딱 봐도 대현인 걸 알았다.

 

 

  “밥부터 먹어.”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안 먹은 거 아니까 먹어.”

 

 

  마침 윤아의 배에서 배고픔을 알리는 소리가 요동쳤다. 윤아가 민망한 듯 숟가락을 들었다. 요즘 들어 대현에게 힘이 없어보였다. 윤아가 다 먹고는 대현에게 물었다.

 

 

  “피곤하지? 안아도 돼?”

  “안아줘.”

 

 

  윤아가 대현의 품에 들어가 매달리듯 안아주었다. 대현은 윤아가 뒤로 쓰러지지 않게 두 팔로 윤아의 등을 감싸듯이 안았다.

 

 

  "피곤해."

 

 

  약간은 어리광이 섞인 대현의 말이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대현이 윤아의 목에 코와 입술을 갖다 댔다. 그리고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윤아의 몸이 움찔거렸다.

 

 

  “대, 대현아?”

 

 

  대현은 대답이 없었다. 그 상태로 졸고 있었다. 윤아는 대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대현을 겨우 깨워 방에 데려다주었다. 대현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 때 속이 더부룩하다는 것을 느꼈다. 혓바닥에 위액이 감돌았다. 윤아는 화장실로 뛰어가 속을 게워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지러움증을 진정시켰다. 계속 굶다가 간만에 밥을 먹으니 소화하지 못한 것이었다. 윤아는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 매번 피곤해하는 대현을 보았다. 업무는 업무대로 늘었고 로제와인은 5위에서 순위가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대현의 고민만큼이나 다크 서클도 늘어나는 것 같았다. 윤아는 쭈뼛쭈뼛 부엌 주위를 맴돌았다. 업소용 오븐부터 시작하지 말고 가정용 오븐을 보는 연습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오븐의 예열을 맞추었다. 환한 주황빛이 돌았다.

 

 

  ‘무섭지 않아. 이건 그냥 불이야. 무섭지 않아.’

 

 

  우선 제일 간단한 에그타르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윤아는 체에 쳐낸 가루 재료들과 버터를 손으로 비볐다. 가루 가운데에 홈을 파서 찬물을 넣은 다음 손바닥으로 밀면서 반죽했다. 반죽할수록 비릿한 밀가루 냄새가 윤아의 코를 자극했다. 윤아는 코를 훌쩍이고는, 반죽한 덩어리들을 휴지(중간 발효)시켰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윤아는 틀에 맞게 반죽을 끼운 뒤 그것들을 오븐 팬 위에 올렸다. 그것을 들고 오븐 앞에 쭈그려 앉았다.

 

 

  ‘아, 난 또 여기 왔기에 완치한 줄 알았어.’

  ‘그러게. 뭐 하러 여기 왔데?’

 

 

  한편 대현과 규동이 집으로 돌아왔다.

 

 

  “고맙다. 오늘 네 덕에 조금은 살았다.

  “총주방장이랑 부총주방장 할 일이 그리 많은 줄 몰랐다.”

  “해보니 할 만 하든?”

  “아니. 사람이 할 짓은 아닌 것 같은데.”

 

 

  대현은 부엌에 불이 켜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윤아가 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시간에 1층은 불이 꺼지기 마련이었다.

 

 

  “여기서 뭐해?”

 

 

  부엌의 바닥은 엉망진창이었다. 윤아가 오븐 안에 넣는 것을 실패하고 바닥에 떨어뜨려 몇 번 반죽을 했지만 전혀 발전이 없었다. 긴장이 풀렸던 것인지 오븐 팬을 쥔 채로 주저앉았다. 대현과 규동이 윤아의 곁으로 달려갔다.

 

 

  “와아, 대현이는 항상 타이밍 맞게 오네.”

  “괜찮은 거야?”

  “혼자 숫자 셀 때 대현이가 왔어.”

 

 

  윤아가 대현의 무릎에 이마를 대었다.

 

 

  “내가 전에 어떻게 이걸 극복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 너희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런데 몸이 맘만큼 따라주지 않아. 대현아.”

 

  “응.”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윤아는 더 이상 빵을 만드는 것에 도전하지 않았다. 어쩌면 피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제발 문 좀 열어봐. 밥 먹으러 내려 와.”

  “별 생각 없어. 배 안 고파. 나중에 배고프면 먹을게.”

  “너 지금 그 말만 해도 며칠 째인 줄 알아? 밥 계속 안 먹어서 병원에 실려 갈 일 있어? 빨리 나와.”

  “그냥 나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둬.”

 

 

  대현은 한숨을 쉬며 옆에 있던 규동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규동 역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렇게 계속 밥을 거르다간 큰 일 나겠다.”

  “그럼 어째. 문 열 생각을 전혀 안 하는데. 마스터 말도 안 듣고, 내 말도 안 듣고. 강제로 문을 따서라도 밥을 먹여야지.”

 

  “당장 음식을 준다고 해도 밥을 먹이면 안 돼.”

  “왜?”

  “며칠 동안 공복인 상태에서 갑자기 밥을 먹으면 분명 속을 게워낼 거야. 이럴 땐 죽을 먹여줘야 해. 일단 마치는 길에 죽이라도 사오자.”

 

 

  대현은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틈만 나면 윤아 생각에 시계를 빈번히 보았다. 그러다 한 번, 상대편 조리대에서 연습하고 있던 효린과 눈이 마주쳤다. 대현은 괜히 민망했던 것인지 콧잔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효린은 대현을 안타깝게 쳐다보다가 마저 할 일을 했다.

 

  파티쉐들이 집에 갈 준비를 했다. 효린은 설거지를 끝마치고 나서 물에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그리고는 대현에게 다가가 윤아의 상태를 물었다.

 

 

  “윤아는 좀 어때?”

  “이젠 의욕도 없어 보이는 것 같던데.”

 

 

  효린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한 윤아를 걱정하며 또 한 번 물었다.

 

 

  “밥은? 밥은 꼬박 챙겨 먹는 거야? 우리 아름 유치원에 있을 때도 불면증에, 밥도 제대로 안 먹던데…….”

 

 

  대현은 한숨을 푹 쉬며 벗었던 장갑을 싱크대에 걸치고는, 장갑 위에다 손을 짚었다.

 

 

  “나도 그것 때문에 미치겠다.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참……, 내 속을 잘도 썩여놓는다.”

  “그럼 죽이라도 먹고는 있어?”

 

 

  대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효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예 안 먹어?”

  “나도 노력 중이긴 한데 전혀 봐줄 생각을 하지 않네.”

  “그럼 네가 직접 죽 만들어줘.”

  “내가?”

  “응. 네가 남자친구잖아.”

 

 

  대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 요리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럼 내가 가르쳐 줄까?”

 

 

  대현은 효린의 말에 솔깃해 목을 뒤로 뺐다.

 

 

  “네가?”

 

 

  효린은 대현의 애매모호한 반응에 겁을 먹었는지 점차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응.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대현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대현과 효린은 명수와 규동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그러라며 허락을 맡았다. 효린은 대현을 이끌고 근처 시장에 갔다. 수산 코너에 도착하자 효린은 그 앞에 멈춰서 생선들을 쭉 훑어보았다. 대현은 매일 달콤한 디저트 냄새만 맡다가 생선 냄새를 맡으니, 비위가 상했는지 콧잔등을 찡그렸다. 효린이 그런 대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손가락으로 전복을 가리켰다.

 

 

  “전복죽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똑같이 집에서 만들어줘. 할 수 있지?”

 

 

  대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효린은 영 불안했던 것인지 숨을 크게 내쉬고는, 가게 주인에게 전복을 달라 말했다. 대현은 효린 대신에 전복이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계산했다. 그들은 다시 학원으로 돌아왔다. 효린은 대현이 잘 터득할 수 있게 핵심을 짚어주며 전복 손질을 시범 보여주었다. 대현은 군말 한 번 없이 신중하게 효린이 가르쳐주는 것을 따라했다. 효린은 자신의 냄비에 담긴 전복죽에 전복 껍데기를 넣었다.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이, 이렇게 하면 전복죽을 더 맛있게 끓일 수 있어.”

 

 

  대현은 의심의 눈초리로 효린을 노려보다가 자신의 냄비에 전복 껍데기를 넣은 뒤 뚜껑을 덮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효린은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효린은 숟가락으로 자신이 만든 전복죽을 살짝만 떠서 대현에게 넘겼다. 대현은 입으로 몇 번 불어 식히다가 먹었다. 대현은 효린을 정말 의외라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너 명수 아플 때 이거 만들어줬냐?”

  “응. 한 두 번 정도.”

  “확실히 애인이 요리를 잘하면 감동 쉽게 받겠네.”

  “정말?”

 

 

  대현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효린은 이렇게 쉽게 인정을 하며 칭찬해주는 대현을 처음 보았다. 나름대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옅게 미소를 띠었다.

 

 

  “나도 이렇게 만들어주면 임윤아가 좋아해주려나…….”

  “너도 분명 기억할 거야. 리하가 무단으로 출근 안 했을 적에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파티쉐들이 리하를 안 좋게 봤을 때 말이야.”

 

 

  ‘나 하나라도 끝까지 리하를 좋게 바라봐준다면, 적어도 사람이라면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진심과 정성만 있다면 누구나.’

 

 

  “본인이 그렇게 말했는데, 그럼 남자친구인 네가 윤아한테 진심을 다해준다면 윤아도 분명 알아주지 않을까?”

 

 

  대현은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웃어버렸다.

 

 

  “너랑 나랑 이렇게 단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 일도 생기다니, 신기하네.”

  “그러게.”

 

 

  효린은 대현이 웃자, 저도 모르게 같이 웃었다. 윤아는 알지 못했다. 윤아가 했던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바꾸어 줬는지를.

 

  대현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시계를 보고는 황급히 전복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규동이 부엌에서 뭐하냐고 물었다. 대현은 말 시키지 말라며 엄청난 집중을 발휘해 전복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규동은 그때서야 대현의 행동을 눈치 챘는지 한껏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복죽을 만들라고 했더니 누룽지 만드는 거 아냐? 다 태워먹고 막.”

  “지금 날 무시해? 야, 완벽하게 배우고 왔으니까 나 건들지 마라.”

  “너 분명 태워먹는다에 한 표.”

 

 

  대현은 전복을 손질하다가 말고 칼끝을 도마에 꽂은 다음 규동을 노려보았다. 규동은 갑자기 할 일이 생긴 것 같다며 부엌에서 나갔다. 대현은 효린이 가르쳐주었던 레시피를 어렴풋이 기억해내며 전복죽을 완성시켰다. 대현은 잔뜩 기대에 부푼 상태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 숟가락으로 조금만 덜어내 맛을 보았다.

 

 

  “에이 씨.”

 

 

  그저 욕 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현은 무엇을 잘못 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문득 전복 껍데기를 넣으면 더 맛있어 진다는 효린의 말이 떠올랐다. 대현은 말끔하게 씻은 전복 껍데기를 냄비 안에 넣고 한동안 더 끓였다. 얼마간 끓였을 쯤, 대현은 익숙하면서도 불안한 냄새를 맡고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김이 대현의 얼굴 근처로 마구 퍼졌다. 대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김을 투시해 냄비 안을 보았다. 전복죽이 타서 냄비 밑바닥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대현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며 효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대현은 차마 말하기가 민망했던 것인지 한참을 얼버무렸다.

 

 

  -여보세요?

  “저…….”

  -응?

  “전복죽 만드는 법 좀…….”

 

 

  대현은 윤아의 방을 노크했다. 대현의 한 손엔 쟁반이 들려있었는데, 쟁반 위에는 갓 정상적으로 끓인 전복죽이 놓여있었다.

 

 

  “임윤아, 늦었지만 밥 먹자.”

 

 

  방 안에서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현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항상 잠겨 있던 문이 열리자, 대현은 얼떨결에 놀란 표정을 짓고서 윤아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윤아는 침대에 등지고 누워 있었다. 대현은 쟁반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윤아의 침대에 반쯤 걸터앉았다.

 

 

  “자?”

 

 

  이번에도 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현은 침대에 손을 짚고 윤아를 건너다보았다. 윤아는 눈을 뜨고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대현의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만 돌려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대현은 윤아의 야윈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윤아의 이마에 손을 얹혔다. 다행이도 열은 없었다.

 

 

  “밥 먹자.”

  “나중에.”

  “나 너 만들려고 전복죽 세 번 태웠다. 이번에도 안 먹으면 나 삐……, 화낸다?”

 

 

  그제서야 윤아는 겨우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대현은 책상 위에 놓아뒀던 전복죽을 윤아에게 건넸다. 윤아는 숟가락으로 몇 번 전복죽을 휘젓는가 싶더니 다시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직접 만들었어?”

 

 

  대현은 괜히 심술이 났는지, 윤아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전복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하도 밥을 안 먹으니 속상해서 만들었다 왜. 그릇 바닥 싹싹 긁어서 먹어.”

 

 

  윤아는 김이 피어나는 전복죽을 한동안 보다가 한 숟가락씩 떠먹기 시작했다. 분명 대현은 요리를 할 줄 몰랐고, 실제로 그것을 지켜봐왔던 적이 있었다. 대현이 만들었다고 치기엔 너무나 맛있었다. 윤아는 대현이 전복죽을 사 왔는데 괜히 먹게 만들기 위해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자신을 생각해서 사 왔으니 성의는 받아야 할 것 같아 꾸역꾸역 전부 먹었다. 대현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윤아가 먹는 모습은 물론이고 윤아의 얼굴 자체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대현은 윤아의 빈 그릇을 받아주며, 침대를 짚고 있는 윤아의 손 위에 자신의 다른 쪽 손을 포갰다.

 

 

  “너 나더러 나약한 모습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이럴 거야?”

  “미안해…….”

 

  “뭐든 간에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뭐가 문제야? 혼자서 이렇게 끙끙 앓으면 대체 남자친구는 왜 있는 건데?”

 

 

  대현은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윤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윤아의 잡은 손을 자신에게 끌어 볼에다 연속으로 두 번 뽀뽀를 해주었다. 윤아는 놀란 표정으로 대현을 쳐다보았다. 대현은 괜히 민망했던 것인지 자신의 손에 들린 빈 그릇을 보았다. 대현의 귀가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이어서 볼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윤아는 대현의 행동에 눈치 채며 옅게 미소를 띠었다.

 

 

  “이거 애교라고 한 거야?”

  “여자도 남자가 애교 부리는 거 좋아한다고……, 김명수가!”

 

 

  대현은 너무나 민망했던 나머지 소리치고는 씩씩댔다. 윤아는 대현을 안으며 얼굴을 대현의 품에 묻었다. 그리고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너희들이 학원에서 연습할 동안 외삼촌이 내 방에 들어오셨어. 잔뜩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며 말하셨어.”

 

 

  ‘힘들지?’

 

 

  윤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나가서 뛰 놀기라도 해야지……. 윤아야, 이렇게 계속 있어봤자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어. 햇빛도 쬐고 시원한 바람도 맞아야지. 환기도 안 한 곳에서 혼자 끙끙 앓으면 더 힘들기만 해.’

 

 

  외삼촌은 힘겹게 침을 삼키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네 의사를 물어볼게. 무서워도 고치고 싶어? 아니면 그냥 이 상태로 포기할래?’

 

 

  윤아는 한동안 대답하기를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윤아는 외삼촌의 그 어떠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만 말했다.

 

 

  ‘포기하기는 싫은데 무서워서…….’

 

 

  ‘확실하게 마음을 정해줘, 윤아야. 내가 이번에 알아봐둔 데가 있어. 그곳엔 대현이 할아버지의 친구, 그러니까 외삼촌의 스승의 친구가 계셔. 그 분께서 이번에 널 제대로 고쳐주실 수도 있어. 지금보다 더 힘들겠지만 막상 하다보면 지금껏 했던 것보다 마음이 편안할지도 몰라. 정말 하고 싶다면 말해줘. 꽤 오랫동안 느긋하게 머물 생각이니까 뭐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만들고 싶어. 하고 싶어. 뭐라도 좋으니까 해보고 싶어.”

  “그럼 된 거네.”

  “그런데 난…….”

 

  “그럼 된 거잖아. 못 해, 할 수 없어, 힘들어. 이 생각만 하는 것 보다 하고 싶다만 생각하면 좀 더 다가가기 쉽잖아. 지금은 나도 있고, 널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친구들도 많잖아. 거기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라면 나도 언뜻 들어본 적이 있어. 전문적인 심리치료사는 아닌데 꽤나 고민을 들어주면서 해결해준 적이 많다고. 그 분이라면 확실히 신뢰가 있는 사람이야. 넌 이 상태로 쭉 머물고 싶어?”

 

  “싫어. 그건 싫어…….”

 

  “어렵게 생각하지 마. 넌 항상 뭐든 어렵게 생각해. 그냥 이끌리는 대로 해. 하고 싶으면 뭐든 간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는 거야. 만약 해보고 힘들면 포기하지 말고 쉬었다가 하면 되잖아.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해. 한동안 내가 생각이 어려서 너를 좀 더 조급하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몰라. 너도 너무 급하게 이뤄내려고 하지 않아도 돼. 이번 그랑프리도, 조금 순위가 뒤쳐진 로제와인도 올해가 끝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있을 것들이니까.”

 

 

  윤아는 대현의 품에서 벗어나 대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 지금 외삼촌한테 말하고 올래.”

 

 

  윤아는 황급히 외삼촌의 서재로 들어갔다. 외삼촌이 안경을 벗고 윤아를 보았다.

 

 

  “외삼촌, 아직 안 늦었죠?”

 

 

  외삼촌이 넌지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안 늦었죠……?”

 

 

  외삼촌은 미리 예매 해놓은 기차 티켓을 꺼내며 허공에 흔들었다. 윤아의 표정이 차차 밝아졌다.

 

 

  “나랑 대현이 친구들도 같이 갈 생각이야. 물론 우리는 평일 밖에 못 가고 주말이 되면 돌아와야 하지만 말이야. 언제 출발할까?”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이번 돌아오는 월요일에 당장 출발해요!”

 

 

  기차 안. 대현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믿기지 않은 듯 찬찬히 살펴보았다. 기차 안엔 외삼촌과 규동, 윤아와 자신을 포함한 것은 물론이고, 윤아의 부모인 대근과 율도 함께 탔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앞 상대편 의자에 앉아 자신을 향해 웃는 단비, 마지막으로…….

 

 

  ‘쟨 대체 같이 여행하는 이유가 뭔데. 그리고 저 녀석은 왜 또…….’

 

 

  단비의 옆에 앉아 창밖만 쳐다보는 지욱이 있었다. 대현은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생각했다.

 

 

  ‘대체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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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84 너 인마, 울고 있잖아 2016 / 12 / 3 575 0 7044   
83 83 내 아가들 찾으러 왔다 2016 / 12 / 3 677 0 8743   
82 82 거짓말, 이거 진짜야? 2016 / 12 / 3 447 0 6869   
81 81 자네, 보고 있나? 바람은 이루어졌지 2016 / 12 / 3 447 0 6157   
80 80 왜 16명이야, 19명이지 2016 / 12 / 3 522 0 6970   
79 79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2016 / 12 / 3 750 0 9801   
78 78 너니까 가능한 거야 2016 / 11 / 29 839 0 8572   
77 77 단 한 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2016 / 11 / 29 789 0 11402   
76 76 오늘 밤, 방으로 들어와 2016 / 11 / 29 601 0 7223   
75 75 대체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2016 / 11 / 28 730 0 8898   
74 74 우린 단 한 번도 널 2016 / 11 / 28 666 0 11084   
73 73 당신의 모든 것 내가 빼앗아 2016 / 11 / 27 797 0 11412   
72 72 세 번의 변화 2016 / 11 / 26 520 0 10595   
71 71 넌 정리 했어? 2016 / 11 / 26 559 0 8272   
70 70 좋아, 좋아해 2016 / 11 / 25 477 0 9770   
69 69 기회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 2016 / 11 / 25 567 0 10534   
68 68 그 누나는 행복한 사람이네 2016 / 11 / 24 540 0 6712   
67 67 부디 이 아이만큼은 2016 / 11 / 24 843 0 8561   
66 66 너의 한계 2016 / 11 / 24 706 0 8925   
65 65 신은 나의 위치를 실감나게 해 2016 / 11 / 23 854 0 8859   
64 64 이게 무슨 일이야 2016 / 11 / 23 445 0 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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