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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74 우린 단 한 번도 널
작성일 : 16-11-28 16:47     조회 : 666     추천 : 0     분량 : 1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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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너 할 수 있겠어?”

  “네가 불안하다면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할까?”

 

 

  리하는 윤아의 질문에 이마를 짚었다.

 

 

  “누가 언제 다른 사람으로 바꿔 달래? 너 괜찮겠냐고, 너.”

 

 

  윤아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을 거쳤다. 실전에서 직접 맞부딪혀보면 연습 때보다 좀 더 경각심을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윤아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하는 윤아가 하고 싶어서 한다지만,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숨겨진 룰을 설명하자면.”

 

 

  주훤이 다시금 마이크를 쥐었다.

 

 

  “주제는 슈입니다. 5분의 토론 후에 5분마다 페어 체인지를 합니다.”

  “저 또라이가…….”

 

 

  리하가 말을 얼버무렸다.

 

 

  “페어, 말 그대로 5분마다 한 명씩 번갈아서 하던 행동을 이어 가야 합니다. 먼저 5분의 토론 후 종이에다 재료를 적으시면 옷을 갈아입으실 동안 준비해두겠습니다.”

 

 

  5분의 카운터가 시작되었다. 윤아와 리하는 흔히 겪어본 경연이기에 손쉽게 결정하는 반면 다른 팀은 쩔쩔 매기도 했다.

 

 

  “빠진 거 없지?”

  “응. 완벽해.”

 

 

  리하는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게 다듬은 다음, 입술에 립글로스를 발랐다. 그 찰나에 현미가 옆에서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리하는 립글로스의 뚜껑을 닫다 말고 거울을 통해 현미를 빤히 쳐다보았다. 거의 노려보는 식이였다. 현미는 옷매무새를 제대로 손보지도 못한 채 급히 자리를 피하기 위해 대기실 문 쪽으로 향했다.

 

 

  “야, 문현미.”

 

 

  현미는 몸을 움찔거리며 제자리에 섰다. 차마 돌아볼 용기가 없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리하는 한숨을 쉬며 립글로스의 뚜껑을 닫았다. 답답한 마음에 현미를 불렀지만, 막상 부르고 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것도 아니다.”

 

 

  현미가 대기실 문을 열자 윤아가 문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미가 다시금 몸을 흠칫거리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곤 스쳐지나가며 윤아의 야윈 얼굴을 스윽 훑어보았다. 윤아가 화장대 앞에 서 있는 리하를 불렀다.

 

 

  “재료 준비 다 했으니까 오래.”

  “모두 오셨죠? 그럼 지금 각 팀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른쪽은 윤아였다. 윤아가 간절히 두 손을 모았다. 경합이 시작되었다. 윤아는 슈를 굽기 전에 빠나드 과정을 거쳐야했기 때문에 믹서기에 반죽으로 들어갈 재료들을 넣고 작동시켰다. 그 후에 딸기 맛 크렘 레제르(커스터드 크림)을 만들기 위해 딸기 맛 우유를 가열했다. 거기다가 각종 재료를 넣어 섞고는 냄비에 담아 끓였다. 삑. 5분이 경과되었단 소리였다. 리하와 윤아가 뛰어서 자리를 바꿨다. 리하는 우선 믹서기부터 껐다. 커스터드 크림이 타지 않도록 약불로 조절하고 다른 재료를 넣고 저었다. 그 후에 슈 반죽을 짤주머니에 넣어 짜기 시작했다. 거의 다 짤 때 즘 또 다시 삑, 소리가 울렸다. 윤아가 마지막 하나를 마무리하고 건조시킬 동안에 바로 리하가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재료들을 꺼내 양을 측정했다. 삑.

 

 

  “아니, 그거 하지 말고 다른 거 하라고!”

  “아, 기다려보라고. 이것도 빨리 해야 하는 거라고.”

  “빨리, 빨리. 좀 더 서둘러!”

 

 

  그야 말로 난장판이었다. 윤아와 리하 정도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는 것이라고. 팀워크가 제대로 맞지 않아 순서가 뒤틀리거나 똑같은 거 것을 반복하기도 했다. 보통 그랑프리에선 10분에 한 번씩 바뀌었기 때문에 그의 반인 5분이란 충분히 소란스러워질 만도 했다. 리하가 건조시킨 슈를 확인할 때였다. 삑.

 

 

  “아, 미친.”

 

 

  건조가 완벽하게 된 상태였다. 지금 당장 넣어야만이 5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리하가 자신의 위치로 뛰어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윤아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1초 시간 끌면 안 돼.’

 

 

  윤아가 장갑을 끼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질끔 눈을 감은 상태로 오븐의 문을 열었다. 훗훗한 공기가 윤아의 방심한 팔목을 감쌌다. 순식간에 윤아가 눈을 부릅뜨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치 오븐에 기가 빨려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윤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아, 로제와인의 임윤아 부총주방장님 뭐하는 건가요?”

 

 

  주훤이 마이크를 켜고 윤아에게 다가갔다. 윤아의 귀에는 사람들의 말이 복도에서 들리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누군가 훅, 윤아의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들었다. 주훤은 걱정해주는 척 윤아의 겁에 질린 표정을 감상하고 싶었다. 오븐의 문을 닫고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윤아씨 괜찮아요?”

 

 

  주훤의 미소를 머금던 입가가 삽시간에 굳어졌다. 단순히 공포의 단계를 넘어섰다. 자신을 혐오하는 표정이었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왜 하필 내가 이래야 하냐고!’

 

 

  순간적으로 주훤의 뇌리에 자신의 과거가 스쳐갔다. 윤아가 숨을 헐떡이며 눈물을 흘렸다. 리하와 대현이 급하게 윤아를 향해 뛰어왔다.

 

 

  “빨리 윤아를 데리고 밖에 나가 진정시켜.”

  “너는?”

  “여기서 기권하는 게 더 이상해. 나 혼자서라도 마무리 지을 거야.”

  “부탁한다.”

 

 

  대현이 윤아를 업고 파티장 밖으로 벗어났다.

 

 

  “아, 난 또 여기 왔기에 완치한 줄 알았어.”

  “그러게. 뭐 하러 여기 왔데?”

 

 

  리하가 오븐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주훤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이 개자식아, 마무리 똑바로 해라.”

 

 

  주훤의 관자놀이가 쑤셔왔다.

 

 

  ‘동질감이라도 느낀 건가. 기분이 더럽군.’

 

 

  “윤아 씨가 몸이 아픈 관계로 로제와인 팀은 권리하씨가 혼자 마저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룰이 변경된 점 죄송합니다.”

  “이번 경합 로제와인 망했네.”

 

 

  리하가 욱한 마음에 숙덕거리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뭘 망해? 아직 40분 남았거든!”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두 명이서 시간을 쪼개 혼잡한 틈을 만들 바에 혼자서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윤아가 슈가 담긴 오븐 팬을 쥐고 넘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굽기만 하면 되었다.

 

 

  윤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왼손으로 대현의 옷자락을 잡았다.

 

 

  “미안. 미안해 정말……. 나 못 하겠어.”

 

 

  대현은 윤아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윤아에겐 오븐이 있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 휴식이 필요했다. 외삼촌이 뒤늦게 따라왔다. 윤아의 눈물자국을 더듬더니 윤아를 세게 안았다.

 

  리하는 크림을 만들고 데커레이션 초콜릿을 만들 때까지 윤아의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윤아를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섭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무서워지게 되는데 왜 그것을 빨리 극복하지 못할까 리하는 윤아의 고통을 가히 짐작할 수 없었다.

 

 

  ‘맘이 급할수록 손도 안 따라주네.’

 

 

  불과 1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이 다급해졌다. 앞으로 10초가 남았고 3개를 덜 한 상황이었다. 5초에서 2개, 2초에서 1개, 마지막 한 개를 꽂는 순간 시간이 종료되었다.

 

 

  “네. 파티쉐분들은 하던 일을 멈춰주세요.”

 

 

  리하는 겨우 완성한 슈 아라크렘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주훤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보시면 네 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귀빈 여러분은 각각의 디저트를 드신 다음, 마음에 들었던 디저트에 스티커를 붙이시면 됩니다. 단, 자신의 소속 디저트엔 표시하면 안 됩니다.”

 

 

  파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각자 맛을 본 다음, 네 칸으로 나눠진 종이에다 각자 원하는 곳에 스티커를 붙였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 표가 더 많이 나왔는지 구경하느라 바빴다. 리하는 경합에 나간 파티쉐이기 때문에 투표권은 없지만, 다른 소속의 파티쉐들의 실력을 보기 위해 조금씩 먹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리 앤 베리가 그랜드 파티스보다 맛이 좋았다.

 

 

  “투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리하는 주훤의 말에 접시를 내려놓고 투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랜드 파티스의 표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메리 앤 베리가 그 뒤를 이었다. 리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꼴등인 체리쉬를 완벽하게 이긴 것도 아니었다. 그랜드 파티스에 있던 로제와인의 몇몇 파티쉐들이 리하를 보며 저들끼리 귓속말을 했다.

 

 

  “이 결과 짠 게 분명해.”

  “당연하지. 그랜드 파티스가 주최한 파티인데, 잘 보이려면 그 쪽에 표를 넣을 수밖에 없잖아.”

 

  “어휴, 대현이가 윤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 같던데……. 윤아 괜찮을까?” “그러게. 오죽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그렇지만 이제 우린 신경 쓸 자격도 없는 걸.”

 

 

  한순간에 그들의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규동은 리하의 뒤에 서서 투표 결과를 보았다. 규동은 자신의 소속에 표를 줄 수 없다는 룰 때문에 리하에게 표를 주지 못 했지만, 단언컨대 리하의 디저트가 제일 좋았다. 규동은 조심스럽게 리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리하는 그 손을 치며 투표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애당초 랜덤으로 뽑는다는 건 없었다. 정해진 파티쉐의 이름 쪽지만 상자 안에 넣었던 것이었다. 아무 쪽지도 상자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리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떨리는 목소리는 울먹여서 떨리는 게 아니라, 처음 느껴보는 수치심에 화가 나는 것이리라.

 

 

  “처음부터 이건 말도 안 되는 이벤트였어. 대현이 어디 있어?”

  “몰라. 파티장 밖으로 나간다고만 들었어.”

 

 

  리하는 규동의 말을 끝으로 황급히 파티장 밖으로 나갔다.

  윤아가 계단에 앉아 있었고 대현이 윤아를 마주 올려보았다.

 

 

  “내 얼굴 봐봐.”

 

 

  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아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오븐만 못 보는 거잖아. 다른 건 다 잘할 수 있잖아.”

  “오븐이 제일 중요한데 난 중요한 걸 못해.”

  “안 된다, 미안하다, 못 한다 이 소리만 자꾸 하니까 그렇잖아.”

 

 

  대현은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윤아의 몸이 움찔거렸다. 윤아는 울컥한 나머지 소리쳤다.

 

 

  “내가 뭐……!”

 

 

  ‘나도 안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나도……, 나도 하고 싶단 말이야.’

 

 

  그러다 얼마 말하지도 못하고 멈췄다. 윤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대현은 미안하다는 듯 그래, 라고 말로 다독여주었다. 지금 당장 주훤을 찾아가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기엔 윤아 혼자 이 계단에 남아 있을 것이다. 외삼촌도 윤아의 상태를 보고는 급히 위로 올라갔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대현이 계단을 향해 올려다보았을 때, 계단 맨 위에 리하와 규동의 모습이 보였다. 대현이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들이 다가오자 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스쳐 지나려 할 때였다. 리하가 대현의 손목을 잡았다.

 

 

  “나주훤 그 놈 애당초 짜고 친 거야.”

  “뭐?”

  “투표용지엔 로제와인의 다른 사람 이름 따위 없었어. 나랑 임윤아를 노리고 한 거라고. 우릴 제대로 망신시키려고.”

 

 

  차마 대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해서 리하가 말했다.

 

 

  “자부심 가지는 건 아닌데, 저 이벤트에서 내가 만든 슈 아라크렘이 제일 나았어. 심지어 메리 앤 베리가 그랜드 파티스보다 더 좋았다고. 그런데 결과는 그랜드 파티스가 받게 됐어.”

 

 

  ‘만약 한 사람만 때릴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난 누굴 때릴까.

 

 ’

  윤아를 이용했을 거란 리하의 말에 대현이 무심코 생각한 말이었다.

 

 

  “우리 며칠 전에 그랜드 파티스에 초대받은 적 있지? 우리 TOP 애들의 디저트가 전부 거기 있었잖아. 그건 분명 로제와인 파티쉐들이 그런 게 아냐. 걔네들은 그렇게 간 큰 짓은 못해. 그렇다고 나주훤이 알아? 아니잖아. 도지욱이야. 그 자식이 우리 아이디어 다 빼앗아 갔다고. 내가 조리실에 들어갔을 땐 다음 달 신 메뉴를 선정하기 위해 로제와인 디저트들이 그대로 있었어. 그 중에 3개가 네 거였어.”

 

  “그랬단……, 거지?”

 

 

  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은 주먹을 쥐고 파티장에 들어가자마자 주훤과 지욱을 찾았다. 주훤과 지욱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파티장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대현을 보자마자 저들끼리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대현은 차마 그들을 노려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기실 근처 복도에서 주훤과 지욱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앞엔 외삼촌이 있었고,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외삼촌은 대현과 마주했기 때문에, 대현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주훤과 지욱은 대현이 뒤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너희 설마 이걸 노리고 우릴 여기에 부른 거니?”

 

 

  주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외삼촌을 똑바로 응시한 채 씩 웃기만 했다. 지욱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떨어뜨렸다.

 

 

  “주훤이 너 진짜…….” “이번 친목 파티는 단순한 유희를 즐기려고 한 게 아니라,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거잖아요? 이렇게 해야 경각심을 가지고 순위 하나라도 올라가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잖아요. 아, 지렁이는 로제와인이 아니라 저였죠? 미천해빠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쓰레기.”

 

 

  지욱과 외삼촌은 눈을 크게 뜨고서 태연하게 웃고 있는 주훤을 바라봤다. 외삼촌은 할 말을 잃었던 것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축하해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로제와인에 또 나타났다는 걸 오늘이 돼서야 알 수 있게 됐네요.”

  “나주훤!”

 

 

  주훤의 이름을 부른 건 외삼촌이 아니었다. 외삼촌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대현은 주훤의 이름을 외치며, 주훤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주훤이 짧게 욕을 하며 뒤로 돌아보았는데, 대현은 주훤의 멱살을 잡고 다시 한 번 주훤의 얼굴을 때렸다.

 

 

  “쓰레기 같은 놈. 임윤아가 뭐가 부족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애 취급을 해?”

 

 

  주훤은 소리 내어 웃으며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넘쳐나서 탈이지. 너무 호구같이 착해서 로제와인의 정보 다 나한테 줬잖아? 사람을 너무 신뢰한다는 게 문제지, 암.”

  “그럼 네가 우리들 디저트를 그랜드 파티스의 메뉴로 올려놨냐?”

 

 

  주훤은 능청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대현은 주훤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지욱을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주훤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분명 주훤을 보고 말했지만, 그 말은 지욱을 겨냥하는 말이기도 했다.

 

 

  “더 이상 빼앗지 마. 더는 건들지 말라고! 로제와인이든, 동료든, 디저트든, 임윤아든! 한 번 더 뒤에서 수작 부리면 진짜 가만 안 둬.”

 

 

  대현은 이번엔 지욱을 노려보았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넌 정말 친구 잘못 사귀었다.”

 

 

  대현은 지욱을 봐서라도 한 번 더 주훤을 때리고 싶었지만, 윤아에게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발걸음을 돌렸다. 주훤은 여전히 바닥에 앉은 상태로 능청스럽게 웃었다.

 

 

 

  “미안해……, 나 너무 한심하지?”

  “아냐. 절대 아냐. 최선을 다 했잖아.”

  “으응, 아니. 난 아무것도 못 했어.”

 

 

  명수와 효린, 규동 그리고 리하가 윤아를 다독여주었지만, 윤아의 기분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효린은 울상을 지으며 쩔쩔 맸고, 명수 역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리하가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짚었다. 오늘 하루 종일 아니, 로제와인의 화재 사건 이후로 되는 것이 전혀 없었다.

 

 

  “지금쯤이면 파티 마칠 시간이 다 되었을 거야. 오늘은 먼저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마스터한테 말해둘게.”

 

 

  명수는 힘겹게 윤아를 일으켜 세웠다. 윤아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하던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난 너무 한심해. 이번 경합의 결과도 모두 내 탓이야. 리하가 정말 잘해줬는데……, 난 로제와인의 수치야.”

 

 

  윤아는 감정이 북받쳤는지 그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 때, 윤아의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지질하게 이렇게 축 쳐져 있으래?”

 

 

  윤아는 뒤로 돌아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윤아는 천천히 대현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대현은 성큼 계단에서 내려가 윤아를 세게 안아주었다. 윤아는 대현의 옷자락을 양손으로 움켜쥐며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최대한 깜빡거리지 않았다. 대현은 윤아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은 윤아의 허리를 꼭 감쌌다.

 

 

  “대현이한테도 미안해. 이런 한심한 여자친구 두게 해서.”

  “우리는 단 한 번도 널 한심하게 생각한 적 없어. 그니까 약하게 마음먹으면 안 돼. 로제와인에게서나 나한테서나 넌 소중해.”

 

 

  ‘넌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

 

 

  다음 날이 되었다. 윤아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방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대현은 바로 옆방인 윤아의 방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노크를 했다.

 

 

  “12시야. 점심 먹으러 나와.”

  “배 안 고파.”

  “말이 되는 소릴 해.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그냥 나 혼자 있게 내버려 둬.”

 

 

  대현은 한숨을 쉬며 부엌으로 내려갔다. 외삼촌과 규동이 대현을 쳐다보았는데, 대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대현은 간단하게 밥을 먹은 뒤에 방으로 올라갔다. 때마침 부재중으로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휴대폰 화면엔 단비의 부재중에 세 통이 있다고 떴다. 대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 화면을 껐는데, 다시 한 번 전화가 오는 바람에 화면이 켜졌다. 잔뜩 짜증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 자꾸, 왜, 왜 전화하는데?”

  -이제 받으면 어떡해! 오늘 저녁에 시간 있지? 미스로드에 출연해줘.

  “싫어.”

  -어차피 오늘 로제와인 휴일 아냐?

 

 

  대현은 단비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으므로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왜 출연해야 하는데?”

  -이제 며칠 뒤라면 추석이잖아. 추석 연휴 때부터 첫 회가 올라왔던 것도 그렇고 기념 특집으로 유명 파티쉐들끼리 디저트 만드는 방법 가르쳐 주는 거나 하여튼 그런 거 촬영할 거야. 네가 필요해.

 

  “어제 파티 갔다 와서 피곤해.”

  -너희들 커플 티 내가 샀다?

  “거기 촬영지 어딘데?”

 

 

  촬영장은 조리대의 불판과 조명등의 열기를 받아 후끈거렸다. 단비는 촬영 테이프를 잠시 갈 동안 대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너 그런 표정으로 계속 촬영하다간 시청률 떨어지겠다.”

  “시끄러.”

  “2부 때라도 환하게 웃어봐.”

  “도지욱이 여기에 온다는 건 왜 말 안 했냐?”

  “아예 말 안 한 건 아닌데. 유명 파티쉐들끼리 디저트 만드는 방법 가르쳐 주는 촬영한다고 했잖아.”

 

 

  대현은 잠자코 단비를 노려보았다. 단비가 대현에게 팔짱을 끼며 혀 짧은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대현은 기겁을 하며 단비의 손을 뿌리쳤다.

 

 

  “왜 이래, 징그럽게?”

  “에이, 우리 대현이 너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한테 이렇게 달라붙었어.”

  “제발 그 우리라고 말하지 말라니까. 임윤아가 그걸로 오해했다고. 자꾸 날 섞지 마.”

 

 

  대현은 단비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섰다. 단비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대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 자꾸 하나밖에 없는 사촌 누나한테 이럴 거야?”

 

 

  그렇다. 단비는 대현의 외사촌 누나이자, 지욱의 외사촌 누나이기도 했다.

 

 

  “너 어릴 적엔 이 누나 그렇게도 좋다고 따라다녔잖아. 내가 어디 가면 우리 누나, 우리 누나 어디 있어? 이렇게 귀엽게 말했는데. 지금은 귀염성 하나도 없어.”

 

  “제발 어릴 적 얘기 그만 좀 꺼내. 창피하니까.”

  “흐응. 뭐 까칠한 면도 나쁘진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적에 누나, 우리 누나, 라고 불러줬던 게 더 좋은데.”

 

 

  대현은 단비를 피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비가 대현의 뒤를 따라오자, 대현은 좀 더 빠른 속도로 발걸음을 놀렸다. 그러다 앞에 있던 지욱과 부딪혀 우뚝 멈춰 섰다. 대현은 한동안 지욱을 세차게 노려보았고, 단비는 대현의 옆에 섰다. 지욱이 대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대현이 물었다.

 

 

  “왜 오늘 유자 마카롱을 안 만들었지?”

  “뭐가?”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디저트를 선보여주는 촬영을 할 때 왜 유자 마카롱을 안 만들었냐고.”

 

 

  지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비가 능청스럽게 대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당연히 그 유자 마카롱은 대현이가 만든 거니까 그렇지. 적어도 양심이 있으면 진짜 원조 앞에서 원조 흉내를 내면 안 되잖아?”

 

 

  대현과 지욱은 눈을 크게 뜨고 단비를 쳐다보았다. 지욱이 내세우는 유자 마카롱, 그러니까 대현이 로제와인에서 만든 유자 마카롱은 본디 대현의 아이디어였다. 대현이 아주 어릴 적에 윤아를 위해 고안한 아이디어였는데, 그것을 지욱이 가져갔었다. 그 때문에 대현의 할아버지는 물론 외삼촌과 윤아, 파티쉐 유명인들, 해외 잡지사는 지욱이 특허 낸 마카롱이라고 알고 있다. 원래 대현이 거라고 아는 것은 지욱과 대현, 둘 뿐이었다. 대현이 단비에게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어릴 적에 네 방에 종종 놀러 가면, 유자 마카롱을 어떻게 만들면 되는지 노트에 그려져 있기에 알았지.”

 

 

  단비는 팔짱을 끼며 지욱을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며칠 전에 너희들 몰래 완전무장하고 그랜드 파티스에 간 적 있었거든? 얼마나 맛있기에 인기가 있는지 궁금해서 가봤어. 근데 로제와인의 디저트랑 비슷한 느낌이 나던데 단순히 내 기분 탓이 아닐 거라고 믿어.”

  “누난 2년 동안 로제와인에 가본 적이 없잖아. 분위기가 비슷한지 어떻게 알아?”

 

 

  지욱의 말에 단비는 한 쪽 눈썹을 찡그렸다.

 

 

  “가본 적은 없어도 내가 로제와인과 촬영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야. 거기다가 대현이를 내가 몇 년이나 봐왔는데 대현이 디저트 하나 못 알아보겠어? 거기다가 윤아만 생각할 수 있는, 섬세한 맛들이 그대로 너희 디저트 뷔페에 있었어. 캐럿 케이크를 먹자말자 알았지. 지욱이 너 말이야.”

 

 

  지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윤아 실력 보니까 어때? 놀랍지?”

 

 

  지욱은 가만히 있었다. 딱히 부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너희는 윤아를 건들면 안 돼. 우리랑 다르게 정말 순수하거든. 그런 순수한 애한테 때가 끼면 내가 더 짜증날 것 같아.”

 

 

  단비는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서 대현의 등을 떠밀었다.

 

 

  “넌 코디에게 가서 수정 메이크업이나 받아. 하도 인상 써서 주름 잡히겠다.”

 

 

  단비가 대현을 보내고 지욱을 더 빤히 주시했다.

 

 

  “너도 너지만, 나주훤한테 가서 전해. 그랑프리는 네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한 마디로 너무 깐족대지 말라는 거지.”

 

 

  단비가 기지개를 키며 대현의 옆에 섰다.

 

 

  “아아, 이번 그랑프리 대회 일반인으로 나도 참가해야겠다.”

  “네가 갑자기 왜?”

 

 

  대현이 물었다. 단비가 이번엔 손을 자신의 뒤통수에 올려 깍지를 꼈다.

 

 

  “그냥 이번 그랑프리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자꾸 마스터한테 시건방진 행동하면 내가 무소속 일반인으로 참가해서 파티스 소속 다 떨어뜨려야지. 그 전에 윤아가 하루 빨리 컨디션 회복해서 나 대신에 다 떨어뜨려주면 더 고맙고. 뭐, 이러나저러나 매한가지로 나주훤의 자존심에 금 가는 건 똑같겠지만.’

 

 

  “촬영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단비는 스태프의 말에 뒤돌아 걸으며 저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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