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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73 당신의 모든 것 내가 빼앗아
작성일 : 16-11-27 15:37     조회 : 798     추천 : 0     분량 : 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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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저트 뷔페의 구석에 떡하니 빙수 뷔페 코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윤아는 저번에 검토했던 빙수 뷔페의 계획안과 눈앞에 놓인 재료들을 매치해보았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모든 재료들과 세부 사항들이 그랜드 파티스에 있었다. 더구나 로제와인이 자랑하는 마카롱은 물론 월말 평가 TOP으로 선정되었던 몇몇의 디저트도 있었다. 윤아는 설마, 하는 마음에 로제와인의 디저트라고 의심되는 디저트들을 접시에 담아 먹었다. 맛과 향, 들어가는 재료 모두 윤아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았다. 리하는 어이없다는 듯 허, 하고 외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대편 구석에 조리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그곳에 대현과 규동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파티쉐들 앞에 서 있었다. 리하는 파티쉐들을 보기 위해 미간까지 찌푸렸지만, 대부분이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대현의 주위로 명수와 효린이 모였다. 리하는 윤아의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인 다음 대현을 가리켰다. 윤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너희들이 그랬냐?”

  “아니, 저, 그게…….”

  “너희들이 우리 디저트들 저기다 다 갖다놨냐고!”

  “대현아, 진정해.”

  “이규동, 넌 이 상황에 진정하라는 말이 나와? 넌 화 안 나?”

 

 

  규동은 이미 대현의 말을 듣기 훨씬 전부터 굳어있었다. 규동 역시 진정할 수 없었던 것인지 파티쉐들을 차례대로 쏘아보았다. 윤아는 대현의 옆에 서서 파티쉐들을 정면으로 보았다. 분명 로제와인의 파티쉐들인데, 옷은 그랜드 파티스의 파티쉐 제복을 입고 있었다. 윤아가 멍한 표정을 짓자, 파티쉐들은 윤아의 시선을 회피했다. 대현은 파티쉐들이 배신했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윤아는 대현의 등을 토닥이며 침착하게 물었다.

 

 

  “너희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줘.”

 

 

  불과 2주 전이었다. 파티쉐들은 대현네 파티쉐들처럼 팀을 정해 각자 다른 지역으로 가서 여행할 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첫째 날을 보냈을 때는 설렜지만 막상 둘째 날이 접어드니 생각에 잠겼다. 무려 2주간의 시간을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지에 대하여. 2주치의 월급을 아예 못 받는 것도 아니고 무료로 여행을 보내주었지만 2주간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 때 주훤이 대현과 윤아의 무리를 제외한 모든 파티쉐들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 월급을 더 올린 상태에서 여러 혜택과 더불어 바로 일자리를 주는 것을 약속했다. 그것보다 더욱 달콤했던 말은 없었을 것이었다. 로제와인은 매 달마다 월말평가로 점수를 매겼고, 자신의 실적에 따라 기본 월급에서 알파가 되었는데 그랜드 파티스에서는 월말 평가 없이 월급을 더 올려준다니, 유혹에 넘어가기엔 충분했다.

 

  각자 고민의 시간을 가진 후에 누군가는 그래도 함께한 정을 뗄 수 없다며 남는 반면, 누군가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그랜드 파티스로 옮기곤 했다. 주훤은 무려 10명의 파티쉐들을 현혹시켰다. 이 사실은 대현을 포함한 6명이 모르고 있었으며, 외삼촌은 10명이 차례대로 사퇴를 했지만 그런 이유로 사퇴한 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어떻게 3년을 함께 해온 로제와인을 위해 고작 2주를 못 참아줄 수가 있지?”

  “2주일을 물로 보지 마. 우리도 나름 사정이 있다고…….”

 

 

  대현은 그들의 말에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규동이 물었다.

 

 

  “무슨 사정인데?”

 

  “너희들은 쉽게 TOP을 하고 그만큼 가치를 사고 월급을 더 받지만 우리 같이 하위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게 아니란 말이야. 우리는 몇 개월이 되어서야 월급을 더 올리는 방법 말고는 없어. 그렇게 가고팠던 그랑프리 대회도 매번 너희들에 밀려서 나가본 적이 없단 말이야. 우리들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월말평가라지만 난 사실 그게 너무 숨통이 조여와. 여긴 그런 게 없다잖아. 얼마나 좋아? 여기 사장은 우리가 너희들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던 보석 같은 존재래. 우리들은 너희한테서는 하위층이지만 다른 곳에는 TOP을 누릴 수 있어. 그 짜릿함이 좋아.”

 

 

  대현의 말문이 막혔다. 너무 기가 막혀서 일지, 그들의 고충도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우리 노력으로 얻은 TOP야. 우리는 무슨 날로 먹은 자리인줄 알아? 너희는 너희 그대로의 가치야. 우리가 너희의 가치에 대해 논한 적 없어. 그런데 너희들의 가치가 이런 거였어? 로제와인에 있던 디저트가 그대로 여기에 있는 거. 너희들 가치를 올리더라도 이런 짓은 하지 말란 말이야.”

 

 

  리하는 효린의 생일 때처럼 예라가 지욱과 손을 잡고 뭔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하는 그들을 제쳐 두고 조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아는 그런 리하의 뒷모습을 목격하곤 조심스럽게 뒤를 밟았다. 리하가 조리실로 향하면서 귀를 기울였는데, 기존 그랜드 파티스의 파티쉐들의 목소리나 작업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조리실에 도착하니 휑하기만 했다. 아까 그들이 초대되었을 때 손님 한 명 없는 것 보아하니 그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휴일에 날 잡아 부른 것이었다. 리하는 조리실 내부를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리대 위에는 디저트 뷔페에 내놓지 않은 디저트들이 놓여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다음 달 새로운 메뉴를 두고 평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건 이규동의 미니 프로피트롤타르트(타르트 위에 슈를 가득 얹은 디저트), 이건 내 민트 초코 브라우니……, 이건 임윤아의 젤리 케이크, 이건 누구 거지?”

 

 

  리하는 돔 모양의 조각 케이크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부 로제와인의 TOP 파티쉐들의 디저트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네가 여기 안에 왜 들어왔지?”

 

 

  리하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리며 뒤로 돌아보았다. 지욱이 오븐 룸에서 나와 리하를 주시했다. 리하는 지욱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선배, 이것들이 왜 다 여기에 있죠? 그것보다 권예라는 어디 있어요?”

  “여기에 없어.”

  “거짓말 하지 마요! 여기 있는 거 다 알아요!”

 

 

  리하는 예라를 찾기 위해 락커와 팬트리를 샅샅이 뒤졌다. 지욱은 리하의 행동을 막기 위해 손목을 잡고 허공에 번쩍 들었다.

 

 

  “남의 조리실에서 무슨 짓이야.”

  “남의 조리실? 허, 선배 대체 여기 있는 이유가 뭐예요? 나 선배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일단 나가서 얘기해.”

  “이거 놔요. 여기서 얘기해요. 권예라랑 어떻게 연락이 닿았어요? 걘 지금 어디 있는데요!”

  “그건 나도 몰라. 그 날 어쩌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어.”

  “무슨 꿍꿍이에요, 당신들.”

 

 

  지욱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는데, 주훤이 오븐 룸에서 나와 지욱의 말을 가로챘다.

 

 

  “어이, 권예라 동생 씨. 아무데서나 행패 부리는 나이는 지났지 않아?”

  “당신은…….”

  “당신이라니, 섭섭할 소리. 이래봬도 나도 나름 로제와인의 선배야.”

 

  “당신들, 권예라랑 어떤 사이인 거예요?”

  “지욱이가 말해줬잖아. 우린 걔랑 아무 사이도 아냐. 걔 행방은 우리도 모른다고.”

 

  “그럼 이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무슨 억하심정으로 로제와인의 디저트를 그대로 모방했냐고요.”

  “재수 없잖아, 로제와인.”

  “뭐요?”

 

  “그냥 예전부터 밟아주고 싶었어. 항상 사람 대하는 꼴을 보면 역겨워서 치가 떨렸거든.”

  “마스터는 지금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럴 리가.”

 

 

  주훤은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조용히 넘어가줬으면 좋겠는데, 권예라 동생 씨. 안 그럼 그랜드 파티스가 이번에 주최되는 그랑프리 대회와 친목파티에서 로제와인을 먹어버리는 수가 있어. 그 두 가지 올해는 그랜드가 주최하는 거 알고 있지?”

  “허, 너 같음 인간들이 배신 때렸는데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선배라 부르기엔 수치스럽다.”

 

 

  리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주훤에게 반말을 했다. 주훤은 리하의 말이 상당히 거슬렸던 건지 리하의 멱살을 잡았다. 지욱이 주훤의 행동이 놀라 주훤의 멱살 쥔 손목을 잡았다. 그 찰나 윤아가 조리실의 투명한 문을 박차고 조리실에 들어왔다. 윤아는 주훤과 지욱의 실체를 깨달아 충격을 받은 만큼 잔뜩 열이 오른 상태였다. 지욱이 당황한 표정으로 윤아에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윤아가 한 걸음 더 일찍 그들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주훤의 손을 있는 힘껏 떨쳐내 리하 앞에 섰다. 리하가 살짝 겁에 질려보였다.

 

 

  “여자 한 명 두고 뭐하는 짓이에요?”

  “원래 말 안 듣는 사람이란 교육을 받아야지.”

  “전부터 느꼈지만 인성이 아주 쓰레기군요.”

 

 

  윤아는 슬쩍 조리대 위에 놓인 디저트들을 보았다. 자신의 디저트는 물론 대현의 디저트만 해도 3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스터디 그룹에서 대현이 열심히 디자인을 했던 돔형의 미니 케이크였다. 디자인이 조금 달랐을 뿐, 디저트에 쓰이는 과일, 그리고 그에 조화를 맞춘 색상의 그 어느 부분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건 대현이가 그랑프리를 위해 생각했던…….’

 

 

  돌연히 윤아의 뇌리에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지욱이 특허 받은 유자 마카롱도 지욱이 훔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말이다. 윤아는 부르르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내가 인성이 쓰레기? 네가 뭔데 감히 내 인성을 논해?”

 

 

  주훤이 윤아의 어깨를 밀쳤다. 바로 뒤에 리하가 있었기에 있는 힘껏 버티고는 주훤의 넥타이를 세게 휘어잡고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윤아의 과격한 행동에 일순간 주훤이 당황하였다.

 

 

  “당신, 우리 로제와인을 건들지 마! 이런 추잡한 짓 당하더라도 우린 다시 제자리를 찾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다시 일어난다고? 지금 당장 SA급 파티쉐 10명의 일손을 어떻게 채울 건데? 것보다 부총주방장이라는 기집이 오븐만 보면 덜덜 떤다면서?”

  “야, 나주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지욱이 주훤의 어깨를 잡았다. 주훤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쪽 일에 신경 끄시고 당신 정신이나 살피세요.”

 

 

  순간적이었다. 리하가 윤아의 어깨를 잡고 뒤로 끄집어내며 주훤의 얼굴에다가 돔형 케이크를 던지다시피 짓이겼다.

 

 

  “거지같은 놈. 뚫린 입 하나 막아주지.”

 

 

  “나를 욕하는 것도 용서할 수 없고 로제와인을 건드는 건 더 용서 못해. 내 남자친구 속상하게 만드는 짓도 언젠가 되갚아 줄 거야. 나 지금 이렇지만 반드시 극복해서 당신이 누리려는 모든 거 내가 빼앗아가겠어.”

 

 

  리하는 접시를 그 즉시 손 놓았다.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깨진 접시 조각들을 사뿐히 즈려 밟고 말했다.

 

 

  “이게 네 멘탈.”

 

 

  리하가 윤아의 손을 잡고 조리실 문으로 향했다. 그 순간에 지욱과 윤아의 눈이 몇 초간 마주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지욱이었다. 수많은 감정들과 시간들이 윤아의 뇌리에 스쳤다. 그 무수한 감정들이 모아 하나의 단어를 형용시키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망. 윤아는 눈을 감으며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고, 조리실 밖으로 완전히 나갔을 때에 눈을 떴다.

 

 

  “더 이상 여기 볼 일도 없는 것 같아. 우리 이만 나가자.”

 

 

  윤아는 전 로제와인의 파티쉐였던 사람들을 지나치며 말했다. 대현이 잔뜩 화가 난 윤아를 불렀지만, 윤아는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대현이 윤아를 따라잡아 윤아의 손을 잡은 뒤, 자신의 쪽으로 윤아의 몸을 돌렸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제발 부탁이야. 난 이곳에 있기 싫어.”

 

 

  윤아는 그랜드 파티스의 제복을 입은 파티쉐들을 흘깃 쳐다보곤 밖으로 나갔다. 대현과 규동은 물론이고 명수와 효린도 윤아의 뒤를 이었다. 대현이 다급하게 발걸음을 놀려 리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리하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에 대며 쉿, 이라고 입모양을 만들었다. 대현은 한숨을 푹 쉬며 걷는 속도를 늦췄다. 윤아는 우뚝 멈춰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놓인 처지 잘 알겠어. 저런 그랜드 파티스에 밀리다니 이건 자존심 상하잖아.”

 

 

  윤아의 독기 찬 모습은 모두가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벙 쪄 윤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오늘 공예품으로 내놓을 거 아이디어 무조건 완성하고 감독은 내가 해. 그리고 인원 부족한 만큼 다른 파티쉐들 알아볼게. 빵은 하루 전날에 미리 만들어서 후숙해도 맛있으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자. 내가 오븐은 당장 못 만져도 데커레이션이나 배합은 할 수 있으니까.”

 

 

  로제와인 학원에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머리를 맞대며 출품작을 고안했다.

 

 

  “그럼 저번에 하자던 설탕공예로 하고 디자인은 어떻게 할까? 큰 주제가 있어야 그거에 맞게 표현할 거 아냐.”

  “일단 설탕공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광택이야. 광택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주제가 필요해.”

  “투영함이라고 하면 자연물이 어떨까? 바다와 꽃으로.”

  “바다의 이미지가 광택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어떤 바다로 만들 건데?”

 

  “일단 기둥으로 세울만한 건 큰 물살을 휘감는 파도야. 거기다가 칙칙한 색의 어류보다는 색감이 눈에 튀거나 푸른 파도와 어울릴만한 파스텔 톤의 어류로 그 주위를 장식하는 거지. 어류의 유연함으로 약동감을 표현해내는 게 이 작품의 포인트라고 생각해.”

 

 

  윤아의 열띤 아이디어에 모두가 끄덕였다. 그렇다면 꽃은 어떠한 꽃으로 하냐고 물었다.

 

 

  “장미는 너무 기초적이고 식상하지 않아?”

 

  “이건 우리의 친목파티 이후로도 그랑프리 대회에 장식품으로 내놓기도 하잖아. 해외나 빅데이터의 영상에도 많이 올라올 거니까. 그러니 우리나라를 표현해내는 꽃으로 이목을 집중시켜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

 

 

  규동이 대답하고 리하가 덧붙여 말했다.

 

 

  “그럼 무궁화랑 소나무네. 이왕 우리나라 표현하는 거면 우리나라 국기도 내다 꽂아버리지 그래?”

  “대단한 자국앤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자신의 나라를 더 뽐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거 아냐. 이 작품은 소나무를 지지대로 삼는 거야. 이 작품의 포인트는 아주 세심한 소나무의 솔잎. 밤송이의 가시 같이 보이는 솔잎이 날카로워 보이겠지만 그만큼 에메랄드빛으로 강인하게 표현하는 거야. 그리고 무궁화의 줄기가 넝쿨처럼 소나무의 기둥을 감싸 안으며 만개한 모습을 띄우는 거야. 한 가지 색상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무궁화도 색깔이 천차만별이니 적당히 조화를 해보고 가장 알맞다고 생각하는 꽃잎을 사용하는 거야.”

 

  “그런데 그것만 하기에는 뭔가 수수하지 않아?”

 

 

  효린이 리하의 아이디어에 태클 걸었다. 묘하게 그들의 신경전이 있었다.

 

 

  “수수한 것도 멋이야.”

  “그야 그렇긴 한데, 좀 더 임팩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늘에 조금 큰 태양을 만들고 그것을 둘러싸는 새가 어때?”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조가 없잖아.”

 

 

  이번엔 리하가 효린의 아이디어에 반박했다.

 

 

  “학이나 까치 아니야?”

 

 

  효린의 말에 대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 다 강력한 후보였지만 까치는 농작물에게 피해를 주고 최근 인기가 시들해진 걸로 알아. 학은 영문어로 돌리면 Japanese Crane래.”

 

  “일본?”

  “그래서 퇴짜 맞은 사건이 있었데.”

  “그런 건 어떻게 다 알아?”

 

  “디자인으로 쓰이기 위해 고려하다가 조사하게 됐지. 일단 이건 더 고려해보자고 각자. 큰 틀에서 꾸며보는 걸로.”

 

 

  그들은 디자인을 끝낸 종이를 상 위에 곱게 폈다. 그리고는 각 주제마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한 사람당 한 작품씩 건져냈다.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많아서 한 시간 동안 고심한 끝에 작품을 선정했다.

 

 

  “난 이거 당장 만들고 싶은데 다들 시간 돼?”

 

 

  윤아는 예전에 자신이 부총주방장 선발 평가전에서 이와 같은 일로 퇴짜 받은 적이 있었다. 신중하면서도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였다. 때마침 옆에 규동이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현이 얼빠진 표정으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너희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시간 돼…….”

 

 

  윤아마저 노트북 화면을 보고 할 말을 잃자, 너도나도 종합 사이트에 매겨진 순위를 보았다.

 

 

  -1위 그랜드 파티스(GRAND PARTYS)

  -2위 메리 앤 베리(MARRY & BERRY)

  -3위 체리쉬(Cherish)

  -4위 챠밍쿠잉(Charming Cooing)

  -5위 로제와인(ROSE WINE)

 

 

  “미친 거 아냐? 우리 왜 이렇게 떨어졌어?”

  “우리가 매번 1위해서 몰랐지만 우리 밑이 이만큼이나 치열했었단 거지.”

  “와, 그랜드 파티스 봐.”

 

  “매 해에 그랑프리 주최할 때마다 주관하는 뷔페가 다르잖아. 하필 올해 그랑프리가 그랜드라서 더더욱 지지율이 높은 이유도 있어.”

  “그럼 우리 이번 친목파티는 참여 못하는 거야?”

 

 

  대현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친목파티에 참여할 수 있는 뷔페에게만 알려진 비밀번호를 쳤다. 글이 열람되었다.

 

 

  “우리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순위가 하락 되었어도 우리를 포함해서 그랜드랑 메리, 체리쉬 총 네 팀이 참여된데.”

 

  “그럼 우리가 지금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잖아. 당장 만들자.”

  “약속 취소하지 뭐.”

 

 

  그들은 머리를 묶고 파티쉐 옷으로 갈아입었다. 윤아의 감독 아래 비교적 빠른 진행이 이루어졌다.

 

 

  ‘원래 친목 파티가 참여하는 소속 다 같이 준비하는 건데 이번 친목 파티마저 그랜드 파티스가 알아봐준다고 하고. 나주훤, 대체 무슨 꿍꿍이지?’

 

 

  대현의 의구심은 친목 파티 당일에 풀렸다.

 

 

 -

 

 

  지욱은 전신 거울을 바라보며 셔츠를 입고는, 윤아의 표정을 떠올렸다.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 때문에…….”

 

 

  윤아의 결정되지 않은 생각에 잠깐 동안 만난 여자들에 대해서, 어릴 적 대현의 유자 마카롱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훔쳤던 것이, 자신은 더 이상 로제와인의 파티쉐가 아니라는 생각이, 지욱의 머릿속을 마구 어지럽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얻으려고 한 건 뭘까.’

 

 

  지욱은 위에서부터 단추를 잠그며 마저 생각했다.

 

 

  ‘내가 노력해온 건 어떻게 하면 남의 아이디어를 티내지 않고 훔칠 수 있을지 고민해온 걸까, 아니면 디저트를 만들 때의 그 순간이었을까.’

 

 

  요즘 따라 낯설어 보이던 주훤을 생각했다.

 

 

  ‘뭔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껴.’

 

 

 -

 

 

  파티장에 도착했다. 외삼촌의 살이 급격하게 빠진 모양이었다. 금방이라도 과로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윤아는 물론이고 로제와인의 파티쉐들은 외삼촌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윤아는 파티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지난 번 나씨 가문의 파티장과 같은 곳이라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파티장의 곳곳엔 각 소속 파티쉐들이 만든 디저트 전시품이 놓여 있었는데 그 중엔 로제와인이 만든 공예품이 제일 앞에 있는 것으로 보아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듯 했다.

 

  윤아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랜드 파티스의 파티쉐들이 보였다. 기존 그랜드 비의 멤버들과 로제와인의 멤버들이 섞여 있었다. 소속이 갈라졌던 로제와인의 파티쉐들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랜드 파티스에 입사한 전 로제와인의 파티쉐들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외삼촌은 애써 이 상황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그들을 향해 등지었다. 대현은 그랜드 비의 멤버들을 쭉 살폈는데, 우연히 벚꽃 축제 때 윤아를 괴롭혔던 남자 2명이 보였다. 그 중 윤아에게 유독 치근덕거렸던 남자가 대현을 보며 씩 웃었다. 대현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한동안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주훤이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켜 몇 마디를 말하자, 파티는 시작되었다. 각 소속의 사람들끼리 담소를 나누거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윤아는 다른 소속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웠던 것인지, 샴페인사이다를 홀짝 마시며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대현은 다른 소속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다른 소속의 사람들이 웃는 걸 보아하니 나름대로 대화를 잘 이끌어가고 있는 듯 했다. 대현은 윤아의 시선을 느꼈던 건지, 윤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리로 오라는 듯 윤아에게 손짓을 했다. 윤아는 조심스럽게 대현의 옆에 섰다.

 

 

  “아아, 이 분이 마스터의 조카?”

  “네, 안녕하세요. 저는 임윤아라고 합니다.”

 

  “저는 메리 앤 베리의 파티시엘, 다나라고 해요. 윤아 씨의 얘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실력이 대단한 파티시엘이라고요.”

 

 

  윤아는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시도했다. 대현은 그런 윤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윤아는 잔뜩 긴장했던 것인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대현은 파르르 떨리는 윤아의 입술을 보며 픽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왜 웃으세요?”

  “여자친구의 긴장한 모습이 귀여워서요.”

  “예에? 도대현 씨 여자친구가 임윤아씨예요?”

 

 

  삽시간에 대화가 활발해졌다. 윤아는 약간의 대화를 끝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티장의 한가운데에 정체불명의 큰 물건이 보로 가려져 있었다.

 

 

  “저기 보로 가려진 게 뭔지 아세요?”

 

 

  사람들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 그랜드 파티스의 사장이 재밌는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말했어요. 자세한 건 저희도 잘 모르고요.”

 

 

  때마침 주훤이 파티장 내에 방송을 했다. 사람들은 한가운데에 있는 주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겠다, 제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 이것의 정체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셨죠? 그 정체는 바로 이겁니다!”

 

 

  주훤과 다른 웨이터 세 명이 세차게 보를 거두자, 네 대의 간이 조리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파티는 그랑프리 대회를 위한 친목 파티입니다. 단순히 유희를 즐기기는 것보단, 네 소속이 즉석으로 맞대결을 함으로써 열 띤 경쟁의식을 불러오는 게 어떨까 하여 만든 이벤트입니다! 네 팀 중에 1등을 한 팀에겐 그 소속의 멤버 전체에게 최고급 한우 세트를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주훤의 말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가 터졌다.

 

 

  “각 소속마다 대표로 하는 파티쉐들이 있는데요, 그 중 랜덤으로 두 명을 호명해서 경합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대현은 주훤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주훤은 대현을 향해 미소를 짓더니 내용이 보이지 않는 박스에서 쪽지를 하나 둘씩 꺼내 호명했다.

 

 

  “체리쉬의 김소담, 강예지, 메리 앤 베리의 소이현, 박은성. 그랜드 파티스의 최 웅, 문현미. 그리고…….”

 

 

  리하는 현미가 불리자 급하게 현미를 찾았다. 현미는 리하와 무리지어 놀던 파티시엘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미는 명단이 불리어졌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대현은 웅이 모습을 드러내자 눈살을 찌푸렸다. 웅은 벚꽃 축제 때 윤아에게 유난히 집적했던 남자였다.

 

 

  “로제와인의 권리하, 임윤아입니다. 호명된 파티쉐들은 각자 위치로 가주세요.”

 

 

  윤아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마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규동과 대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윤아는 반죽을 완벽하게 하는데 까진 성공했지만, 오븐만큼은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다.

 

 

  “잠시만요!”

 

 

  대현이 등진 주훤을 불렀다.

 

 

  “무슨 일이죠?”

 

 

  지금 윤아의 상태에 대해 번복을 해서 자칫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대회 형식이 어떤 형식인지도 모른 채 섣불리 번복할 수도 없었다.

 

 

  “대현아, 내가 반죽하고 리하가 굽는 걸 담당하면 그리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요?”

 

 

  주훤은 흥미진진하단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외삼촌의 옆에 앉았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맛있겠네요.”

  “뭐?”

  “아아, 물론 한우가요.”

 

 

  윤아는 쉼 호흡을 크게 하고 리하와 함께 간이 조리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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