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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72 세 번의 변화
작성일 : 16-11-26 18:10     조회 : 520     추천 : 0     분량 : 10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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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그냥 이런 저런 거.”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내가 들어줄까?”

  “아니, 괜찮아.”

 

 

  규동은 유독 까만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리하는 이미 고백 했으려나.’

 

 

  규동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리하의 말을 듣고서 자신 역시 윤아에게 속 시원하게 속마음을 털어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윤아의 얼굴을 보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긴장을 한 나머지 규동도 모르게 의도치 않은 질문을 던졌다.

 

 

  “누가 먼저 고백했어?”

  “내가 먼저 고백했어.”

  “어떻게?”

  “그냥……, 고백하다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울어버렸어.”

  “울었다고?”

 

 

  규동의 격한 반응에, 윤아는 민망했던 것인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규동은 곧바로 옅게 웃었다. 윤아 역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물었다.

 

 

  “우리 3위권 안에 드는 소속끼리 모여서 친목 파티 여는 거 있잖아. 그거 언제 해?”

  “아직 한 달 정도 남은 걸로 기억해. 아직 출품할 디저트를 정하지 못해서 그거 생각하고 만들다보면 시간 후딱 갈 거야. 뭐 그 전에 시급한 건 로제와인 복귀겠지만 말이야.”

 

  “음, 그냥 말 그대로 친목 파티지? 잠깐 얘기 나누고 뭐 그런 거.”

  “응. 매번 그렇게 해왔어.”

 

  “다행이다.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랑프리 전까진 오븐도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지금은 우리 밖에 없지만, 로제와인에 돌아가면 몇몇 파티쉐들도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러면 너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응. 빨리 다른 애들도 보고 싶다.”

 

 

  윤아는 규동의 얼굴을 바라보며 얘기를 하다가,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윤아는 발장난이라도 하는 듯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규동은 윤아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아에게 고백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괜히 고백하고 나서 어색해질까봐 걱정이었다.

 

 

  “윤아야, 나 좀 이해해줘.”

  “응? 뭐를?”

  “으응, 네 남자친구가 대현이니까 친구로서 안심된다.”

 

 

  ‘지금 당장은 정리하지 못해서.’

 

 

  “만약 대현이가 너 힘들게 하거나 울리면 말해.”

 

 

  ‘아니, 어쩌면 한동안 정리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까.”

 

 

  ‘지금 당장 고백하려니까 역시 못 하겠어. 당분간은…….’

 

 

  “응. 고마워.”

  “자. 오늘은 일찍 자러 가자. 내일 짐 싸려면 피곤할 테니까.”

 

 

  ‘혼자 짝사랑이라도 할 수 있게 이해해줘.’

 

 

  윤아와 규동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치원으로 향할 즈음이었다. 대현이 규동과 윤아를 번갈아 보며 무엇을 했냐고 물었다. 규동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아보다 앞서 걸으며 대현의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잘해줘라.”

 

 

 -

 

 

  오후 타임까지 완전히 끝났다. 아이들이 자기 전 놀고 있을 무렵에, 파티쉐들은 저마다의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솜은 기숙사에 있는 윤아를 빠끔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윤아의 옷자락을 잡고는 두 번 당겼다.

 

 

  “다솜아 왜? 무슨 일 있어?”

  “언니, 이거.”

  “블랑망제? 이건 웬 거야?”

  “내가 언니 주려고 만든 거야.”

  “정말? 언니 주는 거야?”

 

 

  다솜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는 환하게 웃으며 다솜을 끌어안았다. 다솜은 작은 두 손으로 윤아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언니, 언제 또 와?”

  “음, 언니가 완전히 오븐을 쓸 수 있을 때? 아니다. 12월에 있는 대회가 끝나고 여유 있을 때 꼭 올게.”

  “정말이지? 정말 꼭 올 거지?”

 

  “응. 그 때 동안 다솜이도 열심히 노력해서 맛있는 디저트 많이 만들고 있어. 다음에 언니가 오면 꼭 다른 신기한 디저트 많이 가르쳐줄게. 아프지도 말고, 밥 꼬박꼬박 먹고.”

  “응. 언니가 좋아. 윤아 선생님 꼭 와요.”

 

 

  윤아는 선생님이란 말에 지욱에게 느꼈던 두근거림을, 또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다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솜과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다솜은 다른 아이들과 놀기 위해 기숙사에서 나갔다. 대현이 긴 티셔츠를 입은 뒤 전신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윤아는 그런 대현을 가만히 올려다보기만 했는데, 문득 처음 보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찰나, 규동이 대현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으며 말했다.

 

 

  “내가 사준 옷이라서 그런가, 옷이 날개네.”

  “무슨 소리. 모델이 어느 정도 딱 받쳐주니까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거지.”

  “너 아직 생일빵 덜 맞았지 않아?”

 

 

  대현과 규동은 서로 히죽거리며 웃다가, 대현이 정색을 했다.

 

 

  “생일 지났어.”

  “내년엔 꼭 다 때린다.”

  “그 전에 네 생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 아냐?”

 

 

  대현과 규동은 다시 히죽거리며 웃었는데, 이번엔 규동이 정색을 했다.

 

 

  “미안.”

 

 

  대현은 규동과 웃다말고 윤아와 마주쳤다. 윤아는 크게 놀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생일……, 이었어? 언제?”

  “네가 여기 오기 하루 전에.”

  “왜 미리 말 안 해줬어?”

  “그야 내 생일 말하기엔 상황이 애매했으니까.”

  “난 그것도 모르고…….”

 

 

  대현은 윤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는 싱긋 웃었다.

 

 

  “나도 네 생일 당일에 몰라봐줬잖아. 서로 내년부터 챙겨주면 되지.”

 

 

  윤아는 대현의 말에도 여전히 울상을 지었다. 대현은 좀 더 환하게 웃으며 윤아의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괜찮다니까.”

 

 

  ‘대신에 다음 날에 너랑 사귀게 됐으니까. 그게 제일 좋은 선물이지.’

 

 

  “혀엉!”

 

 

  태준이었다. 태준이 오늘 미술 시간 때 그렸던 그림을 건넸다.

 

 

  “나 그림 두 개 그렸어. 하나는 이거고 하나는 이거. 이거는 형 줄게.”

 

 

  한 그림은 자신이 대현과 메론 맛 막대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의 그림이었고, 하나는 윤아와 대현이 같이 있던 모습이었다. 사실 태준이 인물이 누군지 말해줘야 알 수 있었지만 대현은 어설픈 실력으로 자신을 생각해 그려줬다는 마음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형 생일 지난 거 들어서 그렸어.”

  “어쭈, 기특하네.”

 

 

  대현이 쭈그려 앉아 태준과 눈높이를 마주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규동과 윤아도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임윤아는 여기서 더 눈이 크고 예쁜데, 아직 그림 실력 늘리려면 한참 멀었네.”

  “치, 기다려. 다음에 더 예쁘게 그려줄 테니까.”

  “어련하시겠어.”

 

 

  윤아는 대현의 무심하게 내뱉은 자신의 칭찬에 조금은 쑥스러웠던 것인지 고개를 돌렸다. 대현도 뒤늦게서야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곱씹었는지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는 말이잖아.”

  “모, 몰라 바보. 규동이도 있는데 그렇게 대놓고 표현해주면.”

 

 

  규동이 태준의 이목을 집중시켜 그림에 한 가지 지적했다.

 

 

  “다음에 또 그리게 된다면 도대현 얘는 눈을 더 째지고 악랄하게 그려줘. 이건 너무 미화되서 그렸다.”

 

 

  대현과 규동이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대현이 손으로 규동의 무릎을 쳤다. 규동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베개 싸움을 알리는 행동이었다고.

 

 

 -

 

 

  “이건 수고비야. 윤아는 비록 온지 며칠 안 됐지만, 그래도 모두들 한 달 동안 수고 많았어. 언제 한 번 더 다시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파티쉐들은 원장과 인사를 나눈 뒤 제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탔다. 효린과 명수는 당연히 짝을 이루어 앉았고, 대현과 윤아 역시 효린 네의 맞은편에 앉았다. 리하는 맨 마지막에 탔는데, 그들의 옆에 따로 앉은 규동과 눈이 마주쳤다. 규동과 리하는 잠시 동안 눈이 마주치다가 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하는 규동의 옆에 앉았다.

 

 

  “우린 참 뭔가가 여러모로 겹쳐.”

  “그러게.”

 

 

  기차가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철도 위를 달렸다. 리하는 눈을 감은 상태로 팔짱을 끼고 있다가, 다시금 천천히 눈을 떴다. 규동 역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나지막하게 물었다.

 

 

  “했어?”

  “아니.”

  “넌?”

  “당연히 했지. 넌 정말 멍청해. 마지막 기회까지 놓쳐버렸어.”

  “그러게.”

 

 

  규동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리하는 그 침묵을 깨며 말을 이었다.

 

 

  “내일 저녁에 밥 한 끼 같이 할래? 완벽하게 차인 사람끼리 기분이라도 축내게.”

  “좋아.”

 

 

  리하는 흔쾌히 대답하는 규동의 말에 씩 웃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집에 도착했다. 규동과 윤아가 피곤해서 먼저 잘 동안, 대현은 테라스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켰다. 한동안 아르바이트 겸 유치원에서 생활하느라 컴퓨터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대현은 현 로제와인의 실적을 보기 위해 사이트에 들어갔다. 커피 잔에 입술을 대며, 사이트의 디저트 뷔페 순위 목록에 들어갔다. 대현은 1위를 보자마자 놀라는 바람에 사래가 걸렸다. 대현은 고개를 돌려 몇 번 기침을 한 다음, 다시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1위 그랜드 파티스(GRAND PARTYS).

  2위 메리 앤 베리(MARRY & BERRY).

  5위 로제와인(ROSE WINE).

 

 

  대현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며 그랜드 파티스의 사이트에 들어갔다. 사람들의 후기를 공식적으로 노출하는 게시판의 글과 디저트 뷔페의 내부 사진이 즐비하게 있었다. 대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뷔페의 내부 사진을 찬찬히 살폈다. 그 중 사진에 찍힌 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사진 속 저 멀리 뭔가가 얼핏 보일 듯 하면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구조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굉장히 익숙했다.

 

 

  “아……, 이렇게 되면 친목 파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출품작을 준비해 말아?”

  “여기서 뭐해?”

 

 

  윤아는 잠결에 눈을 비비며 대현에게 물었다. 대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사이트 창을 내렸다. 윤아는 힘겹게 눈을 뜨며 대현에게 투명 봉지로 포장된 옷을 건넸다.

 

 

  “웬 거야?”

  “이거 단비 씨가 내 생일 때 주신 거야. 커플룩이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래.”

  “최단비가? 하여간 얜 이런 거에 안달 났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지만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까. 그래서 그런데 내일 같이 데이트해도 될까? 아직 개업하기 전에 시간도 조금 여유 있고…….”

 

 

  이 상황에서 로제와인이 5위로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 윤아의 붉어진 얼굴을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가뜩이나 사고로 로제와인에 더욱 애착이 간 윤아에게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자. 우리 사귀고 나서 데이트 한 번 못해봤는데.”

 

 

  윤아의 눈이 다시금 풀렸다. 대현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일어서서 졸고 있는 윤아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베어 눕혔다. 윤아는 눕자마자 곤히 잠들었다. 대현은 윤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뒤, 카디건을 벗어 윤아에게 덮어주었다.

 

 

  ‘신경 써야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군.’

 

 

 -

 

 

  “아직도 준비 중인 거야?”

 

 

  대현이 윤아의 방문을 노크했다. 윤아는 잠시만, 잠시만을 외치며 20분을 훌쩍 넘겼다. 하다 못한 대현이 먼저 신발 신고 있겠다며 내려다갔다. 대현이 신발을 신고 옷매무새를 만질 때였다. 윤아가 규동이 사준 샌들을 신었다. 윤아의 하얗고도 어깨가 드러나는 오프숄더 원피스에 윤아의 마르고도 뽀얀 속살이 더욱 도드라졌다. 묶어서 옆으로 내린 머리카락이 한 몫 하기도 했다. 대현은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고개를 돌렸다.

 

 

  “옷 꼴이 그게 뭐야.”

  “역시 나한테는 이상하지?”

 

 

  ‘이것을 갈아입혀, 말아?’

 

 

  갈아입으라고 말하기엔 윤아가 한껏 꾸몄던 것이 물거품이 될지도 몰랐다. 그 만큼 갈아입는데 소모될 것이기도 했다.

 

 

  “예뻐. 일단 영화 시간 늦지 않게 가자.”

 

 

  대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영화 티켓을 확인하고 다른 관람객과 기다릴 때, 자리에 앉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나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몰렸을 때 마음을 졸이며 주변 남자들을 눈여겨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가는 남자들이란 남자들이 초커 목걸이로 더욱 가늘어 보이는 목선과 적나라한 쇄골, 좁은 어깨와 뒤에서 보면 조금 튀어나온 목뼈와 그를 이은 등선을 훑어보았다. 요즘은 이 옷이 유행이라며 몇몇 여자들도 간혹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녔지만 그 여자들의 몸에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늑대 같은 시선으로 깨달았다.

 

 

  대현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 윤아를 멈춰 세웠다.

 

 

  “너 머리카락 풀어도 돼?”

  “왜?”

  “힘들게 묶은 거야?”

  “그건 아닌데.”

 

 

  대현과 윤아가 얘기할 때에 남자 무리가 윤아의 옆을 지나치려 할 때였다. 그들이 저마다 윤아를 위 아래로 훑었다. 대현이 그들을 노려보며 윤아의 허리를 감싸고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그 상태로 윤아의 머리끈을 풀었다. 윤아의 머리카락이 사르륵 윤아의 어깨를 감쌌다.

 

 

  “이래도 제대로 안 가려지네.”

 

 

  대현이 투덜대며 자신의 에코백에 있던 얇은 카디건을 꺼내 윤아에게 건넸다.

 

 

  “조금 더울지 몰라도 입어. 다음부턴 그렇게 노출된 옷 입지 마. 너한테 이상하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남자들이 자꾸 너 쳐다보니까 신경 쓰여.”

 

 

  윤아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간단한 점심 이후, 아울렛 쇼핑몰을 거닐었는데 대현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물었다. 대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땅히 받고 싶거나 필요한 물건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거나라도 상관없는데.”

  “뭐야.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얼마나 난감한 건데.”

 

 

  윤아가 쩔쩔 매며 대현의 선물을 고르기에 애쓰는 모습이 대현의 눈에는 마냥 귀여워보였다.

 

 

  “옷을 사줄까? 규동이가 옷 사주는 것을 선수 쳐서 내가 해주려면 식상하려나? 아니면 신발? 연인에게 신발을 사주면 연인이 도망간다는 미신이 있다는데 그건 싫어! 요리 도구는? 그 최신 거라고 되게 좋다고 갖고 싶다고 했잖아.”

  “그거 도지욱이 사줬어.”

 

  “뭐어? 그럼 화장품은?”

  “으음.”

 

 

  대현이 잠시 고민하는 모습에 윤아는 유레카, 라고 외치며 아울렛 가게의 화장품 코너로 향했다. 남성용 기초 화장품이나 향수가 있었다. 대현이 화장품이라고 해봤자 기초 화장품인 스킨과 로션 그리고 입술 보호제가 고작이었다. 모두 다 이미 구비되어 있던 것들이었다. 윤아는 한참을 망설이다 바로 옆 사람이 향수 뿌리는 것을 발견했다. 윤아가 대현의 옷깃을 잡으며 시향해보자고 했다. 어떤 것은 기피하고 싶을 정도로 알코올 냄새가 심하거나 향이 진했고, 때때로 시원하거나 달콤한 향기를 뽐내기도 했다. 대현이 코를 찡그리며 향수 냄새가 역하다고 했다.

 

 

  “냄새에 코가 마비된 것 같아.”

  “그럼 한 가지만 더 맡아보고 아닌 것 같으면 다른 것 찾자.”

 

 

  CLEAN. 윤아의 눈에 파란 향수병이 들어왔다.

 

 

  “오, 이거 은은하고 좋아. 맡아봐.”

 

 

  대현이 속는 셈 치고 고개 숙여 맡아보았다. 대현 역시 이 향이 나쁘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쯤은 한참 뽐낼 20대로서 향수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규동도 이미 향수를 쓰고 있었으니. 그렇지만 사치가 아닐까 조금은 고려했던 것이기도 했는데 이 향이 마음에 들었다. 윤아가 단박에 알아채고는 즉시 결제했다.

 

 

  “이거 비싼 건데.”

  “그래도 이게 마음에 들잖아? 헤헤. 넣어둬. 넣어둬.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아껴 쓸게.”

  “음 막 써도 상관없는데 다른 여자랑 만날 때 쓰면 안 돼. 유혹하는 남자 같아 보일지도 몰라.”

  “내가 너 말고 달리 만날 여자가 어디 있어.”

  “그래도!”

  “바보. 너랑 데이트할 때만 쓸 거야. 고마워. 잘 쓸게.”

 

 

  대현의 미소에 다시 한 번 설렌 윤아였다.

 

 

  “근데 카디건 언제까지 걸쳐? 나 너무 더워.”

  “집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윤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윤아의 헤드라인에 땀이 맺힌 게 보였다. 한창 더울 시기인 8월에 아무리 얇은 카디건이라니, 윤아가 더위를 먹기엔 충분했다. 대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손으로 윤아에게 부채질을 해주었다.

 

 

  “카페에 가서 시원한 거라도 먹자. 내가 사줄게.”

 

 

 -

 

 

  다음 날이 되어, 대현은 외삼촌에게 로제와인 학원을 빌리는 것을 허락 맡았다. 대현은 다른 곳에서 여행을 하고 서울에 돌아왔을 파티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5위권으로 밀려갔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파티쉐들은 단 한 명도 받지 않았다. 간혹 받아봤자 세, 네 명이 고작이었다. 대현이 문자를 남겼음에도, 학원엔 기존에 여행을 같이 같던 파티쉐들과 연락이 닿은 네 명의 파티쉐들이 전부였다.

 

 

  “왜 애들이 연락도 안 받아? 통화 안 되는 산간지역이라도 갔어?”

  “그러게. 내 전화도 안 받아. 리하, 너랑 놀았던 무리 애들은 어때?”

  “몰라. 얘네들도 받을 생각을 안 해.”

 

 

  대현은 규동과 리하의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 인간들은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벌써 오전 11시가 다 되가는데 아직까지 자는 거야? 3일 뒤라면 신장개업인데 나사가 단단히 빠졌군.”

 

  “뭐, 어쩔 수 없잖아. 애들 나름 피곤했을 거고. 일단 오후까지 기다려보자. 그 때 동안 우리가 생각하고 있으면 되잖아.”

 

 

  규동의 말에 그들은 다른 파티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이후로 몇 명 더 모이는가 싶더니 기존 10명 정도는 아예 연락이 두절되었다. 대현은 생각해 낼 것이 한 두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푹 쉬었다.

 

 

 -

 

 

  주훤은 사장실에서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지욱을 바라봤다.

 

 

  “정말 로제와인을 부를 생각이야?”

  “당연하지.”

  “가끔씩 널 보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무슨 섭섭할 소릴. 원래 계획대로라면 세 군데의 소속을 부르려고 했던 거잖아? 난 원래대로 했던 것뿐이라고. 이번 파티의 주최는 그랜드 파티스니까, 난 스승님이 걱정되는 차원으로 부를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부르는 거라고.”

  “걱정되는 차원으로 하는 거면서 왜 굳이 로제와인의 파티쉐들을…….”

 

  “유목민처럼 왔다갔다하는 것보단 안정적인 게 나으니까 인심이 후한 내가 더 큰 금액으로 해준 거지.”

  “그래. 알겠다. 비공식 친목 파티는 내가 개인적으로 게시판 만들도록 할게.”

  “그래. 매번 내 편이 되어줘서 고마워.”

 

 

  지욱은 주훤의 고맙다는 말에 옅게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주훤은 지욱이 사라지자마자 펴고 있었던 책을 닫았다. 책에 가려졌던 티켓 스무 여 장이 드러났다. 주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티켓을 들어 꼼꼼하게 살폈다.

 

 

  “동료라는 게 다 한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나.”

 

 

  주훤은 여전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티켓을 한 봉투에 모두 넣었다.

 

 

  “이참에 모두 갈기갈기 짓밟혀 버려라. 단물 빠진 껌보다 못한 로제와인.”

 

 

 -

 

 

  윤아는 출출할 파티쉐들을 위해 분식을 사들고 로제와인 학원의 입구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문을 여니, 우체통에 빨간 봉투가 꽂힌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윤아는 그것을 쥐고 뒤로 돌려보았는데, 그랜드 파티스에서 온 티켓이었다. 윤아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황급히 학원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이었다. 윤아의 등장에 모두가 벌떡 일어나 윤아를 맞이했다.

 

 

  “몸 괜찮은 거야? 몸 더 마른 거 봐. 이런 곳에 와도 되는 거야? 너 아직…….”

 

 

  그들은 윤아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직 오븐을 쓰는 건 무리지만 보는 것 정도는 괜찮아졌어.”

  “아직 2주일 채 되지 않았는데 소식 많았더라. 윤아는 아프질 않나, 그 새에 대현이랑 윤아가 사귀질 않나. 지욱 선배는 그랜드 파티스에 애당초 빠졌질 않나 그리고…….”

 

 

  대현은 민망했던 것인지 주먹을 쥐고 이마를 짚었다. 쑥스러움에 자꾸만 입 꼬리가 올라갔다. 다른 파티쉐들이 얄밉다며 대현에게 장난을 쳤다. 윤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자신의 손에 들린 봉투를 기억해냈다.

 

 

  “얘들아, 이것 봐봐. 그랜드 파티스에서 온 편지야.”

 

 

  대현은 윤아의 손에 들린 봉투를 빼앗아 편지 봉투의 입구를 뜯었다. 편지 봉투엔 다름 아닌 그랜드 파티스의 디너 타임 무료 티켓이 여섯 장씩이나 있었다. 대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봉투 안을 털었다. 희고 작은 쪽지가 대현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오늘 저녁, 로제와인 파티쉐들을 초대합니다? 나주훤, 이게 또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이러는 거야?”

  “날짜를 보니 오늘인데? 지금 당장 오라는 거 아냐?”

 

 

  명수의 질문에 효린이 물었다.

 

 

  “근데 왜 우리 다? 지금 딱 여기 있는 사람들 인원에 맞게 준비했는데?”

 

 

  몇몇 파티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표정은 조금은 굳어 있었고 대현네 무리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글쎄.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대현은 명수의 마지막 말을 들은 뒤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약 6만원이나 되는 티켓을 그것도 로제와인의 파티쉐 전부에게 초대한다는 게 이상했다. 뭔가 찜찜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윤아는 대현의 손을 잡았다. 대현은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났다.

 

 

  “우리를 초대해줬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어서 일거야. 이유야 어찌됐든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대현은 윤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지금 갈 준비 해.”

 

 

  그랜드 파티스에 초대를 받은 파티쉐들이 나갈 채비를 챙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디저트 뷔페로 향했다. 입구에 위치한 카운터에서 티켓을 건넸다. 호텔리어는 앞장서서 예약해 두었던 테이블이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대현은 할 말을 잃은 듯 뷔페의 내부를 보았다. 센터에 작은 초콜릿 분수가 두 개 있었고, 각 디저트들이 종류 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윤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군데에서 멈춰 섰다.

 

 

  “이게 어째서 여기에…….”

 

 

  리하는 윤아의 멍한 표정을 보고서 고갤 돌려 아래를 쳐다봤다.

 

 

  “뭐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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