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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69 기회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
작성일 : 16-11-25 17:42     조회 : 567     추천 : 0     분량 : 1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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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대현아, 잠시 나 좀 보자.”

 

 

  대현이 태준과 놀다말고 원장의 부름에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실에는 원장과 대현 밖에 없었다. 대현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가르쳐줬지만, 어딘가 어정정한 모습과 무덤덤한 표정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일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원장이 화낼 것이라 생각했다. 대현은 혼날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하루 동안 서울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줄게.”

  “네?”

  “마스터의 조카가 화재 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알고 있어.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스터의 조카도 여기에 오려고 했지?”

  “네.”

 

  “마스터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그래서 조카가 오면 잘 대해주려고 했는데……, 그런 일이 있어서 나도 걱정되고 다른 파티쉐들도 마찬가지더라고. 그러니까 우리들 대신해서 서울에 올라가봐. 워낙 여기 일이 바쁘다보니 연락조차 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내일 일요일이니까 가봐. 그 날은 애들이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갔다 올 수 있어.”

 

 

  대현은 윤아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시름 걱정이 풀린 듯 옅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뭐, 감사하다는 말은 너랑 같이 온 파티쉐들에게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이 제안 걔네들이 내준 거거든. 태준이도 한 몫 했어.”

  “네? 걔가요?”

 

 

  대현이 원장실에서 나오자 파티쉐들이 대현을 기다렸다는 듯이 앞에 서 있었다. 저마다 잘 갔다 오라는 말을 했다. 리하는 이제야 웃는 대현을 보니 조금은 안심했다. 이번 제안의 주도자는 리하였기 때문에, 리하는 대현의 미소에 뿌듯했다. 대현은 원장을 통해 리하가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리하의 팔뚝을 툭툭 두드렸다.

 

 

  “고맙다.”

 

 

  대현이 가져온 레시피 책을 보고 있던 태준이었다. 대현은 태준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였다.

 

 

  “조그마한 게 기특하네.”

  “남자는 의리.”

 

 

  태준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현은 못 당하겠다는 듯 태준의 머리카락을 더욱 헝클였다.

 

 

  “형이 그 누나를 다치게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대현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그야 형은 착하잖아.”

 

 

  대현은 얼마간 가만히 있는가 싶더니 다시금 태준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

 

 

  윤아는 겨우 잠들었나 싶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눈을 떴다. 이곳에 입원할 때부터 찾아온 불면증 때문에 잠이라고 해봤자 고작 설잠이 전부였다. 윤아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요즘 들어 대현과도 크게 연락을 닿지 못했다. 간혹 외삼촌과 규동 그리고 효린에게서 연락 왔지만 다들 바빴던 것인지 연락 시간대가 매우 띄엄띄엄했다.

 

 

  ‘이제 날 잊기 시작하겠지.’

 

 

  “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잘하는 행동일까.”

 

 

  윤아는 다시 한 번 앨범을 보는데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손을 뻗어 가까스로 닿는데 성공했지만 첫 장을 펼 수 없었다. 손이 떨려왔다. 이 상태로는 영영 로제와인에 발을 디딜 수 없단 생각을 하니 감정이 북받쳐 왔다. 이 순간에 가장 필요한 사람, 윤아는 자신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몸을 더욱 웅크렸다.

 

 

  “대현아 보고 싶어…….”

 

 

 -

 

 

  한편 대근은 평가단끼리 모임이 있어 식당에 도착했다. 러시아워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30분 더 늦게 도착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근이 사람들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자, 사람들은 괜찮다며 주문을 했다. 사람들은 식사를 하며 이번 그랑프리 대회에 대해 말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대근에게 말을 걸었다.

 

 

  “로제와인이 그렇게 된 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루 빨리 딸이 쾌차하길 바라요.”

 

 

  대근은 윤아가 언급되자 기분이 상했던 것인지, 몇 초간 인상을 찌푸리다가 다시 풀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대근의 표정이 좋지 못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몇몇 사람들이 대근의 눈치를 보다가 다른 이야기 화제로 돌려, 저들끼리 담소를 나눴다. 대근은 만사가 귀찮아졌다. 한 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몇몇 사람들은 계산대로, 몇몇 사람들은 자판기 커피를 뽑고 있었다. 대근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밖으로 나왔다. 다 마신 커피 잔을 가만히 들고서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가슴팍에 있던 담배 하나를 물었다. 뒤에서 신발을 찾던 몇몇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그 엄마나 그 딸이나 똑같은 일을 겪었잖아.”

 

 

  대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엄마와 딸의 실명이 밝혀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근의 배우자인 율과 그들의 딸인 윤아였다. 사람들은 대근이 먼저 밖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신발을 꺼내 신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맞아. 로제와인의 마스터가 그 딸을 스카우트 했는데, 소문을 들어보니까 마스터가 딸의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완전히 극복 시켜주기 위해서 스카우트한 거라던데. 결국 이번에 또 상황이 반복 되어서 병원에 실려 갔데.”

  “쯧, 저런. 아직 스물네 살이라고 하던데. 꽃다운 나이에 청춘 다 버렸네.”

 

  “내 말이. 김 율도 꽤 젊은 나이였지? 그 때 쇼콜라(초콜릿) 가게에서 화재 나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었잖아. 그것 때문에 장애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포기했지.”

  “근데 쉰 초반이었나 마흔 후반 대였나? 두바이 호텔의 쇼콜라티에로 발탁되지 않았나?”

  “그렇지. 대한민국 최초로 뽑혔지. 그 땐 뭐 많이 호전되어서 했다는데, 얼마 가지 못해서 그만 뒀다네.”

 

  “어유, 내가 그런 곳에 발탁 되었으면 기를 써서라도 했겠다.”

  “사람 일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 장애 자체가 극복하려면 정신력이 못해도 맥시멈이 되어야지. 정신력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으려나. 우리도 어른이라고 다 큰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어쨌거나 그 가족은 다 안 됐어. 김 율도 극복하지 못해서 실패했고. 임대근 걔는 뭐 때문에 그 명성 높은 파티쉐의 직업을 그만두고 평가단에 머무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걔도 안타깝다니까. 딸은 뭐 걔네들한테 액운이라도 물려받았는지 화재 사고를 두 번이나 겪고. 따지고 보면 임유영인가? 아들 걔 하나가 그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잖아. 그 가족 영…….”

  “난리 났네. 난리 났어.”

 

 

  한 사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대근은 그들을 차례대로 쏘아보았다. 사람들은 급히 입을 다물고 당황한 표정으로 대근을 바라봤다. 대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컵을 와작 찌그리고 쓰레기통에 던지듯 버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뒤에 목례만 하고 자리를 떴다.

 

 

  ‘임유영인가? 아들 걔 하나가 그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잖아. 그 가족 영…….’

  ‘난리 났네. 난리 났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도저히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대근은 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 당장 임윤아를 데리고 올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뭐? 윤아는 왜 갑자기?

  “도저히 못 참겠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너도 될 수 없었던 거, 네 딸이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안타까워. 윤아도, 당신도. 일단 진정하고 나랑 얘기 좀 해.

 

  “그런 줄 알아. 난 오늘 데리고 집에 갈 거니까.”

 

 

  대근은 전화를 끊었다. 율은 끊긴 전화를 보다가 뭔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지했다. 즉시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아는 창밖으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소리를 들었다. 자세히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웃음소리를 들어보니 꽤나 좋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외삼촌이 병실에 들어왔고, 곧바로 율이 들어왔다. 윤아는 외삼촌도 외삼촌이지만 율의 등장에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아빠 안 왔지? 후, 다행이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네.”

  “외삼촌, 무슨 일 있어요?”

 

 

  때마침 대근도 병실에 들어섰다. 윤아는 외삼촌 뒤에 선 대근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대근은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는 듯 율을 노려보았다. 율은 그 시선을 피하려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대근은 율과 외삼촌을 재치고 윤아의 앞에 섰다.

 

 

  “넌 지금 당장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와야겠다. 넌 이제 완전히 글렀어.”

  “매제, 아직 치료 중이야. 이제 겨우 일주일 됐는데 더 지켜봐야 해. 원래 이 치료는 한 달 이상 지켜봐야 하는 치료란 말이야.”

  “한 달 이상 지켜봐야 하는 치료라고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신 겁니까? 이미 치료는 6년 전에 끝났습니다. 더 이상 가망 없는 치료라고요.”

  “충분히 가망 있어.”

 

  “시간 낭비예요. 돈 낭비라고요.”

  “넌 딸을 위해서 돈과 시간을 투자 못 해?”

  “여태껏 해줬는데 안 되니까 투자는 그만둬야죠.”

  “너 진짜……, 우리의 최대 피해자는 윤아라고!”

 

 

  윤아는 어른들의 싸움에 낄 수 없었다. 자신 하나 때문에, 자신이 극복하지 못해 일어난 싸움에 윤아는 몸을 떨었다. 율은 둘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대화에서 끼어들려고 하다가 윤아가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문득 자신의 젊었을 적 일이 떠올랐다.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이뤄야할 일들을 눈앞에 두고 좌절했을 때 얼마나 처절했는지, 율은 알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율은 그때서야 자신이 윤아에게 얼마나 신경을 써주지 못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윤아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어쩌면 처음 봤던 것일 지도 몰랐다. 윤아가 어린 나이에 사고를 당했을 적부터 줄곧 피해왔으니까 말이다. 당연했던 것이다. 행여 윤아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마저 옛 일을 상기시키고 또 다시 장애 증상을 겪어야 할까봐 무서웠다.

 

  율은 천천히 윤아에게 다가갔다. 윤아는 몹시 괴로운 표정을 하며 두 눈을 찔끔 감았다. 윤아는 외삼촌과 대근의 말싸움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율은 환자용 침대에 앉아 윤아를 마주한 다음, 윤아의 귀를 막아주었다. 윤아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율은 윤아의 귀를 막아주다가 얼굴을 천천히 더듬으며, 윤아와 이마를 맞대었다.

 

 

  “엄마가 미안해……, 내 딸 신경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게 얼마나 괴로운 걸 알면서도 엄마가 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대근은 외삼촌과 실랑이를 벌이다 말고 율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대근은 이마를 맞대며 우는 모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듯 병실 밖으로 나갔다. 외삼촌은 그 둘의 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대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외삼촌은 급히 대근을 따라잡기 위해 복도를 뛰다가, 다른 코너에서 불쑥 튀어나온 대현을 보고 놀라 멈췄다. 대현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윤아가 걱정 되어서요.”

  “그래 지금 당장 가 봐.”

 

 

  외삼촌이 대현을 지나쳐 급히 가려는데, 대현이 외삼촌을 불렀다. 외삼촌이 자신을 향해 고갤 돌릴 때, 대현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대근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는 뜻이었다. 외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대현은 방금 전에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화난 표정을 했던 대근을 보았다. 다급했던 외삼촌의 모습을 떠올리곤 급히 윤아의 병실로 찾아갔다.

 

  병실에 도착하니, 윤아와 율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대현은 이 상황에 몹시 당황했다. 율은 기척을 느꼈는지 눈물을 닦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현과 눈이 마주쳤다. 대현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서 조금씩 윤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율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네가 대현이지?”

 

 

  윤아는 대현이 왔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네.”

 

 

  이어서 윤아의 몸이 대현의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움찔거렸다.

 

 

  “윤아를 부탁할게.”

 

 

  대현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율은 대근을 찾으러 나섰다. 이곳은 1인 병실인데다가 율마저 갔기 때문에, 대현과 윤아만 있었다. 대현은 윤아의 볼을 감쌌다. 얼굴의 살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대현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윤아는 충분히 마른 상태였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심했다. 대현은 윤아의 볼과 팔을 만지며 외쳤다. 너무 놀라서 도리어 화가 났다.

 

 

  “뭐야, 왜 이렇게 말랐어? 밥 제 때 먹겠다며! 왜 밥도 안 먹고 이렇게 됐어?”

 

 

  윤아는 대현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윤아는 갑작스럽게 대현을 안았다. 대현은 화를 간신히 참고 윤아를 더욱 세게 안아주었다. 윤아가 대현을 안았을 때, 대현은 윤아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멍청아, 내가 얼마나 걱정 했는데 꼴이 이게 뭐야…….”

 

 

 -

 

 

  “거기 멈춰서!”

 

 

  대근은 외삼촌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결국 외삼촌은 대근의 어깨를 잡고 대근의 몸을 돌려 세웠다.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율이 우는 거 못 봤어? 율이랑 윤아가 그렇게까지 우는 거 너도 봤잖아.”

  “오늘은 그냥 돌아가지만 내일 다시 병원에 올 땐 의사에게 말해서 짐을 싸게 둘 겁니다.”

 

  “그렇게 해서 너한테 이득 되는 건 뭐고, 윤아에게 있어서 좋은 점은 뭔데? 제발, 제발 다시 생각해줘. 우리가 이렇게 됐으니까 윤아 만큼은 우리처럼 되게 만들면 안 돼. 응? 오늘은 늦었으니까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얘기를 나누자.”

 

 

  대근은 외삼촌의 말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치려고 입을 열었는데, 어느새 율이 그들을 따라잡아 대근의 등을 쓰다듬었다.

 

 

  “진정해, 당신.”

 

 

  대근은 몸을 돌려 율을 보려다가 말았다.

 

 

  “오빠 말을 들어서라도, 윤아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줘. 우린 되돌리기엔 너무 늦을 만큼 늙었지만, 윤아는 아직 우리보다 훨씬 젊어. 당신은 윤아를 딸로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어?”

 

 

  대근은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율이 결국 윤아에게 동화되자 짜증이 몰려왔다. 율은 대근을 쓰다듬다 말고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대근의 화가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대근의 놀란 마음이 화난 것보다 더욱 컸기 때문이었다.

 

 

  “난 없어……. 윤아도 유영이도 모두 우리 자식인데, 난 윤아를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았어. 너무 무서웠거든. 윤아가 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면 어쩔까 싶었어. 그럼 또 다시 내가 실패했던 모습들이 날 괴롭힐까봐 섣불리 윤아를 대할 수 없었어. 그래서 여태껏 윤아의 표정 하나하나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애가 웃는 건지 뭔가를 걱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멍한 표정을 짓는 건지 알 수 없었어. 그러다 오늘 문득 윤아의 표정을 정면으로 바라봤는데 내가 상상했던 표정들과 달랐어. 애가 울고 있잖아……, 우리가 화가 나서 그냥 내뱉었던 말들이 깨진 유리 조각들이 되어서, 윤아를 괴롭혔어. 더욱 상처를 줬단 말이야.”

 

 

  한순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대근은 자신도 율과 마찬가지로 윤아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 율이 대화를 이었다.

 

 

  “윤아가 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어. 난 24년 동안 윤아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내가 엄마로서 뭘 해줬을까.”

 

 

  율의 말에 대근의 뒤통수를 누군가 세게 내리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내가 너무 한심해서, 엄마로서 자격이 없어서 내 자신에 너무 화가 나. 24년 동안 못 해줬지만 지금 이 순간,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난 그걸 해주고 싶어. 윤아는 나의 자식이지만 내가 아니란 걸 지금이서야 알게 됐어.”

 

 

  율은 대근에게 떨어져 대근의 앞에 섰다. 그리고 대근의 손을 잡았다.

 

 

  “나도 부탁할게. 오늘은 오빠 집에서 자고, 내일 다시 병원에 오자.”

 

 

  ‘작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늦었지만 난 윤아 편을 들어줄 거야. 늦은 만큼 윤아를 똑바로 볼 거야. 그 각오로 부탁하는 거니까 오늘은 오빠 집에서 자자.”

 

 

 -

 

 

  대현은 한동안 윤아를 달래주었다. 꽤나 시간이 지난 것 같았는데도 아무도 병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대현은 윤아가 진정하자 그제야 윤아와 똑바로 마주볼 수 있었다. 윤아의 표정은 여전히 울상이었다.

 

 

  “마음 같아선 며칠 여기에 묵고 싶은데, 내일 아침이면 다시 가야해. 오늘은 원장님한테 잠깐 허락 받고 온 거거든. 일단 오늘은 보호자 침대에 자서라도 네 옆에 있어줄 테니까, 안심해. 먹고 싶은 거 있어?”

 

 

  윤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말라.”

 

 

  대현은 윤아의 손을 잡고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은 다음 벤치에 앉았다.

 

 

  “너 병원에서 산책은 하는 거야?”

  “아니.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것보다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데 피곤하지 않아?”

  “너 보는데 피곤할 이유가 어디 있어.”

 

 

  윤아는 잠시 입을 다물다가 피식 웃었다.

 

 

  “이제 그런 말 아무렇지도 않게 잘 내뱉네.”

  “모, 몰라.”

 

 

  대현은 저녁으로 먹을 윤아의 죽을 챙겨주고 옆에서 자신도 죽을 먹었다. 윤아가 밥으로 먹을 만한 걸 사온다고 했지만 대현은 자신은 멀쩡하게 밥을 잘 먹는데 윤아는 죽도 겨우 삼킬까 말까한 몸 상태를 볼 생각하니 같이 죽을 먹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윤아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윤아는 눈을 깜빡이며 대현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은 씩 웃으며 잘 자라고 말한 뒤 병실의 불을 껐다. 그리고 보호자 침대에 앉아 윤아의 침대에 엎드렸다. 윤아와 대현 누구라 먼저 할 것 없이 서로의 손을 찾았고, 종국엔 두 손이 맞닿았다. 윤아는 대현의 손을 놓치기 싫어 세게 잡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대현은 그것을 알고 윤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윤아는 불면증 때문에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자지 못했다. 그렇지만 평소에 지새웠던 밤보다 한결 편해졌다. 대현이 곁에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윤아는 대현이 이미 오래 전에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여, 한참 전부터 대현의 손을 어루만졌다. 윤아는 대현을 바라보며 고맙다고 작게 속삭인 뒤, 고갤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사실 대현은 윤아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자지 않을 생각이었다. 윤아가 밤마다 불면증을 앓고 있단 사실에 조금은 충격적이었는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윤아가 잠을 잘 때면 어떠한 악몽으로 매번 인상을 찌푸리거나 눈물을 머금곤 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윤아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것을 대현은 처음부터 알아봐주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윤아에게 말을 걸 수도, 손을 더 세게 잡아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윤아는 갈 준비를 하는 대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대현은 갈아입은 옷을 가방에 넣고 어깨에 멨다. 그리고 병실 문 앞으로 가서 우뚝 멈췄다. 도저히 윤아를 놔두고 갈 수가 없었다. 대현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직 5분이라는 여유가 있었다. 대현은 몸을 돌려 윤아와 마주보다가 와락 안았다.

 

 

  “나 없을 동안에 아프지 말고 밥 꼬박 챙겨먹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아니, 무슨 일 없어도 나한테 연락해. 기다릴 테니까.”

 

  “이래저래……, 날 너무 기다려주는 거 아냐?”

  “나 이제 갈 시간이야.”

 

 

  대현은 집게손가락으로 윤아의 턱을 잡아 올리고 그 상태로 키스를 했다. 윤아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대현을 바라봤는데, 대현은 눈을 감고 있었다. 윤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신의 턱을 잡은 쪽의 팔뚝을 어정쩡하게 잡았다. 대현은 입술을 떼며 다시금 윤아를 세게 안아주었다.

 

  “내가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좋아해, 임윤아. 지금 당장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 이제 진짜 가야 해.”

 

 

  문이 닫히고 대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윤아는 자신의 바로 앞에 닫힌 문을 보며 세게 주먹을 쥐었다.

 

 

  ‘매번 날 기다려줬는데. 매번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해줬는데……, 더 이상, 정말 더 이상은…….’

 

 

  윤아는 주먹 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세게 열었다. 바로 앞에 대근과 외삼촌, 그리고 율이 있었다. 윤아는 늦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대현을 놓치기 싫었다. 이렇게 주저앉다간 다시는 대현의 얼굴을 못 볼지도 몰랐다.

 

 

  “아빠!”

 

 

  대근은 놀란 표정으로 윤아를 주시했다. 윤아의 눈빛은 확실히 생기를 띄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빠의 만족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고 싶어요. 다른 파티쉐들과 함께 빵을 만들고 싶어요. 아직 만들어보지 못한 케이크도, 계속 마주해야 할 월말평가도, 그리고 처음으로 도전하는 그랑프리 대회도 정말 하고 싶어요. 제게 잠깐이라도 좋으니 기회를 주세요.”

 

 

  대근은 얼핏 율의 말이 떠올랐다.

 

 

  ‘난 24년 동안 윤아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내가 엄마로서 뭘 해줬을까.’

 

 

  “더 이상 제가 하고 싶은 걸 아빠가 막아서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내 뜻대로 하고 싶은 것을 이루고 싶어요. 만약 아빠가 저한테 기회를 줬는데도 못하게 된다면, 그 땐 군말 없이 아빠 따라 집으로 돌아갈게요.”

 

 

  대근은 윤아에게 등지었다.

 

 

  “기회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윤아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외삼촌이 윤아를 불렀다.

 

 

  “혹시나 싶어서 율이랑 집에서 네 짐을 미리 싸뒀어. 지금 당장 갈 준비 할 수 있지?”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뒤, 병실에 있던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외삼촌은 자신이 대신 챙겨줄 테니 먼저 주차장으로 가라고 일렀다.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급하게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밑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는데,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왔다. 윤아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에 위치한 카운터를 보았다. 카운터의 시계는 어느덧 대현이 출발할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윤아는 비상구 계단으로 내려갔다. 발걸음을 더 빨리 놀릴수록 윤아의 머리가 찰랑거렸다. 윤아는 거슬리는 머리카락을 방치한 채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날 좋아해준, 날 기다려준 사람.’

 

 

  “제발 늦지 않길.”

 

 

  ‘더는 놓치고 싶지 않아.’

 

 

  저 멀리서 외삼촌의 차가 보였다.

 

 

  ‘네가 지금 당장 내 곁에 있을 수 없다면, 내가 네 곁으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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