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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66 너의 한계
작성일 : 16-11-24 23:14     조회 : 706     추천 : 0     분량 : 8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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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끝도 없네…….”

 

 

  외삼촌은 화재로 인해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 쇄도에 정신없었다. 거기다가 오늘부터 시작된 내부 수리와 밀린 업무, 파티쉐들의 일자리와 여행 경비를 알아보느라 더더욱 그러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쉴 새 없이 업무를 했더니 온 몸이 뻐근했다.

 

 

 “대체로 같은 조로 활동했던 동기들이나 무리지어 놀던 무리로 빠졌네.”

 

 

  대현과 규동이 포함한 단기 강사 지원서를 보았다. 명수와 효린은 물론이고 리하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삼촌은 지원서를 쭉 한 번 훑어보고는 추천을 입증하는 도장을 찍었다.

 

  활동을 결정해야 하는 무렵이었었다. 리하에겐 뭔가를 함께할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리하는 한 때 자신과 어울려 다니려 했던 무리를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벅찼다. 윤아와 싸웠을 때 이후로 그들과 어색해져 대화 한 번 제대로 섞지 않았는데 같이 활동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리하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팔을 어루만지고는, 시선을 회피했을 때였다.

 

 

  “뭐해? 안 오고?”

 

 

  규동이 대수롭지 않게 리하를 불렀다. 대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명수와 효린은 싫지는 않다는 듯 리하가 이 무리에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리하가 휘둥그레진 눈을 깜빡이며 스스로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뭘 새삼 뜸들이고 그래. 우리가 제일 덜 어색하잖아?”

 

 

  리하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언제 이들과 이리도 가까워졌는지 의문이었다. 윤아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아는 이 자리에 없었다.

 

 

  “남은 건 윤안데…….”

 

 

  규동이 낮게 읊조리는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른 팀들은 이미 정해져 내일 출발한다. 규동이 함께 하는 인원들은 이 상태로 팀원을 마감하고 출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여태껏 함께해온 동료를 놔두고 간다는 건 역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아는 정신적 안정을 위한 몇몇 약을 입에다 넣고 물과 함께 힘겹게 삼켰다. 빈 물 컵을 서랍 위에 올려놓고 창밖에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이 쾌활하게 떠드는 소리,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새들이 기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문득 멍 때릴 때면 손등이 아려왔다. 흰 테이프에 감춰져 손등을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테이프를 떼어낸다면, 바늘에 찔린 자국으로 가득할거라 생각이 들었다.

 

  끼익, 문이 열리며 대근이 들어왔다. 윤아가 퀭한 표정으로 대근을 올려다보았다. 대근의 표정은 여전히 화나 있었다.

 

 

  “치료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치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오는 줄 알아라.”

 

 

  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 말을 하고 싶어도 말할 힘조차 없었다. 사실 침대 눕거나 앉기를 반복하는 것도 힘겨웠다.

 

 

  “파티시엘 일에 손을 떼라.”

  “그렇지만…….”

  “넌 할 수 없다. 내가 겪었고 너의 엄마도 겪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겨내지 못한 걸 너라고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딱 한 번만 기회 주시면 안 되나요? 아직 시도도 못 해봤잖아요.”

  “사람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지.”

  “이건 어쩔 수 없는…….”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것에 비롯되었다. 너도 마찬가지다. 지금 네가 안정제를 꾸준히 먹지 못한다면 언제든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인데 뭘 시도 한다고.”

  “왜 자꾸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딸이 뭘 좀 해보겠다는데,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실 수도 있잖아요!”

 

 

  윤아는 다시금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대근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 네 주제를 아직까지 모르다니. 정말 다시 파티쉐 일을 하면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냐?”

  “네.”

  “좋다. 날 따라와라. 의사한테는 말해두겠다.”

 

 

  윤아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대근의 뒤를 따랐다. 대근이 도착한 곳은 로제와인 학원이었다. 윤아는 간판을 보자마자 얼마 전 지욱과 함께 왔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대근은 열쇠로 문을 연 다음 윤아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윤아는 조심스럽게 학원에 발을 디뎠다. 여전히 학원은 깨끗했다. 벽 쪽에 구비되어있던 오븐을 보니 다시금 손에서 환상통을 느꼈다. 윤아의 가슴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근은 팬트리에서 재료를 꺼내어 조리대 위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초다. 지금 당장 호두타르트를 만들어봐라.”

 

 

  윤아는 대근의 말에 힘겹게 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재료를 잡았다. 밀가루를 핸드 믹서기 전용 볼에 넣고 물과 계란을 넣었다. 그 다음 고정된 믹서기에 꽂고 작동했다. 집에 있던 믹서기와 같은 것인데도 유난히 시끄럽게 들렸다.

 

  로제와인에서 화재가 났을 때 자신이 반죽하고 있었던 상황과, 6년 전 빵집에서 화재가 난 사실도 모른 채 반죽을 하고 있던 이미지, 마지막으로 현재 반죽을 섞으려고 하는 손의 이미지가 겹쳐보였다. 타르트 반죽을 피케하고 오븐 팬을 쥐었다. 손이 떨려왔다. 대근은 말없이 윤아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윤아는 대근의 눈치를 보고 뒤돌아 오븐을 보았다. 탕, 하는 소리에 이어서 타르트 틀이 바닥에 뒤집어졌다. 윤아의 다리에 힘이 풀려 타르트 틀 앞에 주저앉았다. 대근이 다가갔다. 윤아를 마주보고 쭈그려 앉았다. 마치 더러운 걸레라도 집듯이 집게손가락으로 타르트 틀을 들어 옆으로 치웠다. 일그러지고 찢어진 반죽이 윤아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게 지금의 너다. 나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건 너다.”

 

 

  ‘우리의.’

 

 

  “너의 한계는 여기다.”

 

 

  대근은 윤아를 스쳐지나가 학원 문 앞까지 가다가 다시 윤아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미간을 찌푸렸다. 윤아와 같은 처지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던 율의 뒷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 때 당시 율은 절규하며 목 놓아 울었었다. 대근은 살짝 고개를 돌려 눈을 감은 뒤, 다시 눈을 뜨고 밖으로 나갔다. 2층에서 1층 계단으로 내려올 때에 대근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외삼촌의 전화였다.

 

 

  -너 윤아를 데리고 어딜 간 거야!

  “여기 학원입니다.”

 

 

  외삼촌이 전화를 끊었다. 대근은 천천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학원 입구 옆에 섰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불을 지피지는 않았다. 대근이 파티시에였을 당시 금연을 한 후 생긴 버릇이었다. 피지도 않을 거면서 항상 가슴팍 주머니에 달고 살았다. 딱히 의미를 두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면 담배를 물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게 되면 담배가 입술에 짓이겨져 있었다.

 

  학원 입구 앞에 검은 차가 세워졌다. 이어서 외삼촌이 문을 열고 입구를 향해 뛰려다가. 대근의 모습에 멈춰 섰다. 먼저 말을 건건 대근 쪽이었다.

 

 

  “저한테 그렇게도 이곳 열쇠를 받으라고 하셔서 받았는데, 결국 이런 식으로 이 학원을 쓰게 됐군요. 다시 한 번 더 확인시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대근은 외삼촌과 윤아를 놔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 외삼촌은 대근의 말에 손이 떨려올 정도로 주먹을 쥐다가 힘을 풀었다.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문을 활짝 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조심스럽게 윤아의 앞에 섰다. 윤아는 여전히 주저앉은 상태였다. 윤아의 손이 땅을 짚고 있었는데 몸 전체에 떨림이 가시질 않았다. 윤아가 땅을 짚은 양 손 사이에 몇 방울 떨어진 눈물이 눈에 밟혔다. 외삼촌은 윤아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없이 윤아를 안아주었다.

 

 

  “외삼촌 나 어떡해요……. 나, 내 손이 움직이지 않아요. 오븐의 열기를 볼 때마다 옛일이랑 로제와인의 일이랑 겹쳐 보여서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땅을 짚던 윤아의 손에 힘이 풀려 외삼촌의 품에 더욱 매달린 상태가 되었다. 외삼촌은 윤아를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윤아는 외삼촌의 행동에 울컥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힘겹게 외삼촌을 안듯이 옷자락을 잡았다. 외삼촌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듯, 그러나 곧 한계에 치닫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

 

 

  지욱은 그랜드 파티스로부터 받은 초청권을 외삼촌에게 건넸다. 외삼촌은 그것을 읽다가 곧바로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지욱을 파티쉐로서 그랜드 파티스에 스카웃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알 길이 없네.”

 

 

  지욱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욱이 넌 어떡할 거니?”

  “아무래도 주훤이가 걱정 돼서 곁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걔를 만나보는 것보단 네가 그곳에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죄송합니다. 로제와인 디저트 뷔페가 첫 오픈을 했을 때부터 줄곧 있었던 시간을 이렇게 쉽게 결정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외삼촌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욱의 양 손을 포개어 잡다가, 한 손으로 지욱의 팔뚝을 툭툭 토닥이며 말했다.

 

 

  “3년 간 로제와인에서 열심히 일해 준 지욱아, 수고 많이 했다.”

  “저야 말로 부족한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과 제자간의 사이는 끝이 아니니까 자주 만나 뵈러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무슨 일이 있음 연락하고.”

  “하루 빨리 로제와인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요. 윤아도요.”

 

 

  지욱은 사장실에서 나와 주훤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그들의 통화엔 침묵이 흘렀다. 지욱이 침묵을 깼다.

 

 

  “그렇게 됐어.”

  -그럼 시작하자. 이제 1위는 우리야. 어서와, 그랜드 파티스의 마스터.

 

  병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대현과 규동이 들어왔다. 이어서 리하도 들어왔다. 리하는 낯선 장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윤아는 몸을 일으키며 그들을 반겼다. 서로가 어색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윤아가 환자복이 민망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와, 왔어?”

  “네가 왜 이런 데에 입원했어? 정신과는 왜?”

 

 

  규동은 리하의 어깨를 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리하는 아차, 라고 읊조리곤 입을 꾹 다물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가볍게 지나칠 질문이 아니었다.

 

 

  “그 후로 어떻게 됐어?”

 

  “안 그래도 그걸 말해주러 왔어. 화재 복구공사가 몇 주 걸리나봐. 다른 호텔이나 백화점은 그대로 운영하지만 우리는 그러질 못하지. 그 동안 휴가로 조치를 취하고 마스터께서 파티쉐 전원 개인이나 무리지어 여행과 단기 일자리를 알아봐주셨어. 다른 파티쉐들은 전부 오늘 출발한 상태야.”

 

  “그럼 너희들도 오늘 출발하겠네.”

  “아니.”

  “왜?”

  “널 기다려야 하니까.”

 

 

  윤아가 한숨을 쉬며 규동에게 말했다.

 

 

  “막연하게 기다리지 말고 가. 그게 너희들한테 좋아.”

  “그런 생각하지 마. 기다려줄게. 보통 경기도권으로 알아보는데 우리는 조금 다르게 읍에 위치한 제과제빵 전문 유치원이래. 기숙사 제도라서 그런지 시설이 정말 좋더라고. 그런 곳에 네가 빠지긴 그렇잖아.”

  “전혀. 난 괜찮으니까 너희들 먼저 가.”

 

 

  윤아는 규동의 말에 단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리하는 듣다못해 짜증이 밀려와 윤아에게 화를 냈다. 이렇게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쉽게 거부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다 오늘 출발 했는데, 우린 너 하나 기다리겠다고 기차 티켓 예약도 늦춰 놨단 말이야! 근데 왜 자꾸 안 간다는 거야?”

  “그야 막연하니까.”

 

 

  윤아는 자신이 그곳에 갔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자신의 상태가 현재 이 모양인데 누군가를 가르쳐준다는 게 웃겼다. 아이들에게 반죽 섞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니, 숨이 가빠져 왔다. 자신이 반죽을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니 속이 울렁거렸다. 윤아의 몸이 빙의가 들린 것처럼 떨리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리하는 윤아의 발작 증세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누군가 발작을 하는 모습을 처음 보기도 했다. 대현은 얼빠진 리하를 툭툭 치며 어서 간호사를 부르라고 말했다. 규동이 자신이 가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대현은 윤아의 손을 잡았다. 리하는 몸이 경직된 상태로 윤아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대현은 윤아의 눈 부근 위에 손바닥을 얹고 나긋하게 말했다.

 

 

  “침착해. 천천히 숫자에 맞춰줄 테니까 그거에 맞춰 숨 쉬어.”

 

 

  대현의 손길에 윤아의 발작이 멈췄다. 이런 모습만큼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정신적 이상이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윤아의 눈가로 감정이 차올랐다.

 

 

  ‘언제나 그랬듯이 애들이 또 다시 멀어진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반복되는 삶은 싫었다. 또 한 번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거나 놓치기 싫었다. 그런데 상황은 윤아가 마음먹은 것대로 따라주지 못했다. 윤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대현은 손바닥으로 그것을 느꼈는지, 손을 떼고 윤아의 눈물을 대신 훔쳐 주었다. 그러고 나서 환자 침대에 반쯤 살짝 걸터앉아 윤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간호사가 들어왔지만 다시 이성을 차린 윤아를 보고는 진정제나 하나 놔주겠다며 나갔다. 규동과 리하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성거리기만 했다.

 

 

  “많이 서러워?”

 

 

  대현이 말했고 윤아는 규동과 리하가 문 앞에 있는 사실을 몰랐다.

 

 

  “애들은 몰라. 내가 걔네들과 다시 활동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막연한 건지.”

  “그래도 6년 전의 사고를 겪고도 일어나서 로제와인에 들어왔잖아.”

 

  “그래 6년이야. 6년이란 시간이 걸렸어. 지금에서 6년이 걸리면 서른이야. 서른 되어서 뭘 다시 시작해? 애들은 지금보다 더 성장해있을 거야. 그리고 기능장 시험도 치르게 되겠지. 한참 뜰 시기에, 내가 걔들과 같이 가고 싶어도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따라잡지 못해.”

 

  “넌 6년이란 공백기를 가지는 바람에 경험이 남들보다는 비교적 부족한 편이었지만, 금방 로제와인의 TOP을 이뤘잖아. 그것도 매 월말평가 때마다. 거기다가 다른 파티쉐들을 이끄는 리더도 됐잖아.”

 

  “지금 당장 치료를 한다고 해도 6년 만에 다시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6년이든 7년이든 10년이든…….”

  “너 그렇게 마음 약하게 먹는 애였냐? 내가 아는 임윤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즐겁게 일했다고. 안 되는 거라면 며칠을 밤새서라도 해냈어.”

  “즐겁지 않아.”

 

 

  대현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은 전혀 즐겁지 않아. 어제 아빠가 병실에 찾아왔어. 아빠가 나더러 치료가 끝나는 즉시 집으로 돌아오래. 난 너희들과 일하고 싶어서 싫다면서 기회를 달라고 말했어. 아빠가 기회를 주겠다며 로제와인 학원으로 데려갔어. 재료를 나한테 주면서 호두타르트를 만들어보라고 말했어. 난 설마하며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어. 그런데 오븐 앞에 딱 서는 순간 주저앉았어. 그 때 나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 여기가…….”

 

 

  ‘미치도록 하고 싶은데.’

 

 

  “나의 한계라고. 나 지금 매일이 너무 끔찍스러워. 내 스스로를 증오해. 이렇게 나약해 빠진 나를. 내가 너무 혐오스러워.”

 

 

  정말 하고 싶었던 꿈. 그것에 손을 뻗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을 때.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수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해야할 때. 그것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윤아는 인생에 두 번을 겪었다. 누군가 그 느낌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라고 말한다면 가히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윤아는 힘에 겨웠다. 도저히 혼자 앉을 힘도 없었다. 자신과 눈을 마주한 대현에게 안기고 싶었다. 대현은 윤아의 그런 마음을 눈치 챘던 것인지 윤아를 안아주었다. 윤아는 대현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어떡해 정말. 정말……, 어떡해. 난 정말 하고 싶은데.”

  “내가 기다려줄게.”

  “막연해. 너도 금방 날 질리고 돌아서게 될 거야.”

  “난 막연하게 널 16년 동안 기다려왔어. 이런 내가 너랑 같이 기다려주기에 부족한 사람이야?”

 

 

  대현 역시 막연하게 기다렸던 경험이 있으니, 윤아가 막연하게 치료를 끝내는 것을 어쩌면 기다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난 널 이해해줄 수 있어. 널 질려하거나 어디로 떠나지 않을 거야.”

 

 

  대현은 윤아를 토닥여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널 많이 좋아하니까.”

 

 

  윤아는 목이 메어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대현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대답을.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때마침 외삼촌이 병실에 들어왔다. 외삼촌은 대현과 윤아가 껴안는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건 대현과 윤아도 마찬가지였는지 급히 간격을 두며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규동과 리하도 그들의 눈치를 보다가 슬금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윤아가 어색하게 미소를 띠며 외삼촌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외삼촌은 윤아의 야윈 얼굴에 불과 20분 전에 했던 간호사의 대화가 떠올랐다.

 

 

  ‘저기, 임윤아 환자분 보호자 맞으시죠?’

  ‘네. 윤아에게 문제라도 생겼나요?’

  ‘다름 아니라 환자분이 배식되는 죽을 전혀 먹지 않아요.’

  ‘왜요?’

  ‘그냥 거부해요.’

  ‘언제부터요?’

 

  ‘한, 며칠 됐어요. 환자분의 아버님께서 잠시 어딜 데려간다고 해서 보내줬을 때부터였어요. 그 때 어디서 뭘 먹고 탈난 게 아닌 가 검사도 해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더라고요. 이 상태로 계속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다면 환자분 건강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외삼촌은 윤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외삼촌의 눈빛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많이 힘들지?”

 

 

  윤아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죽이 맛없니? 왜 계속 안 먹었어?”

  “그냥 입맛이 없어서…….”

  “너 건강 생각해서 주는 거니까 꼬박꼬박 챙겨먹어. 외삼촌이 매일 여기에 올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니까 말이야. 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되면, 외삼촌은 걱정되어서 편히 일을 할 수가 없어.”

  “알겠어요…….”

 

  “윤아야, 넌 이 치료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니?”

  “당연히 로제와인에 복귀하는 거죠.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케이크를 만들고 싶어요. 아직 못 만들어본 디저트도 정말 많은 걸요.”

  “정말 하고 싶니?”

 

 

  윤아는 외삼촌이 무엇을 두고 질문하는 것인지 알았다.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하고 싶다는 마음은 진짜예요.”

  “힘들어도 견뎌줄 수 있겠어? 너의 선택에 따라 달렸어. 어쩌면 네가 겪어왔던 공포보다 더 할 거야. 그래도 할래?”

 

 

  윤아는 여태껏 겪어왔던 공포보다 더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망설였다. 힘겹게 침을 삼켰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기간은 로제와인이 신장개업할 때까지. 너희 아빠는 분명 네 치료가 끝날 때 집으로 데려간다고 했지만, 그건 너무 막연한 시기라서 언제 널 데리고 올지 몰라. 그 전에 우리는 선두를 쳐야해. 윤아 넌, 돌아가고 싶은 곳이 집이야? 아니면 네가 항상 바라왔던 로제와인의 조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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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2016 / 12 / 3 751 0 9801   
78 78 너니까 가능한 거야 2016 / 11 / 29 840 0 8572   
77 77 단 한 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2016 / 11 / 29 790 0 11402   
76 76 오늘 밤, 방으로 들어와 2016 / 11 / 29 601 0 7223   
75 75 대체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2016 / 11 / 28 730 0 8898   
74 74 우린 단 한 번도 널 2016 / 11 / 28 667 0 11084   
73 73 당신의 모든 것 내가 빼앗아 2016 / 11 / 27 799 0 11412   
72 72 세 번의 변화 2016 / 11 / 26 521 0 10595   
71 71 넌 정리 했어? 2016 / 11 / 26 560 0 8272   
70 70 좋아, 좋아해 2016 / 11 / 25 478 0 9770   
69 69 기회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 2016 / 11 / 25 568 0 10534   
68 68 그 누나는 행복한 사람이네 2016 / 11 / 24 541 0 6712   
67 67 부디 이 아이만큼은 2016 / 11 / 24 844 0 8561   
66 66 너의 한계 2016 / 11 / 24 707 0 8925   
65 65 신은 나의 위치를 실감나게 해 2016 / 11 / 23 855 0 8859   
64 64 이게 무슨 일이야 2016 / 11 / 23 446 0 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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