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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의 탑
작가 : 베로니카
작품등록일 : 2016.8.22

인간의 신을 만들고자 하는 소녀의 이야기

 
CHAPTER 1. 하얀 사신 (4)
작성일 : 16-11-11 06:15     조회 : 388     추천 : 0     분량 : 8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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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율은 결국 에이렌의 침대를 차지하고 코를 골며 방에서 잠들었다. 레이도 리율 근처의 바닥에 앉은 채 졸고 있었다.

 

 해가 지고 에이렌은 공방 밖으로 빠져나와 수장실로 이어지는 나선의 계단을 올랐다.

 

 에이렌은 수장실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서 그 자세 그대로 멈췄다. 요즘 들어 수장실로 들어갈 때 마다 생기는 정체불명의 두근거림 때문에 굉장히 불쾌했다.

 

 에이렌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한 번 옳다고 생각한 것. 그것을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 결국은 후회로 변하고, 후회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면 어느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게 된다.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에이렌은 자신을 그렇게 타이르며 수장실의 문을 열었다.

 

 안은 언제나처럼 어둠에 잠겨 있었다. 에이렌이 안으로 들어서 문을 닫자, 입구 가까이에 위치한 홰가 푸른 불꽃을 내며 타올랐다.

 

 에이렌은 통로처럼 길게 이어진 홀을 따라 걸었다. 어둠속에서 타각, 타각 하는 발걸음 소리만이 울렸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복도의 양쪽에 걸린 홰에서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홀의 끝에서 에이렌은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예를 표했다.

 

 “에이렌 아넬리스, 수장님을 뵙습니다.”

 

 주변의 불이 환하게 밝혀지더니, 몇 겹이나 쳐진 베일 뒤로, 수장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온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어서라. 오늘은 그렇게 딱딱하게 예를 차릴 필요가 없다. 네가 첫 번째 마법사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불렀으니까.”

 

 에이렌은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눈꽃의 칭호를 받았다고 들었다.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수장이시여.”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칭호를 들을 때 마다, 에이렌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몸이 싸하게 식는 감각을 느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수장이시여.”

 

 에이렌은 수장의 그림자를 응시한 체 이야기했다.

 

 “내 사랑스러운 딸아,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이냐.”

 

 수장의 말에는 여전히 온화함이 걸려 있었지만 질문하는 에이렌의 말에는 날카롭게 날이 섰다.

 

 “어째서 절 첫 번째 마법사로 추천하신 것입니까.”

 

 “…….”

 

 수장은 에이렌의 말에 한 동안 대답이 없었다.

 

 에이렌은 처음부터 자신이 첫 번째 마법사로 추천된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었다. 리율이 추천했다고 해도 자신이 7인의 마법사들의 동의를 얻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추측 해봐도 수장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수장의 추천이 없었다면 자신이 첫 번째 마법사가 되기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나마 자신에게 우호적인 키세르와 그레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5인의 마법사들에게도 좋은 인상이 아니라는 것은 에이렌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느냐?”

 

 “전 다른 마법사들과 다릅니다. 그들이 절 첫 번째 마법사로 추천할 리가 없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의 손이 미친 것을 짐작한 따름입니다.”

 

 수장의 그림자는 짧게 웃더니 말했다.

 

 “그렇구나. 네 말이 맞다. 널 첫 번째 마법사로 추천한 것은 나다.”

 “어째서입니까?”

 “그 자리는 다른 누구보다 네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이다. 회색의 마법사보다도 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이렌의 강한 부정에 수장의 목소리에도 약간의 언짢음이 담겼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들은 절 동류로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그들과 다른 마법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수장께서 후일을 생각하신다면 저보다는 다른 이를 첫 번째 마법사로 뽑는 것이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지금은 현명한 자의 도움으로 다른 이들은 잠시 침묵하고 있지만, 곧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은 뻔합니다.”

 

 수장은 에이렌의 이야기를 듣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에이렌의 이야기는 타당했다. 마법사라는 족속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 무엇보다 개개인의 연구와 명예를 우선시 한다. 마법사들이 명예욕이 강한 만큼 그들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연구하는 마법에 쏟아 붓는다.

 

 하지만 에이렌은 그런 이들과 달랐다. 자신에게 있어서 마법은 숨쉬는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으며 흩어진 조각을 이어 맞추는 퍼즐과 같은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마법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되먹지도 않은 열여덟살의 한낱 계집이 그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에이렌 자신조차 예측이 가능한 일에 어째서 수장은 무리해가면서 까지 자신을 첫 번째 마법사로 만든 것인지 이해가 미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다름 아닌 눈꽃의 마법사. 그대다.”

 

 에이렌과 수장의 언쟁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에이렌은 이번만큼은 잠자코 동의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번엔 아버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플레티아시어는 많은 마법사들을 모으는데 성공했고 그들 중에서도 빼어난 자가 많습니다. 저는 … 어울리지 않습니다.”

 십 년. 길다면 긴 시간이었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에이렌이 탑의 초석을 놓고 7인의 마법사들과 탑을 쌓은지 십년이 흘렀다. 그 십 년 사이에 플레티아시어의 소문은 대륙에 퍼져있는 모든 마법사들에게 꿈의 장소가 되었다.

 

 모든 마법사들이 플레티아시어에 오길 희망하는 것은 마법사들의 비원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고대의 지식이 담긴 서적들.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기 힘든 연구 재료들. 연구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유한 환경. 마법사들이 연구에만 집중 할 수 있는 자원으로 넘쳐났다. 그 자료의 기반과 재물은 모두 수장의 것이었고 이는 탑에 마법사들을 모으기 위해서 수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제공했다.

 

 탑-플레티아시어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단 하나의 항목에 동의해야 했다. 그리고 이 탑에 도달하여 소속된 사람들이 아무리 사교성이 없는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동의하는 단 하나의 이상.

 

 탑의 존재 목적 자체가 마법사가 다다를 수 있는 의문의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신을 만드는 것.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인간만을 위한 신을 만든다.

 

 “렌.”

 

 수장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나는 너 말고 다른 마법사가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는 생각 할 수가 없구나.”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저보다 두 번째 마법사, 현명한자 키세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수장은 에이렌의 말에 갑자기 크게 웃었다. 에이렌은 영문을 몰라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무엇인가 실수라도……?”

 

 수장은 한참을 웃고 나서야 멈추더니 여전히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너를 첫 번째로 추천한 것은 물론 나이기도 했지만 최초에 이야기를 꺼낸 것은 현명한 자였다.”

 

 현명한 자라 하면 키세르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가 나를 추천했다고? 어째서?

 

 에이렌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가 에이렌에게 우호적이긴 했어도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을 감수하면서 추천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렌.”

 

 수장은 다시 한 번 에이렌은 애칭으로 불렀다.

 

 “너는 누가 뭐라 해도 이 탑의 첫 번째 마법사다. 현명한 자가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플레티아시어의, 이 탑을 만든 목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자도 너이며 그것을 위해서 가장 희생하고 있는 자도 너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너는 이 탑을 위해서 사선을 넘고,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았다. 이 탑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과 비교해서 너보다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는 자는 없다.”

 

 “…….”

 

 “그렇기에 너는 그들의 가장 위에 있을 필요가 있다. 아니, 그럴 권리가 있다. 이제 내 뜻을 알겠느냐? 나의 마법사야.”

 

 에이렌은 잠시간 침묵을 지키고서 대답했다. 에이렌에게는 더 이상 반론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첫 번째 마법사라는 사실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수장이시여.”

 “이해 해 주어 고맙구나.”

 

 그리고 수장은 잠시 말을 끊고서 기침을 했다. 기침은 듣는 사람이 괴로운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그것은 죽음이 가깝게 다가온 환자의 것이었다. 에이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장이 사람을 만날 때 베일 뒤에서 그림자만 보이며 이야기 하는 것도,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한참 뒤에 기침이 멎고 수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선 지침과, 괴로움이 담겨 있었다.

 

 “변변치 않은 모습을 보여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부디 하루 빨리 건강을 되찾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쿨럭, 쿨럭.”

 

 수장은 또 다시 짧게 기침을 이어갔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한 참이나 계속되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후, 축하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괴로운 소식을 전해야 할 걸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파서 자꾸만 기침이 나는구나.”

 

 나름대로 수장의 농담이었지만 에이렌은 웃지 않았다.

 

 수장의 말 중 ‘이어질 괴로운 소식’, 이라는 것을 에이렌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단순히 축하함의 의미만 있었다면 에이렌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불렀다는 이유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떤 이야긴지요?”

 

 에이렌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늘 그랬듯 높낮이가 없는 담담한 기계 같은 목소리.

 

 “신의 아이가 나타났다.”

 

 수장의 말에 에이렌은 조금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리율이 신의 아이 이야기를 꺼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러하심은?”

 “그 아이를 죽여라.”

 

 조금 의문이 있는 명령이었다.

 

 “…어째서입니까. 신의 아이를 탑의 마법사로 키운다면 분명 탑에 도움이 될 텐데요.”

 

 에이렌의 물음에 수장은 즉답했다.

 

 “나는 어젯밤에 별을 보고 세상에 새로운 신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아이를 탑으로 데려 오고 싶었다. 하지만 …….”

 

 수장은 어째서인지 말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이의 운명은 너와 얽혀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빛은 에이렌 너의 별을 밀어내고 있었다.”

 

 에이렌은 어째서 수장이 말을 삼켰는지 알 것 같았다. 점성술에 있어서 다른 별에 의해서 자신의 별이 희생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점성술은 타인의 운명을 점치는 것이긴 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점성술을 행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해석되었지만 수장에 의해서 행해졌다면 그것은 상당한 신빙성을 지니고 있었다.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듯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태어나는 자가 있으면, 죽는 자도 있다.

 

 어쩐지 에이렌은 웃음이 났다.

 

 “절 걱정해주신 것입니까. 수장이시여.”

 “넌 나의 사랑스러운 마법사니까. 네가 없이는 우리는 이상에 다다를 수 없다.”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별은 최초에 동남쪽에서 떠올랐다. 그렇다면 물과 강의 나라, 딤아즈에서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물과 강의 도시 딤아즈. 풍부한 물 자원으로 동남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다. 비옥한 토지 때문에 식량은 풍족했고 그 덕분에 사람들의 인심은 넉넉했으며 온화했다. 하지만 딤아즈에서 태어났다는 것만 알아서는 그 새로 태어났다는 신의 아이는 찾아낼 수 없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자세한 것은?”

 “가까운 시일 내로 찾을 수 있을 듯 하니 준비 해두거라.”

 “네.”

 “그리고…….”

 

 베일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가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 수장은 잠시간 수장은 마른기침을 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모양이었다.

 

 “걱정이 되어 너의 운명도 조금 점쳐 보았다.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거라.”

 “아닙니다. 수장께서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장은 잠시 공백을 두고서 대답했다.

 

 “너의 운명을 점쳤을 때 어째서인지 수레바퀴가 보였다. 그것은 운명을 돌리는 바퀴. 이번에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네가 틀린 결정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구나.”

 

 수장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수장이 말하는 그 선택이라는 것이 자신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저는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남길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수많은 희생을 발판삼아 완성할 이상향을 눈으로 보기도 전에 죽는 건 아직 일렀다.

 

 자신의 죽음이 운명이라면 수장의 말이 틀렸길 기도하는 수밖에.

 

 그리고 에이렌은 마지막으로 수장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고서 수장실을 빠져나왔다.

 

 ◆

 

 수장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 에이렌은 곧장 별의관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들어간 곳은 마법사의 공방은 아니었지만 마법사의 공방을 방불케 하는 난장판이었다.

 

 방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양피지 뭉치들이 테이블 위고 바닥이고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파묻힌 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자그마한 얼굴에 갈색 단발의 여성이었다. 전체적으로 도서관의 사서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에이렌이 들어왔는지 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가며 계속해서 무엇인가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탑의 외부 연락책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에이렌은 굳이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고, 문 근처에 쓰러져 있던 의자를 세워 거기에 앉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에이렌이 들어온 걸 눈치 챘는지 그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덕에 테이블 오른쪽에 쌓여 있던 양피지 뭉치들이 넘어지는 바람에 종이뭉치가 흩날렸다.

 

 “이번에 첫 번째 마법사가 되신 에이렌 님 아니세요?”

 “안녕하세요, 에밀. 님 자는 빼줘요.”

 “그럴 수야 없죠. 마법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자리에 오르신 분인데.”

 

 존경이라니, 에이렌은 씁쓸하게 웃었다. 에이렌이 한참을 사정해 겨우 님, 자를 빼고서야 대화가 제대로 이어졌다.

 

 “음, 며칠 뒤에 탑 밖으로 나가신다 그거죠?”

 “네. 준비를 해줘요.”

 

 에밀이 하는 일 중 하나는 탑의 마법사가 임무나, 긴 여행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외부의 용병과 연계하는 중간 책을 하고 있었다.

 

 “보자, 에이렌 씨가 가장 최근에 나갔던 일이…….”

 

 에밀은 다른 사람은 아무리 봐도 분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양피지 더미에서 무엇인가 찾아서는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필립 후작의 일이었군요. 이 건에 대해서 에이렌 씨의 이전 담당이었던 디오 씨가 …….”

 

 에밀은 또 다시 양피지를 뒤져 몇 장을 꺼내들었다.

 

 “안타깝게도 사망했네요.”

 

 디오는 꽤 긴 시간동안 에이렌의 전담호위를 맡았던 용병이었다. 에이렌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도 밝은 사람이었고 말수가 적은 에이렌을 꽤나 잘 배려했다.

 

 이전에 필립 후작의 저택에 침입했을 때 후작을 지키고 있던 병사 하나에게 등을 찔렸다. 말을 남길 틈도 없이 단번에 숨이 끊어졌다.

 

 에이렌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에밀은 몇 장의 양피지를 더 찾아 읽고 나서 말했다.

 

 “에이렌 씨 아무래도 빠른 시일 내에 또 다시 전담자를 찾기는 힘들겠네요. 에이렌 씨와 같이 다니면 사망자가 자주 나오니 아무래도 계약된 용병단에서도 다들 꺼려하는 분위기라서 말이에요.”

 

 에이렌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혼자서 나갈게요. 마차만 준비해 줘요. 일정은 다음에.”

 

 방을 나서려는 에이렌을 에밀이 붙잡았다.

 

 “앗, 그건 안돼요! 원래 원칙대로라면 7인 마법사 분들이 밖으로 나가실 땐 사실 열 명 이상이 붙어야 한다구요.”

 

 에이렌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많은 인원은 필요 없어요. 호위로 한명만 있으면 괜찮아요. 없어도 딱히 상관없어요.”

 

 용병이 굳이 자신을 뒤따르다 죽은 모습은 에이렌에게 있어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저도 오랫동안 에이렌 씨를 봐 왔으니 잘 알고 있죠. 에이렌 씨가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다른 마법사들과 다르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거 에요. 하지만 절대로 혼자서는 안돼요.”

 

 에밀은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고서 에이렌과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다른 사람이 봤더라면 눈싸움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에이렌의 고집에 두 손을 든 것은 에밀이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나서는 일자에 맞추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보내 드릴게요. 하지만 저도 강경책을 써서라도 반드시 한 사람은 구해서 보내겠어요.”

 

 에밀의 안경너머로 그 의지가 불타올랐다. 에이렌은 에밀의 눈동자를 보며 좋아요, 하는 대답을 남기고 에밀의 방을 나섰다.

 

 에이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답을 후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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