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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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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을 공포로 떨게 만든 희대의 악마, 혈마존.
그의 영혼이 기억을 잃은 채 차원 이동을 한다.
한 소년과 몸이 바뀐 후 깨어난 혈마존.
기억은 지워지고 싸가지없는 본성만 남았다.
욱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살벌한 말투와 그의 독자무공.
살인광이었던 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신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본성이 어디 가나….

 
19 화
작성일 : 16-07-15 13:41     조회 : 391     추천 : 0     분량 : 6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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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시각.

 꿈의 밥상 일층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달각, 달각.

 안쪽에서 잠겨 있던 문은 한참 동안 덜걱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곧 비스듬히 열렸다. 틈새로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일을 하던 프라이스였다.

 그가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소를 머금었다.

 “크크. 데이먼은 아직도 문을 안 고쳤군. 이렇게 허술해서야.”

 그는 주방 뒷문이 부실하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문손잡이를 쥐고 몇 번 돌리면서 천천히 흔들면 잠긴 문이 쉽게 열렸던 것이다.

 프라이스는 어둠 속에서 눈빛을 빛내며 주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술통 보관실에 넣어뒀다고 했지?’

 그는 잠시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주방은 달빛이 별로 새어 들어오지 않아서 바깥에 비해 많이 어두웠다.

 ‘후후. 내일 단체 예약 손님을 또 받는다고? 날 잘라내고 그렇게 좋은 일만 생기게 내버려 둘 수야 없지.’

 프라이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단체 예약 손님을 성공적으로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가 벽을 더듬어 가다가 어느 순간 뚝 멈췄다.

 ‘여기다.’

 술통을 보관해 두는 창고였다.

 그가 창고 문을 열었다. 문은 쉽게 열렸다.

 어쩐지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설마 식재료 도둑이 오늘 또 찾아왔을 거라곤 데이먼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여겼다.

 오늘도 식재료를 몽땅 도둑맞으면 데이먼은 자신을 해고시킨 것에 대해 후회하리라. 프라이스가 식재료를 담당하면서 주방을 관리할 때는 단 한 차례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프라이스를 해고하자마자 계속해서 안 좋은 일만 생긴다면, 인간이라면 으레 아무런 관계없는 전후 사정도 인과관계처럼 느껴지게 마련인 게다.

 ‘음? 그런데 식재료가 어디 있지? 온통 술통뿐이잖아.’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거기서 뭐 하냐?”

 프라이스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가 기겁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 누구냐!”

 상대를 확인한 프라이스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입을 척 벌리고 말았다.

 레온이 팔짱을 긴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하냐고.”

 이 녀석, 눈치챈 걸까?

 프라이스는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마땅한 대답을 궁리했다.

 그는 너무 당황해서 레온이 자신에게 하대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온이 마주 쪼그리고 앉았다.

 “너 여기서 식재료 훔치려고 그랬지?”

 역시! 이 녀석 눈치챘어!

 프라이스는 순식간에 절망에 휘감겼지만, 그래도 한 발 빼보려고 노력했다.

 “아, 아냐! 내가 왜 그런 짓을!”

 “그럼 여기 왜 왔는데? 그것도 내가 말한 술통 창고를 왜 뒤지고 있는 건데?”

 “그, 그건…….”

 “식재료 훔치려고 왔지?”

 “아니다!”

 “솔직히 말해봐. 어차피 다 들통나 버렸잖아.”

 “아니다! 절대 그런 게 아니야!”

 “쉬이. 조용히 하자. 사람들 다 깨겠다. 너 그러다가 식재료 훔치러 들어온 거 다른 사람도 다 알겠어.”

 그 순간 프라이스는 한 가지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러고 보니 아직은 레온밖에 모르는군! 그럼 이놈을 밀쳐 내고 곧바로 도망간다면?

 내일 레온이 모두에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모든 사람에게 들키는 것보다야 낫다. 내일이라면 발뺌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증거가 없는 이상에야 어쩌겠나. 번개를 맞은 레온이 꿈을 꾸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적당히 우겨도 될 일 아니겠나.

 생각을 정리한 프라이스가 레온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조금 진정이 되자 상황 파악도 빨리 됐다.

 “레온, 혹시 오늘 낮에 일부러 나한테 거짓정보를 흘린 거냐? 내가 식재료를 훔친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서?”

 “호오. 그럼 역시 식재료 훔치러 왔던 쥐새끼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렇다면 혼나야지.”

 프라이스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아쉽지만 너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순간 그가 레온을 확 밀어냈다. 아니, 밀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레온의 반사 신경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쉭! 파박!

 레온이 눈 깜빡할 사이에 프라이스의 마혈을 점해 버렸다.

 프라이스는 아찔한 충격을 받는 것과 동시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움직이기 힘들 거야. 무리하지 마.”

 레온의 말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안색이 굳어버린 프라이스가 악을 썼다.

 “네 이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쉿! 좀 닥치라니까. 동네 사람 다 깨우겠네.”

 “너 이 녀석, 그래도 내가 너보다 형이거늘. 어떻게 나한테 이런 짓을!”

 “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같이 싸가지 없는 것들은 동생이래도 싫다, 이 쌍놈의 새끼야.”

 “뭐? 쌍… 뭐?”

 따악!

 레온이 다짜고짜 프라이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프라이스는 두 눈알이 툭 튀어나오는 줄만 알았다.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눈물까지 핑 돌 지경이었다. 레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 이 새끼. 어제 그렇게 식재료 훔쳐갔으면 됐지, 기어코 오늘도 찾아와? 넌 인간이 되먹질 않았어. 이 쌍놈의 새끼야.”

 “이 자식이!”

 따악!

 다시 뒤통수를 맞은 프라이스가 조금 기어들어 간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내가 한 짓이라는 걸 알았지?”

 “이런 양아치 같은 짓을 할 놈이 너 말고 누가 있냐? 너 솔직히 말해봐. 살아오면서 남이 잘 되는 것 보면 괜히 배 아프고 그랬지? 너보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꼴을 못 봐주겠지?”

 프라이스로서는 정곡을 찔린 셈이었다.

 레온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런 짓을 한다고 네가 얻는 게 뭐야? 단지 복수야? 너 같은 놈을 위해서 내내 고민하고, 일부러 일자리까지 알아서 구해주는 사람의 뒤통수를 쳐? 넌 뼛속까지 찌질이야. 이 쌍놈의 새끼야.”

 따악!

 “크윽!”

 프라이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뒤통수가 너무 아팠다. 그리고 순둥이처럼 보였던 레온이 지금 이 순간 너무 무서웠다.

 레온이 다시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물었다.

 “너 신전에 가본 적 있냐?”

 “…….”

 “대답 안 하지.”

 “없, 없다.”

 “그렇지.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있을 리가 없지.”

 “그, 그건 왜.”

 “질문은 내가 한다. 너 처자식 있냐?”

 “없다.”

 “잘됐군. 앞으로 신전에서 봉사하도록 해.”

 “뭣? 웃기지 마라!”

 “내가 지금 너 웃겼냐? 아니면 내가 그렇게 우습냐?”

 “…….”

 레온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의 손에서 뼈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네 몸을 이제부터 불구로 만들 거다. 하지만 생활하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야. 게다가 그 몸, 나는 고칠 수 있거든?”

 “무, 무슨 짓을 하려고!”

 “끝까지 들어. 앞으로 신전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해. 그래서 착해지도록 해. 네놈이 정말 착해지면 내가 네 몸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까.”

 “내가 왜 네 말을 고분고분 들어야 하지?”

 “안 들으면 어쩔 건데? 맞아 죽을래? 아니면 네가 지금까지 이 가게에 한 짓을 모두 까발릴까? 지난 수년간의 공금횡령, 식재료 절도 두 차례. 널 현행법으로 붙잡아서 지금이라도 당장 경비병들에게 넘겨봐? 그럼 넌 평생 옥살이하다가 인생 종치는 거야. 그럴 바에 내 말 듣는 게 낫지 않겠어? 너 같은 놈 그렇게 멋대로 살다가 언젠가는 한 번 호되게 당하거든. 네가 생각할 때 네가 한 잘못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 살다 보니 이럴 수도 있을 것 같지? 그런데 그러다보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나쁜 놈이 되는 거야. 그걸 내가 지금부터 막아주겠다는 거야. 고맙게 생각해.”

 프라이스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뭔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대꾸할 말도 없었다.

 “이제 알아들었지? 어차피 너한테는 선택사항이 없어.”

 레온이 마지막으로 히죽 웃었다.

 프라이스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일단 네가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니 주둥아리부터 막아놔야겠다.”

 레온이 순식간에 프라이스의 아혈을 점해 버렸다.

 그리고 차례차례 그의 몸을 주물러갔다.

 두 어쌔신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단근환동술을 시전했다. 어쌔신보다 몸이 훨씬 약한 프라이스였기에 레온으로서도 수월했다.

 하지만 프라이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고통에 전신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그의 눈이 허옇게 뒤집어지고 있을 때쯤 레온이 문득 동작을 멈췄다.

 “참, 신관님께는 반드시 내 말을 듣고 봉사하러 왔다고 해야 해라. 난 대신관이 될 거거든.”

 ‘너, 너 같은 악마가 대신관이 된다는 건 인류의 재앙이다!’

 물론 프라이스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을 뿐, 그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신전 마당 청소를 하던 알과 룬은 신관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여러분께 희소식이 있습니다.”

 알과 룬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신관을 바라보았다. 어제 레온에게 미리 듣긴 했지만 그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늘부터 새로운 식구가 늘었답니다. 소개시켜 드리지요.”

 “안녕하세요. 프라이스입니다.”

 프라이스가 어딘지 힘없는 목소리로, 하지만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신관이 마냥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분도 레온의 안내를 받고 이곳으로 오게 된 분입니다.”

 ‘설마가 역시였군.’

 알과 룬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특히 룬으로서는 드디어 자신이 부려먹을 수 있는 막내가 하나 생긴 셈이었다.

 프라이스가 쭈뼛쭈뼛 소개를 했다.

 “저는 원래 마르텐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레온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 후로 그분의 숭고하고도 고귀한 뜻에 감동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자잘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만, 앞으로는 좋은 일만 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홀로 핀 꽃처럼 될 것입니다.”

 역시나 책을 읽는 듯한 뻣뻣한 어조.

 ‘이놈도 어지간히 몹쓸 짓을 한 모양이구나.’

 알과 룬이 속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신관은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일렀다.

 “그럼 두 분께서 프라이스에게 신전 내의 생활에 관해 알려주십시오.”

 말을 마친 신관이 다른 곳으로 가고 나자, 알과 룬은 비릿한 조소를 노골적으로 머금었다.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냐?”

 “무, 무슨 소리요?”

 두 사람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것을 본 프라이스는 내심 긴장했다.

 “레온님이 보냈다며? 그럼 어지간히 싸가지 없는 짓을 했단 이야기잖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선배(?)의 입장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초면에 실례지 않소.”

 “실례는 무슨.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너도 몸이 정상은 아니겠지?”

 프라이스가 놀라서 쳐다보았다.

 “그럼 당신들도?”

 “그래. 하지만 네가 여기 온 순서로 봤을 때 막내니까 우리 말을 잘 들어야 해.”

 “웃기는 소리!”

 “이 녀석이!”

 룬이 나서서 프라이스를 밀어서 넘어뜨렸다.

 전신의 근육과 힘줄이 제 멋대로 뒤틀려서 꼬마 수준의 힘밖에 낼 수 없는 그들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장난처럼 민 것에 불과했는데도 프라이스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넘어졌다.

 그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서 이를 갈았다.

 “네놈들이 뭐라고!”

 프라이스가 달려가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역시 애들 장난 수준.

 “네놈들이라니!”

 알과 룬이 동시에 프라이스에게 달려들었다. 막내는 확실히 처음부터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 세 사람의 싸움은 차마 봐주지 못할 정도로 한심했다. 힘 좀 쓰는 꼬마가 와도 세 사람을 한꺼번에 이길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세 사람은 나름 진지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투닥투닥.

 “에잇!”

 “이얍!”

 투닥투닥.

 “막내로서 순종해!”

 “싫다! 내가 왜 막내냐!”

 투닥투닥.

 마침 신전을 출퇴근하는 성직자 한 명이 멀찌감치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나름 목숨을 걸고(?) 싸우는 세 사람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친해진 모양이구나. 참 마음도 여린 순수한 사람들이지.’

 그가 지나가고 나서도 서열 정비를 위한 그 처절한 싸움은 한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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