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7. 4.
대한민국, 충청도
대전 월드컵 경기장, 퍼플 아레나.
수용 인원 40,535명.
2001년 1450억의 예산을 들여 건립한 경기장으로 대전 시티즌의 홈구장이다. 대전의 팀컬러와 융합되는 경기장이기에 별칭이 퍼플 아레나이다.
105m × 68m의 주경기장을 가지고 있으며 반개폐식 철골 캔틸레버 구조로 건립되었다.
17.85˚ ㅡ 30.37˚ 사이의 경사로 건립된 PC 구조의 관람석, 지형을 이용한 3차원의 안마당 개념 도입, 지게다리 형상을 모티브로 한 구장은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오늘 이 경기장에서 K-리그 2004의 전반기 결산이 끝나고 최초의 올스타 경기가 열린다.
* * *
올스타전은 자선 경기의 형태에 가깝다.
이기면 좋고, 져도 상관없는 경기.
남을 이기려는 노력과 투쟁보다는 경기장에 와준 K-리그의 팬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한 경기가 올스타전이다.
이곳에 나선다는 것은 K-리그 팬들에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팬 투표 방식으로 출전 선수를 뽑기 때문에 실력과 스타성까지 검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히, 그랑루베의 어린 영웅으로 지지받는 지후가 올스타에 이름을 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원에서 올스타전에 나간 것은 지후와 GK 이윤재, MF 김도현, FW 나르손 뿐이었다.
투표로 뽑은 베스트 11은 다음과 같다.
중부 팀
구단
연고
선수
득표수
포지션
수원
이윤재
283,179
GK
수원
조병국
268,860
DF
성남
이기형
168,948
DF
성남
싸 빅
115,221
DF
서울
김지곤
148,484
DF
대전
이건우
223,745
MF
인천
최태욱
215,234
MF
서울
이인용
173,214
MF
수원
윤지후
230,115
MF
서울
김은중
222,246
FW
수원
주재진
170,630
FW
양 팀을 통 틀은 최다 득표자는 다름 아닌 김남인 선수. 김남인 선수의 2002년 포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도 됐고, 학교 때문에 전 경기 출장이 불가능한 지후가 아직 팬들에게 완벽하게 인식되지 못했다는 점도 된다.
남부 팀
구단 연고
선수명
득표수
포지션
전남
김영광
175,169
GK
전북
최진청
233,860
DF
전남
김태형
216,948
DF
울산
박진섭
206,281
DF
포항
이민성
132,444
DF
전남
김남인
339,775
MF
전북
윤정환
110,244
MF
부산
노정윤
213,234
MF
전북
김태형
170,165
MF
울산
최정국
182,246
FW
광주
차동국
180,530
FW
그것 말고도 올스타 투표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정도의 사람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여하튼 지후는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감독이 수원의 감독인 차범수 감독이 아닌 유광래 감독이어서일까, 그를 선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다.
지후의 나이가 어린 것도 있겠지만 다분히 요하네스 본프레테 감독을 의식한 행동인 것이 분명했다. 이번에 국가대표 감독이 참관하는 만큼 A매치에 나갈 만한 나이가 되는 선수들을 위주로 짠 것이다.
[요하네스 본프레테 감독님과 김준호 감독님의 시축으로 K-리그 2004 올스타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본프레테 감독과 김준호 감독의 시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올스타전답게 경기는 루즈하지도, 긴박감 넘치게 흐르지도 않았다.
전반 20분 이관용이 허리에서 공을 끊어 내어 나르손에게 연결했다.
지후는 그것을 보며 나르손의 다음 행동을 상상했다.
‘나르손은 양 옆으로 잘 치고 들어가는데……. 이번에도 그러려나?’
지후의 예상대로 나르손은 가운데로 슬슬 치고 들어가다 그대로 슛을 날렸다. 27m 정도에서 때린 강력한 중거리 포였는데, 절묘하게 골망을 갈랐다.
와아아아!
우우우우!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다시 중원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아무리 올스타전이라도 지기는 싫은 것인지 남부 팀 선수들이 점차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져도 상관없는 경기여도 찝찝하니까.
김은중의 공격을 끊어낸 현영민이 그대로 박진섭에게 연결했다. 박진섭은 공을 받자마자 한 번 고개를 들고는 공을 찔러 중원의 김태형에게 연결했다.
김태형은 공을 잡자마자 앞으로 슬금슬금 나오며 라인을 올렸다.
이미 쿠키와 차동국은 중부 팀 진영 깊숙하게 찔러 들어간 상태였고 남은 것은 공격뿐이었다.
하프 라인을 넘은 순간, 김태형이 차동국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하지만 사인이 맞지 않아서인가 공은 조금 앞으로 넘어갔고, 그대로 이인용이 가로챘다.
이인용은 공을 가로채자마자 김은중에게 스루로 공을 찔러주었다. 하프라인에서 10m 이상 전진하는 긴 패스.
그 날카로움은 남부의 허리를 갈랐고 그대로 어렵지 않게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골을 넣었다.
다시 시작된 중원의 공격. 이미 남부 팀은 조금 화나 있었다. 공격이 번번이 가로막혔을 뿐만 아니라 2대 0으로 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웃자고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악착같은 마음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일까?
하프라인에서 공을 커트한 김은중이 그대로 안으로 치고 들어온 것이다.
허둥지둥 앞을 막아섰지만 이미 반 박자 빠른 슛으로 김은중은 골을 넣어버렸다.
이제 스코어는 3 : 0.
전반 34분 만에 이루어진 3골. 그 중에 2골이 한 사람에게 들어갔다.
그걸 깨달은 남부 팀이 찬물 맞은 듯 정신을 차렸고, 그때부터 공격은 조금씩 활발함을 더하기 시작했다.
남부 팀이 정신을 차리자 공격은 조금씩 난점을 띠었다. 커트 당하기도 했고, 패스가 제법 괜찮아서 공을 뺏기도 쉽지 않았다.
다시 탐색전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서로 간에 견제만 하다가 전반이 끝나 버렸다.
“볼거리는 많은데요?”
지후가 캐논 슈터 콘테스트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후의 말에 김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팀원들끼리 맞지가 않으니까. 나는 어시스트가 2개나 나온 것도 신기하다.”
말이 올스타지 같은 팀원 아니면 얼굴 맞대기 힘든 사람들 불러 놓고 하는 게 올스타전이다. 때문에 아까 김태형의 크로스처럼 아까운 상황이 왕왕 발생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시스트가 2개인 것도 대단한 일이다.
“어쨌든 가자. 재밌을 거야.”
캐논 슛 콘테스트는 이름 그대로 대포알 슛을 누가 더 잘 차는 가다.
심사요건은 단 하나. 공의 시속.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다.
키커들이 한 명 씩 공을 차서 골에 쏘아 넣자 전광판에 시속이 떠올랐다.
115km
121km
115km
…….
그 중에 최강은 이건우가 세운 128km 였다. 126km 까지 나왔지만 이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전력을 다해야 하나?’
지후는 이 콘테스트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감독의 눈치를 보아 하니 자신이 선발로 나가기 힘들 것 같고…….
지후는 괜히 힘 빼기 싫으니까 대충 차야겠다고 생각했다.
쾅!
지후의 발이 인스텝이 강하게 공을 때렸고 공은 자석에 걸린 클립 마냥 골대로 쏙 들어갔다.
104km
전광판에 걸린 숫자였다.
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숫자였다. 마음에 쏙 들었다. 전력을 다한 게 아니지만 저 정도면 준수한 것 아닌가?
혼란한 경기 중에 저 정도 시속이 나올 것이다. 페널티킥이나 프리킥이 아닌 이상 일반 슈팅에서 최고속이 나오기는 힘든 일이니까.
“시속 104km면……. 1초에 30m 정도 날아가나?”
반사 신경이 0.4초 내외라고 할 때 공은 이미 12m 날아간 상태이고, 몸이 반응하기 시작할 0.8초 내외에는 24m 전부 날아간 셈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24m 이내에서는 어디서나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슈팅 자세와 발의 각도, 공의 위치, 타점 컨트롤 능력이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이게 가능하다면……. 막을 수 있는 선수와 팀,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야 말로 축구의 신일 테니까.
“괜찮은데?”
옆에 있던 나르손, 이윤재 등이 와서 칭찬해 주었다. 어린 나이에 저 정도 킥력이면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는 더 기대해 볼 법 하니까.
“뭘요.”
지후는 겸손하게 대답하고는 자리에 돌아왔다. 이제 다시 경기가 시작될 시간이다.
‘이렇게 보는 것도 재미있네.’
직접 뛰는 것보다 보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만, 아마 뛰는 사람은 더 답답할 테니까.
후반이 시작된 후 첫 골은 남부에서 터졌다.
차동국이 몰고 올라간 공을 아크 지역에서 쿠키에게 넘겼는데, 그대로 골로 연결된 것이다.
후반 14분 만에 터진 골로 이제 3대 1이 됐다. 30분이면 2골 넣기에는 충분한 시간.
남부 팀은 기합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중부 팀은 상대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중원에서 다시 공이 시작하고 10분가량 공은 중원 근처에서 맴돌았다. 뺏고, 뺏기를 수차례, 마침내 공이 중원을 벗어난 것은 싸빅에 의해서였다.
싸빅은 공을 앗자마자 더 끌지 않고 그대로 패스로 연결했다. 이건우에게, 그대로 김도훈에게 연결됐다.
김도훈은 골 에어리어 내부에서 그대로 강슛을 때렸고, 공은 혼전 중에도 착실하게 골대를 갈랐다.
결과는 다시 4대 1. 남부 팀의 기세는 꺾일 만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중원에서 시작한 공이 김태형이 김병지에게, 김병지가 훼이종에게, 훼이종이 쿠키에게 유려하게 연결된 것이다.
쿠키는 공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공을 때렸고 19m 정도 거리에서 골을 쑤셔 넣었다.
이제 4대 2.
난타전이었다. 남부가 지고 있지만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팀이고, 중부가 이기고 있지만 아차 하다가 2골 더 먹히고 무승부로 갈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양 팀을 강하게 자극했다. 남부는 더 강하게 공격, 중부는 철저한 단속과 역습.
칼과 방패의 싸움은 결국 남부의 패배로 끝났다. 철저하게 막아서는 방패의 단단함을 뚫지 못한 것이다.
2004 K-리그 올스타전은 중부 팀의 우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