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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21세기 무인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6
21세기 무인 더보기

작품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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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열 배 강해진다면, 나는 백 배 강해질 것이다!"
임한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약자를 유린하고 서민을 괴롭히던
조직폭력배와 비리 정치인, 악덕 기업주들은
한 영웅의 출현 앞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제 악의 세력은 단 한 명의 적,
임한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한다.

 
23 화
작성일 : 16-07-14 15:24     조회 : 579     추천 : 0     분량 : 1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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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장 친구

 

 

 

 

 “스르르릉.”

 카페 오딘의 자동문이 열렸다. 토요일 오후의 소란스럽던 카페 안이 일순 조용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작스런 카페 안의 침묵에 의아해 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출입구를 돌아보았다.

 장신의 사내가 들어서고 있었다. 검은 잠바와 블랙진을 입은 사내는 카페 안에 들어서면서 안에서 누구를 찾는 듯했다.

 그에게서 묘한 박력을 느낀 사람들이 대화를 중단한 것이 카페가 순간적인 정적에 잠긴 이유였다. 하지만 곧 사람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대화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느낌의 사람을 보았다고 해도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에게 계속 집중할 이유는 없다. 다시 카페가 소란스러워졌다.

 한이 청운을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의 대치동에 있는 카페 오딘이었다.

 오딘은 청운의 직장에 가까웠고 지연의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북구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을 가진 곳치고는 인테리어에서 북구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꽤 고급스런 장소라는 것만은 틀림없고, 전체적인 장식물의 배치가 상당한 전문가의 솜씨임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카페 안을 조용히 떠도는 음악은 흔히 듣기 힘든 아랑훼스협주곡이었다. 주인의 취향이 꽤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카페의 창쪽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자신을 손짓으로 부르고 있는 청운을 보았던 것이다.

 “한아! 이 자식! 형사가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어디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가 있겠냐? 5분이나 늦었어, 인마! 숙녀 분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오늘은 네가 쏴라!”

 자신의 옆자리에 한을 앉힌 청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의 맞은편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인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청운의 바로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어깨 부근에서 짧게 커트한 머리와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가 활발한 성격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흰색 티 위에 검은색 가죽 재킷을 걸친 모습이 하얀 피부와 잘 어울렸다. 그녀가 청운의 애인 유지연이다. 한을 올려다본 그녀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번졌다.

 “한씨! 몇 달 만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반가워요.”

 “중국이 그렇게 고생스러운 곳은 아닌가 보군요. 지연 씨도 얼굴이 좋아졌습니다.”

 “그런가요? 청운 씨도 저를 보더니 그렇게 말했는데, 정말인가 보네. 중국에서 더 오래 있어야 될까 봐요.”

 지연의 말에 청운의 눈이 도끼눈이 되더니 한을 노려보았다.

 “너! 입 다물고 있어. 한마디라도 이상한 말해서 지연이가 한국에 늦게 돌아온다고 하면… 알지? 임한, 너 죽음이야!”

 한이 대답 없이 웃고만 있자 청운은 입맛을 다시며 농담을 그만두었다. 한의 덤덤한 미소가 정말 농담 상대로는 꽝이라는 걸 다시 환기시켜 주고 있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한을 상대로 하는 농담은 메아리가 없는 것이다.

 “재미없는 자식. 오늘 인사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이분이시다. 흐흐, 소감을 말해 봐라.”

 지연의 옆에 앉아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청운이 말했다.

 “소감?”

 “오늘따라 이놈 말귀 정말 못 알아듣네. 얼마나 미인인지 감상을 말해보라고, 인마!”

 청운의 장난스런 멘트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미인이었다. 순수하게 외모로만 따지자면 옆에 앉은 지연보다도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윤기 나는 긴 생머리가 등허리 중간쯤까지 내려왔고, 희고 깨끗한 피부와 흑백이 뚜렷한 두 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차분한 눈길이 한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누군지 기억나지 않니?”

 청운의 얼굴에는 아직도 장난기가 가시지 않았다. 청운의 말에 한의 뇌리에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기억력은 거의 초인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본 것이라면 결코 잊지 않는 그의 능력으로 미루어, 그녀를 보았을 때 바로 기억나지 않았다는 것은 직접 만난 적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가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는 뜻도 된다. 그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서영은 씨?”

 “딩동댕! 기억할 줄 알았다. 네 놈이 잊었을 리가 없지. 그래 영은 씨다.”

 그녀였다. 청운이 군입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도움을 부탁했던 여자다. 1년 반 정도 수련한 상태였던 천단무상진기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여자이기도 했다. 한의 얼굴을 바라보는 서영은의 시선에는 호기심과 반가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궁금해 하던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정식으로는 처음 뵙는 거네요. 한 씨 말씀 너무 많이 들었어요.”

 맑은 음성이었다. 한은 그녀가 예전보다 살이 좀 붙어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6년 전 그녀는 상당히 말라서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했다. 당시 사진으로 본 첫인상이 자신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던 것을 그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의 가냘프던 인상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저 녀석에게 들은 얘깁니까?”

 “예.”

 한이 청운을 바라보며 묻자 서영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긴 생머리가 부드럽게 물결쳤다. 서영은의 대답을 들은 한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본 청운이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아무렴 내가 영은 씨한테까지 너를 돌쇠라고 소개했겠냐! 지연이가 얘기했다면 몰라도. 좋은 얘기만 듬뿍 했으니까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어, 인마! 그렇다고 인상까지 찡그리고… 너도 미인 앞에서는 별 수 없구만, 드디어 천하의 임한에게도 봄바람이 부는 것인가!”

 청운의 장난기 어린 말에 서영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힐끔 쳐다본 한의 표정에 별 변화가 없자 자신의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화가 났다. 앞에 앉은 저 덩치 큰 남자는 자기에게 관심도 없는데 자기 혼자 들뜬 것 같았다.

 영은이 한을 보고 싶어 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녀의 주변에 불쑥불쑥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간을 조이게 만들었던 건달 같은 남자가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게 된 지 며칠 뒤였다.

 그녀는 친구인 지연에게서 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조직폭력배 같았던 남자들을 무슨 재주로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차례에 걸친 부탁에도 불구하고 한을 만날 수는 없었다. 상대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났다.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를 그녀는 그때까지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한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온다는 지연의 얘기를 듣고, 이제야 한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보기에 한은 청운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남자였다. 청운은 평소 지연이 속을 썩을 정도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웬만한 탤런트나 모델보다 더 미남이기 때문이다. 성격도 부드럽고 달변가인 데다가 유머러스하면서 착하기까지 하다. 또 그는 지연이라는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순정파였다.

 그런 청운이 목숨처럼 아낀다는 친구의 모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청운과 닮은 점이 없었다.

 한은 일단 몸이 컸다. 청운도 작은 키는 아닌데 한의 귀 정도까지 밖에 되지 않으니 최소한 185센티미터는 넘는 키였다. 체중도 틀렸다. 청운은 늘씬한 체형이고 군살이 거의 없는 편이다. 물론 청운의 몸에 근육도 별로 없다는 것을 영은은 알고 있었다. 지연, 청운과 함께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 놀러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이라는 이 남자는 언뜻 보아도 90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였다. 직업이 형사라고 들었는데 시장에서 산 듯한 검은 잠바와 검은 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잠바의 열린 자크 사이로 보이는 검은 티가 가슴의 근육에 달라붙어 있었다. 우람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옷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탄력 있는 근육이다. 카페 안에 들어와 자신들의 자리까지 오는 그의 걸음걸이는 춤을 추는 사람처럼 부드럽고 유연했다.

 커피를 마시는 긴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대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강인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별명이 철대인이라더니 그 별명과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그녀는 지연이 중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한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썹이 짙고 콧날이 우뚝 섰다. 턱의 선이 굵었고 눈이 깊이 들어가 있었다.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얼굴이다. 어떤 얘기를 들어도 눈빛의 변화가 일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무정하다는 느낌도 주는 얼굴이다.

 지연은 자신을 만날 때면 한이 부드러워진다고 했었는데, 지금의 모습이 부드러운 것이라면 평소에 어떨지 상상이 되었다. 지연이 이야기할 때 가끔 돌쇠 씨가, 돌쇠 씨가 하곤 했는데, 충분히 그런 별명을 붙일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정말 넓어요. 제가 일하는 곳이 도시라서 그곳에 처음 갔을 때는 한국과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어요. 여행을 하기 전에는요. 회사에서 삼일 휴가를 주길래 옛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 쪽에 가보고 싶어서,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연변 쪽을 갔었어요. 철도를 이용했었는데 그때 느꼈죠. 땅이 정말 넓다는 것을요. 개발이 많이 진행이 되었다는데도 평야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소설에서나 읽던 대평원이라는 것이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평야의 끝이 지평선이었어요. 믿을 수 있어요?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요! 우리나라처럼 산에 막혀 있지 않아서 끝없는 대평원의 느낌을 문자 그대로 받을 수 있었어요. 부럽죠, 청운 씨! 한 씨!”

 중국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지연은 신이 나 있었다. 처음 나가서 겪은 외국생활이었고, 친구인 영은과 청운, 그리고 한도 다른 나라 이야기를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자신에게 열중하고 있었다.

 지연이 출장 가 있는 곳은 톈진(天津)시였다. 텐진은 1997년 이후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는 도시였다. 톈진시는 중국 4대 직할시 중 한 곳이다. 텐진의 화위엔산업단지에는 그녀가 다니는 대한상사의 중국지사가 있었다.

 “그때 얘기, 해 주실 수 있어요?”

 지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영은은 지연이 중국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자 한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영은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깨달은 지연과 청운의 얼굴에도 궁금한 빛이 떠올랐다. 6년여가 지난 일이지만 그때 일의 경위는 한에게 부탁을 했던 청운도 잘 알지 못했다. 한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한이 간단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다물자 영은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스쳤다.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무척 궁금했거든요! 굳이 말씀을 안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무런 대꾸 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한을 보자 영은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런 분위기가 청운과 지연은 익숙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자신 앞에서 이렇게까지 무덤덤한 남자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기에 답답함은 더했다.

 “영은 씨, 저 자식 입 다물면 세상 누구도 못 열어요. 그 일에 대해 듣는 건 포기하시고 저녁 먹으러 갑시다. 배고프지 않아요?”

 옆에서 보던 청운이 영은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식사를 제안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기도 했다. 카페의 한쪽 벽에 걸린 고풍스런 괘종시계가 7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과 청운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청운은 2시간 가깝게 쿵쾅거리는 음악소리를 들었더니 골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나온 계단 위로 ‘이카루스 나이트클럽’이라는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녁을 지연과 영은을 위해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먹은 그들이 호프집에서 간단하게 술을 마신 후 찾은 곳이 이곳이었다.

 지연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나이트클럽에서 몸을 푼 지 오래 되었다면서 청운에게 안 가면 죽을 줄 알라고 협박해서 온 곳이었다.

 청운은 정말 나이트클럽에는 가기는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그는 벌써 애처가의 수준을 넘어 공처가의 기질을 드러내고 있었다.

 친구인 한이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한의 소매를 잡아끌어서 데리고 왔다. 지연에게 당할 후환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음껏 흔들어서인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청운은 지연에게 팔짱을 끼인 채 옆에서 걷고 있는 친구를 보았다. 지연과 영은이 같은 미인의 블루스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는 목석같은 인간, 스테이지에서 춤을 출 때는 지연과 영은에게 수작을 거는 남자들을 감탄스러울 만큼 완벽하게 차단하던 놈, 한의 입가에는 지연이 가끔 갑작스럽게 다리를 걸거나 옆구리를 찌르는 장난을 할 때마다 부드러운 미소가 생기고 있었다.

 “청운 씨,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청운의 오른팔에 팔짱을 끼고 걷던 영은이 물었다.

 “흐흐, 저놈.”

 청운이 턱으로 한을 가리켰다. 영은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한 씨는 다른 사람하고는 조금 다른 거 같아!”

 “그래?”

 “청운 씨하고 지연이가 한 씨 얘기를 자주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음…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른 세상을 보는 사람 같은 느낌을 받았어. 함께 있으면서도 홀로 있는 것 같은 느낌… 말로 표현하기가 좀 어렵네.”

 “영은 씨 말이 맞아. 저놈은 다른 사람과 달라. 아마 내가 저 녀석의 유일한 친구일 거야. 내게 숨기는 건 거의 없는 놈인데 다른 친구 이야기는 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나도 저 녀석의 전부를 알고 있지는 못해. 비밀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모두가 비밀 같은 녀석이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저 녀석은 진짜야, 그것도 극상의 명품이지. 남 주기에는 정말 아깝다는 느낌이 굴뚝같이 들지, 그렇지?”

 청운이 영은을 바라보며 웃자 영은도 함께 웃었다.

 “한 씨가 어떤 남자인 지는 잘 모르겠어. 오늘 처음 봤는걸. 하지만 생각이 깊은 남자라는 인상을 받았어. 생긴 것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아, 한 씨는.”

 “어! 저 녀석 생긴 게 어때서? 영은 씨! 저 자식만 보면 생김새에 열등감을 느끼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정말? 솔직히 외모는 청운 씨가 훨씬 나은걸. 한 씨가 잘 생겼다고 하기는 좀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하하, 영은 씨가 저 녀석의 진가를 알려면 아직 멀었어. 저 녀석을 알고 싶으면 더 만나봐야 할걸?”

 한은 청운과 영은이 나누는 얘기를 들으며 가볍게 웃었다. 청운이 왜 영은에게 저렇게 열심히 자신을 홍보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저 녀석은 그가 오랫동안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하지만 청운은 지금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었다.

 한은 여자에 메이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관심도 없는 것이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청운과 한은 수원전철역에서 내렸다. 지연과 영은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나서 한 시간 가깝게 타고 온 전철이었다. 용산에서 전철을 갈아탈 때 외에는 눈을 한 번도 뜨지 않았던 청운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새벽 1시가 넘은 전철역 앞은 한산했다. 간간이 벤치에 누워 신문을 덮고 자는 취객들이 보일 뿐이었다.

 “한아! 한잔 더 할까?”

 청운이 손으로 술잔을 입에 털어 넣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근 한 달 만에 만난 친구와 이대로 헤어지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지 뭐. 어차피 내일은 출근 안 해도 된다는 교주님 말씀이 있으셨으니까!”

 이장후 반장의 별명이 교주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라서 이 별명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굳어진 것이 십여 년째라고 했다. 지하도를 벗어나자 아직 꺼지지 않은 나이트클럽과 술집의 네온사인들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이곳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가자. 사람이 너무 많아!”

 한이 청운을 보며 말하자 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이 내색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시끄러운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아는 그였다.

 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둠에 잠긴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어딘가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났다. 한의 눈길이 10미터 정도 떨어진 골목길로 향했다. 청운이 한의 팔을 툭 쳤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조금 전 비명소리, 여자 목소리 같았어!”

 청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이 골목으로 걸어갔다. 청운이 그 뒤를 따랐다.

 10여 미터의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좁히던 한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청운은 골목의 안쪽을 볼 수가 있었다. 네 명의 남자가 여자 두 명을 사이에 두고 위협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둘 다 미니스커트 차림이라 주저앉은 여자들이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음에도 팬티의 끝이 보일 듯 말듯 했다. 청운의 눈살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이런 씨발년들이!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네!”

 여자들의 주변에 서 있는 남자들도 2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그 중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침을 뱉으며 말하자 여자들의 얼굴이 겁에 질렸다.

 “왜, 왜들 그러세요? 제발 보내 주세요!”

 검은색 캐주얼 가죽잠바와 같은 색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은 오른쪽의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에 확 띨 정도로 몸매가 좋은 아가씨였다.

 “이년이, 내가 강도냐? 뭐 심하게 요구한 게 있냐고? 그냥 우리들하고 잠시 놀아달라는 거뿐이잖아. 쌍년들이!”

 여자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녀들이었다. 둘이서 가끔 가던 나이트클럽에 놀러 온 것뿐인데, 클럽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깡패 같은 남자 네 명에게 납치당하듯 골목길로 끌려 들어와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청운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가 골목 안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한이 그의 손목을 잡아 제지했다.

 청운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이 지금 개입하지 말라는 뜻임을 알아차린 청운이 한의 손을 뿌리치려다가 얌전히 멈췄다.

 그와 한은 죽마고우다. 한이 이런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궁금한 듯 자신을 쳐다보는 청운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한은 알았다. 자신과 그는 보는 것이 틀리고 당연히 이해하는 것도 틀렸다.

 “지금 말하는 녀석의 말투에는 감정이 없어. 여자들에게 관심이 있는 녀석이 아냐.”

 한의 말을 들은 청운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 것이다.

 “저 녀석들을 봐. 여자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것 같지만 주변을 계속 둘러보고 있어. 하지만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하는 행동이 아냐. 긴장감이 없어. 저놈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우리가 끼어들면 판을 깨는 거야!”

 “무슨 소리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한 청운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이 그런 청운에게 소리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쇼야!”

 “응?”

 앞뒤 설명 없이 툭 내뱉는 한의 말에 청운이 어리둥절해졌을 때였다. 한이 골목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나타났군!”

 반대편 골목에서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며 남자 한 명이 뛰어오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던 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이 쇼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된 것이다. 아직도 저런 식으로 여자에게 접근하는 녀석이 있다는 생각에 청운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너무 상투적이고 통할지 의심스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저 유치한 방법이 통한 것 같았다. 여자들을 위협하던 녀석들의 연기가 그럴 듯했던 덕분이다. 여자들이 일어나 남자의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발차기로 네 명을 쓰러뜨린 남자가 여자들을 부축해 자리를 떠났다. 여자들은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들을 구해준 정의의 사도 같은 남자에게 넋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남자의 외모가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아마도 지금 그녀들의 정신상태가 곳곳에 허점이 보이는 한편의 연극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한은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는 청운의 어깨를 쳤다.

 “노력이 가상하니 너무 욕하지는 말아라. 술이나 마시자!”

 고개를 끄덕인 청운을 데리고 한은 근처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한은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허리띠를 풀고 한잔 해도 되는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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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화 2016 / 7 / 7 483 0 7776   
8 8 화 2016 / 7 / 7 580 0 6282   
7 7 화 2016 / 7 / 7 525 0 5416   
6 6 화 2016 / 7 / 7 523 0 8139   
5 5 화 2016 / 7 / 7 654 0 7244   
4 4 화 2016 / 7 / 7 481 0 8875   
3 3 화 2016 / 7 / 7 577 0 6651   
2 2 화 2016 / 7 / 7 533 0 6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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