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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카산드라
작가 : 건망고
작품등록일 : 2017.11.16

앞날을 훤히 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믿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저주.
언어 소통의 종말.
극한의 공포심은 고립감에서 온다.
군중의 한가운데 불통의 무력감이 그를 낭떠러지로 내몬다.

 
섬에서 육지로
작성일 : 24-04-01 17:05     조회 : 22     추천 : 0     분량 : 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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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처음 체스판의 방에서 눈을 뜬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그녀의 집에서 눈을 뜰 차례였다.

 눈을 뜨고 주변을 보고 예상 대로라는 것에 안심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체스판의 방은 노골적인 메타포였다.

 나는 그 방의 남자와 체스를 두듯 서로 몸을 바꿔가며 인생을 살고 있다.

 하루는 그 남자의 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낸다.

 하루는 내 몸과 내 일상으로 돌아와 술집에서 연주를 하고 그녀와 잔다.

 

 내 몸을 갖고 생활하는 날에 이 남자는 놀랍도록 나를 제대로 연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도 내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고 아무도 조금의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조차도.

 소소한 일상의 선택의 순간마다 내가 할 법한 선택을 기가 막히게 해낸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 그녀의 물음에 알맞은 답을 하는 것.

 

 나와 지금 사귀고 있는 그녀는 이 지역에 꽤 큰 입시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그녀는 수학을 가르쳤었다는데 지금은 경영만 하고 있다.

 늘 하던 수순 대로 일하던 바에서 신청곡을 연주해주다가 합석을 하고 그날 밤 자고 눌러 앉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돌싱이라 고등학생 아들이 한 명 있다.

 아들은 기숙사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저녁에 집에 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간다.

 오늘이 아들이 오는 금요일이다.

 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시다.

 

 천천히 씻고 나갈 채비를 끝낸다.

 집에 남자가 있었다는 흔적을 완벽히 지운다.

 그녀의 아들을 위해.

 얼마 없는 짐을 캐리어에 제대로 넣고 트럼펫 케이스를 그 위에 얹은 뒤 집을 나선다.

 어쩌면 이대로 이 집에 돌아올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실은 수요일에 가게에 이제 안 나간다고 말을 해두었다.

 

 신탁이 온 것은 아니다.

 그저 심술이 났다.

 나는 지금껏 신탁에 의지한 채 살아왔다.

 신탁을 거역한 적 없고 의심한 적도 없다.

 그런데 이번 건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다.

 일주일 전 나는 몸이 바뀌었다는 기묘한 상황을 그저 받아들였다.

 그 다음 날도 나는 몸이 다시 바뀌었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였다.

 그 다음 날에 다시 체스판의 방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헛웃음이 났다.

 

 알고는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하찮은 존재라는 걸.

 하지만 나는 적어도 체스판의 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그 남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니면 그 남자는 나와는 달리 체스판의 말인 체로 만족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 남자만큼은 나와는 달리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걸까?

 

 단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지금 그 단서를 파보려고 하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일을 내 판단과 다름 없이 처리했던 이 남자가 단 한 번 다르게 행동했다.

 OO시.

 OO시 택시의 영수증.

 수요일에 그게 주머니에 있었다.

 화요일 밤 11시 28분에 지불한 택시 영수증.

 이 남자는 OO시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여기로 돌아와서 그녀의 집에서 잤다.

 그리고 몸을 두고 자신의 체스판 방으로 돌아갔다.

 이 남자가 영수증을 처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혹시 일부러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인 걸까?

 

 나도 택시를 잡는다.

 OO시로 가자고 말한다.

 OO시 어디로 갈까요, 하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 출발해서 OO시에 33,800원에 도착할 곳 아무 데나요."

 

 택시 운전수는 룸미러로 나를 흘끗 본다.

 선글라스 너머로 알겠다는 미소를 쓰윽 지어보이곤 그대로 차를 출발시킨다.

 

 OO시로 간다.

 거기서 최대한 단서에 다가간다.

 그리고 오늘은 그 시에서 잔다.

 행동으로 신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다.

 설명을 필요로 한다고.

 

 답이 온다면 그에 따라 움직일 것이고.

 답이 오지 않는다면 계속 나아갈 것이다.

 

 나는 어차피 한참 전에 죽은 사람이다.

 나는 신탁을 포함하여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다.

 애초에 지킬 것도 없고 가진 건 캐리어에 든 것과 트럼펫이 다다.

 돈은 어차피 나에겐 의미가 없다.

 

 내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것은 성 미가엘 보육원에서의 짤막한 기억이다.

 쇠창살이 있는 방에 있던 아이. 그 친구.

 거의 기척을 보이지 않는 그 방의 주인.

 그 친구와 딱 한 번 눈이 마주쳤던 기억. 그것이 주는 묘한 그리운 감정.

 그 아이의 얼굴 생김새는 기억에 남아 있질 않다.

 정말 오로지 눈동자만.

 까만 눈동자만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나는 그 눈동자를 다시 본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르다.

 그 눈동자는 거울에서 보는 나의 눈동자와 다르다.

 그 눈동자는 거울에서 보는 나와 체스를 두는 남자의 눈동자와도 다르다.

 그 눈동자는 언어 없이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그 눈동자는 분명 그때 내게 자기 뜻을 전달했다.

 

 "나를 찾으러 와. 앞으로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나를 반드시 찾아내."

 

 그 일이 있고 며칠 안에 나는 그곳을 떠났었다.

 그 뒤로 이런 섬 같은 삶을 쭉 살았었다.

 그러다 형제를 만나고.

 왕을 만나고.

 대장장이를 만나고.

 잘생긴 남자와 체스를 두고.

 그 남자의 수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파고들어 보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이 됐든 그 친구를 향해 가는 길이다.

 분명하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정면으로 파고들 것이다.

 나는 육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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