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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부유 도시 '마루'와 빈곤 도시 '달구'.
고위인사들의 욕망과 탐욕으로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달구 시민들의 불만도 최고조에 이른다.
도둑계의 악동 '카쟝'과 그의 동료 '리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富)의 재분배'다.
세계 최고 회사 '명장제약회사'의 사장 '백민관'. 그는 언제나 '젊음'을 갈구한다.
도적단 중 가장 악랄한 '흑사단'과 그들의 수장 '흑사'. 그의 목적은 언제나 '돈'.
진짜 도둑은 누구인가? 도둑을 뛰어넘는 도둑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ii858@naver.com

 
분란
작성일 : 22-04-10 21:27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7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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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흑사의 시큰둥한 대답이 불안했는지 온갖 미사여구를 줄줄 늘어놓아 흑사의 미소를 유도했다. 하지만 흑사의 만족은 그렇게 쉽게 충족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외부인들은 1시간 가까이 흑사의 앞에서 송가를 줄줄이 바치고 나서야 식당을 떠났다. 그 사이 흑사도 술을 잔뜩 마셔 취기가 슬슬 올라왔다.

 

 “오 교수, 알로와 합보를 내 앞으로 불러주게.”

 

 오 교수는 옆에서 식사를 진행 중이던 두 사람을 흑사의 앞으로 불렀다. 흑사는 1시간여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의 모든 눈이 흑사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흑사는 식당이 울리도록 외쳤다.

 

 “이 두 사람에게는 흑사단 대장으로서의 역할 말고도 다른 역할을 부여할 것이다. 바로 온드리안의 장관직이다.”

 

 알로와 합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흑사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알로는 국방부 장관으로, 합보는 외교부 장관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임명하겠다.”

 “감사합니다!”

 

 즉흥적으로 열린 임명식이었지만 축하의 크기는 어느 임명식보다 거대했다. 식당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많은 이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와아아아아아아-!

 

 흑사는 식당에 있던 흑사단원 모두를 둘러봤다.

 

 “비단 이 두 사람만이 아니다! 그동안 흑사단이 성장하는 데에 기여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보답할 것이다. 그중에 누구보다 먼저 보답할 사람은 바로 여러분이다. 마루 시민의 세금을 걷으면 그대들에게 가장 먼저 베풀겠다. 우선적으로, 여러분에게 집을 제공하겠다. 이제 더러운 숙소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집에서 푹 쉴 수 있도록 만들겠다. 그리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자동차도 무상으로 지급하겠다!”

 

 와아아아아아아-!

 

 식당은 대축제의 현장이었다. 흑사단원들의 눈에서 충성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이 세상은 여러분의 것이다! 그동안 수고 많았고! 즐겨라!”

 “알겠습니다아아!”

 

 임명식은 그렇게 끝났다. 흑사는 술을 홀짝이던 오 교수에게 다가갔다.

 

 “오 교수도 고생 많았어. 오 교수도 이제 다시 교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주겠네. 원래 있던 대학으로 돌아가도 좋고, 다른 대학으로 들어가도 좋네. 원하는 대로 말만 하게.”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민해보겠습니다.”

 “자네가 원한다면 장관직을 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내 입장에서 참 곤란하네. 오 교수는 항상 내 곁에 두고 함께 일을 하고 싶네.”

 

 흑사가 오 교수에게 장관직을 주지 않은 이유였다. 오 교수 입장에서는 서운할 법도 했다. 언제나 흑사의 옆에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흑사단이 국가를 집어삼킬 만큼 클 때까지 크나큰 도움을 준 사내였다. 하지만 흑사에게는 그만큼 없어서는 안 될 사내였다.

 

 “알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닥터 하에게도 보건부 장관직을 내리지 않으신 거 아닙니까?”

 

 닥터 하는 적벽관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원체 술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을 꺼렸다.

 

 “그래. 닥터 하도 장관을 하기엔 내가 아쉬워서 말이지.”

 

 흑사도 닥터 하가 내심 보건부 장관직을 원하는 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닥터 하의 실력이 너무 출중했기에 장관직보다는 자신의 주치의로 끝까지 함께하길 원했다.

 

 “정말 소중한 이들은 항상 내 곁에 두고 싶네.”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네.”

 “말씀하시죠.”

 “카쟝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 봐.”

 “카쟝이요? 이미 죽은 사람 아닙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이번에 카쟝을 본 것 같아서 말이야.”

 "정말이십니까?"

 "적벽관 안에 퍼졌던 연막. 카쟝이 자주 사용하던 수법이었어."

 "연막이야 최근 들어서는 다른 도둑들도,"

 "그 연막 속에서 카쟝의 그림자를 봤어."

 "그럼 어혁원을 탈출시킨 사람이 카쟝이라는 소리십니까?"

 "나도 믿기지는 않아. 그런데 말이야. 카쟝이 어혁원의 조력자라면 현재의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거든."

 

 잘못 본 거 아니냐고 묻기에는 흑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원래 사람 쫓는 건 리브의 역할로 알고 있습니다.”

 “리브에게 맡길 수가 없는 일이라서 그러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절대 리브에게는 말하지 말고.”

 "물론이죠."

 

 오 교수는 흑사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만찬은 3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고 흑사는 식당에 있는 이들과 전부 눈을 맞추고 술을 마셨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 흑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이만 들어가 보겠네.”

 

 흑사는 먼저 단상에서 내려갔다. 오 교수가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흑사님, 어디 가십니까? 아직 분위기가 한창인데요.”

 “이제 다른 사람도 만나봐야지.”

 “다른 사람이라면, 리브... 말씀이십니까?”

 “그래.”

 

 리브는 결국 파티장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흑사도 그런 리브가 걱정됐는지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피곤하시고 술도 취하셨을 테니 저와 함께 가시죠.”

 “아니야. 나를 무슨 취급하려는 거야? 내가 이 정도로 쓰러지는 건 말도 안 되지. 혼자 가겠네.”

 “알겠습니다. 그러시죠.”

 

 흑사는 흑사단을 식당에 남겨둔 채 홀로 나와 적벽관 별관으로 걸어갔다. 별관 앞에는 단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으로 접근하는 사람을 한껏 경계하다가 곧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흐, 흑사님!”

 

 그들은 난데없는 흑사의 등장에 고개를 바짝 들고 섰다. 흑사는 그 둘을 무시하고 별관으로 들어갔다. 그는 별관으로 들어가 2층 가장 구석에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안에서 소리가 났다.

 

 끼익-

 

 문이 열리고 리브의 얼굴이 보였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근래 들어 가장 푸짐하게 먹었지. 왜 식당에 오지 않은 건가?”

 "몸이 좋지 않아서요."

 "안 좋을 때일수록 더 잘 먹어야 해."

 

 흑사가 말을 꺼낼 때마다 술 냄새가 한껏 버무려져 풍겼다.

 

 “술도 제법 드셨나 보네요.”

 

 흑사는 리브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는 다과용 테이블이 있었다. 흑사가 의자에 앉자 리브는 찻장에서 컵을 꺼냈다.

 

 “리브, 달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를 도와줘서 고맙네. 당신의 역할이 정말 컸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리브는 테이블에 찻잔 2개를 올려놓았다.

 

 “리브, 원하는 것이 있는가? 나를 위해 능력을 발휘해준 일에 대한 보답을 해주고 싶은데.”

 “장비나 새로 바꿔주시면 감사하죠.”

 “컴퓨터 말하는 건가? 그런 거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지. 컴퓨터 말고 다른 건 없나? 정작 리브 자네가 원하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듣기로는 예전에 사망처리가 되어서 지금은 신원조회를 해도 사망자로 나온다고 들었는데. 맞나?”

 “맞습니다. 그래서 도망 다니기도 편했고, 지금의 일을 하기도 수월했죠.”

 “이제는 다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새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떤가? 정말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말이야.”

 

 리브는 찻잔을 흑사와 자신의 앞에 하나씩 놓고 차를 따랐다.

 

 쪼르륵.

 

 차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저는 그냥 이대로가 좋습니다.”

 “이대로라니?”

 “저는 죽은 사람으로 남겠습니다. 그게 더 편하거든요.”

 “역시 그런가.”

 

 흑사는 찻잔을 힐끔 보기만 할 뿐 입에 대지 않았다. 리브는 그의 행동을 보고는 먼저 찻잔을 들었다. 그는 알맞게 익혀진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홀짝.

 

 리브가 찻잔을 사뿐히 내려놓자 흑사도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훌쩍.

 

 흑사는 잔을 천천히 내리며 리브를 진중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당신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한낱 도적이 나라의 왕이 되다니. 난 당신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저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합니다. 덕분에 썩을 대로 썩은 온드리안의 정부가 싹 갈아엎어졌으니, 그것만 하더라도 저는 충분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것 말고 다른 소망도 있을 것 아닌가?”

 

 리브는 한 번 더 녹차를 음미하고는 흑사를 바라봤다.

 

 “아니요. 저는 다 이뤘습니다.”

 “꿈이 소박하군.”

 

 흑사는 찻잔을 들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기침을 했다.

 

 쿨럭.

 

 흑사는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피를 발견했다.

 

 “이게 무슨 피지?”

 

 그것도 잠시, 흑사는 계속해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흑사가 기침할 때마다 혈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말도 안 돼....”

 

 흑사는 리브를 노려봤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리브는 대답도 없이 그저 가만히 흑사를 지켜봤다.

 

 “리브, 왜 이런 짓을 했어?”

 

 리브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흑사는 끊임없이 기침했다.

 

 “컥, 벌써 이 정도 반응이라니... 얼마나 진하게 탔길래.”

 

 흑사는 서둘러 속주머니에서 해독제를 꺼내 마셨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소용없는 행위라는 것을 느꼈다. 사시나무처럼 떨려오는 사지가 말해주고 있었다. 리브는 미소지었다.

 

 “다 이뤘습니다.”

 “대체, 언제 넣은 거야. 켁, 분명히 내 잔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했는데?”

 

 흑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리브를 향해 몸을 던졌다.

 

 쿠당탕!

 

 리브는 힘없이 방바닥으로 엎어졌다.

 

 “분명히 같은 차를 마셨잖아! 이 새끼가 무슨 술수를 쓴 거야!”

 

 흑사는 리브의 목을 졸랐다. 그때 리브가 기침했다.

 

 콜록.

 

 흑사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리브의 입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이건.”

 

 흑사는 머리가 띵하며 얼굴로 피가 몰렸다.

 

 “나를 먹이려고 목숨을 버린 거냐!”

 

 리브는 녹차에 ‘살톡신’을 넣었다. 일전에 미네민이 건네줬던 ‘100배 농축시킨 살톡신’이었다. 생명을 죽이기에 가장 완벽한 독극물이었다. 한 방울로 코끼리도 죽일 수 있는 독으로 흑사도 익히 알고 있는 독약이었다. 리브는 흑사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자신이 먼저 살톡신이 들어있는 녹차를 들이킨 것이었다.

 

 “다 이뤘어.”

 “자기를 거두어준, 컥, 사람을 죽이다니! 살모사가 따로 없구나!”

 “이거야말로 흑사단의 방식 아니야?”

 

 흑사는 리브의 목을 졸랐다.

 

 “이런 배은망덕한, 컥, 새끼!”

 

 흑사가 기침을 할 때마다 리브의 얼굴에 핏방울이 분사되었다. 반면에 리브는 팔을 늘어뜨린 채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흑사를 향해 미소를 띠었다.

 

 “흑사, 당신도 이제 곧 죽는 거야. 영원히 살 것 같았던 당신이 말이야!”

 

 흑사의 손끝에서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미친!”

 

 흑사는 억지로 주먹을 쥐고 리브를 바라봤다.

 

 “내가 죽는다고, 컥, 뭐라도 바뀔 것 같아?”

 “바뀌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바뀌는, 컥, 건 없어!”

 “아니, 바꿀 거야. 내 친구 카쟝이.”

 “이 새끼! 알고 있었잖아!”

 

 흑사는 리브의 안면을 강타했다.

 

 퍽!

 

 리브는 흑사의 주먹을 한 방 맞더니 그대로 뻗었다. 흑사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리브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수차례 리브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이런 살모사 새끼!”

 

 퍽!

 

 흑사도 점점 자신의 몸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팔다리가 고목 나무처럼 굳어갔다. 이젠 주먹이 리브의 얼굴로 닿는 감각도 없었다.

 

 “이건 아니야....”

 

 흑사는 숨을 몰아쉬며 리브의 옆에 누웠다.

 

 “이건, 컥, 아니잖아....”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두 팔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슥. 슥. 슥.

 

 흑사의 앞으로 문이 나왔다. 그는 팔을 뻗어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컥, 거기 누구 없어?”

 

 흑사는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하지만 저 멀리 식당에서 들이는 시끌벅적한 소리뿐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는 아니라고....”

 

 흑사의 눈은 천천히 멀어 갔다. 그는 힘겹게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봤다.

 

 “다... 다... 이뤘는데....”

 

 파래진 손바닥은 그의 돌이킬 수 없다는 운명을 말해주었다.

 

 “이게... 끝이라니....”

 

 흑사는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갔다. 어렸을 적 달구에서 친구를 모아 도적단을 만든 기억, 마루로 들어와 첫 도적질을 했던 기억. 그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의 얼굴이 생생히 떠올랐다.

 

 “청사....”

 

 그 후 도적단은 점점 커지고 함께하는 이들도 점점 많아졌다. 목숨을 넘나드는 우여곡절 끝에 달구 최대 도적단이 되었고 결국 나라에서 통제하지 못할 집단이 되었다.

 

 “나의 흑사단....”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에 흑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뚝.

 

 흑사는 성인이 된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다.

 

 잠시 후, 흑사의 움직임은 멈췄다.

 

 그는 아무도 없는 별관 복도에서 엎드린 채 호흡을 멈췄다.

 

 흑사의 최후였다.

 

 

 ***

 

 

 아침은 온드리안으로 어김없이 찾아왔다. 흑사가 개국 선언을 외친 지 이틀이 채 지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적벽관 앞 광장은 어두운 얼굴들로 가득했다.

 

 광장에서는 흑사단의 리더였으며 온드리안의 새 대통령이었던 흑사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많은 온드리안 국민이 아침부터 적벽관 광장으로 모였다. 적벽관 광장 앞에는 커다랗게 흑사의 사진이 걸렸다. 사람 키의 2배가 넘는 크기의 사진이었다. 그 모습은 흑사단에게는 경외감을, 마루 시민들에게는 이질감을 동시에 주었다. 조문을 위해 온 흑사단원들은 존경심을 담은 눈빛으로 흑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광장 곳곳에는 온드리안의 국기가 걸려있었다. 흑사단의 표식인 검은 뱀이 그려진 깃발도 중간중간 휘날리고 있었다.

 

 오 교수는 광장 앞쪽에 세워진 높은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대표로 나와서 조사를 낭독했다.

 

 “그는 좋은 아버지이자, 뛰어난 리더였습니다.”

 

 흑사는 자신의 제1 목표였던 ‘온드리안을 안정적으로 장악하기’를 완료하자마자 돌연 죽어버린 것이었다. 사인은 살톡신에 의한 독사. 엄청난 농도의 살톡신이 그의 체내에 들어갔기에 발견 후 즉시 수술대에 눕혔지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그의 상태를 확인했던 닥터 하도 조치를 취할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낙담한 채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달구시에서 태어나 달구시에서 성장했습니다.”

 

 흑사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맞았던 국민들은 당황스러웠다. 새로운 대통령이 며칠 만에 죽었으니 안 놀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국민들보다 더 혼란스러운 사람은 흑사단 전체였다. 흑사만을 믿고 의지했던 그들이었기에 리더가 사라진 그들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바람은 오로지 온드리안의 평등한 삶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당연히 언론사들이 광장으로 몰려왔다. 나라를 뒤집고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도적단의 리더, 그리고 그의 죽음. 언론사에게는 매력적인 소재였다. 그들은 왕좌에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 흑사를 보도하며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루 전체가 흑사의 죽음을 바랐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지금 그들의 주위는 흑사단 천지였다.

 

 “그는 멀리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흑사단의 다음 행보도 언론사들의 관심사였다. 나라를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꼭짓점이었던 흑사가 사라진 지금은 돛을 잃은 배와 다를 바 없었다. 적벽관 앞에서는 흑사단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여지없이 보였다. 흑사에 의해 통합되었던 달구의 여러 도적단도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계속 이어졌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의 뜻을 이어받아 더 나은 온드리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 교수는 광장으로 시선을 돌려 흑사단을 쭉 훑어봤다. 며칠 전까지도 흑사로 인해 하나로 뭉쳐있던 다수의 도적단이 장례식에서는 각각 따로 군집해있었다. 오 교수의 미간에 살짝 금이 갔다.

 

 “흑사님이 원했던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 더 이상 그의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흑사단에 의해 흡수된 크고 작은 도적단은 전부 178개 단이었다. 어제까지 그 도적단들은 누가 어디 소속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무리로 똘똘 뭉쳐 동고동락을 함께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물과 기름을 한 곳에 넣어 놓은 것처럼 서로의 경계를 유지하며 서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모여 있던 집단은 알로와 그가 이끌던 작귀단이었다. 알로는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흑사의 사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상 조사를 마치겠습니다.”

 

 오 교수는 단상에서 내려갔다. 많은 박수가 쏟아졌지만 어제 식당에서 들었던 박수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소리였다. 오 교수는 단상에서 내려와 알로를 다시 쳐다봤다. 그는 흑사의 사진과 눈을 마주치며 씩 미소 짓고 있었다. 오 교수는 자리로 돌아갔다.

 

 “조만간 피곤해지겠어.”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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