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들이 무섭지 않다.'라는 메시지.
오늘도 국민들에게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보일 겸, 간단한 회의를 할 겸, 적벽관을 나와 고급 레스토랑에 방문한 것이었다. 물론 수십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온 장소였다.
“대통령에게 진실을 촉구합니다!”
레스토랑 바깥에선 대통령이 입장하기 전부터 작은 소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적단은 아니었다. 도적단의 계략으로 인해 생긴 시위대였다. 그들은 대통령의 방문 장소마다 찾아와서 전단지의 내용을 해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며칠 전부터는 동물보호협회에서도 혁원을 따라다녔다. 그들은 어혁원에게 DTS바이러스를 개발하면서 이용된 동물들에게 사죄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접근했다. 혁원이 백민관에게 지시했으니 혁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혁원을 지키는 경호원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위는 경호원들에게 저지되었고 그들의 요구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밖이 참 시끄럽네요.”
마루시의 시장 임현규는 시위대의 소리를 향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대통령은 이미 달관했다는 듯이 답했다.
“그냥 무시해. 저러다가 지쳐서 그만둘 거야.”
대통령의 그 한 마디에 모두 바깥소리를 무시하며 식사에 집중했다. 이번 저녁식사에 참석한 인원은 총 4명이었다.
온드리안 대통령 어혁원, 환경부 장관 강희철, 노동부 장관 김상언, 마루시 시장 임현규.
국방부 장관 김달성은 현재를 전시상황이라고 판단했기에 불철주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 ‘흑사단 병원 폭파 사건’의 조력자로 지목된 심은섭 외교부 장관, 원환섭 경제부 장관은 비밀리에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다른 장관들에게는 두 장관의 배신 소식을 밝히지 않았다. 다른 장관들에게 자세한 내막을 밝힌다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판단한 혁원이었다.
혁원은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가 믿고 의지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대통령은 무심하게 물잔을 내려놨다.
“표 장관이 어젯밤 숨을 거뒀다고 하네. 하지만 일단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네.”
혁원의 담담한 발언에 식탁은 정적에 휩싸였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부고 소식에 참석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폭발 현장에 있었기에 죽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사실로 다가오니 무거워지는 마음을 덜 수가 없었다. 임 시장이 시선을 내린 채 읊조렸다.
“결국, 흑사단이 정부를 흔드는 데 성공했네요.”
대통령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게. 겨우 도적단 따위가 이 나라의 정부를 흔든다는 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고 말고.”
그때 노동부 장관 김상언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정부도 정부지만, 요즘에는 도적단이 국민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그 탓에 온드리안 국민들이 이전부터 계속 대통령님께 진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이렇게 침묵만 유지하시면 국민들의 원성은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그 순간 모든 참석자가 대통령의 눈치를 보았다. 식당은 정숙해지며 바깥의 시위대 소리가 들려왔다. 대통령은 상언을 힐끗 보더니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아, 그 전단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반박하기도 귀찮던데?”
모두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는 데도 상언은 기죽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럼 그것대로 발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개 도적단이 억지로 만든 소문 때문에 내가 나서야 하나? 왜 그런 자잘한 일들까지 대꾸해야 하지? 그러면 그 자식들은 또 좋다고 더 날뛰겠지.”
“대통령님. 지금 시위대의 규모가 일주일 전보다 5배 넘게 커졌습니다. 그리고 전단지의 내용을 믿는 국민들이 30%가 넘고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가 60%를 초과했습니다.”
상언은 언론사가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조리 있게 발언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곧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됩니다.”
상언의 그 발언, 대통령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도적들의 손에 놀아나라는 건가?”
“최소한 국민들의 질문에는 답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상언은 차분하게 말하려 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 뱉을 때마다 감정을 꾹꾹 누르는 모습이 여실하게 보였다.
“싫네.”
“네?”
“싫다고. 국민들이 도적단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그럼 이대로 묵살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애초에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네. 참,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는 짓이야. 대통령이 무슨 자기들 옆집 친구인 줄 아나.”
드르륵-
김상언 장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혁원은 상언을 올려다봤다.
“자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상언은 혁원을 잠시 노려본 뒤 돌아섰다. 상언은 그대로 식당 출입구로 걸어갔다. 혁원은 그를 불렀다.
“김 장관, 말도 없이 어딜 가는 거야?”
상언은 발길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식당을 나갔다. 대통령 면전에서 보인 명백한 반항이었다. 임현규는 고조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애써 웃었다.
“다들 배고프실 텐데 얼른 식사나 하시죠. 음식들 식기 전에. 하핫.”
임 시장의 노력 덕분인지,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깨고 하나둘 수저를 들었다. 가장 마지막에 수저를 든 사람은 혁원이었다.
똑. 똑. 똑.
모두가 다시 식사를 진행하던 도중에 대통령의 경호원이 식사장으로 들어왔다. 식사 중에 경호원이 식사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대통령은 그의 접근에 호기심을 가졌다.
“김 실장, 갑자기 무슨 일이지?”
김택호 경호실장은 대통령 귀에 손바닥을 대고 귓속말을 전했다.
“대통령님, 마틴 병원이 폭파되었다고 합니다.”
“뭐? 어디가 터져?”
마틴 병원은 혁원이 어떤 장관에게 조평환 장관이 입원했다고 전달했던 병원이었다. 혁원은 기억을 곱씹다가 한 이름을 뱉었다.
“김상언.”
어혁원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수저를 놓았다.
“오늘 식사는 여기까지 하지. 김 실장은 곧장 차 대기시켜 놓게.”
혁원은 서둘러 외투를 챙겼다. 임현규는 식사 도중 인사를 하기 위해 엉거주춤 일어났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대통령은 그런 임현규를 쌩 지나치고 식당 밖으로 향했다. 식당 출구에는 시위대들이 몰려있었다.
“대통령이 나온다!”
대통령이 출구로 나오는 모습이 보이자 시위대가 더욱 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은 진실을 밝혀라!”
하지만 대통령이 바깥으로 나오기 전, 열댓 명의 경호원들이 강력하게 시위대를 진압했다.
“저리 비켜!”
경호원들은 시위대를 밀치며 대통령이 나갈 공간을 만들었다.
“얼쩡거리지 말고 어서 비켜!”
경호원들이 길을 뚫어 놓자마자 어혁원은 그 길을 후다닥 달렸다. 그는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관용차에 탑승했다.
“어서 적벽관으로 출발해!”
관용차는 곧장 속도를 올렸다.
부와아아앙-!
그때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굉음이 들렸다.
부릉-부릉-부르릉-
오토바이 10대가 저 멀리서 질주해왔다. 오토바이들은 관용차를 향해 돌진했다.
“웬 오토바이야?”
타다당!
오토바이 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오토바이의 운전자들이 쏜 총알이었다.
“흑사단인가.”
도적단은 관용차를 향해 총질하며 대통령을 쫓아갔다. 하지만 관용차는 총알로는 뚫리지 않는 방탄 자동차였다. 그럼에도 경호원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을 공격하는 그들의 등장이 당황스러웠다.
“흑사단이다! 흑사단이 대통령님께 붙으려 한다!”
경호원들도 자동차에 승차하고 관용차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 사이 오토바이 부대는 관용차보다 속도를 높이며 맹렬히 달렸다.
부와아아앙-
대통령을 지키는 경호원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경호원들이 타고 있던 차량은 오토바이 10대를 중간에 두고 좌우로 대열을 맞췄다. 곧이어 차창이 열리고 오토바이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오토바이를 타던 도적단원들은 대통령에게 흠집도 내지 못한 채 도로에 고부라져 쓰러졌다.
“해치웠나?”
그때 사방에서 엔진소리가 들렸다.
부와아아아앙-!
끝이 아니었다. 건물 곳곳에서 느닷없이 오토바이들이 튀어나왔다. 대통령의 자동차에 붙은 숫자만 해도 20대가 넘었다. 그들은 관용차 창문을 향해 총을 갈겼다.
타다다다당!
360도 전 방향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하지만 차창은 깨지지 않았다. 그 사이 대통령의 경호팀은 오토바이를 자동차로 밀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냥 차로 깔아버려! 도적단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도로에 쓰러뜨려!”
경호원들은 불도저처럼 도적단의 오토바이를 밀어냈다. 몇몇 오토바이들은 그대로 자동차에 깔렸다. 나머지 오토바이들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근처 건물 벽에 들이받았다. 그동안 대통령이 탄 차는 더욱 속도를 올렸다.
부와아앙-!
도적단의 오토바이도 어디선가 계속 등장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호원들의 필사적인 방어가 이어졌다.
“대통령님이 적벽관에 도착하실 때까지 절대 막혀서는 안 돼!”
다행히 식당과 적벽관의 거리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다가, 적벽관 근처에는 이미 군대가 포진해있었다. 적벽관에만 도착하면 대통령의 안전은 보장되었다.
“저기 적벽관이 보인다!”
경호원들은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그들은 이제 관용차를 동서남북으로 막아 오토바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호위했다. 대통령도 적벽관이 시야에 들어오자 숨을 돌렸다. 그때 운전기사가 소리쳤다.
“대통령님, 조심하세요!”
커다란 트럭 4대가 좌우에서 나타났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체 모를 트럭이었다. 트럭들은 속도를 높여 관용차보다 앞질러 갔다.
“무슨 속셈이지?”
관용차와 적벽관의 거리가 500m도 남지 않았을 무렵, 트럭들은 갑자기 관용차 전방에서 급회전했다.
끼이익-!
트럭들은 곧장 좌우로 간격을 좁혀 관용차의 앞을 막아섰다. 그 탓에 관용차도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
“유 기사, 어서 후진해서 빠져나가!”
하지만 경호원들의 차량이 사방을 막고 있던 통에 관용차가 탈출하기 쉽지 않았다. 그때 트럭 운전석의 문이 열리고 어두운 복장의 사내들이 내렸다. 트럭 짐칸에 있던 이들도 일제히 내렸다. 그들은 총을 들고 경호원들 앞에 섰다.
“대통령 사냥이다!”
도적단은 총을 들고 대통령, 경호원 구분할 것 없이 사방에 난사했다. 관용차는 방탄용 차량이었지만 총알 세례를 받으니 차량 전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투둑. 투둑. 투둑.
유리에도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어혁원은 계속해서 기사를 재촉했다.
“빨리 벗어나라고!”
기사도 어떻게든 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경호원의 차량들이 너무 빽빽이 버티고 있었다. 관용차가 그 차들을 억지로 밀고 나가야 할 판이었다. 그마저도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니 혼란스러웠다.
“총알 아끼지 말고 더 쏴! 방탄차 한 번 뚫어보자!”
강력한 소나기가 몰아치는데도 관용차는 애꿎은 경호팀 차량만 밀어낼 뿐 제대로 달아나지 못하고 있었다.
“뭐지?”
일순간 총격이 멈췄다. 사방이 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 혁원은 창밖을 관찰했다. 총을 쏘던 도적단원들이 좌우로 흩어졌다.
“무슨 상황이지?”
흩어진 단원들 사이로 보이던 것은 바주카를 들고 있는 도적단원이었다.
“이걸 맞고도 살아남나 보자고!”
바주카는 정확히 관용차 뒷좌석을 노리고 있었다.
“3!”
대통령은 차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손이 손잡이로 향했다. 그러나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방탄차에서 벗어나는 그 즉시 자신의 머리에 총알이 날아올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2!”
바주카를 든 사내는 무릎을 꿇고 안정적인 자세로 대통령을 노려봤다.
“1!”
사내의 검지가 서서히 움직였다. 혁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퍼버벙!
대통령은 자신의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땅히 느껴져야 할 고통은 없었다. 혁원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무슨 일이지?”
혁원은 천천히 실눈을 떴다.
“어라?”
관용차를 가로막고 있던 트럭들이 폭파되어있었다. 트럭 근처에 있던 도적단원들은 이미 죽거나 정신을 잃었고, 트럭은 갈기갈기 찢겨있었다. 그 트럭들의 잔해 사이로 보이는 것은 혁원에겐 구원의 손길이었다.
“탱크구나. 탱크가 트럭을 터뜨렸어.”
군대에서 탱크를 출동시켜 트럭을 박살 내버린 것이었다.
드르르륵-
탱크는 남아있던 적들에게 다가와 포신을 움직였다. 도적단원들은 강력한 병기가 등장하자 부리나케 달아났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네!”
드르르륵-
탱크는 트럭들을 밀어버리며 관용차에게 길을 만들었다.
“대통령님, 어서 따라오시죠. 지금부터는 저희가 호위하겠습니다.”
탱크 2대가 관용차 좌우에 섰다. 총을 쏴도, 트럭이 부딪쳐도, 끄덕하지 않을 위용을 자랑했다.
부르르릉-
관용차가 적벽관으로 출발하자 탱크가 사주를 경계하며 관용차를 보호했다. 관용차는 탱크 덕분에 적벽관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다.
***
충격 받은 사람은 대통령 뿐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총격전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웠던 마루시에 드디어 불씨가 붙은 것이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들, 그리고 트럭, 마지막으로 탱크까지. 마루 시민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을 넘어 혼돈까지 느꼈다. 구경거리가 났다며 흥미롭게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TV에서는 방금 발생한 소식을 발 빠르게 보도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약 30분 전, 어혁원 대통령이 도적단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어혁원 대통령은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현재 적벽관에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라고 전해졌습니다. 도적단의 정체는 흑사단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취재 후 밝혀지는 대로 자세한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어서 도로 CCTV에 찍힌 영상이 나왔다. 대통령과 도적단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나오고 있었다. 거리를 배회하던 시민들도 그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들이 서 있던 그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니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어머....”
“저게 흑사단이야?”
“대통령을 노리고 있잖아?”
CCTV화면이 끝나고 다시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더 자세한 소식은 새로운 정보가 저희에게 오는 대로,”
지지직지직-
갑자기 뉴스화면이 흔들렸다.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시민들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단순히 하나의 TV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TV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예상 외의 상황에 더욱 화면에 집중했다. 하지만 화면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며 뉴스 화면은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변했다.
지직지지지직-
거리에 있던 모든 TV가, 마루시의 모든 TV가 요동치고 있었다. 마루의 모든 스피커에서 잡음이 10초 넘게 계속되자 시민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텔레비전 화면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뉴스화면이 아니었다. 화면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가 쓰여있었다.
[지금부터 전쟁 시작]
[무고한 희생을 지양합니다.]
[살고 싶은 시민들은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그 문구를 읽고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
“뭐야, 저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전쟁한다잖아!”
“얘들아, 얼른 도망가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혼비백산하며 대피소를 찾았다. 길을 걷던 시민도,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도 모두 패닉에 빠져 도망쳤다.
“전쟁이야! 전쟁이라고!”
“어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곧 흑사단이 올 거야!”
마루 번화가에 있던 모든 시민이 살길을 찾으려 달리기 바빴다. 하지만 남아있던 시민들도 몇 있었다. 그들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마루시에 있던 TV가 전부 까맣게 변했다. 스피커에서는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민을 무시하고 살상을 가한 정부에게 벌을 줄 시간이다.”
그 순간 거리에 남아있던 시민들은 일제히 고개를 틀어 한쪽을 바라봤다. 적벽관이 있는 방향이었다. 낯선 목소리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방송을 마쳤다.
“이 전쟁은 오늘의 끝이자 내일의 시작이다.”
그 말을 마무리로 모든 TV가 한꺼번에 꺼졌다. 이제 마루의 중심 번화가는 바람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사람도, 동물도, 그 어떤 생물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을 깨운 것은 누군가의 외침이었다.
“가자!!!!!”
일순간 거리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오직 하나. 적벽관이었다.
“멈춰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너희 흑사단이냐!”
하지만 도적단들은 경찰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벽관으로 달려갔다.
탕-!
한 경찰이 공중에 총을 쐈다. 달리던 사람들은 총구에서 흩날리는 탄연을 보고는 잠시 멈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