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관은 이번이 2번째 실종이었다. 마루 시민 대부분은 저번처럼 멀쩡히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두 번의 기적은 힘들다고 민관을 애도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저건 100퍼센트 흑사단의 짓이에요.”
하룻밤 사이에 병원 두 곳이 폭발하고, 명장제약의 사장이 실종되었다. 두 사건 모두 스케일이 작지 않았고 희생자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카쟝은 모든 사건이 흑사단의 소행이라 확신했다.
“명장제약으로 한 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지금은 명장제약에 경찰이 쫙 깔려있을 거예요.”
지금 카쟝의 신경을 거스르는 부분은 백민관의 행방보다는 흑사단의 움직임이었다.
“흑사단이 드디어 움직이고 있어요.”
중절치는 카쟝을 바라봤다.
“그동안 명장제약 사장을 몇번이나 노렸다며. 이미 벌어진 사건이고 우리는 관여할 필요가 없어. 그보다는 빨리 리브를 찾아야 하지 않겠어?”
측절치도 동의했다.
“맞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얼른 리브를 데려오자.”
카쟝은 그들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흑사단을 찾아보죠.”
그들은 나갈 채비를 마치고 마루시의 골목으로 나갔다. 방법은 간단했다. 전단지가 붙어있던 장소를 기점으로 골목골목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보면 전단지를 들고 있는 흑사단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흑사단의 거점을 모르는 지금으로서는 흑사단원을 한 명이라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찾게만 된다면 그 뒤를 쫓아 거점을 특정 지을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은 오늘도 안 보이네.”
막실라팀은 며칠째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만 흑사단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카쟝은 대구치, 측절치와 팀을 이루어 숙소 동쪽 부근을 돌아다녔고, 중절치, 소구치, 그리고 견치는 숙소 서쪽 부근을 배회했다.
카쟝과 막실라팀은 보통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 새벽이 넘을 때까지 거리를 배회했다. 오늘도 저녁 8시에 숙소를 나가서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골목에 스며든 담배 냄새만 옷에 배길 뿐 흑사단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코빼기도 없었다. 그때 중절치에게서 전화가 왔다.
“측절치, 대구치 형이랑 지치를 데리고 이쪽으로 와줘. 소나루 건물 뒤편이야.”
수색을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중절치 쪽에서 성과를 올린 것이었다. 카쟝 일행은 서둘러 중절치가 있는 소나루 건물로 이동했다. 건물 뒤편으로 걸어가니 중절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검지를 입술에 붙인 채 왼손을 흔들어 조용히 오라고 지시했다. 카쟝은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건물 뒤편으로 갔다.
건물 뒤편에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두 사내가 있었다. 카쟝은 중절치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들이에요?”
“응. 방금 저 건물에 흑사단 전단지를 붙였어.”
중절치는 손가락으로 골목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엔 풀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단지가 매끈하게 붙어있었다. 카쟝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알았다는 사인을 보냈다.
“어, 이동한다.”
담배를 피우던 흑사단원들이 담뱃불을 끄고 건물 뒤로 걸어갔다. 그들은 좌우를 살피더니 가방에서 접착제와 전단지를 꺼냈다. 한 명은 벽에 접착제를 바르고 나머지 한 명이 냉큼 전단지를 붙였다. 전단지가 벽에 닿기 무섭게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확실해졌군."
막실라팀은 최대한 대기하다가 충분한 거리를 두고 뒤를 밟았다. 하지만 성질 급한 견치는 몸이 근질거렸다.
“그냥 쟤네들 덮쳐서 여관에 가두자. 거기서 간단한 고문만 해도 거점을 알아낼 수 있을 거 같은데?”
“견치야. 그런 무모한 방법은 지금은 맞지 않아. 우리가 짜놓은 계획대로 하자. 그리고 저기 봐봐.”
견치는 중절치의 말을 따라 흑사단원을 주시했다. 흑사단원들은 곧 골목을 나와 거리로 나왔다. 가로등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본 견치는 말을 잃었다.
“노인...이잖아?”
나이가 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과 50은 되어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같이 걷고 있었다. 노인은 함박눈을 맞은 사람처럼 하얀 머리를 빗질도 하지 않은 채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옆의 중년 사내는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노인과 보폭을 맞췄다. 두 사람은 큰 거리로 나오자 일반 시민인 척 평범하게 어슬렁거렸다.
그때 순찰하던 경찰들이 단원들 옆을 지나갔다. 하지만 경찰들은 그 노인의 외모를 보고는 관심도 주지 않고 갈 길을 갔다. 그 덕분에 노인은 사방을 경계할 필요도 없이, 마치 아들과 산책을 나온 것마냥 도시를 거닐었다. 인파에 섞인 흑사단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막실라팀도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저기 봐. 저기로 들어간다.”
노인과 남성이 길거리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호프집은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사장에게 여유는 없을 만큼 손님이 있었다. 중절치는 막실라팀을 멈춰 세웠다.
“다들 여기 있어. 다같이 들어가면 눈에 띌 테니까, 여기서부터는 나랑 지치만 들어갈게.”
중절치의 명령에 막실라팀은 근처에서 잠시 쉬고 있기로 했다.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카쟝은 혹여나 그 노인 일행을 놓칠까 봐 먼저 호프집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중절치가 따라붙었다.
“걱정 마. 그 노인은 저쪽으로 들어갔어.”
중절치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걸으니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노인과 중년의 흑사단원은 호프집을 구석으로 거침없이 쑥 들어갔다.
“어디로 가는 거야?”
흑사단원들은 그대로 호프집 뒤쪽 비상구로 나갔다.
“도망치는 거 아니야?”
카쟝은 서둘러 비상구로 이동했다. 그는 비상문을 열기 직전에 걸음을 멈췄다. 문 너머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영감, 전단지는 다 돌렸어?”
“예. 그렇습니다.”
“아직 다리는 쓸만한가 보구만. 알겠어. 일당은 이번 주말에 한꺼번에 챙겨주지. 오늘은 둘 다 들어가서 쉬어.”
“알겠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카쟝은 비상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노인과 중년 사내는 오른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카쟝은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봤다. 그곳에는 살집이 있는 사내가 홀로 걷고 있었다. 뒤따라온 중절치가 노인 쪽을 바라봤다.
“이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저쪽이에요.”
카쟝은 살집 있는 사내 쪽으로 접근했다. 사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그 사내를 미행하는 동안 카쟝과 중절치는 마루 중심부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살집 있는 사내는 거리를 한참 배회하다가 불현듯 옆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카쟝도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곧이어 카쟝과 중절치도 빌딩 사이에 있는 골목으로 진입했다.
“지치, 잠깐 멈춰.”
중절치는 귀를 쫑긋거렸다. 살집 있는 사내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카쟝과 중절치는 몸을 숨기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살집 있는 사내는 키가 작은 사내에게 뭔가를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있었고, 키 작은 사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돈다발과 전단지더미였다.
“저 키 작은 사람이 더 윗사람이군.”
중절치의 추측대로, 돈과 전단지를 받은 살집의 사내는 단신의 사내에게 꾸벅 인사했다. 동시에 카쟝의 다음 미행 목표는 단신 사내로 바뀌었다.
살집 있는 사내가 카쟝이 있던 방향으로 돌아오는 통에 카쟝과 중절치는 잠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살집의 사내가 그들을 지나치자 카쟝은 분주하게 단신의 사내를 쫓았다.
“아까 그 키 작은 남자. 어디로 갔는지 봤어요?”
“일단 저 골목 끝으로 나가보자.”
두 사람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움직여 키 작은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이동했다.
“저기 있다.”
다행히 카쟝은 키 작은 사내를 놓치지 않았다. 키 작은 사내는 마루시 번화가 북쪽에 위치한 능가 여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여관이 흑사단의 거점인가?”
그때 중절치가 사내의 등을 가리켰다.
“저거 봐.”
키 작은 사내는 반 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가 머리칼을 넘기는 동안 소매 부근으로 문신이 살짝 튀어나왔다. 검은 뱀의 꼬리였다.
“저거 흑사단의 징표 아니야?”
“저 위치의 문신이면 흑사단 내에서도 높은 위치의 사람일 거예요.”
카쟝과 중절치는 목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여관 정문으로 달려갔다. 운 좋게도 키 작은 사내는 안내데스크에서 안내원과 대화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 사내는 대화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갔다. 엘리베이터에는 두 사람이 먼저 타고 있었다. 키 작은 사내는 자신의 방이 있는 9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구석에 뭔가 떨어졌다.
툭.
사내는 둔탁한 소리를 따라 오른편을 봤다. 사내 한 명이 손에 든 가방을 떨군 것이었다. 별일 아닌 것을 확인하고 다시 정면을 보는데 왼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가방을 받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이 가방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키 작은 사내는 왼편에 서 있던 카쟝을 확인했다. 그는 카쟝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피식 웃었다.
“뭐?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소리니?”
“아니까 부탁하는 겁니다. 우선 가방부터 열어보시죠.”
그 사내는 두 사람을 경계했다.
“내가 가방을 열려고 허리를 숙인 사이에 날 공격하려고 하지?”
그는 의심 가득한 말투였다.
“가방은 너희들부터 죽이고 열어보지.”
사내는 옷 속에서 예리한 단도를 꺼냈다.
“하, 귀찮게 됐네.”
사내는 카쟝을 향해 거침없이 단도를 휘둘렀다. 카쟝은 허리를 뒤로 꺾어 단도를 피하며 오른발로 그를 밀어냈다. 그 사내는 승강기 벽에 부딪혔다.
덜컹-
승강기가 흔들렸다. 사내는 이번엔 중절치에게 달려들었다.
“이거나 받아라!”
사내의 팔은 짧았으나 칼질이 너무 빠른 탓에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중절치는 서둘러 바닥에 있던 가방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가방을 방패 삼은 중절치를 향해 사내는 더욱 흥분하여 단도를 휘둘렀다. 곧 그의 칼이 가방을 가로로 찢었다.
찌익-
후두둑.
가방이 터지며 속을 채우던 돈다발이 쏟아졌다.
사내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동그래졌다.
“오, 이건!”
사내는 돈을 확인하자마자 팔을 내렸다. 그는 황급히 칼을 품속에 넣었다.
“어이구, 제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급변한 사내의 태도에 중절치는 벙찐 얼굴로 가방을 내렸다.
“그 가방, 무거우실 텐데 저에게 주시죠.”
중절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가방을 건넸다. 사내는 행여나 돈이 떨어질까 봐 가방의 찢어진 부분을 위쪽으로 가도록 들었다.
“이야, 이 정도 돈이면,”
“돈은 확인하신 것 같고. 그럼 저희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을요. 무슨 부탁이십니까?”
사내는 그새 고분고분해졌다.
“리브라고 압니까?”
“리브 씨? 허어. 알 수밖에 없긴 한데.”
리브의 이름을 들은 사내는 난색을 살짝 드러냈다.
“그런데, 리브 씨는 왜 물어보시죠?”
“그 사람을 오늘 당장 만나고 싶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알려줄 수야 있지. 다만 이유를 알고 싶으면 추가로 줄 돈에서 절반을 빼고 알려주지.”
“난감한 조건을 걸었군요.”
“할 겁니까? 안 할 겁니까?”
띵-
[9층입니다.]
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들, 혹여 제가 제안을 안 받아들인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이 일을 흑사님에게 말씀드리면 흑사님은 당신들을 잡으라고 명령할 테고, 잡히게 되면 당신들은 죽은 목숨입니다.”
카쟝이 대답했다.
“거절하지 않을 거 압니다.”
“무슨 자신감이시죠?”
“당신의 시선이 돈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 가방을 꽉 쥐고 있는 손이며, 바닥에 떨어진 돈다발을 둘러보는 시선까지. 이미 당신은 우리가 누구인지보다 돈 가방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보기보단 똑똑하군요. 선생님들 운이 좋으십니다. 제가 리브 씨의 일정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거든요.”
그 사내는 바닥에 있던 돈다발을 쓸어담은 뒤 가방에 옮겼다. 그는 돈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열림 버튼을 눌렀다.
“일단 이 가방을 안전한 곳에 놓고 와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내는 9층 복도로 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중절치와 카쟝도 9층에 내려 그 사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큰돈이 지출되네.”
“그러게요. 잘 풀려야 할 텐데.”
딱히 말은 안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사내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확신했다. 그 정도로 그의 눈에서는 돈에 대한 욕망이 엄청났다.
"방에 가방만 놓고 나오면 되지 왜 이렇게 안 나와?"
"지금쯤 가방 안에 있는 돈이 진짜 돈인지를 확인하고 있을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3분도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역시나 그 사내는 함박웃음이 가득 차오른 얼굴로 등장했다. 그는 능청스럽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층으로 내려가시죠."
세 사람은 같이 여관 1층으로 내려갔다. 사내는 카쟝과 중절치에게 친절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일단 리브 씨를 찾으려면 여관을 벗어나서 좀 멀리 가야 하니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호칭은 ‘고객님’으로 하겠습니다.”
큰돈을 주고 그 사내를 고용했으니 고객이라고 봐도 무방한 관계였다. 세 사람은 여관을 나와 큰길을 걸었다.
“리브 씨가 계시는 곳은 여기와 거리가 있어서 택시를 타야 합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교통비는 제가 지불하죠.”
키 작은 사내는 싱긋 웃었다. 곧 그는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딱히 의심스러운 부분은 보이지 않아서 카쟝과 중절치도 택시에 탑승했다.
“기사님, 지르누 공원으로 가주세요.”
카쟝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혹시라도 사내나 택시기사가 허튼 수작을 부리면 바로 연막탄을 터뜨릴 준비였다. 하지만 사내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광대가 터질 만큼 싱글벙글거릴 뿐이었다. 기사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그렇게 택시는 15분을 달려 지르누 공원에 도착했다.
“고객님들, 어서 내리시죠.”
지르누 공원에 도착한 카쟝은 공원 앞에 위치한 거대한 호텔을 마주하게 되었다.
“저 호텔이 리브가 묵고 있는 호텔입니까?”
“아닙니다. 리브 씨가 묵고 있는 건 아니고, 리브 씨가 식사를 하러 종종 오는 식당이 있죠.”
사내의 안내를 따라 세 사람은 호텔로 접근했다.
“고객님, 리브 씨와의 관계를 여쭤보는 건 혹시 실례가 될까요?”
“실례는 안 됩니다만, 그 대답을 듣고 싶으면 추가금을 절반만 받으셔야 할 겁니다.”
“어이구. 그러면 안 물어보겠습니다.”
사내는 미안하다는 듯이 두 손을 합장하여 카쟝을 바라봤다.
“근데 고객님? 리브 씨가 있는 장소까지 안내해드리면 돈 가방을 하나 더 주시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그 돈 가방이라는 건 어디 있을까요?”
카쟝은 중절치가 매고 있던 배낭을 가리켰다.
“저 배낭에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이 들어있으니까, 저 가방을 받고 싶으면 어서 리브에게로 인도하는 게 좋을 겁니다.”
“네네. 그래야죠. 혹시 그럼, 가방 안을 살짝만 확인해봐도 될까요?”
카쟝은 중절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절치는 귀찮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가방을 풀었다. 가방 안에는 돈이 두둑이 쌓여있었다.
“역시, 제 고객님들이십니다. 얼른 저를 따라오세요.”
키 작은 사내를 선두로 세 사람은 호텔로 걸어갔다.
“하트원 호텔.”
사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니 하트원 호텔의 정문이 나왔다. 사내는 1층으로 들어가서 왼편에 위치한 식당을 가리켰다.
“이 식당으로 입장해서 가장 깊숙한 창가 자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리브 씨는 그곳에서 식사하고 있을 거예요.”
“어떻게 확신하지?”
“리브 씨가 늦은 밤에 이 호텔 식당을 자주 방문하거든요. 흑사단은 활동시간이 밤이기 때문에 지금이 일반인의 낮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 호텔 식당은 밤에도 열려있고, 사람도 별로 없죠. 이 식당 특징이,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뭐든지 만들어줍니다. 그 리브 씨가 말이죠. 특이하게 국밥을 시켜 먹는다더군요. 달구 후미진 골목에서나 팔 법한 국밥 말입니다. 냄새도 아주 강한 걸로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카쟝은 문득 달구시에서 리브와 먹던 국밥이 떠올랐다.
“마루시에서 잘 팔지 않는 음식이니 여기서 먹겠지.”
마루시도 잘 찾아보면 골목식당에서 국밥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밤에 열린 식당은 많지 않았고, 골목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경찰과 군인의 검문을 피하기 힘들었다. 검문 걱정이 없으며 국밥을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하트원 호텔인 셈이었다.
세 사람은 식당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러나 키 작은 사내는 식당 출입구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