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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당신의 밤을 가질 때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22.1.18

구미호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희귀 혼혈인 해나는 능력이 발현되지 않아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 납치당한 실험실 안에서
불완전한 구미호로 강제 각성을 겪으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에 시달리게 된다.

마녀를 사랑한 죄로 루만으로부터 추방당한 왕자,
유진을 유일하게 받아 준 한국에서의 첫날 밤.

유진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해나를 제압하지만 폭주로 인한
페로몬에 노출되고 그녀와의 밤을 보내게 되는데.

 
14 왕자의 여자
작성일 : 22-02-28 23:41     조회 : 179     추천 : 0     분량 : 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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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휘청거리는 걸음에 유진의 무릎이 기어코 꺾이고 말았다. 희뿌연 연기들은 무언지 알 수 없지만 치명적으로 온 신경계로 파고 들며 유진의 몸을 무력화 시키고 있었다.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이 점점 아래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바닥과 부딪친 얼굴이 제법 얼얼할만도 했지만 감각조차 잃고 만 유진은 아직 덜감긴 시야 속 자신의 앞으로 굴러 떨어진 불발탄을 손안에 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기어코 손안에 쥐고만 그가 그제야 마취가스에 취해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해나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미 두 눈은 감겨버린 뒤였다.

 

 

 

 

 

 

 -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뺨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온기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린 해나가 희미한 시야 속에서 여러번 두 눈을 깜빡이길 반복했다.

 

 

 

 

 

 "깨어나서 다행이군."

 

 

 

 

 

 손길과는 대조적인 말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가 급히 돌아섰다. 주변은 어두웠으나 창을 가린 암막커튼으로 인해 시간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침대 위에 시체처럼 잠들어있었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단 생각 뿐이었다.

 

 

 

 

 

 "여긴 어디죠?"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서 상체를 일으킨 해나가 물었지만 그는 대꾸할 생각이 없는건지 한켠에 마련된 작은 바로 걸어가 위스키 한 병을 꺼내들었다.

 

 

 

 

 

 "어디냐고 묻잖아요. 유팀장님."

 

 "이사를 한 지 벌써 1년은 된 것 같은데. 여태 내집을 못 알아본단건 애석하게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네."

 

 "초대조차 없었으면서 상처 받은 척은. 내가 어떻게 여기 와있는거죠? 난..."

 

 

 

 

 

 유진과 있었단 사실을 입밖으로 낼뻔 한 해나가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그의 뒤통수를 살핀다. 다행히 눈치채진 못한 듯 했지만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이가 지호라면 유진과 함께 있었던 사실을 모를린 없었다.

 

 

 

 

 

 "초대할 수 없었던 건 정해윤이 빈틈없이 수비한 탓이었고 네가 내 방에 와있는 건 또다시 미아방지 팔찌를 잃어버린 사고뭉치를 찾아냈기 때문이겠지."

 

 "찾아준 건 고맙지만... 내 방으로 침입했던 자들. 무장한 사람들이었어. 설마 거기 있던 사람들을..."

 

 "널 가두고 있던 자들이 다쳤을까봐 궁금한거야? 아니면 줄곧 함께 있었던 타국의 왕자가 걱정되는거야?"

 

 

 

 

 

 위스키를 한모금 넘긴 지호가 유리잔을 빙그르르 돌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유대가 그들이 쌓아올린 밤 중에 이루어졌을 거란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건만 철현이 건넨 USB에는 그들의 행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말해봐. 꿀먹은 벙어리처럼 굴지 말고 네가 걱정하는 그 사람의 안위를 물어보라고."

 

 "질투라도 하는 것 처럼... 당신 유치하게 왜이래? 당신도 알고 있잖아. 팔찌가 없으면 난!..."

 

 "한 두번도 아니고 이정도면 팔찌가 없는 그 이후를 즐기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군."

 

 "이것봐요. 유팀장님."

 

 

 

 

 

 이미 취하기라도 한 건지 그간과는 다르게 비아냥거리기 시작하는 지호로 인해 울컥한 해나가 그에게로 뛰듯이 걸어가 손 안에 쥐어진 위스키 잔을 빼앗아 들었다.

 

 

 

 

 

 "입 밖으로 꺼내도 될 말과 안 될 말들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어른 아니었어?"

 

 

 

 

 

 남은 위스키를 그의 얼굴에 끼얹어 버리고 바 위에 올려진 위스키 병을 집어든 해나가 비어버린 잔에 한가득 술을 따랐다.

 

 

 

 

 

 "뭐하는거야!"

 

 "걱정마! 이건 내가 마시려는거니까!"

 

 

 

 

 

 막으려는 지호의 손을 뿌리치며 입에 가져다 대려는 해나의 손목을 낚아챈 그가 깊게 한숨을 몰아쉬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끊어질 듯 죄여오는 그의 힘에 아파하며 놓친 술잔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챙그랑.

 

 

 

 

 

 산산조각나 버린 유리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들었다. 맨다리가 그대로 드러나있던 해나의 살갖으로도 튕기며 빨갛고 선명한 핏자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술도 못마시는게 까불지마."

 

 "그럼 더 끼얹어줄 걸 그랬나? 아깐 너무 약했지?"

 

 "더이상 화나게 하지말고 따라와."

 

 

 

 

 

 그에게 이끄려 다시 침대 맡으로 돌아온 해나의 몸이 거칠게 그 위로 앉혀졌다. 이어 침대 근처의 장식장에서 구급약품 키트를 가져온 지호가 능숙하게 해나의 다리에 생긴 상처들을 소독하기 시작했다.

 

 

 

 

 

 "병주고 약주고 다하고 있네."

 

 "조용히 해."

 

 "당신하고 이러고 있을 기분 아니야."

 

 "지금 화낼 사람이 누군!..."

 

 

 

 

 소독을 마치고 능숙하게 연고를 바르기 시작한 지호가 욱하고 치민 감정에 쏟아나오려던 말을 끊어버리자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해나가 발끝으로 그의 허벅지를 툭툭 쳐냈다.

 

 

 

 

 

 "누군데? 지금 여기 우리 둘 중에 화낼 사람이 누군데? 당신의 말실수 말고 내가 그보다도 더한 잘못을 했다는거 아냐? 당신이 알고 있는게 뭔데?"

 

 

 

 

 계속해서 허벅지 위를 툭툭 건드리는 해나의 발목을 붙든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말대로 말 실수였어. 요즘 너무 피곤하고 사라진 널 찾느라 신경을 썼더니..."

 

 "날 찾다가 뭘 알아내기라도 했다는 거구나?"

 

 "꼬투리 잡지마. 그런거 아니야."

 

 

 

 

 

 밴드를 붙이려하는 지호의 손을 밀어낸 해나가 그의 앞에 벌려져 있던 두 다리를 한데 모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의 두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쓸데 없는 도발도 감정적인 대처도 지금껏 단 한번도 보인 적 없는 그였다.

 

 

 

 

 

 오히려 해나 자신의 몫이라면 모를까.

 

 

 

 

 

 상대의 마음을 읽어낼 재주는 없다지만 달라진 그의 감정은 읽히는 것 같았다. 투박하면서도 거친척하는 외면 외에도 능글거리는 면은 있었지만 자신을 마주하던 그의 내면은 늘 담담하고 평온해 결코 감정 따윈 고려하지 않은 단순히 필요에 따른 약혼 상대 임을 늘 자각할 수 있게 하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날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잔뜩 흔들리는 그의 눈빛에 여러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분노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유지호씨 설마... 나 사랑해요?"

 

 

 

 

 

 예상치 못 한 말이었던지 움찔거리며 급히 시선을 돌리려던 지호의 턱을 두 손으로 받쳐 든 해나가 자신을 올려다 보게끔 한 채로 다시 물었다.

 

 

 

 

 

 "날 사랑하냐구요."

 

 

 

 

 

 단도직입적인 해나의 질문에 당황하기도 잠시 곧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은 지호가 퍽 웃겼던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사랑했으면 좋겠어?"

 

 

 

 

 

 대답대신 이어진 그의 질문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망설이던 해나가 그의 턱을 잡고 있던 두 손을 풀며 허리를 곧게 바로 앉았다.

 

 

 

 

 

 "넌 아니요라고 하겠지. 대답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사랑하지도 않잖아. 당신 오늘 정말 수상한거 알아? 상처받은 척 날 보는 눈하며 그 말투. 왜 그러는거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 한적은 없어."

 

 

 

 

 

 구급약들을 대충 챙겨 넣은 그가 장식장을 향해 몸을 틀며 일어섰다.

 

 

 

 

 오기가 생기길 바라는 것일까? 그를 돌려 세운 해나가 다신 피할 수 없도록 그의 옷깃을 움켜 쥐었다.

 

 

 

 

 

 "한 대 치려고?"

 

 

 

 

 

 그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무엇이든 간에 강제적으로 맺어진 약혼관계는 번복될 수 없단 것 쯤은 해나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무엇인지는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유진과의 관계라면 제 몸 하나 지켜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지호의 안전을 걱정해야할 정도이니 무시해도 될테지만 혹여라도 아무도 모르게 가슴 속 깊숙히에 묻어두었던 그 사람을 알아차린 것이라면...

 

 

 

 

 

 "말 해. 내게 이러는 이유."

 

 "사랑고백이 듣고 싶은거야? 우리 결혼은 아직인데 프러포즈라도 받고 싶은건가?"

 

 "말 장난 하자는 거 아니니까 본론만 얘기해. 당신이 알아낸 그걸 말하라고."

 

 "싫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옷깃을 쥐고 있던 해나의 손이 지호의 뺨을 후려쳤다. 반항도 없이 돌아가버린 고개가 굳어버린 것처람 멈춰버린 지호가 빨갛게 부어오르는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해윤이와 내가 어렸어서... 우리가 오갈데가 없어서 또 우릴 구해준 당신들이 고마워서 약혼 승낙했단것 뿐이야.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네 장난감 따위가 되겠단 뜻은 아니었어. 네 맘대로 네 감정대로 휘둘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래서 내가 네 몸을 취하길 했어, 네 감정을 강요하기라도 했어?"

 

 

 

 

 

 싸늘히 식은 그의 음성이 다시 마주한 시선과 함께 들려왔다. 헷갈리게 하는 감정은 배제된 그의 두 눈이 해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말하라고. 당신이 알아낸 것."

 

 "내가 알면 안되는 게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말하지 않을거면 더이상 이 곳에 있고 싶지 않아. 해윤이 어딨어?"

 

 

 

 

 

 침대 머리에 있던 지호의 휴대폰을 떠올린 해나가 빠른 걸음을 옮겨 그의 것을 손에 쥐었다. 해윤의 번호를 익숙하게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른 그녀를 향해 서있던 지호가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그와 있을 때도 폭주 상태였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멘트를 끝으로 종료버튼을 누른 해나가 그를 향해 돌아섰다.

 

 

 

 

 

 "당신 뭐라고 했어?"

 

 "그에게 안기던 순간에도 그 빌어먹을 폭주 상태였냐고."

 

 

 

 

 

 그의 입에서 태무와의 일이 나오지 않은 것에 해나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진과의 관계가 이렇게 빨리 발각될 것이란 것도 예상치 못했기에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머리로도 이해할 수가 없고 가슴도 좀처럼 진정시킬 수가 없어."

 

 "잠깐... 티... 팀장님."

 

 

 

 

 

 또다시 그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한 채 해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막을 새도 없이 해나의 허리를 감아 안고 다른 한 팔로 머리를 감싼 그가 자칫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은 가까운 사이를 두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래도 널 사랑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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