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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밀우유유전 (고구려 동천왕기)
작가 : 태풍
작품등록일 : 2022.2.28

중국은 위, 촉, 오의 삼국시대로 접어들었고, 고구려는 위나라의 땅을 침략했다.
위나라에 호의적이던 고구려가 배신하자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에 참여한 장수 중 밀우는 고구려의 무사였고, 유유는 신라의 낭객이었다.
밀우와 유유는 멸망의 끝에 선 고구려를 구하며 전쟁의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본다.

 
2. 소나기 (사마의 요동정벌)
작성일 : 22-02-28 20:20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2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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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태위 사마의는 휘하 기병 1백명을 이끌고 요동성에 도착하였다. 때는 뜨끈한 햇빛이 대지를 덥히고 옥수수밭의 알알들을 익혀 따서 바로 먹어도 될 것만 같은 뜨거운 늦여름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이 기거하는 요동성 앞에 1만명의 군사를 인솔하여 주둔시킨 사마소의 진영이 있었다. 사마의는 호위병들과 함께 손수 짐을 풀고는 자신의 진영으로 장수들을 소집하였다. 현도태수 선봉장 관구검, 위장군 좌군장 왕기, 안동장군 우군장 사마소, 정동장군 후군장 사마사가 차례로 들어왔고, 안시성에서 지원 온 고구려 사람 득래도 별동대로서 들어왔다. 모두가 자리에 앉았지만 사마의는 말없이 찻물이 끓기만을 기다렸다. 사마의는 물이 끊자 평온한 얼굴로 침묵한 채 헝겊에 쌓여있던 대백잎을 찻잔에 고심히 흩뿌려 찻물이 우러나오기를 기다렸다. 대백잎이 찻잔 바닥에 가라앉고 솜털 같은 잎싸리가 잎잎이 터지며 하이얀 물이 안개처럼 퍼졌다. 사마의가 잔 위에 거름판을 덮고 다른 잔에 차를 다시 흘려 넣으니 이파리가 걸러지고 맑은 찻물만이 흘러나와 담겼다. 적막 속에 쪼르르 흐르는 물소리만이 시냇물처럼 정적을 두드렸다. 사마의가 잔을 들어 호록 한입을 마시며 말했다.

  “역적들의 동태는 어떠한가?”

  먼저 진영을 치고 주둔하던 관구검이 답했다.

  “공손연은 태위께서 진군하신다는 소문을 듣고는 요동으로 군을 모두 끌고 도망오더니, 저희 군을 보고 진채에 틀어박혀 일꾼과 경계부대를 매일같이 보내 성벽 모든 주위에 걸쳐 참호를 파고 말뚝을 세웠습니다. 신의 군사가 적어 적이 들이칠까 두려워 마찬가지로 말뚝과 토담을 쌓고 수비를 준비 중이었는데 적이 잠자코 있어 허망하던 참입니다.”

  사마의는 이를 듣고는 껄껄 웃었다.

  “역적들이 싸울 생각은 않고 시일을 끌어 우리를 지치게 하려는 속셈이로구나. 내 생각에 적군의 태반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어 그 소굴인 양평성은 필시 텅 비어 있을 터이니, 여기를 버리고 지름길로 하여 양평성으로 진군해가야겠다. 그러면 놈들은 반드시 그곳을 구하기 위해 뒤따라올 것이니, 기다리고 있다가 중도에 기습한다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마소가 짐짓 물었다.

  “저들은 기껏 참호를 파고 벽을 쌓았는데, 공손연이 과연 따라오겠습니까. 아버님.”

  사마의가 탁자에 펼쳐져 있던 지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몇 군데 짚었다.

  “진채는 철수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두고 관구검은 이곳에서 2천 군을 모두 활과 말로 무장하여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화살을 쏘아 붙여 적을 혼란스럽게 하라. 그리고 그 외 좌,우,중,후군 8천과 고구려군은 요하를 건너 대릉협곡을 타고 멀리서도 눈에 띄일 만큼 먼지를 내며 진군한다. 그럼 공손연은 필시 우리 군이 나누어졌다고 생각하여 양평을 구하기 위해 우리를 좇을 것이다. 그들의 군이 움직이면 관구검은 싸우는 척하며 모두 말을 타고 길을 돌아 협곡 위로 합류해라. 또한 고구려 기병은 협곡 아래에서 말안장에 나뭇가지들을 달고 그들이 좇아올 때 먼지를 내며 협곡을 통과해라. 그 후 그들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우리 본군이 그들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왕기가 고구려 장군 득래에게 따로 지명을 일러주었고, 장수들은 감탄하였다.

  “역시 태위의 지모는 신산과 같사옵니다. 그리 따르겠습니다.”

  이튿날 사마의는 말한 바와 같이 영채를 모두 버려둔 채 불을 피워두고 9천의 군을 재촉하여 이끌고 길을 나서 양평으로 향했다. 그와 별개로 관구검이 궁병대를 조직하여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였다.

  한편 위나라군에 맞서 진을 치고 있던 비연과 양조는 막사에서 상의하고 있었다. 비연이 양조에게 말했다.

  “만일에 위나라 군이 쳐들어온다 해도 나가 싸우지 맙시다. 저들은 천릿길을 왔으니 군량을 조달하지 못해 오래 버티지 못할 터이고, 군량이 떨어지면 반드시 물러날 것입니다. 만약 군량이 떨어져서 저들의 사기가 위태함을 정탐하였을 때 우리가 그때를 타서 야밤에 군을 끌고 기습한다면 쉽게 사마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듣기로 지난날에 사마의가 촉군의 제갈량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절대 나가 싸우지 않고 위수 남쪽을 굳게 지켜 결국 제갈량을 진중에서 말라 죽게 했으니 이제 우리도 그와 같이 일을 풀어내면 될 것이오.”

  “그 말이 참으로 맞소.”

  양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두 사람이 한참 상의하고 있는데 급보가 들어왔다.

  “주공, 위나라군이 흙먼지를 내며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연이 크게 놀라 말했다.

  “저들이 우리 양평에 군사가 적은 것을 알고 본성을 치려는 모양이오. 폐하가 계신 양평을 잃는다면 우리가 애써 여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찌해야 좋겠소?”

  양조가 허둥대며 벌떡 일어나 우왕좌왕하자 급보를 전하는 병사가 또 들어왔다.

  “주공, 적들이 다 간 것이 아니옵고, 한 부대가 진군해오고 있습니다.”

  “뭐라?”

  비연과 양조가 칼과 투구를 차고 허겁지겁 나가 진영 외곽까지 걸어나가 밖을 보니 과연 한 무리의 위나라군이 저 멀리 일렬로 방패를 앞세우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비연 장군, 어서 지시를 내리시오.”

  그를 듣자 비연이 짐짓 황당해 하였다.

  “승상은 아무 계책이 없습니까?”

  양조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이 없자 비연이 주위를 보며 외치며 지시하였다.

  “전군은 양평으로 향한다. 출발!”

  비연이 지시를 내리자 부장들이 각기 지시를 내리며 영채를 허물고 군을 정렬하여 회군토록 하였다. 군사들이 막사를 허물고 묶인 말을 모으는 동안 진의 외곽 쪽으로 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화살이 비가 내리듯이 한 척씩 점점 다가오며 재차 쏟아지자 물건과 병장기를 챙기던 병사들은 손에 든 것을 버려버리고 정렬하고 있는 부대에 합류하기 바빴다. 화살에 살과 뼈가 뚫린 일부 병사들의 고통에 찬 괴성들이 다른 병사들의 귀에 들리자 아우성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먼저 말을 타고 이를 지켜보던 비연과 양조는 모른 척 눈을 돌리며 부장들을 재촉하여 양평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비연의 5만명의 군사들이 좌우 구분 없이 일렬로 마치 선착순으로 가듯이 사마의가 가던 길로 추측되어지는 협곡으로 달려 나가기 바빴다.

  비연은 부장들과 기병대를 선봉으로 다시 세우고 전열을 정리하여 나아갔다. 아군의 수가 사마의보다 압도적으로 많으니 재빨리 좇아 그들을 밀물처럼 덮쳐든다면 그들이 도망친다 하여도 그 길로 양평에 도달하여 다시 수비를 갖추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비연과 양조는 서로 군공을 다투고 싶어 하여 늦춰지는 보병들을 닦달하여 어서 빨리 사마의의 군대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재촉하였다.

  그와 반면 수천살의 화살을 쏘던 관구검의 군대는 그들이 손쉽게 물러나자 허망하지만 기뻐하며 말을 타고 멀리 길을 돌아 협곡 위로 향했다. 이를 모두 지켜보던 정탐꾼이 작은 조랑말을 타고 재빠르게 홀홀단신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사마의에게 고했다. 말을 타고 보병들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던 사마의는 이 소식을 듣고는 한바탕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무지렁이들이 결국 내 계책에 빠져들고 마는구나!”

  사마의는 그 즉시 사마사와 사마소를 5천의 군사로 협곡에 매복하게 하고, 왕기와 그의 부장인 하후패와 호준를 3천의 군사로 협곡의 초입 지역인 요하의 숲에 매복하게 하였다. 그리고 고구려군 득래에게 모자란 말을 모두 보태주어 1천의 기병대로 협곡 초입에 머물러 그들이 오는 대로 협곡의 출구 쪽으로 달아나게끔 신신당부하였다.

  “그대들 모두 매복하고 있다가 요동의 군사가 나타나는 즉시 양쪽에서 일제히 짓쳐나가도록 하라. 이때 아군이 다치지 않도록 화살은 그들의 전방과 후방에만 쏘되 그들이 혼란하여 방어할 수 없도록 측면을 들이치도록 하라.”

  모두가 각자의 명을 받고 지시받은 자리로 떠났다. 밀우도 또한 고구려군의 일기로 말을 타고 서 있었는데, 더위 탓인지 긴장 탓인지 땀이 비처럼 흘렀으나, 마른 땀이 소금기를 머금은 듯 갑옷을 무겁게 하지는 않는 듯 하였다.

  잠시 후 일각 정도가 지나자 과연 비연과 양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요하에 나타났다. 이를 보던 왕기는 요동군이 절반 정도가 지날 때까지 숨을 참으며 기다렸다. 수가 헤아려지지 않을 만큼 얼추 인원이 지났다고 판단되자 왕기는 직접 거대한 푸른 깃발을 들어 기다리던 전군에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병사들이 북을 치고 제각기 깃발을 흔들며 왼쪽에서는 하후패가, 오른쪽에서는 호준가 직접 선봉에 서서 칼을 빼들고 일제히 군사를 휘몰아 뛰어나갔다. 그 뒤로 궁병대가 요동군의 전방과 후위에 모두 화살을 쏘아대니 수초가 채 지나지 않을 시간에 수천살의 화살이 쏟아졌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요동군은 방패를 들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머리나 가슴에 화살이 꽂혀 쓰러지니 진열이 무너지고 자기들끼리 발이 걸려 넘어져 아비규환의 참상이 일어났다. 화살을 피하거나 시체에 걸려 넘어지거나 바닥에 쓰러지면 그 위를 넘나드는 병사들의 발길질에 팔이며 발이며 몸이 성하지 못하는 병사의 수도 수두룩했다.

  이를 후위에서 말에 타 지켜보던 비연과 양조는 공포에 질려 감히 맞서 싸울 생각도 못하고 주위의 부장들을 일러 필사적으로 길을 뚫어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재촉했다. 그들이 전열의 중간 즈음에 이르니 위나라군 수백, 수천 가늠하지 못할 수의 병사들이 제각기 장창을 쥐고 밀려나와 달려와 요동군 병사들의 단단하지 못한 가죽갑옷을 뚫고 찢으며 시신을 넘나들며 돌진해왔다.

  “전군, 방진을 구축해라! 뭐하는게냐! 달아나지 마라!”

  비연이 눈에 띄어 화살에 맞을까 두려워 황급히 말에서 내리며 주위에 호통을 치니 요동군 병사들이 힘을 얻어 전열이 대강 정리되는 듯도 했다. 비연이 커다란 사각방패를 든 호위병을 좌우에 삼고 칼을 빼들어 진영을 유지토록 목이 쉬어라 고함을 치다보니 병사들을 칼로 베어넘기던 어두운 은빛 갑옷의 하후패와 맞닥뜨렸다. 비연은 일간 오기가 생겨 꾸짖었다.

  “적장은 간계를 쓰지 마라! 네 감히 나와서 정정당당히 싸우지 않겠느냐!”

  하후패가 이를 듣고는 앞에 걸리적거리던 요동군 병사 몇이 내민 창을 옆구리에 끼고는 칼로 부숴버리고 연달아 그들의 목을 베며, 비연의 앞에 몇 걸음 만에 내달려 당도했다.

  “네놈의 머리를 떼어 내주마!”

  비연이 분에 차 달아오른 얼굴빛으로 좌우를 물리치고 날아올라 하후패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그러나 하후패가 이를 간단히 옆으로 튕겨 막아내고는 곧장 몸을 좌로 한바퀴 돌려 비연의 투구를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내려치니 비연의 투구 관자놀이 부분이 움푹 들어가고 비연의 코에서 피가 한 움큼 토해내지며 눈알이 붕어처럼 튀어나왔다.

  지휘하는 장군이 죽자 이를 보던 주위의 요동군 병사들이 크게 요동치며 큰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위나라군 병사들이 한껏 힘을 내어 매우 다그쳐 들어가며 요동군을 마구 엄살해 들어가니 무자비하게 장창으로 돌격해가는 위나라군의 앞으로 다치거나 죽지 않는 요동군 병사가 없었다.

  양조는 겁에 질려 말을 타고 내달려 전열의 앞으로 뒤도 보지 않고 뛰어갔다. 요동군 병사들은 후위는 내버려둔 채 모두가 협곡 안으로 달아나기 바빴다. 이에 하후패와 호준가 장창을 든 병사들을 잠시 물러 요동군과 몇 걸음 밖으로 대치하게 한 후 숲에 있는 궁병대에 일제히 사격하라며 고함을 외쳐 쉬지 않고 수천살의 화살을 쏘게 하니 어림짐작 1만에 달하는 요동군 병사 중 다치거나 죽는 이가 반이 넘었고 나머지 반은 엎드려 울며 무기를 내던지고 항복하였다.

  후위를 버린 양조와 부장들이 내달려 협곡으로 들어가자 검은 빛깔의 고구려군이 보였다.

  “길을 뚫어라! 돌격!”

  땀에 젖은 양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에 찬 몇 부장들이 앞 다투어 달려 적을 쫒으니 그 외 요동군 병사들도 기세에 떠밀려 맹목적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고구려군은 짐짓 뒤돌아보고는 모두가 말을 타고 달려 나가 도망쳤다. 보병이 대다수를 이루는 요동군은 그들을 따로잡을 재간이 없었다.

  그때 협곡의 위에서 요하에서 본 것과 같은 푸른 깃발이 나부끼자 양조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을 느끼며 머리가 어질해져 말에서 떨어졌다. 양조가 말없이 말에서 떨어지자 미처 그를 보지 못한 뒤에서 달리던 말들이 그의 몸을 말굽으로 사정없이 짓밟았고 말을 타던 기수들이 그를 피하려 말을 돌려도 전열이 휘저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요하에서도와 같이 협곡의 위에서 또다시 수천살의 화살이 가을철의 메뚜기떼처럼 하늘을 덮으며 요동군을 덮치니 병사들은 각기 방패를 들거나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협곡 바깥으로 뛰어나가기 바빴다. 이를 무심하게 지켜보던 사마의가 주위에 일렀다.

  “우리가 성급하게 내려갈 것은 없으니, 화살만 쏘되 직접 사로잡지 말라. 이곳 요하에서 항복한 적들은 살려주어 후위로 두되 전선에는 참여시키지 말고 노역만 부려라. 우리의 최종 목적은 공손놈이 있는 양평성이 될 것이다.”

  고구려군은 안장에 달린 나뭇가지를 떼어내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협곡 한편으로 올라선 밀우는 위나라군의 화살비에 핏물로 강을 이루는 요동군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덤덤해졌다. 더위와 긴장에 흐르던 메마른 땀은 어느새 건조하게 살갗에 달라붙어 피부를 죄어왔다. 직접 저곳에 없어서일까. 체감이 없었다. 무감각했다. 자신은 분명히 나라의 명을 받아, 경험이란 명분으로, 전쟁이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곳에 왔었다. 자신은 분명히 열여덟 일평생 정의로움을 좇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자신도 포악한 늑대무리의 한 마리일 뿐이라고 받아들였다.

  ‘빗방울은 홍수가 자기 탓인 줄 모른다.’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구절이 떠올랐다. 폭력은 거대한 홍수였고, 이 자신과 저 무리는 그를 이루는 각각의 물방울들이었다. 밀우는 담담했다. 이 광경과 느낌을 잊지 않겠노라 입술을 앙다물었다.

  요동군이 모두 항복하자 위나라군은 군세를 갖추어 협곡과 요하로 내려왔고, 죽은 이는 모아 불태우고, 살은 이는 모두 포박하여 모아두니, 살이 타는 냄새가 협곡에 진동하였고, 공포에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강을 따라 물결을 흔들었다.

 

  양조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양평성으로 들어가더니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다시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공손연은 군사의 태반을 잃고 온 양조를 매우 나무라며 호통 쳤다. 양조가 변명을 수차례 하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공손연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 일대의 병을 모두 모아 그대들에게 쥐어주었거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양조는 눈물을 흘렸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옛 손무가 이야기하기를 모름지기 병법과 싸움은 병가지상사라고 하였고, 아직 위군보다 우리의 수가 많고, 그들은 급박하게 들이치며, 우리는 느긋하게 막아내는 입장이니, 이는 손무가 말하는 싸우지 않고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제일의 병법이라 하였습니다. 노여움을 푸시고 병들을 다독여주십시오.”

  양조의 말이 그럴 듯하여 공손연은 화가 다소 누구러지는 듯 하였다.

  “알겠다. 썩 꺼지거라. 짐과 군대는 한 발짝도 성 밖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니 경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한편, 사마의는 군사를 나누어 양평성을 사면으로 에워쌓아 진을 치고 자신의 명을 기다리도록 하였다.

  “적의 동태는 어떠한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태위.”

  “알겠다.”

  다음날이 되어 선봉장 관구검이 사마의의 장막으로 들어와 물었다.

  “태위님. 공성추와 벽력거를 건설할까요?”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병들을 쉬게 하라.”

  다다음날이 되어 사마사와 사마소가 사마의의 장막으로 들어와 물었다.

  “아버님. 어떤 계책이 있으십니까, 군량은 충분하오나, 저희의 수로 저 벽을 어찌 넘을지 고민입니다.”

  “다 때가 있을 것이다. 경거망동하지 말라.”

  영채 한편에 있던 밀우는 숫돌에 물을 적셔 조용히 칼을 갈다가 아군이나 적의 근황이 궁금하여 득래 장군에게 질의하여볼까 하여 뒤척였지만 이내 다시 몸을 거두었다. 친분이 있지 않을뿐더러 괜한 행동이 주위의 입을 타고 물의를 일으키면 수행경험에 아무래도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밀우가 골똘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히 하늘이나 적의 성벽을 쳐다보며 맹목적으로 칼과 숫돌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에 뺨에 차가운 타격음을 느끼면서 물방울을 보았다. 타닥 타닥 하며 비가 우후죽 뿌려지고 있었다.

  ‘아, 땅이 젖으면 곤란한데.’

  밀우는 땅이 젖어 발이 움푹움푹 들어가면 고생할 길이 뻔해 보여 빗물을 내려주는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어느덧 머리칼을 다 적셔 윗머리가 흘러내려 눈 앞을 간지럽히기에 이르렀다.

  촤아아아-

  대지의 모래와 바람과 근심을 다 날려버릴 정도로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피부가 오싹해지며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한가로이 방패를 베개 삼아 누워 떠들던 병사들이 우왕좌앙 비를 피하며 각자의 막사를 고쳐내느라 바빠졌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계절 변화를 하늘에서 점지해주듯이 비가 한동안은 세차게 내렸다. 내리던 비는 잠시 구름이 걷어가 쉬는가도 하면 다시 검은 솜뭉치가 태양을 가리며 펑펑 눈물을 울어내었다. 비는 한동안은 쉬지 않을 참인 것 같았다. 땅에 발이 꺼지고 식생활이 불편해진 병사들은 투덜투덜 잔말이 많아졌다. 고구려군도 날카로워지는 매한가지여서 자신들의 군량이 위나라군과 섞였으니 마느니 서로 통하지 않는 말로 앞 다투어 사소한 일로 욕을 퍼부으며 상관이 말리기 전까지 주먹다짐하기 일쑤였다.

  비가 대략 한달 가까이 쉬지 않고 내리니 평지에도 물이 고이기 시작해 심한 곳은 석자나 고이기도 하였다. 평지가 물이 고일 정도였으니 강가는 더욱 물넘침이 심하여 하북지방에서부터 조달해오던 군량을 영채까지 운반하려면 요동에 들어오면 요하를 건너야 했는데, 물의 범람이 심하여 강이 길어지고 협곡까지 넘쳐흘렀기에 군량을 요하 어귀로부터 양평성 부근까지 부득이 배를 이용해야만 했다. 수송부대와 이를 받아드는 병사들의 노고가 매우 심하여 이를 보다 못한 관구검이 사마의의 장막으로 찾아와 고하였다.

  “태위님, 비가 쉬지 않고 내려 영내가 온통 진흙밭이 된지라 군사를 머물게 할 수 없습니다. 영채를 앞산 위로 옮기심이 어떠십니까?”

  이 말을 들은 사마의가 문득 버럭 화를 냈다.

  “이제 곧 공손연을 잡느냐 마느냐 하는 판이다. 그런데 어찌 영채를 옮긴단 말인가? 누구든 다시 그런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목을 벨 것이다!”

  관구검은 예, 예 하며 멋쩍게 물러 나왔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이번에는 사마의의 부장인 구련이 장막으로 들어와 다시 고했다.

  “주공, 군사들이 물에 잠겨 고생을 하니 태위께서는 부디 영채를 높은 곳으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러다 적이 들이칠까 두렵습니다.”

  이 말에 사마의가 불현듯 얼굴이 붉어지며 진노가 극에 달했다.

  “내 이미 군령을 내렸거늘! 네놈은 듣지 못하였던 거냐! 네 어찌 감히 이를 어기느냐!”

  사마의가 호위병을 불러 구련을 장막에서 끌어내고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자르라고 지시하여 호위병이 단칼에 목을 베니 주위의 군중이 웅성거렸다.

  “우리는 영채를 옮기지 않는다. 다시 이런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면 군법으로 참할 것이다!”

  사마의가 화가 난 듯이 천막을 세차게 펼치며 장막 안으로 들어가니, 상황을 이해한 사마사와 사마소가 새로이 군령으로 영채를 옮기지 말 것을 공표하였다. 그리고 호위병을 시켜 목이 달아난 구련의 머리를 영채의 원문 밖에 내걸게 하니 이를 본 군심이 크게 위축되어, 군사들이 일순간 두려움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이를 저 멀리 침착하게 보던 밀우도 피부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군령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목숨이 파리보다 못한 것인가 하며 당혹감과 두려움에 동공이 커지며 몸서리쳤다.

  상황을 정리한 사마사와 사마소가 장막으로 들어가 대백차를 만들어 잔에 따르며 사마의를 진정시켰다.

  “아버님의 처사가 과한 줄로 사료되지만, 소자, 이제 뜻을 알겠사옵니다. 급할 것이 없긴 합니다.”

  사마의가 껄껄 웃었다.

  “내일 중으로 양평성 남문 쪽에 있는 영채를 20리정도 무르도록 하라. 그리고 양평에서 누가 나와 무엇을 하든 결코 신경 쓰지 말라 하거라.”

  “예, 아버님.”

  이튿날 사마의의 지시로 양평성 남문 쪽의 위치한 왕기가 영채를 20리가량 천천히 물러서며 다시 진을 구축하였다. 이를 성벽에서 본 양평성의 백성들이 첫날에는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었는데, 다음날부터는 백성들이 삼삼오오 소규모로 나와 땔감을 장만하거나 소와 말을 풀어놓아 먹이를 주기도 하였다. 또한 이따금씩 야밤을 타고 성밖을 내달려 나서던 무리도 보였다. 이를 보던 위나라군들이 어리둥절하여 가끔씩 열리는 성문을 들이쳐 들어가거나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갈까 의논하였지만, 사마의가 다시금 군령으로 그 누구도 건들지 말 것을 지시하였기에 위나라군은 멍히 방관할 뿐이었다. 이에 선봉장 관구검이 의아하게 여겨 사마의의 장막을 찾아와 물었다.

  “주공, 지난날에 태위께서는 맹달이 반란을 일으킨 상용성을 치실 적엔 군사를 여덟 길로 나누어 8일 만에 성 밑에 이르러서 단숨에 한 번의 공격으로 맹달을 사로잡는 큰 공을 이루셨습니다. 지금은 완전무장한 군사 1만명과 강인한 고구려군을 거느리고 요하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지금껏 군사가 수천리를 진군해왔는데 양평까지 와서도 승리의 기세를 타서 성을 공격하라는 명은 내리시지 않고, 군사들을 오랫동안 진흙탕 속에서 고생시키면서 성 안의 역적 무리들은 마음대로 성 밖으로 나와 나무를 베고 말과 소를 방목하게 하시니, 참으로 태위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속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의 사견이 짧고 무례하면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관구검을 매우 아끼고 중용하던 사마의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은 지금껏 나를 따르면서도 아직 병법을 모르는가? 지난날에 맹달은 군량은 많은데 군사는 적었고, 우리는 군량은 적은데 군사가 많았다. 그리하여 불가피하게 속전속결해야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용맹하고 날랜 군사들과 장수들을 앞세워 갑자기 적을 들이쳐서 크게 이겼다. 허나 지금은 사정이 그와는 정반대이지 않는가. 적은 수효가 많으나 작은 성에 틀어박혔고, 우리는 군사가 적으나 군량과 지원이 풍족하다. 우리는 때를 기다려 일시에 뒤를 치면 될 일이다. 그대는 걱정하지 말라. 잠시 양평의 백성들이 나무를 하고 소와 말을 놓아 먹이를 먹이게 한 것도 반군에 속하고 싶지 않은 충심이 약한 이들이 달아날 수 있도록 짐짓 한 가닥 길을 열어준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수가 많다 한들 결속은 촌락의 필부들보다도 못할 것이니 군사의 수는 이 싸움에서 논할 것이 못 되네”

  “과연, 태위는 위나라의 큰 복이십니다.”

  이를 들은 관구검이 크게 감복하여 절을 하고 물러 나왔다. 사마의는 그 후 사마소에게 일러 사람을 낙양 수도로 보내 군량을 재촉하도록 했다. 사마의가 보낸 종복이 낙양에 도착하여 군량의 일을 조정에 아뢰고 요청하니, 위황제 조예가 조회를 열어 이 일을 관료들과 상의하였다. 조정회의가 개회되어 각청의 관료들이 모였다. 조예가 요동의 군량 조달 일을 묻자 대부 조상을 시작으로 관료들이 입을 모아 아뢰었다.

  “폐하, 근래 북방지방에 가을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한달이 넘도록 멈추질 않으니 군마와 병사가 모두 피로에 지쳐있다 하옵니다. 이쯤에서 사마의를 불러들여 군사를 거두게 하심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사마의가 태위의 직책을 대리로 내려놓고, 조정의 일은 게을리하면서 국방의 일만을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평생 사병들을 모으고 국내외 전쟁을 모두 일임하며 병권을 모두 쥔 채 사마의가 서촉과 동오, 바다건너 국방을 홀로 처리하고 있으니, 신들은 알 길이 없사옵니다. 공손연이 요동에서 패퇴한 후 겁을 먹고 양평에 들어박혀 나오질 않고 있다 하오니, 추후 사람을 보내 복속시키면 될 일이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폐하. 사마의가 비록 문제 선왕께서 승하하실 적에 지목하시어 나라의 일을 맡기시었지만, 무제 선왕은 그를 멀리하시어 중용하지 않던 인물입니다. 신들은 사마의가 병권을 쥐고 있는 것이 염려되옵니다. 서촉에서 돌아온 뒤 바로 떠나 이 문제를 논할 수가 없었으니, 속히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이시지요.”

  “아닙니다. 폐하. 사마 태위는 충직한 인물이옵니다. 제갈량이 오장원을 넘어 우리나라를 위협할 적에 수차례 나라를 구해낸 그의 군공을 잊으셨습니까? 사마 태위의 충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좌우의 관료들이 각자의 입장에 서서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조예는 머리를 저었다.

 “시끄럽소. 사마 태위로 말하면 용병에 능하고 지모가 뛰어나니, 위기에 처하더라도 임기응변으로 얼마든지 극복해낼 사람이오. 나 또한 그의 충심은 의심하지 않소. 중달은 내 수족과 다름없소. 경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는 입에 담지 마시오. 이제 머지않아 태위가 공손연을 사로잡아올 터인데 경들은 대체 무엇을 걱정한단 말인가?”

  조예가 딱 잘라 말하자 반대하던 관료들은 일순간 입을 다물며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조예는 몇몇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대사마 진군을 시켜 사마의의 요구대로 군량을 일정대로 모두 보내주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창고를 열어 장수와 군사를 위로할 금은보화와 1년이 넘어도 1만의 군사가 풍족히 먹을 만한 군량을 내어와 그를 수레에 실어 진군케 하니 길고 긴 행렬이 자못 장관을 이루었다.

 

  비는 내렸다 그쳤다 반복하며 땅이 마를 날이 없었고, 흙은 항상 축축하여 메마른 모래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요하의 협곡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어 더 이상 배를 이용하지 않고 달구지를 끌어도 될 만큼이 되었다. 공손연이 기거하던 양평성은 슬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고 있었다. 양평 백성뿐만 아니라 요동지방의 가용한 병사들을 모두 모은 3만명 규모의 대군이었기에 식량 문제는 그 어느 것보다 시급한 문제였다. 양평은 본디 공손집안이 기거하던 주둔지로 주거와 식생활에 있어 종복들과 준비가 잘 되어있고, 더불어 최근 왕으로 자칭하면서 궁궐의 규모를 키우고 높게 신축하고 개량하니 절로 양평 백성들의 삶과 단절되었었다. 공손연은 군사 문제는 잊은 채 버티면 된다는 식으로 지내었는데, 승상 양조가 간혹 식량 일을 문제 삼을 때마다 양평의 모든 물자를 서로 공유하면 1년은 족히 지내지 않을 수 있지 않냐며 듣지 않았다. 이에 양조는 궁궐을 하직할 때마다 탄식을 금치 못했다.

  공손연의 지시로 양평의 모든 물자를 모두 공유해도 좋다는 명에 성내가 혼란이 크게 발생했는데, 요동의 군사들은 어느새 도적떼가 되어 각기 무리를 지으며 백성들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하기에 바빴으며, 이에 분한 백성들도 서로 힘을 모아 도적으로 변한 요동군을 무력으로 밀어내고 군수물자와 말을 뺏어가니, 비가 연일 내리며 아비규환의 진흙탕이 계속 되어가자 서로가 서로를 도적질하는 난장판이 되었다. 저잣거리는 그 누구도 무장을 하지않은 채 지나가지 않는 이가 없었고, 객잔은 늘 도적무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한 번은 양조의 지시로 성 밖을 정탐 나가기 위하여 수하가 말을 찾은 일이 있었는데, 굶주림에 견디지 못한 양평의 백성들과 군사들이 말을 모두 잡아먹어 탈 말이 없다는 것에 놀라 몸을 자빠진 일도 있었다. 자빠진 몸이 진흙에 더럽혀져 그 모습으로 성내 식량 문제가 매우 위급함을 보고하는 수하의 모습에 양조는 기가 차 한숨을 뱉고는 하였다.

  성 밖 영채에서 사마의도 지루한 장맛비에 갇혀 지내기는 매한가지였는데, 그는 훨씬 여유가 있었다. 군법을 엄하게 잡으니, 그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고, 끝나지 않는 불편함과 지루함에 웃음소리가 없을 뿐 절제된 기강이 매우 대단했다.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태양이 얼굴을 들어 손을 내밀 듯이 햇빛이 장막을 비추었는데, 밀우는 천막을 열고 이를 보고 따사로운 햇볕이 눈을 찔러 금세 눈을 감았지만,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며 인사하는 햇빛이 무척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늘이 열렸다.

  그날 밤 사마의는 비가 그친 것을 본 후 장막 밖으로 나가 오랜만에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을 보며 천문을 살폈다. 몇몇 병사들도 제각기 앉거나 누워 밤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문득 말 만큼이나 커다란 별이 몇 척이나 되는 긴 꼬리를 끌며 수산 북쪽으로부터 양평 동남쪽으로 떨어졌다. 이를 본 각 영채의 병사들이 하나같이 놀라며 불안해하였다. 그러나 사마의는 오히려 이를 보고는 크게 웃으며 기뻐하였다. 주위의 호위병들은 영문을 몰라 하며 사마의를 주시하였는데, 사마의가 주위를 보고는 즉시 전군 모든 영채의 장수들을 부르라 명하였다. 사마의의 명으로 장막 안으로 장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왕기가 일전에 안시성의 유옥구에게도 보여주었던 지도를 탁자에 펼쳐 놓았고, 사마사가 준비된 여러 개의 목각말을 지도 위에 올렸다. 관구검, 왕기, 득래 등 모두가 탁자의 주위로 모여들어 사마의가 말했다.

  “앞으로 닷새 후면 별이 떨어진 곳에서 어김없이 공손연의 목을 베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내일부터 총력을 기울여 성을 공격하라. 관구검은 서문, 왕기는 남문, 사마소는 북문, 사마사는 동문을 공략한다. 그리고 득래는 천필의 기병으로 양평의 남동쪽에 있는 산 초입에서 대기한다. 요하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은 즉시 성의 땅굴을 파고 운제를 만들게 하라. 행동이 굼뜨거나 다른 속셈이 의심되는 자들은 그 즉시 죽여도 좋다. 가장 먼저 양평궁에 진입하는 군에게는 군공을 제일로 치도록 하겠다.”

  명을 받은 장수들은 다음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군사들을 움직였다. 양평성을 사면으로 포위해 토산을 쌓고 땅굴을 팠으며, 포대를 가설하고 운제를 세웠다. 포로들을 모두 불러 하루 새에 모두 만들도록 다그치고 압박하니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러고는 가설이 되는 대로 순서 없이 밤낮없이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으니 화살과 돌무더기가 빗발처럼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날이 밝자마자 위나라군이 움직여 진군하고 포대를 쌓았다. 이를 요동군도 확인하여 방어태세를 더 굳건히 준비하려 하였지만, 그 사기가 군기가 매우 낮아 말을 듣지 않고 탈주하는 자가 속출하였다. 싸움을 거부하는 반군과 그 반군을 막는 본진의 군사들이 있었고, 각 군이 제각기 흩어져 제 지키고 싶은 곳만 지키거나 숨어버리니 성곽에 오른 병사는 5천이 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쉬지 않고 화살과 돌무더기가 쏟아지며 성벽은 물론이며 집이며 가채들이 부수어져 망가진 것보다 성한 것이 적었다. 이에 민심이 더욱 나빠지니 사람들은 하나같이 원망이 가득해 성을 지키려는 마음보다 공손연의 목을 잘라 위나라에 투항하고 싶어했다. 이 사실이 양조가 사실대로 전하니 공손연이 이러한 민심을 듣고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놀랐다. 반군이 조직적으로 생겨 공손연을 인질로 바치자는 무리들이 궁궐 앞까지 당도하여 공손연의 친위대와 맞서니 공손연은 나가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안절부절 못하였다.

  공손연이 가신들을 급하게 불러 회의를 하였는데, 회의를 하는 와중에도 성 밖에서 날아오는 돌덩이가 궁궐의 지붕을 때려 건물이 일순간 흔들리며 흙먼지와 천장이 위아래로 춤을 추었다. 가신들은 입을 닫아 말이 없었고, 공손연은 흙먼지에 눈을 닫았다, 양조가 말했다.

  “폐하, 저들이 맹공을 퍼붓고 있고, 저희의 수가 많으니, 거짓으로 문을 열어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들어와 방심할 적에 일시에 들이치는 것은 어떠십니까, 폐하. 시가에서 난잡하게 분전한다면 능히 저희가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공손연은 머리를 저었다.

  “사마의는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수개월간 도발하여도 자신의 유리함을 알고 나아가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인물인데, 그리 간단한 수에 속기야 하겠소?”

  어사대부 유보가 말했다.

  “송구스러운 말씀이오나, 직위를 낮추고 항복의 뜻을 전하여 스스로 굴복한다면 위나라도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으니, 사마의도 위황실도 받아들일 여지가 있을 것이옵니다. 사마의는 이 곳 요동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없어 한번 들이칠 때에 결판을 내려 할진데, 그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옛날 월왕 구천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되고 곰의 쓸개를 핥아 불명을 잊지 않고, 결국 강남의 패자가 되었으니, 폐하도 역사를 본받아 그리 하심이 옳을 줄로 아룁니다.”

  공손연은 다시 눈을 감았다.

  “내 이리 처신하려고, 연을 세우고 천자를 칭한 것이 아니거늘, 짐이 꼭 그렇게 해야겠는가?”

  유보가 다시 말했다.

  “비록 저희가 수가 많았었다하나, 오랜 수성과 장마로 군을 먹일 식량이 부족하고, 민심이 나빠 형세가 위급하니, 거병의 때와 지금의 때는 맞지 않습니다. 또한 천자의 길도 부귀영화의 뜻도 살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니, 죽으면 그 모든 뜻과 의미가 없는 것이옵니다. 신의 의견이 불충하게 들릴 수 있사오나, 폐하께서는 훗날의 영화를 위해 지금을 잠시 견뎌내고 후일을 도모하소서.”

  공손연은 착잡하게 말했다.

  “그대는 불충하지 않소. 그 말도 맞겠구려. 내 그대를 사절로 보낼 터이니, 그대가 길을 밝혀주오.”

  “신, 성심을 다해보겠습니다.”

  유보는 회의가 끝나고 궁에서 하직하자마자 수하를 모으고 성문 위에 백기를 들어 적의 공격이 멈추길 기다렸다. 위나라군의 공격이 주춤하며 서서히 잦아들자 유보는 자신이 적의 시야에 들어오도록 성벽 위에서 하얀 옷을 입고 스스로를 밧줄로 묶어 성 밖으로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게 하였다. 유보는 줄에 묶인 채로 수하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라 인솔하는 수하들과 함께 말 한 필로 위나라의 영채를 향해 걸어갔다. 공성을 멈추고 몸의 열기를 식히며 휴식하던 위나라군의 안내를 받아 사마의가 앉아있던 자리에 유보가 도착했다. 유보는 사마의를 보고 풀썩 무릎을 꿇고 고했다.

  “전 연나라의 어사대부 유보입니다. 제 뜻은 연왕의 뜻과 같습니다. 청컨대 태위께서 군사를 20리만 물러주신다면 저희 군신이 모두 나와 항복하겠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요.”

  이를 짐짓 차만 마시며 잘 보지 않던 사마의가 벌컥 화를 내었다.

  “참으로 무례하군. 어찌하여 공손연이 몸소 오지 않는 것이냐?”

  유보가 답했다.

  “공손왕은 군왕으로서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신을 먼저 보냈사오니, 제게 하명하여주신다면 예를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흥!”

  사마의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칼을 빼들어 단숨에 유보의 목을 잘라내었다. 유보의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며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지만, 식도가 잘려버렸기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고, 입만 두어번 벙긋거리며 금세 안면을 아직 물이 질은 흙바닥에 철푸덕 고꾸라트렸다.

  그 후 유보를 인솔한 종자들에게 그 시신을 다시 공손연에게 돌려보내니, 그를 받은 공손연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사마의가 무어라 하더냐!”

  종자들이 고하며 몇마디 채 주고받지 않고 유보의 목이 달아난 사실을 그대로 공손연에게 이야기하니 공손연은 어안이 벙벙하여 귀가 벌겋게 들썩이며 입만 오므렸다 폈다.

  “신이 가보겠나이다.”

  왕의 시중 위연이 공손연을 부축하며 말했다.

  “그리 하라. 세자도 인질로 따라가라. 너는 죽이지 않겠지”

  공손연은 풀이 죽은 얼굴로 그대로 위연과 세자 공손수를 내보냈다. 공손수가 살이 오른 통통한 얼굴로 비지땀을 흘리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위연이 유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밧줄로 몸을 묶어 공손수를 뒤에 세워두고 사마의에게 당도하였다. 이번에 위연이 위나라의 영채에 방문할 적에는 사마의가 사열대에 올라앉아 수하 장수들을 좌우에 늘여 세우고 전보다 위엄 있게 맞이하였다. 사마의의 금빛투구와 갑옷이 눈에 띄었다. 위연은 묶인 몸으로 무릎을 꿇고는 무릎걸음으로 기다시피 사마의에게 다가가며 이마를 땅에 박고 엎드려 고했다.

  “신은 연왕의 시중 위연입니다. 원컨대 태위께서는 잠시 우레 같은 노여움을 거두어주시고 신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오늘 중으로 세자 공손수를 먼저 인질로 보내고, 이를 허하신다면 뒤따라 저희 군신과 군왕이 스스로 결박 지어 항복하겠나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사마의가 수염을 정돈하게 쓸어내리며 꾸짖었다.

  “네 어리석은 놈들은 듣거라. 사내대장부가 싸움을 함에 있어 큰 다섯가지의 요체가 있다. 능히 싸울만하면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하고, 힘이 부족해 싸울 수 없으면, 몸을 지켜야 하며, 지킬 수도 없으면 도망쳐야 하고, 도망칠 수도 없으면 항복해야 하며, 항복할 수도 없으면 마땅히 죽어야 할 뿐이다. 헌데 연놈은 어찌하여 자식을 인질로 보내려 한단 말이냐? 내 특별히 이를 듣고 있는 자식놈의 체면을 보아 살려 보낼 터이니 썩 돌아가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공손연에게 전해라!”

  이에 위연은 이마에 흙이 잔뜩 묻은 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쥐구멍을 찾듯이 물러나와 공손수의 부축을 받으며 영채를 나왔다. 위연이 양평성에 들어가 공손연에게 이를 그대로 고하니 공손연의 낯빛이 흙처럼 어두워지며 회의를 파하고 자신의 방으로 힘없이 들어갔다. 사절이 다녀간 뒤로 위나라군의 공격이 이어지지 않고 잠잠하였는데, 이를 한밤중에 창으로 내다보던 공손연이 시중 위연과 세자를 불렀다.

  “북평에 우리 집안사람이 많으니, 도움을 청해야겠다. 사마의가 날 살려둘 것 같지가 않구나.”

  “어떻게 할까요, 폐하.”

  “조용히 날랜 기병들로 친위대를 천명을 모아라. 그들을 앞에서 진을 뚫고 북평에 가서 일을 도모할 터이니, 그대는 양조와 함께 성을 굳게 지켜라. 이리 궁지에만 몰리지 않는다면 무슨 방도가 있겠지”

  “알겠습니다. 폐하. 신, 소임을 다해보겠습니다.”

  새벽녂이 되자 공손연은 세자와 함께 정예로 모인 기병대를 이끌고 조용히 남문을 열었다. 보초를 서던 양평성 병사들이 수근대었지만, 그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기에 얼빠진 표정들 뿐이었다. 남문을 연 후 기병대를 앞세워 동남쪽으로 매섭게 일렬로 달려 나갔다. 다행히 밤은 어둡고 별은 조용하여 거칠 것 없이 아무도 앞을 막는 자가 없었다. 공손연은 내심 매우 기뻐하여 웃음을 참지 못하며 요하를 거치지 않고 북평으로 내달릴 수 있는 지름길인 화산으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화산 초입에서 10리를 채 못가서 산 위에서 난데없이 뿔피리 소리가 울리더니 북소리가 요란하게 산을 울렸다. 횃불이 장막을 걷어내듯이 한 떼의 군사들이 검은 칠을 한 듯 저승의 사자처럼 공손연의 앞에 나타났다. 얼이 빠진 공손연이 눈을 게슴츠레 보며 앞을 막은 자들을 살피니 검은 갑옷 수백에, 각인된 붉은 새 수백이 노닐고, 수백에 달하는 말머리가 푸르릉 콧바람과 침을 튀기며 별빛처럼 노려보니 그 모습이 기괴하고 공포스러워 다리가 떨렸다. 맹수가 먹이를 쫒듯 검은 기수들이 말의 배를 내려치며 일시에 수백 혹은 수천에 달하는 기병들이 검은 흙먼지를 좌우로 뿜어내며 돌진하였다. 공손연이 이대로 생이 끝나나 싶은 허망함에 하늘을 쳐다보니 돌산 위에 어느새 군사들을 이끌고 먹을 머금은 붓으로 칠한 것 같은 칠흑의 밤에도 빛나는 황금빛 갑옷을 입은 사마의가 중앙에 버티고 서있었다. 그 왼쪽에는 사마사가, 오른쪽에는 사마소가 있었다. 사마의가 씨익 웃는 듯 하더니 그 옆의 사마소가 큰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이 역적놈아. 꼼짝마라! 네 놈의 머리를 떼어내 양평에 다시 걸어주마!”

  혼비백산한 공손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자신을 앞세워 호위하던 기병대를 내치고는 홀로 말머리를 돌려 뒤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해 어느새 뒷길을 가로막은 관구검과 창병대가 우르르 달려 나왔고, 그 왼쪽에는 하후패가, 오른쪽에는 호준가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궁병대와 함께 공손연을 에워쌌다. 공손연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말을 멈춰 세웠다.

  밀우는 고구려 기병대에 선두에 서서 요동군을 바라보았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 확실시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씁쓸한 마음이 일렁여 입은 앙다문 채 콧바람만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자신이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한다한들 달라질 건 없었기에 말을 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가죽으로 된 장갑을 찬 손으로 창을 강하게 움켜쥐고 우왕좌왕 혼비백산한 요동군을 향해 일척 앞까지 접근하였다. 일척을 지나치며 창끝과 갑주로 감싼 말머리가 적들의 몸에 닿으니 둔탁한 파열음과 찢어지는 타성이 울리며 그들을 헤집었다. 요동군은 넘어지고 자빠지며 창에 치여 가슴이며 배며 사정없이 찔리며 전속력으로 내달려진 창과 말에 의해 부딪힌 몸들은 공중에 내던져졌다. 넘어지는 말발굽이 쓰러진 시신의 다리를 밟으면 뼈가 부러졌고, 내동댕이쳐진 말의 몸은 뒹구는 시신의 머리를 짖이겼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갑주를 찬 말들의 돌진은 부딪히 이들이 어떤 강인한 갑옷을 입건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살을 부수고 뼈를 찢었다. 부러진 틈에서 뼛가루가 미세하게 날리니 달빛에 비친 가루는 날파리와도 같이 공중을 떠돌다 피벌거진 흙바닥에 천천히 사라라히 떨어졌다.

  공손연은 칼도 빼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일시에 천명의 목숨이 시체로 변해 전멸하자 눈물을 흘리며 말에서 내려 항복했다. 공손수도 내려와 나란히 무릎을 꿇고는 위나라의 처분을 기다렸다. 수분의 시간이 흐르자 산 위에서 지켜보던 사마의 부자들이 공손연의 앞에 섰다. 사마의가 사마소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소가 칼을 빼들었다.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 것이 유가의 법도라 하나, 역적은 그에 논할 수 없고, 비천한 놈들이 하늘에 도전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특별히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명예를 살려주마.”

  투구를 벗고 무릎을 꿇은 공손부자에게 사마소가 단걸음에 달려가 두 번을 베어 공손연의 목을 베어내고 공손수의 머리를 반으로 찧어내니 피가 화산처럼 하늘 높이 튀었다. 핏방울이 내려앉으며 그들의 몸도 땅에 내려앉았다. 밀우는 이를 무덤덤하게 쳐다보았다.

  “잘했다. 역적을 베어낸 것은 너의 공이다.”

  사마의가 칼을 집어넣으며 돌아오는 사마사를 칭찬했다. 장수들이 각기 사마의의 앞으로 모여 공적을 입을 모아 감축하자 사마의가 말했다.

  “내 지난 병인일 밤에 큰 별이 이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오늘 임신일에 그 징조가 맞아떨어졌구나. 천문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에 장수들이 다시 입을 모아 칭송하며 축하했다.

  “과연 태위의 신산은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사마의는 군사들을 시켜 요동군의 시체를 거두고 살아남은 자는 모아 포로로 묵었다.

 

  사마의가 화산에서 군사들을 정비하고 거느려서 양평성으로 향했다. 사마의가 성에 이르기 전에 관구검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성문으로 향하여 공손연의 머리를 들어 치켜세우니 요동군이 문을 열어 위나라군을 맞이했다. 사마의의 본진이 성안으로 들어가니 성안의 양평 백성들이 길거리에서 향을 피우고 절하며 위나라군을 맞이했다. 사마의는 위나라군과 고구려군이 모두 성안으로 입성하기를 기다린 후 모두가 궁에 들어오자, 군량 중의 귀한 음식들을 풀어 병사들이 쉴 수 있도록 하였다. 사마의는 군사들이 쉬고 있을 때에 관부를 차지하고 앉아 궁에 있던 양조와 같은 양평의 관료들을 모두 모았다. 그 후 사마사와 사마소가 궁밖에서 색출한 관리들과 공손연의 가족들을 색출하여 궁으로 끌고 왔다. 반란에 임한 공손집안과 그 가신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 처형하게 하니 무려 70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는 한편 현도태수 왕기를 양평성에 부임케 해여 요동주목을 왕기가 대리정치함을 방을 붙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또한 사마의는 황실에서 받은 군량의 반을 풀어 백성들을 위로케 하고 도적떼로 변한 반군들을 모두 소탕하고 항복한 이들은 포로로 들여 다른 군의 사병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하니 대다수의 민심이 사마의에게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관부에서 업무를 보던 사마의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사마의에게 고했다.

  “가범과 윤직이란 인물은 공손연에게 반역해서는 안된다고 간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봉토를 빼앗겼습니다. 이를 헤아려주심이 어떠십니까.”

  “충직한 사람은 당연히 죽어서도 명예과 존경을 받는 것이 옳다.”

  이에 사마의는 사람을 시켜 가범과 윤직의 묘의 봉분을 높이고 그 자손들을 불러 양평 행정군의 벼슬과 재물을 내렸다. 양평의 일이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사마의는 궁 창고에 가득한 재물들을 함께한 위나라군에 풀어 삼군을 위로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회의를 가져 관구검, 하후패, 왕기, 관구검, 사마사, 사마소 순으로 후하게 상을 내렸다. 그리고 현도태수 관구검을 양평태수로, 다시 현도태수를 왕기로 칭한 다음 황실로 돌아가 관구검 요동지방을 호령할 수 있는 유주자사로 임명토록 황제께 고하겠노라 약속하고, 관구검으로 하여금 함께 진군하고 고생한 고구려군에게도 따로이 상을 부족하지 않게 수여하라 신신당부하였다.

  “고구려는 이제 우리의 우방이 될 것이니, 왕기 자네가 이곳에서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게. 만약 고구려의 왕이나 지방 군벌들이 다른 마음을 먹거들랑 자네가 먼저 독자적으로 움직여도 좋네.”

  “네, 태위님.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이 왕기가 요동을 굳건히 지키겠습니다.”

  사마의는 왕기의 답을 흡족하게 듣고는 장수들과 군사들을 이끌어 낙양으로 회군하였다. 사마의가 떠나는 날에 관구검이 행렬을 마중나감에 있어 아직 양평에 있던 고구려의 득래도 함께하였다. 득래의 호위병으로서 밀우도 함께하였는데, 가마에 앉아있던 사마의와 밀우의 눈이 마주쳤다. 사마의는 밀우를 보며 갸우뚱거렸는데, 이내 가마를 이동하며 득래와 밀우에게 다가왔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사마의가 밀우를 보며 물었다. 알아들었지만 중국말이 능숙하지 못한 밀우는 더듬더듬하며 답하였다.

  “밀우입니다.”

  사마의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말했다.

  “눈에 총기가 가득하고, 이마와 어깨가 넓고 광대가 짙고, 기운찬 후광이 사람을 덮으니, 그 관상이 절세의 인물이다. 화산에서 싸울 적에도 잠시 눈에 띄었지만, 기골이 참 장대하군. 위나라 사람이었다면 내 친히 내 사람으로 두고 싶을 것 같은데 아쉽구만. 허허.”

  밀우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사마의는 소탈하게 웃고는 다시 가마를 돌려 행렬로 돌아갔다. 잠시 소동이 일어난 것처럼 이목이 끌려 사마의의 군사를 배웅하던 관구검이나 왕기의 눈길도 밀우를 향했다가 다시 돌아갔다.

 

  왕기가 새로이 부임 받은 유주지방의 현도군으로 떠나고, 관구검 또한 새로이 유주자사로서 잠시 양평성에 머물게 되었다. 규모가 좀 더 큰 요동성에 관청을 설치하고 주둔하여야 맞는 것이었지만, 민심이 다소 해이해진 양평을 둘러보고 보듬고자 함이었다. 한차례 낙양에서 황실에서 보내온 사절들과 관료들이 양평으로 찾아와 논공행상과 황명을 전달하였고, 고구려 장수 득래도 요동반군 진압에 일군을 일조함에 따라 상을 부여받게 되었다. 관구검이 유주자사에 오르는 것을 자축하여 성내에서 연등을 날아 올리며 연회를 몇 차례씩 성대하게 열고는 했다.

  밀우는 조금씩 친분을 쌓게 된 몇 동료들과 연회를 즐기며 저잣거리를 종종 돌아다니곤 하였다. 고향에도 각종 전분으로 만드는 국수는 있었지만, 뜨끈하고 혀가 얼얼한 맛의 다양한 밀로 만든 국수는 처음이었다. 무사인행을 떠나온 후 척박한 산림에서 연명하고, 요동으로 떠나오면서 빈약한 군량으로 그동안 허기를 달래 왔기에, 타지에서 먹는 제대로 된 식사와 이국적인 요리들이 안시성에서 지낸 이후로 무척 반가워 식도락도 여행의 일부라거니 하며 곱씹으며 이리저리 음식을 맛보기 바빴다. 간혹 전쟁용으로 쓰이던 값비싼 폭약 수백통을 모아 하늘에 쏘아 올려 빛을 발하곤 하였는데, 그 노란 색이 삶 통틀어 다섯 손가락 중 제일로 뽑을 만큼 예쁘고 찬란하여 입을 벌리고 넋 놓고 밤하늘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안시성을 떠나온 지 대략 200일쯤 되었을 때에 득래가 군사들을 한데 모아 이튿날 고향길로 떠날 것이라 일장 전달하였다. 군사들이 많지 않은 각기 자기의 소박한 짐들을 챙기거나, 화산에서의 전투 중 부득이 적의 창에 찔려 사망한 시신을 천에 쌓아 커다란 오동나무 관에 한데 모아 달구지에 실었다. 시신의 수가 대략 다섯 구쯤 되었는데, 천명 중의 다섯이 사망하고, 여섯 즈음이 부상을 당한 셈이었는데, 비록 그 수가 매우 적으니, 전쟁을 겪고도 무척 많은 이가 살아남은 것이니 대단한 일이었지만, 시신을 옮기는 밀우의 마음은 썩 유쾌하지 않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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