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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시간의 편지
작가 : 일희삼
작품등록일 : 2022.2.14

받는 이, 받는 시간을 쓰면 과거든 미래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전달되는 우표를 갖게 된 소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2부 - 제 13화. 다시 찾아온 악몽 (3)
작성일 : 22-02-28 19:44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7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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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아는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비밀번호 키패드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신발장에는 엄마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정면에 보이는 테라스에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

 

 지아가 꽉 막힌 목구멍에서 간신히 한 마디 꺼냈다. 황혼이 스며드는 집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집의 모든 방 문을 열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여다본 안방에도 역시 엄마는 없었다. 엄마가 벗어놓은 잠옷만 침대 위에 곱게 개어져 있을 뿐이었다.

 

 지아는 혹시 엄마가 안방에 딸린 화장실에 있을까 그곳도 확인해보았지만 침묵의 원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가려하는데 뭔가가 지아의 시선에 닿았다. 안방과 화장실을 연결하는 작은 옷방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검은 상자였다. 철제로 된 그것은 바로 금고였다.

 

 어릴 적부터 지아는 금고 안에 든 걸 궁금해 했지만 소영은 끝내 대답해주지 않았다. 엄마 몰래 아빠에게도 슬쩍 물어봤지만 석우 역시 정보가 없었다. 금고는 소용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다고 했다. 석우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보여 달라고 몇 번이나 떼를 썼지만 17년 가까이 입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지아는 무릎을 꿇고 앉아 금고를 들여다보았다. 다이얼 형태의 잠금장치는 몇 년의 세월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어두운 그림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등을 켜보았지만 검은 상자가 밝은 색으로 바뀔 리는 난무했다.

 

 호기심 많은 소녀는 다이얼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첩보 영화 같은 데에서 청진지를 대고 다이얼을 돌리면 희미하지만 소리가 다른 부분을 잡아내 비밀번호를 풀고는 했다. 지아는 혹여나 무슨 소리라도 들릴까 귀를 금고에 갖다 붙이고 다이얼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드르르륵—

 

 하지만 한 바퀴가 다 돌아갈 동안 이변은 없었다. 일정한 소리가 귓바퀴에 동그랗게 모였다.

 

 이때 현관문 비밀번호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적막한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놀란 지아는 황급히 안방에서 나왔다.

 

 문이 열리고 소영이 들어왔다. 소영은 아직 편한 옷으로 갈아입지 않은 딸이 안방에서 나오는 걸 분명 눈치 챘을 거다.

 

 “왔어? 집에 오면 불 좀 켜 놓지. 어둡게.”

 

 어느새 집에는 어둠이 자작하게 내렸다. 현관에 달린 센서등 만이 집 안을 비출 뿐이었다.

 

 “방금 왔어.”

 

 “그래? 늦게 왔네?”

 

 “응.”

 

 지아는 혹여나 엄마가 안방에 갔다 온 건 아닐지 물을까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소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소영은 평소 우아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수수한 추리닝 복장이었다. 커다란 캡을 쓰고 검정색 마스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밖에 다닐 때 쓴 모양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지아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왔다. 거실 불은 여전히 꺼져 있었고 안방의 열린 문 사이로 네모나게 재단된 빛이 축 늘어져 있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소영은 말이 없었다. 지아는 아빠가 오늘도 늦는지, 오늘 하루 종일 뭘 했는지, 학교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잘댔지만 소영은 최소한의 반응만 할 뿐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가득 찼던 밥공기를 반쯤 먹었을 땐 지아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항상 재잘대며 떠들던 모녀였다. 이 침묵이 어색했다.

 

 이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식탁 위에 올려뒀던 소영의 핸드폰이었다. 커다란 진동 소리와 함께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소영은 화들짝 놀라 숟가락을 놓쳤다. 지아가 슬쩍 보니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소영은 지아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황급히 빨간색 수신거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무슨 전화길래?”

 

 지아가 엄마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소영은 며칠 간 보였던 가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보이스피싱인가봐. 아까부터 계속 이 번호로 전화가 오네.”

 

 “차단해버려.”

 

 “응. 그래야겠다. 밥 마저 먹자.”

 

 지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지만 애써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마지막 밥숟갈을 들었을 때에야 소영이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소영은 어떠한 망상에 빠져 있는 사람처럼 초점을 잃은 채 숟가락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바라봤다. 숟가락은 빛의 굴절에 의해 소영의 모습을 위 아래로 뒤집어서 비추었다.

 

 . . . . . .

 

 “나 왔어.”

 

 여덟 시가 조금 넘자 석우가 왔다. 지아는 곧장 현관으로 뛰어나가 아빠의 품에 와락 안겼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른 사춘기가 왔던 지아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의 품에 안긴 건 몇 년 만이었다.

 

 “우리 딸 때문에라도 일찍 와야겠는걸.”

 

 석우는 당황하면서도 껄껄 웃으며 지아를 긴 팔로 안았다.

 

 “엄마가 이상해.”

 

 지아는 아빠의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석우는 그제야 딸이 귓속말을 하기 위해 안겼다는 걸 알았다.

 

 “엄마가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다른 사람?”

 

 “왔어?”

 

 안방에서 소영이 나오는 바람에 부녀의 귓속말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석우는 지아에게 눈빛으로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지아는 티 나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은 먹었어?”

 

 “응. 먹고 들어왔어.”

 

 “뭐 먹었어?”

 

 “고 비서님이랑 갈비 먹었어.”

 

 과연 석우의 옷에선 구운 갈비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양복 입고 고기 구워먹지 말라니까.”

 

 소영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석우의 정장 마이를 건네받았다.

 

 석우는 지아를 보고는 ‘평소랑 다를 거 없는데?’하는 눈빛과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려줄래?”

 

 향긋한 샴푸 냄새를 풍기며 석우가 지아의 방으로 들어왔다. 석우는 문을 굳게 닫고 그 어떤 소리도 새어나가지 못하게라도 하려는 듯 문에 등을 기댔다.

 

 침대에 누워 오빠에게 문자를 보내던 지아가 상체를 일으켰다. 지아는 아빠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석우는 잠시 문을 잠글까 고민하다 이내 딸의 옆에 앉았다. 푹신한 침대가 움푹 들어가면서 부녀는 바짝 붙었다.

 

 “아까부터 계속 엄마 핸드폰으로 똑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어.”

 

 지아가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영의 핸드폰으로 계속 같은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소영의 요란한 벨소리는 집 안의 적막을 쉴 새 없이 깨부수었다. 지아는 엄마의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귀를 막았다. 처음엔 30분에 한 번, 그 다음엔 20분, 10분. 전화가 오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아는 그저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소영 역시 참을 수 없었는지 전화를 받았다. 소영은 안방에 있었지만 흥분한 그녀의 목소리는 지아의 방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왜 17년 만에 나타나서 이러는 건데? 당신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거 같아?”

 

 간헐적으로 들린 소영은 겁에 질렸다가, 분노에 차오른 목소리로.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해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신음으로 바뀌었다. 전화 저편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지아는 호기심보다는 소영의 갑작스런 패닉이 무서울 뿐이었다.

 

 때론 엄격했지만 항상 자상했던 엄마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믿을 수 없어. 그 아이는 분명…… 없어졌단 말이야.”

 

 소영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 뒤로 어떠한 목소리도, 지겹게 울려대던 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막상 공허가 찾아오니 지아는 뒤늦게 호기심이 들어 문 가까이 귀를 기울였다.

 

 하마터면 집에 엄마가 있다는 것도 까먹을 만큼 공간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오로지 시간만이 흘렀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도 침묵처럼 더디게 흘렀다. 마지못해 흐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내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가 지아의 방으로 가까워졌다. 지아는 황급히 책상에 가 앉았다.

 

 발소리는 분명 지아의 방 앞에 멈췄다. 지아는 투시능력이라도 있으면 문 밖 너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찰나의 상상을 했다. 엄마의 무거운 발걸음은 다시 안방으로 돌아갔다. 안방 문은 서서히 닫혔고 공간은 다시 고요 속에 빠졌다.

 

 무심한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아빠 생각엔, 요즘 엄마가 외로움을 겪는 거 같은데?”

 

 석우가 마지못해 내놓은 해답은 겨우 그것뿐이었다. 지아는 자신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도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 아빠가 물어봐주면 안 돼? 대체 누구한테 그렇게 전화가 오는 거냐고.”

 

 석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마지막으로 전화 받은 이후 다시는 전화가 안 왔다고 했지?”

 

 “응.”

 

 “그럼 엄마가 잘 해결 했을 거야. 엄마 엄청 강한 사람이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인 것 같은데……”

 

 석우는 딸의 뒤통수를 쓰윽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석우의 무게 때문에 깊이 들어갔던 침대가 불룩 나왔다.

 

 “아빠는 걱정 안 돼?”

 

 지아가 나가려는 석우를 붙잡았다. 석우는 문을 열기 전에 딸을 돌아봤다.

 

 “분명 아무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아빠가 엄마랑 잘 얘기 해볼게.”

 

 “응……”

 

 지아는 아빠가 미덥지 못했지만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엄마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석우도 소영의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본다면 아마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석우가 완전히 문을 닫지 않아 살짝 열린 문틈으로 지혁의 방이 보였다. 정갈하게 정리된 방이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지아는 핸드폰을 켜 지혁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다시 한 번 보았다. 아무리 봐도 어리광을 부리는 여동생처럼 보였다.

 

 ‘오빠 집에 와……’

 

 아무런 이유나 사유도 붙이지 않고 단지 그 다섯 글자만 썼다. 하지만 지혁은 농구부 훈련으로 핸드폰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지아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그녀의 절박하고 두려운 마음도 컸다.

 

 . . . . . .

 

 “오늘은 특별 외출이다!”

 

 대남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이 소리쳤다. 인근 고등학교 농구팀과 친선경기에서 30점 차 대승을 이끈 직후였다. 아직 땀이 마르지도 않은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중에는 20득점을 올리고 오늘 경기의 MVP로 추대 받은 지혁도 있었다. 지혁은 이제 막 게임볼을 받고 자신의 기록지를 내려다보며 오늘의 활약을 가슴 깊이 새기는 중이었다.

 

 농구부 매니저이자 3학년 학생인 현서가 핸드폰 가방을 가져와 선수들에게 핸드폰을 나누어주었다.

 

 “오늘 10시 전에는 기숙사로 복귀해야 한다.”

 

 “예!”

 

 걸걸하고 덩치 있는 남학생들이 일제히 소리 지르자 강당이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1학년인 지혁이 핸드폰을 제일 나중에 받고는 뒷정리를 했다. 뒷정리를 항상 막내들의 몫이었다. 같은 1학년생들과 빠르게 청소하고 강당 문을 걸어 잠갔다.

 

 “모지혁! 뭐할 거냐?”

 

 “오랜만에 집 가야지.”

 

 PC방을 가자는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혁은 반대 방향을 고집했다. 친구들이 못내 아쉬워했지만 지혁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빨리했다.

 

 사실 지혁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여기야!”

 

 저쪽에서 매니저 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교 뒷문에서 현서가 돌계단에 앉아 지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지혁은 몸을 날려 현서에게 와락 안겼다. 그래놓고는 아직 샤워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떨어졌다.

 

 “야. 갑자기 안으면 어떡해.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떡하려구.”

 

 “뭘 어때.”

 

 “나랑 사귀는 거 알면 너 바로 짤려.”

 

 현서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두 사람은 남들 몰래 비밀연애를 하고 있었다. 현서의 말대로 농구부 학생들은 연애 금지령이 있었기에 연애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패기가 넘쳤던 1학년 지혁을 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규칙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현서도 지혁이 너무 좋은 나머지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눈에 반한다. 현서와 지혁은 서로를 만나고 그 말 뜻을 알았다. 아직 고등학생인 두 사람은 사랑이 뭔지는 몰랐지만 어쩌면 서로를 향한 마음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운명처럼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때의 온도, 색깔, 냄새까지 전부 머릿속에 각인됐다. 도장을 찍은 것처럼, 필름사진을 찍은 것처럼 그 순간은 불변했다.

 

 “오늘 경기 이기면 선수들 오랜만에 특별 외출 주자고 내가 제안했어. 잘했지?”

 

 현서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키가 큰 지혁을 올려다봤다. 현서도 키가 큰 편이었지만 지혁은 그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컸다.

 

 “어쩐지. 그 호랑이가 순순히 외출을 줄 리가 없지!”

 

 지혁은 그래놓고는 현서를 다시 와락 안았다. 이미 학교에서 꽤 먼 거리까지 왔다. 현서는 이번엔 땀 냄새를 핑계로 지혁을 밀어버렸다. 그게 현서가 남자 친구를 사랑하는 표현 방법이었다.

 

 

 

 사람들의 보는 눈이 있을까 차마 번화가에서 맘 놓고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두 커플은 최대한 외곽으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항상 현서의 동네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현서와 지혁은 바로 옆 동네에 살고 있었다. 물론 지혁은 지역에서 가장 높고 좋은 아파트에, 현서는 작은 빌라에 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서로가 너무 좋을 뿐이었다.

 

 “우리 여기에 있다가 서로 부모님한테 걸리는 거 아니야?”

 

 현서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혁은 그럴 일이 있겠냐며 깔깔 웃었다.

 

 그저 거리를 걷기만 해도 좋았다. 나란히 함께 서 있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지 몰랐다. 항상 선수와 매니저라는 신분으로 가까우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혁은 별의별 꼬투리를 잡아 현서에게 말을 걸었지만 선배들이 두 사람 사이를 방해했다. 1학년 주제에 매니저한테 말을 건다는 이상한 논리였다.

 

 그만큼 남탕 속 유일한 홍일점 현서는 농구부에서 인기가 최고조였다. 대놓고 치근덕대지는 않지만 은근슬쩍 마음을 표현하거나 아이 다루듯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선배들도 있었다.

 

 물론 현서는 그런 꾸민 모습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생각 외로 현서의 목소리가 굵고 단호해 남학생들을 쉽게 휘어잡았다.

 

 하지만 지혁의 앞에서는 여느 강아지처럼 온순하고 얌전해졌다. 언뜻 보면 지혁이 두 살 오빠일 거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그리고 다정히 걸으면서 저녁거리를 무엇으로 해결해야할지 의논을 나누던 그때.

 

 

 

 “지혁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혁은 처음에 목소리의 주인을 못 알아봤다. 분명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인데, 옷차림은 검정색 추리닝에 커다란 캡을 눌러 쓰고 있었다.

 

 “엄마……?”

 

 지혁은 그 순간 낯선 옷차림의 엄마보다 그녀에게 여자 친구를 들켰다는 게 더 당황스러웠다.

 

 “오늘 외출 나온 거야? 왜 말을 안 했어.”

 

 “특박 받은 거라서…… 엄마는 못 보던 옷을 입고 있네?”

 

 “응. 옛날 친구를 좀 만나느라. 그런데 옆에는……?”

 

 소영의 시선이 지혁의 여자 친구에게로 향했다. 현서는 그녀가 지혁의 엄마라는 걸 눈치 채고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농구부 매니저 누나야. 같이 밥 먹으려고……”

 

 “그래?……”

 

 그 순간 소영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현서는 그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소영은 시끄러운 벨소리를 끄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버리고 그냥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전화 안 받아……?”

 

 “괜찮아. 안 받아도 되는 거야.”

 

 소영은 민망한 듯 껄껄 웃었다.

 

 “그럼 재밌게 놀아. 이번 주말에는 집에 와?”

 

 “응. 금요일 저녁에 연습 끝나자마자 갈게.”

 

 지혁은 혹여나 현서가 불편할까 황급히 자리를 뜨려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영의 시선은 현서에게로 가 있었다.

 

 현서도 소영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지혁의 옆에 엉거주춤 서서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소영의 시선은 현서의 교복 이름표에 가 있었다. 현서는 괜히 눈동자를 굴리면서 입을 앙 다물었다.

 

 ‘나현서.’

 

 그 순간 소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이름이…… 현서구나. 나현서. 내가 아는 이름이랑 똑같네.”

 

 “네……”

 

 “엄마. 우리는 갈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지혁은 아무 핑계나 대고 현서의 옷깃을 붙잡고 반대쪽으로 갔다. 소영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뒤에서 소영의 시끄러운 벨소리가 다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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