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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거짓말쟁이의 삶은 편하던가요
작가 : 허혜민
작품등록일 : 2022.2.28

첫사랑, 아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퇴원한 하나.
그녀는 아인을 찾기 위해 그를 닮은 Mr.피노키오를 만난다. 그녀는 Mr.피노키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와 함께 다니는데 그 과정에서 인생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 아인을 만났던 그때처럼. 하나는 그간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되찾아 간다.

 
2.
작성일 : 22-02-28 17:34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1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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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덜컹덜컹 기차 소리가 들렸다. 기차는 문시티, 크레스센트 역을 향해 달렸다. 하나는 지정된 좌석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그녀의 작은 노트북에는 온통 Mr.피노키오에 관한 기사들 뿐이다. 하나는 수많은 기사 중 한 기사를 클릭해 읽었다.

 

 <천재 바텐더 등장. 그의 이름은 Mr.피노키오>

 

 독특한 향이 나는 술로, 망해가던 클럽을 구한 Mr.피노키오. Mr.피노키오의 정체는 모두 복면 속에 가려져 있다. 진짜 이름은 물론 나이, 출생지, 과거까지. 밝혀진 것이 없는 그에 대해 무수히 많은 소문만 떠돌 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떠도는 소문이 댓글 창에 적혔다.

 

 :Mr.피노키오는 정부 고위직 간부의 아들이래.

 :아님, 여행가 아들이야. 아빠가 여행을 다니면서 자꾸 향신료를 가져왔고 그래서 그렇게 향이 나는 술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함.

 →Re: 그거 삼촌 아니었음?

 :Mr.피노키오 원래 꿈은 드러머였다는데. 왜 바텐더를 하고 있지?

 :실제 얼굴 완전 잘생겼다는데 궁금하다.

 →Re:아님 못생겨서 가면 쓰고 다니는 거래.

 

 .

 .

 .

 

 근거 없는 소문은 사람들의 상상이 더해저 점점 크고 자극적으로 부풀어졌다. 하나는 그에 대한 소문을 조사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노트북을 닫았다.

 하나는 Mr.피노키오가 백아인이라 생각했다. 아인이 사라진 시점과 Mr.피노키오가 나타난 시점이 비슷했고, 둘 다 바텐더다. 심지어 독특한 향이 나는 술이라니. 그건 아인의 전매특허가 아니던가. 인터넷에는 Mr.피노키오가 크레스센트에서 가장 유명한 오라클 클럽에서 일한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재원의 치료제를 배달해야 할 곳도 크레스센트고, 오라클 클럽 또한 크레스센트다. 일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는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영원히 함께 하자는 말을 남기고 소리 소문없이 떠나간 그. 하나는 휴림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간호사를 통해 그가 머무른 곳을 알게 됐다. 하나는 그곳으로 편지를 수십통이나 보냈지만 어떠한 답장도, 면회도 없었다. 그가 하나를 찾지 않는 온갖 이유들을 떠올려봤지만 사실은 아인은 더 이상 하나가 보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는 그가 미웠다.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창문 밖으로 문시티의 풍경이 빠르게 스쳤다. 문시티엔 풀과 나무들이 많았다. 하나는 멍하니 창문을 보며 문시티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줄곧 썬시티에서 자랐음에도 문시티의 풍경이 그녀를 편안하게 했다. 노트북 옆에는 재원이 준 약봉지가 있다. 하나는 약을 집었다. 레베레티라 불리는 붉은 약은 복용자의 감정을 되살려주는 약이라 했다. 재원은 이것을 치료제라 불렀다. 온갖 매체에서 썬시티를 행복을 상징하는 도시라 불렀지만, 재원은 그들에게 치료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다. 하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세상일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단지, 그녀 안에 깃든 증오를 쫓을 뿐이다.

 기차는 정거장에 멈추었다가 출발하는 것을 반복했다. 하나는 장시간 여행에 노곤노곤 잠이 쏟아졌다. 하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녀는 며칠을 못 잔 것처럼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늘 꾸던 꿈이 나왔다. 놀이동산에서 춤을 추는 꿈. 그리고 나타난 여자….

 덜컹덜컹 움직이던 기차는 커다란 마찰음과 함게 속도를 늦췄다. 잠에 빠졌던 하나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하나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좋았던 꿈은 늘 악몽으로 번졌다. 하나는 곧장 도착한 곳을 확인했다. 창밖, 굵은 기둥에 크레크센트 역이라고 적힌 글자가 보였다. 하나는 서둘러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짐들을 가방에 넣었다. 기내에선 연신 방송이 울렸다.

 

 “이번 역은 문시티,크레스센트 문시티,크레스센트 역입니다. 이번 역에서 하차하실 분은 왼쪽 출구로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이번 역은 문시티….”

 

 방송을 마친 기차는 서서히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짐들을 품에 안고 왼쪽 출구로 달렸다. 덜컹하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하나는 역쪽으로 멀리 뛰었다. 하나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하나는 한 여자와 부딪혔다. 붉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다. 그녀의 손에선 지도와 팜플랫이 우수수 떨어졌다. 여자는 크고 동그란 눈으로 하나를 노려봤다.

 

 “뭐야, 갑자기!”

 

 하나는 표정없는 얼굴로 고개를 까닥하며 사과했다. 붉은 머리의 여자는 하나의 사과에도 화가 덜 풀렸는지 하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녀 뒤로는 네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중 밍크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부채를 흔들면서 짜증을 냈다.

 

 “설하 씨. 어서 가요. 여긴 너무… 구역질이 나.”

 

 하나는 설하라는 이름을 듣고 놀랐다. 하나를 노려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가 치료제를 받을 수신자인 건가? 설하는 재원이 말했던 것과는 이미지가 달랐다. 재원의 말로는 참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했는데 눈앞에 있는 설하는 성깔있어 보였다. 설하는 떨어진 안내문을 주으며 생긋 생긋 웃었다.

 

 “하하. 마담. 죄송합니다. 문시티 투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가요? 모두가 원하신다면 곧장 오라클 클럽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설하의 말에 무리 속 다른 사람들이 푸념조로 떠들었다.

 

 “난 하층민들 삶엔 관심이 없어서 빨리 클럽이나 가고 싶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여긴 냄새가 지독해서 더는 있고 싶지 않아.”

 

 설하 뒤로 모여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불평을 쏟았다. 그 후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들의 시선은 모두 밍크코트를 입은 마담으로 향했다. 마담은 턱을 높게 들며 부채질을 했다. 두꺼운 코트에 부채질이라니. 어울리지 않았지만 마담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마담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마담은 보라빛으로 어둡게 칠한 입술을 열었다.

 

 “문시티가 그럼 그렇지. 더러워서 숨을 못 쉬겠네. 당장 가요. 오라클 클럽으로.”

 

 설하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출구가 있는 계단을 가리켰다.

 

 “네. 그러면 곧장 택시를 타고 클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3번 출구로 미리 나가 있을까요?”

 

 마담은 커다란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설하를 포함한 사람들이 마담을 뒤따라갔다. 설하가 사라지려 하자 하나는 설하의 손목을 잡았다. 설하는 다시 또 크고 동그란 눈으로 하나를 쏘아봤다.

 

 “이번엔 또 뭐예요?”

 

 하나는 처음엔 약을 줄 생각으로 잡았지만 어차피 내일이면 약속된 장소에서 설하를 다시 볼 예정이었다. 무엇보다 재원은 설하 외의 사람들에게 레베레티를 보이지 말라고 했다. 하나는 잠시 말을 얼버무리다가 곧 설하에게 물었다.

 

 “저도 오라클 클럽에 가고 싶어요.”

 

 설하는 까칠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세요.”

 

 이번에도 하나는 표정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알려주세요. 오라클 클럽은 어딨죠?”

 “하.”

 

 설하는 하나의 태도에 화가 났다. 설하는 하나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검은 단발머리. 고양이 눈매. 흰 피부…. 설하는 문득 눈 앞에 있는 여자가 재원이 말한 그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설하는 하나의 무릎을 내려봤다. 바람에 하나의 치마자락이 살랑거렸다. 그리고 하나의 흰색 원피스 아래로 휴림정신병원의 문신이 찍힌 것이 보였다. 무덤에 박힌 다리 짧은 십자가. 하나는 재원의 심부름꾼이었다. 설하는 씩 웃었다. 재원의 심부름꾼이 용캐 크레스센트까지 온 것이다. 설하가 하나에게 말을 걸려 할 때 마담이 부채질을 하며 짜증을 냈다.

 

 “설하 씨! 부전공이 경호보안과라면서, 저까지 팔 하나 못 풀어?!”

 “마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설하는 마담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리고 설하는 자기 손목을 살짝 비튼 후 아래로 휙 당겼고 정말로 아주 쉽게 설하는 하나의 손에서 풀려났다. 설하는 하나에게 다가가 하나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연락드릴게요. 그때까지 기다려요.”

 

 설하는 고개를 휙 돌린 후 하나에게서 멀어졌다. 설하와 함께 그녀의 고객들은 출구로 이동했다. 설하는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하나를 향해 크게 외쳤다.

 

 “오라클 클럽은 찾기 쉬워요. 크레스센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오라클 클럽이죠. 어디서나 보일 거예요.”

 

 설하는 생긋 웃으며 출구 밖으로 사라졌다. 하나는 사라진 설하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재원은 어딜 봐서 설하가 참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던 걸까? 하나가 본 설하는 따뜻하기 보다는 까칠하고 그러면서도 활기가 넘쳤다. 모쪼록 하나는 오라클 클럽을 찾기 위해 크레스센트 역을 나왔다.

 

 역 밖으로 나가자 불쾌한 냄새가 하나의 코를 찔렀다. 하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코를 막았다. 설하의 고객들이 왜 그렇게 불평했는지 이해가 갔다. 하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문시티는 난생 처음이었다. 모든 매체에선 문시티의 어떤 곳에도 행복은 없다고 했다. 아인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마을을 떠났지만. 하나는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장벽을 바라봤다. 이클립스 장벽이다. 하나의 마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던 그 장벽. 누구도 넘을 생각을 하지 않은 그 장벽을 아인은 넘었다. 옆은 쥐색의 장벽은 시간의 흐름을 막지 못한 듯 여기저기 금이 갔다. 그럼에도 벽은 원채 두꺼워 무너질 것같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의 흔적이 그것을 더욱 굳건해 보이게 만들었다. 하나는 높디 높은 장벽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크레스센트 마을이 보였다. 가히 무법지대라 불릴 만한 도시였다. 대낮임에도 도시 전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어두웠다. 건물마다 걸려 있는 네온사인 간판이 도시를 붉게 또는 푸르게 밝혔고 그로인해 꼭 사이버펑크 도시 온 느낌이었다. 아스팔트 바닥 위엔 전단지, 담배꽁초, 술 병 같은 것들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졌다. 그 위로 후질근한 옷을 걸친 사람들이 비틀비틀 걸었다. 마치 쓰레기 통 안을 걷는 것 같았다.

 이곳은 썬시티의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그들에겐 법과 질서 따위는 없는 듯 했다. 사람이 있건 말건 아무데서나 키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만지는 남녀가 보였고, 가게 앞에선 엠프를 내려 놓고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미소 속엔 어떠한 가식도 계산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별 뜻 없이, 어떻게 보면 생각없는 멍청이들처럼 마구 웃어댔다.

 크레스센트 도시는 이상했다. 크레스센트 도시 안에 썬시티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마약견, 셰퍼드와 함께. 경찰은 썬시티 사람답게 제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상태로 걸었다. 심지어 그들이 데리고 다니고 셰퍼드조차 크레스센트 사람보다 삶이 편안해보였다. 하나는 상반된 두 이미지에 이상한 마음을 느꼈다. 신기하면서도 괴리감이 들었다.

 설하가 말한 대로 다른 건물들에 비해 유난히 높은 빌딩이 보였다. 썬시티에서 흔히 보았던 건축물과 같은 디자인이다.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고층 빌딩. 하나는 저곳이 바로 오라클 클럽임을 알았다. 하나는 핸드백에 들어있는 작은 권총을 만졌다. 금속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전해졌다.

 

 “늘 함께하자.”

 

 아인이 했던 말이다. 늘 그렇듯 그의 추억과 말은 불쑥불쑥 떠올라 하나를 괴롭혔다. 하나는 표정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거짓말.”

 

 하나는 오라클 클럽으로 향했다.

 

 *

 트럼펫, 베이스, 키보드, 잔잔하게 울리는 드럼. 하나가 도착한 오라클 클럽은 클럽이라기 보다는 재즈바에 가까웠다. 혹은 가면무도회. 하나를 제외한 모두가 각기 다른 가면을 쓴 채 우아하게 사교 댄스를 췄다.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빛과 보라빛 조명이 그들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하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 클럽 안쪽에 있는 바 테이블 앞에 앉았다. 이런 클럽이라면 Mr.피노키오의 가면도 평범해 보일 것이다. 하나가 스테이지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을 때 바텐더가 하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맨 얼굴의 손님. 무엇으로 드릴까요?”

 

 바텐더는 귀에 닿을 정도의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귀여운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의 귀엔 자그마한 링 피어싱이 걸렸는데 클럽의 조명이 바를 비출 때마다 반짝거렸다. 그녀의 온몸에는 타투가 새겨졌다. 그 중 오른 팔에 그려진 반달 그림이 하나의 눈에 띄었다.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지나쳐 본 것 같았다. 하나는 바텐더에게 주문을 했다.

 

 “핑크스완이요.”

 

 하나의 말에 여 바텐더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핑크스완이라는 술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재료를 알려주신다면 비슷하게 만들어 볼 순 있습니다. 그렇게 해 드릴까요?”

 

 하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인이 제조하는 모습을 옆에서 많이 봐왔기에 하나도 어느 정도는 제조법을 알았다.

 

 “위스키와 앙고스투라 비터… 계란 흰자, 레몬, 체리 그리고 설탕을 넣었던 걸로 기억해요.”

 “위스키와 앙고스투라 비터…, 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만들어오겠습니다.”

 

 바텐더는 빠른 속도로 하나의 말을 노트에 받아 적은 후, 재료를 확인하기 위해 홀로 들어갔다. 하나는 다시 스테이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급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이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헤어. 오라클 클럽에 있는 이들은 썬시티 사람이다. 그것도 돈 좀 버는 중상위층일 것이다. 추한 거리 아래 이토록 우아한 세계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크레스센트는 다른 도시보다 유난히 독특했다. 하나가 지금껏 접한 세상은 모든 게 이분법적으로 구분됐다. 흑과 백, 불의와 정의, 추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썬시티와 문시티. 그런데 이곳 크레스센트는 문시티라는 도시 속에 썬시티 시민이 있고, 추함 아래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하나는 아인이라면 이 도시를 분명 마음에 들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찾고자 했으니까. 하나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을 때 바텐더가 술잔을 내보였다.

 

 “주문하신 핑크 스완 입니다.”

 

 투명한 글라스에 분홍빛 술이 그라데이션으로 담겼다. 핑크스완. 그것은 아인이 하나에게 만들어 준 첫 칵테일이다. 하나가 난생 처음 마셔본 술이기도 하고. 하나가 잔을 들자 얼음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칵테일 코스터를 봤다. 동그란 코스터 중앙엔 태양과 초승달이 반쯤 겹친 그림이 있다. 그 주위로

 

 “우아함은 비밀스러움에서 나온다.”

 

 와 같은 글자가 동그랗게 그림을 에워쌌다. 그림은 꼭 알파벳처럼 보였다. 태양은 O, 초승달은 C. 아마 오라클 클럽의 로고인 것 같다. 하나는 술잔에 입술을 대고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액체가 얼음과 함께 하나의 혀를 시원하게 적셨다. 이 술은 끝으로 갈수록 단맛이 강해진다. 여기까지는 하나가 기억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마지막에 올라오는 그 독특한 향이 이 술에선 나지 않았다. 분명 아인이 제조한 것을 제대로 봤는데…. 재료를 놓친 걸까. 바텐더는 하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술은 기억하던 것과 비슷한가요?”

 “비슷해요. 그런데 제가 마시던 건 독특한 향이 났는데 그 향이 나지 않네요. 재료 몇 개를 놓쳤나봐요.”

 “독특한 향이 나는 술이요? 그렇다면 다음 번엔 Mr.피노키오에게 부탁해 보시는 건 어떤 가요? 그의 술 또한 향이 나기로 유명하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그를 찾기 위해 오라클 클럽에 왔어요. 그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요?”

 

 바텐더는 헤헤 하고 웃으며 말했다.

 

 “Mr.피노키오는 VIP전용 바텐더라 일반 스테이지에서 보기 힘들어요. 오라클 호텔을 이용하신다면 언제든 그의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호텔 룸을 돌며 손님들에게 술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호텔이 한가하다면 종종 일반 스테이지에 오기도 하니, 크레스센트에 오래 지내실 생각이라면 이곳에서도 그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하나는 핑크스완을 다시 한 모금 마신 다음 말했다.

 

 “오라클 호텔은 어떻게 이용할 수 있죠?”

 “1층 리셉션에서 예약하시면 됩니다. 오라클 호텔은 썬시티 사람만 예약이 가능해요. 하지만 손님은….”

 

 하고 바텐더는 하나를 잠시 훑었다.

 

 “보아하니 썬시티 사람 같으니 문제가 되진 않겠네요.”

 

 바텐더는 친절하게 답했다. 하나는 더 이상 썬시티 사람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값비싼 옷만 걸쳐 입는 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그때는 휴림정신병원의 낙인을 가리기 위해 긴 하의를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다시 바텐더의 반달 그림에 시선이 갔다. 그녀 역시 썬시티에서 쫓겨난 걸까? 하나는 바텐더의 반달 문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문시티 마을의 상징인 가요?”

 “네. 문시티, 웍싱 마을 입니다. 제 고향이고요.”

 

 하나는 무릎에 있는 휴림정신병원의 문양을 생각했다. 하나가 휴림정신병원으로 강제 입원 됐을 때 찍힌 것이다. 낙인처럼. 아프고 뜨겁게 그녀 몸에 새겨졌다. 반면 썬시티에선 어떠한 문신도 허용하지 않았다.

 

 “원래 썬시티를 제외한 다른 마을은 몸에 그 마을 상징을 새기나요?”

 “썬시티에서 추방되면 몸에 새긴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전 문시티에서 나고 자랐고 이건 제가 직접 새긴 거예요.”

 “분하지 않나요? 안 좋은 역사를 상징하는 문화잖아요.”

 “그래서 대부분은 탐닥지 않게 여기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저는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몸에 남기기로 했어요. 제 신체 중 가장 중요한 오른 팔예요.”

 

 바텐더는 반달 문신을 바라보며 과거의 상념에 젖었다. 그 모습에 하나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듣기로는 문시티의 어떤 곳도 행복은 없다던데….”

 

 하나는 말끝을 흐렸다. 바텐더는 다시 또 벌어진 앞니를 보이며 수줍게 웃었다.

 

 “저는 행복은 어디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썬시티 사람들이 보기엔 보잘 것 없는 마을지만요.”

 

 그러자 하나 옆에 앉아 묵묵히 맥주를 마시던 남자가 술잔을 테이블 위로 강하게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에 하나와 바텐더는 화들짝 놀라며 남자를 바라봤다. 정리 안 된 수염, 덥수룩하게 자란 갈색 머리카락, 커다란 몸집. 게다가 남자에게서 오래 씻지 않은 사람에게 나는 찌릿한 냄새도 풍겼다. 바텐더는 남자가 구면인 듯 그를 타박했다

 

 “현우 아저씨. 잔 좀 부드럽게 내려놓죠? 갚을 돈도 없으면서 또 깨트릴 작정이예요?”

 

 현우라는 남자는 바텐더에게 건성으로 알겠다고 한 뒤 하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그러죠? 문시티엔 행복 같은 건 없다고요.”

 “글쎄요. 모든 매체요?”

 “정부가 만들어 낸 거짓말에 속고 있군요.”

 

 현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 현우는 코를 비틀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바텐더는 손수건으로 컵을 닦으며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또 시작했네.”

 “이보슈. 비싼 옷 걸쳐 입은 걸 보니 썬시티 사람 같은데, 정부를 너무 믿지 않은 게 좋을 거요.”

 “왜죠?”

 

 하나는 호기심에 물었다. 하나는 여타 다른 썬시티 시민에 비하면 정부를 신봉하지 않는 편이다. 그녀는 세상에 무관심 했기에 정부가 무어라 떠들 건 관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부를 신봉하는 사람은 많이 봐왔어도 이렇게 정부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매체가 떠드는 것처럼, 썬시티는 늘 행복하기만 하고, 문시티는 늘 불행하기만 하지 않다는 거요. 썬시티 시민들? 그들은 보기 좋은 게살구일 뿐이야. 속 안은 텅비어있는 게살구.”

 

 바텐더는 하나의 눈치를 살피며 변명했다.

 

 “그런 것치곤 티비와 잡지에선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던데요.”

 “그야 그들이 모든 매체를 통제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썬시티는 그 어떤 도시보다 자살율이 높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잘난 인간들이 뭐하러 누추한 문시티까지 와서 춤을 추고 호텔을 예약하겠나?”

 

 그 말에 바텐더는 그저 고개를 숙이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는 현우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정부에 대해 잘 알죠?”

 

 현우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문시티, 윅싱시티의 강력반 형사였으니까요.”

 

 현우의 말에 바텐더가 수건으로 컵에 윤을 내며 빈정거렸다.

 

 “지금은 백수 아저씨고요.”

 

 현우는 바텐더에게 버럭 화를 냈다.

 

 “정부의 비리를 조사하던 중 부서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어!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 거라고.”

 “어휴. 아저씨 옛날 일 좀 그만 청산하고 사람답게 좀 살아 봐요! 저 볼록 나온 뱃살 좀 봐요! 그리고 정부니 뭐니 그런 얘기 좀 손님들에게 하지 마시고요! 손님 떨어진다까.”

 

 바텐더가 현우를 타박했다. 하지만 하나는 현우의 얘기가 흥미로웠다. 하나는 현우에게 물었다.

 

 “정부의 비리요?”

 

 하나가 그의 말에 궁금해하자 현우는 으스대는 표정으로 바텐더를 봤다.

 

 “네 손님께서 내 이야기가 궁금하덴다.”

 

 그리고 현우는 하나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축 늘어진 뱃살 아래 밸트가 걸쳤다. 밸트엔 바텐더의 팔에 그려진 반달과 같은 문양이 있다. 남자는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에게 물었다.

 

 “얘기가 좀 길텐데 시간 좀 한가하슈?”

 

 그가 몸을 움직이자 적응했던 찌릿한 냄새가 다시 풍겼다. 하나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바텐더에게 기분 좋게 말했다.

 

 “아가씨와 내 앞으로 맥주 한 잔씩 부탁해.”

 

 바텐더는 툴툴대며 맥주기계 쪽으로 몸을 틀었다. 현우는 하나에게 말했다.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 제가 한창 팔팔하게 웍싱시티 강력계 형사로 활동했을 때입니다.”

 

 바텐더는 맥주를 잔에 가득 따라 온 뒤 하나와 현우에게 건넸다. 하얀 거품이 잔을 타고 흘렀다. 바텐더는 하나에게 속삭였다.

 

 “아저씨 말 너무 믿지 마세요. 그럼.”

 

 바텐더는 다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현우는 잔을 하나 앞에 들었다. 하나는 그와 건배를 했다. 현우는 껄껄 웃었다.

 

 “웍싱 시티에서 아이가 실종된 사건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는 웍싱 시티 시민이지만, 아이는 썬시티 시민이었어요.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위해 썬시티로 입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나는 그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하나 또한 양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현우는 말을 이었다.

 

 “아이가 썬시티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는 아이와 메일로 안부를 주고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행복의 도시라 떠들던 썬시티인데 희한하게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무척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연락하는 날도 뜸해지더니 어느 날 아이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는다고 했어요.”

 

 현우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현우는 그때의 잔영이 눈에 보이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

 

 “부모는 걱정이 되어 처음엔 썬시티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고 해요. 하지만 그들은 문시티 시민은 담당 관할이 아니라면서 일사코 거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웍싱 시티 경찰에 신고를 했죠. 그때 그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가 애가 자살을 한 게 아닌가 너무 걱정된다고 했어요. 그들이 주고 받은 메일을 확인해보면 확실히 아이에게 심한 우울증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죠.”

 

 하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썬시티 시민들은 모두 속으로 괴로워 하고 있어요. 그 아이도 그랬을 겁니다.”

 “드디어 인정하시는군요.”

 “부정한 적 없습니다.”

 “하하. 뭐 어찌됐건 저희는 정부에게 수색영장을 받고 아이가 살고 있는 썬시티의 집을 수색했어요. 그리고 아이의 방에서 특이한 몇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현우는 점퍼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두 손을 하나 앞에 내밀었다. 현우는 먼저 오른 손을 폈다. 오른 손에는 하나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물건이 들어 있었다. 노턴이라고 불리는 흰색 알약이다.

 

 “아가씨는 썬시티 시민이니 이 약에 대해 잘 알겠죠?”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을 지우는 약이네요.”

 

 현우는 다른 손을 폈다. 이번엔 붉고 투명한 약 안에 검붉은 점박이 무늬가 있는 약이다. 이 또한 하나는 잘 알고 있었다. 현우는 하나에게 물었다.

 

 “부잣집 아가씨. 그렇다면 이 약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요?”

 “레베레티 제로. 실패작라고도 부르죠.”

 

 하나가 답했다. 현우는 감탄했다.

 

 “ 잘 알고 있네. 그렇다면 이 약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겠죠?”

 “감정을 되살려주죠.”

 

 현우는 미소를 지었다.

 

 “대화가 쉽게 풀리겠군요. 아가씨, 이상하지 않나요? 한 사람이 감정을 지우는 약과 감정을 되살리는 약 모두를 복용한다는게.”

 “네. 그렇네요.”

 

 하나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이가 어떤 마음일 지 알 것 같았다.

 

 “아이의 내면이 분열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게다가 아이 컴퓨터에서 부모에게 보내지 못한 메일도 발견했어요. 그 메일에 의미심장한 글이 적혀 있더군요.”

 “그게 뭐죠?”

 

 현우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노트를 꺼냈다. 노트엔 손글씨가 보였다. 현우가 컴퓨터를 보고 받아 적은 것 같다.

 

 “엄마. 검은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이 나를 찾아왔어. 그들은 왕의 측근들이래. 전혀 무서워할 것 없다고 했어.

 엄마 아저씨들이 나는 특별한 아이래. 그래서 썬시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갈 거라는 거야. 아저씨들이 이건 특급비밀인데 나한테만 알려준다고 했어.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 발설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엄마한테만 몰래 말할게. 아저씨들이 세상은 아주 넓다고 했어. 썬시티 너머에 문시티가 있고, 문시티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거야. 엄마. 나는 그곳으로 가려나봐. 근데 이상해. 떠나는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랬어. 엄마를 포함해서 말이야. 아저씨들은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거라 했지만…, 엄마 난 무서워. 난 사실 아저씨들 말 못 믿겠어. 티비도 신문도 사람들도 모두 거짓말쟁이고 그 동안 난 너무 많이 속아서 아저씨들을 못 믿겠어.”

 

 현우는 노트를 덮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사건을 뒤지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렇게 사람들이 갑자기 실종된 사건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몇은 문시티로 보내졌다. 또 몇은 썬시티로 보내졌다고 하지만 그들을 이 섬에서 찾지 못했어요. 이후 저는 썬시티 경찰서에 실종사건 관련 문건을 넘겨달라고 요청했죠. 물론 썬시티 경찰에선 이를 거절했지만요. 제가 집요하게 옛 문건을 요구하고 실종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면서 사건을 캐려고 하니, 정부에서 아예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으며 저를 강력계 부서에서 끌어 내렸습니다.”

 

 현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나는 그런 현우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현우는 레베레티 제로를 꺼내며 생각에 잠겼다.

 

 “썬시티 사람들은 늘 웃고 있지만, 불행해했죠. 그 증거로 그들은 크레스센트로 넘어 와 정부 몰래 레베레티 제로를 복용하는 겁니다. 실패작임에도 그들은 이 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요. 그렇게라도 자기 자신을 느끼고 싶은 겁니다. 그들은 레베레티 제로의 부작용이 이보다 더 심해져도 약을 복용할 거예요.”

 

 하나는 현우의 손에 들린 레베레티 제로를 바라보며 재원을 떠올렸다. 썬시티 시민에게 치료제가 필요하다고 했던 재원. 그 또한 정부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걸까?

 

 “옛 사건은 포기하신 건가요?”

 “이 강현우를 뭘로 보고. 정부 몰래 계속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실종된 사람 중 한 명이 오라클 클럽에서 목격 됐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현우는 껄껄 웃었다.

 

 “오라클 클럽에도 이상한 소문이 많아요. 엘리베이터에서 전극 달린 여자가 달리며 괴물이 보인다고 소리친 사건이 있다고 하고, 제로가 아닌 다른 약이 실험되고 있다고 하고. 세상이 온통 난리입니다. 문시티 시민 뿐더러 썬시티 시민조차 기댈 곳 없습니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뭐든.”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맥주를 다시다 말고 어딘가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우는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Mr.피노키오를 찾는다고 했죠?”

 “네.”

 “운이 좋네요. Mr.피노키오가 일반 스테이지로 내려오는 경우는 드문 데 말이죠.”

 

 그러고 현우는 턱짓으로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켰다. 하나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 테이블의 투명한 유리 넘어로 Mr.피노키오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걸음 걸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그리고 가면도 가릴 수 없는 그의 까만 눈동자. 하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아인이다. Mr.피노키오는 바에서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의 시선이 하나에게 향했다. 둘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시선을 교환했다. 하나는 아인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지금처럼 이렇게 창을 사이에 두고 시선을 교환했었다. 어떠한 말도 주고 받지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 한다는 건 알았다. 그렇게 Mr.피노키오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자 하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증오도 배신감도 아닌 사랑. 사랑이었다. 하나는 당혹스러웠다. 하나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현우가 킥킥 웃으며 하나를 놀렸다.

 

 “금새 Mr.피노키오에게 반한 거요? 클럽에서 그가 인기가 많긴 하지.”

 

 하나는 현우를 노려봤다. 하나는 다시 Mr.피노키오를 봤다. 그는 아직도 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는 온갖 부정적인 일들을 마음 속에서 꺼냈다. 아인은 약속을 어겼고, 아인은 하나를 무시했고, 아인은 하나를 속였다. 두방망이질 치던 가슴이 진정됐다. 차가워졌다. 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굳게 다짐했다. 그의 가면을 벗기고, 그가 아인이라면 곧장 그를 죽이리라. 그리고 하나 또한 복잡한 이 세상을 떠나리라. 하나는 Mr.피노키오를 향해 걸었다. 그는 문쪽으로 가더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긴장한 채로 섰다.

 

 “안녕?”

 

 하고 하나가 Mr.피노키오에게 인사를 하자 Mr.피노키오는 화들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떨어뜨렸다. 하나는 그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아인이라기엔 긴장감도 높고 겁이 많은 것 같다. 하나가 대신 열쇠를 주워 Mr.피노키오에게 건넸다. 하나는 다시 인사를 했다.

 

 “안녕.”

 

 Mr.피노키오가 불안하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얇은 기계음으로 들렸다. Mr.피노키오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숨겼다.

 

 “저를 아세요?”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아인.”

 

 아인의 이름을 듣자 Mr.피노키오가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하나를 봤다. 그의 까만 눈동자는 아인을 닮기도 하고 닮지 않기도 했다. Mr.피노키오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거짓말.”

 “거짓말도 아니고요.”

 

 그는 정말 아인이 아닐까? 눈만 보고서는 알기가 어려웠다. 하나는 인터넷에서 Mr.피노키오에 대해 떠도는 소문을 떠올렸다. 썬시티 장관의 아들. 그의 삼촌은 여행가. 그는 삼촌을 통해 다양한 향신료를 얻었고 그 향신료로 향이 나는 술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했다고 했다.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말도 안되는 거짓말일 뿐이다. 썬시티 장관이 이런 곳에서 살고 있을리가 없다. 삼촌은 여행가라고 했지만, 사실 이곳은 썬시티와 문시티 밖에 없는 작은 섬나라일 뿐이다. 자그마한 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향신료를 얻을 수 있겠는가. Mr.피노키오는 가짜로 모든 것을 치장했다.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이름도 하다 못해 과거까지도. 그럴수록 하나는 더욱 집요하게 Mr.피노키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하나는 Mr.피노키오의 가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Mr.피노키오는 긴장한 것처럼 보였으나 딱히 피하지는 않았다. 하나의 손이 그의 가면에 가까워졌을 때 Mr.피노키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후문과 더욱 가까이 섰다. 하나는 그에게 말했다.

 

 “가면 좀 벗어 봐요.”

 

 지지직하는 잡음 섞인 기계음과 함께 Mr.피노키오의 인조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네 정체가 궁금하니까.”

 “그거야 당신 입장이고, 전 가면을 벗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작은 핸드백에서 핸드백 크기만큼이나 작은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네. 강제로 하는 수밖에.”

 

 Mr.피노키오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필 이럴 때.”

 

 Mr.피노키오는 엘리베이터 쪽을 살폈다. 그리고 하나에게 손을 펴 보이며 살살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제 정체가 궁금하다면, 다음에 따로 만나서 얘기를 하죠. 저는 지금 몹시 바빠 이러고 있을 여유가 없답니다.”

 “바쁘다고? 하는 일이라고 멀뚱히 서 있는 거 밖에 없던데요.”

 “아주 중요한 일을 준비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Mr.피노키오는 말 끝을 흐렸다. Mr.피노키오는 다시 또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봤다. 엘리베이터에서 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갈색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홀로 서 있었다. 그는 Mr.피노키오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했다. Mr.피노키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Mr.피노키오는 하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곧 어둠이 찾아올테니 총 조심하고요.”

 

 Mr.피노키오와 하나는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Mr.피노키오의 말대로 정전이 났다. Mr.피노키오는 곧장 하나 손에 들린 권총을 그의 머리에서 치웠다. 그리고 어디론가 달렸다. 클럽은 캄캄한 어둠에 잠겼다. 보안시스템이 작동이 되면서 클럽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다. 여기저기 철컥 하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우왕좌앙했다. 하나의 눈은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어둠에 적응했다. Mr.피노키오의 실루엣 정도는 볼 수 있었다. Mr.피노키오는 후문으로 가 열쇠로 문을 열고 있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하나는 Mr.피노키오를 놓칠까 그를 향해 달렸다. 그런데 하나 옆에서 다른 이가 뛰는 소리가 들렸다. 클럽은 어두웠고, 정신이 없었다. 문 사이로 새어나온 빛이 하나 옆에 달리는 이가 누군지 보여줬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갈색 모자를 쓴 남자다. 둘은 같은 곳을 향해 달리다가 쾅하고 부딪혔다. 하나 핸드백에 들어 있던 약봉지와 잡다한 물건들이 쏟아졌고, 갈색 모자 주머니에서도 뭔가가 쏟아졌다. 남자는 급하게 떨어진 물건을 줍더니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Mr.피노키오도 함께 나가려 했지만 하나의 그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곧 클럽이 밝아졌다. 클럽은 정전이 일어나기 전과 달라져 있었다. 스테이지 내엔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쓴 이들이 우락부락한 몸을 움직이며 누군가를 찾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입구엔 크레스센트 역에서 만난 설하가 캐쥬얼 정장을 입은 장신 남자와 함께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Mr.피노키오는 하나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어딘가로 달아나려 했지만 설하 옆 장신의 남자가 Mr.피노키오를 불렀다.

 

 “Mr.피노키오!”

 

 그는 손가락으로 자기 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Mr.피노키오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남자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Mr.피노키오는 하나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장신의 남자 옆에 있던 설하는 어느 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장신의 남자와 Mr.피노키오도 무어라 얘기를 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하나는 떠나가는 Mr.피노키오를 바라보다가 떨어진 물건들을 주웠다. 그런데 레베레티 약 봉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투명한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검은 약만 있을 뿐이다. 하나는 후문을 바라봤다. 하나는 생각했다. 설마, 갈색 모자를 쓴 남자가 레베레티를 가져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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