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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래곤 거세하기
작가 : 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2.2.18

돼지 불알 까던 거세사. 공화국 최강의 드래곤 불알까기 마스터가 되다.

 
20.네 이름은 리피피(Rififi)
작성일 : 22-02-28 07:29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9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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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네 이름은 리피피(Rififi)

 

 「와트 박사님, 지난 달 실습실 안전진단 행정감사에서 특별한 지적사항은 없었소?」

 「무슨 말씀이신지?」

 

 두족룡과 대치하는 가운데 슈타이너의 느닷없는 질문에 와트 박사가 물었다.

 

 「비상시를 대비해 드래곤을 결박하는 쇠사슬 굵기랑 인장강도 기준을 높여야 될 거 같아 그렇습니다.」

 

 확실히 마취에서 깨어난 두족룡을 결박하기에는 목덜미와 다리에 묶여있는 쇠사슬의 굵기가 빈약해 보였다. 심지어 드래곤 가죽이 닿아있는 부분은 녹이 슬어 있었다. 와트 교수가 맥 빠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강철 체인 구매협조기안을 올렸지만 예산 삭감 때문에 기각됐습니다.」

 「울리히 게르하르트. 정말이지 숨은 종기 같은 작자군.」

 

 슈타이너는 교장의 비호를 받으며 거세학교 경영에 교수들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재정위원 울리히를 언젠가 손 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실책 하나라도 잡히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축출해야 할 사람이다.

 

 「실전이라 생각해라. 칼스, 여기 내가 없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

 「파트너는 있는 상황입니까?」

 「마취사와 너 둘 뿐이라고 가정해라. 게다가 마취를 저 따위로 해놓은 이류 마취사다.」

 

 칼스가 잠시 심호흡을 하고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럼 제 파트너에게 마취용 쇠뇌를 겨눠 놈의 시선을 끌게 한 뒤 저는 랜스로 녀석의 봉합 부위를 찔러 절명시키겠습니다.」

 「바보 같은 놈!」

 

 슈타이너가 꾸짖었다.

 

 「잘 봐 둬라. 이제 사슬을 끊겠다.」

 

 슈타이너가 말을 마치고 두족룡을 향해 펴고 있던 오른팔을 거뒀다. 그러자 두족룡이 두꺼비 울음 같은 소릴 내더니 몸부림을 쳤고 천장에 달려 있던 쇠사슬이 끊어졌다.

 

 「쇠사슬이 아니었어. 스승님이 염동력으로 드래곤을 결박하고 계셨던 거야.」

 

 클레어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궁드르디에게 귀띔했다.

 

 「두족룡을 가장 화나게 하는 상황이 뭐지, 클레어?」

 

 슈타이너는 클레어를 시험할 생각이었다.

 

 「비루나 빈대 같이 털에 기생하며 피부질환을 유발하는 해충입니다.」

 「정확해. 입고 있는 겉옷을 주게.」

 「예?」

 

 두족룡과 대치중이라 클레어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슈타이너가 담담히 말했다.

 

 「교육 차원이네. 오해 말고 부탁해.」

 

 클레어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입고 있던 얇은 로브를 슈타이너에게 던졌다.

 

 「자, 받아라!」

 

 슈타이너는 클레어에게 받은 로브를 잽싸게 두족룡에게 던졌다. 로브가 정확히 녀석의 등에 걸렸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옷감 냄새를 맡던 녀석이 화가 났는지 콧김을 불었다. 슈타이너가 그런 두족룡을 도발했다.

 

 「그래, 내가 던졌다. 벌써 가렵지? 덤벼!」

 

 ‘좀 심하군. 그래도 여잔데.’

 

 궁드르디가 슈타이너와 클레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능금보다 빨개진 클레어의 얼굴은 피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끄르르르!」

 

 두꺼비 같은 소리를 크게 내지르더니 두족룡은 그대로 슈타이너 경 방향으로 돌격했다.

 

 「스승님!」

 「올레!」

 

 굉장한 순간가속도였다. 뒷다리를 오므렸다가 스프링처럼 튕겨 추진력을 얻은 두족룡은 그대로 슈타이너경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다행히 슈타이너는 녀석의 동작을 한 박자 빠르게 계산해 가까스로 공격을 흘려냈다.

 

 쿵! 속도를 줄이지 못한 두족룡이 그대로 장 갈렌 실습관 기둥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기둥의 모르타르와 석회가 부서져 내리며 그대로 철골이 드러났다.

 

 「와트 박사님, 두족룡의 두개골 강도는 얼마입니까?」

 「강철에 준하는 수준입니다.」

 

 슈타이너에 물음에 와트 박사가 답했 다. 기둥에 머리를 들이박은 두족룡은 약간의 뇌진탕 증상이 왔는지 비틀거리며 코를 벌름거렸다.

 

 「기둥이 버틴 게 신기하군.」

 

 슈타이너가 질린 표정의 칼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칼스, 내가 왜 상이용사가 됐을까? 상대에 대한 무지와 만용 때문이야. 경력 이십 오년 차 볼 브레이커스도 방심하는 순간 끝장이다. 하물며.」

 

 슈타이너가 왼쪽 발을 털었다. 두족룡의 날카로운 발톱에 살짝 스친 가죽신이 찢어져 발가락이 삐져나왔다.

 

 「랜스로 찔러 해치운다고? 이게 귀족들 결투놀음인 줄 알았나? 불합격.」

 「스승님!」

 

 칼스가 변명할 새도 없이 다시 슈타이너는 다시 염동술로 제자의 입을 막았다.

 

 「클레어? 자네는 이 난관을 어떻게 수습할건가?」

 「실제상황을 가정한 겁니까?」

 「그렇다.」

 「죽여도 좋습니까?」

 「뭐라?」

 

 모두 귀를 의심했다. 클레어는 철퇴를 들고 일격자세를 한 뒤 말했다.

 

 「이마를 내려쳐 때려잡겠습니다.」

 「내 말을 예사로 들었나? 이런 친구들이 학년 수석, 차석이라니. 믿을 수 없군.」

 

 노한 슈타이너가 언성을 높이자 와트 박사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위대한 슈타이너 경, 당신을 존경하지만 이 수업의 권한과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도와주시면 제가 직접 마취해서 상황을 수습하겠습니다.」

 「마취제가 있습니까?」

 「흰독말풀 추출액을 희석한 게 있습니다. 마취 정량으로 묽힌 겁니다.」

 

 슈타이너가 한 숨을 쉰 뒤,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자들을 한 번 테스트 해보고 싶었는데 이것들 하는 소릴 들으니 더 볼 것도 없겠군요.」

 「스승님!」

 「뭔가?」

 

 여간해선 말대꾸를 하지 않는 클레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기회를 주십시오.」

 「이미 실격이야.」

 「여자라 못 믿으십니까?」

 「남자라도 못 믿지.」

 

 그러자 푸른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클레어가 중얼거렸다.

 

 「저를 두 번 욕보이시는군요.」

 

 ‘아차. 그녀의 겉옷.’

 

 슈타이너도 그제야 더러운 실습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그녀의 로브를 보고 당황했다. 숙녀에게 실수를 했군. 확실히 사과를 했어야.

 

 「저는 몸에 빈대가 있는 여자라서 안 되는 겁니까?」

 「당치않아! 그런 게 아니잖나.」

 「스승님! 뒤에!」

 「아차!」

 

 슈타이너가 당황해 해명을 하려던 찰나였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에 두족룡을 묶어 놓았던 염동술이 풀려 버렸다. 그러자 시력이 나쁜 두족룡이 코를 벌름거리더니 클레어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클레어!」

 「이야야아!」

 

 슈타이너는 자신의 볼 브레이커스 경력에 최대 오점이자 실수를 남겼다고 생각했다.

 

 ‘오컴 공과 울리히 같은 간적들은 축출하고 떠나야했는데. 이제 드래곤 거세학교의 미래는 없다. 나도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겠군.’

 

 쾅! 공성퇴와 강철로 만든 성문이 충돌했을 때 나는 굉음이 났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클레어!」

 

 소리를 지르며 슈타이너가 달려갔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유효하다면 클레어는 자신이 철퇴로 후려친 두족룡과 같은 충격을 몸에 받았을 것이다.

 

 ‘뼈가 부러졌거나 내장이 파열됐을 거야.’

 

 일 년에 평균 공화국 농민 서너 명이 축사에서 기르는 홀스타인(젖소 품종)에게 받혀 비명횡사한다. 하물며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클레어, 괜찮나!」

 「이 철퇴, 납품불량 같습니다. 스승님.」

 

 클레어가 휘두른 철퇴가 충격 때문에 90도 이상 휘어버렸다. 철퇴를 내던진 클레어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 수술대 옆에 있던 거세용 도끼를 다시 짚어들었다. 골절이나 상처 하나 없었다. 걷는 품이 내상도 없는 것 같았다.

 

 ‘틀림없어. 저 계집은 마녀야. 철퇴로 두족룡을 때려 돌격을 막아내다니.’

 

 경호에 민감한 칼스는 힘깨나 쓰는 용병들을 여럿 고용해 봤지만 클레어 같은 완력과 지구력은 처음 보았다. 인간이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어찌어찌 막아냈다고 해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텐데 반격할 생각까지 하다니.

 

 오히려 기진맥진한 건 두족룡이었다. 두 번에 걸친 충격으로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비틀거리다 균형을 잃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혀를 빼물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녀석의 힘을 빼주신 탓에 쉽게 반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그런가.」

 

 클레어가 덤덤하게 고갤 숙며 스승에게 공을 돌리자 슈타이너가 당황해 고갤 끄덕였다.

 

 「난 이게 어울려.」

 

 클레어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도끼를 들어 두족룡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찰나였다.

 

 「잠깐!」

 

 클레어가 소리 나는 쪽을 돌아봤다. 부서진 기둥 뒤에 숨어 있던 궁드르디가 튀어나와 외쳤다.

 

 「빈대 때문이 아닙니다! 저 드래곤이 흥분한 걸 진정시킬 수 있어요.」

 「뭔 개소리야? 클레어! 빨리 죽여!」

 

 다시 일어나 공격 할까봐 겁 먹은 칼스가 소리쳤다.

 

 「초식동물은 야생이라도 쉽게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녀석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던 겁니다. 스승님?」

 

 슈타이너를 쳐다보는 궁드르디의 눈빛에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자신 있나?」

 「보여 드리죠. 제가 왜 ‘위대한’슈타이너의 수제자인지.」

 

 *******************************************************************************************************

 

 드래곤 거세학교의 재학생과 관계자는 드래곤 거세학교 자치법령을 적용받는다. 일종의 면책특권이다. 학교의 동의와 허가 없이는 공화국법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처벌규정과 양형을 거세학교 징계위원회에서 결정했다.

 

 「베로니카 폰 힐데가르트. 면회다.」

 

 성 패트릭 본관 지하에 있는 재학생 감옥에 보름 째 구금 중이던 베로니카에게 로쉐가 뚜껑으로 덮인 은쟁반을 들고 찾아왔다.

 

 「사식입니다. 미스 베로니카.」

 「고마워요. 언제나 친절하시군요.」

 「제가 아니라 뤠이벡 상업조합을 대표해 드리는 겁니다. 공화국의 거물이시니까요.」

 「거물은 무슨. 금수저라고 비아냥 대지 말아요.」

 

 로쉐가 뚜껑을 열고 은쟁반을 배식구로 밀어 넣었다.

 

 「바닥이 너무 차군요. 뱅쇼도 준비할 걸 그랬어요.」

 「내일이면 출옥인데 뭐 이런 걸. 스승님 아직 많이 화가 나셨죠?」

 「아시잖습니까. 아닌 거 같아도 걱정 제일 많이 하시는 거.」

 「알죠. 늘 들었다 놨다, 병 주고 약 주시잖아요. 이번엔 백 퍼센트 내 실책이지만.」

 「너무 그러지 마시길. 걱정하느라 잠도 못 주무신 거 같던데. 스승님 눈이 십 리는 더 들어가셨습니다.」

 「정말요?」

 

 베로니카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포착한 로쉐가 봄바람 같은 미소를 짓더니 동문서답을 했다.

 

 「칼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

 

 아직 따듯한 설로인을 한 입 포크에 찍어 입에 넣으려던 순간 베로니카의 미간이 구겨졌다.

 

 「설마 이거 그 얼금뱅이가 보낸 건 아니죠?」

 

 「비용을 저희 상업조합과 함께 지불했다 정도로 해두죠. 저희 조합과 긴밀한 푸줏간에서 샀으니 그냥 드세요. 교환환불 불가입니다. 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입맛이 떨어졌는지 포크를 내려놓으며 베로니카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투구꽃 추출 원액을 잘못 희석했어요. 세상에,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일급 마취사나 되어서 여간 망신이 아니네요.」

 「그래도 사람 안 다쳐 다행입니다.」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요.」

 「무슨?」

 「칼스랑 클레어가 아니라고.」

 「뭐가 말이죠?」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 장사꾼들이란! 소년 같은 얼굴로 순진무구한 척 하긴. 베로니카가 보기에 가장 교활한 건 이 녀석이었다.

 

 「덜렁대서 그렇지 나도 명문가 자제라 이겁니다. 정보망이란 게 있어요. 말해 봐요.」

 「무슨 말씀인지.」

 「적당히 해요. 두족룡을 제압한 게 그 두 사람이 아니었다는 소문이 돌아요.」

 

 로쉐가 말이 없자 클레어가 쐐기를 박았다.

 

 「그래요. 뜨내기한테 4년간 학교가 심혈을 기울여 훈육한 수석, 차석이 망신을 당했으니 학교 차원에서 쉬쉬하는 게 당연하겠죠.」

 

 로쉐가 고갤 끄덕이며 모호하게 답했다.

 

 「볼수록 재밌는 분이더군요.」

 「설마?! 정말 그 일루리사트 촌뜨기가?」

 

 로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메테우스의 성기뼈. 어쩌면 진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궁드르디가 클레어의 로브를 주웠다. 희미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향기가 났다.

 

 ‘라벤더향인가? 아마 염색작업하면서 밴 거겠지.’

 

 두족룡의 주의를 끌기 위해 클레어의 로브를 몸에 걸친 채 궁드르디는 녀석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을 거야.’

 

 「멍청아! 저 기둥처럼 되고 싶어?! 빨리 피하라고!」

 

 초조해진 칼스가 야유를 퍼부었다.

 

 「걱정 감사.」

 「네 놈 걱정이 아냐! 쟝 갈렌 실습관에서 송장이 나오게 할 순 없어! 거세학교의 수치다.」

 「이리 오렴. 붸~ 붸~.」

 

 경계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고양이를 다루듯 궁드르디는 물러서지도 다가가지도 않은 채 두족룡을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기둥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흥. 그래 목숨은 아깝겠지. 스승님, 빨리 대책을. 읍.」

 

 칼스는 이것으로 오늘만 세 번째 스승의 염동술로 입이 막혔다.

 

 「너 클레어라 했지? 이 로브는 깨끗해. 빈대나 이 따윈 없다고. 어젯밤 자기 전에 관솔불에 소독까지 했네. 그렇지? 가족들한테 옮을까봐 그랬나?」

 

 궁드르디가 지난 밤 일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말하자 클레어의 얼굴이 빨개졌다.

 

 「밤새 염색작업 했지? 넌 아무리 피곤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아마 타고난 성품이겠지. 아무튼 대단한 노력가야.」

 

 클레어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로 푸른 눈동자가 부풀어 오른 걸 느꼈다. 그 누구도 궁드르디처럼 자신의 처지를 깊게 꿰뚫고 위로해 준 사람은 없었다.

 

 「가난은 그래. 목숨마저 노리는 무서운 스승이지. 때론 무너지게 때론 강하게 만들잖아. 붸~ 붸~ 이리 와라.」

 

 기둥 옆으로 간 궁드르디가 벽에서 나온 가루를 한 줌 짚어 손바닥에 놓고 두족룡을 불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니? 어떻게!」

 「놀랐지 변태도령? 가축을 키워봤어야 알지.」

 

 모두가 놀랐다. 허무할 정도로 순해진 두족룡이 코를 벌름거리며 양처럼 궁드르디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손에 놓인 가루를 정신없이 핥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놈! 무슨 요망한 짓을 한 거냐? 흑마술을 쓴 건가?」

 「마법 이름이 뭐냐고? ‘모닝 글로리(아침발기의 속어. 코드 피스를 입었던 칼스를 놀리는 말)’다. 멍청아.」

 「이 자식이!」

 「칼스, 오늘 자꾸 내 팔 아프게 할 거냐?」

 「죄송합니다. 스승님.」

 

 스승의 염동술에 또 당할까봐 칼스는 분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와트 박사가 탄복해 물었다.

 

 「대단합니다, 궁드르디 경. 의학과 생태학을 전공한 나도 몰랐는데 어떻게 드래곤을 그렇게 쉽게?」

 「박사님. 이 녀석은 염분이 부족해서 흥분했던 겁니다.」

 「염분이라고?!」

 

 슈타이너도 놀라 부서진 기둥과 궁드르디의 손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가축 뿐 아니라 모든 초식동물은 반드시 대량의 염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육식동물이야 사체의 혈액으로 보충하지만요.」

 

 두족룡이 가루를 다 먹고도 아쉬운 지 궁드르디의 손바닥 전체를 핥았다. 궁드르디는 순한 강아지 다루듯 드래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저 부서진 기둥에는 암염이 섞여 있습니다.」

 「암염이라고?!」

 

 모두가 놀라 한 목소리로 외쳤다.

 

 「확실합니다. 목축을 한 사람은 대번에 알 수 있죠. 소와 양을 키우려면 엄청난 양의 암염이 필요하거든요.」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놀라운 재능이군. 내가 사람을 잘 봤어.’

 

 슈타이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이쩡? 조금 더 줄까? 이 녀석도 그렇겠죠. 수술로 피를 흘리고 며칠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던 겁니다.」

 

 궁드르디가 슈타이너에게 물었다.

 

 「스승님, 혹시 두족룡은 길들일 수 있습니까?」

 「야생에서 알을 채집해 인공으로 부화시키면 가능합니다.」

 

 와트 박사가 슈타이너 대신 답했다.

 

 「그럼 얘는 가축으로 키운 녀석인가요?」

 「아니오. 그건 야생 수컷입니다. 그리고 가축화된 두족룡은 번식이 안 됩니다.」

 

 소금을 실컷 먹은 두족룡은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어 궁드르디의 얼굴을 핥았다. 그리고 목에 걸고 있던 왕가의 스팅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얌마! 이거 바늘이야. 먹으면 목에 걸려 죽어.」

 「궁드르디 경. 조심하십시오. 야생에서 포획한 개체는 가축화가 불가능해요.」

 「그런가요? 앉아.」

 

 그러자 얼굴을 핥아주던 녀석이 놀랍게도 궁드르디가 명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말 잘 듣는데요?」

 

 기존 학설과 충돌하는 상황에 와트 박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건 학계에 아무래도 사례보고를.」

 「아니, 와트 박사. 잠깐 모두 모여 주시오.」

 

 모두를 한 자리에 모은 뒤 슈타이너 경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침묵해 줬으면 하오. 새어나가면 곤란할 상황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내 말 이해하셨소?」

 

 다행히 모두의 이해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라 전원 군말 없이 동의했다.

 

 「이걸로 비겼군. 촌구석 귀족양반.」

 「뭐가?」

 

 뒷정리를 하려는데 칼스가 터무니없는 말로 궁드르디가 심기를 건드렸다.

 

 「네 놈의 기지와 우리의 힘과 실력이 이번에는 엇비슷했어.」

 「무슨 헛소리야? 니가 한 게 뭐 있다고? 발기된 물건으로 성 패트릭에게 성호라도 그었냐?」

 「믿을 수 없이 상스럽군! 나는 수석이고 클레어는 차석이야. 그녀가 한 건 나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얘기. 결국 우린 대등한 승부를 한 거지.」

 

 양동이와 해융으로 된 스펀지를 앞에 던지며 클레어가 두 사람의 다툼을 막았다.

 

 「둘 다 수술대 핏물이나 닦아. 다음 수업 준비 안 해?」

 「나에게 명령하지 마라. 차석 주제에.」

 

 클레어는 그런 도련님을 무시하고 궁드르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클레어 아우프 데어 마우어야. 잘 부탁해.」

 「궁드르디 판 투루니에 2세. 나야말로 잘 부탁할게. 파트너.」

 「투르니에 가문이라고?」

 

 순간 클레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우리 집안에 아는 사람이라도?」

 「아, 아니. 오늘 고마웠어. 빨리 치우자.」

 

 한편 뒷정리하는 제자들을 바라보던 슈타이너의 머리에는 두 가지 의문이 스쳤다.

 

 ‘야생 드래곤을 길들이다니. 볼 브레이커스 생활 이십 오년 동안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슈타이너는 궁드르디가 목에 걸고 있던 ‘왕가의 스팅거’를 보며 다시금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저것 때문인가. 이 친구. 정말로 예언 속 「옛 뱀의 머리를 밟는 자」일지도. 빨리 브뤼헤 스승님께 보고해야겠군.’

 

 또 하나는 기둥의 미스터리였다.

 

 ‘도대체 왜 최근 신축한 장 갈렌 실습관 기둥에 암염이 섞여 있는 거지? 내무감사를 은밀히 준비해야지. 이건 아무래도 구린 냄새가 난다. 교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클레어, 얘 이름 지어 주자.」

 「왜?」

 「말썽부린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 주면 오래 산데.」

 

 소금 먹은 놈이 물 들이킨다더니 두족룡이 어느새 궁드르디가 가는 곳마다 졸졸졸 쫓아다니며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여느 가축을 다루듯 능숙하게 녀석의 털을 스다듬어 주며 궁드르디가 말했다.

 

 「스승님, 혹시 이 녀석 제가 길러도 될까요?」

 

 슈타이너가 말을 받은 뒤 와트 박사를 쳐다봤다.

 

 「글쎄요, 실습용 드래곤에 대한 규정사례는 성문으로 된 내용이 없을 텐데..」

 「정말 길들일 수 있겠나?」

 

 슈타이너가 엄지를 척 올리며 묻자 궁드르디가 경례를 붙이며 외쳤다.

 

 「옙! 감사합니다!」

 

 궁드르디는 죽마고우 반려동물처럼 구는 드래곤의 턱과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고갤 끄덕였다.

 

 「리피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리피피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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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스크립토리움(Scriptorium : 필사실) 2022 / 2 / 27 226 0 6470   
14 14.새로운 모험의 시작 2022 / 2 / 27 223 0 5908   
13 13.예언 2022 / 2 / 27 235 0 6431   
12 12.두 괴물 2022 / 2 / 26 239 1 5874   
11 11.불가능한 레퀴엠 2022 / 2 / 26 239 0 5783   
10 10.여섯 번째 손가락 2022 / 2 / 26 267 1 5080   
9 9.열두 현의 칸텔레 2022 / 2 / 26 255 0 5417   
8 8.패트릭, 바늘의 랩소디 2022 / 2 / 22 246 1 9694   
7 7.기상천외한 작전 2022 / 2 / 21 243 1 5070   
6 6.죽음의 사자, 에피메테우스 2022 / 2 / 21 233 1 4707   
5 5.붉은 수수밭의 게이세리크 2022 / 2 / 20 241 1 5605   
4 4.거세 테스트 (1) 2022 / 2 / 19 288 1 5797   
3 3.후계자, 기습 청혼 2022 / 2 / 19 245 1 6696   
2 2.영웅의 몰락 (1) 2022 / 2 / 18 306 1 5680   
1 1.돼지 거세사 2022 / 2 / 18 374 1 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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