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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달을 걷는 마녀
작가 : 어린비
작품등록일 : 2022.2.8

연기력 하나는 끝내주는 조연 배우. '윤달' 첩보 액션 드라마 촬영 중, 옥상 낙하 장면을 찍다 그대로 추락사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 그녀 앞에 한 남자 아이가 나타나고, 그는 자신을 '신'이라 소개한다. 이대로 죽을 건지, 어느 가여운 사내를 구해주고 생을 이어갈 것인지 선택하라는데… 조건을 받아들인 달이 눈을 뜬 곳은 어느 지하 감옥. 그녀에게 다짜고짜 국왕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하라면서 그녀를 '프림로즈 공주'라 칭한다. 그런데 이 이름… 낯설지 않다. 달이 읽었던 소설 <달을 걷는 마녀> 속 여주인공이 아니던가…! 그런 그녀를 구해주기 위해 나타난 한 남자, 마법사 휘 섀도우 공작. 혹시 이 남자가… 그 가여운 사내…? 이렇게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 과연 윤달은 신이 내린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12화. 달이 떠오를 때(1)
작성일 : 22-02-28 01:05     조회 : 161     추천 : 0     분량 : 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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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달이 입을 틀어막으며 나오려던 비명을 집어삼켰다.

 

 “헐…?”

 

 테럴드가 순간 갸웃했으나, 더 급한 불이 있으니 일단은 넘겼다.

 

 “이쪽으로 오셔서 몸을 숨기시지요.”

 

 그는 계단으로 꺾이는 모퉁이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달도 그 뒤에 몸을 숨기곤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치 007 작전을 수행하는 첩보원들 같았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이제 막 1층에서 시작된 발소리와 함께 노기어린 목소리가 2층까지 닿았다.

 

 “… 이 가문은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된 게 없군. 주인도, 고용인들도 저리 아둔한 자들뿐이니, 원.”

 

 그 말을 들은 테럴드의 입매가 무섭게 굳었다. 그는 섀도우 가문의 집사 장으로서 굉장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굉장한 모욕이었다.

 

 “… 저게 미쳤나.”

 

 다만 속삭이는 욕지거리는 테럴드가 아닌 달의 입에서 나왔다. 테럴드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홱 돌아보자 달은 어설프게 입 꼬리를 당겼다.

 

 “이… 이제 어떡해요?”

 

 급히 화제 전환을 하는 달이었다. 테럴드가 찰나의 갈등을 마치곤 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내려가서 시선을 끌겠습니다. 그 사이에 달 님은 서고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가 안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테럴드의 표정은 침착하기만 했다.

 

 “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 고용인은 저와 하녀 장인 마피뿐입니다. 다른 고용인들이 올 염려는 안하셔도 됩니다.”

 

 달이 숨을 죽여 그가 건네는 열쇠를 받아들었다. 긴장한 손아귀가 축축했다.

 

 “… 알겠어요. 이걸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는 거죠?”

 

 달은 덩달아 비장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하지만 테럴드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주의해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좀 전보다 눈빛이 엄중해졌다.

 

 “서고 안에 있는 책들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요전에 서고에 있던 귀한 마법서가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해서요.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아 다들 불안해하는 상태입니다.”

 

 도둑? 달의 눈이 동그래졌다.

 

 “주인님께서도 신경을 쓰시고 계시는 사건이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고에 도둑이 들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녀가 읽은 내용엔 그런 내용은 없었더랬다. 달은 흠… 시름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 명심하죠. 걱정 마세요.”

 

 어깨를 으쓱하며 천연덕스럽게 굴었지만… 거짓말이었다. 서고에 있으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달은 안에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볼까 생각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조금도 안됩니다.”

 

 테럴드가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순간 달은 자신의 소리를 내어 말한 줄 알았다. 혹시 집사 장이 되려면 독심술이라도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인가.

 

 때마침 발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테럴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제가 먼저 시선을 끌 테니, 그 사이 들어가시죠.”

 

 달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테럴드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볍게 목례했다.

 

 “아데미 여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곧이어 그는 모퉁이를 빠져나와 층계를 타다닥-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빼꼼 고개를 내민 달은 어느덧 계단의 중간 지점을 이제 막 올라오는 아놀드와 알렌의 정수리를 발견했다.

 

 ‘오 마이 갓.’

 

 마음이 급해진 달은 일단 벽에 붙어 서서 심호흡을 했다. 까치발을 한 자세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달에게 때마침 테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터 아놀드 공작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셨다는 소식을 급히 전해 들어, 이리 모시는 게 늦었습니다.”

 

 그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으며 부러 더 울대에 힘을 주었다. 달도 말아 쥔 손아귀에 힘을 주곤,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공작님을 모실 집사 장 테럴드입니다.”

 

 ‘셋…!’

 

 호다닥- 그 말을 신호로 달은 최대한 자세를 낮춰 날렵하게 코너에서 빠져나왔다.

 

 “행동 한 번 굼뜨군. 집사 장이란 자가 하인들 관리도 안하고 예서 뭐하는 게지?”

 

 아놀드의 의심어린 시선이 무심코 그의 뒤쪽을 향했다. 테럴드는 필사적으로 그의 눈을 옭아매기 위해 구미가 당길만한 정보를 던져주었다.

 

 “송구합니다. 섀도우 공작저하께서 이제 막 귀환하신 참이라, 바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효과는 대단했다. 아놀드 뿐만 아니라, 알렌의 시선마저 대번에 테럴드에게 꽂혔다.

 

 “이제 막? 지금껏 정문에서 그 누구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그 사이 달은 무사히 서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작당을 까맣게 모르는 아놀드는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지금 내게 거짓을 고하고 있네.”

 

 허나 테럴드는 뻔뻔한 표정으로 맞불을 놨다.

 

 “오해하실 만 합니다. 허나 주인님께선 이리 종종 창문으로 들어오십니다. 아무래도 아데미 왕국에서 손꼽히는 마법사이신지라… 마법으로 날아서 오시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편하시다 하셔서요.”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업무로 피곤한 날엔 날아오거나, 순간 이동을 해서 창문으로 들어오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가 돌아왔다는 걸 다음 날 발견할 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아놀드는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 내 직접 확인해보면 될 일이지.”

 

 아놀드가 테럴드를 지나쳐 가려고 했지만, 테럴드가 다시 그의 앞을 막았다.

 

 “지금 주인님께선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괜찮으시다면 로비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가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막는 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지금 내가 이 저택에 친히 발걸음을 했다는 것보다 더 중한 게 있는가?”

 

 아놀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테럴드는 오만한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재차 허리를 숙였다.

 

 “… 제가 주인님께 다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러니 잠시 로비에서 대기를…”

 “아까도 이렇게 나의 앞을 막은 계집종이 있었지.”

 

 멈칫. 테럴드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조소 섞인 눈동자가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때렸네. 주제를 모르면 맞아야지.”

 

 본분도 잊고 테럴드는 그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저리 대놓고 실토한다는 건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같은 공작 가문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발밑에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테럴드는 애써 분노를 내리누르며 입매를 당겼다.

 

 “… 저희 고용인의 태도가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모든 교육은 제 소관이니, 앞으로는 제게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어투는 공손했으나, 무시 못 할 경고가 느껴졌다. 일반 하인에게선 볼 수 없는 꼿꼿함이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 아닌 가 몰라.’

 

 뒤에 있던 알렌은 찝찝해졌다. 문제 삼으면 얼마든지 안건으로 올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

 

 섀도우 경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떻게든 본인이 더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제 주인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글쎄. 생긴 지 백년도 안 된 가문에서 뭘 보고 배우겠는가. 기대조차 말아야지.”

 

 쯧. 아놀드가 혀를 한 번 차고는 테럴드를 스쳐지나갔다. 계단을 디디는 지팡이의 소리가 규칙적으로 멀어져갔다. 기사 알렌이 잠시 머뭇거리다 그 뒤를 따랐다.

 

 진짜로 이렇게 쳐들어가는 건가? 심지어 섀도우 공작까지 돌아왔다고 하니, 아무리 알렌이라고 하더라도 살짝 긴장이 되었다.

 

 “…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끝까지 그들을 제지할 줄 알았던 테럴드가 의외로 순순히 앞장섰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눈빛으로 그리 생각을 전한 아놀드는 가슴을 당당히 펴고 발길을 이었다.

 

 알렌이 아놀드를 호위하며 걷다가 주위를 기민하게 두리번거렸다.

 

 ‘그건 그렇고. 과연… 공주를 어디다가 숨겼을까.’

 

 이미 공주를 구해준 게 휘라는 건 기정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공주와 같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저택 안에 숨겼다는 건데…

 

 흘끗. 아놀드의 눈치를 살피니 그 역시 주변을 눈에 불을 키며 가는 중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주인님께선 이 안에 계십니다.”

 

 어느덧 세 사람은 집무실 문 앞에 멈춰 섰다. 테럴드가 문에 대고 넌지시 고했다.

 

 “공작각하. 아놀드 공작님께서 친히 예까지 올라오셨습니다.”

 

 가시가 있는 말에도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테럴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재차 말을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공작각하…?”

 

 테럴드의 부름에도 마찬가지이자, 안 그래도 저택을 들쑤셔놓은 아놀드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비키게.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어 그가 테럴드를 거칠게 밀어내고 본인이 양문 손잡이를 덥석 잡았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아놀드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도망친 죄인을 찾듯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테럴드가 당황한 건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공작님! 갑자기 그렇게 문을 여시면 큰일…”

 

 말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그러자 더운 습기가 훅 끼쳐왔다.

 

 홰애액!

 

 별안간 화살 같은 것이 아놀드의 면전에 날아들었다.

 

 잔바람이 훅 끼쳐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기름을 바른 아놀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버티지 못하고 나부꼈다.

 

 “공작각하!”

 

 챙- 순식간에 검을 꺼내든 알렌이 그것을 재빨리 쳐냈다. 검 날에 맞은 그것은 바닥에 냅다 꽂혔다.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최소 실명일 정도로 아찔한 공격이었다. 한껏 긴장한 알렌이 경계태세를 갖추어 아놀드를 보호했다.

 

 “괜찮으십니까?”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에 아놀드마저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그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간신히 바닥으로 내려 자신을 공격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화살도, 검도 아닌 흔하디흔한 만년필이었다. 아놀드가 어금니를 부득 갈았다.

 

 “지금… 감히 나를…!”

 

 아놀드의 낯빛이 점차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런 치욕은 처음이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 보였다.

 

 “아… 이런. 결계를 푼다는 것을 깜빡했군.”

 

 촤륵- 물소리와 함께 집무실 안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제가 없을 때 혹 부외자가 침입할까 싶어 걸어둔 마법인데… 귀공께서 당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소.”

 

 얇은 로브를 걸친 채, 욕조에 느긋이 앉아있던 휘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반쯤 내리깐 금안에 흥미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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